2021-08-02

알라딘: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알라딘: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 김민환 소설   
김민환 (지은이)문예중앙2021-04-21

596쪽


목차
1. 난장
불 | 기반 | 굿판
2. 쉰내
어머니 | 처인 | 오라버니 | 안마당
3. 빼기와 보태기
코끼리 | 하나와 둘 | 무너진 하늘 | 만남
4. 일림산
천당과 지옥 | 샛바람 | 요산요수 | 밥 | 나랏일 | 인연
5. 예비된 실패
가슴 | 말할 기회 | 상잔 | 크로마이트 | 해조곡 | 구국전선
6. 가고 오고, 오고 가고
편지 | 화형 | 묘약 | 귀거래 | 구들 밑, 마루 밑
7. 길
유담프 | 일할 기회 | 제물 | 가시울 | 보성소리 | 부족설
8. 이별
신작로 | 탈출 | 서울생일 | 초상화 | 진달래
9. 윤슬
죽 잃 난 또 | 세 번째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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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지수는 팽나무 밑에 둔 평상에서 낮잠을 자다가 일어났다.

추천글
봉강 정해룡 일가의 삶을 통해 현대사를 성공적으로 조감한 소설

김민환의 장편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에서 한 역사적 인간을 만난다. 우리는 그 한 인간을 통해 그가 거느린 백여 명의 가속들과 그를 중심으로 그물망처럼 연결된 보성 일대의 유지들과 군민들이 해방정국과 더불어 20세기 후반을 살아간 궤적을 여실히 접할 수 있다. 그것은 가족사적 소설 형태로 전개되는 지난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현재 우리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주인공 봉강 정해룡은 한반도의 분단과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린 시대에 자신의 정치적 영달을 꾀하지 않고 통일국가를 지향하는 제3의 길을 택했으나 이로 인해 견디기 힘든 고난과 시련을 겪고 마침내는 좌절하고 만다. 그의 비극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비극의 원천이 거기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봉강이 정치적으로 좌절한 이후 인의 도덕의 정치는 사라지고 파당과 대결의 정치가 자리 잡게 되었다. 한반도 남단에 살았던 봉강 정해룡 일가의 부침을 통해 한반도 전체의 비극적 상황을 성공적으로 조감해 볼 수 있도록 표현했다는 것이 이 소설의 뛰어난 장점이다. 이 장편이 숙성되는 과정을 지켜본 필자는 여기에 쏟은 저자의 애정 어린 인간 탐구에 경의를 표한다. 그는 중립적이며 객관적 서술로 시대를 바라보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군소 인물들의 인생 역정 하나하나에 역동적 생명력을 부여했다. 아마도 인간에 대한 작가의 연민과 공감이 깊이 배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봉강의 정치적 신념에 전적으로 동조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의 인간적 기품과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큰 새는 역풍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봉강은 일림산 줄기 아래에서 태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위민보국의 길에 헌신하며 득량만 바다에 출렁거리는 윤슬처럼 장강대하의 길을 갔다. 봉강이 임종하기 직전 학을 타고 날아가는 꿈에서 깨어 먹을 갈아 중국 대시인 최호의 시 「황학루」를 쓰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봉강의 추모비가 세 번 만에 면민들의 자발적인 협력으로 세워진 것처럼 우리가 그를 우국지사라고 명명할 수 있다면 아직 한국인에게 진정한 애국의 길이 남아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작품을 통해 장편작가로 당당한 입지를 확보한 김민환 작가에게 우정 어린 축하의 말을 전해드린다. - 최동호 (시인, 고려대 명에교수) 

“순리를 위한 일이라면 역풍을 뚫고 날아가는 분”

봉강리 들머리 둔덕에 늘어선 팽나무 숲이 손님들을 맞았다. 득량만을 내려다보면서 일림산으로 오르는 양지바른 산자락에 영성 정씨 종택 거북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몽양 여운형을 공부하는 모임이라면 꼭 찾아 봐야 하는 곳이라면서 2007년 7월 하순 조선대 사학과 이종범 교수가 ‘역사기행’을 안내했다. 거북정은 몽양의 정치노선이 겪었던 풍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금방 주저앉을 것만 같은 고택의 모습은 처연했다.

