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8

그것을 읽어주마! 전두환 회고록! 1권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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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읽어주마! 전두환 회고록! 1권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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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읽어주마! 전두환 회고록! 1권 1장
현재시세 518만원의 귀한 서적 전두환회고록!
그것을 읽어드리는 독서방송

#팬데곰 #전두환회고록 #전두환

후원:국민 279601-04-161553 정X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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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Comments
Sejin Lifeforce 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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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VEJESUS1948
2 years ago
전두환회고록을시립도서관에신청했는데,거절당했습니다
대한민국을구하신전두환대통령님의회고록을읽고싶었는데,감사합니다

10



Reply


@user-fr7lg8vt3k
2 years ago
좋은 영상 감사히 잘 듣고 있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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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px7pf2ns5z
2 years ago
인형 이쁘네요~ 좋네요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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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4724
2 years ago
이런 귀한 걸.... 감솨

3



Reply


@user-qn7ju7qm3p
2 years ago
끝까지 읽어 다오!

5



Reply


@fps6975
2 years ago
내 인생 첫 대통령..감사합니다

4



Reply


@8622qa
2 years ago
첨부터 보는 중입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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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u1537
2 years ago
첨부터 못봐서 재방 들으며 자렵니다^^

8



Reply


@user-ug4wb7xu9c
2 years ago
지금 듣고 있어요! 귀에 쏙쏙

6



Reply


@user-fo7kp8vt5q
2 years ago
3권을 단숨에 읽고2권을 읽고
1권이 너무 궁굼했었는데. 
이렇게 읽어주는곳이 있었다니
반갑고 감사합니다.3시간 넘게
소리내어 읽는게 무척 쉽지않은일
인데 수고많으셨습니다.구독누릅니다

4



Reply


@user-ph8bq4tc6u
2 years ago
금서 오디오북이라니 이건 귀하네요.
영상 잘리지 않길 바랍니다.

6



Reply


@user-gh4kr1sf1s
2 years ago
팬데또패님은 외모에 자신이 없는가요...? 가면을 쓰고 방송 하시네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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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또패
·

