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3

알라딘: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2022

알라딘: 아버지의 해방일지 (30만부 기념 특별 리커버)
 
아버지의 해방일지 (30만부 기념 특별 리커버) 
정지아 (지은이)창비2022-09-02

책소개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정지아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목차
아버지의 해방일지
작가의 말

책속에서
첫문장
아버지가 죽었다.
P. 7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 유머라니. 유머는 우리 집안에서 일종의 금기였다. 그렇다고 유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유머일 수밖에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접기
P. 29 개 이름 같은 아리는 내 이름이다.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리,를 딴 이름 덕분에 나는 숱한 홍역을 치렀다(사실 아버지가 주로 활동한 곳은 백아산보다는 백운산이었다. 그런데도 백아산의 아를 따온 것은 백운산의 백이나 운이 여자아이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그러니까 제 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했... 더보기
P. 94 유물론자다운 대답이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럼 제사는?”
“지사는 무신 지사. 헹제라도 많아서 핑계 김에 얼굴이나 볼라먼 모릴까 니 혼찬디 지사는 무신 지사.”
아버지는 뼛속까지 유물론자였다. 부모가 여든 넘도록 장지 마련은 고사하고 영정사진 찍어둘 생각조차 못한 불효자식이었으나 아버지의 유지가 그러하였으니 따르면 될 터였다. 역시 유물론은 산뜻해서 좋다.  접기
P. 102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겄어, 이 밤중에!”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접기
P. 150 “노동이…… 노동이…… 힘들어.”
그때까지 위태위태 잘 참고 있던 나는 노동이 힘들다는 빨치산의 고백에 그만 풉, 웃음을 뿜고 말았다. 스스로도 염치가 없었는지 그가 비식 웃으며 덧붙였다.
“사흘 노가다 뛰고 석달 입원했네. 나는 암만해도 노동과 친해지질 않아.”
“저놈의 부르주아 근성은 머리가 희캐져도 뿌리가 안 뽑히그마이. 그런 놈이 멀라고 뽈갱이는 돼가꼬……”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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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배척과 갈등의 말, 금기어로 여겨져온 ‘빨갱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유령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시절을 보낸 이들의 세계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나는 얽히고설킨 사연들에 빠져들다보면 그들이 빨갛지도 파랗지도 않은, 그저 저마다의 삶을 꾸려온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무채색의 크고 작은 파문을 서로에게 일으키며 한 시대를 함께 건너온 이들에게서, 이념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국엔 나약하고 또 강인한 우리 인생이 보인다. 정지아의 소설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 박혜진 (아나운서) 
소설을 읽고 운 것이 대체 얼마 만의 일인가. 빨려들듯 몰입하여 책 한권을 앉은자리에서 다 읽은 것은 또 얼마 만인가. 책장을 덮고 나서도 먹먹한 가슴을 어쩌지 못해 나는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사건 하나로 잊히거나 지워진 우리 현대사의 상흔들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펼쳐놓고 관련 인물들을 죄다 불러내 각각의 사연을 풀어놓는, 그것들이 종으로 횡으로 오지랖 넓게 뻗어나가다 결국은 헤쳐 모여 이미 소멸한 아버지를 불멸의 존재로 소생시키는, 이런 소설은 어떻게 쓰는 것일까. 서글프지 않은 일화가 없는데 실실 웃음이 나올 만큼 재미있고, 억울하지 않은 삶이 없는데 울분이 솟다 말고 ‘긍게 사램이제’ 한마디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런 소설은. 정지아의 전작을 따라 읽어왔으니 이만하면 성실한 독자라 자부할 만한데도 나는 모른다. 그가 등단작부터 천착해온 주제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책을 펼쳤는데도 어찌하여 처음 보는 내용인 듯 순식간에 빠져들게 되는지, 어찌하여 새삼스레 경탄하고 오히려 더 깊이 감화하게 되는지를. 알 도리가 없으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긍게 정지아제. - 김미월 (소설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22년 9월 2일자 '책&생각'
서울신문 
 - 서울신문 2022년 9월 2일자
국민일보 
 - 국민일보 2022년 9월 1일자 '200자 읽기'
조선일보 
 - 조선일보 2022년 9월 3일자 '한줄읽기'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22년 9월 3일자 '새로 나왔어요'
경향신문 
 - 경향신문 2022년 9월 2일자
한국일보 
 - 한국일보 2022년 10월 26일자
세계일보 
 - 세계일보 2022년 9월 6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정지아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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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과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등이 있다. 이효석 문학상, 한무숙 문학상, 올해의 소설상, 오영수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2023년 현재 구례에서 노모를 모시며 고양이 네 마리, 개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수상 : 2023년 만해문학상, 2023년 오영수문학상, 2020년 김유정문학상, 2020년 심훈문학대상, 2008년 한무숙문학상, 2006년 이효석문학상,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최근작 : <아버지의 해방일지 (30만부 기념 특별 리커버)>,<[큰글자도서] 나의 아름다운 날들>,<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 총 7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새삼스럽게 경탄스럽다!
압도적인 몰입감, 가슴 먹먹한 감동
정지아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시대의 온기

