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6

Park Yuha 일제시대 조선 경성에서 태어나 만스물한살까지 자란 한 청년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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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기념 포스팅.
일제시대 조선 경성에서 태어나 만스물한살 (1924 - )까지 자란 한 청년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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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파국이 왔다. 8월16일. 패전 다음날이었다.
나는 경기도 인천 교외에 있는 송도에 있었다. 이곳엔 일찍이 해수욕장과 해조온천으로 알려진 휴양지가 있었고 전쟁때는 우리 전파무기 사관학교가 있었다.
나는 스무살. 곧 견습사관이 될 터였다. 명령 수령. 군용 고리짝과 머나먼 임지가 기다리고 있는 시점에서 패전을 맞았던 것이다.
그날, 나는 피복창고를 정리하느라 몸이 더러워졌었다. 그래서 혼자 목욕탕에 들어갔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졸기 시작했다.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이 전투의 나날의 피로도 이걸로 끝이다..
그대로 잠이 들듯한 상태로 욕조에 떠 있는데, 창 밖에서 갑자기 노랫소리가 들렸다. 노래는 「반딧불의 빛」같았다. 멜로디는 「반딧불의 빛」같았지만, 가사는 조선어 같기도 했다.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이전부터, 「Should old aquaintance be forget and never of to mind」에 「반딧불의 빛, 창가의 흰 눈」이라는 가사를 붙여 불렀다. 늘 부르면서도 의미가 다르다는 걸 전혀 이상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가사가 어떤 의미로 다시 변해 조선어노래가 된 것일까.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국기게양탑에서 갑자기 일장기가 툭 떨어졌다. 무슨 일이지? 그 쪽을 집중해 바라보고 있는데 다시 조선어 「반딧불의 빛」노래소리가 한층 더 커지더니, 노래 속에서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본 「태극기」가 소리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일거에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 처음 본 태극기였다. 내가 소년 시절, 우리 가게에 고용되었던,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李씨가 몰래 알려준 깃발이다. 李씨가 공장 빈터에 못으로 태극기를 그리고는 나에게 알려주더니, 발이 아닌 손으로 가만히 지웠던 그 깃발.
「반딧불의 빛」의 조선어 가사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노래하는 의미가 있는 듯 하다, 아니,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겨우 이해되기 시작했다.

깃발이 게양대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 환성소리가 일었다.
나는 동시에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패전사실을 안 후, 사관학교 바깥쪽에 있는 마을에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 라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날 밤, 나에겐 동초(주:보초가 일정한 구역 내를 왔다갔다하며 경계에 임하는 일)임무가 맡겨졌다.
주막 한채가 있었다. 주의를 요하는 곳은 이곳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낮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밤에 불을 켜고 있는 집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등화는 아직 형식적으로나마 통제되고 있었는데도 마을에선 여기저기 불을 켜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건 불온징후다.
주막은, 내 예상대로 불을 켜고 있었다. 안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실탄은 이미 장전된 상태였다. 나는 문을 발로 걷어 찼다. 문은 곧바로 열렸다. 눈 앞에 남자들이 몇사람 서있었고, 한가운데에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일장기가 펼쳐져 있었고, 깃발의 붉은 원에 먹을 칠하는 중이었다.
놀라 소리를 낸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일장기를 어떻게 하려는 건가. 뭔가가 시커멓게 뒤덮여오는 느낌, 그 예감의 공포에 짓눌려 나는 도망쳤었다.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나는 부대 안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었다. 욕조에서 내가 본 건 그 깃발이었다. 어젯밤에 그들이 일장기를 태극기로 변신시켰다는 사실이 겨우 이해되었다. 그들의 환성을 들으면서, 깊은 감동에 휩싸였다.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무라마츠 다케시<조선식민자>(197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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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범, 김희숙 and 58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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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comments

