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
l5tSp23hos0urghcih170l ·
새벽 단상(1): "중국과 척지지 말아라!"
중국에 특사를 보내지 않겠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국이 거부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 판단으로 안 가겠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새 정부의 대 중국 커뮤니케이션이 초기에 '삐끗'하지나 않을 지 걱정될 뿐이다.
국민들의 안전을 담보해야 할 외교에 어찌 흑백(黑白)만 있겠는가. 거무스름한 것도 있고, 희스무레한 것도 있을 수 있다. 음(陰)이 양(陽)되고, 양이 음 될 수도 있다. 중국인들도 그걸 잘 안다.
또 다시 흑백으로 접근하려는가?
미국이 중요하고, 동맹이 중요하다는 것 누가 모르는가. 그럴 수록 중국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중국에 설명하고,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 최소한 그런 제스쳐만이라도 보여야 한다.
'요소수'가 무서워 이러는 게 아니다. 국민 안정보장에 대한 전체 구도 자체가 어긋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신(新) 냉전 구도 속에서 중국과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 없이 우리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필자의 주장은 심플하다.
중국과 척지지 말아라!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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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14 M1S6arc3h a2to62 ghor08:54d ·
[주역으로 본 세상](26) '윤석열은 다를까?'
전쟁은 끝났다. 승패는 갈렸다. 패자는 5년 후를 다짐하며 울분을 삭이고, 승자는 전리품 배분에 나선다. 곧 승자들의 자리 나눠 먹기 '파티'가 벌어질 것이다.
그게 우리나라 대선 후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우리는 다를 것입니다. 반드시 성공한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새 정권은 항상 그렇게 약속한다. 희망을 얘기한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다. 호기를 부리며 출발한 정권은 끝날 때쯤 여지없이 국민의 지탄을 받고 물러나야 했다.
윤석열 정권은 다를까?
당연히 달라야 한다. 성공한 정부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주역을 편다. 그 질곡의 역사를 끊어낼 팁이 혹 있지 않을까…
주역 7번째 '지수사(地水師)' 괘는 흔히 '전쟁의 괘'로 통한다(䷆). 전쟁 승리의 길(道)을 보여준다. [주역으로 본 세상] (11)편에서 살폈던 대로다(혹 읽지 않으신 분들은 꼭 찾아보시길 바란다).
'지수사' 괘의 마지막 효(爻)는 전쟁이 끝난 후 상황을 묘사한다. 효사(爻辭)는 이렇다.
'開國承家, 小人勿用'
논공행상((論功行賞)에 관한 내용이다. 승리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사람은 제후(諸侯)로 봉해 개국 공신으로 우대한다. 공이 그보다 덜한 사람은 경(卿)이나 대부(大夫)로 삼아 집안을 대대로 이어가게 했다.
그다음 말에 더 주목해야 한다. '소인은 쓰지 마라!' 소인은 사욕만 챙기는 사람이다. 오로지 '자리'만을 노리고 선거판에 뛰어들었던 '정치꾼'이다. 주역은 전쟁에 아무리 공이 있더라도 '사욕에 물든 정치꾼'에게 공직을 맡기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쟁은 목숨을 거는 행위다. 모든 걸 내놓고 싸운다. 그러기에 누가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사람인지 금방 드러난다. 그런 자에게는 재물을 챙겨줄지언정 관직을 줘서는 안 된다고 주역은 말하고 있다. 반드시 나라를 어지럽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必亂邦也).
정권 초기 정국 운용의 길을 보여주는 또 다른 괘는 '택지췌(澤地萃)'다. 주역 45번째 괘로 연못을 상징하는 태(兌, ☱)와 땅을 뜻하는 곤(坤,☷)이 위아래로 놓여있다(䷬).
땅 위의 물은 흐르고 흘러 연못으로 모인다. 그래서 괘 이름 '萃(췌)'는 '모인다'라는 뜻을 가진다(萃,聚也). '택지췌'는 '단결의 괘'로도 불린다. 괘사(卦辭)는 이렇게 시작한다.