미스터리 같은 한 남자가 헤쳐온 역사의 격랑
그 안에서 발견하는 끝끝내 강인한 우리의 인생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탁월한 언어적 세공으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화법을 제시”(문학평론가 정홍수)하기를 거듭해온 정지아는 한 시대를 풍미한 『빨치산의 딸』(1990) 이래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정지아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어쩌면 ‘가벼움’에 있다. “아버지가 죽었다. (…) 이런 젠장”으로 시작하는 첫 챕터에서 독자들은 감을 잡겠지만 이 책은 진중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각 잡고’ 진지한 소설이 아니다. 남도의 구수한 입말로 풀어낸 일화들은 저마다 서글프지만 피식피식 웃기고, “울분이 솟다 말고 ‘긍게 사람이제’ 한마디로 가슴이 따뜻”(추천사, 김미월)해진다.

시트콤 같은 일화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다. 동지들은 하나둘 죽었고, 아버지는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누구나 배불리 먹고 차별없이 교육받는 세상이 이미 이뤄진 마당에 혁명을 목전에 둔 듯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블랙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려온 ‘나’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노동절 새벽,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 이야기는 크게 네 줄기로 이뤄진다. 첫번째는 아버지와 평생을 반목해온, 그의 동생인 작은아버지와의 이야기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작은아버지는, 형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대꾸도 없이 끊을 만큼 냉담하다. 평생 술꾼으로 산 작은아버지는 이따금 집에 찾아와 “니는 그리 잘나서 집안 말아묵었냐?”(38면)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맞서지 않고 묵묵부답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작은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등장 여부는 장례식장에 모인 모두의 관심사인 한편, 독자들도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 궁금하게 지켜보게 된다. 죽은 아버지와 산 작은아버지는 화해할 수 있을까.
두번째는 구례에서 아버지가 사귀어온 친구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면면은 실로 다양하고 입체적이라 살펴보는 것만으로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이자 시계방을 운영하는 박선생. 그는 평생을 군인과 교련선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대척점에 있지만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다. 정치적 지향 차이로 발생하는 두 노인의 투닥거림은 어딘지 귀엽고, 그 끝에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47면)라는 말은 지금의 정치권이 배웠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게 등장한 샛노란 머리의 소녀.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아버지의 “담배 친구”(139면)란다. 열일곱살 소녀와 허물없이 친해지는 것은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도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소녀에게 ‘미 제국주의’ 운운하는 것을 잊지 않는 아버지의 캐릭터는 여전히 웃음을 자아낸다. 그밖에 ‘학수’를 비롯해 아버지의 아들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 총부리를 맞서고 싸웠지만 이윽고 친구가 된 웃지 못할 사연들이 속속 등장한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
그가 남기고 간 수많은 에피소드