  • Park Yuha
    긴 글 순식간에 읽어주신 분들, 최고입니다~👍😊
    진작부터 번역서 내려고 생각하면서 아직 못 내고 있는 책의 일부입니다.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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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달 정정현
      박유하 아.. 정말 읽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소개글만 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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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낮달 정정현 낮달 정정현 반가워요.^^ 제가 아는 한 식민지지배가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깊이 고민하고 속죄의식으로 살았던 사람이죠. 편집자이자 시인으로 산 사람인데 사실 청일전쟁 직전에 건너온 할아버지 얘기가 중심이고 그 부분도 아주 흥미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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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chael Jung
      박유하 기다립니다
      2
    • 김희숙
      박유하 번역서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장면만 봐도 흥미진진하네요...!
      2
    • Park Yuha
      김희숙 성원에 힘입어 노력해 보겠습니다.^^
      2
    • Joyce Park 
      Follow
      박유하 꼭 내주세요!!!
    • Park Yuha
      Joyce Park 제가 귀환자들 얘길 전에도 쓰고 꼭 책 내란 응원 박샘께 받은 적 있는데 몇 년이 훌쩍 흘러가 버렸네요. ㅠ
      그래도 조만간 꼭! 우선 번역부터.^^
      2
    • Park Yuha
      중간에 끊은지라 이어지는 부분도 올려 둡니다.
      —————
      전날 천황의 방송을 들었을 때, 나는 일본군인으로서 울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깃발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다시 울었다. 군인으로서 패전이 슬퍼 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국가가 태어난다는 건 이런 것인가. 일찌기북조선에서 근무할 때 민족협화의 아시아공동체, 새로운 국가를 꿈꿨을 때의 그때와는 다르다. 나자신이 조선의 독립을 목격하고, 그 순간에 입회한 감동이었다.
      그 순간에 함께 하지 못한 나자신의 위치, 나자신의 핏줄이 이해되었다. 처음으로 조선으로부터 소외된 허망한 감정과 쓸쓸한 감정이 밀려왔다. 내 마음은 정말은 달라, 당신들과 가까워, 라고 외쳐봐야 이미 결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소리내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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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서윤
      박유하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건가요?
      공유 말고 인용해도 될까요?
    • Park Yuha
      윤서이 네, 그럼요
    • ChungOne Eun
      박유하 내세요. 글을 읽다보니 지금은 작고하고 안계시지만 제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조선식민에 대해 많이 미안해 하던 일본의 안과의사 쌤이 생각나네요. 책이 나오면 꼭 읽어보고 싶네요
    • Park Yuha
      ChungOne Eun 네. 그런 사람은 많고, 설사 소수라 해도 무시되선 안되죠.
  • 이창우
    애니메이션 이세상의 한구석에 엔딩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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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민
    흥미진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히는데요 ~^^
    기대하고 있을게요 선생님
    May be a close-up of nature
    2
    진민 replied
     
    2 replies
  • 최현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었네요. 변화되는 시대상이 절묘하게 오버랩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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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최현 네. 나중에 시인이 되는 사람이라 글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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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현
      박유하 그리고 그는 그대로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으로서 여러 면에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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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최현 네. 그것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같은 가족안에서도 연령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요. 언젠가 책을 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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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현
      박유하 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 김하니
    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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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김하니 좋게 읽어 주신 걸테니 제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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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하니
      박유하 네 정말 잘 읽었어요. 뭐랄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순간 말문이 막혀서 감사한다고만 썼네요.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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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wang-hong Park
    경성에서 회사원으로 지내다가 패전 직후 혼란수습을 위한 인력동원으로 징병되어 짧게 일본육군 생활을 했던 교토 분이 계시기에 인터뷰를 추진했던 적이 있습니다. 겨우 날짜 약속까지 잡았었는데, 그분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백지화되고 말았습니다. 올려주신 글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납니다. 내지와 해외전선에 있던 장병들의 패전 체험이 다르듯, 조선지역의 패전 체험도 또 결이 다른 듯 합니다. 번역 마쳐주시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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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이른바 귀환자가 되었겠군요.
      300만 군인이 나가 있었으니 수많은 스토리가 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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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InKyoung Chang
    우리도 이제는 제3의 시점을 가져도 좋을 때로군요 💕
    5
    InKyoung Chang replied
     