임진 7년 전쟁 동안 이순신 장군과 함께 나라를 구한 반곡 정경달 선생의 13대손 봉강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항일에 음양으로 나섰듯이 해방 뒤에는 바른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온 정성을 바쳤다. 해방이 되자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식솔에 비례해서 농토를 나눠주었고 그곳에 사는 것이 불편하면 땅을 팔아 다른 곳으로 이사하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분열이 아니라 통합과 화해를 추구했던 몽양 여운형의 노선을 중앙에서뿐 아니라 풀뿌리 보성에서 자리 잡도록 재산과 사람을 다 바쳤다. 건국준비위원회, 좌우합작, 조선인민당, 근로인민당에 앞장섰다. 지주가 왜 좌익에 가담하느냐고 비난을 들었지만 “나 같은 사람이 좌우를 아우르는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고 되묻곤 했다. 몽양이 암살당하고 이어서 백범 김구가 세상을 떠난 뒤 동족상잔 전쟁까지 일어나 나라와 민족이 갈라지자 죽음의 행군이나 다름없는 세월을 살아야 했다.
저자 김민환 교수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떠올렸다. 『토지』가 하동 평사리를 중심으로 동학농민전쟁부터 일제 시기 민중의 해방 꿈을 그렸다면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는 보성 회천면 봉강리를 중심으로 분단시대 민중의 통일을 향한 불굴의 꿈을 그렸다. 그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봉강과 거북정 사람들이 그 꿈을 함께 꾸는 모습은 장엄하다.

세우지 못해 땅에 묻혀 있던 ‘우국지사’ 봉강의 추모비를 1995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6년 만에 보성의 우익 인사들이 세웠다. 봉강을 사찰하던 전직 형사가 앞장섰다. 제막식장에서 누군가 “봉강은 인품이야 훌륭하지만, 시대를 거스른 분 아니여?”라고 말하자 전직 형사가 말했다. “천만에, 순진하디 순진하게, 그야말로 순리대로 사신 분이여.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고 하잖든가? 이 어른은 순리를 위한 일이라면 역풍도 뚫고 날아가는, 그런 분이셨어.” -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전 몽양 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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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국일보 
 - 한국일보 2021년 4월 30일자 '새책'
조선일보 
 - 조선일보 2021년 5월 1일자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21년 5월 16일자
서울신문 
 - 서울신문 2021년 5월 6일자
중앙SUNDAY 
 - 중앙SUNDAY 2021년 4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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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민환 (지은이)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장편소설 『담징』(서정시학, 2013)과 『눈 속에 핀 꽃』(중앙북스, 2018)을 썼다.
최근작 :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눈 속에 핀 꽃>,<담징> … 총 11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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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
문예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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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등 총 60종
대표분야 : 한국시 21위 (브랜드 지수 33,639점),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28위 (브랜드 지수 20,66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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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북스-김민환 장편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기자명 김명식 기자
입력 2021.04.29 18:31
댓글 0

남도일보 북스-김민환 장편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김민환 지음/문예중앙

식민과 분단에 맞섰던 ‘큰 사람’ 봉강의 꿈, 그리고 아픔
보성 회천 정해룡 일가의 삶 통해
해방이후 한국현대사 아픔 조망
장흥군 용산면 고향인 저자 김민환
봉강의 애국·애민 정신 발자취 추적
사회갈등 원천인 분열 극복 메시지

왼쪽 봉강 가운데 안용섭(봉강의 매제 전 전남대법대학장).오른쪽은 정해진(봉강의 동생) 가운데 윤초평(봉강의 어머니)./ 정길상씨 제공

전남 보성군 회천면 봉강리의 봉서동에 정해룡 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집터 뒤로 거북이 등에 해당하는 봉우리가 둥그렇게 있고, 거북이 주둥이 바로 밑에 집터를 잡았다. 그래서 이 집을 ‘거북정(亭)’이라고 동네에서는 부른다.

거북정은 일림산 정맥이 몇 갈래로 흩어져 흘러내리다 다시 모인 지점에 들어서 있다. 거북터는 영구하해(靈龜下海)라고 불리는 집터다. 도선국사가 전국의 명당 터를 기록해놓았다고 하는 도선비결에 등장하는 자리다. 명당 족보에 나오는 양택지인 것이다.

이 집의 대지는 총 9917㎡(3천평)이나 되는 장원에 가깝다. 400년 전에 이 집을 처음 지을 때부터 집안으로 계곡물을 500m 정도 끌고 와서 좔좔좔 흐르는 물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당 한쪽에는 한반도 모양의 연못이 조성돼 있다. 1930년대에 집 주인인 봉강 정해룡이 조성한 것이다. 집을 통과한 계곡물은 다시 대문 앞을 통해서 동네로 내려가도록 돼 있다.

