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5

“태어난 후 어디에도 집이 없는 기분”…재일조선인의 아픔 - 2018

“태어난 후 어디에도 집이 없는 기분”…재일조선인의 아픔 - 경향신문

“태어난 후 어디에도 집이 없는 기분”…재일조선인의 아픔

2018.09.18 21:30 입력
이영경 기자


재일조선인 소설가 최실, ‘지니의 퍼즐’로 일본문학 신인상 석권



재일조선인 3세 소설가 최실은 데뷔작 <지니의 퍼즐>로 일본 군조신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재일조선인이 겪는 차별과 폭력의 실상이 잘 드러난 작품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은행나무 제공

데뷔작으로 일본 군조 신인문학상, 오다사쿠노스케상, 예술선장 신인상을 석권했다. 아쿠타가와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재일조선인 3세 소설가의 첫 장편소설 <지니의 퍼즐>(은행나무) 이야기다. <지니의 퍼즐>은 재일조선인 3세 소녀가 성장하며 겪는 차별과 폭력, 갈등과 방황을 그린 소설이다. 실제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어가 있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소설가 최실(33)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일본에서 북한 뉴스가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 시절 대포동 미사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지금도 일본에는 ‘조선학교’ 하면 ‘북한’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재일조선인 처한 모순적 현실에
불화하고 갈등하다 치유되는
작가의 자전적인 성장소설




최씨의 말대로 소설은 1998년 북한이 처음으로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재일조선인 3세 박지니는 일본, 한국, 북한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존재다. 일본 초등학교를 다니지만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식민지 시대 한국 역사를 이야기하며 “그래, 이건 박지니 같은 사람들 이야기네”라고 말한다. 학교 친구들은 지니에게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마!” “조센진”이라고 말한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설립한 조선학교로 진학하지만 한국어가 서툰 지니에게 그곳도 편한 곳은 아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가 걸린 교실은 어딘지 ‘틀린 풍경’처럼 보인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지니는 평소처럼 치마저고리 차림의 교복을 입고 등교하다 지하철에서 폭력과 성추행을 당한다. 학교에는 테러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아이들은 교복 대신 체육복을 입고 등교하고, 독극물이 섞여 있을까 봐 수도꼭지는 막아놓는다.


“조선학교에 1년 반 정도 다니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 대포동 미사일 사건도 그중 하나입니다. 한동안 체육복을 입고 등교했고, 수돗가 수도꼭지엔 접착테이프가 붙어 있었습니다.”


끔찍한 폭력을 당한 지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교실 앞에 걸려 있는 초상화의 존재를 견딜 수 없다. 지니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분노의 창끝은 아이들이 위험으로 내몰리는 데도 변함없는 조선학교를 향한다. 지니는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떼어내 창밖으로 던져버린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길 바란 것뿐인데… 내가 맞서야 할 상대는 어디일까요. 누구일까요. 내가 틀린 거예요? 나는 이름을 잃어버렸어요. 더는 일본 이름도, 한국 이름도, 어느 쪽도 말할 수가 없어요.” 지니는 이후 미국 하와이, 오리건주 학교를 전전한다.



작가는 실제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다. 작가는 “그걸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다. 일본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든 헤이트스피치와 폭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소설 중간중간엔 북한에 살던 지니의 외할아버지가 쓴 편지가 들어가 있다. 처음에 북한을 ‘아주 살기 좋은 나라’라고 썼던 외할아버지가 병원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일이 드러나며 ‘초상화의 나라’의 비참함이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소설은 재일조선인이 처한 모순적 현실을 세밀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지니라는 아이가 세상과 불화하고 갈등하다 누군가의 이해와 사랑으로 치유되는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도망칠 수 없는 과거가 들러붙어 있다’는 지니를 세상과 다시 화해하도록 돕는 것은 그림책 작가 스테파니다.


작가에게 재일조선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묻자 “태어나서부터 어디에도 집이 없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내가 있을 곳을 쭉 찾아 헤맸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어디에나 차별은 존재한다는 걸 실감한 무렵부터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며 “스무 살 즈음부터 ‘재일한국인’이란 자각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영어를 접하고 세계가 확장되면서 제 경험이 ‘특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위는 어둠에 잠기고, 이 비참한 생은 희미한 소리도 없이 끝나리라고 생각한 와중에도… 우리의 시는 끊없이 늘어나리라, … 두려워 마라. 이 세상은 교과서보다 예술로 가득하다.” 소설 속 구절처럼 <지니의 퍼즐>을 쓰는 과정 또한 작가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차별 실감 후 편안해져
난 지구인이라 일본·남북한 등
이 행성을 통째로 사랑”


자신을 ‘재일조선인’으로 규정짓는 걸 경계하는 듯한 작가는 자신을 소개할 때 ‘Earthling(지구인)’이라는 말을 쓴다며 “지구인이기에 일본, 한국, 북한은 물론 이 행성을 통째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작가에게 한국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여행도 여러 번 하고, 서울에서 1년 정도 살기도 했습니다. 뮤지컬 <헤드윅>은 세 번이나 봤어요. 서울에서 음식, 음악, 무대를 즐긴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어요. 명동 리어카에서 산 양말을 지금도 신고 있습니다.” ‘지구인’다운 경쾌한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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