세번째는 ‘나’와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가장 큰 줄기는 ‘빨치산의 딸’로 힘들게 살아온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사회주의자이고 혁명전사였기에 생활력은 없었고, 그런 주제에 “보증을 서”(57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늘 가난했던 집안 형편은 전부 아버지 탓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가 늘어놓는 장광설은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았고, 그런 만큼 ‘나’는 아버지가 있는 고향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내가 알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주 일부였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들이 밝혀지고, 사람들을 감화시킨 담대한 모습들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나’를 사랑했던 순간순간들이 떠오른다. 마침내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들고, 아버지를 가장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보낼 한가지 결심을 한다.
마지막 네번째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일화들이다. 이들은 서사의 무게를 한층 발랄하게 만들며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평생의 동지이자 그 역시 사회주의자였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현실적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런저런 일로 늘 구박을 받는다. 옷을 털지 않아서 술 담배를 끊지 못해서 같은 비교적 소소한 일도 있고, 빚보증을 서서 농사를 내팽겨져서 같은 큰일도 있다. 어찌 보면 앙숙 같은 이들은 ‘유물론’과 ‘민족’ 앞에서 경건하게 하나가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티키타카’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유쾌한 촉매제가 되어준다.

“빨치산의 딸, 한국문학의 딸로”
정지아라는 센세이션

32년 전 정지아의 등장은 한국문학에서 하나의 센세이션이었다. 판매금지와 공안 당국의 기소 같은 일련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핍진한 서술과 역사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 때문이었다. 이제 정지아는 그 태도에 더해 사실과 허구를 섞어가며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다루는 관록과,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의 손을 꼭 붙들어놓는 대가의 면모까지 갖추었다. 32년 만에 내놓는 이 소설로 정지아가 다시 한번 그 존재감을 증명하게 되리라 기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지아는 빨치산의 딸일 뿐 아니라 우리 문학의 귀하디귀한 딸”(소설가 김미월)이 되었다는 말에,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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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게 경탄스럽다!
압도적인 몰입감, 가슴 먹먹한 감동
정지아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시대의 온기

미스터리 같은 한 남자가 헤쳐온 역사의 격랑
그 안에서 발견하는 끝끝내 강인한 우리의 인생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탁월한 언어적 세공으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화법을 제시”(문학평론가 정홍수)하기를 거듭해온 정지아는 한 시대를 풍미한 『빨치산의 딸』(1990) 이래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정지아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어쩌면 ‘가벼움’에 있다. “아버지가 죽었다. (…) 이런 젠장”으로 시작하는 첫 챕터에서 독자들은 감을 잡겠지만 이 책은 진중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각 잡고’ 진지한 소설이 아니다. 남도의 구수한 입말로 풀어낸 일화들은 저마다 서글프지만 피식피식 웃기고, “울분이 솟다 말고 ‘긍게 사람이제’ 한마디로 가슴이 따뜻”(추천사, 김미월)해진다.

시트콤 같은 일화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다. 동지들은 하나둘 죽었고, 아버지는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누구나 배불리 먹고 차별없이 교육받는 세상이 이미 이뤄진 마당에 혁명을 목전에 둔 듯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블랙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려온 ‘나’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노동절 새벽,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 이야기는 크게 네 줄기로 이뤄진다. 첫번째는 아버지와 평생을 반목해온, 그의 동생인 작은아버지와의 이야기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작은아버지는, 형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대꾸도 없이 끊을 만큼 냉담하다. 평생 술꾼으로 산 작은아버지는 이따금 집에 찾아와 “니는 그리 잘나서 집안 말아묵었냐?”(38면)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맞서지 않고 묵묵부답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작은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등장 여부는 장례식장에 모인 모두의 관심사인 한편, 독자들도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 궁금하게 지켜보게 된다. 죽은 아버지와 산 작은아버지는 화해할 수 있을까.
두번째는 구례에서 아버지가 사귀어온 친구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면면은 실로 다양하고 입체적이라 살펴보는 것만으로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이자 시계방을 운영하는 박선생. 그는 평생을 군인과 교련선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대척점에 있지만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다. 정치적 지향 차이로 발생하는 두 노인의 투닥거림은 어딘지 귀엽고, 그 끝에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47면)라는 말은 지금의 정치권이 배웠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게 등장한 샛노란 머리의 소녀.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아버지의 “담배 친구”(139면)란다. 열일곱살 소녀와 허물없이 친해지는 것은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도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소녀에게 ‘미 제국주의’ 운운하는 것을 잊지 않는 아버지의 캐릭터는 여전히 웃음을 자아낸다. 그밖에 ‘학수’를 비롯해 아버지의 아들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 총부리를 맞서고 싸웠지만 이윽고 친구가 된 웃지 못할 사연들이 속속 등장한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
그가 남기고 간 수많은 에피소드

