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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 담론: 세계화, 축복인가 저주인가』 (일린서원, 2024년 5월)
옮긴이의 말: 번역 과정과 용어에 관해
저는 맨 처음 박한식 선생님을 조선(북한)과 미국 사이의 ‘평화 중재자’로 알았습니다. 1994년 카터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하셨다는 뉴스를 통해 선생님 성함을 듣게 됐거든요. 2018년 출간된 『선을 넘어 생각한다』를 읽으며 ‘북한 전문가’로 생각했습니다. 50여 차례 평양을 방문해 북한 실상을 직접 보고 들으며 연구하신 결과물이 매력적이었습니다.
2021년 출판된 선생님의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를 읽으면서는 진정한 ‘평화학자’ 겸 ‘평화운동가’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짜릿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 평화에 미쳐 사시게 된 배경과 과정이 매우 감명 깊었지요. 제가 평화학자와 평화운동가를 자처해온 게 너무 왜소하고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학문의 목적이자 학자의 소명은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그 원인을 찾아 처방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신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회고록을 통해 많은 가르침과 깨우침을 얻으면서도 아쉬움이 좀 생기더군요. 몇 군데 이견과 조그만 오류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께 조심스레 이메일을 보냈더니 즉각 전화를 주셨습니다. 곧 있을 출판기념회에서 저와 대담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명한 원로학자가 한참 후배 교수의 비판을 조금이라도 불쾌해하기는커녕 크게 환영하시며, 저와 ‘학술 토론 같은 대담’을 원하신 거죠.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2021년 8월 삼인출판사와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이 공동 주최하는 화상 출판기념회에서 선생님과 대담을 갖게 됐습니다.
그 대담을 계기로 선생님과 자주 연락하면서 2022년 여름엔가 이 번역서의 영문원서에 관해 들었습니다. 한 권 보내주시겠다는 호의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정치발전이나 세계화 문제는 제가 크게 관심 갖지 않은 주제인데다 책값보다 비쌀 송료가 부담스러웠거든요. 그해 12월 초판 전자책을 이메일로 받은 데 이어, 2023년 2월 조지아의 선생님 댁을 방문해 수정판 종이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6월 여름방학을 맞아 제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북한 전문가’, ‘평화 중재자’, ‘평화학자’, ‘평화운동가’ 이전에 ‘정치발전 이론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책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더군요. 특히 뒷부분에서 다루는 인권과 평화 그리고 새로운 세계질서 등은 남들에게도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번역해서 출판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거죠. 마침 선생님께서 2020년부터 2년간 매월 진행한 <박한식 사랑방> 화상강좌 내용을 2022년 『안보에서 평화로』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내실 때 제가 주선하며 추천사도 쓴 터였습니다. 밀린 일이 많은 데다 게으른 제가 혼자 번역하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몰라 함께 번역할 동료를 찾았습니다. 먼저 미국과 한국에서 사회복지학을 강의하다 박한식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를 읽은 뒤 감동받아 인터넷신문에 독후감을 발표하고 <박한식 사랑방> 강좌에도 열심히 참여한 도영인 교수가 선뜻 응해주었습니다. 원광대학교에서 특수교육학을 강의하며 정치발전 및 평화통일 문제에 관해 저와 오랫동안 토론해온 강경숙 교수도 기꺼이 동참하겠다더군요. 그래서 도 교수가 제1-6장을, 강 교수가 제7-11장을, 제가 제12-17장 및 책 앞뒤 부분을 번역했습니다.
세 사람의 번역이 절반쯤 이루어졌을 때 오류가 있는지 선생님께 검토를 부탁했습니다. 한글 번역원고를 이해하는 게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미국에서 50년 이상 영어로 강의하고 글을 써오셨어도 한국어로 대화하는 데는 전혀 문제없는 분이 당신의 영문을 한글로 옮긴 게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수의 전문가보다 다수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글을 옮기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으로 전문용어를 쉽게 풀어쓰며 원문의 단어나 구절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선생님의 양해를 얻어 직역보다 의역을 택한 거죠. 게다가 원문의 문장이 대체로 길기에 저자의 뜻이 훼손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번역 문장은 상대적으로 짧게 고치기로 했습니다.
원서 제목 Globalization: Blessing or Curse?의 ‘curse’를 흔히 ‘저주’로 번역하는데, 저는 ‘재앙’으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저주’는 “남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도록 빌거나 바라는 것”이고, “저주를 내리다”거나 “저주를 받다”는 말에서처럼 신이나 하늘로부터 큰 벌을 받는다는 인상을 주는데, ‘재앙’은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나 “천재지변에 따른 불행한 사고”를 뜻하고, “재앙을 당하다”거나 “재앙을 입다”는 말에서처럼 불의의 피해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세계화의 폐해가 크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그 폐해를 인간의 탐욕에 대한 신이나 하늘의 ‘처벌’이라기보다 추진 과정의 잘못이나 시행착오에 따른 ‘재난’으로 본 것이죠.
