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1

박정미 - 김민기 ㅡSBS 다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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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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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넓고 깊은 바다, 김민기
ㅡSBS 다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보고


 김민기의 낮고 잔잔한 목소리는 바다를, 달빛에 젖은 밤바다를 연상하게 한다.
 "뱃속에 고래 한마리는 뛰어놀만큼 묵직한  목소리네."
나란히 앉아 장장 세시간을 넘는 다큐멘터리3부작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을 몰아서 다 보고 일어서며 남편이 한 말이다. 
 남편도 김민기의 생애를 지켜보고 바다를 떠올린 것이다. 다큐를 통해 들어가본 그의 내면은 목소리의 느낌 그대로 바다처럼 낮고 넓고 깊었다.
 고교시절 <아침이슬>을 듣고 충격을 받은 후부터 김민기는 내 좁은 관심권 안에 계속 머물렀다. 노래는 물론이고 그의 생애도 알만큼 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다큐를 보니 그는 내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사람이었다.
 특히 제작자로서 대학로에서 소극장 학전을 운영하던 시절의 증언이 놀라웠다.
 7, 80년대 그 시절 수배당하여 기관에 쫓기고, 잡히고, 고문당하고, 탄광으로 공장으로 농촌으로 잠행하는 이야기는 김민기 말고도 많이 들었지만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극단의 총괄감독으로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고 지극히 양심적이었을뿐만 아니라 자기생활보다 배우들과 스텝들의 생활을 먼저 책임진 놀라운 경영자였다.
 극단 학전은 가난에 찌들고 보수없이 연극판을 떠도는 배우들에게 최초로 안정된 생활과 임금과 4대보험을 보장해주었다.
 배우들과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도, 그 계약서 그대로 이행하는 것도 공연수익과 회계를 전부 공개하고 투명한 기준에 따른 기여도에 따라 월급과 성과급을 지급한 것도 당시 업계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고 한다.
 뮤지컬 <지하철1호선>이 흥행가도를 달리던 97년도에는 밴드부 드럼이 300만원의 월급을 가져갔는데 이는 대표의 월급보다 더 많은 액수였다고.
 운동판에서 내가 본 바 조직의 좌장들은 가난과 고난은 공평하게 나누어가졌지만 부와 명예는 독식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김민기는 거꾸로 갔다.
 공장에서 한시절을 함께 한 피혁노동자가 증언한 김민기 어록에는 이런 말이 있다. "계산하지 말고 느낀대로 살아라." 그는 과연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경영자로서 김민기는 돈문제 앞에서는 결백증있는 겻처럼 철저하게 계산하여 지급했다. 고문과 투옥 등 시련 앞에서는 아무리 강했던 사람이라도 좋은시절이 와서 돈과 명예와 여자 앞에 서면 한없이 약해지는 법인데 그는 달랐다.
세상에 이런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송창식의 증언대로 그는 "노래와 삶이 일치된" 너무나 희귀한 길을 간 것이다.
 이렇게 다큐를 보면서 나는 김민기라는 한 사람에게 본질적 의문이 생겨버렸다.
 저렇게 예민한 감수성과 높은 지적역량과 도덕의식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사람들과 불화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극단의 사람들이 그를 '아버지나 친구'같았다고 존경하며 따르고, 농촌과 공장시절의 동료들이 한결같이 '착했다'고 뒷공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기질과 격이면 세상과의 불화가 당연한 귀결인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잘 섞여 세상과 사람을 좋아하며 살아갈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다큐가 끝날 때까지 그 의문은 풀리지 않다가 우연히 검색해본 인터뷰기사(한겨레신문 2015)를 통해 해답을 얻었다.
 스물서너살 무렵에 보안사 취조실에서 고문을 받고 있었을 때 김민기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고 한다.
"들어가니까 하사관들이 딱 들고 오는 게 사각형 각목이었는데 걔네는 베테랑들이지. 그때 아, 내가 죽는구나. 그런 느낌을 처음 받았어. 한참 맞다 보니까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패는 놈들 모습이 슬로비디오로 보이는 거야. 나 죽는 거, 아픈 거는 감각이 멀어지고. 근데 걔네들한테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구.”
“한없이 미안해지는 게, ‘나 때문에 이들이 죄를 짓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어.”
바로 이거였다. 사람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연대감과 언젠가 깨어날거라는 거대한 긍정의 에토스.
같은 인터뷰에서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 거 없어. 날 고문한 놈들한테 내가 미안하다 생각 들었던 것, 그게 분기점이었던 것 같애.”
 내 대학시절에는 김민기가 투쟁가요를 만들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김민기도 결국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퇴물의 길을 가는 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그가 어느 경계에 자신을 가두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크고 좋아보인다.
송창식의 평가대로 예나 지금이나 "김민기는 운동권은 아니지. 운동권이 바라보는 사람이긴 해도." 인 것이다.
김민기의 노래와 시를 먹고 우리세대 젊음은 영혼을 길렀다. 김민기는 내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표현해주고, 나아가 제대로 느끼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김민기처럼 살 수는 없었지만 김민기처럼 보고 느끼고 싶었다.
김민기의 노래를 먹고 자라난 인생이라면 적어도 좌측권력이든 우측권력이든 대중권력이든 권력이 시키는 대로 떠벌이는 스퀼러들은 되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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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퀼러
- 영어에서 번역됨-Squealer는 George Orwell의 1945년 소설 Animal Farm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인 돼지입니다. 그는 나폴레옹의 부사령관이자 농장의 선전 장관입니다. 그는 책에서 효과적이고 매우 설득력 있는 연설가이자 살찐 돼지 고기꾼으로 묘사됩니다. 위키백과(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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