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4

독립기념관 올해 학술상 서강대 최기영 교수

독립기념관 올해 학술상 서강대 최기영 교수

독립기념관 올해 학술상 서강대 최기영 교수

2016-08-29 10:43

(천안=연합뉴스) 김용윤 기자 = 제12회 독립기념관 학술상 수상자로 서강대학교 최기영 교수(사학)가 선정됐다.

독립기념관 학술상 심사위원회(위원장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29일 광복 71주년과 독립기념관 개관 29주년을 맞아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와 학계 발전에 공이 큰 서강대 최기영 교수를 올해의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사진

수상작은 '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가의 삶과 투쟁'(일조각, 2015)으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인생역정을 새롭게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상식은 30일 오전 11시 독립기념관 밝은누리관 강당에서 열린다.

약 30년간 국내 계몽운동과 국외 항일독립운동사를 연구해 온 최 교수는 10여 권에 달하는 저서와 편저, 특히 국외 항일운동 자료집 출간을 주도했다.

대표적인 저서는

  1.  '대한제국기 신문연구' 
  2. '1900년대의 애국계몽운동' 
  3. '한국 근대 계몽사상연구'
  4.  '식민지시기 민족지성과 문화운동'
  5.  '서재필이 꿈꾼 나라-서재필 국문 자료집' 
  6. '삼십년방랑기-유기석 회고록' 
  7.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8.  '대한인국민회자료집'
  9.  '이대위, 잊혀진 미주 한인사회의 대들보' 

등이 있다.

독립기념관 학술상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를 장려·촉진함과 동시에 연구자들에 대한 사기 진작을 위해 2005년 제정됐으며, 국민대 조동걸 교수가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y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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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대위 - 잊혀진 미주 한인사회의 대들보  |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42

최기영 (지은이)역사공간2020-03-01 

전자책정가

10,000원


종이책 페이지수 : 208쪽,


책소개'독립기념관 :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42권 이대위 편. 이대위는 191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지도자이다. 그는 숭실학당을 거쳐 캘리포니아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한 지식인이었으며,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을 마친 목사로 상항한인감리교회에서 15년 넘게 시무하였다. 동시에 교민단체인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를 여러 해 이끌었다. 이 책은 이대위의 삶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목차

글을 시작하며


1 안창호를 만나 기독교인이 되다


2 한인 최초의 캘리포니아대학생


3 상항한인감리교회 목사로


4 총회장으로 한인사회를 이끌다


5 다시 총회장을 맡다


6 3·1운동과 구미위원부 위원


7 한인사회와 함께 한 마지막 길


이대위의 삶과 자취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최기영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강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주로 한말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으며, 한국근현대사학회와 한국사상사학회의 회장을 맡았었다.

현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한국근대계몽운동연구��・��한국근대계몽사상연구��・��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가의 삶과 투쟁�� 등의 저서가 있다.

최근작 : <한국 근대문화와 민족운동>,<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가의 삶과 투쟁>,<이대위> … 총 1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대위는 191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지도자이다. 그는 숭실학당을 거쳐 캘리포니아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한 지식인이었으며,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을 마친 목사로 상항한인감리교회에서 15년 넘게 시무하였다. 동시에 교민단체인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를 여러 해 이끌었으며, <대도>와 <신한민보>의 주필로 재직한 언론인이자 국문식자기를 발명한 발명가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주 한인사회에 기여한 이대위의 공헌은 널리 알려지지도, 제대로 평가 받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그는 미주 민족운동의 과정에서 한인사회의 지지를 끌어낼 야심이나 정치력·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고국의 독립이었지만, 미주에서 그는 단체장으로, 목회자로, 언론인으로 한인들의 단합과 권익보호에 진력하며 한인사회의 제반 실무에 직접 나섰던 인물이었다. 즉 그는 기본적으로 야심 있는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대위와 함께 활동한 안창호·이승만 등은 정치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미주 한인사회에서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각기 지지 세력을 기반으로 자금과 인력 등을 동원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위는 이들에 비해 지지 세력을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그는 목회자였고 봉사하는 지도자였다. 다른 지도자들은 야심과 정치력을 갖추었지만 그는 그러한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이대위는 이처럼 드러나지 않는 지도자였지만, 미주 한인사회를 이끈 커다란 대들보였다. 이 책은 이러한 이대위의 삶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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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이 꿈꾼 나라 - 서재필 국문 자료집  | 현대한국학연구소 학술총서 12