세번째는 ‘나’와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가장 큰 줄기는 ‘빨치산의 딸’로 힘들게 살아온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사회주의자이고 혁명전사였기에 생활력은 없었고, 그런 주제에 “보증을 서”(57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늘 가난했던 집안 형편은 전부 아버지 탓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가 늘어놓는 장광설은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았고, 그런 만큼 ‘나’는 아버지가 있는 고향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내가 알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주 일부였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들이 밝혀지고, 사람들을 감화시킨 담대한 모습들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나’를 사랑했던 순간순간들이 떠오른다. 마침내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들고, 아버지를 가장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보낼 한가지 결심을 한다.
마지막 네번째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일화들이다. 이들은 서사의 무게를 한층 발랄하게 만들며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평생의 동지이자 그 역시 사회주의자였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현실적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런저런 일로 늘 구박을 받는다. 옷을 털지 않아서 술 담배를 끊지 못해서 같은 비교적 소소한 일도 있고, 빚보증을 서서 농사를 내팽겨져서 같은 큰일도 있다. 어찌 보면 앙숙 같은 이들은 ‘유물론’과 ‘민족’ 앞에서 경건하게 하나가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티키타카’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유쾌한 촉매제가 되어준다.

“빨치산의 딸, 한국문학의 딸로”
정지아라는 센세이션

32년 전 정지아의 등장은 한국문학에서 하나의 센세이션이었다. 판매금지와 공안 당국의 기소 같은 일련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핍진한 서술과 역사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 때문이었다. 이제 정지아는 그 태도에 더해 사실과 허구를 섞어가며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다루는 관록과,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의 손을 꼭 붙들어놓는 대가의 면모까지 갖추었다. 32년 만에 내놓는 이 소설로 정지아가 다시 한번 그 존재감을 증명하게 되리라 기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지아는 빨치산의 딸일 뿐 아니라 우리 문학의 귀하디귀한 딸”(소설가 김미월)이 되었다는 말에,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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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눈시울이 따갑고 항꾼에, 좋았다. ‘당하지 않으려고 사회주의에 발을 디뎠던‘ ‘순수한 참사람‘의 일생이,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에서 부활함‘을 무엇에도 목숨 걸었던 적이 없던 사람에게 이 가을, 천수관음보살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손님이 되어 찾아왔다.  구매
appletreeje 2022-09-20 공감 (7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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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이 뜨거운데 웃음이 나온다. 울컥울컥 하다 결국은 눈물을 흘렸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수 없는 소리가 나왔다. 정지아! 당신은 누구인지...! <빨치산의 딸>이 내일 온단다.  구매
그레이스 2023-02-21 공감 (61)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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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하루에 다 읽긴 요즘 불가능인데 저녁 시간 빼고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와 관련된 개인적인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 책을 읽으며 웃다가 울다가 반복, 진정한 블랙 코미디! 사투리도 쨩, 우리의 아픈 과거를 다시 돌아보았던 시간, 영화로도 나오길 기대한다!!  구매
라로 2022-09-29 공감 (4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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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웃기다. 찡하다. 긍게 사램이제. 이 말이 사무친다.  구매
캐모마일 2023-01-31 공감 (3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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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알게 되는 아버지 생전의 삶. 조문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 덕에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알게 되고 아버지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
매끄럽게 잘 쓰여져 단숨에 읽을 수 있지만 음, 지나치게 착하다.  구매
다락방 2023-09-18 공감 (32)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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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만 슬프고, 가볍지만 무겁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다섯 권을 전부 들고 갈지 한 권만 들고 갈지 잠시 고민하다 세 권만 가방에 담았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사인을 『아버지의 해방일지』 한 권만 받을까, 아님 세권 다 받을까, 고민했다. 많은 사람들 사인해주려면 피곤할텐데 하는 걱정과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책들을 계속 사서 읽었던 흥분 사이에서. 결국 나는 세권을 내놓으며 “한권만 해주셔도 되요”라는 소심한 부탁을 했고, “세 권 다 해드려야죠” “『빨치산의 딸』 두 권은 염치가 없어서 못 가져 왔어요” “염치라뇨.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하죠”라는 대... + 더보기
그레이스 2023-04-03 공감(67) 댓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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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아버지의 해방일지 새창으로 보기
사람의 피부 타입처럼 말투에도 웜톤과 쿨톤이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각자의 스타일을 인지하고 존중하자는 뭐 그런 거였는데, 그 작성자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자칭 인류학자인 내가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관찰하고 연구해 본 결과, 말이란 건 썩 믿을만한 게 못된다는 점이다. 이 말투라는 건 얼마든지 위장이 가능해, 쿨톤이고 메가톤이고 간에 그걸로는 상대를 판단할 수가 없다. 웃는 얼굴을 하면서 등 뒤로는 칼을 쥐는 것이 사회생활 아니던가. 하지만 글은 다르다. 말은 입술을 떠난 즉시 휘발되지만, 글... + 더보기
물감 2023-02-19 공감(56) 댓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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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시작된 화해와 용서 새창으로 보기 구매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어렵다. 사랑이란 범주에 이해가 포함되는 거라 볼 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가슴이 하는 일이고 이해는 머리가 하는 일이라 여겨서다. 가강 가까운 가족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 중 하나다. 도무지 모르겠다. 왜 그러고 사는지 말이다. 당신들의 삶을 강요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독립된 존재로 보고 거리를 두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그게 참 안된다. 내 핏줄, 내 부모, 내 형제, 나와 떼어낼 수 없는 존재라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한평생 빨치산으로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 당연 불가능해 보인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정지아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와 함께 살아온 이들, 그들이 겪은 세상이다. 