    2 replies
  • HJ Shin
    forget --> forgot : 광복절에 가사 왜곡을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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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HJ Shin 매의 눈.^^
    • Park Yuha
      책 원문은 forgot.
    • HJ Shin
      박유하 그러면 김치관 같은 사람이 '연쇄왜곡범'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유. 아, 나는 왜 이렇게 뒤끝 작렬일까. 찌질한 인간...
  • 김경철
    올려주신 내용을 보니 꼭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 HJ Shin
    이게 스코틀랜드 <올드랭사인> 곡조에 맞춰 '애국가' 가사를 불렀다는 이야기죠? 당시 조선 사람들에게는 스페인으로 귀화한 그 파시스트가 만든 선율 말고 이 멜로디가 더 익숙했을지 모르겠네요. 참고로 진정한 동아시아주의자 박유하 선생님께 중국어 버전도 바칩니다. https://youtu.be/DpjFTz3tEGE. 참고로 <올드랭사인>은 '구전민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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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アン ジェウ
    요 며칠간 NHK에서 태평양 전쟁관련 '신'다큐멘타리를 만들어 방송을 했는데, 내용이 당시 평범한 사람들이 태평양 전쟁 시기에 남긴 일기 등을 대량으로 수집해 분석한 것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다큐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전쟁의 잔인함을 보여주려고 했던 건지, 인트로 부분에 집어넣은 섬뜩한 화면들 때문에 거부감을 보여서 조금 보다가 일단 녹화를 해 놓았는데, 잠깐 본 부분에서 오늘 전해주신 글과 같은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 
    See more
    • Park Yuha
      アン ジェウ NHK는 좋은 다큐를 많이 만들죠 . 개인이 정치구조와 무관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 흐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아는 건 너무나 중요하죠. 
    • アン ジェウ
      일본에 와서 여섯번째 맞는 8.15인데, NHK가 평범한 개인에 촛점을 맞춘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2022년에 살고 있는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 생각해 보게 된 거 같습니다. ^^;;
  • Hyunsik Lee
    이 주제 관련해서 읽었던 책 '조선을 떠나며'가 생각나네요. 특히 조선땅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의 사연과, 귀국후 본토에서 겪은 일 등등.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그때 그랬겠구나...하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 Park Yuha
      이현식 네. 이연식 교수 책이죠.
    • Hyunsik Lee
      박유하 아까 TV에서 세계사를 다루는 예능프로그램 재방을 하던데, 1945년 패망 이후 일본인들은 '사상 유례없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격분들을 하더군요.
  • Donghee Kim
    와 이런 글이라니 ㅠㅠ
  • Kibum Sung
    몇년 전부터
    패전 전 오족협화의 정신에 기운차게 만주로 갔던 사람들의 이야기
    패전 후 귀환자의 이야기
    를 다룬 책 들을 흥미롭게
    보았었습니다
    번역하신다 하니 또 고대하겠습니다!
    • Park Yuha
      Kibum Sung 네. 제국전체, 그리고 붕괴전후까지 봐야 제국일본을 알 수 있지요.
  • Jongyil Ra
    번역본이 있습니까?
  • 신형배
    매우 흥미롭습니다 교수님.
    목포출생 일본인들이 패전귀국후 목포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책 추천받고 싶습니다^^
    소설도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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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영득
      현재도 그 목포회가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요,.
    • Park Yuha
      신형배 목포뿐 아니라 각 지역 향우회가 만들어졌었지요. 그런데 다들 연로해서 90년대 중반경에 해산한 곳이 많은 듯 힙니다.
      책은 좀 지난 후에 천천히 올려 볼게요.
  • Tristan Kim
    해방 전후의 시대상을 기록한 글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3
  • Kyungjoon Park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셔서 감사하네요. 꼭 번역부탁드려요~!!^^😊
    Park Yuha replied
     
