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1

알라딘: 엿장수 구학영

알라딘: 엿장수 구학영







엿장수 구학영 
1923년 9월 5일, 사이타마에서 학살된 조선인 청년의 이야기
김종수 (지은이), 한지영 (그림) 기억의서가 2021-03-01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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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쪽
책소개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사이타마에서 엿장수를 하던 조선인 청년 구학영이 자경단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을 사료와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쓴 창작 이야기이다. 글을 쓴 김종수(1923한일재일시민연대 대표)가 수차례 현장을 방문하여 연구자들과 추도위원회와 인터뷰를 하고, 구학영에 관한 학살을 기록한 사료들과 연구물을 바탕으로 글을 썼으며, 그림을 그린 한지영 작가도 직접 현장을 찾아가 구학영의 묘소를 참배하고 당시의 그림 자료들을 참고하여 삽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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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작가의 말
단짝 친구
새벽의 징조
불마귀火魔로 뒤덮힌 도쿄의 거리
바람보다 빨리 퍼지는 유언비어流言蜚語
익숙한 비명, 겹겹이 쌓인 주검들
유언비어를 사실로 둔갑시킨 일본당국
쥬고엔 고짓센 해 봐라!
벌레처럼 죽어가는 조선인
학살의 좀비가 된 요도무라 자경단
센징을 감싸는 걸 보니 서장도 빨갱이다!
‘罰日本罪無’ - 구학영이 남긴 다섯 글자의 의미는?
쿠짱! 여기를 떠나지 말게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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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8월의 마지막 날, 요리이寄居 거리의 저녁 날씨는 여전히 더웠다.
P.21
기쿠지로는 지난 해(1922년)부터 수평사 모임에서 구학영을 만난 뒤로 더욱 친해졌다. 구학영이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늘 기쿠지로는 구학영의 손과 어깨를 안마해 주었다. 하루 종일 엿판을 어깨에 메고, 두 손에 든 큰 가위로 장단을 넣으며 다녔기 때문에 피곤해진 어깨와 손을 주물러 주었다. 구학영과 미야자와 키쿠지로는 그야말로 단짝친구였다.

P.34
물놀이를 하다가 허기가 져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옆집 연이의 손톱에 봉숭아 꽃을 백반과 함께 으깨어 아주까리 잎으로 싸매고 무명실로 꽁꽁 묶고 있었다네.
“학영아 너도 해 봐라”하고 연이가 권하길래 “사내가 남사시럽게…”하고 대꾸했지, 그랬더니 어머니는 “백반을 빼고 새끼손톱만 물들이면 금방 물이 빠진단다.”하시며 연이에게 눈을 찡긋하였고, 연이는 내 손을 끌어당겨 양쪽 새끼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 주었다네. 콩닥거리는 심장소리가 연이에게 들릴까 봐 숨도 제대로 못 쉬었지. 그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았을 것을....

P.44
도쿄에서는 요리이 마을에서 지진이 일어나던 조금 앞선 시각인 11시 58분에 사가미만相模?에서 시작된 지진으로 땅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집이 흔들리고 지붕이 춤을 추더니 점심을 준비하며 피운 화로가 넘어져 불씨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다가 여기저기에서 불이 붙기 시작했다.

P.50
그러는 가운데 누군가 ‘조선인들이 불을 질렀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으니 목이 마르더라도 우물물을 마시지 말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누군가 말했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가 밥을 짓다가 땅이 갈라져 불씨가 날리다 불이 나고, 전신주가 무너져 불이 난 것을 보면서 도망쳐 왔는데, 뭔 조선인이 불을 냈다는 것이오.”
하며 핀잔을 주었다.

