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0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韓美관계를 보여주는 3건의 문건 배진영 월간조선 2013

월간조선  2013년 5월호

발굴 취재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韓美관계를 보여주는 3건의 문건
美, 新군부에 끌려가면서 당혹스러워 해


정리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 全斗煥, 위컴에게 “軍 내부에 불안정이란 있을 수도 없고 앞으로 있지도 않을 것”
⊙ 글라이스틴, “청와대 방문 30분 후 5·17조치 이루어진 것은 유감”
⊙ 全斗煥·李熺性, 미국 측 관계자들에게 대학생들의 容共性 강조

전두환 보안사령관,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 이희성 계엄사령관,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앞줄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월간조선》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한미(韓美)관계를 보여주는 3건의 문건(文件)을 입수, 소개한다.

  1.  1980년 3월 존 위컴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과 전두환(全斗煥) 국군보안사령관의 면담기록, 
  2. 1980년 5·17계엄확대조치 직후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와 이희성(李熺性) 계엄사령관의 면담기록 및 
  3. 로버트 브루스터 주한CIA책임자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면담기록이 그것이다.

이 문건들은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할 당시 보안사 간부로 있던 전직 장교가 보관해 오던 것이다.

이 면담기록들을 보면, 당시 미국을 대표해 한국에 있던 세 사람이 신군부(新軍部)가 대두하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의 정국(政局)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왼쪽부터 전두환-위컴, 이희성-글라이스틴, 전두환-브루스터 면담기록.

全斗煥, 위컴에게 훈계조로 얘기

우선 1980년 3월 14일 위컴 사령관과 전두환 사령관의 면담기록을 보면, 미국은 신군부의 실력자인 전두환 장군의 위상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든 그를 달래서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이 약속했던 민주화 과정을 진행시켜 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의 대담에서 주목되는 것은 ‘군부(軍部)의 안정’과 한미 양국 군 간 대화와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위컴 사령관이 “군 내부의 불만에 대한 것은 미국으로서도 더 이상의 군 내 불안정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이러한 불만은 국내안정에 매우 위해(危害)로운 것임. 이에 대한 귀하의 판단은 어떤지”라고 묻자, 전두환 사령관은 “그 당시에도 언급했듯이 군 내부에는 불안정이란 있을 수도 없고 앞으로 있지도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1979년 12·12사태 이후 미국과 전두환 장군이 이끄는 신군부 간의 갈등을 시사(示唆)한다. 특히 위컴 사령관은 12·12사태 당시 신군부 측이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9사단(사단장 노태우 소장) 병력을 무단으로 빼내 서울로 출동시킨 데 대해 격분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후일 자신의 회고록 《알려지지 않은 역사》(원제 《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에서 “12·12사태가 터진 뒤 미국 측도 한국 군부 내의 반(反) 전두환 세력을 동원, 전두환과 그 추종세력 제거를 모색했으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데다 자칫 군부 내 갈등만을 야기할 것을 우려, 포기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무렵의 한미관계사를 연구한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카터센터의 한미관계 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미국은 당시 한국군의 원로그룹에 속하는 이범준(李範俊) 중장(육사 8기, 당시 국방부 방위산업차관보)과 안종훈(安宗勳) 중장(육사 9기, 당시 군수기지사령관)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완범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두환 제거작전》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강창성(姜昌成) 전 보안사령관의 아들로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의 군부 사정에 밝은 강규형(姜圭炯) 명지대 교수는 “이범준 장군과 안종훈 장군 모두 군부 내에서 존경을 받던 인물들이었지만, 이범준 장군은 역(逆) 쿠데타를 주도할 만큼 강한 성격이 아니었고, 안종훈 장군은 군수(軍需) 병과 출신이어서 실병(實兵)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면서 “미국도 결국 이 때문에 신군부라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담에서 전두환 사령관은 “미국과 우리는 언어, 풍습, 사고방식의 차이로 인해 한때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음을 에둘러 말한다.

이에 대해 위컴 사령관은 “귀하의 긴밀한 협조와 도움”, “한미 군 간의 보다 더 개방적인 관계유지”를 요청한다. 이에 대해 전두환 사령관은 “아무리 자신은 선의(善意)에서 한 행동이라도 풍습을 모르면 실수가 될 경우가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귀하는 한국에서의 근무가 1년도 아직 안 되었으니만큼 신중히 하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더구나 지위가 낮은 사람의 실수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보통이나, 귀하와 같이 높은 지위의 인물이 하시는 실수는 마치 길이가 길고 높은 추(錘)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큰 반응과 정상으로 돌아가는 데 오랜 시간을 요하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전두환 사령관의 발언은 마치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훈계하는 듯하다. 여기서 이미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가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인 위컴 사령관과 전두환 장군의 관계가 역전(逆轉)되었으며, 전두환 사령관은 갓 중장으로 진급한 일개 한국군 장성으로서가 아니라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군부의 실권자’로서 위컴 사령관을 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글라이스틴, 5·17조치에 강하게 항의