1 reply
Transcript


0:23
[음악]
0:33
[음악] 반갑습니다
0:39
아 오늘부터 이제 새로 시작하는
0:45
코너가 되겠죠 예고해드린대로 예고 애들이 이제 방송
0:52
차도인님 1등 토미님 2등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아이고
0:59
켜자마자 알림 설정에 잘 갔는지 바로 들어와 주시는 우리 차도인님 서미님
1:04
감사합니다네 오늘부터 이제 전에 예고한 대로 이제
1:13
아주 용감한 정상인의 친구 우리 우리
1:20
돌아왔습니다네 오늘 여행을 좀 이렇게 하고
1:26
현재 시세 최소 518만원에 한 집에 518만원
1:33
목에 많이 먹었습니다 보라님 덕분에 감사합니다 무지하게 많이 먹었고요
1:40
산삼주까지 이렇게 먹었습니다 부장선기님 어서 오세요
1:45
잠자는 토끼님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오늘
1:51
기아디 귀한 책 이제 우리 독서를 해봅시다 교양을 교양을 쌓기
1:57
위해 어렵사리 어렵사리 미리
2:03
구해놨던 이때를 위하여 미리미리 구매했던 전두환 해고로
2:11
어디 가서 이게 그 미리부터 그 애국심을 가지고 있지
2:16
않았다면 구해놓을 수 없는 그 사정 소문의 그 서적 전두환
2:23
회고록을 이제 읽어 보려고 합니다 rah 님 어서 오세요
2:30
장자가 나비인가 나비가 살짝인가 밴드가 고민감하고 어려운 말씀
2:36
대학교야 조카님 어서 오세요 앤도 각하 예 이것이 이것이 그
2:44
소문에서죠 전두환 해고라고 합니다
2:52
뒷장 뒷면 1961년 혁명의
2:57
횃불을 들어 올리던 그 시절 박정희 장군의 형형한 눈빛과 기백 넘치던 열정을
3:03
나는 영원히 있지 못한다 하지만 18년이라는
3:08
긴 세월 동안 그 순수를 그대로 지켜내기한 절대권력을 마성이 너무나 강한
3:14
힘이었는지 모른다 어찌됐던 1979년 가을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3:20
올린 총성은 노새 현상을 드러내고 있던 절대권력과 함께
3:25
할 시대의 종원을 구하고 있다 라고 합니다이 책 한권이
3:33
600페이지가 보통 넘습니다 그렇게 3권이 있고요
3:38
1장에는 이제 전두환 대통령이 이제 박정희 대통령의
3:45
사망하신 이후에 얘기들이랑 이제 대통령이 되기 전 그 이야기들이
3:52
있죠 1장에 박정희 시대의 종원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 위기 수습을
3:58
위한 최대통령의 결단 신화의 자리를 차지한 역사 최규하
4:03
대통령을 하야 뭐 이제 이런 내용으로 [음악]
4:09
책이 되어 있습니다
4:21
[박수]
4:29
1931년 1월 18일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났다 1947년 대구시도
4:35
초등학교 1950년 대구공업고등학교 1950원 육군사관학교를 제 11개로
4:41
졸업하였다 1959년 1월 24일 이기동 장군의 장녀 이순자 씨와 결혼했다 19
4:48
이순자 여사도 그 이제 아버님이 군인이셨군요 1959년 6월 미 육군의 심리전
4:55
교육연수 과정을 이수한데 이어 1966년 7월 미
5:01
육군 보병학교 레인저 과정을 수료했다 1961년 5.16 혁명 직구인
5:08
잠깐만 좀 크게 이렇게 할까요 요거
5:13
네 좀 큰게 좋겠죠네
5:20
1967년 수경사 30대대장을 역임했다 1970년 1월 9사단 29연대량을
5:28
월남전에 참전하였고 1973년 1월 육군준장으로 1977년 2월
5:33
육군 소장으로 진급했다 1978년 1사단장 재임종
5:38
1979년 3월 국군 보안 사령관으로 발탁되었다 그의 10월 26일 박정희
5:44
대통령의 선포되면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 본부장을 받게
5:50
되었다 다음에는 1986년 봄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설치된 국가보위
5:58
비상대책위원회의 상임위원장으로 계약 작업을 수행했다 이어 8월 대장으로
6:04
예편하였으며 1980년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들에 의해
6:10
의한 간접선거를 통해 9월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6:15
1981년 3월 개정 헌법에 따라 출범한 제5공화국의 12대 대통령의 취임했다
6:22
대통령 재임 동안 국정의 기조를 개방과 자율로 전환하면서 안으로는
6:29
획기적인 물가안정의 토대 위에 10% 대의 고도 성장할 이륙하여
6:36
물가 성장 국제수지 흡착하는 세 가지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했다 1988 아니 아니
6:43
88 서울 올림픽 대회를 유치하여 국가의 위상을 끌어올렸고 교육개혁과
6:48
문화창달의 기반을 쌓았다 밖으로는 한미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6:53
본격적인 정상외교의 길을 열어놨고 제3세계로 외교집행을 확대하면서
7:00
북방외교의 초석을 깔아놓았다 무엇보다 1988년 2월 달님을
7:06
실천하였고 퇴임함으로써 우리 헌정사의 평화적 정부 2항의 전통을
7:12
세웠다
7:24
[음악]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이런 것도 우리 또 읽어 줘야 돼요 그래서 일자
7:33
오늘은 600장을 다 읽는 건 무리예요
7:38
중간중간 로딩이 걸리나요 왜 그럴까 그럼 조금 일단
7:44
당연히 퀄리티를 해상도를 조금 낮춰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음
7:58
혹시 같이 읽으면서 하는게 좋겠죠 저도 요게 이제 원화 이제 상당한 양이다 보니까 미리
8:06
다 읽지는 못했는데 요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다 이렇게
8:11
독서를 할 수 있어서 정말 뜻깊은 방송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8:21
하트 하트 빨강 일단 이게
8:28
서론 글을 시작하며 그것부터 읽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이
8:33
책의 모든 내용을 그냥 다 읽어드립니다 그를 시작하며
8:39
삶의 지혜가 될 명언들을 남긴 이건 작가가 쓴 거예요 가장
8:47
큰 적은 편견이라고 했다 내가 대통령의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9:00
읽겠습니다 1장 600페이지도 이게 한 권이
9:06
600페이지가 너무 한 권이 세 권을 이겨야 돼요 세 권 이거
9:11
한 달 정도 읽어야 되나 아 굉장합니다
9:18
내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처음에는 넘긴지 한 세대가 흘렀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
9:24
해야 할 일을 못 먹게 견뎌내는 일이었다 가진 핍박과 능멸을 참아내는
9:29
일은 고통스럽고 나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침묵함으로써 세월이라는 큰 것을
9:37
얻게 된 셈이니 무의미한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거는 그동안 말할 수 없었고
9:43
들어줄 사람도 없었던 얘기들에 대한 기록이다
9:50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일 뿐이어서 패자의 얘기는 모두 묻히게 된다고
9:56
한다 나를 역사의 전면에
10:01
끌어냈던 일들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 많은 부분이 사람들 앞에
10:07
진실된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평균과 오해가 사람들을 가려놓고 있는
10:14
것이다 의도된 편견은 세월이 지난다고 바로 잡히지 않는다 이런
10:20
어떤 일들은 편견의 벽에 갇혀 있는데 그치지 않고 성여간에 모셔져 있다이
10:26
글이 세월의 힘을 빌어 진실을 밝힌다 해도 신화처럼 굳어진 평균과 오해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10:33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이란 시에서 어떤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잃고 어떤이는 내 입에서
10:40
천칠을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고 읊었다 사람들은이 그래서 내가 투박한
10:48
육성으로 토해내는 항변과 원망과 자기 자랑을 잃게 될 것이다
10:54
시간의 여과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지난 세월에 힘겨웠던만큼 가슴에 맺힌
11:01
것이 없지 않을 것이다 애써 착하고 고소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려고
11:07
가성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의 회고록은 참회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11:12
사람들의 뒷굽는 뒷 공론을 나는 개의치 않으련다 우리
11:18
현대사의 논쟁적인 사건들은 국민은 좀 크게 할게요 우리
11:26
현대사의 논쟁적인 사건들은 국민은 각자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을
11:31
것이다 그동안 몇 번의 사법적 판단들도 있었다 시대가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서
11:37
이전과는 완전히 뒤집힌 결론이 내려지기도 했다
11:43
국민은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나는 진실을 알고자 하는 국민과 역사의
11:51
요구에 따라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알고 있는 대로 서술할 것이다
11:57
그러나 그 일들에 대해서는 각자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해
12:03
있고 나는 당사자의 한 사람이었던만큼 나의 진술이 냉정한 관찰자의
12:09
증언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그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국민 각자의 그리고 역사의 몫이다
12:19
나는 일찍부터 기록을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12:24
일기를 쏘았고 대통령이 되자 비서실에 처음으로 통치사료 담당 비서관을 두었다
12:33
대통령으로서의 막중한 소임을 완수한 뒤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면 바로
12:39
회고록을 쓸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12:44
청와대 문을 나서자마자 나를 겨냥한 온갖 비난과 공격을 화살이 빗발쳐
12:49
미쳐 해명할 기회마저 찾지 못한 채 백담사에 유폐된 것이다 그곳에서
12:55
2년여의 생활을 지내는 동안에도 정치권과 아울러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13:02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나는 정치적 책량의 희생양이 되어 투옥과 재산 몰수익 순환을 겪었다
13:10
삶을 회고하며 기록을 정리할 여유
13:16
가질 수 없었다 맛있네요
13:21
지금 나에게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13:26
한 가닥의 명예와 앙상한 혜택조차 나와있지 않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제 일은
13:33
이제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일은 이제 내가
13:38
뿌리내리고 살아온이 땅에 무엇을 남겨 놓을 수 있을 것인가 무궁하게 이어갈
13:44
겨레의 역사 앞에 무엇을 남겨 놓을 수 있는가 역사가
13:53
역사가 불러냈던 나의 존재와 삶은 이미 또 하나의 역사가 되어 있다
13:58
그런만큼이 글은 한 개인 전두환의 삶의 궤적을
14:04
적어 놓은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격동기 대한민국의 현대사이고 지금도
14:10
그 실체적 진실에 관한 논란과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당대의 역사수다 나는 내 삶의 흔적을
14:18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는 일이고 또한 나의 마지막
14:24
책문화는 깨달음에서 새삼이 책의 결말을 서두르게 되었다
14:30
금년에 이르러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까운 일들이 기억에 저장되지 않는 사례가 있음을
14:37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사물을 인식하고 사례를 판단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을
14:43
느끼지 않는다 내가 정리해야 할 일들을 서둘러 마무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14:49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오래전의 일들은 마치 그림처럼 생생하게
14:55
뇌리 속에 남아 있었다 그 기억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내서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나의 회고록은
15:02
모두 생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에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인 1979년에 10월 26일부터 이듬해
15:11
9월 1일 내가 11대 대통령의 취임하던 때까지 일들을 당했다
15:21
극단적인 사건들로 이어진이 시기는 10개월 남짓한 길지 않은
15:27
기간이었지만 기간이지만 우리가 모두 힘겹게 통과해야 했던 우리나라 현대사
15:33
최대의 격동기였다뿐만 아니라 나 개인으로서도
15:40
생애 운명적 변곡점을 맞이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회고록의 앞 대목에 그래서 회고록의
15:47
앞 대목에 놓았다 이거는 대통령이 되어 7년 반 동안 혼신의 힘을 다 쏟은
15:53
국정수행의 총체적인 기록이다 세 권의 전반부에는 어린 시절과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회
16:01
국군 보안 사령관이 되기까지 군인으로서의 삶을 회고해 보였던
16:10
대통령을 소유물 성공적으로 끝내고 한 사람이 가정으로 돌아온 뒤의 이야기다
16:16
임기를 마치고 퇴임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평화적 정부 이항을 선내를
16:21
만든 전직 대통령 순환사였다 순환사다
16:27
원고를 정리해가는 과정에서 당시에는 몰랐거나 깨닫지 못했던 사실들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16:33
내용들을 관계자의 진술이나 관련 자료를 관련 자료들을
16:39
충실히 인용했다 나 개인의 기록물은 물론 국회 청문회 기록
16:44
5.18 특별법에 따라 특별법에 따른 수사 공판기록 재임종 정부의 기록물
16:50
그 외에 내가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
16:56
그러니까이 책은 나 개인의 회고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나와 함께했던 동신의 관련자 모두의 발원록이기도 한
17:04
것이다 나는 연구자들을 위해 그 모든 자료들을 모아 자료집을 만들도록 당부해졌다
17:12
나는이 책을 출간 시기를 정해놓고 원고를 준비해오지는 않았다
17:18
10여년 전부터 나의 아내와 출판사를 하는 장남 제국이 틈틈이 나의 일기와 메모
17:26
굿을 내용 등을 정리해 초보를 만들었고 이상이 전 내무부
17:31
장관이 일을 참여했다이 글에는 특히 각종 기록물과 자료들의 인용이 많은데
17:38
권오준 김형준 군이 많은 분량의 기록문을 취합 정리하고 전산화하는
17:44
작업을 맡아 수거해 주었다 재임 중 나를 보좌했던 수석 비서관들의 조언도
17:51
도움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원고를 완수하는 일을 민정기 전 공보 비서관의 손을 빌렸다
18:01
여태까지 서른 다 읽었습니다 너무
18:07
길어 가지고 중간중간 어
18:12
그러려고 했는데 일단 서론까지는 끝까지 이렇게 다 해야 될 것 같아서 바로바로 읽었습니다 1800페이지가
18:19
넘죠 600페이지가 넘으니까 오늘은 1장만 읽을 거예요 1장이면
18:26
여기 일단 보기를 봐야죠 이런 건 후딱후딱 넘어갈 수 있습니다
18:37
박정희 시대의 종원 궁정동 안과에 올린 총성 어쩌고 또 읽을 거니까
18:44
비상사태를 맞은 국가주도 대통령 시합은 김재규 체포 작전 개업용
18:49
선포와 합동수사 본부 설치 오늘 읽을 것은 여기까지 돼
18:59
버렸습니다 이렇게 한번 보게 한 번씩 이렇게 한번 보시고요
19:06
이왕 보기도 이렇게 있습니다 참고 참고 아유 박미선 님
19:13
5,000원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박미선 님 감사합니다네
19:20
이렇게 한번 이렇게 잠깐만
19:27
서문이 또 있어요 선물이 또 있어
19:33
그를 시작하며가 아닌 서문이 또 있습니다
19:39
알겠습니다 아 정말요 그럼 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9:47
서브 들어갑니다 이거를 쓰면서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나의 삶이
19:52
평탄치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파란만장 했다거나 영역이 점철
19:58
됐다거나 하는 말들은 진부한 표현일 수 있지만 나이 짧은 어휘력으로는 사실 이보다 적당한 말도 찾기 어렵다
20:06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나의 앞섰던 전임 대통령네 분 이승만
20:12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의 정치적 역전 또한
20:18
광고가 나왔습니다 역전 또한 굴곡이 많기로는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20:25
박미선 님 연속으로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무부도
20:31
법에 정해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론 나야 했다 부정선거에 또 나옵니다
20:39
이때도 부정선거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지고 대통령직을 사임한 뒤
20:45
해외로 망명 갔거나 갔다가 생애를 마치신 분도 있고
20:50
임기 중 측근에게 시해당해 세상을 떠나신 분도 있다 그분들 개인으로서는 불운이라고도 하겠지만 임기를 맞출 수
20:57
없었다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요 어떤간에 우리의 정치사가 그만큼
21:04
순탄치 않았단 얘기가 된다 내 뒤로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21:09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등 여섯 분의 대통령이 나왔는데 한번은
21:15
체인점 국회의 탄핵소추를 무슨 일이 있고 탄핵소추를 받은 일이 있었고
21:23
다른 한 번은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함으로써 임기를 1년 가까이 남겨 놓은 채
21:30
물러나야 했다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 중심 재임에도
21:35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소신껏 국정을 수행하고
21:40
인계를 마치는 일이 대단히 여전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있다
21:47
그러나 어쨌든 이제 대통령은 인기가 끝나면 하루도 더 머물지 않고
21:52
청와대를 떠나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권력 순환의 섭리가 전통으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22:00
내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소정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고 정부를 평화적으로
22:06
후임에게 이항한 것은 우리 현대정치사회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22:13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나는 나에게 그러한 기회와 영광을 준
22:20
국민과 역사 앞에 감사한다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능력이 모자라 하지
22:27
못했던 일들을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을 게을러서 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던 것
22:33
같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나라를 위한 헌신한다는 의지와
22:38
충족만큼은 부족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주어진 일 시키는 일만
22:43
하지는 않았다 어느 자리에 가든 없는 일도 찾아서 하고
22:49
시키지 않은 일도 만들어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22:54
그러다 보니 남이 이루지 못한 성과를 내기도 하고 업적을 쌓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23:00
무리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1979년 가을부터 1980년
23:07
여름에 일어난 시기에 나의 일하는 방식이 무사안일이었고 나의 처세가
23:12
명철 보신에 투천했었다면 나머지 반생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
23:18
것이고 나라의 모습도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3:26
박정희 대통령이 수사를 맞게 된 때부터 때로부터 대통령이
23:34
되기까지 내가 겪었던 일들을 일들의 곡절을 명쾌히 설명한다는 것은
23:40
나로서도 어려운 일이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나 개인의
23:46
자유의지와 결단의 결과 이것도 어디서 어디까지가 나 개인으로서는
23:51
어쩔 수 없는 운명적 상황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가늠하기 어렵다
23:57
1970년 말부터 1980년 초까지는
24:04
국가적 위기가 초래될 수 있는 불안 요인이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1979년 봄 나는
24:12
국군사령관의 임명되었다 나 자신은 물론 그때까지의 군인사의 관례에 비추어 볼 때
24:19
매우 이례적인 인사였다 박정희 대통령 그처럼 나에게 보안사령관의
24:25
직책을 맡겨 놓으시고 반년쯤 지났을 무렵 무렵 훈연 세상을
24:32
떠나셨다 내가 보안 사령관의 임명된 이런 그로부터
24:37
7개월 뒤에 발생한 12륙 사건 발생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24:46
그러나 대통령을 도련한 죽음은 비상 계엄령을 불러왔고 비상 계엄령 하에서
24:52
대통령 시혜 사건을 수사할 합동 수사본부장은 보험사령관이
24:58
맞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합동수사 본부장으로서 대통령 시에 얽힌 진실을
25:05
87 인물을 부여받았고 그 일은 나 개인의 운명은 물론 국가의 운명과도
25:11
직결되는 일이었다 나는 국가의 운명을 마주해야 했다
25:16
역사의 진행을 시류와 대세에 맡겨둘 수만은 없었다 나는 청년시절 조국
25:22
수호를 위해 군번에 뛰어들었던 때의 초심을 되새겼다 대인을 살펴
25:28
판단했고 내 삶의 신조가 가르치는 대로 결심했다 결심했고 내가 일하던 방식대로
25:36
행동했다 12시였다 그 일은 나의 주제 없는 선택이었고 목숨을 건 결단이었다
25:45
바로바로 다 못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네 1970년대가 저물고 1980년대
25:52
새아침이 밝아왔으나 시국이 시국에 드리운 어둠은 거치지 않았다
25:58
봄이 되면서 사복사태 학생들의 폭력 시위 재야 세력을 민중혁명 책도
26:04
북한의 긴박한 침략 위협으로부터 위협으로 국가의 안전과 국민생활의 안정이
26:10
위태롭게 되었다 노동 투쟁의 현장과 대학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군중들에게서는
26:18
국가안위에 대한 고뇌가 보이지 않았고 미래를 향한 담론도 형성되지 않고 있었다 정치인들은
26:26
그들만이 전쟁에 매몰되어 있었고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 줘야 할 주도급
26:33
인사들로 인사들도 치료의 편승하기만 했다 불안과 혼란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26:39
가운데 나에게 무거운 짐이 하나 더 얹혀졌다 보안사령관인 내가 중앙정보부장을
26:48
듬직하게 된 것이다 국가적 위기의 원인을 규명하고 나라
26:53
안팎에서 밀려오는 경락을 가라앉혀야 하는 책무가 오로지 나이일이 되었다
27:00
국가 왜 책의 도전에 혼신의 힘을 닮았어야 했다 1980년 봄나라의
27:06
1980년 봄 [음악]
27:17
문자 왔었는데 전화를 이렇게 나중에 전화 달라고 들어오시면 이렇게 참 좋은데
27:24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1980년 봄 나라의 형편은 대통령이 되려고
27:30
치열하게 투쟁해요 김대중 씨도 대통령 자리를 마다하고 싶다고 할만큼 어렵고
27:38
어지러웠다 김대중 씨가 김대중 씨는 그해 3월 26일
27:46
YWCA 초청연설에서 지지자들을 앞에 놓고 여러분
27:52
김대중 그거 뭐냐 성대모사가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
27:59
솔직히 얘기한다면 나의 다음 정권 그렇게 대단한 매력이 없습니다 왜
28:04
첫째 경제만 보더라도 박정희 씨가 아주 망쳐 놓았습니다 그것을
28:09
맡아 놓고 수습한다는 것은 다 파먹은 김치통에다 머리를 집어넣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8:17
4화 5년 동안 드시다거리나 하고 나면 그것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28:22
뒤지닥거리를 하고 나면 자녀는 끝나는 것입니다 누가 한 4년쯤
28:27
해서 실컷 고생하고 난 뒤 지금쯤 가서 내가 만든게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요
28:36
다음 정권에서 오면 아마 이런 얘기가 아마 좀 가슴에 와닿겠지만
28:42
참 이상한 소리를 했군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4년 부장 성기님 부장 성기님
28:49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8:58
어디까지 까먹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29:04
4년쯤 실컷 고생한 그 누구가 바로 나였던 셈이다 김대중 씨의 그 연설이
29:10
있었는지 두 달도 지나지 않은 5.16의 옥일 5월 26일 밤
29:16
원유 확보를 위해 산유국 순방에 나섰던 최규하 대통령은 국내에 긴박한
29:21
상황을 보고받고 일정을 앞당겨 귀국한 직후
29:27
이러다가는이 나라를 제대로 후손에게 물려를 수나 있으려나라고 한탄했던
29:33
것이다 나는 최규하 대통령 정부의 붕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29:40
5.17 시국수습 방안을 권해드렸다 그 일은 대통령 정보 참모로서의 내 직무
29:48
수행이었다 최 대통령은 그 다음날 나의 거내안을 제가 했다 나를 제대로
29:54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그렇게 시국을 수습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30:00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감사합니다 식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네
30:07
그렇게 해서 파국적 국가 위기감 수습된 뒤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길 가운데 하나는
30:14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모든 공직을 떠나는 일이었다 그 한 가지 선택은 아마도
30:22
공을 이루고 나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이 돌이라고 한 노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었다
30:30
그렇다면 나는 대통령이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없었겠지만 임기를 마친 뒤 내란 숙여라는
30:36
주홍글씨를 달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30:42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도 십이시기와 5일치일이 내 사적인
30:47
권력 추구의 출발점이라고 단정되고 있겠지만 나는 역사의 전면에 끌어낸
30:53
것은 나를 전면의 역 나를 역사에 전면에 그런 행궈서 시대적 상황이었다
31:01
