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부대는 왜 이스라엘 국기를 들었을까
2019-07-19 인남식
7월 17일 국빈 방문 중인 레우빈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특별기도회에 참석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이스라엘에서 열리는 국가조찬기도회에 3년째 참석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지만 종교 역사의 내막을 보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다. 두 종교의 뿌리는 같지만 '예수'의 인정 여부를 두고 유대교와 기독교는 앙숙 관계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수를 부정하는 유대교는 신약 성서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적십자사는 붉은 십자가가 아니라 붉은 색 다윗의 별(육각별 모양)을 쓸 정도다. 한 가지 더 의아한 풍경이 있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일부 참가자들이 성조기와 함께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나온 것. 이들은 왜 이스라엘 국기를 들었을까? 중동 지역 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가 그 배경을 설명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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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태극기 부대 시위에 간혹 이스라엘 국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궁금했다. 한미 동맹을 중시 여기는 분들이라 태극기와 성조기의 조합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의 별과 푸른 줄이 담긴 이스라엘 국기는 다소 생소했다.
이유를 짐작해보면 대략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 첫째는 이스라엘에 대한 동경, 특히 안보 문제에 있어서 거의 신화적 존재로 자리잡은 이스라엘 현대사 때문으로 보인다.
- 둘째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특수 관계에 우리를 포함시켜 삼각으로 대입하고 싶어 하는 정서 때문 아닐까.
네 차례에 걸친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대부분 승리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1967년 3차 중동전쟁은 절정이었다. 안보 위협이 늘 떠나지 않았던 우리에게는 이때부터 일종의 이스라엘 신화가 각인되었다. 2000년 만에 나라 되찾은 민족이라는 이스라엘 건국의 극적인 스토리와 불퇴전의 신화는 신화를 구성하는 좋은 소재였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 국기의 등장은 단순히 이스라엘 상승(常勝) 신화에 대한 동경이나 안보 위협 동질감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과 이스라엘간의 독특한 관계에 우리도 끼어들어가고 싶어 하는 연대감의 발로랄까? 그리고 그 연대감을 구성하는 한국 보수 개신교의 정서가 살짝 드러난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특수 관계
미국과 이스라엘은 누가 보아도 가장 가까운 나라다. 아랍 22개국이 온통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나서도 미국은 꿋꿋이 이스라엘 편이다. 그런데 희한하다. 두 나라는 기술적으로 보면 동맹국이 아니다. 한미동맹이나 미일동맹 같은 양자간 상호방위조약 또는 안보조약이 없다. 물론 나토와 같은 집단 안보조약에 함께 편입되어 있지도 않다. 동맹도 아닌데 그 어떤 동맹보다 더욱 강하게 연대한다. 이른바 인지적 동맹 (cognitive alliance) 론이다. 양국의 특수관계를 나타내는 조어(造語)다.
혹자는 이 같은 인지 동맹의 배경으로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죄다 권위주의 정권 투성이인 중동에서 거의 유일한 자유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나라이기에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냉전기 이스라엘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또 어떤 이들은 홀로코스트 당시 미국이 개입을 주저했던 데 대한 일종의 죄책감이 작동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다지 설득력 있는 해석은 아니다.
또 다른 해석이 있다. 이스라엘의 로비설이다. 미어샤이머와 월트가 던졌던 도발적 화두다.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이기에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국의 이렇게까지 가까운 이유를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이러한 일차적 설명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있다면 종교적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세대주의와 친이스라엘 정서
1967년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랍을 압도했다. 인근 아랍국의 영토를 점령했다. 요르단의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 (West Bank), 이집트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 그리고 시리아 영토였던 골란 고원 (Golan Heights) 등이다. 이 때 이스라엘 국민들만큼이나 가슴 벅찼던 사람들이 있다. 바로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었다. 중국 감숙성의 의료선교사였던 넬슨 벨 선교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인)는 이 날을 성서 예언 완성의 날이라 회상했다. 이스라엘에게 야훼가 약속한 땅이 회복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서는 미국 복음주의 계열의 개신교인들 중 소위 세대주의를 믿는 전통적 복음주의자들이 공유하던 정서였다. 벨 선교사는 특히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 장악했다는 소식에 주목하며 기뻐했다.
유대교인도 아닌 이들 기독교인들이 왜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점령을 이토록 기뻐했을까? 2000년여 년 전인 AD 70년에 로마의 장군 타이투스에게 멸망당했던 예루살렘이었다. 이후 뿔뿔이 흩어져서 디아스포라의 신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유대인들이 천신만고 끝에 1948년 5월 나라를 세웠지만 이들 복음주의자들의 눈에는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정작 솔로몬의 성전과 제2성전터를 무슬림에게 빼앗긴 것이다. 그랬다가 6일전쟁때 비로소 동쪽마저 자기 땅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이 기뻐했던 이유는 이들의 세대주의 (dispensationalism) 종말관 때문이었다. 세대주의 종말관은 이원적이다. 즉 기독교 신앙에 의한 종말의 역사가 진행됨과 동시에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도 진행된다는 것이다. 즉 7개의 세대 (dispensation)로 구성된 인류 역사의 마지막 단계는 기독교 종말의 완성과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이 겹쳐진다는 신학적 논지다. 즉 구원의 경륜이 혈통 아브라함과 영적 아브라함 두 축으로 병행하며 이루어진다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신의 구원 역사의 순방향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곧 종말의 실현이자 기독교 역사의 완성을 의미한다. 세대주의를 믿는 복음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의 아랍 점령, 영토 확장, 정착촌 등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들의 눈에는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극적으로 주변 국 영토를 점령하는 장면 자체가 신의 경륜이었다. 이른바 크리스찬 시오니즘 (Christian Zionism)의 기초다.