1980년 5월 18일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와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면담기록에서는 5·17계엄확대조치에 대한 미국 측의 당혹감과 배신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놀란 것은 이러한 조치가 민간정부 당국과 충분한 협의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점이며, 더욱이 일찍이 표명된 바 있는 한미 상호 간 중요한 협력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미국의 관심 표명을 무시한 것으로 보이는 점”, “작일(昨日) 16:00시 청와대를 예방하였으며 현 사태를 논의한 바 있으나, 이번 조치에 대하여 전연 언급이 없었다가 학생소요사태가 아무리 심각했더라도 30분 후에 그런 결정이 이루어진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항의한다. 외교관들은 흔히 에둘러 말하기 마련인데, 이날 글라이스틴 대사는 상당히 강하고 직설적인 어조로 이야기한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국인의 한국 여행 자제, 미국 경제사절단의 방한 중단 등을 알리면서 3김씨의 석방, 국회 개원 등을 요구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현 상황을 더 악화시키거나 방어력을 약화시키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긋는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만나던 날, 브루스터 주한CIA책임자는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署理)를 만났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이희성 사령관에게 격하게 항의한 것과는 달리, 브루스터 CIA책임자는 군부의 5·17조치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향후 정국 전망 등을 묻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두환 장군은 이희성 사령관과 마찬가지로 학생데모로 인한 사회혼란과 공산화 위협을 강조한다. 특히 전 장군이 “데모 주동자 중 온건학생들의 정보 제공 협조를 받고 있다”고 밝힌 것이 눈길을 끈다. 이는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던 대학생들이 시위를 중단(서울역 회군)하고 이틀간 자숙(自肅) 모드로 들어간 것이나,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 내에 정보당국의 프락치가 있었다는 설(說)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전두환 장군이 당일 광주에서 학생데모가 발생해 공수특전여단을 보낸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학생데모의 容共性 강조

전두환 중정부장 서리는 브루스터와의 대화에서 이란의 경우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이는 카터 정권이 팔레비 왕정(王政)과 시위세력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다가 결국 이란에 반미(反美)정권이 들어선 사태를 상기시킴으로써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희성 사령관, 전두환 중정부장 서리 두 사람 모두 고등학생들이 데모에 가담할 경우 기존의 군 병력으로는 저지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또 두 사람은 일부 대학생들에게서 보이는 용공(容共)의식과 구호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 1980년 대학생들의 발언에서 오늘날 종북(從北)의 싹을 볼 수 있는 것이 흥미롭지만, 용공세력을 척결하겠다는 명분으로 단행한 5·17조치와 뒤이은 5·18사태로 인해 1980년대 대학생들이 더욱 급격히 좌경화(左傾化)·친북화되었고, 오늘날에는 그들이 우려하던 것을 훨씬 넘는 수준으로 종북세력이 횡행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글라이스틴 대사와 위컴 사령관은, 1989년 간행된 《광주사건과 미국》(원제 《Americans and the Kwangju Incident》)의 저자 마크 피터슨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12·12사태와 광주강경진압 조치는 전두환씨를 비롯한 신군부의 단계적 쿠데타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2000년 4월 5·18광주민중항쟁기념심포지엄 연설에서는 “5·18 당시 ‘미국은 신군부가 저지른 잔인한 행동의 공모자이자 무력(無力)했다’는 비난이 있으나 ‘공모’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무력했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맞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미국은 주한미군의 철수와 대북정책의 변경, 헌법체제 옹호 등의 카드를 써 신군부를 견제하려고 했지만 결국 안보상의 우려로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면서 “기본적으로 미국이 거의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한국 내 세력들 간 충돌의 성격을 띤 이 사태를 변경시켰을 만한 미국의 조치를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원문의 한자(漢字)를 한글로, 영어 표기를 현행 외래어 표기 규정에 맞게 고치고, 일부 내용을 생략한 것 외에는 원문 그대로임을 밝혀둔다.



전두환-위컴 대담
<위컴 사령관과의 대담내용>

○대담자 : 위컴 사령관-보안사령관

○일시 : 1980.3.14(금) 10:30~12:00

○배석 : 유엔군사령관 특별보좌관실 브루스 그랜트(미국 측 통역)
국방부 장관 국외담당관 중령 홍순용(한국 측 통역)

○대담 요지(對談 要旨)


◎ 인사

•위컴 : 중장 진급을 축하드림.

•전두환(이하 전) : 금일 개칭되는 한미연합야전군사령부의 발족을 축하함.

•위컴 : 아시는 바처럼 부대 명칭을 개칭하는 데 지나지 않으며 오래전부터 이에 해당하는 업무는 진행되어 왔으나 최근에 거론되어 개칭하게 되었음.

(中略) (가족사항 및 육군사관학교 시력 기준, 남북대화의 전망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눔.)


◎ 국내정세의 전망



1982년 6월 이임하는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전두환 대통령.
•위컴 : 좋은 말씀임. 앞서 언급하신 것 가운데 한국의 사정이 나쁜 것은 북괴가 이용하기 위한 의도라는 말씀에 관련하여 앞으로 3~4개월에 걸친 기간 중 한국의 안정상태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시는지.

•전 :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학가의 움직임으로서 3월은 등록이나 교육 준비로 바쁘기 때문에 별일이 없을 것임. 보고된 바로는 어제 서울대학에서 무슨 움직임이 있을 예정이었으나 별 성과 없이 끝났다고 함. 문제는 긴급조치 해제 등으로 석방된 학생들이 ‘옥중(獄中)동지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과격한 행동을 시도하려는 것이 염려됨.