혼란과 갈등을 소용돌이는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한다 비상한
31:07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비상한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
31:12
것이다 순리에 따른 절차에 얽매여서 사후의 책임 추궁과 비판을 어려워해서 때를
31:20
놓치면 자칫 수습할 수 없는 재앙을 맡게 된다
31:29
진짜 중요한 내용입니다네 전두환 대통령이 권력이 욕심을
31:35
욕심을 가지고 나섰다고 역사에서는 우리는 배우는데 전자 대통령은 그 역사의 혼란에서
31:42
누군가는 일을 해야 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 [음악]
31:47
전달 대통령의 욕심이 아니라 했어야만 했던 누군가 했어야 될
31:53
일인데 아무도 나 서 내가 배우기로는 그래서 그 상황에서
31:59
뭔가 덮었을까 봐 나오지 못한다고 그랬어요 지금 상황이랑 비슷하죠 아무도 나서지가 않고 있습니다 나서야
32:06
되는데 제대로 된 사람들이 지금 나가지 않고 있어요 사실 그때도이 상황을 수습할 사람이
32:12
필요했는데 다들 전두환을 등을 떠밀었던 상황이에요 [음악]
32:24
비상한 상황을 돌파하는데 선두에서 하는 사람은 그 일이 성공했을 때
32:29
지도자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치명적 상처를 입기도 한다 역사는 그렇게 사상을
32:36
사람을 불러내 사역하고는 또 그렇게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이 등장한
32:43
시대적 상황의 산물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역사가 사용한 하나의
32:48
도구였는지도 모른다 최규하 대통령은 10월 16일 직후
32:53
당신이 대통령을 맡게 된 상황과 관련해 모든게 숙명
32:59
하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으며 하기 싫어도 버텨도 안 할 수도 없고
33:04
역사 속에서 개인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것이죠
33:10
그 당시의 상황이 어쩌면 모두 지나가는 역사의 흐름인데라고
33:16
측근에게 수뢰했다고 한다 월간조선에 이렇게 1993년 6월에
33:21
나왔다고 합니다 1980년 7월 31일 그 해
33:27
봄 나라를 집어삼킬 듯 사납게 타오르던 불길이 잡힌 뒤 대통령직
33:32
사입 의사를 밝히면서 나에게 뒤를 이어달라고 했을 때 최대통령은 내가
33:38
바로 9개월 전 당신이 가졌던 그런 심정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셨을까
33:45
국가 역사 숙명 이런 말들이 내 머릿속의 모든
33:51
상념들을 압도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34:06
시대의 요청이었다 나 개인으로 보면 사적인 권력의지의 성취가 아닌 역사적
34:11
선택이었다 대통령이 된 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부으며
34:17
머슴처럼 일했다 그 5공화국을 권위주의 통치시대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은 머슴처럼이라 내
34:25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것 같다 군림하고 통칭하려고 했지 봉사하는 태도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34:32
싶을 것이다 대통령의 취임했을 때 나는 당시에 우리가 직면한 위기적 상황을 돌파하기
34:39
위해서는 법이 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가장 능률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34:45
생각했다 나라를 위한 일에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는 일은
34:52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책무이기도 했다 대통령을 국정행위가 차진 없이
34:58
수행되려면 강력한 통치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대통령직의
35:04
권위가 확립되고 대통령의 말에 영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임기를
35:10
마치는 날까지 대통령직의 권위와 권한을 완전히 확보하고 있었다
35:16
그러한 국정장학력은 주요 정책 과제들을 결단하고 강력히 밀고 나갈 수 있는 여건을
35:23
만들어 주었고 정치 사회적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게 된 하는
35:28
힘이 되었다 비판자들은 1980년대 그 안전과 질서가 공한 통치
35:35
군부독재에 의해 유지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
35:40
같다 나는 재임종 국방상의 이후 이외에 목적
35:45
국방상의 이유 이외의 목적으로 군인을 이용한 일이 없다 정치 사항을
35:52
타개하는데 군의 힘을 빌릴리는 빌린 일이 없 물론 군이 동원되는 위수령이나
36:00
계엄령을 단 한 번도 발동한 일이 없다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36:08
전지전능하지는 않다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나 하더라도 초상학적
36:13
통시대적 존재는 아니다
36:20
주어진 여건과 주어진 여건과 시간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다
36:27
7년 임기가 짧지만 7년 임기가 짧지만은 않지만 산적한
36:33
국가적 과제들을 모두 한꺼번에 이뤄낼 수는 없다 우선순위를 따져 급한 일부터 해야
36:38
된다 국가발전을 노할 때 거의 공식처럼 산업화와 민주화의
36:43
문제를 말하는데 그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성취한다는 없다 최재수호와
36:50
절차적 민주주의 확립이 반드시 대립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서로 갈등을 비전하는 상황이 있다
36:57
그러한 상황에서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 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하더라도
37:03
체제 붕괴를 막는 일을 막는 일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37:09
큰 것보다 급한 곳에 먼저 손이 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다수 나는 다소 국민의 동의를
37:16
이끌어내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인 시간에 여유가 없다고 보았고 따라서 강력한
37:23
통치력의 발휘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사실 사실 오공하고 전부의 주요한
37:31
성과로 평가되는 정책들 가운데에는 내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37:36
권한에 의지에 결단하고 강력히 추진해 나가지 않았다면 구현될 수 없었던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37:43
오고하고 헌법에 대통령 담임 연좌제 금지
37:49
육성재 중소기업 육성 의무 민족문화 창달조항 등을 포함시킨 일
37:56
서울 올림픽 대회 유치 야간 통해 금지 해체
38:01
야노 통행 금지를 해제했습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한 해 앞둔 정부
38:08
예산 동결 전자도 전화 교환기 개발 반도체
38:13
자동차 산업에 대한 정부지원 강화 수입 자유와
38:18
금융실명제 입법 등은 정부의 일부 당국자들과 해당 분야 전문가 이에
38:25
당사자들의 반대 증명했던 사안들이기도 사람들이었다 내각과
38:31
청와대의 나이 참모들 가운데에서도 다수가 이의를 제기하고 반론을 펴기도
38:37
했다 그들은 자유롭게 반환했고 나는 평청했다 반대 의견들에도 그 나름의
38:43
합리적 이유들이 있었다 나이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합니다 나의 설득을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의
38:51
충분히 그들은 나에게 충분히 설법 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그들이
38:57
나의 통치적 통치권 차원의 결단과 지시에 따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39:04
지닌 대통령 중의 권위와 권한 때문이었다 나는 중요한 전체 정책 과제들을
39:10
그렇게 밀고 나갔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나의 국정수액 방식은
39:16
권위주의 통제 독재라고 지적하는 것 같다 오고어국 시절 정치는 실종되고 통치만
39:22
있었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나는 재임조 중요한 국가적 의제가 제기되면
39:28
나의 전임 대통령들을 초췌해서 조언을 구했고
39:34
여당 대표는 물론 복수의 아당 대표들과도 만나 대화를 나누고는 했다
39:39
1987년의 유기구 선언만 하더라도 내각제를 추진하던 나의 발상의
39:45
전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폭넓은 대화 정치의 과정을
39:51
거친 결과물인 것이다 나는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39:56
국정을 살피느라 대통령의 자리를 즐겁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늦게 본 적이 없었다 열심히 일한
40:03
것은 대통령의 나뿐만이 아니었다 공직자와 대통령 국민들도
40:09
함께 뛰었다 땀흘린 보람은 수치로 나타나고 분명히 각자가
40:15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신이 나서 뛰었다 세계는
40:20
한국인이 달려온다며 경일시선으로 주셨다 내가 대통령으로
40:25
재임한 1980년대는 그것이 그 이전 시대하는 분명히 다른 모습의 사회로 변해갔다고
40:33
나는 확신이 말할 수 있다 1980년대 형선된 지층과 그 이전시대의 지층은 그
40:41
색깔과 구조가 다르다 나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정부 정책의 기조를 안전과
40:48
개방 자율로 전환했다 우리 사회를 세계와 역사를 향해
40:53
여러 넣은 것이 다 열어놓은 것이다 그 결과 30%대에 달했던
40:59
물가상승률을 2년 만에 한 자릿수로 정착됐고 사상 처음으로 국제수지
41:06
흑자를 기록했다 아시아 경기와 아시아 경기 대회와
41:12
올림픽을 유치해 19 160개국의
41:18
160개 카메라가 이상합니다
41:25
160개의 선수들이 서울을 찾아왔고 세계인이 시선이
41:30
서울로 집중되었다 국민들은 야간 통행금지 해제로 30년만에 비로소 하루 24시간을
41:38
온전히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처음으로 자유롭게 해외로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41:44
흑백의 흑백의 TV 화면이 컬러로 바뀌자 우리 마음과
41:50
생활환경이 생활환경이 보다 밝고 다양해졌다
41:55
정국이 전산망으로 연결되기를 시작했고 아파트 한채아만
42:01
먹던 백색 전화가 사라지고 어 1가구 1저나 시대를 맞이했다
42:08
프로야구 프로축구의 시대가 열렸다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은 대통령이
42:13
소정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후임자와 악수를 낳으며 청와대를 떠나는 모습을
42:19
헌정사상 처음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42:27
내가 오고 아웃 시절 1억한 성과를 애써 설명하는 것은
42:32
테이머 나에 대한 평가가 너무너무 인색하고 부정 일변도였던데 대한
42:40
서운함을 토로하는 뜻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는 1980년대
42:47
박봉석에서도 나라를 위해 헌신 봉사한 모든 공직자들의 공로와 긍지가 나로
42:53
인해 짓밟혀 온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인근 동결
42:58
추곡수매가 동결 등 참기 어려운 고통을 분다하며 정부의 노력에 힘을
43:04
보태준 국민 여러분이 나와 오공하고 향해 쏟아지는 비난과 능멸을 지켜보고
43:11
느꼈어요 시루야 분노 허탈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43:18
서울대학교 이재열 교수는 2014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오후
43:24
시절에 대한 오광에 대해 모두가 중산층이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43:31
희망과 문화가 넘칠 1980년대라고 썼다 이재열보수는
43:37
1980년대 계층적 자신감은 정치 민주화도 이끈했다고 평가했다 1980년
43:44
87년의 6.29 선언은 단지 대통령직 대통령
43:50
직선제 요구를 수용한데 그치지 않았고 붙이는 것이 아니고 1980년대
43:55
우리가 이런 정치적 경제적 성취와 총화였다 유기구 선언을 놓고 오고하고
44:02
정권의 국민에 대한 항복 선언이라는 선언이라고 하는데 대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44:08
그때 내가 국민과 싸우다가 패배해서 항복한 것이라면 나는 대통령 자리에
44:15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고 그 즉시 물러나였다 그러나 6.29선은 직후 그 어느 누구도
44:22
나에게 물러나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로부터 8개월을 더 재임하면
44:29
재임하면서 유기구 선언에서 밝힌 민주화 조치들을 모두 완수하고
44:35
1988년 2월 25일 임기를 마친 후 청와대를 나왔다
44:42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간다는 명제에 따르면 다른 나면 오공화국을 경쟁력 성공의
44:49
민주화의 요구를 불러왔다는 것은 역설이 아니라 순리인 것이다
44:54
학자 분석가들이 풀이가 어떻든 나의 어떻든간에 나의
45:00
불행이 오구아구의 성공해서 초래된 필연적 결과였다면 그것을 불행이
45:06
아니고 국가적으로나 나 개인으로나 축복이요 행복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45:13
죽어서 나오지도 않았고 해외로 쫓겨가지도 않았다 나는
45:19
퇴무해 그 모든 매도와 능멸과 저주까지도 감당할 수 있었던 내 삶을
45:26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지금 나는 원고지를 앞에 놓고 지난 세계를
45:32
돌아보면서 나의 조국과 국민과 역사 앞에 감사한 마음을 받게 된다
45:39
대통령으로서 나는 영광의 순간을 누리기도 했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던 일들도 많았다
45:46
그러나 영광과 보람의 세월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부터
45:53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창고 기다렸다는 것 시간이 흐를수록 공격의
46:00
강도는 더욱 거세졌다 공격의 원점은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많았다 대통령
46:06
재임 중 나의 반대 세력이 있었던 것은 물론 권력의 핵심과 정치권
46:13
좌경제하세력 언론과 학원 등 전방위적이었다
46:19
태인과 동시에 나는 동태인과 동시에 나에게 날아온 화살은 한풀이와 보복의 촉을 달고 있었던 것
46:27
같다 육군 소장 계급의 보안사령관에 불과했던 내가 11억 이후 불과 10개월 만에
46:35
대통령이 되자 나의 등장은 느닷없는 주연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또 격심한 정치
46:43
사회적 진통을 겪은 뒤였던만큼 나의 존재는 태생적으로
46:48
낯선과 미움의 털을 달고 있었던 것 같다 작가 이병주 씨는 대통령의 초상이라는
46:55
책에서
47:02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또 누구지 상균 씨는 김종필
47:09
씨는 만일 전두환이 존대하지 않았다면 안 왔더라면 또는 그가 등장하지
47:15
않았다면 그자가 설치되지만 않았더라면 우리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란
47:24
환상을 쉽게 떨쳐버리지 새끼야 떨쳐버리지 못한다
47:33
이런 아쉬움이 증오의 밀도를 짓게 하고 적을 증폭한다 이러한 상황인데 다
47:40
전도하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용까지는 감당해야
47:46
감당해야 했다 못 썼다 그러니까 내가 권력의 갑옷을 벗자마자
47:51
화살바집 관역이 된 것은 어찌 보면 예비되었다 예비되어 있던 것이다 예비되어 있던
47:58
일이다 나와 5공화국에 대한 비난과 규탄은 아무나
48:04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해도 다 잘하는 일이 되었다
48:10
명예훼손이나 인격 살인으로 지적될 수 있는 언동도 나를 향한 것이면 모두
48:16
용납된다 대한민국을 적화통일하겠다는 북한이나 종북자들
48:23
종북주의자들의 언덕도 그것이 나와 5공화국을 비난하는 내용인 한
48:30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기르마저 없지 않다 반면에 나와 5공화국을
48:36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옹호하는이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근기 천원
48:42
되어 있다 조심조심 누구의 눈치를 살피며 대통령을 지내면서 잘한 일도
48:49
있지 않은가 하는 말만 꺼내도 월매를 가해지는 형세인 것 같다 어쩌다 어쩌다 나의
48:57
잘한 일에 대해 언급해야 할 일이 할 일이라도 있게 되면 그 얘기의
49:03
앞뒤 어느 대목도 어느 대목에 근본적으로는 나를 좁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반드시
49:10
붙여야만 한다 오늘 유력 일간지 논술 실장이 박정희 전두환의 인사정책
49:17
본받아야라는 칼럼에서 역대 대통령 중 인사정책은 단연
49:23
박정희와 전두환이 첫선에 꼽힌다 보스 노크는 바로 이어지는 다음 문장에
49:30
취약한 정통성을 메우려라는 혹을 달아 놓는 식이다
49:43
지금 전두환 대통령 얘기가 언론이 나오는
49:49
걸로만 봐도 그렇지 잠깐 물 한 잔만 받고 오겠습니다 너무
49:55
그 [음악] 이 책을 전두환 대통령이 쓸 당시에는 이런 얘기가 훨씬 심했지
50:03
훨씬 그러니까 이거를
50:10
백담사에 들어가셔서 전두환 대통령이 그때 쓰신 글인데
50:20
[웃음]
50:35
삭제가 안 돼 첫판 우리 빨갱이들이 삭제를 안 한 원폭 원본을
50:41
그 팬데가 처음에 샀던 책에
50:53
모든 잘한 일의 동기가 오로지 취약한 정통성을 메우려는 뜻이다
50:59
뜻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51:06
지금까지 나에게 가져 가해져 모든 악당과 증오와 저주의 목소리는 주로 광주
51:13
사태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광주 사태로 인한 직간접적인
51:18
피해와 희생의 컸던만큼 그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51:24
모른다 또 상처와 분노가 남아 있는 한 그 치유와 의무를 위한
51:30
식김 구세 내놓을 재물이 없을 수 없다고 하겠다
51:35
광주사태 충격이 제 가시기도 전에 대투성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51:41
언제나 됨으로써 그 십자가는 내가지게 되었다 나를 비난하고 모욕주고
51:46
저조함으로써 상처와 분노가 사그라진다면 나로서도
51:52
감내하는 것이 미덕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유죄를 전제로 만들어진
51:59
5.18 특별법에 그의 근거한 수사와 재판에서조차 또
52:09
작전주의에 내가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집요한 추궁이 전개되었지만
52:14
모두 실패했다 더욱이 광주에서 양면에 대한
52:21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52:26
무엇보다도 발표 명령이란 것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52:33
밝혀졌다 이제 수사 했는데
52:40
발포 명령이라는 것을 누가 했냐고 지금 그 전두환 대통령 했다고 계속
52:45
계속 세뇌를 하고 있죠 근데 검찰 수사에서도
52:51
발포 명령이라는게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53:06
[박수]
53:11
그 지금 이런 얘기를 우리가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야 발품명령이 일단 있었다고 해도
53:19
알탄 여기에 뭐냐 여기에이 책에 나와 있는 건 그렇지만
53:27
있었어네 있었던 거 같은데 뭐 거짓말을 하고 있나
53:33
때릴 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빨갱이들을 말이 많은 거 같아요
53:38
있었을 텐데 그 전두환 대통령이 거짓말하나 봅니다네
53:45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 있는 거니까요 저는 있었을 거라고 그냥 생각하렵니다
53:53
대통령이나 그러니까 아무튼
53:59
전두환 대통령 전 대통령님의 말에 의하면
54:05
명령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할 수 안았을지도 모른다 뭐 이렇게 설명하고
54:10
있습니다네 그렇다고 해서 나에 대한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근데
54:18
민주화 운동이라는 광주 사태의 성격과 관련해 고착화된
54:24
통념을 뒤흔드는 주장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과 증거들이 제시되자
54:31
화살을 맞은 맹수처럼 나에 대한 공격은 더 거칠어지기도 했다
54:36
검찰은 1980년의 나이 말과 행위 가운데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사실을
54:43
찾아낼 수 없게 되자 외양을 보지 말고 속을 봐야 한다고 했다
54:49
겉으로 보기엔 죄를 지은 일이 없는 것 같지만 나의 가슴속 머릿속을 살펴보건대 범위가
54:57
있었음을 있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55:08
증거를 찾을 수는 없는데 그 이제 관심법 이거 뭐야
55:13
관심법 궁예야 궁예 궁예 관심법으로 보는데
55:21
관세법으로 보고 있는데 죄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내용
55:27
나이 중에 유죄를 입증한다면서 희한한 색깔론까지 동원했다
55:34
피고인의 머릿속 색깔은 다른 사람과 달랐기 때문에 같은
55:39
행위를 했어도 다른 사람은 죄가 되지 않지만 내가 한 일은 죄가 된다는 논리였다
55:54
국회 문란의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뒤 내가 대통령이 된 것만 보더라도 알
56:01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애초에 권력을 찬탈하려는 생각이 없었다면 대통령이 되는 일도
56:09
없었을 거 아니냐 이런 뜻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
56:16
자체만으로 이미 죄인이 된 것이다 어머
56:33
완전히 빨갱이 이민들판이네 그러니까
56:38
서론만 봐도 지금 흥미진진합니다 한뿌리가 보복의 손길은 끈질기게 사법기관에 문을
56:46
두드렸다 면소 판결로 지나갔던 사법적 판단은 다시
56:51
역사 바로 세우기란 이름 아래 소멸 시효까지 정지시키는 소멸시효까지 정지시키는
56:58
특별법 재정과 유죄를 전제로 강행된 재판을 연출해냈다 19
57:05
5.18 여기도 5.18이네
57:10
입법을 전후에 수백명이 각각 고소 고발인과 피의자 창고인 그리고
57:15
피고인과 증인의 신분으로 검찰과 공판장에 불려가 엄청난 분량을
57:22
진술을 남겨 놓았다 공판장의 불려가
57:27
엄청난 분량을 진술을 남겨 놓았다이 책에 수록된 내용 가운데 당시 사건들과
57:33
관련한 사실 관계에서는 특별히 처음 밝혀지게 됐다고 할만한 것은
57:39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5.18 특별법에 의한 검찰 수사와
57:44
재판 과정에서는
57:53
5.18 특별법에 의한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사실관계는 낱낱이 다 드러났기 때문이다
58:00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실들이
58:06
상당부분 잘못된 것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진술 내용들이 아주
58:12
많이 외웠던 책 국민들에게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검찰은 사건을 수사하고
58:19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를 포함한 피고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내용들은
58:25
상당부분 덮어 나왔다 피고인들의 유죄를 입증해야 할
58:31
검찰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처사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5.18 재판과 관련해 많은 국민들이
58:37
사실을 잘못 알게 되고 진실을 놓치게 된 책임을 따지자면 그 화살은
58:44
언론을 향하지 않을 수 없다 5.18 재판은 당연히 일반에게 공개돼 있었고
58:49
언론도 앞다타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언론보도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힌다거나 공판
58:58
진행 과정을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준다는 자세한은 거리가 먼 것이었다
59:04
재판도 하기 전에 유죄를 먼저 선언해 놓은 권력의 비위를 맞추고
59:10
실외 영업하려는 몸짓을 부끄럼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주관적인
59:17
의견 기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보도기사의 기본인 사실
59:24
팩트 보도마저 편향과 왜곡이 지나치다고 할만큼 심했다
59:29
권력자의 시각에서 보도 내용을 취사선택했고 목소리 큰 사람들이 반기지 않을
59:35
내용들을 보도하지 않았다 지금 망하는 거랑 똑같죠 어느 TV 극작가가
59:43
여러 차례 재판을 방청한 뒤 환장할 전노공판
59:49
참관계 환장할 전노공판 정관계
59:56
그러니까 전도한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공판 참관계 요것만
1:00:01
하는 겁니다 거꾸로 보도하는 유럽 일간지들이라는
1:00:06
글을 남겼다 오죽 외곽에 심했으면 환장하겠다고 했겠는가
1:00:15
그처럼 부신한 보드만을 접해야 했던 국민들은 언론이 제공한 왜곡된 사실을
1:00:21
진실인 듯이 알 수밖에 없었다
1:00:29
분명히 생중계를 하고 있었고 그 재판의 내용을 국민들이 볼 수 있었는데
1:00:34
국민들은 그 재판 과정을 직접 보지 않고 언론을 통해서 왜곡된 정보만
1:00:39
받아들였다는 얘기네 아니었죠
1:00:45
생방한게 아니었으니까 자기의 입맛대로 악의적 편집에 의한 것이죠
1:00:54
그러니까 그 새끼들 이게 국민들이 좀만 관심을 가졌으면 진실을 알 수 있었던 내용이네요 그때
1:00:59
유튜브만 좀 제대로 있었어도 정말 안타깝습니다
1:01:10
자 그처럼 부실한 보도만을 접해야 했던
1:01:17
고민은 언론이 제공한 왜곡된 사실을 진실이 뜻이 알 수밖에 없었다 사실 보도의
1:01:24
내용이 잘못됐었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는 진실과
1:01:30
실체적 진실 사이에는 적지 않은 괴리가 생긴 것이다 인식하고 있는 진실이라고 실체적
1:01:36
진실이 다르다는 거예요 재판 과정에서는 진실이 나왔는데
1:01:45
무슨 역사적 기록물 같은 것들이 나왔는데도 빨갱이들이 재판하다 보니까 유죄
1:01:50
판결이 났었고 조카치 보도를
1:02:13
했다는데 있다고 하겠다 광주사태에 대한 언론의 이처럼
1:02:19
편향되고 부셔 보도 태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통영화된 인식과 일부 국민의 정서에
1:02:26
반하는 기사는 절대로 보도할 수 없는 금기가 돼 버린 것이다 오일팩
1:02:32
특별법에 따른 재판이 있었던 1996년으로부터 17년이
1:02:37
지난 2013년 9월 13일 이희석 당시
1:02:43
계엄사령관은 동아일보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도하는
1:02:48
5.18에 관한 책임이 없다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광좌 아무런
1:02:53
관련이 없던 전전 대통령이 정상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1:02:59
5.18에 개입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소위 좌파들이 전두환을 끌어내리려