서재필 (지은이),최기영 (엮은이)푸른역사2010-10-15


양장본456쪽


책소개

'현대한국학연구소 자료총서' 12번째 책. 한국 근대사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인 서재필. 서재필이라는 한국 이름과 함께 필립 제이슨이라는 미국 이름이 낯설지 않은 그는, 문과 급제자로 스무 살에 갑신정변에 참여한 개화당 인사였고, 이후 10년여를 미국에서 교육을 받아 의사가 되었으며, 또 귀국하여 '독립신문'을 간행하고 독립협회를 지도한 계몽운동의 선구자였다.


이 책 <서재필이 꿈꾼 나라>는 서재필이 직접 국문으로 쓴 자료나, 영어로 썼지만 국문으로 번역되어 국내외의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자료를 모은 것이다. 이미 알려진 자료를 활자화한 것도 적지 않지만, 그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자료도 상당수에 이른다. 서재필의 한국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집이다.

목차

발간사

서재필 연보

해제: 서재필이 꿈꾼 나라


제1부 한말


01. 논설

1. '독립신문' 창간사

2. 공긔

3. 동양론

4. 서재필 작별사

5. 대한인민이 자쥬 독립권리를 원??지


02. 연설

1. 독립관 연회 연설

2. 청년회 연설

3. 광무협회 연설

4. 서재필 전별 연설


03. 서한

1. 만민공동회 총대위원에게 한 답장

2. 독립신문사에 보낸 편지

3. 독립신문사에 보낸 편지

4. 대도사에 보낸 편지


제2부 일제시기 교체

01. 논설

1. 셔박사의 션언

2. 故國同胞에게 -東亞日報를 通하야-

3. 個人主義와 協同主義

4. 勇氣와 協力

5. 朝鮮日報 主筆 貴下에게[人民의 生活狀態 改良]

6. 衣服問題의 解決策

7. 東亞日報 主筆 足下

8. 故國을 바라보며

9. 故國을 바라보고, 求하라=科學的으로! 그러면 반듯이 어드리라

10. 社會敎化로 본 '新民'의 使命

11. 貴報 續刊을 賀함

12. 新年의 첫 希望

13. 좀더 잘 살길은 精神物質의 合作에서

14. 六月號

15. 랑비는 죄악이라

16. 新年을 當하야 故國同胞에게 깃브라, 일하라, 배호라!