4월은 4·19를 포함하여 대학가에서 연례행사 식의 움직임이 전통적으로 있는 시기이니만큼 걱정은 되지만 이미 한국실정으로는 맞지 않을 정도까지 모든 사항을 해소시킨 만큼 중대한 문제점은 없음. 따라서 학교당국이 잘해 주기만 한다면 별 혼란이 없으리라고 판단함.

또 한 가지는 현재 국내 경제사정의 악화로 공장이 문을 닫게 되어 근로자들이 과격한 행동으로 나올 경우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 역시 부분적인 염려는 되지만 큰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고 봄.

전체적으로는 매년 3, 4월이면 발생되는 일부 소요를 감안해 볼 때, 오히려 예년보다 안정된 현상을 보일 가능성이 있으며, 부분적인 학생소요는 대학당국이나 경찰로서도 충분히 통제가 가능할 것임.

•위컴 : 본인도 동의함. 얼마 전 미국 언론인들과 만난 기회에 그러한 질문을 받았으며, 본인도 한국의 사정은 경제적으로 든든한 기초를 가지고 있고, 정치적으로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군부도 안정상태에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이 모든 현상을 고려해 볼 때 안정상태의 유지는 낙관적이라고 답변한 바 있음.


◎ 한미협조 관계의 중요성

•위컴 : 지난번 언급된 바 있는 군 내부의 불만에 대한 것은 미국으로서도 더 이상의 군 내 불안정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이러한 불만은 국내안정에 매우 위해(危害)로운 것임. 이에 대한 귀하의 판단은 어떤지.

•전 : 그 당시에도 언급했듯이 군 내부에는 불안정이란 있을 수도 없고 앞으로 있지도 않을 것임.

•위컴 : 오랜 군생활과 경험을 통해 아시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형제와 같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한국에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있음. 미국의 이익은 이러한 상호목표를 미국민과 한국민이 합심하여 같이 일해 나감으로써 달성되는 것임.

본인은 이와 같은 형제와 같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같이 일해 나가는 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 오고 있는바, 이에 대한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는지?

•전 : 한미관계는 우리가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우리 한국을 미국이 구해 주었고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주었음. 우리 역시 이러한 보답으로 월남에서 미국을 돕기 위해 같이 싸웠음. 이러한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혈맹(血盟)관계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것임.

그러나 아무리 친한 친구 간이나 형제간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다툴 일이 있으며 다투고 난 뒤에는 오히려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경우가 많음.

이와 같이 미국과 우리는 언어, 풍습, 사고방식의 차이로 인해 한때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것이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어 전에 언급했듯이 귀하의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한국에서의 근무를 영광과 자랑으로 여기실 것이고, 모든 한국 국민과 군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시리라는 것을 본인은 확신하고 있음.

이러한 것을 위해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봄. 다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오늘처럼 자주 만나서 의견교환도 하고 업무상 관련성을 가진 양측 관계관이 긴밀히 협조해 나감으로써 언어 장벽이나 풍습의 차이 등을 서로 이해하고 해소하는 것이 그 방법이라고 하겠음. 즉 제일 좋은 방법은 자주 만나고 운동을 같이한다든가 하는 일이 될 것임.

그런 점에서 볼 때 본인 개인으로서는 매우 외로운 직책에 있음을 말씀드리는 바임. 본인은 상대역(相對役·counterpart)이 없음. 과거 킹스턴 장군과는 특전사 관계로 자주 만난 적이 있으나, 2사단장직에 부임한 이후 현재는 상대역이 없는 단점이 있음. (중략)

•위컴 : 귀하의 특히 어려운 직책과 처지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나 동정이 가는 바임. 본인은 이곳에서 한국군과 미군의 중간에 위치하는 직책에 있으며, 이 책임을 대단히 중시하면서 한국의 평화와 안정유지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여기에는 귀하의 긴밀한 협조가 있어야만 하며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음.

본인의 생각으로는 한미 군 간에 보다 더 개방적인 관계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함. 서로 비밀을 갖게 되면 의심을 낳게 되고 이러한 의심은 워싱턴의 의문을 초래하게 되는 것임. 보다 더 긴밀한 협조와 신뢰를 얻기 위해 밀접하고 개방적이며 상호신뢰 속에 같이 일하는 것이 필요할 것임.


◎ 1981년의 중요성

•위컴 : 1981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해가 될 것으로 생각함. 한국은 선거를 하게 되며,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재검토하는 시기임.

주한미군의 철수에 고려되는 사항은 남북한 간의 긴장상태, 남북한 간의 군사력 균형, 그리고 미 행정부의 판단상 중요한 것은 한미 양국 군 간의 협조 상태와 사회 및 군 내부의 안정상태인 것임. 이러한 점을 확실히 염두에 두고 관계개선을 위해 일해 나가야 할 것임.

•전 :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들었음. 우정을 두텁게 하는 방법에는 상호 간의 관습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한 요소일 것임. (중략)

아무리 자신은 선의(善意)에서 한 행동이라도 풍습을 모르면 실수가 될 경우가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귀하는 한국에서의 근무가 1년도 아직 안 되었으니만큼 신중히 하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여기에 있는 그랜트 씨를 포함한 귀하의 참모들이 그런 점에서 많은 조언(助言)을 해드려야 할 것으로 생각함.

