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7

무국적 동포 인권 누가 보호해줘야 하나 - 경향신문 2012

[사설]무국적 동포 인권 누가 보호해줘야 하나 - 경향신문
사설  무국적 동포 인권 누가 보호해줘야 하나
입력 : 2012.12

조선적(籍) 재일동포 3세 정영환씨의 ‘여행증명서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이르면 다음달 내려진다고 한다. 정씨는 2009년 서울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오사카총영사관에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으려다 거절당하자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하고, 2심에서는 패소했다. 이번 선고는 재일 조선적 동포의 지위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단이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과거·현재·미래 구성원, 즉 ‘국민’의 진정한 의미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갖게 한다.

이제까지 정부는 일본에 귀화하지도, 남한·북한 국적을 취득하지도 않은 조선적 재일동포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 정씨 사건이 말해주듯이 이들을 무국적자로 보고 여권 대용의 임시적인 여행증명서를 발급해 국내 입국을 허용해왔다. 반면 한국 남성과 결혼해 ‘조선적 신부 1호’로 불린 리영애씨는 ‘조선적은 외국인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법무부에 의해 외국인 배우자 비자 신청이 거부된 바 있다. 이들은 우리와 똑같이 조선시대에는 ‘조선 백성’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황국신민’이었다. 하지만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국민이 된 우리와 달리 이들은 일제 패망 후 이미 없어진 조선 국적으로 남았다. 한국과 일본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의 ‘디아스포라적 삶’을 가슴 아파하기에 앞서 실망감이 더한 것은 그들의 고통을 한·일 두 국가가 제공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정부의 애매모호한 태도의 배경에 망국의 과거와 더불어 분단의 현실 또한 작용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적 동포에 대한 친북 논란과 한국 국적 취득 권유 등이 그런 현실을 반영한다. 여행증명서를 발급하면서 국적 전환을 종용하거나 이를 조건으로 하는 관행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적했듯이 인권 침해의 소지를 안고 있기도 하다. 이는 국가가 저지른 과거·현재의 과오뿐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 가치까지 외면하는 일이다.

정씨 사건 상고심의 핵심 쟁점은 ‘조선적이 어느 나라 국적인가’라고 한다. 어느 나라 여권도 없어 한국에 갈 때는 여행증명서, 일본으로 돌아갈 때는 재입국허가서를 받아야 하는 3만~4만명으로 추정되는 조선적 재일동포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이자 역시 무국적 상태에 있는 사할린 한인의 지위에도 영향을 미칠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과거·현재·미래가 농축된, 그런데 자유롭게 갈 수도 없는 모국을 둔 이들은 누구인가. 어느 나라가 이들을 보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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