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성
1tSh1o0sa4led ·
* 부끄러운 마음
“어흥!! #디어_프루던스 355권 주문하겠습니다.
“무슨 일이죠”
“보내주세요”
(…)
“가능할까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보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8월 초, #풍월당 최성은 실장님과 이런 문자를 주고받았드랬다. 그리고 오늘 박종호 선생님이 쓴 긴 편지가 다시 왔다. 이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걸까? 삶은 이렇게 살아지는가보다.
———
들판의 출판사, 밭두렁의 서점 홍주라는 고을
지난여름에 오랜만에 찾아간 시골은 아름답고 경건했습니다. 저는 충청도 쪽으로는 별로 연고가 없지만, 이런 저런 일로 조금씩 찾아갈 일이 생기면서, 그 지방이 가진 아름다움에 젖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다정해진 두 고을이 있는데, 하나는 공주요 다른 하나는 홍성입니다.
우리나라 8도의 도명道名이 각 도의 대표적인 두 고을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들이죠.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 그런 식입 니다. 그러다보니 제3위와 제4위권의 고을들은 도리어 인지도가 떨어져 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모든 분야가 그러니, 패자의 눈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3등과 4등의 차이가 크지 않아도, 올림픽에서도 동메달까지만 수여하니 동메달리스트는 알려지고 4위는 눈물을 삼키면서 세간의 이목으로부터 멀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빅 스리 같은 빅 파이브 같은 말은 4등이나 6등을 감안하면 참 위험합니다. 결국 세상은 승자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늘 패자가, 그것도 아름다운 패자가 훨씬 더 많은 법입니다. 그럼에도 매스컴에는 오직 승자만 부각되니, 이기지 못한 사람의 박탈감은 점점 커지고 세상과의 포용은 멀어집니다.
과거 충청도에서 가장 중요하고 함부로 붙이지 않는 고을 ‘주州’자가 붙은 고을이 충주, 청주, 공주 그리고 홍주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충청도라고 이름이 지어지면서, 우리는 공주와 홍주를 점점 잊어갔습니다. 공주의 경우 원래는 대전보다도 번성한 곳이었다고 하죠. 홍성도 원래 홍주洪州였던 지명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홍성洪城으로 바뀐 것입니다. 다시 홍주로 바꾸려는 노력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공주와 홍성의 매력을 점점 알아가고 있어서, 스스로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저는 원래 외국에서도 몰랐던 도시를 찾아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같은 대도시(곧 다음 주에 수업에도 나오겠지만)를 예로 들면, 물론 그곳은 멋지고 공부할 것이 많은 장소죠. 그렇지만 주변의 마인츠, 만하임, 다름슈타트, 베츨라, 마르부르크 같은 작은 도시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이 가진 개성을 즐기고 누리는 것도 기쁨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2년 동안 그런 도시들을 잊고 있었네요.
하지만 그동안에 저는 국내의 작은 도시들을 많이 찾곤 하였습니다. 그중에서 공주는 제가 좋아하는 후배가 근무하고 고속철도도 생기는 등 가까운 느낌이 있어서 여러 차례 방문하였습니다. 하지만 홍성은 갈 일이 없었습니다. 일단 고속철도가 닿지 않아서, 가려면 재래식 철도로 무궁화호 아니면 새마을호를 이용해야 하니 번거로운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홍성에는 우리가 알만한 유명한 명승지도 별로 없습니다. 오직 말이 느린 사람들이 모여서 조용히 농사를 짓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큽니다. 굳이 일부러 갈 일은 없는 곳이죠.