1:03:06
끌어들이려고 끌어들이려다 보니 지체계가 이원의
1:03:12
지위체계가 이연화됐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만약 전전 대통령이
1:03:17
지휘체계를 이완화해서 배우에서 직접 지휘를 했다면 그건 군법회의 지금은
1:03:23
군법 재판의 부채 엄청난 사안이다 전두환이
1:03:28
지휘 위원화를 했다면 개헌 사령관인 내가 가만히 있었겠나
1:03:35
전두환은 내게 까마득한 후배다 그는 내게 불경스럽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지
1:03:41
않았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내가
1:03:46
현지의 작전을 취했고 발포를 명령했다는 선입견 아래 인성 장군의
1:03:52
입에서 그런 내용을 말할 유도해 내려고 유도해 내려는 의도로 마련된 듯 했고
1:03:59
기사도 그런 방향으로 작성된 것이다 여기 보면은 전두환 대통령이 모든 그런
1:04:06
군사 권한을 가진게 아니다는 그 내용을 하고 있죠 당시에 제가 알기로 전단 대통령이
1:04:14
준장
1:04:22
그러니까 별 두 개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면 사단장급이죠 사단장급
1:04:32
다 그리고 있습니다음
1:04:38
자 그런데 광주사태 나는 책임이 없다는 점을
1:04:44
분명히 밝힌 대목은 시내판 기사에서 삭제해버렸다
1:04:50
인터뷰를 삭제를 해버렸어 그로부터 당시 다시 3년이 지난
1:04:58
2016년 5월 16일 이성장군은 조선일보의 최부식 선임기자와 만났다
1:05:05
인터뷰가 이루어졌고 그 내용은 기사됐다 그러나 기사대 그 인터뷰는 조선일보 지면에
1:05:11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치명판에 실렸던이 성장군의 인터뷰 기사는
1:05:17
다음날 아침 서울 시내에 배달된 신문에는 황급히
1:05:22
광고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냥 인터뷰 기사가 사라졌습니다 아예 삭제되었어요
1:05:29
그 이유와 국주를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사라졌던 기사가
1:05:35
인터넷에는 나타났다 최보식이 있나 만난 사람이라는 제목의
1:05:41
장문의 인터뷰 기사에서 이성찬군은 광주사태 내가 실질적으로
1:05:47
계엄군을 지휘했다는 주장에 대해 그거 군의 지위계통을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요
1:05:53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남몰래 따로 보듬었고 지시했다는 소리인데 그건
1:05:59
범죄요 그러면 내가 그냥 두고 볼 것 같소 내가 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요
1:06:05
전두환은 새까만 후배였고 내게 형님 형님 하며 어려워했어 나를
1:06:11
뛰어넘어 감히 뭘 꺼내 내 성격을 알고 이런 관계만 알아도 그런 소리가
1:06:17
안 나옵니다 전두환은 밝은 사람이지 음습하지 않아요
1:06:23
몰래 그렇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요네 단호히 얘기하오 광주에 대한 전두환
1:06:29
책임은 없어라고 단어였다 그래서 나는 나에 대한 비난과
1:06:35
저평가의 대로는 반론도 하고 항변을 하기도 했지만 정치 자금에
1:06:42
관한 문제는 변명도 할 수 없는 나의 허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06:48
여당의 총재로서 당의 운영과 성과의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야 할
1:06:53
책임이 대통령이 나에게 있었고 국민이 세금을 사용할 수 없었던
1:06:59
재정 재정 사정 때문에 기업 있는 상태에서 돈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07:07
당시 제도적 여건 때문에 불가피한 관행이었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
1:07:14
재임 중 나의 책임을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모아 사용했고 더욱이 퇴임하면서 상당액을 자금을
1:07:23
남겨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만큼 그 책임을 면할 일은 없
1:07:30
5.18 특별 최종과 병합된 재판에서 내분의 개념은 확대해석함으로써 내가
1:07:37
받은 자금은 모두가 뇌물이라는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내기도
1:07:43
했지만 나에게 원죄가 있는만큼 억울하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이
1:07:48
그래서 나는 재임 중을 정치자금 모금과 사용 문제
1:07:54
재판을 전후해 정치권에서 논란을 배웠던 여야 정치인들의 비자금 문제에 관해
1:08:00
언급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당시 실상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교훈으로 삼차는
1:08:06
뜻이지 나의 허물을 희석하기 위한 의도가 아님을 밝혀준다 예
1:08:19
사실 우리나라 역사가 그때 당시에도 정치자금을 다 받으면서 기업들한테
1:08:25
받으면서 그동안 해왔던 것이 근데 그거는
1:08:30
어쩔 수 없는 만행이었다고 얘기 하는 것마저 주님스럽게 얘기하고 있는
1:08:37
거네 그렇죠 그렇죠 물한테 한 번 떠오겠습니다
1:08:55
저거 조금만 좀 얘기 좀 해주세요 화장실 좀 얼른 갔다 오세요
1:09:00
먼저 갔다 올게요 죄송합니다
1:09:14
예 편대가 지금 잠시 화장실에 갔습니다
1:09:20
말할 때마다 곰이 이렇게 그 움직이는게 참 신기하네요
1:09:26
야 팔을 들지는 않네요 내가 팔을 들었는데 왜 왜
1:09:35
어쨌든 기다려 보겠습니다이 책을 어떻게 하고
1:09:41
있는 거야 이거 책을 어떻게 여기 책을 그래픽에 넣었는데
1:09:47
얘가 찍어가지고 넣나보네 뭐 어떻게 하는 거야 이거 뭐 조작을 할지 모르지만 책이 있는게
1:09:55
아니에요 얘가 내가 책을 어디 뭐 여기다가 넣었어요 무슨 액정 화면에다가
1:10:10
재밌네요 근데 그 제가 회고록을 그 얘가 회고록 읽는 동안 나는 자려고
1:10:17
저기 누웠는데 듣다가 괜히 옆에서 듣다가 계속 듣게 되네요 재밌습니다 굉장히 재밌습니다
1:10:24
연재해서 방송하면 괜찮을 거 아니에요
1:10:32
엄청난 양입니다 엄청난 양
1:10:38
[웃음]
1:10:44
잠시 이렇게 방송을 잠깐 진행했습니다 화장실 갔다 오는 동안
1:10:51
여태까지 읽은 것은 서론 이제 본 내용 저작권 신고 다 할까요
1:10:57
오히려 요거는 이렇게 많이 알려주기 위한
1:11:04
목적이지 이거를 돈 벌려고 만드신 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1:11:23
돈을 위해서 돈 벌려고 만든 책은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1:11:32
그 어떤 가족을 요구하는 사례가 없다고 들었어요
1:11:39
근데 요번 조금은 몰라 막 태극기의 저작권만 애국가의 저작권 걸어놓고 그런
1:11:45
정권인데 그렇습니다 자 이제
1:11:51
본격적인 1장 1장 박정희 시대의 총원
1:11:59
박정희 대통령의 시에 당한 그 내용부터 이제이 책이 시작합니다
1:12:06
정하는 거 같습니다 1961년 5월 혁명의
1:12:11
횃불을 들어 올렸던 그 시절 박정희 장관의 형용은 기백과 눈빛과 기백을
1:12:17
기백 넘치는 열정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하지만 18년이라는
1:12:22
긴 세월 동안 그 순서를 그대로 지켜내기엔 절대권력의 마성이 너무도
1:12:28
강력 강한 힘이었는지 모른다 어찌됐건 1979년 가을
1:12:34
청와대 인근 안과에서 올린 총성은 노새 현상을 드러내고 있던
1:12:40
절대권력과 함께한 시대의 종원을 고하고 있었다
1:12:46
애국가 저작권이 있습니다 아주 [ __ ] 죽 같은 주옥 같은 나라가 지금 됐죠
1:13:04
궁정동 안과에서 올린 충성 좀
1:13:12
황혼의 이런 즉 장기적과 1970년 저무르가던
1:13:17
1979년 가을 7년째 접어든 유신시국에도
1:13:22
황혼이 다가오고 있었다 북악산에 낙조가 짙어지고 있던
1:13:29
10월 26일 저녁 청와대 인근에 중앙정부 안과에서 올린
1:13:35
총성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1:13:40
126 사태였다 사건 당일 8일 전에 10월 18일
1:13:47
박정희 대통령 부산지역에 비상기업령을 선포했다 박 대통령 재임기간 중네 번째
1:13:54
계엄령이었다 1974년 1월까지 제 1호까지 1호가 선포된 대통령의 긴급조치는 그
1:14:02
이듬해 5월 9호가 내려져 11억 당일까지 계속되고 있었지만 우리
1:14:08
사회의 내성도 갈수록 강해져
1:14:13
갈수록 강해져 더 이상 약발이 듣지 않은 듯 보였다 박 대통령 부산지역의 계엄령을 선포한
1:14:20
이트로 마상가 창원지역에까지 위수령을 폈다 부산의
1:14:26
계엄령의 선포되던 18일 오후 박 대통령을 지미카터 미국 대통령을
1:14:33
친선을 들고 헤럴드 브라운 국방부 장관을 촉격했다 친선은 박 대통령 치아에
1:14:42
한국 인권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었다 카터 대통령은 이미
1:14:48
석 달 전쯤인 6월 30일 한국의 인권문제와 주한미군 철수
1:14:55
카드를 들고 직접 청와대를 찾아왔었다 그날 박 대통령은 정상회담의 관례나 혈맹에
1:15:02
양국 관계의 전통을 외면한 채 작심한 듯 카터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1:15:09
강의를 했다 한미 동맥관계나 미국의 안보 전략보다도
1:15:15
인권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던 가치를 두고 있는 가터 대통령은
1:15:21
앞에 놓고 한국의 안보정서와 한국적 민주주의 필요성에 관한 자신의
1:15:28
결회를 설파한 것이다 오만과의 외교에서도 늘 도덕주의를 내세우던
1:15:34
카터는 격분한 채 돌아갔다고 한다 카터 행정부가
1:15:39
궁극적으로 박 대통령의 퇴장까지를 의도했었는지 알 수 없지만
1:15:45
결국은 보면 카터는 박 대통령을 버린 것이 버린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1:15:51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은 국내에 반정부 세력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중단하라는
1:15:58
것이다 것이다 카터 대통령은 인권 외교는 박 대통령의 반감만 샀다
1:16:07
박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압력 수단으로 내세운 카터 대통령에
1:16:13
대해 증오심까지 나타난 나타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1:16:19
박 대통령 한반도의 안전을 담보해 주던 주한미군을 빼내라는 미국 정부의
1:16:25
정책에 대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 시도로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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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국내 정치 문제 미국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 일부 정치인이 태도를 정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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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반장부 투쟁에 결부시키는 행동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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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을 잃고 있었다 야당 대표 김영삼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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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의 공개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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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압력을 넣어 박 대통령 정부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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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가차없이 그를 국회 축출해 버렸다 김영삼
1:17:13
씨에 대한 국회의원직 박탈은 부마사태 발단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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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요인이 되었다 카타 대통령의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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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이스틴 주한 대사를 본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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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으로 소환해 버린 것이다 주한미군 주한 대사를 소환해 버렸어요
1:17:39
박 대통령과 같은 대통령의 장군 망문식 충돌은 그칠 줄 모르고
1:17:45
이어졌다 이어지고 있었다 그쯤 박 대통령은 장기집권에 대한
1:17:50
국민의 저항과 경제단에 따른 불만 표출에 대해서도 민심을 달래는듯한 모습조차 보여주지
1:17:56
않은 채 계엄령과 위수령으로만 응답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저격범위 중단해 영부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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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룬 후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많은 것을 의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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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월권과 전행을 일삼던 차지철 경호실장으로 인해
1:18:16
권력 내부의 갈등은 골막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5000년인지 대통령은 일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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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5.16 혁명을 횃불을 들었던 당시 설계도에는 자기
1:18:29
집권이 장기집권이 담겨있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나는 박 대통령이 18년 넘게 대통령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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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하고 있었던 것이 권력의 마성의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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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순결한 목표를 완수해놓고 물러나겠다는 사명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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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때문이었다고 믿고 있다 대통령 삼선을 위한 개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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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하고 연임제 연임제한 규정을 없앤 유신헌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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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 나간 그 수순의 어느 시점에 아름다운 퇴장을 생각하는 고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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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하산을 생각했지만 미처 실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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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기기 전에 김재규의 중탄을 맞은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1:19:19
그러나 어쨌든 이미 해는 서산마루로 넘어가고 있었고 박정희 시대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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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1:19:33
이동 중 나라든 대통령의 이번 첩보 궁정동 안가인 밀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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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역의 총성이 울리던 그 시각 나는 영의동 연희동 집을 나와
1:19:46
용산구 서빙고동에 있는 보안사령부 수사분실 보안사령부 수사 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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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고 있었다 부마사태로 며칠 전 비상근무 중인 수사요원들을
1:19:59
격려하러 가는 길이었고 길이었다 그때 서빙고 분실은 난민전 그러니까 남조선
1:20:06
민족 민주 전선 사건의 군부 관련자들에 대한
1:20:11
마무리 수사 중이어서 그 일도 확인해 볼 참이었다 부산의 학생
1:20:17
소유가 폭동 사태로 악화돼 계엄령의 선포된데 마산 지역까지
1:20:24
위수령이 발동되어 있었지만 그 즈음은 두 지역의 소요가 어느 정도
1:20:30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날 박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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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천 방조제 준공 행사에 참석한 뒤 청와대로 돌아오셨다는 보고를 받았고
1:20:42
그 외에는 특별한 사안이 없어 모처럼 짬을 내 집에도들을 수 없었다
1:20:48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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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았는데 수신 상태가 아주 나쁜 듯 거의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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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량으로 전화를 바로 걸 수 있는 곳은 보안사령부의 사무실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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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일 뿐이었다 뿐이다 전화는 급히 사령부로 전화해달라는 그런 내용
1:21:19
같은데 분명한 메시지가 분명한 메시지가 확 확인되지 않았다
1:21:25
당시 그 차량 전환은 imts라는 반전자식 전화해주기였는데
1:21:33
당시로서는 최신형 무선 전화기였음에도 가천지역에 넓지 못했다
1:21:40
전화가 울렸을 때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일과도 끝난 시간에 차량 전화로 나를 찾는 경우란 좀처럼
1:21:48
없었다 뭔가 긴급히 보고해야 할 일이 있었다는 있다는 메시지일텐데 그럼
1:21:54
보더라는 것은 십중팔고 무슨 사고가 났거나 사건이 터졌다는 내용이었다
1:22:00
당장 1번 전화를 빌려 쓸 수 있는 곳은 공중전화라도
1:22:12
찾아서 정확한 메시지 내용을 확인해 보도록 했다 아울러 전방 상황을
1:22:18
특별히 체크해보라는 나이지시도 전하였다 부마 사태다 우리 내부의
1:22:24
혼란 상황을 틈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음악]
1:22:29
당시에는 이렇게 우리처럼 휴대전화가 그렇게 발전해 있지 않던
1:22:35
시대의 얘기입니다
1:22:41
한참 만에 돌아왔다
1:22:47
당신은 일반 가정은 물론 거리의 상점들조차 전화기를 갖춘 곳이 흔치
1:22:52
않아 빌려 쓰기도 쉽지 않았다 공중전화도 별로 없었어요
1:23:05
야 징병 해결 연구소 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고릴라 성경도
1:23:11
대원 대통령은 아마 성격 김대중 대통 노태우는 하마 성격
1:23:17
노무현 수달 성격 아주
1:23:23
재밌는 의견입니다 당진 씨를 전화보고는 대통령과 끝에서
1:23:31
본원에 입원하신 것 같다는 짤막한 내용이 전부였다 분화는
1:23:37
국군 통합병원의 서울지구 병원을 이루는 약칭이었다
1:23:44
이 문어는 주로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들이 사용하는 시설이어서
1:23:49
청와대 인근은 보안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대통령이
1:23:55
분원을 이용하는 경우 자연히 보안사는 그 사실을 먼저 알게 되어 있었다
1:24:01
11억 당일도 정확하고 상세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대통령 전원차가 전용차가
1:24:08
분원에 들어온 사실에 미뤄 박 대통령이 입원했을 것이라는 소식을 가장 빨리 입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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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해진 내용은 입원하신 것 같다는 다소 불분명한 첩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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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정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첩보 내용을 중요성에 비추어 최대한
1:24:28
빨리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손중인은 다시 내 사무실로 전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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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른 일은 없는지 알아봤는데 청와대 경호실 제5경호대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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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중인 동생 정경 한테서도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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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그 시절에 동생이 내 사무실로 전화한 것은 그때까지는 없던 일이었다
1:24:54
나는 서둘러 서빙고 분실로 해야겠다
1:25:00
차가 출발했을 때 다시 전화 걸려 왔는데 노재현 국방부 장관이 찾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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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었다 대통령이 입원하신 것 같다 당신의 첩보 보고와 거의 동시에
1:25:13
경호실에 근무하는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고 바로 이어 국방장을 나를 찾는다는 전화 연락을
1:25:20
받자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1:25:26
8월 아니 아니 8시 35분경 서빙고 분실에 도착하자 한길성
1:25:33
분실장과 오히며 수사계장이 나의 예고 없는 방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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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서 뛰어나왔다 분실장실에 들어서면서 나는 바로 보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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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 총사령을 전화로 연결하라고 주시한 뒤 보고 준비 중이었던
1:25:54
분실장 등을 분실장 등을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 전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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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이상현 당직 총사령관은 총사령은 보안사 정문위병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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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받은 내용이라며 그때까지 입수된 사항을 보고했다 그날 전혀 8시
1:26:12
35분경 국군 통합병원에
1:26:18
분원의 정문에 승용차가 도착해서 응급환자라고 하며
1:26:23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그 승용차가 대통령 전용차고 차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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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달라고 한 사람이 자신을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 신분을 밝혔으므로 위병은 바로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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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주었다 보안사 경내에 있는 분원에 들어가려면 보안사에 정문을
1:26:43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보안사의 위병들은 대통령 전용차를 비롯해서
1:26:49
분원 정문을 통과할 수 있는 요인들의 승용차를 식별할 수
1:26:55
