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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의 적개념 형성사와 오늘의 과제
기사승인 2024.11.06
- 적의 계보학㉑
▲ 홍이표 교수는 한국 개신교의 적개념 형성사를 정리하며 적 개념이 늘 변화해왔던 것에 주목했다.
무한 욕망으로서의 ‘제국주의’라는 적
앞서 소개된 ‘적의 계보학⑰’ “적이라는 이름의 허상 (1)”에서 우희종 서울대 명예교수는 “생태계 건강성은 그 안에서 작동하는 무수한 중층 구조의 약육강식에 근간”하며, “피식자가 겪는 폭력이야말로 건강하고 평화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주므로 “생명의 존재는 서로 의존하며,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같이 변화해 가는 삶의 열린 관계로 펼쳐진다(interbecoming)”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인간과 같은 무한한 욕망을 지닌 사자가 있어 그의 과도한 욕망 안에 닫혀서 끝없는 사슴 사냥이 있다면 심각한 폭력이 된다”고 동시에 경고하였다.
근세 이후 서구가 주도한 ‘제국주의’ 시대는 그러한 ‘약육강식적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이념화, 제도화 하여 무수한 ‘팍스(Pax, peace)들’의 창궐을 야기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유대의 열심당원들에게는 그저 타도해야 할 ‘적’에 불과했음을 생각할 때 ‘제국의 평화’는 오히려 ‘내부의 적 개념’을 양산하는 인큐베이터였다.
영미제국과 일본제국 사이에서
한국 개신교의 역사도 ‘대영제국’과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American Peace)로 대표되는 제국주의의 배를 타고 한반도에 상륙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한반도에서는 제국주의 침략국가와 선교 주체국가가 불일치 하는 기묘한 풍경이 연출된다. 즉 새롭게 발흥한 같은 극동의 일본이 ‘대일본제국’으로 ‘팔굉일우’로 상징되는 무한팽창의 지배 욕망으로 한반도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영미 두 제국의 선교사들은 자주 독립을 외치는 개신교도들의 배후 세력이 되었다.
이미 1895년 민왕후 살해 사건 때 발아하였던 ‘반일, 항일’이라는 제국일본을 향한 적개념은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강제병합 이후 개신교 안에서 강하게 확산했다. 이를 감지한 조선총독부는 선교사와 기독교인들이 데라우치 총독을 암살하려 했다는 이른바 ‘105인 사건’(1911)을 날조하여 다수의 기독교인 지도자들을 투옥, 탄압하였다. 폭력적인 무단통치가 10년 정도 이어지자 개신교계는 천도교계와 중심이 되어 1919년의 3.1운동 주도하는 등, 침략국인 일본제국(조선총독부)을 추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적으로 삼았다.
하지만 1920년대의 문화통치 시기에 잠시 실력배양을 목표로 한 계몽운동, 절제운동에 집중하면서, 구체적으로 대항해야 할 ‘적’보다는 ‘술’, ‘도박’, ‘음란’(폐창) 등 도적적이고 추상적인 적 개념이 일본을 향한 적개념을 희석시켰다.
그 효과를 본 것일까?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15년 전쟁시기’에 한국 개신교계는 ‘제국일본’을 향한 저항의 동력을 상실하고,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적극 영합, 순응, 협력하는 체질로 바뀌어 간다. 특히, 추축국 동맹(일독이, 1936)에 편승하여 오히려 개신교회의 가장 핵심적 배경이었던 ‘영미’를 주요 배격 대상인 적으로 규정한다. 이는 기존의 서구 선교사들과 열린 관계성이 배타적인 닫힌 관계성으로 전환됨을 의미했다.
우희종 교수가 위의 글에서 “건강한 관계 회복과 노력을 비폭력이라고 정의할 때, 관계 회복이나 평화를 위한 적극적 행동 역시 비폭력 행위가 된다. 이는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가 유태인 수백만 학살을 자행하는 히틀러 암살 계획에 동참한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했듯이, 안창호, 김구, 김규식, 여운형 등 수많은 개신교도 독립운동가들은 제국일본에 의해 변질되고 왜곡된 서구와의 관계성을 회복시키려는 나름의 ‘폭력’을 일본제국에 대한 ‘적개념’에 기반하여 실천하고 있었다.
