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8

김파란 슬픔의 미학 : 바오 닌이 얘기한 '전쟁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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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미학

: 바오 닌이 얘기한 '전쟁의 슬픔'


바오 닌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해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래서 참전용사라는 이름은 그에게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닌 것이다. 이런 대량학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에게 전쟁은 참혹함 자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역사로 볼 때는 또 다르다. 세계 최강이라는 군대를 물리친 베트남. 프랑스와 미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을 위한 독립전쟁이었고 어마어마한 댓가를 치렀지만 승리했다. 민족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보자면 그들은 세계적으로 남을 승전을 한 것이다. 자긍심을 가질만한 전쟁이고 역사다.

그런데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은 전쟁의 참혹성 또는 미국의 학살을 주제로 해서 소설을 쓰기 보다는 그런 학살 전쟁이 가져온 그 시대 사람들의 트라우마, 또는 슬픔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럼 우린 이 소설을 좀 더 깊이 있게 읽기 위해서는 '슬픔' 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감정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슬픔이란 어떤 감정일까....그냥 풀어지는 감정이다. 무엇인가 허물어지고...바스라지고...가슴 사이로 무엇인가 뭉텅뭉텅 빠져나가서 주저앉게 되는 것..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잃어버리게 됐을 때..그 잃어버린 것이 내가 그냥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그것 없이는 나라는 존재가 살아갈 수 없는 소중한 것인데 그것이 이미 부서졌거나 또는 죽었거나 떠났다. 그래서 그 소중한 것은 내 가슴 속에 더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슬픔이다.

정리하면 슬픔이라는 것은 실제 내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을 잃어버린 상태지만 돌이킬 수 없고 되찾을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내 가슴 속에는 그걸 떠나 보내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점점 생생해지는 감정인 것이다. 이 슬픔이 사그라 들면 우리는 보통 절망과 좌절에 빠지게 된다. 내 슬픔에 사로잡힌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되돌아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엉거주춤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슬픔'이라는 감정을 염두에 두면 바오 닌의 무엇을 주제로 소설을 쓰고 있는지 가름해 볼 수 있다.

'전쟁의 슬픔'인 것이다.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은 전쟁의 승리, 전쟁의 격정 또는 전쟁의 참혹성, 전쟁의 분노 이런 것과는 그 궤가 전혀 다른다.

슬픔 안에는 희망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사랑이 들어가 있고, 추억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슬픈 것이다...

전쟁은 바로 그 모든 희망을 앗아갔다. 그런 전쟁에서 작가는 살아 남았다. 이것이 진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 나는 잊어버리기 위해 쓴다.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쓴다고...

그럼 여기서 우린 또 의문을 가져야 한다. 기록한다고 잊힐까? 그렇지 않다. 내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도 끊임없이 말했지만 잊히는 과정은 결국 치유와 회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정확히 기록하고 그것을 내가 정확히 분석해 놓지 않으면 치료나 회복의 단계가 불가능 한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그 치료를 위한 첫 번째 걸음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전쟁의 치유는 공동체적으로 또는 국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제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미국의 사과다. 공동체적으로는 이 사과를 바탕으로 이 시대 내전에 가까운 희생을 치렀던 이들의 정신적 치유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위해서는 전쟁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무엇을 앗아갔는지...그래서 우리는 이 슬픔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작가가 정확하게 써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오 닌이 말한 나는 잊기 위해서 적는다, 라는 표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우리는 용서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게 사과를 요구한다'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승전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베트남에서 전쟁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칭송받기 어렵다. 베트남 인민들이 그렇게 피를 흘린 해방 전쟁의 정체성과 대척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슬픔'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미군 병사에게도, 한국 병사에게도 적용된다. 민간인이 됐든 군인이 됐든 전쟁의 슬픔은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다. 여기에는 적군도 아군도 없다. 오로지 사람만이 있는 것이다. 이런 작가에 대해서 베트남인들 또는 비평가들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제국주의라는 엄청난 착취와 무력에 희생된 인민들의 정서를 무조건 민족주의라고 폄하하는 것은 또다른 문화적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걸 풀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다. 베트남에서 바오 닌은 끝까지 전쟁으로 짓밟히고 부서져버린 그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슬퍼한다. 바오 닌은 아주 잔잔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문학의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말하려는'슬픔'의 미학을 과연 얼마만큼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이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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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김영화
책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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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필경
저는 2009년 3월 15일 바오닌을 직접 만났죠.
바오닌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미국은 자국 영토 안에서 한 번도 전쟁을 치러 본 적이 없는 나라다.
어찌 보면 행복한 민족일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덜 성숙한 민족이다.
그들은 폭탄 하나 떨어질 때 그로 인해 생겨날 고통을 모른다.
그래서 게임하듯 전쟁을 치른다.“
제가 지은 책 <제국주의 야만에 저항한 베트남전쟁>에 바오닌을 서술한 쪽에 직접 사인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도 2번 더 만났습니다.
노벨상을 받아야 할 분입니다.
No photo description avail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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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송필경 예 선생님..
책을 다 읽고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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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필경
김파란 저는 베트남에 26번 가면서 수많은 끼엔과 프엉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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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쟁의 슬픔'을 통해 보는 공동체의 상흔