    1 reply
  • Chee-Kwan Kim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글의 리듬이 너무 좋네요 - 원문으로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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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용
    댓글까지 한달음에 읽었습니다.
    그 군인의 마음이 이렇게 생생하게 전달될 수도 있는거군요.
    2
  • 이병권
    대단한 글입니다. 단숨에 몰입해서 읽었네요.
    2
  • Moonja Seki
    村松 武司詩人の文です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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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 Park Yuha
      Moonja Seki そうです。もしかしてご存知ですか。翻訳したいとずっと前から思ってました。学生たちとも読んで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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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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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もしかしてご存知、と言うのはお知り合い、と言う意味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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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 Moonja Seki
      私は直接の知り合いではないですが、たしか「季刊三千里」にも寄稿してい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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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 Park Yuha
      Moonja Seki 在日の方と付き合い多かったみたいです。ハンセン病関係の人たちと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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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 Moonja Seki
      21号(1980年2月1日 三千里社)※特集 近代日本と朝鮮のなかに、                          村松武司「朝鮮に生きた日本人──わたしの「京城中学」」という項目があり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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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 Park Yuha
      Moonja Seki そうでしたか!私にも三千里が何冊かあるのですが、探してみます。教えていただき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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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 Moonja Seki
      27号(1981年8月1日 三千里社) ※特集 朝鮮の民族運動 の中にも 以下の項目がありました。                村松武司「五月二十七日・東京」 ※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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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 Moonja Seki
      28号(1981年11月1日 三千里社) ※特集 在日朝鮮人を考えるの中にハンセン氏病の詩人について寄稿。                      村松武司「谺雄二・趙根在『詩と写真 ライは長い旅だから』」 ※読書案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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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 Moonja Seki
    以上『季刊三千里」の目次の中で見つけたものですが、崔順愛さんが全巻持っていますので必要でしたらコピーしてもらってください。現在韓国に帰っておりま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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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 Edited
  • Soona Kim
    아...
  • 심상헌
    꼭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 Jin Young Bae
    꼭 번역해 주십시오.
  • Summy Huang
    아 그렇죠 이런 시각들이 또 있었지요.
  • Hyonggun Choi
    꼭 번역하세요! 한달음에 읽겠습니다.
  • Dongjin Kim
    남을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이 인간적이고 따듯합니다. 이런 분들이 목소리가 더욱 커지길 바랄 뿐입니다. 평화는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라는 생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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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에서 산 일본인들의 역사

[화제의 책] <식민지조선의 일본인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49387
채은하 기자 | 기사입력 2006.05.14. 

일제 강점기 시대의 기억은 결코 잊혀지지 않았지만, 이 시기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75만 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의 존재는 잊혀지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다. 이들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조선인들에게는 식민지 조선으로 들어와 살던 일본인들이야말로 자신이 식민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일상적인 억압과 차별, 착취의 주체가 아니었을까.

다카사키 소지는 책 <식민지조선의 일본인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군인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름 모르는 사람들의 '풀뿌리 침략', '풀뿌리 식민지 지배'를 통해 유지되고 지탱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식민지 지배는 정치가와 군인들에 의해 부추겨졌지만, 일본의 많은 서민이 조선으로 건너온 것은 일본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름 모르는 사람들의 '풀뿌리 침략'"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은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의 역사와 전체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역사서다. 이 책은 1876년부터 1945년까지 70년 동안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이 다양한 군상을 통해 일본 식민지배의 특색을 실증적으로 살피고 있다.

다카사키 소지는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조선식민자(朝鮮植民者)>를 서술한 시인 무라마쓰 다케시의 말을 빌어 이렇게 소개한다.

