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9

[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말도 삶도 터전도···완전한 이방인으로 ‘소수화’되는 홍콩 청년들

[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말도 삶도 터전도···완전한 이방인으로 ‘소수화’되는 홍콩 청년들


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
말도 삶도 터전도···완전한 이방인으로 ‘소수화’되는 홍콩 청년들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
2022.03.18 14:00 입력




박쿠이* (沐羽 bakkui)
<연기 속의 거리(煙街)>




*대만과 중국 푸젠성 남부 지역방언인 민난화 발음



연초 국가보안법의 위협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홍콩의 시티즌뉴스는 지난해 말 ‘이민 분위기 속의 홍콩 정체성’이라는 토론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홍콩에 26년간 거주한 미국인 인류학자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각기 다른 배경의 중년 홍콩 시민들이 홍콩의 정체성에 대해서 차담을 나누는 자리였다. 1984년 중국으로 반환이 결정된 뒤,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됐던 홍콩인들의 정체성은 지난 20년간 오히려 강화됐다. 하지만 홍콩 시민이라는 지역 정체성과 중국 국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착종하는 가운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라 말하기 어렵고 그 미래는 더욱 장담하기 힘들다.





이 매체의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2019년 여름부터 2년간 무려 2만여명의 홍콩 시민이 대만으로 이주했고, 4000명이 영주권을 획득했다. 대만에 거주하는 홍콩 출신의 젊은 소설가 박쿠이(필명)가 1월에 발표한 단편소설집 <연기 속의 거리>는 최루탄 연기 속의 2019년 홍콩민주화시위와 담배연기 속의 대만 후일담이 함께하는 작품이다.


박쿠이는 후기에서 자신의 소설을 들뢰즈, 가타리가 이야기한 “소수적인 문학”으로 설명하는데 입말인 광둥어와 문어가 분리돼 있는 홍콩문학의 특성에 다시 대만의 국어(國語)를 기준으로 글을 써야 하는 그의 작풍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다. 단순히 소수어족 작가라는 생래적 특성 때문만이 아니라 “탈주와 도망”이 작품의 가장 큰 주제인 까닭도 있다. 원래 모두가 잠재적 과객이었던 홍콩에서 압도적인 폭력과 자유를 향한 혼란스러운 갈망이 충돌하는 가운데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다친 후 홍콩 청년들은 다시 완전한 이방인이 됐다. 탈영토화한 모든 개인의 문제는 이제 정치적이 된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홍콩과 대만 청년들의 삶은 이미 자본의 압력 속에 충분히 소진되어 술, 담배, 섹스라는 기호품으로만 보상받고 관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함몰돼 있다. 여기 더해진 일본 여행은 홍콩인들의 정체성 중 하나인 “스트레스성 여행 중독”의 가장 보편적인 증상인데, 팬데믹이 이들에게 가져다준 각성 하나는 “1년 넘게 일본에 가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작가는 자조한다. 한국 청년들의 모습과도 놀랍게 닮아 있는데, 모두가 중앙으로의 상승만을 염원하는 유교문화권이 낳은 최악의 경쟁사회라는 것 외에도 홍콩, 대만, 한국은 끊임없이 대륙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동시에, 어쩌면 그로부터 단절된 ‘섬’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대만으로 온 홍콩인들은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적지 않은 어려움도 겪는다. 푸퉁화(普通話, 현대 중국 표준어)가 능숙한 이들은 대륙과 관계가 좋고, 영어가 능통한 엘리트들은 영미권으로 이주한다. 역설적으로 가장 “로컬한 홍콩인”들이 대만을 선택한다. 일자리와 부동산 문제나 대륙과의 연계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이들이 대만에서 그린카드를 얻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다. 소설의 표지를 그린 홍콩 출신 만화가 류광청(劉廣成)도 대만으로 이주하여 <사라진 홍콩(被消失的香港)>을 출간했는데 이 작품은 2021년 청소년 추천 도서로 선정됐다. 자유가 사라진 암울한 홍콩의 미래를 대만에 투사시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들의 작품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대륙 사람들이다. 양안삼지(兩岸三地)의 골은 갈수록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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