'王假有廟, 利見大人'
'왕은 묘당에서 지극히 제사를 지내고, 대인을 찾아 살피니 이롭다.'
전쟁에서 승리한 왕이 해야 할 일은 딱 두 가지다. 첫째 분열된 민심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 둘째는 국정을 맡길 인재를 발탁하는 것이다.
주역의 시대, 묘당은 이데올로기 통합의 장소였다. 묘당에서 지극히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곧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이었다. 정통성을 확인하는 행사다.
현대라고 다를까. 선거로 갈린 민심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할 것인가는 새 정권이 직면한 첫 과제다. 종묘에 가 제사를 지내는 것만으로 통합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금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민심을 하나로 모을 '가시적인 무엇'을 보여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은 '통합 정부'를 내걸었다.
핵심은 인사다. 통합에 어울리는 인재를 발탁하고, 포진시켜야 한다. 괘사 '대인을 살핀다(利見大人)'라는 말은 바로 그 뜻이다. 그렇다면 '대인(大人)'은 어떤 사람을 말할까? 두 번째 효사에 힌트가 있다.
'孚乃利用禴'
'믿음이 있으니 소박한 제사로도 허물이 없다'
'禴(약)'은 봄에 지내던 제사다. 나물(채소)만 올려놓고 간단하게 지냈단다. '소박한 제사도로 허물이 없다'는 것은 곧 그 만큼 백성의 신뢰를 얻었다는 얘기다. 백성이 마음으로 따르고 있는데 굳이 이를 확인할 형식이 뭐 필요하겠는가. '아, 저 사람이면 국정 이끌어가는 데 문제가 없겠다'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대인'이다.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나. 많은 주역 해설서는 당태종(唐太宗) 시기의 충신 위징(魏徵, 580~643)을 사례로 든다.
당태종이 어느 날 위징에게 물었다.
'何謂明君, 暗君?'
'어떤 이를 명석한 임금이라 하고, 또 어떤 이를 우매한 임금이라 하는가?
위징이 답한다.
'君之所以明者, 兼聽也.
君之所以暗者, 偏信也.'
'군주가 명석하다 함은 폭넓게 듣는 것을 말합니다. 군주가 우매하다고 하는 것은 치우치게 믿는 것을 뜻합니다.'
위징은 사례를 들어 보충했다.
'진나라 2세 왕(胡亥)은 깊은 궁궐에 앉아 대신을 보지 않고 오로지 환관 조고(趙高)의 말만 믿었습니다. 천하 대란이 터져 결국 자기도 화를 당했습니다. 수(隋)나라 양제도 우세기(虞世基)의 말만 믿다가 천하를 잃고 말았습니다.'
폭넓게 들어라!
치우치게 믿지 마라!
쉬운 말이다. 그러나 이 평범하면서도 쉬운 말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쓸쓸한 만년을 보내야 하는 리더들이 많았다. 옆에 위징 같은 신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징은 당태종이 듣기 싫어할 만한 직언을 자주 했다. 그런데도 당태종은 이를 받아줬고, 정책에 반영했다. 그런 군신의 신뢰가 있었기에 '정관의 치(貞觀之治, 627~649)'가 가능했다. '믿음이 있으니 소박한 제사로도 허물이 없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막 탄생한 권력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을 섬기고, 통합의 정치를 펼치고, 번영된 나라를 만들겠다고 거듭 약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 그런다.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초심을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다.
'有孚不終 乃亂乃萃'
'믿음이 끝까지 지속하지 못하면, 혼란은 다시 싹트게 된다.'
'택지췌' 괘의 첫 번째 효사다. 윤석열 당선인이 두고두고 명심해야 할 구절이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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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g114 t01Marcch samt 10r9:a513 ·
[주역으로 본 세상](25) "어떻게 하면 중국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사대주의자, 중국으로 꺼져~'
필자의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중국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쓴 기사에는 여지없이 욕설 댓글이 덕지덕지 붙는다. 반중(反中)정서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해가 간다. 서해 불법 조업, 미세먼지, 사드 한한령, 코로나19, 쇼트트랙 편파 판정…. 중국을 싫어하는 요인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이 부족하다.
