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1922년
보천교(선도교) 교인수는 2만명, 천주교인 200명,개신교인 500명 수준이었다. 1918년(무오년) 10월 9일 제주도 서귀포 법정사 항일운동 때 보천교도와 불교도 등 700여 명은 국권회복을 위해 집단으로 무장투쟁을 했다. 기미년 삼일운동보다 5개월 앞서는 독립운동이었다. 이후 보천교는 교도가 급증, 1922년 2만 명에 달했다. 당시 한국 전체에서 보천교도는 600만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최대 종교 단체였다. (아마도 실제 교도 수는 100만 정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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