17. 新年을 새맘으로 맛자

18. 故國同胞에게

19. 朝鮮人에 對한 外國人의 誤解

20. 朝鮮經濟 發展에 한 管見

21. 朝鮮의 將來

22. 만주문뎨에 대하야 우리도 분긔하라고

23. 在留 五十年間 米國社會의 動態

24. 셔박사의 서국관

25. 미국 국방운동에 우리 한인의 공헌할 바가 무엇인가


02. 연설

1. 일본은 푸루시아와 갓다

2. 단합과 결심으로 독립을 셩공

3. 셔재필박사의 연셜

4. 셔박사 상항 도착과 환영회셕에서 연셜

5. 太平洋會議에서 徐載弼博士의 朝鮮 紹介

6. 徐博士의 演說

7. 셔박사의 연셜

8. 셔박사 라셩에 一週間

9. 女子愛國團 기념식에서 박사의 연설에 ‘녀자계에셔 새 도덕 새 문명 발명’ 운운


03. 서한.공함.축사

1.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安昌浩에게 보낸 편지

2.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李東輝에게 보낸 편지

3. 朴殷植에게 보낸 편지

4. 상해민단장 呂運亨에게 보낸 편지

5. 뉴욕쥬 뉴욕 장로교 선교회에게 보낸 편지

6.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대통령 李承晩에게 보낸 편지

7. 대한민국임시정부 각원에게 보낸 공문

8. 주차구미위원부 통신 제29호

9. 셔박사의 통고문

10. 한인동포들에게

11.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대통령 李承晩에게 보낸 편지

12. 현씨사에 대? 셔박사의 편지

13.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총장 李始榮에게 보낸 공문

14. 宋鍾翊에게 보낸 편지

15. 워싱턴 군축회의에 관하여 한국동포들에게 보낸 편지

16. 셔재필 박사의 특젼

17. 신한민보사 주필에게 보낸 편지

18. 워싱턴 군축회의에 관하여 한국동포들에게 보낸 편지

19. 미주.하와이 동포에게 보낸 편지

20. 국민회 회장에게 보낸 감사 편지

21. 신한민보사 주필에게 보낸 감사 편지

22. 東光社에 보낸 편지

23.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 金九에게 보낸 편지

24. 동아일보사 사장 宋鎭禹에게 보낸 편지

25. 신한민보사에 보낸 감사 편지

26. 국민회에 보낸 편지

27.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낸 편지

28. '韓靑' 主筆에게 보낸 편지

29. '의용보' 축사

30. 한인 동포들에게 보낸 공개편지

31. 곽림대에게 보낸 편지


04. 선언서.추모.회고.대담

1. 獨立後援會 宣言書

2. 月南 李商在氏

3. 回顧甲申政變

4. 滯米五十年

5. 著名人物一代記

6. 逆境에서 勇敢한 偉人

7. 셔박사와 일인 뎡탐 무?의 담화



제3부 해방 이후


01. 논설

1. 思想은 칼로 制壓하지 못한다

2. 合倂에서 獨立까지 : 蒼蒼 四十年의 風霜記

3. 여성과 총선거

4. 故國 떠나며 同胞 여러분께

5. 韓國獨立에 잇서서의 美國의 役割

02. 성명.담화.회견

1. 재미한인샹업회의소를 죠직?야 동포 공즁에 드림

2. 朝鮮에 解決 못할 對立없다 現在 不統一은 經濟가 起因 解決策은 美 援助뿐

3. 海外風霜 半世紀만에 徐載弼博士 還國

4. 忠告者의 一人으로 意見을 陳述할 것뿐

5. 同胞와 맞나니 感慨無量타

6. 宿?의 心臟病으로 러-취 長官逝去 昨朝 陸軍病院에서

7. 三黨에 依한 政治가 適切

8. 産業復興이 先決, 萬歲呼訴는 獨立에 無用

9. 進取的인 人物

10. 救國鬪爭과 新國民運動

11. 于先 政府 세워야 한다

12. 오직 自力本位

13. 是正 없는 合作 當分間은 不可能視

14. 民族自彊의 關鍵

15. 徐載弼氏 會見記

16. 大統領 立候補 않는다

17. 南北統一은 期必

18. 明春 三月에 再歸

19. 徐博士는 昨日 離國


03. 서한.기념사.축사

1. 李承晩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2. 申翼熙 국회의장에게 보낸 서한

3. 조국 하나를 셩기쟈 ― 서재필 박사의 신신당부

4. 解放二周年記念大會 祝辭

5. 年頭言

6. 새해와 새 指標

7. '朝鮮醫學協會會報' 卷頭辭

8. 국회 개원 축사

9. 대한민국 정부수립 記念辭

10. '民政' 祝辭


04. 연설.방송 원고

1. 서울의 기독교 조직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 397

2. 독립문 건립 봉헌식 50주년 기념식

3. 크리스마스 1947

4. 1948년 새해

5. 뜻의 힘

6. 조선에 대한 국제연합 위원회

7. 고립주의 Ⅰ

8. 고립주의 Ⅱ

9. 선량한 국민과 민주주의

10. 조선 사람에게 준비가 되어야 할 것

11. 정당의 목적은 무엇인가?

12. 지금이 평화 시대냐?, 전쟁 시대냐?

