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4

“전쟁이 온다” [신영전 칼럼] 2411

“전쟁이 온다” [신영전 칼럼]

“전쟁이 온다” [신영전 칼럼]
수정 2024-11-0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아래 지난달 31일 아침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9형’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단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전 군이 비상대기 상태다. 병사들의 휴가도 제한되고 있다. 파주, 김포, 연천 지역은 ‘위험구역’으로 지정되어 안보 관광도 중단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러시아 파병 북한군을 공격 대상으로 간주할 것이라 밝혔다. 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 우리가 만든 총알에 북한 군인이 죽어갈 확률이 커졌다. 꼼꼼히 따져보면 그 북한군은 먼 친척의 조카일 것이다. 북한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또 한번 동족상잔의 비극이 재현될 기세다.

지난 70여년간 반복되는 남북 긴장 상태라 무감각해진 지 오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전문가들이 잇달아 높은 경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도 좋다는 사람들이 계속 전단을 북으로 보내고 이에 맞선 북의 오물풍선이 한반도 상공을 날아다니더니 10월12일, 북한 군 당국은 완전무장한 8개 포병여단에 ‘완전 사격 준비 태세’를 갖추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그리고 또다시 무인기가 발견될 경우, 선전포고로 간주하여 즉각적인 보복 공격을 가하겠다고 선언했다. 10월30일, 북한은 10개월 만에 다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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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그레이엄 앨리슨은 역사적으로 대규모 전쟁은 도전국이 기존 패권국을 대체하려는 시기에 일어났으며, 현재 중국과 미국 관계가 수년 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가 가능성 높은 곳으로 예고한 곳이 한반도이고, 그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전쟁은 제노사이드(대량 학살)를 동반한다. 여러 나라 제노사이드를 연구한 엘리후 릭터 교수는 제노사이드에는 전조가 있는데, 그 사회에 ‘바퀴벌레, 쥐새끼’ 등과 같은 혐오의 말들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 안을 들여다보면 ‘바퀴벌레’ 같은 혐오의 말이 실제 바퀴벌레보다 더 가득하다. 여기에 더해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위기가 부각되면서 국내 방위산업체들의 주가 상승세가 뜨겁다”는 낯 뜨거운 기사들이 각종 방송 매체를 메우고 있다. 전쟁이 무기를 만들었지만, 이제 무기가 전쟁을 만들고 있다.


전쟁이 가시화된다는 것은 정치의 실패를 의미한다. 철학자 푸코의 말이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2018년 군사분계선 도보다리 위로 피어났던 한반도의 따뜻한 봄기운이 전쟁의 먹구름으로 바뀌었다. 북에도 책임이 있지만, 적어도 잘못의 절반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적대적 공존’이라는 낡은 무기를 꺼내든 남쪽 정권의 몫이다. 한 국회의원은 국가안보실장에게 문자로 미사일 타격을 주문했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언제나 깊고 안전한 방공호에 있는 이들이라 더 두렵다.

전쟁을 막아야 한다. 지난 2017년 9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에서 사용한 폭탄은 약 100~300 핵출력(kt)이다. 이것 하나만 용산에 떨어져도 약 37만명이 사망하고, 12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죽은 이에게 전쟁의 승리는 없다. 더욱이 이제 일어날 전쟁은 ‘죽은 자에게만 끝나는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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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전쟁의 공포 속에서 자포자기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쟁을 막는 일이다. 다행히 역사는 무엇이 전쟁을 막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 평화의 철학자이기도 했던 칸트는 “비공화주의적 헌법하에서, 신민이 시민이 아닌 곳에서, 가장 쉬운 일이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의를 대변하는 정치 지도자와 엄정한 법 집행이 전쟁을 막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10%대의 낮은 지지율과 검찰의 사유화는 한국 사회가 중요한 두개의 전쟁 안전핀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부패하고,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정치권력의 교체만큼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 예방을 위해 필요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고,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함께 나누던 그 민주주의의 광장을 탈환해야 한다.

“■■■ ■■■■ ■■하라” 많은 이들이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고통 속에서 읽었다지만, 나는 고통만으로 읽을 수 없었다. 도청에 아직 ‘소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 소년이 총에 맞은 후 방수 모포에 쓸려 담겨 청소차로 실려 갔다지만, 나는 (도청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 하자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났던 그 소년, 동호가, 그리고 영재와 이름 모르는 소년들이 여전히 ‘도망치지 않고’ 도청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들의 수가 많아야 함부로 못 들어올 텐데…”,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 주십시오, 지금 ■■■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발 불이라도 켜주세요, 여러분.” 한반도에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다. “전쟁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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