아버지 ‘고상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구례로 내려온 딸 ‘고아리’. 장례식장에서 죽은 아버지와 보내는 짧은 시간, 그곳으로 모여든 이들이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증인이자 역사였다. 이름도 낯선 이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아버지의 죽음에 한달음 달려온다. 딸이라는 자격으로 그들을 맞이하고 인사를 나누지만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가 쉽지 않다. 장례식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알아서 진행하는 사람들, 한때 동지였던 이들, 아버지와 반대편에 있던 이들, 연좌제 때문에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냈던 친척들이 오직 한 사람 아버지 때문에 한자리에 모였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생의 처음이 그러했든 생의 마지막도 모두에게 둘러싸여 배웅을 받는다. 장례식 또한 축제가 맞았다. 그들이 꺼내든 아버지와의 인연은 오래전 잊고 있던 아버지의 시간을 불러온다. 아버지로 인해 죽음을 당한 가족들, 그로 인해 평생을 형제가 아닌 원수처럼 지냈다. 아버지와 같은 빨치산이었지만 아버지처럼 살아남지 못하고 먼저 떠난 이들의 후손은 아버지를 원망했고 부러워했다. 살아남은 아버지에게는 그 사실이 부채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하나둘 떠오르는 아버지와의 기억, 사회주의자로 같은 뜻을 품고 살아온 어머니와 진정한 민중에 대해 투닥거리며 보낸 날들, 감옥에서 나와 어렵사리 얻은 자신을 극진하게 아끼고 보듬어준 아버지, 구례로 내려와 「새농민」이 알려주는 대로 농사를 짓는 아버지, 자신을 감시하는 형사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아버지,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일처럼 달려가 도움을 주던 아버지. 그에게 사상이나 이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촌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끝내 자신의 뜻을 꺽지 않았던 아버지. 모든 일에 “긍게 사람이제.”라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살았던 아버지. 



아버지 ‘고상욱’이 살아온 사회가 역사의 일부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내가 빨치산이나 사상범에 대해 안 건 그 아주 먼 나중이었다. 그러니 연좌제나 빨치산을 가족으로 둔 삶에 대해서는 소설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얼마나 순화된 내용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가 그랬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선을 긋고 그들은 그르다 말했다. 아버지는 그 선 자체였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 선을 자유롭게 오가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아버지를 알고 지낸 이들은 세대, 계층, 의식 구분 없이 모두가 아버지에게 덕을 보았다. 