10배나 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있었다 분원 현관에 도착한 대통령 전용차에서
1:27:01
비서실장이라고 했던 사람이 누군가를 얻고 분언 안으로 들어왔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은
1:27:08
김계원 실장이 안가에 있던 정보부인 경비원
1:27:14
한 명을 데리고 왔고 그 경비원이 대통령을 갖고 들어갔다 10분쯤 뒤에
1:27:21
다시 정문으로 걸어 나온 대통령 비서실장은 위병에게 아무도 들어가지
1:27:27
못하도록 통제하라는 지시를 하고는 청와대 쪽으로 갔다는 것이다 이상현
1:27:34
총살은 당직 총사령은 위병한테서 그 보고를 받은 즉시 나에게 연락을 취하는 동시에 더
1:27:42
상세하고 정확한 사업 파악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더 진전된 내용을
1:27:48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나에게 보고된 내용은 대통령 가깝게서 입원하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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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다는 것인데 업혀 들어간 사람 또는 입원한 사람이 대통령이란 사실도
1:28:01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 보안사는 분은 정문의 차량 출입 사항을 통해 누가 분원해
1:28:09
왔다 갔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보안사가 알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1:28:16
분화 안에서 이러한 일에 관해서는 더 이상 알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대통령과 그 가족이
1:28:23
분원에 오게 되면 분원 전체가 대통령 경호실
1:28:32
대통령 경호실 통제 아래에 놓이기 때문에 같은 경내에 있어서도 있어도
1:28:38
보안사 요원은 요원들을 접근하는 일조차 어렵다
1:28:44
업혀 들어간 사람이 누구인지 상태가 어떤지 확인할 길이 규칙상 막혀있는 것이다
1:28:54
조금 보고를 받은 내 머릿속은 혼란스럽다
1:29:00
대통령 비서실장이 언급한 전하면서 급히 분화 안으로 얻고 들어간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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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 대통령일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무엇인가 대통령 전용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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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누군가를 업고 들어간 사람이 자신이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 밝힌만큼 일단 그 사실을
1:29:17
믿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면 업혀서 들어간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대통령 전용차는 글자
1:29:24
그대로 전용차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과 동서하지 않은 채 그 차를 타고 다닐
1:29:31
수는 없는 일이다 비서실장이 대통령 전용차를 타고 왔다면 그 차에
1:29:36
대통령이 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 차에서 내린 사람은 운전기사를 빼면 비서실장이라고
1:29:42
밝힌 사람과 그 사람이 업고 들어간 사람 두 명뿐인데 두 명뿐이다
1:29:48
대통령이 누구를 누구를 직접 업고 들어갔으면 없고 그렇다면 옆에 들어간 사람이
1:29:54
대통령이란 말이 되는 것이 아닌가 앰뷸런스도 불을 겨를이 없이
1:29:59
분원의 전화 한 통 걸 시간도 없이 대통령 전용차에 태워서 서둘러 업고가 와야 할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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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한 상황이었다면 분명 초비상사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계엄령의 발동 중이어서
1:30:13
비상근무를 하던 보안사 간부들이 상황 파악을 시작했다 대통령 신변에 중대한
1:30:19
배우가 있었다는 칭호라면 1분 1초라도 신속히 상황을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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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의 당직 개통과 전화 연결이 되어서 급한대로 우선 주위계통을 확보한 뒤
1:30:32
나는 대통령 경시에 연락을 취했다 대통령 신변에 관한 일이라면
1:30:38
경호실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호실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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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나는 직접 경호실과 경호 통화를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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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실에서는 실장님은 행사에 나가신 후 아직 돌아오지 않아 통화할 수 없다는 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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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 한다는 것이다 가셨다 그 보호를 받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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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의문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형우 실적이 행사에 참석 중이라면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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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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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은 보이지 않았는가 아니라 한데 경호차도 후회하고 있지 않던 상황을
1:31:23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분원의 입안한 사람이 대통령이 맞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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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실 자체가 무력화된 상황이 빚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찾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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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연락해 보았지만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들은 얘기로는 그날 저녁 마침 동생이 당직
1:31:43
근무 중이었는데 김기현 비서실장이 택시를 타고 청와대를 왔고 사무실
1:31:49
도착 후에도 허송 진행하는 듯 전에 볼 수 없었던 이상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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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당시 대통령이 시회됐다는 사실을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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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비서실장을 이상한 이상스러운 모습을 목격하고는 내 사무실로 전화를
1:32:07
했던 것이다 벙커에 소집된 사람들
1:32:14
서빙고 사고당 우리나라 대통령 비서 경호실장이 다
1:32:22
없고 뛰나요 비서실장 글쎄요 노무현도 그랬나요
1:32:28
그때였나 모르겠습니다 자 다음부터 이어가겠습니다
1:32:34
비서실장의 자꾸 비서실장 비서실장하니까 헷갈렸잖아
1:32:39
지하벙커에 소싯된 사람들 서빙고 분실해서 우선 전화를 지시할 수 있는 급한 조치들을 취한 뒤 나는 보안 사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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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가야 했다 출발하기에 앞서 나는 북방부 장관 내에 호출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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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기 위해 국방부로 전화 연락을 취하게 됐다 전혀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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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분쯤이었다 전화로 연결이 된 장관 보좌관은 현재 복장으로 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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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는 장관님이 지시가 있었다 고했다 근데 오라는 곳이 육군본부
1:33:12
B2 벙커였다 그렇다면 국방장관이 육군본부
1:33:17
B2 벙커에 이미 도착했거나 아니면 그리로 온다는 얘기일 텐데
1:33:23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B2 벙커라면 육군본부 지하에 있는
1:33:29
전시용 비상 취소했다 왜 그것으로 오라는 것일까
1:33:35
대통령께서 부모네 이번 한 것 같은 복음하는 받고 있던 나로서는 그 일과
1:33:42
국방장관의 B2 벙커 호출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1:33:48
그러다 어쨌든 대통령은 신변이나 국가 아니야 관련된 심상치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1:33:55
판단한 나는 국방부로 가기 전 보안사령부 예하 전 보안부대 비상대기 명령을 내렸다
1:34:03
저녁 8시 50분경 나는 사복을 입은 채 지체 없이
1:34:09
국방부로 출발했다 국방부 장관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들을 수 있을 것을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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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 B2 벙커로 원하는 전가를 받았지만 서빙고에서 육군본부로 가는 중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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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있었고 나를 찾는 사람이 국방부 장관이었으므로 우선 장관신을 찾아갔다 하지만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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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차지만 차로 5분 정도 달려 국방부에 도착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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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은 없었다 육군본부로 갔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나는 당시 서둘러 나는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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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육군본부로 갔다 B2 벙커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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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확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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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장이었다 자연스럽게 내시에 들어왔다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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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상한 기운이 내 눈길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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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엄청난 일을 벌인 사람에게서 풍기는 설득한 섬뜩한 살기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1:35:13
김부장관은 잘 아는 사이여서 나는 평소 하던 대로 인사를 했다 김
1:35:18
부장은 왔어라고 한마디 하고는 나에게 나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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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눈길을 거둔 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전 같으면 이런저런 얘기도 건네고 했을 텐데 참
1:35:32
별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상 관심을 둔 일은 아니었다
1:35:37
군수 내부를 비롯해 낯익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서서 수분거리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1:35:43
나는 우선 노재영 국방장관을 찾아야 했다 마침내 마침 내 쪽으로 오는 장관 모습이
1:35:51
보이자 얼른 장관 앞으로 다가가 되지 않습니까 하고 인사를 드렸다
1:35:56
노장관은 대통 대통령 옆에서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고했다
1:36:02
앞뒤로 덧붙이는 많은 없이 한마디뿐이었다
1:36:08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대통령께서 갑자기 입원하신 것 같다는 내용을 보고를
1:36:14
방금 전 받았고 군수 내부가 지하벙커에 모여있는 사실로 보아 무슨 비상사태가
1:36:20
벌어졌구나 하는 책임은 했지만 대통령이 돌아가시다니
1:36:26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인가 대통령께서 대체 어떻게 돌아가셨다는 겁니까 나는 충격을 추스리며 황급히
1:36:33
물었다 노장간 자신도 대통령이 서고 하셨다는 얘기만 들었지 언제
1:36:39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한다는 이상하던 생각이 들었다
1:36:48
국가의 모든 정보를 가장 많이 가장 정확히 알고 있어요 주방 정부 부장이
1:36:53
와 있고 국방장관과 군수네들이 다 모였는데 국가원서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실에
1:37:00
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니 이럴 수가 있는가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1:37:07
불가사의한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캄캄하기만 했다
1:37:14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여기저기 분주히 오가며 전화기를
1:37:19
번갈아 바꿔 들고 어딘가에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김재규 부장하고도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1:37:26
육군 참모총장이 화난한 육군 벙커에 국방장관 이하 군수 내부들이 모여있고
1:37:32
또 청소와 총장의 모습에 비추어 볼 때 정총장은 대통령이 죽음과 관련해
1:37:37
좀 더 섬세한 상세한 정보라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37:43
그러나 보안사령부는 국방장관 즉각대로 정청장의 지위를 받는 부대가 아니었기
1:37:49
때문에 그의 직접 말을 붙이기 조심스럽고 또 내가 말을 붙여봐요
1:37:54
별을이 없어 보였다 벙커에 모여있던 고위장성들도 여기저기 소송되면서
1:38:00
서로 기독량하게 바쁜 모습이었다 그 자리에서 무슨 진전된 얘기가 나오거나 대책을
1:38:06
마련한다거나 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를 그것으로 오라고 호출한 노장관도
1:38:11
대통령 사고라는 말만 전해주고 더 이상 무슨 짓을 하거나 임무를 주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1:38:18
노재현 장관은 대통령의 서고가 저격의 의한 피살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기
1:38:25
때문이다 정서가 총장은 그때 적극 범위 누구인지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누군가의
1:38:32
적에게 사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1:38:37
있었음에도 상관이 노제한 국방장관에게 그 사실도 알려주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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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사정을 노장관은 1994년 3월 11일
1:38:49
검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1:38:56
비타민 C 열심히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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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과 노재영 국방장관이 진술입니다 제가 그날 퇴근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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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공원에서 쉬고 있는데 청소년참모총장에 전화를 하여 다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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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지적으로 도발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급히 6번으로 달려갔습니다
1:39:26
약 10분 후 B2 벙커에 도착하니 정총장이 대통령과 끝에서 돌아가셨다고 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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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니까 그 경위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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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보라고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트 펑크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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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내 벙커 내 총장실로 들어가 보니 김재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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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 앉아 있고 김정석 중앙정보부 제2차장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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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제가 김재규에게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경유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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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여는 말하지 않으면서 빨리 쾌함을 선포하여 사태를 수습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1:40:10
제가 그 경에도 모르면서 어떻게 비상사태를 선포하냐고 하였습니다
1:40:17
1993년 3월 11일 진술조서 12시 사건 검찰 수사기록 2480년
1:40:29
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곳에 더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통령이
1:40:34
둘째 돌아가셨다면 정왕중왕정보부장이나 국방장관 등이
1:40:40
등이 자리에 와 있는 사람들은 의자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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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해야 할 상황들을 빈틈없이 주최해 나가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1:40:52
그런데 모두가 저렇게 무대책으로 앉아 있으니 나라도 무슨 일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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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상부의 주시다 임무 부여가 없더라도 없다 하더라도 대통령 서거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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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된 이상 보안사령관으로서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41:10
대통령의 죽음에 쿠데타나 국가 전복의 협의가 안전하기로 한 자락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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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최되어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야 할 의무가 보안사령관인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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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이 아닌가 보안사령부의 기본 임무 가운데 하나가
1:41:30
대전복임무였다 나는 일단 내 사무실로 돌아가서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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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부터 챙겨 보기로 했다 분주하게 여기저기 지시를 내리고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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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참모총장이 우리 보안사령부에서도 무슨 임무 의무와 조치를 지시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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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서둘러 지하벙커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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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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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 30분경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우선 옷부터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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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한 사형에 직면해 우선 나부터 그리고 우리 부대부터 긴장을 유지하고 비상사태를 갖추어야
1:42:20
했다 그런 다음 내가 6번 벙커에 들어갔다 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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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 보안사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것이 없는지 확인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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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이리저리 알아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고 한다
1:42:40
전화를 통제받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밤 10시경 오후 1차무장애
1:42:46