더구나 지위가 낮은 사람의 실수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보통이나, 귀하와 같이 높은 지위의 인물이 하시는 실수는 마치 길이가 길고 높은 추(錘)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큰 반응과 정상으로 돌아가는 데 오랜 시간을 요하는 것임. (중략)

•위컴 : (前略) 한국이 국내안정과 군부의 안정으로 정치적 발전을 유지해 나가고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을 미국은 바라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미국은 강력한 자유우방을 더한층 보호하려는 의도를 갖게 되는 것임.

솔직히 말해서 미국의 여론은 우방이 강력하고 국민이 단합되어 안정을 유지할 때 그 국가를 우방으로서 손잡기를 원하는 것이지, 그 반대로 혼돈과 불안정, 그리고 미국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정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는 포기하기를 바라게 되는 것임.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국이 발전해 가고 있고 국민과 군이 근면하고 인내하는 성격을 가졌다는 것과 우리가 이들과 계속 같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함.

(後略 - SCM 개최에 관한 전망, 차후 회합에 대한 의견 교환)



이희성 계엄사령관-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 대담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와의 대담내용>

○일시 : 80.5.18(일) 11:30~13:00

○장소 : 육본 접견실

○대담자 : 계엄사령관, 주한미국대사

○배석 : 윌리엄 클라크 정치담당 영사, 연합사 참모장 로젠크랜스 중장

○대담내용



5·17 비상계엄확대 조치를 보도한 1980년 5월18일자 《조선일보》.
•총장 : 상당히 놀라셨고 긴장된 표정이십니다.

•대사 : 그렇습니다. 빨리 만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귀하와 대통령 각하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미국 대통령께서는 5·17 결정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시하셨으며, 그 결정은 합법적인 한국 정부의 신뢰성을 희박하게 하고, 북괴도발 위협과 국민의 반발을 증대시킬 것으로 생각합니다.

놀란 것은 이러한 조치가 민간정부 당국과 충분한 협의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점이며, 더욱이 일찍이 표명된 바 있는 한미 상호 간에 중요한 협력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미국의 관심 표명을 무시한 것으로 보이는 점입니다.

이번 조치에 대한 미국민과 의회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며 또한 앞으로 한미 간의 여러 사업에 큰 영향을 초래할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계엄사령관님과 최 대통령 각하께 여기 드리는 원고를 직접 전달한 후에 공식성명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이 성명은 상당히 강력하게 표현되었으나 미국은 한국의 현 상황을 더 악화시키거나 방어력을 약화시키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양국 간의 관계는 앞으로 대단히 어려운 시기에 돌입하게 되었음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본인은 한국 국민과 우방들에게 민간정부 구성을 위한 총선을 위한 조속한 움직임이 재개되고 있음을 재확인케 하는 신속하고 공개적인 조치가 이룩되길 바랍니다.

미국의 앞으로의 태도는 계획된 5·20 국회가 개회할 수 있도록 하고, 3김씨의 석방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지금 전달한 성명 원고가 강력하나 상당히 자제한 것으로서 앞으로의 추이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국민에게 극히 중요한 일이 아니면 한국 방문을 제한하도록 조치하였으며 한국의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한 금명간 계획된 몇 개 경제사절들의 방한(수출입은행장 포함)은 취소될 것입니다.

또한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한 한미 간의 기타 여러 분야에 걸친 협력관계에 큰 영향이 미칠 것이며 금일 방문은 본국 정부 지시에 의한 것이지만, 본인 자신도 매우 실망하였습니다. 본인과 한국 내의 여러 미국인들은 한미 간의 관계를 돕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으나 별로 성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예로 작일 16:00시 청와대를 예방하였으며 현 사태를 논의한 바 있으나, 이번 조치에 대하여 전연 언급이 없었다가 학생소요 사태가 아무리 심각했더라도 30분 후에 그런 결정이 이루어진 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작일의 조치에 따라 앞으로 계엄사령관께서는 직접 대통령께 보고하고 지시를 받으시게 될 것으로 아는데, 두 가지 문제를 구체적으로 질문하겠습니다.

첫째는 앞으로 본인은 누구를 공식적으로 접촉하여야 하며 누구와 업무를 수행하여야 하는가 하는 점과, 둘째는 알려진 바에 의하면 김대중, 김종필, 김영삼씨 등 수 명의 지도급 정치인들이 구속되었다고 하며, 후에 김영삼씨는 구속되지 않았다고 들은 바 있는데, 그 점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총장 : 귀하가 접촉하고 상대해야 할 사람은 당연히 외무부 장관입니다. 두 번째 질문하신 정치인 문제는 구속이 아니고 단순한 연행조사이며, 조사대상은 근간의 학생소요를 격화시키고자 한 배후조종 혐의자와 과거 박 대통령 집권 당시 부정축재로 국민의 지탄을 받던 인사들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여 건의를 수락하였고 최 대통령 각하의 승인을 득(得)한 후 조치한 것입니다. 대사께서는 작일의 비상조치에 따라 본인의 권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고 있는지요?