딸은 생각한다. 아버지는 과연 누구였을까. 어떤 사람이었을까 알고 싶다. 한 번도 제대로 묻지 못한 질문으로 남았다. 이제는 묻을 수도 답을 들을 수도 없다. 아버지와의 화해는 끝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안타깝고 애절하다. 화장한 아버지를 아버지의 발자취가 남은 곳을 다니며 아버지의 마음 몇 점을 남겨두는 딸을 아버지는 흡족할 것 같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한국 근대사의 무거운 한 축을 담은 소설이지만 무거움에 취하지 않는다. 하나의 축제의 장으로 왁자지껄한 수다와 유머와 정이 넘친다. 아버지이자 고달픈 생을 살다간 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으로 시작된 화해와 용서를 담담히 전할 뿐이다. 어쩌면 작가는 자전적 소설이라 조금 더 신중을 기했을지도 모른다. 혁명가, 사회주의자, 이념가가 아닌 아버지의 해방일지. 그가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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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03-15 공감(4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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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 하반기 내내 각계각층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이 정지아 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아닌가 싶구나. 아빠가 좋아하는 유시민 님도 이 책을 추천해 주셔서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책 제목 때문에 별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어. 작년에 방영된 인기 드라마의 제목에서 따온 듯한 책 제목이 별로였거든. 해방일지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데, 책 제목에 넣은 것은 드라마의 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점이 아빠에게는 마이너스 요소였단다.

책을 읽고 나니, 굳이 제목을 <아버지의 해방일지>라고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인기를 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만큼 책 내용이 너무 좋으면서 재미있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들 추천하는지 알겠더구나. 음, 그러면 제목이 뭐였으면 좋았을까? 창의적이지 못한 아빠가 이 책의 제목을 짓는다면…. <나의 아버지>? 음 이것도 드라마의 제목과 유사한가?^^ 소설의 첫 문장 <아버지가 죽었다>는 어떨까?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짧은 첫 문장 속에 소설의 성격을 어느 정도 담겨 있는 듯 했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라는 높임말이 아닌,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말에 아버지와 딸 사이에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고, 나이 드실 만큼 드신 다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슬픈 감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어. 아버지가 죽은 것도 희한하게도 전봇대에 머리를 박았기 때문이라고 했어. 아무튼 첫 문장부터 끌어당기는 그런 소설이었단다.

주인공 정지아 님의 소설은 아빠가 처음 읽어보았는데 이름 꼭 기억해야겠구나. 정지아 님의 또 다른 대표작 <빨치산의 딸>도 꼭 읽어봐야겠구나. 정지아 님의 또 다른 책이 무엇이 있나? 찾아보았더니, 앗, 그 중에 우리 집에도 있는 책이 무려 두 권이 있더구나. 그러니까 정지아 님의 글을 그 이전에도 읽었더구나. 하나는 <민중의 기록하라>라는 책으로 여러 사람들의 같이 지은 책인데, 정지아 님도 포함되어 있었어. 나머지 하나는 아빠가 너희들 읽으라고 사준, 우리나라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에 과한 책 <하늘을 쫓는 아이>를 정지아 님이 쓰셨더구나. 알고 보니 정지아 님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들도 많이 쓰셨더구나.



1.

자, 그러면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이는 고아리. 고아리의 아버지는 고상욱. 평범하신 분은 아니었어. 빨치산 경력을 갖고 계시고 철저한 사회주의자셨어. 빨치산 경력 때문에 십 수 년 감방생활도 하셨어. 감방에 나오셔도 여전히 사회주의자였어. 어머니도 빨치산 경력이 있었고, 두 분은 동지로 만났다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빨치산 이력으로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와 멀찍이 떨어지려는 의도로 깡촌에서 농사를 지내며 지내셨어. 그런데 농사를 지내 본 적이 없으신 분들은 농사일도 쉽지는 않았어.

평생을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는 말년이 되셔서 치매도 겪게 되었어. 다른 사람에게 치매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었던 아버지는 어느날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어머니도 아버지 따라 깡촌에서 농사를 지내며 살았지만, 책도 많이 읽으시고 공부도 많이 하시고 그랬어. 어머니도 평생 철저한 사회주의자.