13. 우리의 현상은 어떠한가?

14. 습관과 생각

15. 서재필박샤의 연셜

16. 삼일절에 즈음하여 조선동포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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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중앙일보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0년 10월 9일자

조선일보 

 -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10년 10월 9일자 '한줄 읽기'

저자 및 역자소개

서재필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본관은 대구이며, 호는 송재松齋이다.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이라는 미국 이름을 가지고 있는 서재필은 1882년 과거에 합격한 뒤 개화당 인사들과 교류하여, 1884년 갑신정변에 가담하였다가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1885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펜실베니아주 해리 힐맨 아카데미를 마치고 1893년 컬럼비아 의과대학(현 조지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다. 1890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며, 1894년 뮤리엘 암스트롱Muriel Amstrong과 결혼하였다. 1895년 말 귀국하여,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였고, 독립협회의 결성과 독립문의 건립을 주도하였으며, 배재학당의 협성회를 지도하였다. 1898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 인쇄 및 문구사업에 종사하다가 3ㆍ1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필라델피아에 한국통신부를 설립하고 Korea Review를 발간하였으며, 한국친우회를 결성하였다. 1921년에는 구미위원부 임시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22년부터 국내와 미주의 한국언론에 논설을 기고하였으며, 병원을 개업하기도 하였다. 1947년 7월 미군정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미군정 최고고문 및 남조선 과도정부 특별의정관으로 활동하였고, 정부 수립 후 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1977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1994년 유해가 봉환되어 서울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한국의 개화와 독립, 정부수립에 기여하였다. 접기

최근작 : <한국 산문선 1~10 세트 - 전10권>,<한국 산문선 : 근대의 피 끓는 명문>,<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 총 10종 (모두보기)

최기영 (엮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강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주로 한말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으며, 한국근현대사학회와 한국사상사학회의 회장을 맡았었다.

현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한국근대계몽운동연구��・��한국근대계몽사상연구��・��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가의 삶과 투쟁�� 등의 저서가 있다.

최근작 : <한국 근대문화와 민족운동>,<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가의 삶과 투쟁>,<이대위> … 총 10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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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독립과 자유를 향한 서재필의 꿈 한반도에 퍼지다


서재필 국문 자료집 발간

≪서재필이 꿈꾼 나라≫(푸른역사)가 현대한국학연구소 자료총서로 간행되었다. 서재필(徐載弼, 1864~1951)은 잘 알려 있는 대로 한국 근대사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인이면서도 미국인이었다. 서재필이라는 한국 이름과 함께 필립 제이슨(Philip Jaishon)이라는 미국 이름이 낯설지 않은 그는, 문과 급제자로 스무 살에 갑신정변에 참여한 개화당 인사였고, 이후 10년여를 미국에서 교육을 받아 의사가 되었으며, 또 귀국하여 ≪독립신문≫을 간행하고 독립협회를 지도한 계몽운동의 선구자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미국에서 한국독립을 위하여 노구를 이끌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팔십이 넘은 나이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현장에서 민주주의의 안착을 조언하기도 하였다

서재필이 한국에 있던 시기는 86년의 생애 가운데 22년을 조금 넘었다. 그럼에도 ≪독립신문≫의 간행이며 독립협회의 활동 등으로 한국인들에게 개화운동의 선구자로 각인되어 있다. 그는 3·1운동 이후 미국에 있으면서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노구를 이끌고 선두에 나섰으며,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청의 초빙으로 정부수립을 위해 노력하였고, 민주주의의 안착에 힘을 기울였다. 일제강점기에도 그는 국내에서 청탁하는 원고를 마다하지 않아, 1922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서도 그의 글이 읽혔다.