중국 인터넷도 한국 넷심을 자극한다. '소국(小國)이면 소국답게 굴어~' 김치도, 한복도 중국 거라고 우긴다. 인터넷 공간은 양국 젊은이들의 정서가 격하게 부딪치는 싸움터로 변했다.
2030 젊은 세대들은 되묻는다.
"기성세대들은 왜 중국을 좋아하지?"
궁색하지만,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맞다. 중국, 정말 무서운 나라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것 아닌가. 반중을 하더라도 제대로 알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중국 나쁜 X들'하면서 댓글을 남기고 사라진다.
거칠어지고 있는 중국, 그런 이웃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려운 숙제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국난에 직면한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중국이라는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다시 주역을 열어본다. 8번째 괘 '수지비(水地比)'를 뽑았다. 물을 상징하는 감(坎, ☵)이 위에, 땅을 뜻하는 곤(坤, ☷)이 아래에 있다(䷇). 물이 대지 위를 유유히 흐르는 형상이다.
地得水而柔
水得地而流
땅은 물을 얻어 부드러워지고, 물은 땅을 얻어 흐른다. 그렇게 땅과 물은 서로 돕는다. 그래서 괘 이름이 '친근하다','밀접하다', '서로 돕다'라는 뜻을 가진 '比(비)'다.
'수지비'는 '전쟁의 괘'로 통하는 '지수사(地水師)' 다음에 온다.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승자는 군림하고, 패자는 복종해야 한다. 전쟁 후 형성된 정세를 보여주는 괘가 바로 '수지비'다. 괘를 다시 한번 보자.
䷇
6개 효(爻) 중에서 음효(陰爻)가 5개, 양효(陽爻)가 1개다. 그런데 양효는 흔히 '군왕의 효'라고 불리는 아래에서 다섯 번째에 있다. 5개 음효(신하)가 한 개 양효(군왕)을 받드는 형상이다. 패자가 승자에 복종하는 걸 상징하기도 한다.
이렇듯 '비(比)' 괘의 관계는 수평적이지 않다. 군림과 복종, 상하 관계만 있을 뿐이다. 그게 주역이 말하는 '잘 어울리는 이웃'이다.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신하, 사장과 직원, 팀장과 팀원…. 좀더 넓게는 '중화-오랑캐'라는 중화 질서로 연결된다. 주역에 수평적 관계 얘기는 없다.
'不寧方來, 後夫凶'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어도 찾아온다. 늦게 오는 자 흉할 것이다.'
괘사(卦辭)의 한 구절이다. 전쟁이 끝난 후 새 맹주(盟主)에게 복종하지 않고 버티는 자는 화를 당할 것이라는 얘기다. 패자는 응당 대국의 지배를 인정하고, 복종해야 한다. 조공이라도 바쳐야 한다. 주역에 중화DNA의 원형질이 담겨있다.
중국이 내심 반길 대목이다. 지난주 얘기했듯, 중국은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할 때만 해도 '늑대가 왔다(狼来了)'며 서방을 무서워했던 나라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경제 규모는 세계 2위로 올라섰다. 군사력은 주변국을 압도한다. 화성 탐사 등 우주항공 분야에서도 강국이 됐다. AI, 빅데이터, 전기자동차 등 여러 첨단 분야에서는 앞서 치고 나가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이제 우리가 짱이야. 내 밑으로 다 모여!
'늑대'를 무서워하던 중국은 지금 스스로가 야수로 변하고 있다. 중국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면 정색을 하고 달려들어 보복을 가한다. 자국 반체제 인사에게 노벨상을 줬다는 이유로 노르웨이 연어 수입을 막는다. '작은 나라가 어디 감히~' 중국은 그렇게 사드 보복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 스스로를 지역 '대국'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중요한 걸 놓쳤다. '군왕이라고 다 대접받고, 대국이라고 다 주변국의 존중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역의 가르침 말이다. '수지비' 괘사에 이런 문구도 있다.