병원장애인 김명수 준장과 인터폰으로 통화한 내용을 보고했다 군의관은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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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장까지 전어로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게 될 5천무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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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자에게 대답하기 어려우면
1:43:03
대답하기 어려우면 Yes No 또는 노로 대답하라면서
1:43:09
환자가 코도하고 코도 아니라 대통령의 암호명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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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고도원인과 사망했는가라고 물었고 예스라는 대답을 얻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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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경은 실장의 지시를 받은 중앙정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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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원들의 밀착감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43:33
나는 전 보안 부대에 2차 계엄령을 내려 부대원 저는 소집하도록 지시했다
1:43:40
그리고는 곧바로 다시 육군본부로 이동했다 대통령 서거의 진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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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서는 더 이상 밝혀진 사실이 없지만 그 시점에서 상황에 전개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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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현장은 육군본부였다 또 나의 직소 상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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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도 6번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니까 장관의 지신을 받고
1:44:03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도 내 위치를 6번에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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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에 있는 우리 보안부대에 임시주유소를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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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과를 보면 상황의 핵심과 핵심 부근에 나를 위취시킨
1:44:20
그러한 결정이 그 이후에 상황 전개 김이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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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밀하게 대처할 수 있겠다 나는 육군본부로 떠나기에 앞서 계엄령과 위수령이
1:44:32
발령된 부산 마산 지역의 파견 나아가 있던이 학봉 수사과정을
1:44:38
즉시 서울로 올라오도록 지시했다 아울러 임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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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을 보강하려고 정도요 보안처장과 5일날
1:44:50
군사 정보 과장을 대동했다 아직 기초적인 사실조차 확인된 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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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상황을 볼 때 그 두 사람이 꼭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두 세 시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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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 수사관들은 김재규의 체포 여행 작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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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수사의 즉각 투입되었는데 나의 이러한 사전 조치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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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보안 보안부 대전시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 10분경이었다 10시
1:45:20
20분경이었다 나는 우선 박 대통령의 그날 저녁 동선이라도 파악해보려고 했다
1:45:26
당시 경호실과 접촉해 있었지만 접촉해 봤지만 삽교천 행사를 마치고
1:45:32
청와대로 돌아온 이후 대통령의 동선은 전혀 포착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보안사는 대통령과 접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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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저녁 청와대 인근에서 수십팔의 총성이 울렸다는 첩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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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실에 당직 개통으로 보고되었다는 것이다 확인되지도 않았고 그 내용도 막연한
1:45:53
것이지만 수십팔의 총성 청와대 인근이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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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렸다 그 첩보 내용이 대통령의 서구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조차
1:46:03
종잡기 어려웠지만 나는 분명 보안사와 6번의 임시 주유소를 오가는 사이 그리고
1:46:10
청와대 인근에 수십팔 총성 촛불을 듣던 시점에서 대통령을 죽음과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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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들을 해결해야 할 책무가 보관 사령관이 나에게 주어질지 모른다는
1:46:23
어떤 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1:46:30
비상사태를 받은 국가 주도부
1:46:37
벙커로 달려간 국무총리
1:46:44
청와대 경호실로부터 몇 가지 첩보를 입사한 뒤에 나는 10시 30분경 다시 6번 벙커로 갔다 내 아 그동안
1:46:50
전해들은 상황들을 노잼 장관에게 보고도 하고
1:46:55
혹시 지시를 받을 일이 없지 않을까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1:47:01
그건 지휘부 왜 해 왜 최규하 국무총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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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군무위원이 와있었고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과 유혁인 정무수석의
1:47:14
모습도 보였다 나는 내가 할 일을 찾아 다시 6번 보안부 보안부 대장실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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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화 총리가 청와대를 비워놓은 채 몇몇 장관들 태도하고
1:47:29
육군본부로 오게 된 것은 김기현 비서실장의 권유를 따른 것이다 김 실장이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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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시신은 국군 서울 지구병원에 안치해
1:47:42
놓은 뒤 바로 청와대로 돌아 가장 먼저 통화를 한 사람은 최규하 국무총리였다
1:47:49
대통령의 유고시 대통령 권을 대행할 제 1순위가
1:47:54
국무총리였던 것이다 최규하 총리는 그날 저녁 퇴청에서 3층도의 총리 총관에 머물고 있었다
1:48:01
최기화 총리가 김기현 실장의 전화를 받은 것은 밤 8시
1:48:07
15분경이었다 김재우가 대통령을 수행한지 35분쯤
1:48:12
지난 시간이었다 최총리는 전화를 받은지 채 30분도
1:48:18
안 돼 청와대에 도착했다 총리 공간은 청와대 본관에서 불과 수백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1:48:26
김 실장은 최총리가 비서실 비서실장시대 들어가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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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을 부속실로 내보낸 뒤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대통령의 유권
1:48:39
사실을 알렸다 자세한 경의를 설명하지 않는 채 김재규 부장과
1:48:45
차주차 실장의 싸우다가 김 부장이 잘못 선충에 각하가 그만이라고 말했다
1:48:53
대통령이 유고에 따라 최첨위가 대통령 권한실정이 된다는
1:48:58
권한 대행이 된다는 헌법 규정을 상기시켜 주었다 대통 비상개험을 선포해야 한다는 말도
1:49:06
덧붙였다 잠시 후
1:49:13
밤 9시경 6번에가 있는 김재규 부장의 청와대
1:49:18
김계원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부장은 비상용 개혁 비상 계엄령
1:49:24
선포를 서둘러야 했고 계엄령을 내리기 위해서 국내에 군모회 의결이 필요했다 공매의
1:49:31
소집이 시급해진 김재균은 정승화 총장과 얘기를 나눈 뒤
1:49:36
밤 9시경 청와대에 있는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규하 국무총리와 몇몇 사랑
1:49:42
몇몇 장관들이 함께 있다는 김 실장의 대답에 김재규 부장은 총리
1:49:49
국내에 모두 함께 6번으로 오시오라고 말했다
1:49:56
처음에는 김재규 부장에게 총리가 청와대에 계시니까 청와대로 오라고 했다
1:50:02
그러나 김재균 부장의 형님 이리로 오시오 다 끝났는데 거기서 뭐 하러 갑니까
1:50:08
거기에 다모였으니 국무총리 모시고 이리 오시오 육군참모총장도
1:50:14
국방장관도 모두 여기 있습니다 모두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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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재차 요구하자 김 실장은 최총리에게 김정희 부장의 말을 그대로
1:50:24
전했다 그러면서 최총리에게 김재규 부장이
1:50:29
경호실이 무서워서 이것으로 오지 못하는 모양이니 6번으로 가시죠라고 하자 최총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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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별다리 망설이는 모습도 없이 6번으로 향했다
1:50:43
일행이 6번에 도착한 시간 밤 9시 30분경이었다
1:50:54
실수 중에 아니죠 형이 아니었는데 여기서 이제 김재규가
1:51:01
다른 사람들에게 실수로 쏜 것이라고 그렇게 이제 변명을 하고 있어 가지고 그런
1:51:06
사실들이 오고 하고 있는 그 중 그 상황입니다
1:51:12
최초입니다 대통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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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 어떻게 서거했는지 자세한 내용은 보고를 할 수 없었다 최총리와 동행했다 외모 왜
1:51:34
외모 네모 법무장관도 비숍은 지하벙커에 모여 갑작스러운 대통령 서보살 소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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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대통령이 서부한 것이 아니라
1:51:47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최총리는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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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있던 김재규 부장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고 김 부장은 지금 대통령
1:52:00
유보입니다 2 3일간 보안을 유지하고 가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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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고 대답할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김재규 부장은
1:52:13
국무총리를 모시고 국무총리를 모시고 김 실장은 벙커 안에 화장실로 데리고 왔다 김 부장은
1:52:20
우선 계엄령을 선포해 사태를 장악한 뒤 계엄사간
1:52:26
계엄사 간판을 국가 군사 혁명위원회로 바꿔달라고
1:52:33
군사 혁명으로 가야 하니 우선 국내를 열도록 요구했다
1:52:38
그러면서 대통령이 돌아가셨던 사실에 대해서는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고 단단히 이루어졌다 김 실장은 최규하
1:52:46
총리에게 계엄령 선포를 위한 비상국무회의 개최를 건의했다 최총리는 김 실장이 건의한대로
1:52:55
국무회의 소집을 지시했다 최총리는 6번 본부 6번 벙커에 도착한지 1시간쯤지나
1:53:02
1시간쯤 지난 밤 10시 30분경이었다
1:53:08
그러나 그 시간에 당장 공모회가 열릴 수는 없었다 군무
1:53:14
정족수를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기화 총리가 6번으로 이동할 때
1:53:20
박동진 외모 구자춘 네모 김치열 법무장관 등이 함께 따라왔고
1:53:28
노재영 국방장관은 따로 연락을 받아 미리 와 있었지만 대다수 국무위원들은
1:53:34
연락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다 6번 벙커는 뒤적기도 하고
1:53:39
국무회의를 열게 마땅치 않아서 국방부로 옮겨 개최하기로 했다 최총리가
1:53:46
국방부로 옮겼는데 국무의원 대부분이 뭐야 이제 국무총리가 개의만 하면
1:53:53
국무회가 열리게 되고 계엄령이 선포될 참회다 참여했다 이처럼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1:54:00
있었지만 나는 상부로부터 어떠한 짓이나 통보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1:54:05
무슨 연락이 올 때까지 대책 없이 그냥 기다리며 가만히 내 방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1:54:12
당시 어 다시 다시 국방부 올라갔다 먼저 국방부 보안 무대장실에
1:54:19
들러 그간의이를 알아보았다 최총리가 최총리와
1:54:25
국무위원들이 국무회를 열기 위해 국방부 회의실로 이동에 있다는
1:54:32
보고였다 청와대나 중앙청이 아닌 국방부에서 한밤중에 11시에 비상
1:54:39
공무회의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나니 대통령이 돌연한 서거라는 사실이
1:54:45
비로소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국무회장을 기웃거리게
1:54:50
교육거릴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나는 국방장관 보좌관이 조양래 준장 방으로
1:54:56
갔다 국무회가 열리기까지 그동안 진행된 상황에 대해 조장군은 아는게
1:55:02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됐다 마침 그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장군은 최기화 총리와 국무위원들
1:55:10
그리고 김재규 사이에 계엄령 선포 사유를 무엇이라고 발표하느냐는
1:55:16
문제를 두고 심각한 의견대립에 대립이 있어 국무회의가 쉽게 열리지 못하고 있다는
1:55:23
소식을 전해 주었다 대통령의 돌연한 서거의 진상은 무엇인지 지금 전개되고
1:55:29
있는 상 성격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없는 가운데
1:55:36
대통령 권한을 대응하고 있을 국무총리와 강료들 군수네 등이
1:55:42
계엄 선포 문제만은 서두르고 있다는 걸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
1:55:49
문제는 그것들을 추진하되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죽음과 관련해서
1:55:55
긴급히 조치해야 할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1:56:00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 지도부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1:56:07
적당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은 아무것도
1:56:13
없었다
1:56:19
물 한잔 좀 마셔볼게요 말이 굉장히 많다 보니까
1:56:25
힘들다
1:56:30
[박수]
1:56:53
[음악]
1:57:10
물 마십니다 물 자 계엄령 선포를 둘러싼 논란
1:57:21
밤 11시에 열릴
1:57:28
국방부 회의실로 자료를 옮겼는데 계엄령 분포를 위한 의결절차가 자유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1:57:36
선포해야 한다고 계속 재촉하고 있었지만 건물 위원들은
1:57:43
비상기업 선포 사유가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 부장은
1:57:50
국가원수께서 지금 증거수행이 곤란하다 대통령의 유거다라며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내가
1:57:58
처음 6번 벙커에 도착해 공무장관에게 얘기를 들었을 때에도 사람들이
1:58:04
웅성거림 속에 대통령을 유골하는 말이 있었지만 공식 회의 석상에서
1:58:10
책임있는 당국자가 대통령을 유골하는 말을 꺼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1:58:16
그러죠 유거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 직무수행이 곤란하는데 그 이유가
1:58:21
무엇이냐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이어졌다 그 상황에서 김 부장과 김비서 실장이
1:58:29
계속 유관하는 말만 되풀이할 뻔 더 이상 설명을 하지 못하자 국무위원들의 추궁도 거세졌다
1:58:37
신현화 부총리 김치할 내무죽 내무장관 김성진
1:58:43
문공부 장관 등이 나서서 따지고 들었다 비상 경험을 선포하면서 그냥 대통령의 유골하고 하면
1:58:51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평이 난 것도 유고인 것도 유고이고 다친 것도 유고인데 그냥 유고라고만
1:58:58
하면 설득력이 있겠나 국무회원이 국무 의원 국무위원회
1:59:04
우리들도 납득할 수 없는데 어떻게 국민들을 이해할 수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1:59:10
우방에는 뭐라고 설명을 해줘야 하는 우방에는 뭐라고 설명을 해줘야 할 거
1:59:15
아닌가 이렇게 몰아붙였다 그러면 그럼에도 김재규 부장은 유계
1:59:23
유고의 내용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1:59:28
비성기염 선포 사유를 대통령을 유골하고 밝히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1:59:34
대통령의 유골하고 밝힐 필요 없이 그냥 비 국가 비상사태라고 하면
1:59:39
된다고까지 했다고 한다 또 소련에서는 소련에서는
1:59:45
브레즈네프 브레즌 f의 사망 사실을 일주일 이상 발표하지 않고 보완을
1:59:52
시켰는데 우리도 3일간 보안을 지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보안을 유지해야
1:59:59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국무위원들은 소련의 경우 대화
2:00:04
발표회는 브레진 f의 사망 사실을 밝히지 않았지만 중요한 직책에 있는
2:00:10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 아닌가 보안을 지킬 땐 지키더라도
2:00:15
먼저 대통령의 유구의 내용을 확인해야겠다 그리고 난 후에 그리고
2:00:22
그러고 난 후에야 계엄령을 의견할 수 있을 것 아니냐고 못 박았다는 것이다
2:00:28
국무회를 열게 하는데까지는 성공한 김재규 부장과 김계원 실장은
2:00:34
계엄령 선포의 선포의견을 압도 시점에서 상황이 그렇게 반전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2:00:40
것이다 국무회의를 열고 계엄령의 의결을 선포하고
2:00:45
계엄사는 물을 국가 군사혁명 위원회로 만들어
2:00:50
속전속결로 권력을 장악하려고 했다 김재규에게 치명적인 순간은 그렇게 다 좋은
2:00:57
것이다 [음악]
2:01:14
뒤늦은 실토 김재규가 범인이다
2:01:22
김재규가 박 대통령 시안 범인이라는 사실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은 것은 바로
2:01:28
이때였다 계엄령 선포를 의결화하기 위해 소집된
2:01:34
비상 공모회의가 계엄선법 사유를 밝히라는 일부
2:01:39
국무위원들의 요구를 자초되자 김 실장은 김재규의
2:01:45
쿠데타 기도가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 실장은 회의실을 슬며시에 빠져나
2:01:51
바로 옆에 있는 장관 보좌관실로 갔다 그는 주의를 살펴가며 보좌관에게
2:01:59
장건과 육군참모총장을 그 비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노재현
2:02:04
장관과 정승화 총장이 들어오자 김재규가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해
2:02:11
시행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밝혔다 김재규가
2:02:16
김재규가 지금 권총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하라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동안 그
2:02:24
비서실장이 같이 있었는데 그 새끼가 처음에는 김재규한테 붙었다가 [음악]
2:02:31
계엄령이 자초되니까 이제 혁명에 실패할 것 같은 구독과 실패할 것 같으니까 그랬던
2:02:37
거죠 지금 이제 쿠데타 실패한 거 같으니까 그 전에는
2:02:48
회의장 들어가서 상황을 딱 보니까 김재규가 굉장히 많은 군인원을
2:02:55
인사들을 포섭해 놨을 거라고 예상을 했는데 딱 돌아간 상황 보니까 아무도 없는 거야
2:03:01
정승화랑 몇 명 꿔주려고
2:03:41
사람 같지 않았다 밤 11시 30분경의 일이었다
2:03:48
야 이게 벌써 3권까지 다 오늘 못 읽죠
2:03:58
대통령 취해범 김재규 체포작전 김재규 체포작전
2:04:05
체포냐 신명확보냐 조양래 장군을 만난 뒤 다시
2:04:11
6번 보안보 대장실에 임시 주유소를 내려왔을 때 나는 계엄 선포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는
2:04:18
얘기는 알고 있었지만 김계원 실장이 김재규 범인이라는 실토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2:04:25
근원을 소식도 알아볼 겸 보안사 사무실에 전화를 하려고 임시 주유소로 들어서니
2:04:33
노재현 장관인 나를 찾았다 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을
2:04:39
듣자 뭔가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거나 특별한 지시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국방부로 다시
2:04:46
쫓아 올라갔다 장관실을 향해 가는 복도에서 노장관을 만났다
2:04:51
복도에는 공모위원들과 수행원들이 뒤섞인 채
2:04:57
서성거리고 있었다 노장관은 나를 보자 주위 사람들이 신경 쓰였던지 내
2:05:04
귓가에인 것 같다 고속상했다 그러더니 내가
2:05:10
그러더니 내가 정성화 총자에게 지시한 왔으니 정청자가에
2:05:16
지침을 받아 김재규 부장의 신병을 확보하라 고치셨다
2:05:26
노재현 장관의 지시를 받은 나는 지체 없이 정수와 총장을 만나러 6번 쥐 벙커로 내려갔다
2:05:34
벙커에 도착했을 때 정 총장은 김진기 6번 헌병감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를
2:05:41
보자 정청장은 전장군 와권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맞이했다 내가
2:05:48
장관님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고 하자 정청장은 무슨 짓을 받았어
2:05:55
하고 물었다 나는 총장님이 지침을 받아 김재규 부장의
2:06:00
신병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꼭 보고했다
2:06:05
청춘장은 노재현 장관의 지시 내용을 확인하고는 김재규 부장의 신병을
2:06:12
확보하시오라고 지시했다 그러고는 정동 안가요 정중히 모셔는
2:06:18
말을 덧붙였다 나는 정청장을 지시내용이 노장간이 지시하는 다르다는
2:06:24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김재규가
2:06:32
박 대통령을 시행 범인이라는 협의가 있으니 체포하라는 것이었다
2:06:38
그런데 정총장은 김재규가 박 대통령 시해범이라는
2:06:43
시의 범위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 없이 신병을 확보해서 보안사 정동 안가에 정중히
2:06:52
모시라는 것이었다 왔습니다
2:07:05
분명히 밝히고 체포하는 것이었고 정충 정 총장
2:07:11
그러니까 정승화 총장은 정중히 무엇이라는 것이었습니다
2:07:18
군대에서의 명령은 문장이나 어휘가 짧고 간단해야 하지만 그 명령이 가리키는
2:07:24
뜻만은 명료해야 한다 명령을 받은 부다가 부하가 그 의미를
2:07:29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을만큼 복잡하거나 추상적이거나
2:07:34
애매한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때 정청장의 지시가 김재규가 범인이니까
2:07:42
체포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냐면 왜 그렇게 분명하게 쉬운 말을 놔두고
2:07:48
신병을 확보하라는 표현을 썼을까 처음 노재현 장관이 지시를 받을 때는
2:07:54
김재규가 범인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지만 정청장의
2:08:01