명당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이 장원에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 진하게 배여있다. 집안의 주인들은 해방 이후 이른 좌익활동을 하면서 쇠락해갔다. 6·25 이후 6촌 이내의 8명이 총살과 교수형을 당하는 참사를 겪었다.

또 ‘빨갱이 집’ ‘좌익 분자의 집’으로 낙인찍혀 마을 사람들은 집 근처조차 가는 걸 꺼려했다.

김민환의 장편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에선 이 집의 주인이었던 한 역사적 인간을 만난다. 한 인간을 통해 그가 거느린 100여 명의 가속들과 그를 중심으로 그물망처럼 연결된 보성 일대의 유지들과 군민들이 해방정국과 더불어 20세기 후반을 살아간 궤적을 여실히 접할 수 있다. 그것은 가족사적 소설 형태로 전개되는 지난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현재 우리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정해룡은 보성의 명문가 장손으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통신과정을 이수한 지식인이었다. 3천석의 재산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면서 구휼과, 교육·문화의 민족 계몽 사업을 해온 지방의 유지였다. 저자는 이 거물 운동가의 행적을 조용히 뒤따르며 논픽션 소설로 재구성했다.

저자가 정해룡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때였다. 친구가 주소록을 들고 원등마을(장흥군 용산면·저자의 고향마을)로 저자를 찾아왔다. 친구는 대뜸 족보를 보자고 하더니 그의 5대 조모 ‘원등 할머니’가 저자의 집안에서 출가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때부터 저자는 친구를 통해 그의 집안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화려하고도 기구했다. 그 가족사 한 토막을 소설로 내기로 마음먹고 3년전부터 집필을 시작했다.

소설의 주인공 정해룡은 임진왜란 7년 전쟁 동안 이순신 장군과 함께 나라를 구한 반곡 정경달 선생의 13대손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에 음양으로 나섰고, 해방 뒤에는 바른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온 정성을 바쳤다. 해방이 되자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식솔에 비례해서 농토를 나눠주었고 그곳에 사는 것이 불편하면 땅을 팔아 다른 곳으로 이사하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정해룡은 한반도의 분단과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린 시대에 자신의 정치적 영달을 꾀하지 않고 분단 국가가 아닌 통일국가를 지향하는 제3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견디기 힘든 고난과 시련을 겪고 마침내는 좌절하고 만다.
거북정 (봉강의생가)./정길상씨 제공

정해룡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과 화해를 추구했던 몽양 여운형의 노선을 서울에서뿐 아니라 풀뿌리 보성에서 자리 잡도록 재산과 사람을 다 바쳤다. 건국준비위원회, 좌우합작, 조선인민당, 근로인민당에 앞장섰다. 지주가 왜 좌익에 가담하느냐고 비난을 들었지만 “나 같은 사람이 좌우를 아우르는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고 되묻곤 했다. 몽양이 암살당하고 이어서 백범 김구가 세상을 떠난 뒤 동족상잔 전쟁까지 일어나 나라와 민족이 갈라지자 죽음의 행군이나 다름없는 세월을 살아야 했다.

저자는 정해룡의 비극을 그만의 것으로 가둬두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비극의 원천이 정해룡이 맞닥뜨려야만했던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정해룡이 정치적으로 좌절한 이후 우리 사회는 인의 도덕의 정치는 사라지고 파당과 대결의 정치가 자리 잡게 됐다.

이처럼 책은 한반도 남단에 살았던 정해룡 일가의 부침을 통해 한반도 전체의 비극적 상황을 통시적으로 조감해 볼 수 있도록 한다. 중립적이며 객관적 서술로 시대를 바라보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군소 인물들의 인생 역정 하나하나에 역동적 생명력을 부여했다. 이는 저자가 이념과 정치를 뛰어넘어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깊이 배어 있기에 가능했다.

