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蠱毒)이라는 저주
입력 : 2024.10.16
외롭다는 뜻의 ‘고독’이 아니다. 배 속 벌레 고 자와 독약이라고 할 때의 독 자를 합쳐 ‘고독’이라고 불리는 저주다. 글자 생김으로 뜻을 따져보면 고(蠱) 자는 그릇(皿)에 담긴 벌레를 의미하니, 고독은 이를 이용한 저주를 뜻한다.
저주의 방법은 이러하다. 항아리 안에 여러 종류의 독충이나 파충류를 한데 모아 봉한 다음 그 안에서 서로를 잡아먹게 한다. 다음 해에 개봉을 했을 때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한 마리를 태워 가루로 만든다. 이 가루를 저주하고 싶은 사람의 음식이나 술에 넣으면, 그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혹은 이 항아리에서 혼자 살아남은 생물을 ‘고’라 하는데, 신을 섬기듯이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 음식에 독을 방출한다고도 한다. 고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동물은 매우 다양했다. 뱀을 써서 만들면 사고, 고양이를 쓰면 묘고, 개를 쓰면 견고라고 했다. 중국 고대부터 전해진 이 고독은 조선시대에는 사면령 대상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잔혹한 저주로 여겨졌다.
고독은 어떻게 저주가 될까? 여기에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감각에 기반한 논리가 자리한다. 살아남겠다고 발버둥 치며 다른 생물을 모두 죽이려면 정말 큰 원념이 응축될 것이다. 여기에 기껏 그 고생을 하며 살아남았는데 결국 죽임을 당하는 것에 대한 분노도 폭발할 것이다. 이렇게 죽은 생물의 원한과 분노, 살아남은 생물의 폭력성과 집념이라면 다른 생물을 죽일 정도의 능력을 충분히 갖게 되지 않을까? 바로 이런 감각 말이다.
이러한 주술에 대한 논문과 기록을 심드렁히 보다가 문득 소름이 돋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이 고독을 만드는 항아리와 다를 바가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무한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압박하지 않는가. 어느새 그 압박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경쟁을 찬양하고 승리와 생존만이 최상의 가치라고 칭송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가치관을 내면화하고서,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며 그 어떤 불법도, 부도덕한 행위도 저지르는 데 거리낌이 없고, 약자를 돌보는 것은 위선이라고 비난하며, 타인을 눌러 이길 수 있는 더 큰 힘만을 갈망하고 있지 않은가.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세계관이 팽배한 세상, 이것이 고독을 만들기 위한 그 항아리와 다를 것이 무엇일까.
고독의 항아리 속에는 체념과 울화, 원한과 분노만 가득하다. 도태된 자는 물론이고 살아남은 자도 정상일 수가 없다. 자신은 당당히 살아남았음을 자랑스러워하며 대단한 성취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승자독식이 올바른 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타인에 대한 경멸과 혐오, 나의 생존에 대한 집념과 악만 품은 이들이 어떻게 정상일 수 있을까. 기껏해야 누군가의 항아리 속에서 그저 강렬한 저주의 능력을 품은 ‘인고(人蠱)’가 되어버린 것일 터인데. 고독은 사람을 죽게도, 낫게도 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그래봐야 저주일 뿐이다. ‘인고’가 된 것은 하등 자랑할 것이 못 된다.
다행히도 사람은 이런 고독의 항아리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란 지독히도 다양하기에 남들이 다 이 길이라고 해도 꼭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의 신화는 모두 보지 말라는 것을 보고, 열지 말라는 것을 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던가. 이 세계가 전체가 아니고 하나의 항아리에 불과하다며 끊임없이 항아리의 바깥을 사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고’가 된 자들이 아니라 그 와중에 희생당한 안타까운 피해자와 숭고한 이타성을 보여준 이들을 기릴 수 있는 서사력과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공감력이 이런 이들을 향할 때, 그 항아리는 더 이상 고독의 항아리가 아닐 것이다.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천독
개요
[ 편집 ]개를 사용한 주술인 개신 , 고양이를 사용한 주술인 고양이 귀신 등과 늘어선 동물을 사용한 주술의 일종이다. 대표적인 술식으로서 '의학강목' 권 25의 기재에서는 “ 뱀 , 지네 , 게지 , 개구리 등의 백충을 같은 용기로 사육하고, 서로 먹이고, 이겨 남은 것이 신령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모시다. 이 독을 채취하여 음식물에 섞어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마음대로 복을 얻거나, 부귀를 도모하거나 한다. 그 사람은 대개 죽는다”고 기재되어 있다.
역사
[ 편집 ]고대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고한다. 어느 옛날부터 사용되어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시라카와 시즈카 등 고대에서의 주술 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한자 학자는殷・周時代의甲骨文字에서 蠱毒의 흔적을 읽고있다 [ 주석 1 ]畜蠱」(蠱の作り方)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隋書』지리지에 있는 『5월 5일에 백종의 벌레를 모으고, 큰 것은 뱀, 작은 것은 虱와 함께 속에 놓고 서로 먹고 마지막 일종에 남은 것을 멈춘다.
중국의 법령에서는, 천독을 만들어 사람을 죽인 경우 혹은 죽이려고 했을 경우, 이들을 교사했을 경우에는 사형 에 해당하는 취지의 규정이 있어, 「당율 소의」권 18에서는 교수형 , 「대명률 '권 19, '대청율례' 권 30에서는 참수형이 되고 있다.
일본 에서는厭魅( 주석 2 )과 나란히 '천독 갈매'로 두려워되어 양로율령 속의 '적도율'에 기재된 바와 같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실제로 처벌된 예로는, 769년 에 현 이누요 누나 들이 불파내 친왕 의 생명으로 천독을 행한 죄에 의해 유죄가 된 것(신호 경운 2년조), 772년 에 이노우에 우치 친왕이 독 의 죄에 의해 폐된 것(다카메 3년조) 등이 『속 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다. 헤이안 시대 이후에도 종종 사기를 내고 금지되어 있다.
천독의 종류
[ 편집 ]瑪蝗蠱(바코우코) 泥鰍蠱(데이슈코) 蝦蟇蠱(가마코) 蛇蠱( だこ)
각주
[ 편집 ]주석
[ 편집 ]출처
[ 편집 ]- ↑ 황결 「「귀신이 붙어 있는 것」서남 중국 톤족에 있어서의 빙신의 신앙」 「일본 문화 인류 학회 연구 대회 발표 요지집」, 일본 문화 인류 학회, 2017 년 .
- ↑ 『중국 최흉의 저주 천독』 채도사, 2017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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