P.56
당부할 것이 있습니다. 도쿄에서 온 사람들이 ‘더 큰 지진이 온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고, ‘조선인과 주의자 등 불령한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하지만 자기 눈으로 본 이는 아무도 없어 유언비어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p.61 “지금 도쿄에 계엄령이 선포되어 조선인들과 우리 동료들을 다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빨리 도쿄를 떠나십시오, 계엄령이 발포되어 조선인을 색출하고 있으니 검문에 걸리면 끝장입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며칠 죽은 듯 지내다가 가능한 빨리 조선으로 돌아가십시오. 가메이도亀戸역에서 열차 검문이 실시되었다니 열차도 위험합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의 배를 빌려 두었습니다. 그곳에 수평사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니 사람들이 차면 속히 이동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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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장관, 현 김대중도서관장,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장): 엿장수 구학영의 이야기는 절로 흐르는 아픔의 눈물없이 읽을 수 없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에 한때 나라를 잃었던 조선인/한국인의 기막힌 한의 역사이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전국에 퍼트려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그곳에 살고 있던 조선인 약 6,000여 명을 학살했다. 일본인들은 국가의 명령을 따라 자경단을 조직하여 조선인을 무자비하고 잔혹하게 살해했고, 일본 정부는 이런 사악한 행위를 방조했다.
구학영은 매 맞아 죽기 전에 흐르는 피를 모아 떨어진 벽지에 “罰 日本 罪無(벌 일본 죄무)”라고 썼다. “일본인이 죄가 없는 조선인을 처벌했다”는 것을 역사에 고발한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하늘과 땅이 함께 분노하는 천인공로(天人共怒) 할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사건이 아직까지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엿장수 구학영의 이야기를 통해 그나마 실상의 일부를 알게 될 것이다. 독자들은 이런 반인권적, 반인륜적 악행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깊이 할 것이다. 과거를 잊지 말되 과거에 매이지 말고 보복을 넘어 용서와 화해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사건이 아직까지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엿장수 구학영의 이야기를 통해 그나마 실상의 일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아동과 청소년들은 이런 반인권적, 반인륜적 악행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깊이 할 것이다. 과거를 잊지 말되 과거에 매이지 말고 보복을 넘어 용서와 화해의 마래로 나아가야 한다. 국경을 넘어 세계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지구촌 시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실현할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 책을 펴낸 김종수 목사는 20년 가까이 끊임없이 이 학살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책은 그런 노력의 한 결실이다. 그의 헌신적 노력에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이 책이 아동과 청소년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널리 읽혀지기 바란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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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Koo Hakyoung, the Yeot Seller>,<어서 와~ 아우내는 처음이지?!!>,<엿장수 구학영> … 총 3종 (모두보기)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 관장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상임대표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 사회위원회 1923간토학살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개여울이 큰 바다의 물결이 되는 것은 멈추지 않는 흐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간토대학살사건 100년에 즈음하여 감추어진 역사를 드러내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도 중단되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의 물결을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담아내고 싶습니다.


그림: 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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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대학에서 정교회 예술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성화뿐 아니라 삽화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2009년 여름, 뜨거운 여름날의 태양 하래서 간토대학살의 슬픈 진실을 처음 들었습니다.필드를 걷던 그날 그날의 분위기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었던 증언들, 그리고 흔적도 찾기 힘든 수많은 죽음들 속에 외롭지만 단단하게 서있던 구학영의 묘까지 생생히 기억납니다. 이 여행을 계기로 삽화 작업을 하였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사이타마에서 엿장수를 하던 조선인 청년 구학영이 자경단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을 사료와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쓴 창작 이야기이다.

사이타마현의 작은 여관 마시타야(眞下屋)에 장기 투숙하며 엿을 판매하던 구학영은 자경단의 습격을 염려하여 자발적으로 경찰에 보호를 요청한다. 1923년 9월 5일 심야, 요리이 마을 사람들이 구학영을 보호하고 보호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린 이웃마을 요도무라(用土村)의 자경단이 경찰서로 난입하며 유치장으로 피해 있던 구학영에게 괴성을 지르며 돌을 던지고, 죽창으로 찌르고, 현관까지 끌어내어 살육하였다. 구학영의 온 몸에는 60여 곳의 치명상이 남아 있었다. 구학영은 자신의 피로 유치장 벽에 있던 포스터에 "罰, 日本, 罪無"라는 다섯 글자를 써서 남겼다.
구학영과 마을에서 친하게 지냈던 맹인 안마사 미야자와 기쿠지로는 온몸이 피투성이인 구학영의 시신을 수습하고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쇼쥬인(正樹院)에 묻고 묘비를 세웠다. 수천명의 학살피해자 중 오직 사이타마에만 실명의 故강대흥, 故구학영 묘비가 세워져 있다. 지금도 매년 9월 5일에는 구학영과 억울하게 학살당한 조선(한국)인을 추도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 책은 글을 쓴 김종수(1923한일재일시민연대 대표)가 수차례 현장을 방문하여 연구자들과 추도위원회와 인터뷰를 하고, 구학영에 관한 학살을 기록한 사료들과 연구물을 바탕으로 글을 썼으며, 그림을 그린 한지영 작가도 직접 현장을 찾아가 구학영의 묘소를 참배하고 당시의 그림 자료들을 참고하여 삽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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