저를 부른 한 출판사
하지만 지난여름 어느 날 제가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서 “홍성으로 가자!”고 한 것은 한 출판사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우리 수업시간의 책읽기에서 소개하여 많은 분들에게 그야 말로 잔잔한 감동과 충격을 주었던 책이 『자발적 가난』입니다. 그 『자발적 가난』을 낸 출판사가 그물코 출판사였는데, 저도 그 일로 출판사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이런 기사 저런 이야기에서 그물코 출판사에 대한 언급에 눈에 가기 시작하였지요. 역시 알아야 보이는 것이죠. 그러다가 원래 서울에 있던 출판사가 홍성으로 내려간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그곳에서 친환경 농법에 대한 책을 내고, 그것도 아주 많이 꾸준하게 내고, 출판사 사람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시골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들판에 서점을 세우고, 마을의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시와 그림을 가르치고, 마을 사람들을 위한 도서관을 열고, 아이들에게 작문 대회를 열고, 아이들에게 직접 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서점을 무인 서점으로 만들어서 농부들이 오며 가며 책을 읽고, 심지어 농사지은 채소나 과일을 놓고 가면 서로 나누고...... 하는 이야기들이 점점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저만의 어떤 감각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이 저를 자꾸 홍성으로 오라고 유인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느낌을 많이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편입니다.
그래서 가기로 했습니다. 출판사 견학이니, 풍월당의 식구들도 같이 가보기로 했습니다. 기차를 탄다면 홍성역에 내리더라도 또 시골까지 차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차를 한 대 준비하여 몇명이 같이 움직였습니다.
내려가는 동안에 출판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몇 번 만에 겨우 통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무슨 마을 몇 번지로 오세요” 아니면 “무슨 길로 오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죠. 그런데 이 분은 “아, 어떡하지? 와도 볼 게 없는데......”라고 말을 흐리는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볼 것 없어도 괜찮아요. 시골 서점에 뭐 있겠어요? 그냥 가서 이것저것 책 구경하고, 서점의 평소 모습 보고, 얼굴 보고 인사나 드리고 오면 되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아, 볼 게 없는데.......”만 말씀하시는 겁니다. 차는 구릉이 이어진 시골의 밭 사이를 이리 돌고 저리 돌고, 길을 잘못 들고, 마을을 찾지 못해서 다시 돌아오고...... 하다가 결국 말씀하시는 곳에 닿았습니다.
꽃밭에서 만난 농부
어떤 키 큰 농부가 쟁기를 들고 밭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의 모습을 본 순간 저는 직감적으로 그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차를 세우고 내렸습니다. 출판사는커녕 서점은커녕, 아무 것도 없는 밭 가운데에 마치 공중전화 부스 같은 좁은 모양의 나무로 지은 창고 같은 것만 하나 서 있었습니다. 그 구조물이 깔고 앉은 자리는 채 한 평도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 안에 쟁기랑 호미랑 몇 권의 책이 있었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키 큰 농부와 악수를 했습니다. 그 분이 그물코 출판사의 대표였습니다. 얼마 전에 서점은 모두 뜯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창고에는 마을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직접 쓴 시들이 바람을 맞으며 붙어있었습니다. 아이들 이름과 수상한 상의 이름들이 정다웠습니다. 그는 마치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나온 농부 아니면, 젊은 톨스토이 그 분 같았습니다. 그 주변의 밭은 온통 꽃이었습니다. 하지만 꽃은 거의가 지고 파헤쳐 놓은 고랑이 더 많았습니다.그가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건물이 없어졌다는 뜻도 있었지만, 밭에 꽃이 다 졌다는 뜻이었습니다. 꽃이 져서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물론 저는 상관 없었습니다. 그는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남자였습니다. 한 남자가 서있는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게 보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책을 읽는 남자, 책을 쓰는 남자, 전쟁하는 남자, 전쟁에서 이긴 남자가 아니라, 밭에, 뒤엎은 들판에 홀로 선 남자가 이렇게 아름답게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물코 서점은 사라졌습니다. 출판사는 사라졌습니다. 아니 하지만 건물만 사라진 것이죠. 형태는 사라졌지만 법적으로는 엄연히 남아있고 그가 펴낸 책들은 있으니까요.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책들을 보낼 때에 직접 키운 꽃을 넣어주는 약속— 그것이 ‘퍼져라 책과꽃’이라는 운동인가 봅니다 —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꽃농사를 계속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많던 라벤더는 다 져버리고, 그 들판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남자만이 서있었습니다.