"근현대사에는 많은 식민 지배자가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그들의 역사는 누락돼 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그들의 역사는 상실돼버릴 것이다. 단순히 식민자를 '대국주의적 침략자들'로 말해버리기는 쉽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는 우리 자신, 나아가서는 일본 민중이 어떠한 모습이었는가 하는 부분은 허상으로 변해버린다."

다카사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이 책의 최종적인 목적은 
우리가 조부모와 부모의 체험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잘못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담보를 획득하는 것에 있다"며 
"물론 지금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그 옛날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를 모르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이러한 다카사키의 말은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형식적인 반성들과는 그 층위를 달리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조선식민지 지배가 한두 명의 지배자가 아닌 다수의 일본 대중에 의해 견고히 이어져온 것이라면, 그 잔재 역시 일본사회 내에 넓고 견고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반성의 주체와 깊이가 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의 문제로 이어지기에 더욱 중요하다.

일제 말기 조선 내 일본인은 약 75만 명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은 조선총독부와 일본 외무성 등의 관변단체 사료, 일제시대 지방사 자료,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의 전기와 회고록 등 다양한 사료를 활용해 조선 내 일본인들의 성 · 직업 · 지역별 통계, 각 시기별 인구통계와 그 변화를 보여준다.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체결 뒤 개항 당시에는 54명에 불과했던 조선 내 일본인이 1895년 말에는 1만 2303명으로 늘어났다. 1900년 전후로 일본에서는 조선 이민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어 황무지 개척과 이주 어촌 건설이 주창되었으며, 그로 인해 1905년 말에는 조선 내 일본인 수가 4만246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1905년 러일전쟁의 승리와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으로 한국을 사실상 식민지화한 일본 정부는 좀더 확실한 한국 지배를 위해 조선으로의 이민을 적극 장려했으며, 그 결과 1910년에는 조선 내 일본인 수가 12만1543명으로 급증했다. 이후 조선 내 일본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1914년 말 29만1217명, 1919년 말 34만6619명, 1930년 말 53만 명에 이어 1942년 말에는 75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일본의 작은 부현 정도의 규모였다.

도시의 일본인, 농촌의 조선인




▲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다카사키 소지 지음, 이규수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 2006) ⓒ 프레시안

조선 내 일본인의 지역별 분포는 대단히 불균등해서 경기도와 경상남도에 거의 절반이 거주했다. 이는 서울과 부산 같은 대도시에 일본인이 집중됐음을 나타낸다. 일제 말기에는 만주침략정책과 군수공업화 정책과 연관되어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일본인 수가 급증했지만, 반대로 농촌 지역에서는 일본인의 비중이 별로 높지 않았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은 조선인과는 다른 그들만의 세계에서 조선인을 착취함으로써 귀족생활을 영위했으며, 조선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1908년 신마산에서 태어난 조선사 연구자 하타다 다카시는 '나는 조선에서 태어나 자랐다. 하지만 일본인 거리에서 살면서 일본인 소학교를 다녔고 일본풍 생활양식 안에서 생활했다. 따라서 조선인 아이들과 친해질 기회는 없었다. 우리는 조선에 대해 무지했다. … 당시를 회상할 때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조선인의 궁핍한 생활이다. 의식주 그 무엇을 보더라도 일본인보다 조선인이 훨씬 빈곤했다'라고 한다" (79~80쪽)

도시의 일본인은 풍부한 식량을 누리고 좋은 집에 살며 조선인을 집안 일꾼으로 부려가며 풍족한 삶을 살았다. 한편 농촌의 조선인은 각종 공출과 착취로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대구에서 출생한 모라자키 가즈에는 1934년 소학교에 입학했지만 쌀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했다. 주위에 농사를 짓던 일본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모라자키는 나중에 ' 그것은 무엇보다 식민지시대 일본인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썼다." (165쪽)