정해룡은 일림산 줄기 아래에서 태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위민보국의 길에 헌신하며 득량만 바다에 출렁거리는 윤슬처럼 장강대하의 길을 갔다. 그가 임종하기 직전 학을 타고 날아가는 꿈에서 깨어 먹을 갈아 중국 대시인 최호의 시 ‘황학루’를 쓰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최동호 시인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토지’가 하동 평사리를 중심으로 동학농민전쟁부터 일제 시기 민중의 해방 꿈을 그렸다면 이 책은 보성 회천면 봉강리를 중심으로 분단시대 민중의 통일을 향한 불굴의 꿈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현재 진행형이고, 정해룡과 거북정 사람들은 그 꿈을 함께 꾸는 모습은 장엄하다고 평했다.

정해룡에 대한 평가는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의 언급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세우지 못해 땅에 묻혀 있던 ‘우국지사’ 봉강의 추모비를 1995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6년 만에 보성의 우익 인사들이 세웠다. 봉강을 사찰하던 전직 형사가 앞장섰다. 제막식장에서 누군가 “봉강은 인품이야 훌륭하지만, 시대를 거스른 분 아니여?”라고 말하자 전직 형사가 말했다. “천만에, 순진하디 순진하게, 그야말로 순리대로 사신 분이여.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고 하잖든가? 이 어른은 순리를 위한 일이라면 역풍도 뚫고 날아가는, 그런 분이셨어.” 라고 추천사에 적었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저자 김민환

▶저자 김민환은

장흥군 용산면 원등리 원등마을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해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대 신문방송학과를 거쳐 고려대 미디어학부로 옮겨 교수 생활을 하다 2010년 8월에 은퇴하고 명예교수로 있다. 고려대 언론대학원 원장, 한국언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장편소설 ‘담징’(서정시학, 2013), ‘눈 속에 핀 꽃’(중앙북스, 2018) 등을 썼다. 언론학 교수로 정년퇴직한 후 완도군 보길도에 거주하며 소설가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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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원 교수가 본 김민환 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중앙일보] 입력 2021.05.07
 

김민환의 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를 처음 접하였을 때 나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연상했다. 그러나 읽으면서 떠오르는 것은 최인훈의 〈광장〉이었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상당히 달랐다. 두 소설은 모두 분단 이데올로기를 다룬 것이다. 그러나 〈광장〉의 이명준과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의 봉강 정해룡의 이야기는 같으면서도 다른 것으로 읽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명준의 이야기는 1960년대 작품이고 봉강의 이야기는 2021년이란 60년의 세월이 흐른 21세기의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분단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배제’의 논리이었던 것에서 이제는 ‘관용’과 ‘통합’의 논리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봉강의 분단 이데올로기는 전체적으로 보면 전통과 문화에 오염된 것으로 그것의 오만한 주체성이 중심적인 것에서 주변화 된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덜 각박하게 아니 덜 불편한 마음으로 대면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데올로기 때문에 죽거나 죽이거나 할 것 까지는 없다는 것을 봉강의 추모비가 그의 사후 거의 20년이 지나 세워지는 이야기로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해는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전언을 포함해서 말이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는 정치 이데올로기 소설이다.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고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면 관계이고 화엄불교의 여래(如來)이고 여거(如去)이다.

1945년에서 출발하는 해방정국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의 역동적인 우리의 현대사에서 실패한(?) 한 정치인과 그 세력을 깊은 연민의 감성과 함께 열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봉강 정해룡은 해방정국에서 몽양 여운홍의 지지자로 남쪽도 북쪽도 아닌 중간노선의 정치인 이었다. 작가는 이런 봉강의 삶을 통해 실존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요약하면 그것은 한마디로 중도정치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를 작가는 어떤 때는 명료히 또 어떤 때는 넌지시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봉강의 삶에서 이를 발견한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의 주제는 정치이다. 좌나 우가 아닌 중간 혹은 중도라고 할 수 있는 소위 제 3 노선의 정치이다. 그것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서 나는 무지하다. 그러나 관념적으로는 중도의 요체가 무엇인가를 조금은 말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그것은 근대의 2원론적 사고에 대한 안티테제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배제’의 논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선과 악, 진실과 허위,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로부터 나오는 중요한 정치적 가치는 관용이고 포용이고 연대이다. 봉강의 정치적 입장은 기본적으로 남과 북의 동거로 그것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희생의 길이었다. 그러나 봉강은 그 길을 선택한다. 국회의원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낙선하기도 하고 보복 받을 것을 알면서도 전쟁 중에는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맡는다. 그의 아내 최승주의 말을 빌리면 그는 ‘대의를 따르는 일’을 자신의 규범으로 삼았다. 이것은 양반 출신으로 유교적 전통문화의 표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서구적 계몽인의 규범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리스만이 범주화한 전근대적 전통지향적 인간이면서 동시에 근대적인 내부지향적인 인간이다. 그러나 그의 중간노선이라는 정치적 입장은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탈현대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봉강에게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란 현대의 전형적인 이중성이 그에게서 발견된다.