이러한 제 의견에 선생님은 한참 뒤에 ‘저주’가 더 낫겠다고 하시더군요. 꽤 오랫동안 고민하셨던 모양입니다. 초판 서문 끝부분에서 밝히듯, 아버지의 유교와 어머니의 불교 그리고 아내의 기독교를 모두 받아들인 종교인으로서 세계화의 폐해는 분명히 ‘신의 처벌’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이미 사그라진 데다 이 책의 더 큰 주제가 ‘정치발전’이기에 번역서의 제목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제 의견은 선뜻 받아들이셨습니다. 마침 선생님이 꼭 40년 전인 1984년 아마 처음으로 출간한 영문 저서의 제목이 <인간의 필요와 정치발전 (Human Needs and Political Development)>이거든요. 번역서 제목을 <정치발전 담론: 세계화, 축복인가 저주인가>로 정한 이유입니다. 이 책에서 정치발전에 관한 미국과 유럽 학자들의 기존 이론을 비판하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만, 학술적이고 딱딱한 ‘이론’이라는 말보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따스한 ‘담론’을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당연히 이 책에 ‘development’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정치나 경제 분야에서는 대개 ‘발전’으로 쓰지만 사회복지와 인권 분야에서는 흔히 ‘발달’로 사용하는 경향이 큽니다. 도영인 교수는 어떤 분야에서든 ‘발달’이라는 용어가 “더 포용적이고 유동성 있는 표현”이라며 번역서 제목에도 ‘정치발달’이라 쓰자고 제안하더군요. 그러나 오류가 아닌데도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써온 표현을 바꾸는 것은 어색할 것 같아, ‘political development’는 ‘정치발전’으로 쓰되, ‘development’는 문맥에 따라 발달, 개발, 발전 등으로 번역하기로 했습니다.
‘needs’라는 용어를 옮기는 데도 논의가 필요했습니다. 대체로 욕구, 욕망, 요구, 수요 등으로 번역되는데, 특히 심리학이나 사회복지학 분야에서는 예외 없이 ‘욕구’라는 용어를 쓰는 것 같습니다. 저자 박한식 선생님도 서문을 통해 1960년대 말 미네소타 대학에서 공부할 때 “에이브라함 매슬로우 (Abraham Maslow)의 저작에 매료되었다”고 하셨는데,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 (Maslow's hierarchy of needs)’은 거의 모든 분야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섯 가지 인간의 기본욕구 (five basic human needs)’와 함께 말이죠. 그런데 박한식 선생님은 이 책에서 발전이론을 설명하며 ‘needs and wants’라는 문구를 자주 사용하십니다. 저는 ‘needs’는 ‘필요한 (necessary)’ 것에 가깝고, ‘wants’는 ‘원하고 바라는 (want)’ 것에 가깝다는 생각으로, ‘needs and wants’를 ‘필요와 욕구’로 번역했습니다. 도영인 교수는 한국 교과서에서 ‘needs’를 ‘욕구’로 번역하고 심지어 ‘니즈’라고 쓰는 경우도 흔하기에 오해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욕구’로 통일해 썼고요.
2023년 말까지 세 사람이 1차 번역을 마쳤지만, 전체 윤문을 맡기로 한 제가 여러 사정으로 일을 진전시키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박한식 선생님은 이 영문원서의 주요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한 <박한식 사랑방> 2차 강좌 내용을 책으로 묶어 냈습니다. 2024년 2월 <열린서원>에서 출간된 『인권과 통일』입니다. 그 책의 출판도 제가 주도하며 추천사를 썼는데, 이 번역과 출판 작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거죠.
이 글을 쓰고 있는 2024년 4월 중순, 박한식 선생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다시 병원에 계시느라 통화하기 곤란하고, 강경숙 교수는 4월 10일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몹시 바빠 저자와 번역자들이 더 이상 함께 소통하기 어렵군요. 번역 용어를 문맥에 관계없이 완전 통일하는 것보다 내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쓰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원고를 출판사에 넘깁니다. 박한식 선생님의 저서를 이미 두 권이나 출판하고 앞으로도 수고해주실 <열린서원>의 이명권 대표와 송경자 편집실장에게 감사드립니다.
2024년 4월 19일, 이재봉
===Globalization: Blessing or Curse? : Park, Han S.: Amazon.com.au: Books


Globalization: Blessing or Curse? Paperback – 30 November 2022
by Han S. Park (Author)
Dr. Han S. Park is University Professor Emeritus of International Affairs and Founding Director of the Center for the Study of Global Issues (GLOBIS) at the University of Georgia. Born in China (Manchuria) to immigrant Korean parents, Dr. Park received his education in China, Korea, and the United States, with degrees in Political Science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B.A.), the American University (M.A.) and the University of Minnesota (Ph.D.).
Dr. Park is the thirteenth recipient of the Gandhi-King-Ikeda Community Builder’s Prize in 2010 for his commitment to finding peaceful solutions to challenges arising from the Korean peninsula. This international award is designed to promote peace and positive social transformation by honoring those demonstrating extraordinary global leadership through nonviolent means. Previous recipients include Nelson Mandela, Mikhail Gorbachev, John Hume, Desmond Tutu, and Yitzhak Rabin.
He has worked tirelessly to persuade officials from different countries to improve their relations with the US for denuclearization. He was instrumental in President Jimmy Carter’s visit to North Korea in 1994 for averting a certain military confrontation and President Bill Clinton’s visit to Pyongyang to free detained American journalists in 2009.
Dr. Park’s extensive list of published books include Globalization: Blessing or Curse (2017), North Korea Demystified (2012), North Korea” Politics of Unconventional Wisdom (2002), as well as foreign language books.. To honor Dr. Park’s scholarship, teaching and service, the University of Georgia created a professorship in his name, Han S. Park Professor of Peace Studies. He has consistently been interviewed by major media around the world including CNN, ABC, BBC, Aljazeera, as well as TRT (Turkey), Japan, an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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