그리고 물론 일본인들은 그들에게 '미개인'인 조선인을 당연한 착취의 대상을 여겼을 뿐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구로의 연구에 따르면 집에 '어머니'라 불리던 조선인 하녀를 데리고 있던 사람은 35명 가운데 26명이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어머니'가 어떤 인물인지에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는 '인격이 없는 도구, 로봇과 같은 존재'였다." (176쪽)



이 책을 번역한 이규수 교수는 역자후기에서 " 물론 일본인 내부에도 계층차이는 존재했다. 조선은 일본 자본주의 모순의 분출구이자 생명선이었다. 이 결과 식민지에 진출한 일본인은 군인과 관료를 비롯해 지주나 자본가는 물론 말단의 서민층까지 포함한 '단일형' 진출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 식민지 지배구조는 지배계층의 비호 아래 이름 모를 수많은 민간인을 통해 유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식민지 사회는 총독부 관리와 군인 체계를 정점으로 해서 지주와 상인을 비롯한 각종 비생산 부문에 종사하는 다수 일본인이 지배하는 피라미드 구조 아래 대다수 조선인이 존재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 가지 유형의 조선 내 일본인

다카사키 소지는 조선에서 살았던 일본인이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제1유형은 자신들의 행동이 훌륭한 것이었다고 말하는 부류, 제2유형은 순진하게 식민지 조선을 그리워하는 부류, 그리고 제3유형은 자기비판을 하는 부류다.

다카사키는 제1유형의 일본인으로 불이흥업주식회사 사장 후지이 간타로의 딸 이노하라 도시코를 든다. 제1유형의 일본인은 일제가 퍼트린 왜곡된 식민의식을 그대로 믿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식민의식을 실천하고 전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녀는) '불이흥업의 뛰어난 업적은 일본의 조선 통치사에서 일개 민간회사가 반도의 국리만복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영원히 이름을 남길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조선 실정에 정통하다고 자부한다. 그녀는 '조선에서는 잡곡의 조식화가 보통이다. 조선인은 오히려 쌀보다 잡곡을 좋아한다'며 '그런데도 일본이 조선에서 착취 정치를 시행한 것처럼 기록하는, 실정을 조금도 모르는 탁상공론의 무서움'을 개탄했다." (190쪽)

제2유형의 일본인은 대부분 정치적 의도와 상관없이 조선을 추억하는 이들로 조선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일본인이다. 이들에게 조선은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지닌 한 공간일 따름이다.

"이들의 회고담을 보면 흔히 다음과 같은 그리움이 표출되어 있다. '내게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아카시아 꽃향기 나는 경성 거리에 살 것이다. 우거진 남산 기슭의 삼판소학교에서 그리운 선생님을 모시고, 옛 친구들과 함께 배우는 길을 주저없이 택할 것이다." (193쪽)

제3유형의 일본인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아비판을 한다. 이들은 다카사키 소지와 같이 일본의 식민 지배가 잘못된 일이며 이러한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에서 태어나 여학교를 다닌 모라자키 가즈에는 '총독부 자료를 읽으면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우리의 생활이 바로 침략인 것이다. 조선에 있을 때는 만세사건도 몰랐다. 패전 이후 언젠가 한번은 한국을 방문하고 싶었다. 방문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일본인이 되어서 말이다. 나는 이 일을 위해 살고 있다"고 말했다." (193~194쪽)

현재의 일본인은 어떤 유형인가?

다카사키는 '이렇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 조선 내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일본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궁금해 하면서 '집필을 마치면서 새삼 떠오른 것은 조선 내의 일본인의 역사를 절대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글을 맺고 있다.

이규수 교수는 "나는 향후 일본 사회에 다카사키가 말한 제1유형의 일본인들이 급증하리라는 예감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며 "일본인 그리고 동아시아인 모두가 자국의 과거와 현재 역사에 책임감을 지니고, 연대하는 아시아의 미래를 향해 대안을 마련해가는 제3유형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역사 연구자들의 더욱 실천적인 연구가 긴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성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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