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오후 5시에는 <프랑스의 자살>이라는 벽돌책(786쪽)으로 독서모임을 한다. 읽고 있는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책이 어렵단다. 동감이다. 정말로 어렵다. 칸트나 헤겔의 철학 책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아니라, 역사, 문화, 정치적 배경을 몰라서 느끼는 어려움이다. 한마디로 엄청난 압축과 비약, 비유, 해학으로 점철된 시를 읽을 때의 어려움이다.
아마 페이스북에서 종종 만나는, 길고 날카롭고 화려하고, 가슴을 후벼파는 표현이 즐비한 한국 정치/역사 시평을 번역하여 외국 독자가 읽으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한다. 페이스북 글을 많이 읽어 온 사람들은 무릎을 치고 읽겠지만, 이를 번역 글로 접하는 사람들은 정말 뭔 말인지 모를 것이다. 무슨 어려운 개념이나 복잡한 논리가 없을지라도!!
그런 점에서 책 번역자(성신여대 이선우 교수)에게 감탄과 감사가 절로 나온다. 이 어려운 책을 도대체 어떻게 번역했는지!! 그것도 원서에는 없는 수많은 주석을 달았다. 한국 독자들이 그 단어, 인물, 표현의 배경을 알수 있도록!! 이런 번역서는 드물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프랑스에서 인문사회학 학위를 한 사람치고 좌파가 아닌 사람을 거의 못 봤다. 게다가 이선우교수는 서울대 불문과 00학번(1982년 생)이다. 한국 40대의 정치적 성향은 말해 무엇하리!! 역자 서문에 이교수의 정치적 성향이 느껴진다.
번역자 서문을 읽으면, 책을 더 이상 넘기기 싫어진다. 하지만 번역자 서문 보러 책 읽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한국 좌파를 철이 안든 애들로 보니까 분노하지 않는다.
이 책은 지금 한국 자유, 보수, 우파에게는 정말 많은 영감을 주는 책이다.
미국은 대공황 이후, 대충 루스벨트~카터까지 거의 50년이 리버럴 컨센서스가 지배하였다. 이후 레이건이후 지금까지는 conservative consensus 일지도. 리버럴 컨센서스가 지배할 때는 보수 혁신은 진보(리버럴이나 사회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수용하는 것이 기조가 되고, con consensus가 지배할 때는 진보(리버럴)의 혁신은 con(이른바 신자유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수용하는 것이 기조가 된다.
프랑스는 68혁명이후 지금까지가 좌파적 컨센서스가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프랑스가 자살하고 있다고 부르짖는 사람의 책이 선풍적 인기를 얻고, 이 분이 대선에서 10%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는 것을 보니, 68혁명 컨센서스가 끝물인 듯 하다.
한국은 1987년 컨센서스가 문정부 때 극점을 찍고, 아니 완전히 파탄이 나면서 새로운 컨센서스 형성 과정에 있다. 1987년 컨센서스는 거칠게 단순화하면 반독재, 반일, 친북=우리민족끼리, (북한의 선의에 의한)평화 친중(탈미 내지 균형자), 친노동(노조), 친평등(격차해소가 시대정신), 복지국가, 친환경, 반시장(국가규제 강화) 등이다.
좌파와 우파를 초월하여 국가운영의 기본과 원칙을 많이 공유하는 미국, 프랑스와 달리, 이게 없는 한국은, 이재명, 문재인과 개딸들과 민주당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좌파는 미국, 프랑스, 일본과 달리 아주 저질이다. 우파도 오십보 백보다. 다만 우파는 저질이라 할지라도 큰 방향이 틀리지 않으니, 해악이 적을 뿐이다.
한국이 진짜로 자살할 뻔 했는데, 천우신조로 정권교체에 성공하여 기사회생했다.
68혁명 이후와 1987년 이후를 관찰하고 성찰하는 사람으로서, <프랑스의 자살>은 정말 좋은 책이다. 오늘 내일 모레는 <프랑스의 자살>을 읽으면서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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