봉강의 중간노선 즉 제3의 길이란 자족적이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1에서 10까지의 열 개 숫자가 있다하자. 그리고 이 각각의 숫자의 의미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 보자. 3을 예로 든다면, 3은 나머지 아홉 숫자와 다른 것 이다. 그러나 3이 3으로 존재하는 것은 3 이외의 다른 1이나 2 같은 아홉 개의 숫자가 있기 때문이다. 봉강의 ‘중간’도 이런 것이다. 그는 이를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 삶에서 직관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관용’을 최고의 정치적 덕목으로 삼으면서 남 북 개별체의 절대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관용’이란 현실에서는 흔히 실패 한다. 봉강은 이를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한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의 정치는 문화로 오염(?)된 정치이다. 이 문제는 정치철학에서 논쟁적인 것이다. 이것은 근대적 정치는 아니다. 덕의 정치라고 하기도 어렵다. 권리의 정치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탈 근대적인 정치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제 3의 중도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 속의 이야기들, 인물들, 사건들, 이들은 모두 문화 지향적 이다. 저자는 이들을 남도의 창으로 표현하곤 한다.

봉강의 삶을 서술한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는 한편의 ‘서사 시’ 이다. 그 속의 인물과 언어가 거의 시적(poetic)이다. 시 언어는 ‘존재자’(beings)가 아니라 '존재‘(being)의 언어이다. 봉강의 이야기는 모든 논리, 모든 이성, 모든 진리 그리고 사실의 증명과 같은 체계화된 논증의 무의미함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는 그의 세계를 숫자나 사물과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의 생명에 대한 경외심, 재물에 대한 집착이 아닌 그렇다고 무시나 경멸이 아닌 그 존재에 대한 성실함, 인위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직한 대면, 주체의 오만으로도 보일 수 있는 용기와 자부심, 이런 모든 것들이 그렇다.

조금 더 부연하겠다. 하나는 김민환의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는 한국어의 지평 확대에 의미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존재의 집’이라는 언어는 구조적으로 우리의 사고와 논리를 규제하고 억압한다. 언어구조 속에서 우리는 사고하고 놀이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남도의 사투리를 동원하고 사용하면서 우리 말의 자유를 확대한다. 이것은 우리 언어의 구조적 지평을 확대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언어도 중심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 근대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주변인 남도의 사투리가 중심이 되어 그 구조를 전도시키고, 아니 전도가 아니라 중심과 주변이라는 구분을 무력화 하고 있다.

또 하나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철학과 문학 사이의 경계 문제 이다. 유럽의 경우는 철학과 문학은 그 경계가 거의 없다. 사르트르, 카뮈, 보드레르 같은 경우 그들은 소설가, 시인, 문학 평론가 이면서 철학자이었다. 푸코도 그런 예의 하나이다. 그들의 시, 소설, 평론 문학은 철학 저술이기도 하다. 그들은 문학과 철학을 같이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경우가 드믄 것 같다. 굳이 말한다면-나 같은 문학 전공이 아닌 자가 거명하는 것을 용서한다면-김현이나 최인훈 그리고 김병익 같은 평론가가 떠오르지만 그러나 과문한 탓이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아니다. 나는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를 읽으면서 그런 문학과 철학-정치철학-사이의 경계를 너머서는 작품과 담론의 가능성을 본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과거’가 ‘현재’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감동적인 사실은 인간은 처음부터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그 무엇의 한 부분으로 존재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죽으면 썩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영원히 남아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은 유한한 것이 아니라 무한하다는 위로의 말이다. 고대의 동굴 벽화, 투탕카멘의 무덤, 베르사이유 궁전도 이를 말하는 것이다. 봉강 정해룡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의 의미가 있다.

역작이다. 언론학 교수인 김민환이 자신의 학문 영역을 넘어선 업적이다. 잘 준비한 자료와 숙고, 뛰어난 필력 모두 흔치 않은 능력과 노고의 결과이다.


임상원 고려대 명예교수


[출처: 중앙일보] 임상원 교수가 본 김민환 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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