•대사 : 그렇습니다. 작년 10·26사태 이래 과도정부의 수립 및 새로운 지도체제 구성, 12·12사태와 육군 지휘구조의 변화, 그리고 중앙정보부장 서리의 겸임 발령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과도적인 비상상태하에 처해 있었으며, 그때마다 본인은 의구심을 가졌던 사실을 감안할 때, 현 상황하에서 결심권자는 누구이고 한국에 있는 미국인들이 군사 분야는 누구와 접촉하고 정치문제는 누구와 협의해야 할 것인지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총장 : 학자들의 해석은 이번 조치에 따른 계엄의 효과가 다르다고 하기도 하고 같다고 하기도 합니다. 제주도를 제외한 계엄하에서 계엄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르게 되고 전국 계엄하에서는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게 되나, 실제 행동은 차이가 없습니다. 행정부에 대한 감독권 행사 여부의 차이는 있으나, 감독권을 행사하여도 관계 장관이나 관서장을 통하여 행사되기 때문에 차이가 없습니다.

아울러 말씀드릴 것은 본인은 직업군인으로서 경제·외교·사회 분야의 업무를 직접 감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모든 문제는 본래의 관계 기관에 의하여 시행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번 계엄지역 확대의 목적은 12·12사태 이후 지금까지 언론검열과 범법자 처리에 국한시킨 것을 치안 확대와 국민의 기강 확립을 보다 강력하게 실시한다는 의지를 나타냄으로써 예방 효과를 얻고자 한 것입니다.

본인에게는 전화, 서신, 직접 면담으로 계엄하에서 학생소요가 격화되고, 경제위축과 북괴도발 위협이 증대돼 가는 현실을 방임할 수 있는가를 힐난하는 많은 시민의 의사전달이 있었습니다.

대사께서는 5.12 고려대학에서 있었던 서울의 각 대학 학생회장 회의의 결의문을 보셨을 줄 압니다. 그 내용을 세밀히 분석하여 보면 공산주의자들의 주의주장과 그 사고방식을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서, 그 내용을 보면 계급투쟁을 조장하고, 자유경제체제를 부정하며 대중폭동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했던 서강대학 및 성균관대학 학생들이 육군3사관학교에서 했던 언동 중에는 매우 위험한 현상을 발견하였습니다. 어느 학생은 “월남은 체제의 변화이지 멸망이 아니며 오히려 통일이 되어 좋지 않은가?”하는 질문을 하였으며, 이는 우리 남한이 공산화되어도 좋지 않은가 하는 말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고, 어떤 학생은 “북괴의 김일성체제와 대한민국의 민주체제의 중간체제를 만들어 점진적으로 통일해 가는 것이 좋지 않은가?”라든가, “미국, 일본 등 자본주의 국가의 예속하에 있는 한국의 경제체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의 질문을 공공연히 하였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와 같은 언동을 하는 학생들은 이제 대학 입학 2~3개월이 지난 1학년생으로서, 과연 누가 이런 공산정치 교양을 시켰는가 질문하였던바, 그 50%가 선배들로부터, 20%는 대학 내 서클활동을 통하여 공산주의 교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본인은 크게 놀란 바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한 사고를 좋게 생각하는 학생이 전염병과 같이 급속도로 확산되어 가고, 날이 갈수록 그 도가 더욱 격화되어 갈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이를 조속히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제2의 월남이 될 것이 명약관화하여졌습니다.

학생소요를 진압하는 데 가용한 병력은 양평의 1개 사단과 수색의 30사단 2개 연대, 후방지역에는 7개 공수여단과 포항의 2개 해병여단에 불과합니다. 이화여대에서 있었던 100여 명의 학생대표들의 주장은 대통령으로서도 만족하게 답변할 수 없는 요구가 많고, 이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5.22 이후의 학생시위에는 고등학교 학생들도 합세할 징후가 보이고 있으며, 이 경우에는 10개 사단의 병력을 투입하여도 진압이 곤란하고, 북괴는 이러한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와 같은 학원사태로 인하여 각군별 지휘관 회의와 국방장관이 주재하신 각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학생소요의 심각성이 토의되고 각급 지휘관의 의견을 종합하여 작일의 조치를 건의하게 된 것입니다.

작일 청와대에서 대사에게 사전 언급이 없었던 것은 국방부 회의를 마치고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에 도착하였을 때 대사께서 대통령 각하와 면접 중에 계셨고 대사가 떠나신 후에 장관과 본인의 건의를 들으시고 장시간에 걸친 토의와 협의 후에 결정되었기 때문에 대사께 사전 언급이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군인이 민간정부 대신 군사정부를 수립할 것인가, 또한 내년 중반까지 약속한 제4공화국의 발족을 위한 정치발전 일정공약을 준수하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는 것이 아닙니까?



1980년 9월 1일 전두환 대통령 취임 축하연에서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왼쪽)가 전두환 대통령에게 축하인사를 하고 있다.
•대사 : 어느 정도 맞는 말씀입니다. 본인은 귀하를 존경하며 귀하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시는 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본인 자신이나 미국 정부는 한국이 미국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여 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대한 지식과 한국의 사정을 한국 국민만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미국 민간인이나 군인 중에는 한국이나 비율빈(필리핀-편집자 주) 등 몇 개 국가가 미국의 뜻대로 발전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중요한 것은 미국의 국가적 관심은 한국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한국이 발전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한국의 방위는 미국의 국가 이익에 큰 관련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한미 간의 공동방위 공약은 정치적인 안정 위에 이룩될 수 있는 것이며, 정치적인 안정은 절대적인 질서유지와 국민의 여망인 정치적인 발전이 균형 있게 추진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본인이 접촉한 여러 한국의 군부 인사들은 학생들의 소요가 진정되고 질서가 회복된 가운데 정치발전이 이룩되기를 희망하고 있음을 이해합니다.