: 일본의 '사과' 필요없다고 외치는 쿨한 당신들께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은 참전 용사였다. 바오 닌의 대표작 <전쟁의 슬픔>의 배경이 되는 것은 2차 베트남 즉, 1965년부터 1975년까지 대항미 전쟁이었다.

그럼 여기서 간략하게 미국이 왜 베트남을 침공 했는지 간략하게 알아보자.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에서 벌어진 결전에서 호찌민이 이끄는 공화국군에 패배해 프랑스가 물러간 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더욱 적극성을 띠게 되었다. 미국은 '베트남'과 '프랑스' 간의 휴전이 아니라 엄밀하게 프랑스 패배임을 밝히며 1년 이내에 자유로운 총선거를 통한 베트남 평화적 재통일을 보장한 제네바협정을 일방적으로 깔아뭉갠 뒤, 웅오딘지엠 괴뢰정권을 날조함으로서 북위 17도선 이남의 남베트남 지역을 불법적으로 강점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미국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통킹만 사건'이라는 자작극을 통해서 베트남 침공 명분을 만들었다.

이 전쟁으로 이백만 이상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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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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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쟁의 슬픔'을 통해 보는 공동체의 상흔
: 일본의 '사과' 필요없다고 외치는 쿨한 당신들께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은 참전 용사였다. 바오 닌의 대표작 <전쟁의 슬픔>의 배경이 되는 것은 2차 베트남 즉, 1965년부터 1975년까지 대항미 전쟁이었다.
그럼 여기서 간략하게 미국이 왜 베트남을 침공 했는지 간략하게 알아보자.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에서 벌어진 결전에서 호찌민이 이끄는 공화국군에 패배해 프랑스가 물러간 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더욱 적극성을 띠게 되었다. 미국은 '베트남'과 '프랑스' 간의 휴전이 아니라 엄밀하게 프랑스 패배임을 밝히며 1년 이내에 자유로운 총선거를 통한 베트남 평화적 재통일을 보장한 제네바협정을 일방적으로 깔아뭉갠 뒤, 웅오딘지엠 괴뢰정권을 날조함으로서 북위 17도선 이남의 남베트남 지역을 불법적으로 강점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미국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통킹만 사건'이라는 자작극을 통해서 베트남 침공 명분을 만들었다.
이 전쟁으로 이백만 이상이 죽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철저한 수탈전쟁이고, 약탈전쟁이고, 자본주의 전쟁이었다. 고무라는 자원을 획득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베트남 침략을 감행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네이팜탄이라는 원자폭탄에 준하는 폭탄을 사용했다. 한 예로 유명한 전투에서 베트남 전사는 5천 명이 죽었는데 미군은 고작 150명이 죽었다.
이런걸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을 부르는 정확한 명칭은 '대량학살'이다.
전쟁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학살이었던 것이다.
바오 닌은 이런 전쟁에 참여해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래서 참전용사라는 이름은 그에게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닌 것이다. 이런 대량학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에게 전쟁은 참혹함 자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역사로 볼 때는 또 다르다. 세계 최강이라는 군대를 물리친 베트남. 프랑스와 미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을 위한 독립전쟁이었고 어마어마한 댓가를 치렀지만 승리했다. 민족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보자면 그들은 세계적으로 남을 승전을 한 것이다. 자긍심을 가질만한 전쟁이고 역사다.
그런데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은 전쟁의 참혹성 또는 미국의 학살을 주제로 해서 소설을 쓰기 보다는 그런 학살 전쟁이 가져온 그 시대 사람들의 트라우마, 또는 슬픔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럼 우린 이 소설을 좀 더 깊이 있게 읽기 위해서는 '슬픔' 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감정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슬픔이란 어떤 감정일까....그냥 풀어지는 감정이다.