물론 근래 서재필의 한국근대화에 대한 공과가 논의되기도 하였다. 서재필을 친미·친일주의자로 파악하고, 국내에서 외국인 행세를 하였으며 정부 보조로 발간한 ≪독립신문≫의 매각문제 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국을 위한 서재필의 평생 궤적을 만나다

이번에 발간된 ≪서재필이 꿈꾼 나라≫는 서재필이 직접 국문으로 쓴 자료나, 영어로 썼지만 국문으로 번역되어 국내외의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자료를 모은 것이다. 이미 알려진 자료를 활자화한 것도 적지 않지만, 그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자료도 상당수에 이른다. 지금까지 한말의 ≪독립신문≫,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간행된 ≪동아일보≫·≪조선일보≫·≪신민≫ 등에 실린 글들은 잘 알려졌다. 그러나 한말 ≪대도≫에 기고한 글이나, 일제강점기에 ≪신한민보≫나 ≪한청≫, ≪의용보≫ 등에 기고한 글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특히 해방 이후의 논설이나 성명, 대담 등은 지금까지 주목한 바 없던 자료이다. 물론 서재필은 이미 1910년대 전후부터 영어가 한국어보다 익숙하였기 때문에, 그 대부분은 영어로 작성된 원고를 게재매체에서 국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따라서 영어로 쓴 원고의 일부가 현재에도 남아 있다. 독립기념관이 개관하자 서재필의 둘째딸 뮤리엘이 그 영문원고들을 기증하였기 때문이다. 이미 연세대학교 현대한국학연구소에서는 1999년 독립기념관 홍선표 박사의 편집으로 My Days in Korea and Other Essays(Institute for Modern Korean Studies, Yonsei University, 1999)라는, 서재필이 영문으로 집필한 자료들을 정리하여 간행한 바 있다. 이 자료집에는 1930~40년대 ≪신한민보≫에 연재되었던 “My Days in Korea”와 “Random Thoughts”를 비롯하여, ≪독립신문≫ 영문판을 비롯하여 각종 신문이나 잡지에 실렸던 영문 원고들, 그리고 1947~48년 한국에 체류할 때 방송한 영문원고 등이 포함되었다. 이번에 간행된 ≪서재필이 꿈꾼 나라≫의 대본이 되는 영어원본도 그 중에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서재필이 꿈꾼 나라≫은 서재필이 평생 추구한 이상이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주는 자료들이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 미주동포들에게 한 연설을 채록한 ≪신한민보≫의 연설기사는 60대의 노구를 이끌고 동포들의 단결을 왜치는 서재필의 생동감 있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 1948년 3월 14일자 ≪신민일보≫나 1948년 7월 1일자 ≪삼천리≫ 제3호에 실린 대담은 정부수립에 즈음하여, 당시의 정치현실에 대한 서재필의 견해와 장래 한국의 나아갈 길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자료집을 통하여, 읽는 이들은 서재필의 한국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일제치하의 한국에 대한 애정을 서재필은 국내ㆍ국외의 간행물을 통하여 드러내곤 하였다. 그리고 그 분량이 적지 않았음은 수록된 자료들로 알 수 있다. 해방 이후의 자료들에서도 한국에 대한 애정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결국 이 자료집으로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이었던 서재필의 두 나라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미국 국적을 유지하였지만, 한국을 위한 그의 평생 궤적을 살피는 데에 ≪서재필이 꿈꾼 나라≫은 일정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간행된 영문자료집과 함께, ≪서재필이 꿈꾼 나라≫을 통한 서재필 연구의 활성화를 기대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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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가의 삶과 투쟁 

최기영 (지은이)일조각2015-12-15

양장본413쪽


책소개

저자인 최기영 서강대 교수는 중국 관내(만주 지역을 제외한 중국 본토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이들, 특히 그 활동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그들의 궤적을 드러내는 데 진력해 왔다. 일반은 물론이고 학계에서조차 묻혀 버린 독립운동가들에게 그들이 독립운동사에서 마땅히 차지하여야 할 위치를 찾아 주는 것이 역사학자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도리를 지키고자 10여 년간 분주히 쌓아 온 결과물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신채호나 이회영, 변영만같이 널리 알려진 이들뿐만 아니라 이복원, 이두산, 이상정처럼 그 활동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들, 유기석과 김학무처럼 연구자들에게는 익숙하지만 개인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던 독립운동가들을 아울러서 살펴보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핍박을 피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저자는 이들의 움직임과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주목하였다.