그런 부모님을 보는 친척들의 시선은 좋지 못했단다. 친척 가족 중에 빨치산 이력이 있다면, 예전에는 제약이 많았거든. 그래서 작은 아버지는 원하는 아버지와 평생을 원수지간처럼 지냈어. 나중에는 눈물을 자아내는 진실이 드러나지만 말이야. 고아리의 아버지 고상욱의 성격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 아빠가 소설 속 글을 발췌해 보았단다. 딸 고아리가 느끼는 아버지 고상욱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이해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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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는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 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두시간의 노동도 참지 못했다. 그런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은, 굶어 죽을 뻔한 고통은,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은 동료들이 바로 곁에서 죽어가는 고통은 어떻게 견뎠을까?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려와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 인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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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많은 사람들이 왔단다. 그들을 통해서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 아니 몰랐던 모습을 뒤늦게 알게 되었단다. 아버지는 평생 철저한 사회주의자이자 유물론자였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사람 그 자체였단다. 사람이 좋으면 사상보다 앞섰어. 그러니 사상적으로 정반대였단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단다. 심지어 잘 죽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생전에 술 한잔 잘 기울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사람을 가장 먼저 생각했던 아버지의 철학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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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 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싫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관계를 맺지 않았다. 사람에게 늘 뒤통수 맞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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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아버지는 공감능력도 뛰어났단다. 모르는 십대 소녀와 맞담배를 피면서 조언을 해주어 그 소녀가 검정고시까지 볼 수 있도록 해주었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담배 핀다고 잔소리만 늘어 놓는 다른 어른들과 달리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담배조차 이해를 해주는 어른의 이야기라면 자신도 귀담아 듣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버지의 빨치산 경력 때문에 친척들이 간혹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친척들의 어려움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달려가서 일을 해결해주는 것도 아버지였단다.


고아리는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고, 뒤늦게 친밀감을 느끼게 된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제서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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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아빠, 나는 들을 리 없는, 유물론자답게 마음 한줌 남기지 않고 사라져, 그저 빛의 장난에 불과한 영정을 향해 소리 내 불렀다. 당연히 대답도 어떤 파장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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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아리는 마지막으로 깨닫게 된단다. 아버지는 혁명가이고 빨치산이고 사회주의자이고 유물론자이기 전에 나의 아버지였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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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249)

오십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잠이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가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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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읽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아버지를 떠오르게 할 거야. 아빠도 아빠의 아버지, 그러니까 너희들의 할아버지가 떠오르더구나. 어떤 특별한 사상을 가지시지는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아버지. 하지만 아빠가 본 모습이 전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계시겠지. 어쩌면 아빠도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 더 진짜일 모습을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새해가 밝았구나.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나이 드신 부모님 걱정은 커져만 갈 수 밖에 없는데, 건강히 오래오래 함께 하셨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아버지가 죽었다.

책의 끝 문장: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는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 P102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나는 불편한 모든 현실에서 몇발짝 물러나 노상 투덜댔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나 있었던 것인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들어오는 순간부처 나를 불편하게 한 아버지의 동지들은 목청 높여 아버지와 인연을, 조국통일에의 열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동지들의 장례식에 갈 때마다 참석한 동지들이 한둘씩 줄고, 십년쯤 지나면 누군가의 부고가 들린다 해도 갈 수 없는 몸이 될 사람들이었다. - P148

질 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대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려 했던 이십대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 P181