이스라엘 대미 공공외교의 전략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미국은 유보적 입장을 보였었다. 냉전 초기 소련과의 경쟁관계가 심화되면서 이스라엘 편들기에 섣불리 나섰다가 자칫 아랍 이슬람권의 저항에 부딪힐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냉전 전략의 설계자로 알려진 조지 케난 조차도 이스라엘과의 거리두기를 주장했었다. 트루먼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우호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아이젠하워는 유보적이었다. 이처럼 미국 대통령의 성향과 인식에 따라 양국관계는 변화를 겪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이스라엘의 정치인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국 행정부와 상관없이 미국을 이스라엘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조건들을 탐색했다. 그리고 이 세대주의 신학사조에 주목했다.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한 매력적인 도구였다.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주미대사로 부임한 이츠하크 라빈은 본격적으로 미국 신학자들과 만나기 시작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의 유명한 근본주의 목회자 제리 폴웰, 팻 분, 아니타 브라이언트, 팻 로버트슨 등을 초청하여 왜 이스라엘이 신의 섭리의 정점인지를 계속 강조했다. 특히 1971년 칼 헨리 박사가 주도한 예루살렘과 성서 예언 관련 컨퍼런스에 52개국 1500명의 성서학자들이 모여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벤 구리온이 직접 나서서 환영하고 예루살렘 회복이 신의 뜻임을 강조한다.
일련의 컨퍼런스에서 많은 신학자들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점령은 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세대주의 종말관의 마지막 완결 세대의 시작임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들의 다수는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이었다. 1967년 전쟁은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과거 블레셋을 멸절하던 구약적 사고에 의해서 정당화되는 논지가 확산되었다.
이때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의 특수관계가 공고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냉전기 안보동맹이나 경제 협력관계, 유대인의 로비 등도 분명히 양국을 잇는 중요한 린치핀이었다. 하지만 정작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축은 바로 종말론관련 이스라엘의 의미였다. 방위조약하나 없이 그저 군사비 지원 양해각서 밖에 없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세계에서 가장 끈끈한 동맹이라 칭하게 된 근거가 바로 이 신학적 종말론의 묘한 연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연대감의 확산
주류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동성애나 낙태 등의 국내 문제를 비롯, 대외정책에서는 반공주의, 기독교 정복주의 특히 이스라엘 친화 정책의 기조가 만들어졌다. 냉전 해체 후에는 반이슬람 정서도 빈번하게 생산한다. 카터, 레이건, 아버지 및 아들 부시 등이 복음주의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후일 카터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를 비판하다가 복음주의자들과 결별하게 된다)
미국 내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의 눈에 이팔 평화협상은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신이 허락해서 이스라엘에게 준 땅을 인간들이 평화라는 명목으로 다시 이교도에게 떼어준다는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오슬로 협정 중재를 주도한 클린턴과 복음주의자들은 거리가 멀다. 야훼가 주신 땅을 평화를 위해 떼어주려다가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신의 심판으로 암살당했다고 믿는다. 가자지구에서 정착촌을 철수시켰던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가 신의 심판에 의해 뇌출혈로 쓰러졌다고 믿는다. 이들에게는 야훼가 약속해서 준 에레츠 이스라엘 (land of Ysrail)을 함부로 남에게 주는 것은 범죄다. 당연히 정착촌 양보도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 믿는다. 크리스찬 시오니즘이라는 말은 일견 형용 모순인데, 이 부분에서 기가 막히게 공조가 된다.
한국의 이스라엘 깃발
한국의 보수적인 일부 개신 교회에서도 미국 복음주의의 세대주의 기조를 받아들이고 있다. 영향력이 작지 않은 한국 교회들이 공감하고 나섰다. 기독교와 유대교간의 친화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결국 가장 극단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백투 예루살렘' (BtJ) 운동이다. 예루살렘 선교를 통한 유대인의 대회심은 곧 예수의 재림과 역사의 완성을 의미한다고 믿는 맥락이다.
미국의 보수 가치인 개신교 복음주의 노선, 그리고 세대주의 종말론이 한국 일부 교단과 교회의 신학사상과 연계된 셈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다윗의 별이 그려진 이스라엘 국기가 함께 거리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깃발 하나의 등장 뒤에는 초강대국 미국에 대한 동경이 있다. 그 미국의 일방적 지지와 보호를 받는 이스라엘에 대한 부러움도 섞였다. 그리고 기독교적 종말관을 바탕으로 미-이스라엘 인지 동맹에 함께 하고 싶은 한국 보수 개신교도들의 정서가 함께 나타난 장면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누구나 종교의 자유가 있다. 누구나 참정권을 갖고 있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종교와 정치의 결합이다. 이스라엘 국기를 바라보며 정교 분리의 대원칙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혹시 초월적 종교의 신념이 정치 영역으로 밀려들어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다. 기우이길 빈다. 종교의 시선으로 정치가 해석되기 시작하면 타협이나 양보의 영역은 확연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남식 /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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