元永貞, 无咎
'元(원)'은 '도량이 넓다(大度量)'라는 뜻. 주역 연구가 정쓰창(曾仕强) 대만사범대학 교수의 해석이다. '군왕은 관대하고, 포용심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변덕이 심해서도 안 된다. 언제나 바름(貞)을 지킬 수 있어야 신하의 존중을 얻는다.
'군왕의 효'라는 제5효 효사(爻辭)는 좀 더 구체적으로 존중의 조건을 제시했다.
'王用三驅, 失前獸, 邑人不誡'
왕이 사냥할 때 3면으로 포위한다. 한 곳은 풀어놓는다. 달아날 구멍을 터주기 위해서다. '동물에게도 저러할진대, 사람에게는 얼마나 더 너그러울까~' 그런 군주라야 백성들은 경계심을 갖지 않는다.
나라와 나라 사이도 마찬가지다. '대국'으로 자처하면서도 자기 이익만 집착하고, 쪼잔하게 주변국을 괴롭힌다면 어찌 주변국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겠는가. 수틀린다고 윽박지르고, 보복하고, 깔본다면 주변국은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서해 불법 조업 문제만 해도 그렇다. 중국은 자국 어민들이 당국의 지시를 어기고 한국 쪽으로 넘어가 꽃게를 잡고 있다고 변명한다. 개인적인 문제라고 둘러댄다. 턱도 없는 소리다. 중국은 공산당이 국가를 장악한 나라다. 당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불법 조업 어선을 묶어놓을 수 있다. 안 하니까 준동하는 것이다. 그러니 '서해를 언젠가는 중국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속셈'이라는 의혹을 키우고, 반중 감정은 쌓인다.
그렇다면 음효(신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양효(군왕)를 대해야 할까. 제5효가 군왕의 길을 보여준다면, 이와 호응하는 제2효(아래서 두번째)는 신하의 길을 제시한다.
'比之自內, 貞吉'
'자기 스스로의 결정으로 군왕을 따른다. 바름(貞)을 지키면 길하다.'
공자는 이 효사를 설명하며 '스스로를 잃지 않는 것(比之自內, 不自失也)'이라고 했다. 자존심을 지키라는 얘기다.
소국이 대국을 섬기는 이유는 자국 백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자국의 활로를 열기 위함이다. 대국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따르는 건 주역의 논리가 아니다. 그건 세상 물정 모르고 명분에 집착했던 조선 시대 성리학자의 묵은 생각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첫 주중 대사 노영민은 시진핑을 만난 뒤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말을 남겼단다. 맹주(盟主)에 대한 제후의 충성 서약으로 쓰던 단어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이미 멸망한 명(明)나라 황제를 제사 지내겠다고 사당을 지었고, 그 사당 이름으로 걸어둔 현판이기도 하다. '모화(慕華)'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걸 시진핑 앞에 버젓이 써놨으니 무식했거나, 아무런 생각이 없었거나….
중국 어선이 떼로 몰려와 서해 꽃게 잡아가도 정부 차원의 항의 한 번 제대로 못 한다. 중국 게임은 한국 시장에서 분탕질을 치며 돈을 긁어가고 있는데도 중국은 여전히 한국 게임 못 들어오게 막는다. 그래도 정부는 못 본 척한다. '만절필동'의 심리구조다.
결기를 보여줘야 할 때 슬며시 숙인다. 자존심도 없다. 중국도 문제지만, 문재인 정부의 중국 대응은 더 한심하다는 비난이 제기된다. 2030 세대의 반중감정은 그래서 더 깊어진다.
주역의 '비(比)' 철학은 맹자에게 그대로 반영된다. 맹자와 제(齊)나라 선왕(宣王)과의 대화 한 대목을 보자(孟子·梁惠王下).
'齊宣王問曰: 交隣國有道乎?
孟子對曰: 有. 惟仁者爲能以大事小. 惟智者爲能以小事大'
'제선왕: 주변국과의 교류에 도가 있습니까?