저만치 고랑에서 한 여성분이 농사를 짓다가 역시 완벽한 농부의 차림으로 나왔습니다. 그녀가 그물코 출판사의 편집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위한 농사를 짓는다고 흔히 말하지만, 그들 그물코의 식구들은 진짜 농사도 함께 짓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주인이 농사를 짓는다지만 직원들로 함께 호미를 들다니,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서울의 사무실에 앉아서 펜대만 놀리는 사람들과는 모습도 자세도 마음도 영혼도 다른 것이 느껴졌습니다.
손님을 대접할 방도, 앉을 의자도, 내놓을 차 한 잔도, 과자 한 조각도 없었습니다. 검은 흙이 묻는 손을 비비고 다들 들판에 앉았습니다. 꽃이 진 꽃밭 너머 서쪽으로 사라지는 석양만 다 함께 바라보았습니다. 모두가 말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할 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쪽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석양이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이 가난하고 텅비고 깨끗해진 적이 없었을 겁니다.
책을 지키려는 홍성군 홍동면의 기적
그물코 출판사에 대해서 제가 더 아는 것은 없습니다. 대신에 두 가지 신문 등에 나온 기사들을 모아서 제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장은성이 세운 그물코출판사는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있다. 20년 전 2001년 서울 마포에서 문을 열고,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 『자발적 가난』 같은 스테디셀러를 만들어내다가, 2004년 농촌으로 이전했다. 홍성이 장은성 대표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홍동면은 우리나라에서 친환경 농업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홍동면은 대안학교와 협동조합 등 지역 공동체 활동이 활발한 곳 이기도 하다. 그물코출판사는 일부러 농촌으로 들어가서 농촌마을의 ‘면面’단위에서 책을 만드는 유일한 출판사가 되었으며, 오랫동안은 혼자서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였다. 그물코가 만드는 책은 주로 생태나 환경을 주제로 한 책들이다. 특히 홍동으로 이전한 후에는 『농부의 길』, 『소—땅과 사람을 이어주던 생명』, 『농부는 백가지 일을 하고 백가 지 작물을 기른다—백성 백작』, 『논 생물도감』, 『다시 농업을 생각한다—땅에 뿌리박은 지혜』,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다』, 『우리 마을입니다』, 『논생물 책받침』 같이 농업이나 농촌과 관련한 책을 발간하고 우리나라에서 주도적인 생태환경 전문출판사로 인정을 받고있다.
장대표는 “베스트셀러는 없지만 죽지 않고 꾸준히 팔리는 잡초 같은 책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재생용지만 사용하고, 양장본은 만들지 않고, 신념에 맞지 않는 책은 만들지 않고, 광고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그에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지역출판사들이 겪고 있는 판로확보 문제는 장대표에게도 여전한 과제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은 작은 출판사와 작은 서점에게는 넘기 힘든 벽이다. 따라서 그는 전국 각 지역의 대표서점과 동네의 작은 서점, 오랫 동안 거래해온 배급업체 등을 통해서 독자와 만난다. 앞으로도 대형유통망보다는 작은 서점들과의 관계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물코는 지역 공동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출판사다. 장대표가 농촌마을로 와서 처음 한 일은 ‘느티나무책방’을 만든 것이었다. 마을 주민의 요청으로 시작된 일이었는데, 출판사가 만든 책과 보유한 책, 그리고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들로 책방을 열었다. 운영자가 없고, 장부도 없는 무인점포였지만, 수익이 남았다. 초창기에는 마을 주민들이 책을 사오라고 기금을 모아주기도 했다. 지금은 홍동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이 주된 고객이다.