목차

머리말


제1부 1910~1930년대 북경의 독립운동가

1910년대 변영만의 해외 행적

신채호의 독립운동: 중국에서의 정치활동을 중심으로

이회영의 북경 생활: 1919~1925

1920~1930년대 유기석의 독립운동과 아나키즘


제2부 관내에서의 무장투쟁과 독립운동가

이상정의 중국 망명과 한중연대활동

이두산의 재중독립운동과 항일언론활동

이복원의 미국 유학과 재중독립운동

김학무의 무장투쟁과 좌파청년그룹


제3부 중국 유학생과 독립운동

1910~1920년대 항주의 한인 유학생

1930년대 중산대학과 한국독립운동


보론

우빈 주교와 한국독립운동


논문 발표지

참고문헌

중문초록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P. 145~146 유기석의 아나키즘 수용과 활동은 크게는 제국주의를 반대하여 평등과 호조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지만, 구체적으로는 일본제국주의 아래에서 신음하는 조국의 독립을 위한 방책이었다. 그가 회고록 『삼십년방랑기』에서 사랑이나 가족과 같은 개인적 문제는 전혀 논의하지 않고 오직 반일투쟁만을 서술한 것은 망국민의 비애를 되씹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회고록을 마무리하며,


나이가 칠순이 되어 오랜 한을 회상하니 한마디로 다 설명할 수 없고, 한 번에 다 쓰기 어려웠다. …… 나 자신의 수십 년간의 고통스러운 회상에 근거하여, 마음속의 말 한마디를 나의 장래의 유언으로 삼고자 한다.

“망국민이 되고 싶지 않으면, 반드시 자신의 조국과 민중을 열렬히 사랑하고, 국가의 독립과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라고 소회를 밝히었다. 아나키스트로서 조국해방을 위해 30년간 투쟁한 유기석이 유언으로 남기고자 한 주제는 조국과 민중, 그리고 국가의 독립과 자유였다. 문화혁명이 전개되던 시기의 언급이어서 아나키스트였던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러한 점에서도 그에게 민족적 아나키스트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그리 잘못된 평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1920~1930년대 유기석의 독립운동과 아나키즘」  접기

P. 171 사실 이상정과 권기옥은 중국군에 복무하면서 무엇보다도 한중연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부터 중국군과 관련을 맺었던 것이 한중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그의 의지를 보여 준다. 하지만 한국광복군의 9개준승 문제 등 한국독립과 관련된 문제를 중국이 적극 지원하지 않자, 그는 자주적 관점에서 이를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한국과 중국이 평... 더보기

P. 241 “어느 모로 보아도 무사의 기풍이라고는 조금도 엿볼 수 없는 그 체격과 언동”이라는 표현대로 군인같이 보이지 않던 온유한 인상이었지만, 그는 평생을 한국의 군인으로 살기 위하여 자신을 던진 인물이었다. 그러기 위하여 미국에 유학하여 군사학교를 마쳤으며, 중국에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해방된 조국에서 군인이 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이복원의 미국 유학과 재중독립운동」  접기

P. 276 김학무는 1930~1940년대 좌파청년그룹을 이끌던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민족통일전선 노선을 지지하면서 통일당 수립에 반대하고 단체 본위의 연맹 형식을 주장한 인물이었다. 조선의용대나 독립동맹도 그러한 관점에서 참여하였다. 따라서 1943년 임시정부와 독립동맹의 연결을 위하여 나선 것 역시 그러한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독립동맹에서는 그의 처신을 ‘변절’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용대나 독립동맹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이나 해방 이후의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학무의 무장투쟁과 좌파청년그룹」  접기

P. 303 1927년 12월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으로 발발한 ‘광주봉기’ 이후 중산대학에 유학한 한국인들이 거의 없다가, 1931년 이른바 만주사변이 일어난 뒤에 다시 그 수가 증가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 중산대학에 유학한 인물들의 상당수가 중일전쟁 발발 전후 한국독립운동의 선봉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중산대학이 군사교육기관이 아니었음에도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점이 주목된다. 최근 중국학자들이 중산대학 한국 유학생들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는 것도 그러한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1930년대 중산대학과 한국독립운동」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최기영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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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주로 한말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으며, 한국근현대사학회와 한국사상사학회의 회장을 맡았었다.