무엇인가 허물어지고......바스라지고.....가슴 사이로 무엇인가 뭉텅뭉텅 빠져나가서 주저앉게 되는 것.....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잃어버리게 됐을 때.....그 잃어버린 것이 내가 그냥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그것 없이는 나라는 존재가 살아갈 수 없는 소중한 것인데 그것이 이미 부서졌거나 또는 죽었거나 떠났다. 그래서 그 소중한 것은 내 가슴 속에 더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슬픔이다.
정리하면 슬픔이라는 것은 실제 내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을 잃어버린 상태지만 돌이킬 수 없고 되찾을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내 가슴 속에는 그걸 떠나 보내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점점 생생해지는 감정인 것이다. 이 슬픔이 사그라 들면 우리는 보통 절망과 좌절에 빠지게 된다. 내 슬픔에 사로잡힌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되돌아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엉거주춤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슬픔'이라는 감정을 염두에 두면 바오 닌의 무엇을 주제로 소설을 쓰고 있는지 가름해 볼 수 있다.
 '전쟁의 슬픔'인 것이다.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 은 전쟁의 승리, 전쟁의 격정  또는 전쟁의 참혹성, 전쟁의 분노 이런 것과는 그 궤가 전혀 다른다.
슬픔 안에는 희망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사랑이 들어가 있고, 추억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슬픈 것이다.
전쟁은 바로 그 모든  희망을 앗아갔다.
그런 전쟁에서 작가는 살아 남았다. 이것이 진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 나는 잊어버리기 위해 쓴다.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쓴다고...
그럼 여기서 우린 또 의문을 가져야 한다. 기록한다고 잊힐까? 그렇지 않다. 내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도 끊임없이 말했지만 잊히는 과정은 결국 치유와 회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정확히 기록하고 그것을 내가 정확히 분석해 놓지 않으면 치료나 회복의 단계가 불가능 한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그 치료를 위한 첫 번째 걸음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전쟁의 치유는 공동체적으로 또는 국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제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미국의 사과다.
공동체적으로는 이 사과를 바탕으로 이 시대 내전에 가까운 희생을 치렀던 이들의 정신적 치유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위해서는 전쟁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무엇을 앗아갔는지, 그래서 우리는 이 슬픔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작가가 정확하게 써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오 닌이 말한 나는 잊기 위해서 적는다, 라는 표현은 일본군 피해자 할머니들의 '용서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게 사과를 요구한다'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승전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베트남에서 전쟁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칭송받기 어렵다. 베트남 인민들이 그렇게 피를 흘린 해방 전쟁의 정체성과 대척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슬픔'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미군 병사에게도, 한국 병사에게도 적용된다. 민간인이 됐든 군인이 됐든 전쟁의 슬픔은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다. 여기에는 적군도 아군도 없다. 오로지 사람만이 있는 것이다. 이런 작가에 대해서 베트남인들 또는 비평가들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제국주의라는 엄청난 착취와 무력에 희생된 인민들의 정서를 무조건 민족주의라고 폄하하는 것은 또다른 문화적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걸 풀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다. 베트남에서 바오 닌은 끝까지 전쟁으로 짓밟히고 부서져버린 그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슬퍼한다. 바오 닌은 아주 잔잔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나 내 생의 아픔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아픔이기에.... '
  -바오 닌 / 물결의 비밀 마지막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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