맹자: 있습니다. 큰 나라는 오직 인자함으로 작은 나라를 존중하고, 작은 나라는 오직 지혜로서 큰 나라를 존중해야 합니다.'
대국은 포용력을 보여야 소국의 존중을 받는다. 그게 맹자가 말한 인(仁)이다. 당연한 얘기다. 무서운 대국을 어찌 존중할 수 있겠는가.
소국은 오로지 '지혜'로서 대국을 상대해야 한다. 맹자는 '지혜로 사대(事大)하라'고 충고한다.
왜 사대하는가. 나라와 백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니 '불편해도 스스로의 판단으로 가는 것(不寧方來)'이다. 막연한 모화주의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국제 정치의 현실은 냉혹하다. 몸집이 커진 만큼 행동하고, 더 요구하게 되어 있다. 중국이 커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중국, 그래도 너는 계속 양(羊)처럼 순하게 있어야 해'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그들도 늑대가 될 수 있고, 근육질을 과시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런 시각으로 중국을 봐야 현실적인 대중 정책을 짤 수 있다.
'에이 나쁜 XX~'하고 돌아앉아 욕만 해서도 안 되고, 순한 양 같은 중국을 마냥 기대해서도 안 된다. 자존심 내팽개치고 비굴하게 빌붙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우리의 이익을 침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여주고, 필요하다면 동맹을 끌어들여 호가호위(狐假虎威)라도 해야 한다. 그런 한편으로는 맹자의 말대로 '지혜로운 사대'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거칠어지고 있는 중국,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오로지 '지혜', '지혜' 뿐이다.
한우덕
* [주역으로 본 세상]이 어쩌다 25회에 이르렀습니다. 잠시 쉬고 '시즌2'에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10 comments
Kim Hyo Yul
홧팅~^^ 입니다.
Reply1 w
한우덕
2t21t F1ebipr0ua5oray nrat 18:i42 ·
[주역으로 본 세상] (24) 시진핑 이해의 키워드, 딱 3개
심각하게 어긋나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은 근육질을 과시하고, 국내에서는 반중 감정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 관찰 20여 년, 필자가 본 한중 관계는 지금이 가장 위태롭다. 수교 30주년이 코 앞인데도 말이다.
오늘 중국 얘기 해보자.
필자는 중국 이해의 핵심 키워드로 3개를 제시한다. 딱 3가지다.
첫째 '한자(漢字)'다.
중국인들은 5000년 전에 썼던 문자를 지금도 쓰고 있다. 갑골문 '大(대)'자는 지금도 '大'로 쓴다. 의미도 '크다'라는 뜻으로 같다. 문자는 사고를 결정한다. 문자에 담긴 5000년의 사상과 철학, 세계관이 고스란히 그들의 머릿속에 쌓여 전수된다.
화이(華夷)사상도 전승된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고, 그 주변은 오랑캐(夷)로 본다. 지금 동아시아 질서를 보는 그들의 시각에도 중화DNA가 깔려있다. '한국은 한때 중국의 속국이었어.' 시진핑이 트럼프와 대화에서 했다는 말은 이를 보여준다.
중국은 현실 문제 솔루션을 과거에서 찾는다. 한자는 그 매개다.
둘째 '아버지 공산당'이다.
중국공산당이 설립된 건 1921년이다. 그 당이 혁명을 통해 1949년 건국한 나라가 바로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다. 당이 아버지라면, 국가는 아들인 셈이다. 행정, 기업, 학교, 협회 등 각 분야에 당 조직이 실핏줄처럼 퍼져있다. 부처님 손바닥이다.
얼핏 보기에 기업은 시장 논리로 움직이는 듯 보인다. 그러나 속은 다르다. 기업이라는 '새(鳥)'는 당이 쳐놓은 새장(籠) 속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조롱경제(鳥籠經濟)'다. 훨훨 날고 싶어 그물을 벗어나려 한다면, 아웃이다. 기세등등 마윈(馬云)도 단칼에 맛이 갔다.
'아버지 당'은 '아들 국가'를 손아귀에 쥐고 통제한다. '당-국가(Party-State)시스템'이다.