어떤 한국 정치인은 본인과의 대화에서 최 대통령께서 천명하신 정치발전 계획을 좀 더 조속하고 좀 다른 방향으로 유도되기를 주장하는 것을 보았으나, 본인은 그의 성급함과 최 대통령의 계획이 합리적이란 점을 지적한 바도 있습니다.

작일의 결정에 따른 결과는 역사가 후일 심판해 줄 것입니다. 다만 총장님께서 이해해 주실 것은 자기보다는 한국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정치적인 조치가 질서유지와 약속된 정치발전이 계속된다는 점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총장 :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 군부나 정부는 우리의 가장 신뢰하는 우방인 미국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나라가 공산 위협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생존해 가는 데 당면하는 여러 문제들의 심각성과 미국이 싫어하는 심각성을 비교하게 됩니다.

나아가서 우리나라가 공산화될 위험이 절박할 경우, 우리는 미국이 싫어하는 일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환언하여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나라가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공산화될 수는 없는 것이며, 아마도 그런 것이 미국이 원하는 바는 아닐 것으로 압니다.

최 대통령 각하께서는 외교 전문가이시며 매우 신중하시고 미국민과 미국 정책을 잘 이해하시는 분으로서 그분이 납득하신 합리적인 결론을 기초로 한 이번 조치는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번 조치는 대통령 각하가 심사숙고한 연후에 결정된 것임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오후에 대사는 대통령 각하를 만날 것으로 짐작됩니다. 앞으로 위컴 장군이 귀임하면, 군부 문제는 종전대로 국방장관 및 합참의장과 계속 협의하고 대사께서는 종전대로 외무부 장관과 협의하시는 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우리 국민의 간절한 소망인 진정한 애국자에 의한 정치풍토의 조성과 부정부패 특히 권력형 부패자의 척결은 계엄하에서만 가능하다고 우리 국민은 믿고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다른 의견이 없으시면 이 자리를 빌려 결론적으로 본인의 확고한 신념을 천명하고자 합니다. 본인은 한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같이 군사혁명의 연속과 같은 악순환이나 학생들의 의사에 의해 강요된 정부 전도(顚倒)와 혼란의 악순환으로는 절대로 이룩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으며, 본인이 현직에 재임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군사혁명이나 학생들의 소요에 의한 정부 전복은 허용되지 않을 것을 굳게 다짐하고 약속하는 바입니다. 금일의 대화는 상호 간에 매우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본인의 활동이나 조치 가운데 이해되지 않는 사항이 있으시면 하시(何時)든지 찾아주시거나 대사관을 방문하여 토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사 : 장시간 진지한 대화에 감사합니다.



전두환-브루스터 CIA責
<브루스터 美CIA責 當部 부장님 禮訪결과>

○일시 : 5.18 17:30~19:15

○장소 : 비서실

○참석범위 : 한국 측 - 부장님, 외사국 외사1과장 이철현, 미국 측 - 브루스터 미 CIA책, 켄 박 미CIA직원

○대담내용


1. 예방목적

- 부장님 예방 목적은 하기(下記) 3개항

첫째, 계엄확대조치에 대한 미 정부 성명 내용 전달.

둘째, 글라이스틴 대사의 이희성 계엄사령관 및 최광수(崔侊洙) 청와대비서실장 예방 시 전달된 내용 통보.

셋째, 5·18조치 배경에 대한 부장님 견해 청취.


2. 비상계엄확대조치(5.18)

<브루스터>

○5·18조치와 관련.

- 하후(何後- ‘向後’의 誤記로 보임. 이하 같음-편집자 주) 정국 동향 및 5·20 임시국회 개최 여부.

- 여당 정치인 연행(連行) 목적.

- 하후 정치발전 추진 여부 등에 관한 견해 피력 요망.

<부장님>

○견해 표명에 앞서 친분관계인 브루스터 씨처럼 여타 주한 미 기관원들도 본인 설명에 대한 회의(懷疑) 또는 불신 태도는 지양(止揚)해 주기를 희망함.

○79.10.27 및 5.18 비상계엄과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코저 함.

- 10·27 비상계엄은 제한지역 대상. 국방장관 지휘하(下) 계엄사령관 주관(主管).

- 5·18 확대비상계엄은 대통령 지휘하 계엄사령관 주관.

- 전시(前示) 양(兩) 계엄하 계엄사령관은 행정·사법부에 대한 감독권 보유.


3. 여당 정치인 연행목적

<브루스터>

○5·18조치(오늘날에는 신군부가 1980년 5월 17일에 병력을 동원해 국무회의에서 계엄확대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한 후 이를 발표한 날짜를 따서 5·17사태라고 하고 있으나, 이 기록에서는 확대계엄령 발효일자를 기준으로 5·18조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편집자 주)와 동시 다수 여야 정치인 연행 조사 문제에 대해 카터 대통령 및 미 정부 수뇌들의 관심은 지대하며 글라이스틴 대사와 본인도 역시 동일한바, 그들의 연행 조사 목적에 대해 알고자 함.