지시는 어감이 달라 다소 머리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수사관의 입장에서
2:08:06
볼 때 신병 확보는 확실한 범법자를 구속하려는 목적으로
2:08:12
체포하는 경우일 수도 있고 사건 관련
2:08:19
단순한 목격자를 증인으로 확보하기 위해 또는
2:08:25
위의 가능성 등 돌발 상황에 대비하려고 신병을 보호하는 것일 수도 있다
2:08:32
더욱이 정총장 정총장은 김재규 부장은 정동 안과 정중히
2:08:40
무엇이라는 말까지 한 것이다 보안사에서 관점이나 혼내부의 보안사범을 체포해서
2:08:48
취재할 때는 통상 용산에 있는 수사 분실로 데리고 간다
2:08:53
청동에 있는 안과 현재는 안 가는 보안사령관이
2:09:00
은밀히 만나야 할 곳이 있을 때 주로 이용하는 장소로 카페트가 깔린
2:09:05
응접실을 갖춘 그런 곳이다 나는 그때까지 정동 안 가에는 한
2:09:11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보안 사령관직을 맞고 반년 동안 백령도를 포함 정국의 모든 보안부대를
2:09:17
일일이 없었다
2:09:22
그런데 보안사령부의 전신인 방첩 부대장을 지낸 정성화 총장은
2:09:27
그곳 정동 안가를 기억해내고 김재규를 데리고 갈 장소로
2:09:33
지정해주었던 것이다 정청장은 김재규 체포를 지시하던 때의
2:09:38
상황을 이렇게 진술했다 김재규인데
2:09:47
권총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해서 체포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이때 장관이 빨리 이때 장관이 빨리
2:09:54
잡아야지 하므로 부득이 체포하겠습니다라고 하고 커피 방콕으로 내려오면서 생각할 때
2:10:00
김재우가 방카에 들어와 여러 시간이 되었으니 김재규의 동주자가 뚜렷이
2:10:06
나타나지 않고 국방 창건과 가치 있는 장소에서 김제 김계원으로부터 김재규가
2:10:13
범인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김재규를 체포 안 할 수도 없는 처제에도요 일단 김재규를 재폭기로 결심하고
2:10:21
방카 총장실로 돌아와 헌병감을 불러 중정부장을
2:10:27
빨리 잡아오시오라고 지시하자 헌병감이 신병은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어 총을
2:10:34
가지고 있으니 조심해서 하고 내가 보지 한다고 유인해서 방카로 오는 도중 잡아서 보안
2:10:40
사령관에게 인계하시오 주시하고 헌병감이 나가자 급히 보안사령관을
2:10:46
오도록 지시하고 있는데 이후 2-30분간 기다려도 헌병감으로부터 소식이 없어 헌병감을
2:10:54
부르라고 지시하자 얼마 있다가 헌병건과 보안사령관이 같이 들어와 헌병감에게 왜 이리느냐고
2:11:01
묻고 다시 똑똑한 헌병 장교로 하여금 내가 보잔다고 유인하여
2:11:09
벙커로 오다가 잡아서 보안사령관에게 임계하라고 주시하는
2:11:14
순간 김재규의 세력이 이후 나타날지 모르니 우선 보호조치 않은 것이 호하는
2:11:19
생각해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보안사령관에게 신병을 인수받아 시내에
2:11:25
있는 방카의 수용하고 정중히 대하시오라고
2:11:30
지시하여 피해자 신문 조사 19179년 12월 15일
2:11:39
기록입니다 한 병으로 위장한 보안사 유원
2:11:47
나는 국방 장관과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2:11:53
그것도 안전하고 차질 없이 해내야 한다 김정은 본인의
2:11:59
요청했다는 신변보호가 아니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신변
2:12:05
신병 확보인만큼 친밀하게 준비하고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김진구가
2:12:11
권총을 차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정왕정보부장
2:12:17
병원들이 국방부까지 따라와 있을 것이 아닌가
2:12:26
나는 김재규 연애 임무를 6번
2:12:31
임시 주유소에 대기시켰던 보안사 군사정보과장
2:12:36
5일량 중령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는 먼저 김재규가 혹시라도 오죽년과
2:12:42
구매인지 여부를 확인했다 김재규가 보안사 요원인 오중영의 신분을 알게
2:12:48
된다면 처음부터 차질이 생기게 된다 오중녀에게 헌병복장으로 바꿔 입으라고 했다
2:12:53
김재규를 태우고 갈 차량도 준비시켰다 김재규를 유인해서
2:12:59
승용차까지 데리고 간 국방부의 지하 비상통로도 점검시켰다
2:13:10
준비가 끝내자 준비를 끝내자 나는 곧바로 보안사령부에 있는 허화평 비서실장에게
2:13:16
전화를 걸었다 홍합평 대령이 수사관들을 데리고 미리 정동 안강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2:13:22
김재규의
2:13:28
깊게 관찰하라고 단단히 일러뒀다 김재규의 입에서 보다 중요한 단서가
2:13:34
될 얘기가 튀어나올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국방장과
2:13:40
총리와 국무회의들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는 김재규를 밖으로 유인해 나오는
2:13:46
임무는 김진기 헌병감이 맡았다 5일 양 중형은 6번
2:13:52
헌병대장으로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맡길 수 없었다
2:13:57
비서실장으로 신분을 위장한 김진기 헌병감은
2:14:03
국방장관 보좌관 조양래 장군을
2:14:08
밖으로 불러냈다 정성화 총장님 조용히 만난다고 만나자고 한다는 정관에 김재균은
2:14:16
머뭇거리는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본부로 나와 복도로 나왔다 나는 김재규와 얼굴을 마주치지
2:14:24
않도록 멀리 떨어져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재규가 국방부 지하계단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2:14:31
보였다 거의 좌우로 김진기 헌병관과 오일량 중령이 호위하던 같이 걸어
2:14:37
내려왔다 김재규의 수행비서 박금주가 따라오려다가 미리 배치해둔 헌병들에
2:14:44
의해 제시 당했다 김재규를 불러내기 위해 조양래 장군이 장관실로 들어가기 전에 국방부 보안부
2:14:52
대장님 복도와 지하통로 부근에 있던 수행자 수행원들과
2:15:18
6번으로 통하는 비밀통로인데 국무총리도이 복도를 이용했다는 대답을 듣고는
2:15:24
순순히 따라왔다 김재규로서는 정총장을 만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그만큼
2:15:30
화급했던 것이다 대기시켜놓은 승용차 앞에 이르자 온양 중년 뒷문을 열며 부장님이
2:15:37
차를 타시죠라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틈을 주지 않고 김재규를 차로 밀어
2:15:42
넣었다 차 안에는 헌병 2명이 미리 타고 있었다 강제로 차에 태워준 순간 김 제주도
2:15:49
김재규도 자신이 정총장실로 안내받는 것이 아니라 연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2:15:55
깨달았을 것이지만 저항의 몸집 같은 것은 없었다 단련된 수사관이 오중영의 민첩하고
2:16:03
단호한 행동에 제압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없었을 것이다 오준경은
2:16:10
김재규의 오른쪽에 밀착해 앉으면서 무장을 해제하겠습니다 선생님
2:16:15
응하십시오 하며 김
2:16:22
출발하자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서 내가 미리 지시해 두었던 예비 차량이
2:16:28
뒤따르며 옹호했다 두 차량은 국방부 정문을 피해 후문으로 빠져나갔다 중앙정보부 차량이
2:16:36
쫓아올 수 없도록 후문 쪽으로는 모든 차량의 통행을 미리 차단해놓고
2:16:42
외등도 꺼놓은 상태였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27일
2:16:47
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 차는 6번 앞을 지나고
2:16:52
삼각지를 돌아 서울역 쪽으로 향했다 뒤를 살피니 쫓아오는 차량은 보이지
2:16:57
않았다 김정윤은 자신을 태어 승용차가 6번을 지나치는 순간 정성화 총장한테
2:17:03
가는 것이 아님을 확인한 듯 오중영에게 야 너희들 헌병 아니지 전두환이
2:17:09
부하들이지라고 물었다 오준영은 나를 통해 전달받은 정성화
2:17:17
총장의 신병을 확보하고 정중히 무시하는 진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2:17:23
부장님은 현재 부장님 부장님은 현재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정승화
2:17:30
총장의 지시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모시려고 가는 중입니다
2:17:36
고 했다 그러자 김재규는
2:17:44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제 세상이
2:17:49
달라졌어 각하는 돌아가셨어 김재규 모든 오동을 세심히 관찰하는
2:17:54
내 지신을 받은 오죽염은 정동 안과에 도착한 즉시 나에게 김재규의
2:18:01
운동을 보고해왔다 수사 분실로 악성된 김재규
2:18:07
정동 안가요 대기하고 있던 화평대령은 연행팀과 의무를 교대 김재규를
2:18:14
2층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쥐젖이라고 할 공간은 없었다 응접실이라고 해야 할 그런 장소였다
2:18:24
일반 손님이 아닌 간첩 용의자들도 이곳으로 데려오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2:18:30
취조를 위해서가 아니고 스스로 자백하거나 회유하거나 역공장을 할 필요가 있을
2:18:37
때였다 말하자면 점잖게 대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사용하는 곳이었다
2:18:44
허대령 역시 정중하게 모셔야 지침은 정확하게 따르고 있었다 김재규는
2:18:49
자신이 체포된 상태라는 사실을 인식한 건지 물을 갖다 달라고 하더니
2:18:54
연신 들이켰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벽에 걸린 그림들을 둘러보며 여기는
2:19:00
여기는 보안사 안가 아닌가 하면서 자신이 과거 보안 사령관은 여기만 사실을
2:19:08
은근히 암시한 후 전 사령관 좀 오라고 그래 내가 전 사람과 만나
2:19:14
지시할 일도 있고 상의할 사항도 있으니까 하면서
2:19:20
진진 목소리를 실컷 목소리를 취득하는 것이다 정동 안과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는데
2:19:26
얼마 안가 얼마 안 있어 화평 대령이 전화를 걸었다 정동 안가
2:19:32
바로 옆 중앙정보부의 분실이 있으니 빨리 김재규를 서빙고 분실로 옮겨야
2:19:39
한다는 건이었다 나는 정동원의 안과에도 안가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중앙정부 분실이 바로 옆에 붙어
2:19:46
있다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정총장이 김재규를 정동 안가로
2:19:52
데려가는 장소를 주장해서 지시할 때 혹시 중앙정보원 분실이
2:19:58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 염두에 두 컷은 아닌지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아찔한 일이다
2:20:04
복원을 받고 나니 걱정이 됐다 그 시점에서는 사건 진상에 관해 나는
2:20:09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중앙정보부장
2:20:17
정도의 위치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을 시행했다면 치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리
2:20:22
없다 병 공원 계약도 계획도 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2:20:27
그렇다면 공무원 세력이나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김재규를 구출하러 정동 안가를 습격해 올 것
2:20:35
아닌가 정동 안가에는 몇 명의 경비병뿐이어서
2:20:41
중앙정보부의 무장병력 일부만으로 뭐 일부만 와도 김재규를 뺏기게 될
2:20:47
형편이었다 나는 즉시 서빙고 분실에 연락해서 김재규를 인수할 준비를 하도록
2:20:54
지시했다 새벽 1시 30분 화평대령이 다시 보고를 해왔다
2:21:00
김재규의가 대통령 시의 범인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2:21:07
나는 김재규의 연행을 잠깐만요
2:21:15
나는 김재희 김재규 연애 연행을 지시하던 시점에 이미 그가
2:21:23
범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김재규의
2:21:44
5일량 중량으로부터 김재우가 차 안에 떠들어대던 말을 보고받고는 그런 생각을 한층 더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2:21:52
단정적인 판단을 해소는 안 되었다 그런데 정동원가에서의 운동을 관찰한
2:21:58
허대령의 판단이 김재규가 자백한 곳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아닌가
2:22:03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면서 전혀 슬퍼하는 표정이 아니었고 대통령이
2:22:09
돌아가시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 얘기를 전해준다는 투로 말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2:22:16
바뀌었다는 말을 할 때에도 잘 된 일이라는 투였고 내가 여기 내가 여기에 잡혀
2:22:22
와 있다 잡혀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 부하들이 쳐들어올
2:22:28
거야라고 의기양양에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자기가
2:22:33
범인이기 때문에 보안사에 체포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2:22:38
것으로 [음악]
2:22:44
봐야 되는 것이 아닌가
2:22:52
분실 때문이 아니라더라도 아니더라도 김재규를 서빙고 분실로 옮기는 일이
2:22:58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나는 허대령의 복원을 받은 즉시 정수와 총장을
2:23:04
찾아갔다 김재규가 시의 범위 및 틀림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하면서
2:23:10
구속 수사를 하겠다고 했다 새벽 1시 50분 사건 발생
2:23:15
6시간 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여기까지가 사건 발생 6시간
2:23:35
박정희 시대 마지막 개혁명 내가 국방부장관에 지시를 받아 김재규를 정동한가에 신병 확보했다고 다시
2:23:44
서빙고 수사 분실로 압송하는데 온 신경을 추평하고 있는 동안 국무회의는 비상 계엄령 선포하는
2:23:52
의심히 하고 있었다 대통령 누구의 사유가 서거라는 사실이 전해지자
2:23:58
국무위원들은 김계원 실장을 다그쳤다 김
2:24:03
실장은 그제야 국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대통령이 돌아가셨고 자신이
2:24:09
대통령의 시신을 국군통합병원 서울분원의 모션 놓았다고
2:24:16
털어놓았다 그 말이 떨어지자 국무위원들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병원으로
2:24:21
가자고 요구했다 직접 우리 눈으로 가까이 시신을 보아야 다 각각에서 돌아가신 사실을
2:24:28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다음에 공모회의를 열든 계엄령을 선포하듯
2:24:33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시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2:24:39
서울 분원으로 향했던 최규하 국무총리와 군무위원들이 다시 국방부로 돌아와
2:24:45
국무회의를 소개한 것은 날이 바뀐 10월 27일
2:24:51
새벽 2시였다
2:24:58
곰이 전투적으로 책을 잘 읽어주시면 고맙습니다
2:25:04
근무에는 계엄령 선포하는 의견하기에 앞서 헌법 규정에 따라 최규하 총리가
2:25:12
땡큐 반죽 님 매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계엄령손판을 의견을 대행하게
2:25:23
됐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이어 새벽 4시를 기회 제주도를 제외한
2:25:30
전국의 비상케 협력을 선포하기로 의결하고 계엄사령관의 정성화 유꾼
2:25:36
참모총장을 임명했다이 시간까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된 최규하 국무총리를
2:25:43
비롯한 공무유형 가운데 그 누구도 정성한 충청에 김재규의 요청에 따라
2:25:48
범의 현장 부근에 가이스트 사실 알지 못했다 만약 국무위원 가운데 일부라도
2:25:55
계엄령 선포 의결전에 정총장을 행적을 알게 되었다면 김재규의
2:26:01
계엄령 선포 독촉에 제동을 걸었듯이 정성화의
2:26:06
계엄사령관 임명해 의를 제기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 총장이 경험 사는간에
2:26:13
임명되는 일이 없었다면 12도 이러하지 않았을 것이다
2:26:20
어쨌든 10월 27일 새벽 공무회의가 계엄사령관이 될 수
2:26:26
없는 사람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은 계엄사령관의 임명함으로써 12시비는
2:26:32
피해갈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새벽 3시를 넘긴 시간에
2:26:39
끝이났다 야간 토행 금지가 해제되고 아 보르네요
2:26:51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계엄령이 발령되는 새벽 4시가 되었을 무렵
2:26:57
정부 대변인이 김성준 문화 공부부 장관이 텅빈 중앙청
2:27:03
기자실 칠판에 비상 계엄령 선포를 의결한 비상공모회의
2:27:09
발표 사항을 써내려갔다이 발표문에는 개업 선포 사유가 대통령은 유골하고 되어 있었다
2:27:17
정부가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사실과 김재규가 발산
2:27:22
총탄을 맞아 사망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것은 그로부터 3시간 남짓 지난 아침 7시 25분의
2:27:30
추가 발표 때였다 김성진 장관은이 발표에 대해서도 발표에서도 김재규
2:27:37
대통령에 대한 충격을 우발적인 것으로 표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2:27:42
지난 아침까지도 사건 진상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인
2:27:48
목격자인 김계원 비서실장이 김재규가 잘못선
2:27:53
총회 김재규가 차주철을 쏜다는 것이
2:28:01
범행이 계획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럭셔리니 섹시하다 함께 감사합니다
2:28:09
땡큐 땡큐 땡큐 칠판에 사진이 사진제로가 있네요
2:28:15
1979년 10월 27일 새벽 4시 10분경 중앙청
2:28:22
기자실 칠판에 박정희 대통령 유고 및 비상계험 선포
2:28:27
사실을 써내려가는 김성준 정부 대변인 겸 문화공보부 장관
2:28:39
예 잘못 쏜 거는 이제 김재규가 주변에 이제 세뇌하고 있던 내용이죠
2:28:49
배우세력에 대해 수사 정부가 계엄령 선포를 공식 발표한 데이요
2:28:54
계엄사령부는 개헌공고 제5호를 통해 합동 수사본부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2:29:00
가장
2:29:09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합동 수사본부에 설치는 개헌법 규정에 따라 국방부가 발전시킨 계엄시행 계획에
2:29:18
근거하고 있었다 뒤에 따라 언급하겠지만 나는 그 해 5월경 보안사령관으로 부임한 뒤
2:29:24
보안사령부의 업무를 파악해 가던 중 파악해 가던 중개업 중개 중개업
2:29:33
업무와 관련된 보안사의 임무와 역할에 관해 세부사항이 미비한 사실을 알게 되어
2:29:41
관련 규정은 마련하도록 주시한 바 있었다 물론
2:29:46
126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고 그래 그로 인해 계엄령의 발표되리라는
2:29:52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2:30:02
그러한 데뷔 덕분에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즉각 유효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2:30:10
앞동 수사본부에 설치와 동시에 보안사령관인 나는 합동수사본부장의 임명되었다
2:30:17
보안사령관은 과거 방첩분해가 국군 보안 사령부꾼 보안 사령부로
2:30:24
확대 개편된 이래 평소에는 국방 사령관의 주일 감동을 받는다
2:30:29
그러나 계엄령의 선포되어 육군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되고 그 회화가
2:30:35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됨으로써 합동수사 본부장이 된 보안사령관은
2:30:40
수사 업무에 관해 계엄사령군이 계엄사령관이 육군참모총장의
2:30:46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합동수사본부장의 임명된다는 그
2:30:51
시간부로 수사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성화 계엄사령관의 주의감독을 받게
2:30:57
된 것이다 김재규를 서빙고 수사분실로 앞서간 것은 새벽 2시쯤이었다 수사를
2:31:04
지휘할 이학봉 중령은 부산에서 군용기 편으로 급히 올라와
2:31:09
새벽 1시가 조금 지난 시간 서빙고 분실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이학봉 중령에게
2:31:16
범행동기라든지 범행 계획 현장 상황 등에 대한 조사를 하게
2:31:22
앞서 먼저 공모자와 배후세력 공범 등을 찾아내는데 수사에 초점을
2:31:27
맞추라고 지시했다 범인이 김재규를 체포했다고 해서 대통령을 시위한 내란 상황이
2:31:35
종결된 것으로 묻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강력한 권력기관의 수장에
2:31:40
자기 손으로 대통령을 쏴주겠다고 하면 그 소식을 접한 사람은 의뢰 아
2:31:47
쿠데타구나 반란이 일어났구나 하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대통령이
2:31:54
사건이 아니고 쿠테트나 반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수사관은 물론 일반 국민의 상식적인
2:32:03
판단이다 일단 대통령을 제거한 뒤 쿠테타나 내란으로 이어지는
2:32:09
후속 개혁이 이미 진행되고 있거나 그러한 임무가
2:32:14
준비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중앙정보부장이 힘으로 힘이
2:32:20
막강한 것이기는 하지만 쿠테타나 내란이 성공하려면 그 혼자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2:32:27
다른 세력이나 조직을 동화할 수밖에 없다 분명히 공모자가 있거나 배우 사립과
2:32:34
결탁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 사건이 사천에 계획된 범행이라면 지금이 공범자들에
2:32:42
의해 내라의 진행되고 있거나 또는 도피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2:32:47
김재규를 구출하려고 아니면 김재규를 김재규가 입을 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2:32:53
보안사를 습격할지 모르는 일 아닌가 배우를 밝혀내고 공범을 색출하는 일이
2:33:00
분초를 다투는 일이 되었다 나는 서빙고 분실에서 진행 중인 김재규에 대한 취준을 독려하는 한편
2:33:07
각국 부대의 이상 동양 여부를 면밀히 주시하도록 일섬 보안 부대
2:33:14
긴급 지시했다 김재규의 범행과 연계된 군부대는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은
2:33:20
27일 정오쯤 되었을 때였다 김재규로부터 공범에 대한 자백을 받는
2:33:27
일이 초미의 과제였지만 나는 수사팀에게 그를 조심해서
2:33:32
취조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1시간 더 빨리 김재규의 입을 열게 하려고
2:33:38
거칠게 다루다가 자칫 불상사라도 생기게 되면 여간 낭패가 아닌가
2:33:44
당시 김재균은 만성 간주란을 앓고 있어서 건강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2:33:50
나쁘지 칙칙한 검붉은 색깔을 띠고 있어 한눈에 봐도 간이 나쁘다는 것을
2:33:56
알게 될 정도였다 김재기 주치의가 그를 심하게 다루면 위험하다고
2:34:01
얘기해줬다 실제로 김재균은 구속주체 조사를 받다가
2:34:06
군외관에 응급처치를 응급처치를 받은 일도 있었다 사실 나는 이때뿐만 아니라
2:34:13
다음에 5월 김재규가 처형될 때까지 그의 신변 안전에
2:34:18
여간 신경을 쓴 것이 아니었다 조직 범죄의 경우 수사기관에
2:34:23
체포된 범인에 대해서는 특별히 신경을 써야 된다
2:34:28
도저하지 못하도록 지켜야 할 것은 물론이고 체포된 범인이 입을 열지 못하도록 공모자들이 위해를
2:34:35
가할 위해야 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늘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2:34:47
미국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의 경우도 저격방에
2:34:55
체포된지 이틀 후 잭루비에게 피살됐다 잭루비가 복역 중 3년 만에 옥사했다
2:35:03
이들을 죽음은 당연히 의욕을 사게 되었다
2:35:10
사건축구 워렌 대법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는 3개월에 걸친 조사
2:35:17
끝에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는
2:35:22
그러나 의욕은 사라지지 않고 각종 음모설이 끊임없이 나돌자 사건 13년 후인
2:35:29
1976년 하원 조사 특별위원회가 워렌 보고서를 재검토하기에 이르렀고
2:35:34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 법무부는 수사 종교선을 하면서
2:35:40
워렌 보고서와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의혹은
2:35:45
사라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 오스왈드의 힘을 막으려고 잭 루비가 그를
2:35:50
암살했으며 또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잭 루비도 옥중에서 3년 만에 의문을 죽음을
2:35:56
맞게 된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케네디 암살 사건이 발생한지 40년이 되던
2:36:02
2003년 미국 ABC 방송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직도 미국 국민 중 70%는 오스왈드의 단독 본명이
2:36:09
아니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미국도 미국도 마찬가지로 이제
2:36:18
그렇게 자살당하는 사람이 꽤 많나 봅니다
2:36:28
개암사랑 본격적인 수상한 시작되고 시간이 흘러
2:36:36
새벽에 밝아올 때 무려 이학봉 수사 국장으로부터 보고가 왔다 지금까지
2:36:42
김재규 부장 단독 범행인지 곰곰이 있는지 배우가
2:36:47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승화 육군 총장에 김 부장의
2:36:53
초청으로 그날 밤 사건 현장 바로 옆에 있는 궁정동 안가 본가의 와 대기하고
2:36:59
있었고 김 부장이 대통령 시야노 함께 차를 타고 육군본부로 이동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37:07
김재우가 그렇게 진술했다는 내용이었다 수상하니 묻지도 않은데 김재규가 그 사실을
2:37:14
스스로 밝히게 된 것은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김정은과 자기 손으로
2:37:20
대통령을 시에 살해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사건의
2:37:25
진상에 관해 더 이상 알아야지 못한 상태여서 수사관들은 사건의 이후에
2:37:31
추위가 궁금해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었다 새벽 4시 10분경 비상 계엄령이
2:37:37
선포되고 계엄사령관에 정수와 육군 참모총장이 임명되었다는 것을 김성진 장관의
2:37:43
발표가 긴급 뉴스로 보도되자이 사건이 방송을들은 김재규가 도련 박수를
2:37:50
치면서
2:38:03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2:38:08
국무위원들과 다투면서 빨리 국무회의를 열어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38:14
그런데 김주 김재규가 고대하던 그 소식이 긴급 뉴스를 전해진 것이다
