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이재명 경기 도지사가 민주당 차기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본다.
첫째, 문재인 정부를 이어가되 문재인 정권의 소극적 유약함을 넘어설 인물이라고 보고, 이재명에게서 문재인보다 더 강한 변혁 의지와 실천 능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둘째, 소위 1류대 출신 정치가나 부유한 기득권 세력이나, 중앙정부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서민과 일반 국민의 기호와 정서에 맞는 개혁의 기수가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셋째, 가난한 공원 출신으로 사법고시를 거쳐 성남시장, 경기도지사직을 거치며 그가 보인 약속 이행 능력에 대해 신뢰하는 이들이 공직을 더욱 잘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있기 때문이다.
넷째, 사람들은 50.29%가 겨우 이긴 것이라 보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재명이 이낙연처럼 총리나 국회의원이나 중앙정부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절반을 넘은 것은 압승이다.
다섯째, 그동안 여러 부정적 이미지, 대장동 게이트 관련 흑색선전, 특히 후보 경쟁 기간 마지막에 설훈의 근거 없는 ‘이재명 구속’ 공포조작 불안 심리 조장 작전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또한, 총 50.29% 득표는 이미 전국에서 55% 정도의 득표 상황을 지켜본 이들이 방심하며 투표한 결과이기도 하다.
여섯째, 부패 언론과 국힘당이 합작하여 지난 2달 동안 이재명 타도’에 집중한 효과가 성남-경기 이재명 효과가 직접적으로 미치지 않은 서울권 중앙정치 민주당 텃밭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강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일곱째, 서울권 득표율 저조 현상은 소위 일류대 중심의 특권 카르텔, 중앙정치 세력, 부유층 세력, 부패 언론 세력의 영향력이 그들만의, 그들끼리의 리그로 수도권 중앙정치를 독식, 타락 시켜 온 역사와 그 관성 작용 때문이기도 하다.
여덟번째, 이재명과 추미애는 서로 다름에도 큰 차별성이 없었다. 이재명과 추미애 표는 가장 씽크로율이 짙은 표가 달리 결집된 것이라고 본다. 추미애 지지자들은 차기 정권에서 추미애의 역할 지분을 위해 투표한 성격이 있다. 국힘당과 싸울 때는 이재명 표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지지 성향은 근 60%에 가깝다고 본다.
이상은 내 생각을 정리해본 것이나, 부족함이 많다. 더 좋은 평가가 더해지면 좋겠다.
저질이네…
오늘 독서 모임에서는 <융의 영혼의 지도>를 다루었다. 사실 융은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구원의 대상 영혼을 언급하지 않는다. 분석 심리학이나 정신 분석학에서는 그런 영혼을 다루지 않는다.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영혼의 지도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사실은 마음의 지도라고 하는 것이 났겠다 싶었다. 아니면 정신의 구조를 그려보려는 시도라고나 할까. 4명의 은퇴 목사들이 이 책에 대해 느끼는 바는 각기 달랐지만, 페르소나와 그림자, 무의식, 원형, 의식, 개성화 등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같이 공감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일까? 융이 보듯 물질과 욕망 사이에서 다양한 단계를 거치며 우리가 삶을 살아가도록 추동하는 에너지가 과연 무엇엔가에 의해 방향 지어진 원형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오히려 에른스트 블로흐처럼 방향지워지지 않은, 결핍 상태를 충족하려는 희망의 의지가 삶의 에너지원이라는 이해가 더 적절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성적욕망, 성이 상징하는 이미지, 아니마 아니므스의 변증법적 합일 역시 인간이 지닌 강력한 성적 욕망에 대한 해석이다. 프로이드는 직설적으로, 융은 문화적 해석으로 성욕의 실재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에 비해 소외가 없는 대면 세계, 악이 제거된 동일성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더 사회 심리학적 설득력을 가지는 원형적 에너지가 아닐까. 무의식에서 산출되는 원형적 에너지가 다소 법칙성을 가진 것이라면, 인간의 자유는 그만큼 제한 될 수밖에 없다.
답할 수 없는 비극을 목도하며 살아가는 삶에서 우리는 질문은 할 수 있고, 생각은 할 수 있지만 답할 수는 없다. 신학에서도 답이라고 내 놓는 것들은 이내 버려진다. 하나님1은 하나님 위의 하나님2에 의해서 비판받고 제거된다. 그 다음도 같다.
우리는 물을 수 있을 뿐 답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부정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며 답을 내는 까닭은 지금 가지고 있는 답이 여전히 궁핍한 것이기 때문에 그 보다 조금 나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역사는 조금씩 보다 나은 것을 향한다.
이런 의식이 정신과 물질 사이에서 발교하며 역사가 진척 되지만, 언제나 역사는 일직선 상의 진보의 줄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퇴행과 악의 위협을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나태하거나 방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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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을 마치고 한 벗이 나의 자전거 국토종주를 축하해주겠다며 황토구이 오리집으로 초대했다. 식당을 향해 가는 길 아무 건물도 없는 허허 벌판에 거대한 교회같은 건물이 새로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Coffee and Pup.
식사 후, 동료들에게 커피는 내가 샀다. 대형화된 커피 샵은 수 백 평의 내부와 수 천 평이 될 것 같은 야외 공원을 만들어 놓고 곳곳에 파라솔을 펼쳐 놓았다. 문득 동네에 문을 연 조그만 커피 샵들이 걱정 되었다. 이젠 교회도 대형교회로, 커피 샾도 대형 커피 샾이다.
돌아오는 길에 윤의 손바닥에 새긴 붉은 글씨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보수를 자처하는 벗도 “저질, 저질이야”라며 탄식했다. 우리가 모이면 네 명 중 나만 진보 노릇을 하는데, 오늘은 내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 또 한 벗은 “보수에는 사람이 없어”라며 탄식했다.
감옥 간 박근혜를 측은하게 여기는 친구는 “저러다 이재명이가 되겠어… “ 라며 근심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질이 되면 많은 사람이 죽어.”
오늘도 우리 독서 모임은 지혜롭게 서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정치 이야기로 끝났다. 윤석열이 생각보다 저질이라는 점에 대해서 일치를 본 날이다.
윤이 나온 그 좋다는 법대 출신들 중엔 정말 저질들이 풍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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