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4

통일을 말하자, 조선을 말하자 - 정영환 교수 인터뷰 > 동포소식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통일을 말하자, 조선을 말하자 - 정영환 교수 인터뷰 > 동포소식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통일을 말하자, 조선을 말하자 - 정영환 교수 인터뷰
몽당연필
23-10-05 02:51 | 401 | 0




조선반도의 분단을 결정지은 6.25전쟁 정전으로부터 70년. 분단과 전쟁은 재일조선인의 삶에 여전히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법적 처우를 통해 재일조선인 사회에 분단을 가져왔다. 그 시작과 이후 전망을 저서 『역사 속의 조선적』(이분샤, 2022/ 국내 미출간)을 집필한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43)에게 들었다.



세상을 떠난 1세, 2세의 마음

― 재일조선인의 대다수는 조선반도 남쪽 출신이고, 조국이 해방되고 조선이 머잖아 통일되리라는 마음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길어지는 분단 체제 아래, 생이별한 부모 형제와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1세, 2세가 수없이 많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1921년 경상남도 고성에서 7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남쪽에도 친척이 있었고, 공화국으로 귀국한 누나도 있어요. 할머니도 같은 고향인데, 해방 후에 고향에 간 적은 없었을 겁니다. 할머니의 부모님에 대해서는 생전에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고2 때,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제 아버지는 일본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우리말을 하지 못했고, 고향에도 한 번도 간 적이 없었어요. 이런 1세나 2세가 많았습니다.

할머니가 왜 조선적을 고집했는지, 아버지가 ‘조국’에 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지금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고향을 찾아가고 싶다, 모국에서 배우고 싶다는 소망과 신념을 꺾고, 존엄을 저버리면서까지 한국에 가야 하는지 고민과 갈등을 느꼈던 사람도 적지 않았겠지요. 통일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맹세를 가슴에 품고 ‘가지 않는’ 삶을 택한 1세가 많았을 겁니다.

해방 민족으로서 취급받지 못했다

―과거에 외국인등록증명서의 국적 표시란이 ‘조선’, ‘한국’으로 나뉘어버린 것이 재일 코리안 사회의 분단, 특히 ‘의식의 분단’을 불러온 것 같습니다. ‘어느 쪽 사람인지’ 확인하는 일본의 조선인 정책은 어떠한 것이었나요?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조선인을 ‘해방 민족’으로서 처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1947년 5월에 시행한 외국인등록령의 적용에 한해 ‘외국인’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조선인, 대만인은 국적(출신지)란에 ‘조선’, ‘대만’으로 기재하도록 지시합니다.


최초의 문제는 일본 정부가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적게 하면서도, 조선인을 일본국적으로 간주했던 점입니다. 당시 조선인은 ‘해방 민족’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외국인등록령을 만들고, 나아가 출신지로서의 ‘조선’이라는 기재만을 허용한 것이죠. 이것이 조선적의 기원입니다.

조선반도의 남과 북에 각각의 정부가 수립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1949년부터 1950년에 걸쳐 외국인등록증의 국적란에 ‘한국’으로 표기할 것을 요구합니다. 일본 정부는 당초 그것을 꺼렸습니다. 자신들이 관리하는 조선인에게 한국의 손이 닿을 것을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식민지주의 대 반공주의의 싸움이었죠. 최종적으로는 GHQ의 의사대로 국적란에 ‘한국’으로 기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기재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1950년에 ‘한국’ 표시를 인정했을 때는, 이것이 곧바로 한국 국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해석을 보이는데, 실제로 한국적과 조선적의 취급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1952년에는 한일회담 결과, 양 정부는 조선인의 국적을 ‘한국’으로 통일하기로 일단 합의합니다. 일본 정부는 조선반도의 분단과 전쟁에 관여하고, 또한 재일조선인의 법적 지위 문제까지 분단을 끌어온 것입니다.


조선적 취득을 기뻐하는 동포들 (1970년 10월, 요코하마 / 사진집 『동포』(김유 지음)


평화통일을 염원한 동포들

국적 강요에 맞서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공화국을 조국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물론, 중립 입장인 사람들 중에서도 반대가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인상공회연합본부는 1952년 1월 18일에 ‘재일조선인은 남북정부로부터 어느 쪽이든 국적을 강요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조국의 분열을 고정화하고, 민족의 멸망에 일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는 청원서를 일본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한일회담이 청구권 문제로 결렬되면서 결국 이 문제는 보류되었습니다. 조선적이 오늘날 남아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모든 조선인이 한국적이라는 해석을 유지했습니다. 전쟁 끝에 조선반도는 한국에 의해 통일되리라고 상정했기 때문입니다.

정전협정이 성립하고, 일본 정부의 이러한 예상은 성립하지 않았지만, 한국적과 조선적의 처우 격차는 변하지 않았고 1965년 한일조약에 의해 굳어집니다. 그 결과 재일조선인 커뮤니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분단을 끌고 왔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폭력의 시초’였다고 생각합니다.

‘닻’으로서의 조선적

― 우리 재일조선인은 조선반도의 분단 체제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요?

분단 체제는 재일조선인에게도 거대한 장벽입니다. 특히 조선적인 사람은 그것을 실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을 보더라도, 한국에 입국이 허가되지 않기도 하고, 재외 연구로 영국에 체류했을 때는 공화국 여권으로 도항하기도 해서, 입국 시 형사에게 집요한 취조를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비자 자체가 나오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 조선적이 ‘족쇄’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선적으로서 느끼는 경험이 조국을 분단시키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억압을 지속시키는 폭력의 실상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조선적은 식민지주의의 역사와 함께, 우리의 조국이 통일로 나아가는 과도적 과정에 있음을 상징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적, 일본적인 동포들도 모두 과거에는 조선적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조선인상공회연합본부가 일본 정부에 청원서를 제출했음을 보도한 ‘통일민보’ 1952년 2월 22일 자 (필자 제공)


그러한 선택을 하게 했던 이들의 ‘폭력’을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 속에서 조선적은 이러한 폭력에 저항하고,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기 위한 버팀목이 되어온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에서 조선적을 ‘닻’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에 진지하게 마주하여 일본 정부는 분단에 가담하는 일을 멈추고, 조선인의 통일과 자결의 의사를 존중하고, 식민지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바탕에 둔 재일조선인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또한 남북 정부는 재일조선인과 협력하여 자유 왕래 등 현안 문제를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20대 무렵부터 역사를 연구했습니다만, 언제나 재일조선인의 역사에 힘을 얻었습니다. 조선 민족의 해방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발자취에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희망의 자원’(E· 사이드)이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배우고, 동포와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현대사를 되찾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동포들은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힘차게 살아왔으니 그 역사를 자랑스러워하고 널리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25전쟁을 끝내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본국, 해외와 함께 조선인이 살아가는 전제 조건은 달라질 것입니다. 7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분단’을 살아온 재일조선인이야말로 통일을 절실히 이야기하고, 그 길을 개척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 정영환 : 1980년 치바현 출생. 치바조선초중급학교, 도쿄조선중고급학교, 메이지가쿠인대학 법학부 졸업. 히토쯔바시대학원 사회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전공은 조선근현대사, 재일조선인사. 저서로는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푸른역사, 2019),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푸른역사, 201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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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月刊イオ>(월간이어) 2023년 7월 호의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몽당연필 번역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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