2:38:20
계엄령 선포 소식에 한편으로는 고무대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급해진
2:38:25
김재균은 그동안 입을 열지 않고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두 가지 사실을
2:38:32
털어놓았다 자기가 정성화 총장 정성화 육군참모총장은
2:38:37
범행 장소 옆에 대기시켜 놓았고 6번 벙커에 자신의 승용차에
2:38:43
태우고 갔으며 대통령에게 총을 쏘는 바로 그 현장에 김계원
2:38:48
대통령 비서실장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자랑하듯 떠들어댔다는 것이다
2:38:54
피제로 취조를 받던 김재규는 처음 정동 도착했을 때에는
2:39:00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가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려는 듯
2:39:05
박미선이 묻혀놓은 후원 감사합니다 수사관들에게 이제 세상에 바뀌었단 말이야 이제 세상이 바뀌었단 말이야
2:39:14
하면서 이와 폭주 이학봉이 좀 오라 그래 내가 전사령관아
2:39:21
정사령관과 할 이야기도 있고라고 했다는 것이다이 중령은 김재우가
2:39:28
보안사령관을 지낼 때 부하였기 때문에 대명에서 주저하지는 않았고
2:39:34
수사 주위만 하고 있었다 물론 수사관들은 김재규에게 알았다고만
2:39:40
하고 그 말을 전하지는 않았다
2:39:59
잠시 30초 휴식 을
2:40:50
수상한 한국
2:40:56
이학봉 수사 국장의 보고를 접한 순간 나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2:41:02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을 자기손으로 시행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못지않은
2:41:09
큰 충격을 받았다 무서운 세상이구나 하는 탄식의 절로
2:41:14
나왔다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직접 시행했고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 범행 현장에
2:41:21
있었을뿐만 아니라 육군참모총장의 범인의 요청에 따라 그
2:41:26
현장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었다면 엄청난 내라는 뭐가 아닌가 아직 그
2:41:31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은 공모 배우 세력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2:41:37
장막에 가려진 그 거대한이 거대한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할
2:41:42
임무가 내게 지워졌다는 자각을 하게 되자 온몸이 긴장되고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2:41:49
새벽 5시경 이어폰 중형의 보고를 받은 뒤 나는 정성화 총장을 찾아가
2:41:55
김재규에 대한 수사 진행 상황을 구두로 보도했다 보고했다 김정은과
2:42:01
자신이 대통령을 취했다고 자백했다는 내용과 범행 장소가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
2:42:08
가라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김재우가 범행 현장 바로 옆에 정총장을 대기시켜 놓았다고
2:42:16
털어놓은 사실 정충장은 자신의 차에 태어 6번 정총장을 자신의 차에 태워
2:42:23
6번 벙커로 이동했다고 말한 사실 등은 보고하지 않았다 내가 범행
2:42:30
현장에 관해 보고하면 정총장이 먼저 그러한 사실을 얘기할 것이라고
2:42:36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정총장은
2:42:43
사건 현장에 궁정동 안가라는 보고를 받고도 수사책임자인 나에게 그 시간에 자신이
2:42:50
그 시의 현장 바로 옆에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사실에 관해 이런 판고도
2:42:56
언급하지 않았다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거나 창고가 될 일이라면 정수와 총장이
2:43:02
최소한 수사책임자인 나에게 많은 자신이 받거나
2:43:07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들을 상세히 알려줘야 했다 수사 기관에서 쓰는
2:43:13
용어로 사건 목격 내용을 목격 내용을 고지할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김재규의
2:43:21
진술 내용은 보고 받기 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보고받고
2:43:26
난 뒤에는 얘기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취한 행동에
2:43:32
추워라도 의욕을 품게 할 이유가 없고 떳떳하다면 왜 입을 다물고 있어야
2:43:38
했는가 내 가슴 한 의심의 싹이 움트게 된 것이다
2:43:47
겸사령관의 수사 구속 수사권행
2:43:52
밤샘 수사를 하던 이어폰 수사 국장은 김재규가 새로운 범행 내용을 하거나
2:43:59
범행 내용을 하나하나 진술할 때마다 나에게 전화를 보고했다 아침 7시경
2:44:06
나는 그때까지의 수사 진행 상황과 수사 결과를 가감없이 정충장에게
2:44:11
보고했다 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 시간 정총장이 김재규의 초청을 받아 김정섭
2:44:18
정보부 이차장 정보부 이체장부와 사건 현장에 궁정동
2:44:24
안과 바로 옆 변신해서 만찬을 하고 있었고 이어 김재규의
2:44:31
승용차를 타고 6번으로 이동한 사실을 김재우가 진술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정총장은
2:44:37
보고 내용의 자신과 관련된 내용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2:44:42
이렇다 저렇다 1절 말을 하지 않았다 정총장에게 보고를 마 보안사 사무실로
2:44:48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이 약봉 수사국장이 다시 보관할 일이 있다고
2:44:54
했다 오전 7시경이었다 조사 내용에 관한 단순한 보고가 아니라 수사상은
2:45:00
고려한 권위였는데 한마디로 김계현 비서실장과 정승환 총장을
2:45:06
구속 수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김 실장은 범행 현장에 있었을뿐만 아니라 김재구의
2:45:14
범행 계획을 사전에 알고 이에 동조했으므로 두 말할 것도 없이 공범의 혐의가 명백하다고 했다
2:45:22
무엇보다 김재규가 범의 현장을 목격한 김 실장을 살려두었다는 사실은 그를 공범으로
2:45:29
생각하지 않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정청장도 사건 전후의
2:45:36
행적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고 또 대통령이 자연사가 아니라
2:45:42
피살되었을 것이라는 조항은 가장 먼저 알게 되었음에도
2:45:48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마땅히 취할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2:45:56
확인 보호하고 확인을 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전혀 없고
2:46:03
수도 경비사령부 병력으로 청와대를 포위하도록 명령했는데
2:46:09
그이조차이 조치가 김재규의 범행을 도우려고 한 것인지 조사할
2:46:15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재규의 경우 처음에 범인이 확인되지
2:46:20
않은 상태에서도 일단 신병을 확보했던 것처럼 사건이 중대성에 비추어 김
2:46:26
실장과 정총장 두 사람도 공범 내지 방조의 혐의가 있는만큼
2:46:32
우선 신병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나는이 국장의 권위대로 두
2:46:38
사람을 연행하도록 지시했다 나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이학봉 국정원
2:46:43
바로 돌아서서 문을 나서려고 했다 순간 나는이 국장을 불러서였다 몇
2:46:49
가지 생각들이 번개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궁금한 표를 왜이 국장을 잠시
2:46:55
세워놓은 채 나는 정총장을 체포가 초래할 상황 전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2:47:03
계엄사령관이 된 정총장을 체포하려 했을 때 만일 그가 김재규 세력과
2:47:08
어떤 영계가 되어 있다면 우리 수사팀과 충돌이 벌어질 우려가 있지 않은가
2:47:15
중앙정보부장과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모했고 육군참모총장에 가담해 있다면 보안사가
2:47:21
그 세력과 충돌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 아닌가 최강의 실병력을
2:47:29
장악한 채 상황을 주도하고 있을이 세력과 무슨 수로 맞설 수 있겠는가
2:47:35
합동수사 본부장으로서 모든 정보 수사기관을
2:47:40
지휘할 수 있게 됐지만 보안사 유은 이외에는 아직 관계자들은 아무도
2:47:45
만나보지 못하지 않았나 보안사는 자체 경비원 외 전투 병명은 전부 하자
2:47:52
전무하지 않은 전무하지 않은가 이런 물음들이 한순간에 떠올렸다 해답을 찾을 수
2:48:00
없는 물음들로 머릿속은 하얘졌다 나는 당시 정총장을
2:48:06
구속하려던 계획은 일단 제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2:48:19
보안 사령관은 직접 상관인 국방장관을 통해 내려오는 대통령을
2:48:25
군통수권 행사와 관련한 지식 또는 위임 상황을 집행할 수는
2:48:31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군과 내각을
2:48:36
확고히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또한 비상 개업 및
2:48:43
발령된 상황에서 국방장관은 계엄사령관이 된 육군 총장은 제어하기 어려운 사람
2:48:49
입장하니까 최규하 국무총리가 정식으로
2:48:54
대통령 권한을 대응하기 시작했지만 사항은 매우 불안정하고 유동적이다
2:49:00
아무런 준비 없이 대통령 권한을 대응하게 된 최총리가 중앙정보부장
2:49:06
대통령 비서실장 육군 참모총장의 결탁해 반란한 것으로 알게 되었을 때
2:49:13
과연 그 세력과 그 세력에 맞서는 결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할 수는
2:49:18
없지 않은가 힘과 수단도 없고
2:49:23
뒤를 받쳐줄 배경도 없는 상황에서 계엄사령관을 체포한다는 것은 섣불리 행동에 옮겨서는 안 된다고
2:49:31
판단한 나는 이학봉 수사국장에게 수사기관이 사람을 구속할
2:49:36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도주한 우려가 있거나 증거를 없앨 우려가 있을 때다
2:49:43
계엄사양관이 [음악]
2:50:12
도주할 우려가 우리는 없지 않은가 일단
2:50:26
[음악] 극비로 내사를 진행하자고 지시했다
2:50:35
내 얘기를들은 이학봉 국장은 정 총장이
2:50:44
도주하지는 않겠지만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면 계속 구속 수사를 건의했다 나는 정 총량을
2:50:51
체포하려고 하려 했을 때 우리는 상황에 대해
2:50:56
긴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내사를 통해 정총장을 사건 관련 혐의가 보다
2:51:02
명확해지면 그때 연행하자고만 말했다 그러자 이후창은 나이스시대로 정 총장
2:51:10
구속을 집행하지는 않겠지만 그가 궁정동 안가에 가게 된 경위 김재규의
2:51:16
범행을 전후해서 그곳 안가에서 취한 행동 김재규의
2:51:21
승용차 안에서 있었던 일 6번 벙커에 도착해서
2:51:27
취한 조치 그리고 김재규와의 평소
2:51:34
교분관계 등을 좀 더 조사한 후 다시 건의하겠다고 했다
2:51:41
좀 힘들면서
2:51:50
자 서둘러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
2:51:55
김재규에 대한 초동 수사의 범행의 윤곽이 드러나자 합동수사본부는 개업용 선포에 따라
2:52:02
설치된지 30여 시간만인 10월 28일 오후 중간 수사 결과를
2:52:09
발표했다 사건의 성격이나 국민의 관심 국내외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 때
2:52:14
1시라도 빨리 수사 결과를 발표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 시점에서는
2:52:23
감사합니다 그 시점에서는 정청장에 대한 수사가
2:52:30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한 김재규의 배후 세력에 대한 수사가 진행
2:52:35
중이었으므로 정총장의 사건 당일에 행적은 발표 내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2:52:44
다음은 중간수사 발표본 전무입니다 지난 10월 26일 19시
2:52:53
50분경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 소재 중앙정보부 식당에서
2:53:00
기자재인 역사적인 비극의 발단은 김재우가 은연중 계획하에 자행된
2:53:05
범행이었음을 드러났다 학동 수사본부가 수단바에 의하면 김재규는 평소 대통령께 거뇌하는
2:53:13
정책에 대해서 불신을 받았고 자신의 모든 보거나
2:53:18
권위가 차주철 경호실장에 의하여 제동을 당하였을뿐만 아니라
2:53:25
평소에 개인적인 감정으로 양인의 감정된 업이 격화되어 있었고 업무 집행성의
2:53:31
무능으로 수차에 걸쳐 대통령으로부터 힐 책을 받았으며 이로 인하여 최근
2:53:38
요직 개편설에 따라 자신의 인체 해임을 우려한 나머지 범행을
2:53:44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10월 26일 16시 30분경
2:53:51
차지철 경호실장으로부터 궁정동 중앙정보부 식당에 대통령께서 가실 것이라는
2:53:59
연락을 받고 만찬을 준비하여 동일 18일 18세
2:54:05
20분경부터 대통령 김비서 실장 차경호실장과
2:54:10
동속하여 만찬을 나누면서 대화 중 차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
2:54:19
중앙정보부장관의 업무로 업무에 관한 심한 의견 충돌로 사전에 계획한 대로
2:54:27
박 대통령과 차실장을 시애 키로 결심하고 18시 50분경
2:54:32
동시를 나와서 중정 의정과장 박선호 정보부장비서관
2:54:39
[음악] 박흥주에게 내가 오늘 해출테니까 내가
2:54:44
오늘 해출테니까 실내에서 총소리가 나면 밖에 있는 경호실
2:54:50
병호관들을 해쳐나는 임무를 정확히 부여하고
2:54:56
인물을 부여한 김 부장은 2층 집무실로 올라가서 보관 중이던 권총을 오른쪽 어깨에 꽂고 다시
2:55:03
실내로 돌아와 동석하자 식사도 하지 않고 계속 차 실장이
2:55:09
5만 불쌍하게 업무 집행의 무능력을 비난하자 묵묵히 듣고 있다가 18시 50분경
2:55:17
동시를 다시 나와 김선호 의전 과장을 불러서 차질 없이
2:55:22
준비가 완료되어 있는지 정확히 확인한 후 19시 35분경 다시 입실하여
2:55:29
입신하자마자 소재하였던 권총으로 차지철 경호실장을 향하여
2:55:35
역사를 퍼부으며 한 발을 발사하고 다시 한 발을 대통령께
2:55:41
향하여 발사하고 나서 또 다시 양인을 향해 양인을 향하여
2:55:47
각 양인 두 명 다 말하는 건가 봅니다 각 두말을 발사하였다 김재규 부장의
2:55:53
첫발을 발사하는 총선이 낮아 이것을 신호로 중앙정보부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2:56:02
박홍주 중앙정보부 의정과장 박선호 중앙정보부장 경호원 이기주 유성호
2:56:09
김태원 등원 이계주로 나누어 주방에 있던 경호실
2:56:15
경호원 김용태 동 김영석을 사살했고
2:56:20
경호실 경우는 박상범에게 중3을 입혔으며
2:56:25
경호추장 정인영 경호처 부처장 안승수
2:56:32
현장에 있던 대통령 경호원 전원을 사상케 했습니다 사상케 하였다 김재규
2:56:38
부장의 사상은 사용한 총은 39 38구경
2:56:44
리볼버 위젯 스미스웰슨 중앙정보부
2:56:49
직원이 사용한 청도 38구경이고 김태원만
2:56:54
m16을 사용하였는데 m16으로 경호실 직원인 정인영 안재성 김영태 김용석
2:57:03
대하여 확인 사설을 하였다 동석하였던 비서실장으로부터이 전모를 제보받은
2:57:11
계엄사령관 정승화 대량은 즉시 범인 김재규를 구속 수사토록 주시하여
2:57:17
합동수사본부에서 연행 계속 죄상을 수사 중에 있다
2:57:25
라고 이제 중간 수사 발표문입니다
2:57:37
경호원 전원을 사살하였습니다 전원을 발표 장애는
2:57:47
수많은 국내외 보도진이 몰려들었다 중계방송을 위한 TV 카메라들의
2:57:53
설치되고 사진 기자들이 서로 촬영하기 좋은 위치를 잡으려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2:57:59
탁자 위에는 내 목소리를 담을 녹음기와 칸 마이크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내가
2:58:07
발표장 안으로 들어서자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지만 나는 그 플래시의
2:58:14
불빛도 셔터 누르는 소리도 의식하지 못했다 나중에들은 얘기로는
2:58:19
그날 발표문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쳐다보는 내
2:58:25
눈이 붉게 충혈이 되어 몹시 무서운 모습으로 비쳤다는 것이다
2:58:30
국민 앞에 처음 선배는 내 모습이 그랬다 혹시라도 김재규의 공모 배우 세력의
2:58:37
움직임이 포착되거나 포착되지는 않는지 효과가 곤두세우고 긴장해 있었던 그
2:58:44
이틀간 나는 단 한숨도 잘 수가 없었
2:58:53
온갖 상념들이 떠올랐다 지금이 순간 어느 군부대가 서울을 향해 출동
2:59:00
준비를 하고 있다는 긴급 보도가 올라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공연이 보완채 전화를 걸어 무슨
2:59:06
보고 온 것이 없느냐고 물어봤다 당시 침대에 누우니 이번에는
2:59:11
휴전선 넘어 북한군 부대의 포착됐다는 전화보고를 받는
2:59:18
환각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를 만져보기도 했다 그렇게 날이 샜다
2:59:24
얼굴은 초췌했고 눈에는 핏발이 비쳤다 그날 이후 내 인생 역정이
2:59:29
꿈도 꾸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래서 그날에 그 사납고
2:59:34
날카로워 보이던 내 모습의 나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남게 될 줄은 정말
2:59:40
몰랐다 그렇습니다 그 기자회견하는 그 모습을
2:59:47
걔네들이 맨날 그게 나오죠 아주 이제
2:59:55
절대 있는 모습인데 내가 보기엔 어떤 사진인지 한번 볼까요
3:00:05
한번 보여 드릴게 이 사진 말하는 거예요이 사진
3:00:23
좋습니다
3:00:30
잠도 못 주무시고 자 그럼 계속 되겠습니다
3:00:38
수다 중간 결과를 발표한 직후 내가 최규하 대통령
3:00:44
권한대행을 뵙게 되었을 때 최고난 대행은 박 대통령 시의 사건은 국가적으로나
3:00:50
역사적으로 있을 수 없는 불행한 사건인만큼 한 점의 의욕도 남기지 않도록
3:00:56
철저히 수사하시오 수사와 관련해서 합동수사본부장에게 정권을
3:01:01
주도록 계엄사령관에게 주시해 두었으니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시오라고
3:01:07
당부 겸 격려를 해주었다 죽음으로 돌아온 박정희 대통령과의
3:01:14
첫발 10월 27일 새벽 김재규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됐다는 보고를 받은 후
3:01:21
나는 청와대로 왔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싸늘한 죽음이 되어 그곳에 돌아와 계셨다
3:01:27
숨을 거둔 뒤에는 뒤에도 무정한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핍발선 감시속에 갇혀 몇 시간을
3:01:35
방치되어 있다가 다음날 새벽 3시가 지나서야 모셔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어른은 자녀들과
3:01:43
청와대 부속실 증언들이 소작견실에 급히 마련한 탁자 위에 무심하게 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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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셨다 이제 더 이상 그 어른이 살아계신 모습을 볼 수 없고
3:01:55
음성조차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도무지실금할 수 없었다 그 어른은
3:02:01
나라를 통치하시던 일도 그토록 사랑과 신임을 베풀었던 사람들도 모두 그대로
3:02:08
놔두신 채 그렇게 세상과 좌편하고 계셨다
3:02:15
박근혜 양을 만났지만 도무지 위로할 말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로 그 망극한 고통과
3:02:23
슬픔을 위로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냥에게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3:02:28
이제 집안의 어른이신이 마음을 강하게 하시고 남은 가족들이
3:02:34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 뿐이다 뿐이었습니다 뿐이었다 사실
3:02:41
그때 나는 더 이상 그 어른을 잃은 슬픔은 슬픔에
3:02:46
잠겨 있거나 유자들을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만은 없었다
3:02:52
혹시 김재규의 동주 전화 배후 세력의 움직임이 포착된 것은 없는지 수사상을
3:02:58
지켜봐야 했다 그 어른은 이미 다른 세상에 계셨고 나는 그 어른의 황망한 죽음의
3:03:06
진상을 파악해야 할 새로운 임무의 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3:03:12
10월 27일 새벽 박 대통령의 시신을 빈소가 차려진
3:03:17
청와대로 모시기 전 네 나는 보안사 경례
3:03:24
분원에 누워계신 박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뵈러 가지 않았다 아니 변함할 수
3:03:31
없었다 나의 가슴속에 그 어른은 너무나도 큰 존재로 살아계셨다
3:03:37
그런데 주치의조차 신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는 그 얼굴을 마주 대할
3:03:44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건 이튿날이 되어서야 죽음으로 청와대에 돌아와 누워계신 그 어른의
3:03:51
영정 앞에 선이 가슴에 통증이 밀려왔다 1961년 5월 목숨을 걸고 혁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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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셨으나 하셨으니 그 거사가 실패했다면 18년 전 그때 이미
3:04:04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더 사신 셈이고 나라를
3:04:10
이만큼 키워 놓고 돌아가셨으니 후회는 없으시겠지 생각하며
3:04:16
애써 아픈 마음을 달랬다 박 대통령을 죽음은 거의 죽음에 얽힌
3:04:23
음모를 수사하고 있던 나에게 장엄한 비극으로 새겨졌다 훗날 대통령이 되던 때 내가 간직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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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태전의 각오가 담임 실천이었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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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야 청와대를 나올 수 있었던 박 대통령이 박 대통령이 자신의 죽음을
3:04:41
보여줌으로써 나에게 가르쳐 준 마지막 교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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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하는 둥지일뿐 영원한 보금자리가 될 수
3:04:52
없다는 교훈 권력은 순환할 때만 건강하게 기능한다는 진리를 나는 그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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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똑똑히 보았다 11월 3일 10시 중앙청 광장에서 대통령
3:05:07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이 거행되었다 10시 2분 전국의 사이렌이 울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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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고인을 보내며 1년간 1분간 묵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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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은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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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산삼주를 말해서 주시지가 않는 건가요 예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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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했던 1장은 여기까지 했고요
3:05:47
실시간 채팅을 오늘 바로바로 이렇게 올려드리지는 못했습니다
3:05:54
다음 시간에는 아마 그렇게 한번 일단 목차를 다시 한번 보여 드릴게요
3:06:01
요거가 생각보다 분량이 많네요 2장은 한꺼번에 다 하기에는
3:06:10
엄청 많다 다 이장은 한꺼번에 맨날 못 합니다 하루에 한 번 내비 두 번
3:06:15
뭐 연달아서 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요거를 빠른 시일 내로 세 권 다 읽을 수 읽어서 빨리
3:06:22
정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3:06:28
정말 정말 고생하셨고요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하여튼
3:06:38
오늘 1장은 박정희 짱구는 못말려님 감사합니다 조만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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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준비하고 아마 또 이제 계속 진행을 할 테니까요 요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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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몇 분이 지났습니까 시간도 못 봤어 대충 1시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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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되도록 노력을 해가지고 끊도록 하겠습니다 끊을 수 있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3:07:07
그러면 자 오랫동안 이렇게 방송 시청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다시
3:07:13
빨리 이제 준비해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끊어서 자주 자주 뵙도록 하겠습니다네
3:07:20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까지 네
3:07:29
감사합니다 여러분 끝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오늘 채팅 열심히 못 읽어 가지고
3:07:34
죄송스러운데 제가 요거 지금 끝낸 다음에라도 채팅 다 읽도록 하겠습니다
3:07:40
정말 감사합니다 3시간입니까
3:07:49
고생들 하셨습니다 일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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