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미's post
·
한강과 로제
이제는 우리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우리 속으로 밀려오는 느낌이다. 눈부신 타자의 시선으로 우리의 안방까지 재조명되는 미증유의 경험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한강 신드롬이 보름을 넘겨 조금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이번엔 로제의 노래가 온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과 개봉 9일만에 유투브 일억칠천만뷰를 달성한 <아파트>의 주인공 로제.
너무나 다른 외모와 목소리와 내면세계를 가진 두 여자가 이 시대 한국여자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한강은 고급문학계에 로제는 대중문화계에 종사하고 있다. 한강은 골방에서 혼자 글 한 줄에 한 나절 내내 울다가 하면서 작품, <소년이 온다>를 고통스럽게 썼다고 한다. 로제는 친구들과 술게임을 하며 놀다가 영감을 얻어 <아파트>를 작곡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강의 목소리는 낮고 가녀리고 침잠하여 듣는 이가 먼저 숨이 차게 된다. 로제의 높고 맑은 목소리는 힘찬데다 비음을 섞어 매혹적이다.
단지 작가와 가수라는 다른 직역만으로 해명할 수 없는 이 극단의 내향성과 외향성, 무거움과 가벼움의 대조가 선명하다.
생각해보면 한강과 로제는 한 세대의 시간차에 따른 다른 역사경험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나온 토종 한강과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성장한 세계인 로제는 내면을 형성한 환경자체가 다르다. 그럼에도 둘 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틀림없는 한국여자의 느낌은 무엇일까.
한강이 비록 극단적이긴 하지만 86세대 지식인 한국아줌마의 전형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머리는 금발로 물들이고 발칙한 옷치장을 하고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 로제는 어떨까.
로제 역시 천생 한국여자애다. 아파트를 아파아르먼트라고 부르지 않고, 좌식으로 쭈그려앉아서 술게임을 하고 놀아서만은 아니다. 로제의 표정과 몸짓은 이 시대 젊은 여자애들에게서 내가 본 그대로다.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내가 제일 인상깊게 보았던 것은 로제가 무심하게 자기손톱을 들여다보다가 부르노마스에게 들킨 듯하자 멋쩍은 웃음을 빵! 터뜨리는 장면이다.
그 표정에서 나는 요즘 젊은 여자애들의 삶의 자세를 본다. 그런 표정 뒤에는 대체로 이런 말이 숨겨져있다.
'나도 고민이 있고, 이게 시시한 놀이라는 것을 알아. 하지만 너랑 함께 있으니까, 어쩌겠어. 지금은 같이 즐겁게 놀아야지.'
한강세대의 엄마 눈에는 로제같은 딸애가 술먹고 노는 모습이 결코 좋아 보이지만은 않고 아슬아슬하게 느껴지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바로 세대차이다. 아파트 뮤비에서 로제가 보여주는 모습은 귀엽고 밝고 생기 가득한 미래지향의 새로운 삶이다.
반면에 로제 나이의 딸들이 보기에는 우리 한강 같은 엄마세대는 너무나 의미과잉과 감정과잉으로 숨이 막힐 것 같다. 하지만 과거를 붙들고 해명하려는 고통스러운 그 고집 때문에 로제가 서있는 한국문화는 깊이있고 단단한 기반을 얻는다.
무릇 문화의 이상향이라면
한 집에 사는 한강이 골방에서 나와 <아파트>를 흥얼거리고
로제가 때로 방문을 닫고 <소년이온다>를 눈썹 찌뿌리며 읽는 것이다.
한강이 무거운 심중에 로제의 환하고 가벼운 기운을 품는 것,
로제가 문화의 어두운 깊이와 뿌리를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당장 현실화될 것 같진 않다.
그럼에도 이 시대 대한민국은 둘 다를 품고 역동적으로 심화되고 확장되며 무언가를 생성해나가는 중이다.
노벨상도 별거 아니더라. 빌보드1위도 이제 식상하더라.
이런 도도한 문화적 자신감으로 두 세대의 흐름이 하나로 합수된다면,
한강처럼 깊이있게 내면을 보고 로제처럼 당당하게 세계에 자신을 내놓을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전세계를 새롭게 혁신시킬 문화적 태풍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강과 로제. 엄마세대와 딸세대가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전 세대가 이룩한 경제성장의 토대위에서 세계적 문화강국을 향해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다.
(뮤직비디오 이 장면 캡쳐하느라 아침내내 고생 많이 했다.ㅎ)
===
멋진 평가였습니다💯💕💕
==
김두화
대단해요.
어쩌면 이렇게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보시는지요...
==
박정미
김두화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너무나 다르게 멋지고 훌륭해서 끄적여봤습니다. 한강책은 못읽었지만 로제노래는 수십번 들었네요.ㅎ
김석수
문화평론으로 고료받는 글써보기를 권합니다.
2d
Reply
박정미
김석수 와! 오늘은 너무나 후하신데요. ㅎ 공부 좀 해서 그 길로 가는 꿈을 요즘 꾸고 있습니다. 힘이되는 칭찬 고맙습니다.
2d
박애순
난 로제를 보며
올게 왔구나했지
정치가 건드리지 않는 영역은 특히 예술영역은
자유롭게 성장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자연스럽게 콜라보가 되고
그게 또 전세계가 열광하고
난 그자체가 걍 좋더라구~~~
하루 종일 내가 좋아하는 브루노마스와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는데
나오자마자 또 한번의 열풍을 ㅎㅎ
신나는 요즘이야
의미과잉과 감정과잉
내가 네게서 느끼는 마음을 콕 집어 표현
역시 정미~~~
1d
Reply
박정미
박애순 앗! 나는 한강 시켜주고 언니는 로제 하겠다는 거야? 잉!잉! ㅎㅎㅎ
나는 부르노마르스를 이번에 처음 듣고 봤어. 어떤 놈이신가 찾아봤더니 대단한 분이더만. 근데 그 대단한 분도 쭈그려앉혀놓고 아파트게임 시키고 보니 별 거 없는거야. 동네 오빠나 부르노마스나.
그렇게 세계가 우리네 별 특징도 없고 그저그런 아파트에 와서 퍼질러앉은 듯 했어.… See more
1d
Reply
박애순
박정미 브루노 마스(모든 노래를 다 좋아하는 나)와 콜라보라 했을때
기쁨으로 놀랐던 나~~~
아파트가 전 세계 누구나 노는건 같다는걸 보여준겨~~~
1d
Reply
박애순
박정미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