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 '공주전투' 재평가한 연구서 발간... 일본군 22일 막아내
심규상2024. 11. 6.
일본군 개입, 농민군 패배로 끝났지만... 일본의 조선-중국 침략을 상당 기간 저지하는 데 기여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 최근 발간된 '동학농민혁명 시기 공주전투 연구'(503쪽,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공주 우금치 전투(아래 공주전투).
공주전투는 1894년(고종 31년) 전봉준이 지휘하는 동학농민군이 공주 우금치 고개에서 조일 연합군과 벌였던 싸움이다. 역사는 '동학 농민군이 벌인 전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으나 농민군이 패배해 동학 농민 운동의 실패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선원 박사는 공주 전투는 패배했지만 '당시 일본군의 조선과 중국 침략을 상당 기간 저지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새롭게 평가했다.
동학농민운동은 크게 1차 봉기와 2차 봉기로 나뉜다. 1차 봉기로 동학 농민군은 한 때 전주성을 차지하는 등 관군에게 큰 피해를 줬다. 농민군은 청군과 일본군이 개입하려고 하자 조정가 합의하고 자진 해산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한성을 점령하고 고종에게 청과 맺은 모든 조약을 파기하게 했다. 또 내정간섭을 일삼았다. 농민군은 이에 분노해 '일본을 몰아내자'는 취지로 2차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킨다.
1894년 가을, 추수가 끝나자, 전봉준은 각지에 통문을 띄워 궐기를 호소했다. 봉기한 전봉준 부대(남접)는 북접(지휘관 손병희)과 함께 한성 탈환을 위해 북상했다. 두 부대는 논산에서 합류(10월), 전봉준을 총대장으로 선출했다.
조정은 무력 진압을 하기로 하고 일본군에게 진압을 요청했다. 조일 연합군이 편성됐다. 진압 작전은 일본군 지휘로 이루어졌다. 공주전투에 투입된 일본군은 최대 150명, 조선군도 약 800명으로 도합 1000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400미터 거리에서 조준 사격이 가능한 영국제 신식 스나이더 소총을 사용했다. 농민군은 화승총, 활, 죽창으로 맞섰다.
농민군은 서울 가는 핵심 경로로 공주 노선을 택했다. 당시 공주는 사통팔달의 도로망을 갖추었고 금강을 통한 물길로 상업이 번창했다. 사방에서 농민군이 모여들기 쉽고 식량을 모으기 편리한 장소였다. 무엇보다도 든든한 지역 동학교도 세력이 토대를 구축하고 있었다.
조선 왕조 또한 공주가 농민군 수중에 떨어지면 서울이 위협받는 판단에 조일진압군을 출동시켰다. 결국 농민과 조일연합군은 10월 22일부터 서울로 가는 길목인 공주에서 22일간(11월 14일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최근 발간된 '동학농민혁명 시기 공주전투 연구'(503쪽,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는 22일간의 공주 전투를 집중했다. 공주전투에 참전한 인원과 학살된 인원 등 공주전투의 전모를 다뤘다.
이 책은 공주전투를 1차 대치(10월 22일), 1차 전투(23~25일, 3일간), 2차 대치(26일-11월 7일, 11일간), 2차 전투(11월8일-9일), 3차 대치(11월 10일~14일)로 세부적으로 구분했다. 이를 통해 공주전투를 구체적, 개별적, 계기적으로 정리했다.
전투에 참여한 농민군 인원수에 대해서도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3만에서 4만 명의 통설보다 훨씬 많은 10만 여명의 농민군이 참가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공주 전투는 일본군 개입으로 농민군의 패배로 끝났다.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고 할 만큼 희생자도 많았다.
하지만 연구자이자 저자는 '공주전투로 일본군 부대를 공주에서 22일 동안 저지해 일본의 조선과 중국 침략을 상당 기간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애초 일본군은 공주 작전 일수를 하루로 예정했는데 농민군의 조직적 결사 항전으로 전투가 22일로 늘어나면서 농민군 토벌 작전 일정도 처음 29일에서 90일로 대폭 늘어났다는 것이다.
또 제국주의 일본이 제노사이드(특정 집단의 멸종을 목적으로 한 대량 살육 행위) 군사작전'을 실행했던 현장이라고 봤다. 실제 일본군은 농민군 뿐만 아니라 전투가 끝난 뒤 수색해 비무장 민중을 학살했다.
이 책과 함께 저자인 정선원 박사의 연구 이력도 주목받고 있다.
박맹수 전 원광대 총장은 "정 박사는 공주 전투의 실상을 밝히기 위해 10여 년간 우금티 일대 사방 백 리 안에 있는 모든 마을을 답사해 동학혁명 이야기를 알고 있는 분들의 구술 증언을 책록했고 한국과 일본에 남아 있는 문헌자료를 샅샅이 검토했다"고 밝혔다.
이어 "22일간 우금티와 공주 외곽 일원에서 전개된 전투를 지도로 복원해 냈다"며 "앞으로 동학농민혁명 연구의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 박사는 '동학농민혁명 시기 공주전투연구'(2023년)로 원광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학교 역사 교사로 퇴직했고, 사)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업사업회의 사무국장과 이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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