즉 “관계성을 왜곡시키는 폭력과 전체 관계성에 기여하는 폭력”(우희종)이 ‘영미 배격의 적개념과 제국일본 타도의 적개념’으로 나뉘어 공존한 시기가 1930-40년대였다. 결국 그러한 팽팽한 두 ‘적개념’의 대립 양상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이라는 거대한 폭력성 앞에서 그 균형을 일거에 상실했다. 한 순간에 ‘영미는 다시 가장 소중한 벗’으로 복귀했고, ‘제국일본’은 새 헌법의 탄생과 동시에 불귀의 천형을 당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냉전시대의 ‘주적’ 공산주의
해방 이전, 1932년에 한국기독교연합회의 ‘사회신조’가 한국교회의 첫 반공문서로서 공산주의와 차별화된 사회운동노선을 선언한 바 있지만, 이 때는 신간회와 임정에서의 좌우 협력 분위기 등으로 공산주의를 적으로 보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오히려 ‘제국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이 더 앞선 과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 한반도는 분단(38선)과 한국전쟁을 경험하며 세계 냉전 체제의 상징이 된다. 개신교의 중심지였던 평안도, 황해도 지역의 다수 기독교인은 월남하였고, 그들을 중심으로 반공주의(공산주의=적)가 한국 개신교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으로 형성되었고 ‘공산주의’는 섬멸해야 할 주적으로 자리잡는다.
소련 군정과 김일성의 탄압으로 월남한 기독교인 중 일부는 제주 4.3의 양민 학살에 관여한 ‘서북청년단’에 적극 참여하여 그 증오심을 드러냈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련, 중공,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을 주요 적대국으로 규정한 이승만 정부 시기,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교단인 예수교장로회는 WCC 가입 문제로 교파 분열을 겪는다. (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의 분열) 동유럽 교회가 회원으로 활동하는 WCC에 한국교회(NCCK)가 가입하는 것은 적과의 동침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회가 ‘반공주의’에 집착하는 이유는 모든 핍박과 전쟁으로 인한 적대감도 있었지만 일제 치하에서의 친일부역 콤플렉스를 가리고 정당화 하기 위한 집단 심리도 깔려 있었다. 이처럼 과거의 ‘적’이 사라지자 새로운 ‘적’이 등장했다. 한국 교회의 증오심 가득 찬 반공주의는 현재의 태극기 부대 현상으로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끊임없이 적을 양산해 왔던 보수 극우 한국 대형교회들에게 이제 적은 성소수자들이 되었다. ⓒMBC
‘독재’라는 이름의 적
우희종 교수는 ‘적의 계보학⑱ 적이라는 이름의 허상 (2)’에서 “생태계 내 특정 층위에서의 폭력이 건강한 생태계의 기반인 것처럼, 중층 구조의 모든 층위에서 각각의 폭력은 존재하며, 이는 다양한 적이 등장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분단체제와 반공주의는 남북한 양국에서 독재자를 키워냈다. 이는 개신교회에 안에서도 새로운 적개념 형성의 배경이 되었다.
이승만과 안호상의 ‘일민주의’(一民主義) 사상은 수많은 양민학살의 비극을 낳은 반공 이념이었으며, 이후의 군사 독재시기까지 합치면 독재 시기가 40년 이상 이어졌다. 북한은 3대 세습을 통한 독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 개신교회를 새롭게 지배한 적개념은 ‘반공’이었지만 동시에 한국 개신교회의 민주화 세력은 ‘폭압적 독재자’와 투쟁하면서 ‘다양한 적’의 양상을 드러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탄생한 박정희 정권과 1980년대 신군부에 대해서 김재준, 장준하, 문익환, 박형규, 김관석, 오재식 등 개신교계 인물들은, 반민주, 반통일, 반노동, 반인권, 반평화 세력으로서의 ‘독재’와 투쟁하면서 그 존재감을 명확히 했다.
“적은 필연적이지만, 적을 맞이하는 나도 상대방의 적이다. 무엇을 위한 적인가에 대한 깨어있음만이 폭력의 층위에 따른 열린 폭력인지 닫힌 폭력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 ‘지금 여기’에서의 닫힌 관계성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열린 관계성으로 접근될 때, 분노의 대상인 적이 허상임을 알게 되고, 동시에 그러한 분노 역시 실체 없음을 알게 된다.” (우희종, 적의 계보학⑱ 적이라는 이름의 허상 (2)’에서 인용)
‘닫힌 관계성에 대한 뜨거운 분노’에 기반한 ‘독재’를 향한 새로운 적개념과 실천은 사회를 다시금 ‘열린 관계성’으로 이끌었다. 기독교 신앙에 의지하면 민주화 운동을 전개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5년 4월 19일 『씨알의 소리』 창간 5주년 기념 시국강연회에서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결국 악의 편, 방관은 최대의 수치, 비굴은 최대의 죄악입니다. 생각하는 국민, 행동하는 국민이어야 만이 살 수 있습니다. (…) 떳떳이 나와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싸우고, 떳떳이 나오기가 어려운 여건에 있는 사람들은 익명으로라도 엽서로, 전화로,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을 격려해서 그분들이 좌절되지 않도록 해줘야 됩니다.”(“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김대중 육성 45년 만에 최초 공개,” KBS 뉴스, 2020년8월 17일)
이 말은 30여 년 후인 2009년, 서거 두 달 전에 행한 생애 마지막 연설에서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여러분!”이라고 반복되었다. 김대중은 용서와 화해라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 가치를 정치에 반영하여 자신을 핍박한 국내 독재자들의 석방하며 화해했고, 남북 및 한일 화해 협력 시대의 물꼬를 텄다. “분노의 대상인 적이 허상임”을 자신의 정치로 증명했고, 오랜 세월 쌓여 왔을 “분노 역시 실체 없음”을 삶으로 보여 주였다.