현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한국근대계몽운동연구��・��한국근대계몽사상연구��・��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가의 삶과 투쟁�� 등의 저서가 있다.

최근작 : <한국 근대문화와 민족운동>,<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가의 삶과 투쟁>,<이대위> … 총 1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저자인 최기영 서강대 교수는 중국 관내(만주 지역을 제외한 중국 본토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이들, 특히 그 활동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그들의 궤적을 드러내는 데 진력해 왔다. 일반은 물론이고 학계에서조차 묻혀 버린 독립운동가들에게 그들이 독립운동사에서 마땅히 차지하여야 할 위치를 찾아 주는 것이 역사학자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도리를 지키고자 10여 년간 분주히 쌓아 온 결과물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신채호나 이회영, 변영만같이 널리 알려진 이들뿐만 아니라 이복원, 이두산, 이상정처럼 그 활동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들, 유기석과 김학무처럼 연구자들에게는 익숙하지만 개인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던 독립운동가들을 아울러서 살펴보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핍박을 피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저자는 이들의 움직임과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주목하였다.


[출판사 책 소개]


저자인 최기영 서강대 교수는 중국 관내(만주 지역을 제외한 중국 본토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이들, 특히 그 활동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정리하여 그들의 궤적을 드러내는 데 진력해 왔다. 그중에는 현재 잘 알려진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독립운동에 자신을 바친 많은 지사들이 후대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고 활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독립운동사를 연구할수록 후대의 연구자들이 그들을 바로 드러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일반은 물론이고 학계에서조차 묻혀 버린 독립운동가들에게 그들이 독립운동사에서 마땅히 차지하여야 할 위치를 찾아 주는 것이 역사학자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도리를 지키고자 10여 년간 분주히 쌓아 온 결과물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채호나 이회영, 변영만같이 널리 알려진 이들뿐만 아니라 이복원, 이두산, 이상정처럼 그 활동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들, 유기석과 김학무처럼 연구자들에게는 익숙하지만 개인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던 독립운동가들을 아울러서 살펴보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핍박을 피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저자는 이들의 움직임과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주목하였다.


제1부 ‘1910~1930년대 북경의 독립운동가’에서는 변영만, 신채호, 이회영, 유기석을 다루었다. 이들은 대체로 북경을 주 무대로 하여 독립운동을 펼친 이들이다. 활동한 시기도 연령대도 다르고, 이들이 북경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들을 빼놓고 당시의 독립운동을 논의하기는 어렵다.


제2부 ‘관내에서의 무장투쟁과 독립운동가’에서는 이상정, 이복원, 이두산, 김학무를 논의하였다. 이들은 모두 다양한 경로로 군사교육을 이수하였다. 대한제국 하급 무관 출신인 이복원은 미국 군사학교에서, 이상정은 일본 예비군사학교에서, 이두산은 임시정부 육군무관학교에서, 김학무는 중국군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하다 전사한 김학무를 제외하면, 중국 관내에서 활동한 이들의 무장투쟁은 직접적 무장투쟁보다는 중일전쟁 이후 중국 군사조직에 참여하는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제3부 ‘중국 유학생과 독립운동’에서는 1910~1920년대 화중 지역 한인 유학생들의 움직임을 항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1930년대 중산대학 유학생들이 중일전쟁 이후 무장투쟁에 참여하는 과정을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보론’에서는 중국 천주교 지도자 우빈 주교에 대해 살펴보았다. 1940년 전후부터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한 우빈은 독립운동의 영수들과 깊은 교분을 나누고 오랫동안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종교 지도자이다. 특히 임시정부 승인문제와 샌프란시스코회의 참가문제에 있어 협조와 지원을 해준 바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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