아버지는 죽음 앞에서 담담했을까? 인간의 시원은 먼지, 누구라도 언젠가는 그 시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불변의 과학이라 생각하는 사람답게 담담하게 맞이했을 것도 같고, 아는 것은 머리요, 정작 죽음이 닥쳤을 때는 머리만 바위 밑으로 디밀었다는 김일성대 출신의 엘리트처럼 공포에 떨었을 것도 같았다. 뇌출혈이었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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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3-01-11 공감(4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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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허명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려고 했으나, 나에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주문장을 날렸고, 책이 도착하기 전에 기다릴 수가 없어서 미리보기로 몸풀기를 끝냈다. 어제 집에 돌아가 보니 책이 도착해 있었다. 바로 다 읽어 버렸다.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기>에는 질곡진 한국 현대사의 그 무엇이 오롯하게 담겨져 있었다. 누가 봐도 그 엄혹한 시절을 체험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을 그런 이야기들을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소멸의 시간을 통해 독자들에게 자신이 맹근 시그널을 날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자꾸 오래 전에 만났던 영화 <학생부군신위>와 소설 <녹슬은 해방구>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혈육보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꾼 고아리 박사님의 아버지 고상욱 씨는 뼈속까지 투철한 유물론자이자 혁명가였다. 그를 원수로 생각하는 진영에서는 빨치산 혹은 빨갱이로 불렀다. 그런 고인이 노동절에 죽음을 맞으면서부터 소설의 서사가 굴러간다. 서울에서 보따리 장사(강사)를 하던 상주 고아리 박사는 고향 구례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의 장례식장에서 죽음이라는 삶의 엔딩이 선물한 시대의 화해 혹은 자신이 몰랐던 구빨치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소설에서는 고상하고 순화된 사회주의자라는 표현을 쓰지만, 아마 고인은 사회주의자라기 보다 공산주의자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우익의 세상에서 전향한 공산주의자는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였으리라. 그리고 자신 말고도 다른 가족들까지 모두 연좌제로 몰아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산사람으로 사선을 누비며 동지들이 숱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고상욱 할배는 산에서 내려와 “새농민”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산에서 죽고 살던 동지에게는 위장 자수한 “인사”에 불과했고, 세상은 그를 전향한 빨치산이자 요주의 인물이라는 낙인을 찍어 버렸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치매를 앓던 고인은 어느 날 갑자기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먼 길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 유물론자답게 자신의 시원이 먼지이니, 굳이 묘를 쓸 것도 없이 상주 아리에게 타고 남은 재를 뿌리고 싶은 곳에 뿌리라는 말을 남긴다. 진짜 뿌리 깊은 유물론자가 아닌가 말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진행은 클리셰이다. 망자와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작은아버지와 갈등, 연좌제로 숱한 고초를 겪은 사촌형제들의 이야기 그리고 죽음 앞에 다시 뭉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그리고 제각각 고인과의 소중한 인연을 지닌 이들이 문상에 나서게 되고, 상주와 마주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그동안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은 참 사무치기도 하고 또 하염없기도 했다.

 

굳이 저자는 늙은 혁명가의 소싯적 행적을 신원하고자 하지 않는다. 자본의 힘이 모든 걸 삼켜 버린 마당에 철지난 이데올로기 타령을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우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자신들이 소중하게 생각한 평등한 세상의 도래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걸고 투쟁에 나섰지만, 체제와 자본에 순치된 우리 후손들은 그저 자신들의 일상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타협과 화해의 시간이 장례라는 생로병사의 마지막 이벤트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아마도 나에게 영화 <학생부군신위>를 연상시킨 게 아니었을까. 그 위에 한국 현대사의 이데올로기 갈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토핑으로 얹고,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고인의 장례식 준비에 나선 사촌들의 몸을 내던지는 애도와 품앗이 그리고 다양한 인연을 지닌 이들의 등장으로 상쇄시키는 일련의 과정들은 일품이었다.

 

“빨치산의 딸”이 반동 신문이 주최한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 활동에 나섰다는 점은 우리 현대사가 가진 구조적 모순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평생 유물론자였던 혁명가가 말했다시피, 우리 모두는 저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말이지. 작년에 발표된 소설집 <자본주의의 적>이라는 책도 있다고 하는데,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작가의 전작들을 한 번 만나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의 문턱에 선 이번 가을, 간만에 수작을 만나 기분 좋은 독서의 시간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뱀다리] 노동자 농민이 평등한 세상의 도래를 위해 자신의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투쟁에 나섰던 혁명가들이 정작 노동의 현장에서, 우리 보통 사람들이 하는 노동을 버거워 하는 장면은 정말 그들이 지닌 구조적 모순에 대한 신랄한 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혁명이란, 노동의 현장이 아닌 오직 그들의 머리와 판타지 속에서만 가능했단 말인가?

 

해방정국에서 피 끓는 청년들을 사로잡았던 이데올로기 투쟁이 정작 당장 눈앞에 닥친 먹고사니즘 앞에서는 어떤 위력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그들은 정작 몰랐단 말인가. 어쩌면 모든 가치와 사회적 정의조차 집어삼키는 21세기 무시무시한 자본의 위력과 그에 따른 선전선동 앞에 무력해진 개인의 무력함에 대한 경종일 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담즙 같은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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