다양한 ‘적들’의 양산: 종교간 대화론자, 이교도와 성소수자를 향한 적개념
1992년 감리교 종교재판은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보수 교회의 강한 적대감을 확인시켰다. 이는 민주화 과정에서의 다양한 해체 경험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더욱이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2000년에는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미국 등 주변 국가의 태도도 변화하자 반공주의이라는 내부 단결을 위한 ‘적개념’도 힘을 잃어 갔다.
그 결과 내부 단속과 성장 견인을 위한 ‘외부의 적’을 새롭게 설정하기 시작하였고, 그 희생양으로 이슬람교와 성소수자들이 부각되었다. 이슬람 세력이 한국에 침투하기 위해 오일 머니를 앞세워 세력 확대 중이라고 선전하면서 결국은 이슬람계 외국인노동자나 난민 등이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 동성애자 및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LGBTQ)들도 교회를 파괴하려는 위험한 적으로 강조되면서 그들을 변호, 축복하는 목회자나 기독교인들이 교회 내부에서 억압을 받고 있다. 최근의 감리교 이동환 목사 파문 사건, 장로회신학대학의 학생 징계 및 목사 고시 탈락 사건, 각 교단의 동성애 관련 징계 법안 마련 등이 그러한 적개념의 확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주목되는 대목은 러우 전쟁 국면에서 한국 개신교계는 동성애를 인정하고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나토 진영(서유럽)과 미국, 그 쪽으로 경도되어 가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면서, 정교회 교리 상 동성애 등을 엄격히 금지하는 러시아는 과거의 반공사상과 뒤섞여 악마의 세력으로 적대시한다는 점이다.(“우크라, ‘동성애 지지’ 서방에 충성…러 정교회 수장, 전쟁 정당화,” <서울신문>, 2022년 3월 8일자. ; “푸틴, 성전환 금지법 서명… 반서방, 러시아 전통적 가치 수호,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채택, 2020년엔 동성 결혼도 금지,” / KBS News, 2023년 7월 25일.) 이처럼 다양한 적개념의 혼재 상황 속에서 모순적 태도가 발생하는 현상은, 삼일절 주일예배를 드린 날 오후에 한미일 군사동맹을 외치며 태극기와 성조기, 일장기까지 내걸고 집회에 참여하는 한 신자의 모습처럼, 적개념의 착종 상태가 만연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장 44절)고 가르쳤다. 하지만 이상과 같이 한국 개신교회는 각 시대별로 다양한 ‘적 개념’을 형성하며 그 ‘적’에 대한 증오와 반감을 드러내거나 투쟁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케노시스의 하나님’이 보인 자기 희생적인 모습에서 찾는다고 볼 때, 교파주의(종파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제국주의, 군국주의, 반공주의, 근본주의 등이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가치를 압도한 측면이 있다. 이는 한국 개신교가 ‘적’으로 상정한 대상의 희생과 고통을 강요한 어두운 역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다만 ‘자기 절대화’의 역사적 양태로서의 ‘제국주의’, ‘군국주의’ ‘독재’에 맞서며 전개된 ‘독립/해방운동’,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등의 역사는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부합하며 닫혀 가던 세상을 다시금 ‘열린 세계’로 회복시켰다. ‘적’이라는 개념은 추상적, 관념적인 경우도 있지만 역사 속에서는 많은 경우 구체적 집단을 겨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minority)나 주변인(marginality) 등의 약자・소외자를 그러한 ‘적’으로서 대상화 한 경우, 가장 현저하게 ‘평화’를 파괴하고, 종교적 가르침의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로 이어졌음을 한국 개신교회사의 ‘적개념 형성사’를 통해서 확인케 된다. 소수자와 주변인 등 약자의 편에 서서, 사회적 불의와 폭력, 차별과 배제 등을 ‘주적’으로 삼을 때 비로소 본질에 충실한 종교로서 사회적 순기능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홍이표(전 야마나시에이와대학 인간문화학부 준교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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