그는 지역의 도서관 건립도 주도했다. 지역 주민들이 출자해 지난 2011년 개관한 ‘밝맑 도서관’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을 위한 만화방과 마을카페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한 마을의 각종 소식지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마을에 출판사가 생기자 주민들이 공동체신문 같은 인쇄물 제작을 요청했다. 특히 홍동에는 많은 협동조합이 있는데, 이들 조합 등지에서 필요로 하는 출판물을 그물코에서 제작한다. 일감이 밀려서 이제 직원 까지 두게 되었다. 지역의 출판사가 공동체와 함께하는 방법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장 대표는 자신이 펴낸 책처럼 『자발적 가난—덜 풍요로운 삶이 주는 더 큰 행복』을 지향하며, 작고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재미있게 시골에서 책을 만들며, 하나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국민 독서량의 심각한 감소로 한 군郡에 서점이 하나도 없는 곳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 감소폭의 주역은 시골 작은 동네책방의 몰락이다. 하지만 인구 3 천 명의 시골 마을인 홍성군 홍동면에는 출판사와 서점, 책방, 도서관 모두 갖춰져 있다. 운영방식도 생존방식도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특이하다. 생태환경의 삶이 담기고 더불어 사는 평민들의 진리가 담긴 곳, 그래서 가능성과 희망을 안겨 주는 곳이다. 따라서 작은 지역공동체에서 지역과 환경, 생태와 문학을 공통분모로 작가와 주민이 만나는 풀뿌리 문화공간이 주목받고 있는 곳이 바로 홍동마을이다. 주민을 대상으로 글쓰기, 책읽기 강좌를 마련해 풀뿌리 문화공간으로 인기를 누리며 생활 속의 작은 문화공간이 되었다.
홍동마을에는 ‘그물코출판사’와 ‘‘느티나무책방’과 ‘밝맑도서관’도 있다. 농촌 한가운데 출판사와 서점, 도서관이 모두 다 있다. 이곳 책방에서는 신간도 팔고 헌책도 싸게 판다. 시골사람들이 논밭을 오며가며 책방에 들러 책을 사고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천대받던 영혼들이 비로소 귀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라고들 한다.
현재 홍동마을에는 홍동밝맑도서관과 그물코출판사, 느티나무책방 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풀무생협과 풀무신협을 비롯해 대안학교인 풀무학교, 갓골어린이집, 유기농연구소, 협동조합 얼렁뚝딱 건축조합, 할머니장터조합 등이 있다. 이러한 지역자원이 협동조직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또 지역센터 ‘마을활력소’와 사랑방 역할을 하는 ‘갓골 작은 가게’와 마을 카페 ‘뜰’도 있다.
영혼을 위한 실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과 명예를 목표로 살아가면서, 영혼은 피폐해지고 질투와 질시와 극단적인 양극화로 가득찬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의 인간성을 지키고 영혼을 구제하는 것은 돈이 아닌 정신을 목표로 두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 은 진정 『자발적 가난』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낸 책 『자발적 가난』의 정신을 이렇게 직접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늘 배우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분을 직접 본 것은 저로서는 마치 깊은 산중의 현자를 만난 것 같은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우리 일행의 짧은 행차가 그분들의 조용한 삶에 약간의 먼지와 잠시의 바람을 일으키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남았습니다. 물론 우리도 조심했지만, 그렇게 오염된 우리를 뒤돌아보게 할 정도의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드린 책은 그물코 출판사가 올해 들어서 두 번째로 만든 ‘퍼져라 책과 꽃’ 시리즈인『디어 프루던스』입니다. 관용이 사라져가는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싶은 이런 시기에 저자인 호시노 도모유키가 펜을 들어서 쓴 책입니다. 힘든 팬데믹 시대에 다들 힘을 내자고 쓴 것입니다. 작은 책이지만 “국가를 흔들리게 할 규모의 책을 쓴다” 고 오에 겐자부로가 칭찬했던 그의 정신을 만나 보세요.
현자의 높은 단계는 고독과 침잠인데, 더 높은 그 다음의 단계는 못난 세상을 향한 관용과 포용입니다. 모자란 우리들을 안고 가려는 호시노 도모유키나 장은성 대표 같은 분에게 감사합니다. 혹시 그물코 출판사를 돕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각자의 방법으로 도와주세요. 책 뒤에 정보가 있을 겁니다. 우리의 작은 응원이 하나하나의 그물코가 되어 세상을 구하는 큰그물이 될 수있습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이 우리들의 뿌리인 농촌을, 우리 아버지와 친지를, 우리의 땅을, 그리고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살리는 일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2021년 10월 20일. 박종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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