<부장님>



중앙정보부장 서리 시절의 전두환 전 대통령.
○연행 조사 목적은 이들에 대한 국민 의혹 여부를 규명, 다음 4가지 범주로 구별하여 조사 결과 혐의가 있을 경우, 의법(依法) 처단할 것이며, 무혐의 시는 방면(放免)조치 위계(爲計)임.

- 첫째, 김대중과 같은 학생소요 배후 조종 인물.

- 둘째, 공산주의 용어 사용 및 선동 주모(主謀) 종교인.

- 셋째, 고(故) 박 대통령 생존 시 주요 정치 요직을 담당했던 인물들의 권력남용 및 부정부패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김종필, 이후락, 김치열, 박종규 등 다수.

- 넷째, 대부분 도주 상태로서 경찰당국이 그 명단을 보유하고 있는 학생데모 주동자 다수.

○조사 결과 무혐의 인물은 국민 의혹을 벗는 계기가 되며, 혐의 대상자는 의법 처단될 것이고, 부정축재자 중 방위성금 기탁자에게는 방면조치 등을 강구(講究)할 계획인바, 이는 대통령 각하 재가(裁可)를 필요로 함.

<브루스터>

○하후 데모 저지 책임은 경찰이 계속 담당할 것인지, 아니면 군이 담당할 것인지에 대한 견해 여하(如何).

○버스 탈취 경찰 살해범 체포 여부.

<부장님>

○경찰은 지난 2개월 반 동안 데모 저지에 전념해 온 결과, 극도의 과로(過勞) 상태에 있어 사회 치안 확보 미흡은 물론 버스 탈취 경찰살해범 체포도 지연되고 있는 실정.

○다행히 TBC TV가 버스탈취범 2명 중 1명의 선명한 사진을 포착, 체포 직전이며, 여타 1명도 수배 가능.

○하후 학생데모 저지 책임은 군인이 전담하고 경찰은 치안 확보 책임만 담당.


4. 계엄의 정치발전 파급 영향

<브루스터>

○계엄 성격에 대한 부장님 설명으로 충분히 이해 가능.

○헌법개정 작업, 국회 활동 및 정치발전 계획 등에 대한 영향, 5·18조치의 파급 영향 여하.

<부장님>

○동(同) 문제 답변 전 미국인의 객관적 입장에서 지난 5.14~15 양일의 학생데모로 인한 사회혼란 상태하에서 민주발전 가능 여부 여하.

<브루스터>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앞에서는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데모 과격화는 정치발전에 저해된다고 사료(思料).

○글라이스틴 대사나 미 정부 관리 대부분은 정부의 데모 저지 노력에 호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데모로 인한 정치발전 계획 차질(蹉跌) 불원(不願).

<부장님>

○미국 국민은 학생데모 파급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반면, 우리 국민들은 파급 영향을 과대평가.

○최근 공산월남 치하에서 석방된 한국 외교관들의 말에 의하면 월남 패망(敗亡)의 주역이었던 데모학생, 승려, 천주교 신자들이 최근 공산정권에 의해 수용소에 대거 투옥(投獄)되고 있다 함.

○전 정부 관리 및 그 자녀까지 투옥됨은 물론, 전 수상을 역임한 인사가 아사(餓死)하고 있는 실정으로서 그들이 과거 데모행동을 뉘우치나 이미 때가 늦었음을 통감, 비통해 하고 있다 함.

<브루스터>

○미국은 한국 학생데모를 지지해 온 바 없고 학생 주장이 무리라고 믿고 있으며, 데모에 대한 정부 저지책에 대해 찬의(贊意)를 표해 왔음.

○소수(少數) 강경학생 주동에 의한 데모 과열 현상으로 확신.

<부장님>

○데모 주동자 중 온건학생들의 정보 제공 협조를 받고 있음.

○본인은 과거 30년간 학생문제를 주시해 온바, 대다수 순수한 학생 주장이 소수 강경학생 주장에 눌리고 있음을 목격.


5. 미국의 대한(對韓) 입장.

<브루스터>

○미국은 금일(今日) 글라이스틴 대사가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 언급한 바와 같이 소수 한국인들의 미국 정부 간여 요망을 내정간섭으로 간주, 거부하고 있음.

○한국의 맹방(盟邦)으로서 대한방위공약의 성실한 이행을 위한 미국의 대한(對韓) 희망 사항은 현 정부와 군부가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가운데 정치발전을 이룩하는 것임.

<부장님>

○미국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

○민주화를 위한 정치적 안정과 국민의 불안감 해소 노력을 경주(傾注)하고 있으며, 이의 일환으로 5·18 계엄확대조치를 위하게 된 것임.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유일한 길은 국민생활 안정 도모에 있으며 미국처럼 인반(隣邦) 캐나다로부터의 안보적 위협이 없을 경우와는 달리 한국은 북괴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대처해야 함.

○극렬 데모 주모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면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한국의 여건 타개는 물론 북괴 위협은 면치 못할 것임.


6. 최근 사태 전망

<브루스터>

○학생데모 재연(再燃) 가능성에 대한 전망과 이에 대한 정부 대응조치에 대한 견해 여하.