셋째 '돈 귀신'이다.
중국어에 '돈만 있으면 귀신으로 하여금 맷돌을 돌리게도 할 수 있다(有錢能使鬼推磨)'라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돈을 좋아하고, 쫓는다. 14억 중국인들이 돈을 향해 뛰고 있다.
그 중상(重商)의식이 오늘 중국 경제를 세계 넘버투로 만들었다. '짝퉁이 어때서? 선비정신, 그건 개나 갖다 줘'. 이젠 짝퉁 수준을 넘어 AI를 리드하고, 최고 수준의 전기차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회주의 나라 중국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적 성향을 갖는다.
이 3가지가 기본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을 보면 어지간한 건 다 풀린다. 중국을 연구하거나, 중국인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고 계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내용이다.
3가지를 염두에 두고 오늘의 중국을 보자.
모든 일은 2008년을 분기점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해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하계)을 치렀다.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8분. 예술 거장 장이머우(張藝謀)는 개막식에서 강렬한 색채와 율동으로 중국 전통을 과시했다. 그는 이 한마디를 세계에 던지고 싶어했다.
중국이 일어섰다(中國起來)!
당시 미국 경제는 엉망이었다.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서방 경제는 파국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굴지의 금융회사가 넘어졌고, 실업자가 쏟아졌다. 뉴욕에서 '월가 점령 시위'가 태동하고 있었다.
중국은 기민했다. 위기돌파를 위해 4조 위안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풀어 경제 부양에 나섰다. 중국 전역에 고속철도가 깔리고, 멀리 서부에 공항이 건설됐다. 도시에서는 아파트가 치솟았다. 서방 경제가 죽 쑤고 있을 때 중국 경제는 오히려 10%를 넘나드는 성장세를 유지했다.
2010년, 중국은 드디어 일본을 밀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 반열에 올랐다. 세계 경제 성장의 절반 이상을 중국이 담당했다. 당의 국가 동원 능력이 만든 결과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다.
只有中國社會主義救西方資本主義!
중국 사회주의만이 서방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환호했다. 공산당 만세~! '중국은 이제 노(NO)라고 말할 수 있다(中國說不)'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애국주의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넘버 투, 이제 미국만 남았다. '차이나 스탠드더(中國模式)'가 곧 전 세계에 퍼져나갈 것이다. 그렇게 중국인들은 일어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12년 말 당권을 장악한 인물이 바로 시진핑이다.
그가 내건 최고 정치 슬로건은 '중국몽(中國夢)'이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시기를 부흥시키겠다'는 게 핵심이다. 어떻게? 그들은 과거에서 답을 찾았다.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중국몽 실현을 위한 구상이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이르는 육상 실크로드, 동남아와 중동을 거쳐 유럽에 닿는 해상 실크로드를 오늘에 복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실크로드가 탄생한 건 한(漢)나라 때다. 그 길을 타고 동서양의 문물이 가장 왕성하게 오간 건 당(唐)나라다. 강한성당(强漢盛唐), 세계 최강 한(漢)나라와 최고의 부흥기 당(唐)나라. 그 시기를 오늘 재연하겠다는 게 바로 중국몽이요, 실현 방안이 일대일로다.
현재와 과거는 이렇게 만난다. 매개는 역시 '한자'였다.
시진핑은 미국에 슬슬 잽을 날렸다. '태평양은 넓어, 미국과 중국이 나눠 관리하자.' 태평양 동쪽은 예로부터 중국이 먹었으니, 이제 그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셈법이다. 아시아는 내가 맹주였는데….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중화DNA가 경제 성장과 함께 꿈틀거리고 있다.