<부장님>

○5·18조치로 학생들이 크게 위축되어 있어 앞으로 1~2개월 내에는 데모 재연 불가능시(不可能視).

○그러나 학생데모 주동자들이 비밀리에 계속 영등포 로터리, 신설동 로터리 등 집합장소를 명시, 학생 선동을 계속하고 있음.

○5·18조치에도 불구, 광주시(光州市)에서 소수 학생데모가 발생, 특전여단 소속 병력을 급파한 바 있음.

○학생데모에 고교생 가담은 없었고 근로자와 국민들의 동조가 없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임.

○5.17 고교생가담 데모가 계획되었으나 동 사실을 사전 탐지. 5.17 오전 육·해·공군 지휘관 회의를 거쳐 그 결과를 신 국무총리(신현확 국무총리-편집자 주)에게 보고 후 각하의 재가를 얻어 당일 밤 10시 비상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확대조치 결정.

○육·해·공군 지휘관들은 이란·월남 양국의 국가 비운(悲運)을 목격한 경험에 따라 최근의 학생소요 악화에 대한 지대한 불안감 팽배로 데모 저지 방안 강구 시급성 인정.

○5.21 혹은 5.22 학생데모 발생 시 고등학교 학생마저 가담하게 된다면 전방 군병력 동원 없이 수경사, 경비사, 특전사, 20사단 병력 등을 제외한 후방 방위 업무를 담당한 군병력(2500~3000명)만으로는 도저히 데모 저지 불가능.

○데모 악화에 대한 우려와 군의 데모 저지 불가피성을 인정한 최 대통령 각하는 중동 방문 후 귀국 즉시 청와대 심야대책회의에서 비상계엄확대조치 필요성 인정.

<브루스터>

○5·18조치 불가피성에 대한 부장님 설명에 감명받은 바 크며 이를 중심으로 본국 정부에 보고 위계(爲計).

<부장님>

○계엄확대조치 배경에 대해 몇 가지 부언(附言)할 것이 있는바, 지난 5.9경 고려대 학생 총회 결의 사항 중 용공주의 용어로 대정부(對政府) 비난.

- 예를 들면, 외세배격, 매판(買辦)관료·매판재벌 타도, 대 미·일 종속적 경제구조 탈피, 자유경제체제 부정, 계급투쟁에 의한 민중봉기 주창 등임.

- 또한 육군3사관학교 1학년 생도가 교관에게 월남의 경우 공산화되었어도 월남민족이 상존(尙存)하고 있듯이 한국도 김일성과의 타협하에 조국통일된다면 민족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허무맹랑한 의견 제시.

○이러한 사관생도 중 50%는 선배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며 30%는 외부 불온 유인물 습득 결과로서 지난 5.17 서울대, 서강대에서 발견된 유인물에는

- 유신 잔당(殘黨)은 인민의 적.

- 미 제국주의 한국 철수.

- 사회주의국가 건설 등 공산주의 용어 살포(撒布).

○중앙정보부 대북괴 전문분석가 견해에 의하면 전시(前示)한 유인물은 북괴 발간물이 아니고 국내에서 염가로 제작된 것이며 불온용어는 2회 정도 월북(越北)하여 북괴 교육을 받은 자의 소행으로 판단된다고 함.

○5.16~17 양일간 이화여대에서 개최된 학생총회 결의 사항 중

- 5.20 계엄해제 요구.

- 각하 시국(時局) 단안(斷案) 주시.

- 신 국무총리, 전 정보부장 제거 등의 슬로건 채택과 정부가 이들의 요구를 무시할 경우, 5.21 전국적 대규모 시위 결정이 포함되었음.

○‘민주발전’이라는 용어는 한국에 해당되는 용어가 아니며 공산주의자들이 식민제국주의 타도 용어로 사용하는 용공주의적 용어로서 이란·사우디·쿠웨이트 등과 같은 왕국이 왕정(王政)에서 민주정체(政體)로 전환될 시 사용되는 용어임.


7. 부장님 당부 사항

<브루스터>

○미국과 한국의 환경에 적응될 수 있는 민주화가 필요하며 그 나라의 정부제도는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됨.

<부장님>

○한미 양국을 비롯 국제적 공통현상으로서 그 나라 나름대로의 국민 불만이 있는바, 주한 미 기관장들은 일부 한국민의 대정부 불평사항만을 듣고 미국의 대한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기 바람.

<브루스터>

○부장님의 견해를 반영, 본국에 정무(政務) 보고 위계이며, 일부 주한 미 기관 간부들이 편파적(偏頗的) 견해를 갖는 것은 부장님과 같은 개인 친분 관계 없이 사건 자체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하기 때문임.

○끝으로 미국의 대한 관심은 정치적 안정 속에 정치발전 거양(擧揚)과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 이행에 차질 없는 ‘우방 한국’이 되어 주는 것임.

<부장님>

○카터 대통령을 위시한 미국 정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우리 정부는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란과 같은 정국이 없도록 학생데모 악화를 방관하지 않을 것임.

○현 한국 정부가 10·26사태 이후 지나친 관용으로 많은 정치범(政治犯)을 석방한 결과 이들이 구심점이 되어 사회 혼란 야기를 자초했다고 사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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