'신형 대국 관계'라는 말도 만들었다.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국과 충돌이 빚어진다. 역사가 그랬다. 중국과 미국은 그러지 말자'라는 얘기였다. 그들의 화법 속에 중국은 이미 미국을 위협할 신흥강국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미국이 달가워할 리 있겠는가. 오바마는 짐짓 외면했지만, 트럼프는 정면으로 받아쳤다. 포성은 무역 분야에서 울렸다. 전선은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 걸림돌이 하나 생겼다. 주변국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선린우호(善隣友好)를 강조한다. 그는 주변국을 상대로 자주 '허쭤공잉(合作共嬴)'을 외친다. 협력으로 함께 시너지를 만들자는 호소다. 도로도 건설해주고, 통신설비도 넣어준다. 그런데도 주변국은 중국을 겁낸다.
필자는 여러 중국 주변 국가(도시)를 취재 차 돌아봤다.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미얀마, 베트남, 대만, 블라디보스토크…. 이들 지역에서 하나같이 발견할 수 있는 게 바로 '중국 위협'이다.
2015년 카자흐스탄 취재 때 얘기다.
카자흐는 중국이 중앙아시아, 유럽으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일대일로의 핵심 통로다. 중국 변경 도시 호로고스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가는 도로. 주변에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작업자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다. 중국 돈으로 진행되는 공사란다.
중국이 도로 공사 해주니 얼마나 고마울까. 그러나 알마티 관리의 반응은 달랐다.
"중국 작업자들은 공사가 끝나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안 가요. 그냥 사라져요."
알마티 관리는 "중국인들이 알게 모르게 카자흐스탄으로 스며들고 있다"며 "무섭다"고 했다. 넓고 넓은 초원의 나라 카자흐스탄. 그 평원에 중국인 많이 모여 살면, 그게 중국 땅일까 카자흐 땅일까…. 중국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 없다.
미얀마는 중국이 도로를 깔아놓고는 그 도로를 통해 자원을 '약탈'해간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정부는 상점이 하나둘 중국인들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에서는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 조업이 반중 감정을 야기하고 있다.
어쩌다 그리됐나.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건 2001년 말이었다. 당시 중국 언론에서 '늑대가 왔다(狼来了)'라는 말이 유행했다. '늑대'는 서방이다. WTO가입으로 개방 폭을 넓히면 서방의 자본과 기술이 중국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던 중국이 지금은 스스로가 늑대로 변하고 있다. '전랑(戰狼)외교'라는 말은 이를 보여준다. 중국 외교는 거칠다. 누군가 중국의 이익을 침해한다 싶으면, 외교관들은 '늑대 전사'로 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위협한다. 그러니 이웃 국가들은 쫄 수밖에 없다. 아직도 진행 중인 '사드 보복'은 그 한 예일 뿐이다.
한 나라의 세력이 커지면 당연히 주변국은 위기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중국은 그게 더 심하고, 광범위하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유럽마저 '황화(黃禍)'를 떠올리고 있다. 미국은 두말할 것도 없다.
중국은 과연 그들 의도대로 중국몽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한자', '아버지 공산당', '돈 귀신'. 필자는 위 3개 특성이 존재하는 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5000년 왕조시대의 철학과 사고가 현대 국제 정세와 어울릴 수는 없다. 공산당 주도의 국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서방의 자유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와 융합하기란 어렵다. 남의 나라 기술과 브랜드를 훔치거나 베껴 만든 제품으로 남의 존중을 받을 수는 없다.
이웃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대국, 자칫 이곳저곳에서 비극을 부를 수 있다. 그런 중국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게 우리의 운명이기도 하다.
중국이 놓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자, 이 화두를 풀기 위해 본격적으로 주역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주역 여덟 번째 '수지비(水地比)' 괘를 뽑았다. 물을 상징하는 감(坎, ☵)이 위에, 땅을 뜻하는 곤(坤, ☷)이 아래에 있다(䷇).
괘 이름 '比(비)'는 갑골문에서 사람이 나란히 함께 가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한자 사전 설문(說文)은 '밀접하다(比, 密也)'라고 했다. 그래서 '친근하다', '서로 의지하다'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이웃집과, 이웃 나라와 서로 잘 지내는 걸 일컫는다.
길었다. 어떻게 하면 중국과 잘 지낼 수 있을지, 수지비 괘에 관한 얘기는 다음 칼럼에 계속하자.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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