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13) : 김대중 정부 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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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 2024. 7. 7.
참여연대-한겨레신문
金東椿(성공회대,사회학)
1. 도입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와 대량실업 사태에 직면한 오늘 한국에서는 불평등의 심화, 삶의 질의 저하, 범죄와 폭력의 증가, 이혼와 보호아동 급증, 주부매춘 등의 가족 붕괴, 날로 횡포화된 청소년 폭력 등 매우 우려할만한 사회적 분열과 위기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50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오늘처럼 현실을 타개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사회정책이 필요한 적은 없었다. 선거를 통한 최초의 여야간 정권교체로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과거 정권과 달리 사회정책 부분에서 새로운 자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과거 정권의 유산인 정치집단을 비롯한 기득권 층의 도덕성과 정당성의 결여, 통제위주의 행정 관행, 사회운동에 대한 자배층의 억압적 태도와 운동 자체의 문제해결 능력의 취약성, 노사 간의 깊은 불신, 만연한 가부장주의와 성차별 관행,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법과 제도 등이 잔존하는데서 오는 사회통합 기제의 결여, 낮은 사회보장 수준 등은 신정부의 사회정책 수행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는 정치와 경제의 잔여범주가 아니라 정치의 초석이며 오늘과 미래의 경제다. 사회정책은 ‘사회적 자본’을 형성해 주는 점에서 최고의 경제정책이며, 또 사회정의와 형평성을 통해서 사회적 통합성을 유지시켜주는 점에서 경제정책 그 이상의 것이다. 사회정책은 구성원들에게 함께 일하도록 북돋어주고 신뢰를 유지하도록 동기화 해주는 점에서 공동체의 유지 및 미래와 관련되어 있다. 경제가 무너지더면 상대적으로 쉽게 회복할 수 있지만, 사회가 무너지면 몇 배의 물적인 자원을 투자하여도 원상으로 회복하기 어려룰뿐더러 국가나 시장 그 어느 것으로도 복원하기 어렵다. 사회의 공장으로서 ‘가족’은 경제, 정치질서의 유지는 물론 생산력과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인데, 만약 가족이 무너진다면 그것을 복원할는데는 1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것이다.
경제, 사회정책은 재정지출을 통한 물질적인 보장의 측면 보다는 그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유인의 구조, 즉 동기화의 메커니즘과 그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사회정책은 사실상은 법과 그것의 집행에 있으며, 법과 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정치적 세력관계가 그것을 좌우한다. 정경유착에 의한 재벌의 불로소득, 대학서열화로 인한 경쟁의 장벽, 채용 시 성차별로 인한 여성 노동력의 평가절하 구조는 불합리한 유인구조, 동기화 구조를 만들서 경제를 마비시키고 나아가 사회를 마비시키게 된다. 성장이 지속되어 이러한 유인구조 내에서 패배한 자들이 다른 방식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한 문제는 은폐, 유보된다. 그러나 성장이 지속되지 않을 때 문제는 한꺼번에 폭발한다. 오늘의 IMF 사태는 바로 그러한 상황이다. 동기화의 메카니즘으로서 사회정책이 엄격한 원칙과 사상적 기반을 갖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군사독재와 고도성장의 신화로 지내온 지난 시절 사회정책다운 사회정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질서유지와 공동체성은 억압과 통제로 대신되었으며, 복지는 성장으로 대신되었다. 관료주의와 성장주의의 위세 앞에서 사회의 자생력은 길러질 수 없었고, 따지고 보면 오늘의 IMF 사태는 지난 10년의 민주화 이행기간 동안 정의, 형평, 참여, 신뢰 등의 개념에 기초한 ‘사회 만들기’ 작업을 게을리하면서 섣부른 세계화, 개방, 경쟁의 논리를 들이대면서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와 사회형성 작업을 억눌러온 구군사정권 엘리트들과 재벌들의 오만과 독주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태우, 김영삼 정권은 제도적인 차원에서 노동법 개정이나 4대 보험제도를 완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국가경쟁주의 논리린 세계화, 신자유주의 논리를 끌여들어 과거청산을 제대로 못했음은 물론, 미래지향적인 사회정책의 초석을 놓은데도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오늘 김대중 정부는 지난 10년간에 응당 이루어졌어야 할 과제를 다시 떠 맏게 되었다. 따라서 김대중 정권의 사회정책은 30년 군사독재의 유산과 김영삼 정권의 부정적 유산들을 청산하고 21세기 통일된 한국사회 건설의 초석을 놓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정책을 만들어가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화된 경제질서와 IMF 관리체제 하에 있는 신정부가 실업, 복지 문제 등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또 만족할만하게 해결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좁은 틈에서나마, 그리고 돈을 적게 들이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전제를 갖고 출발한다. 신정부가 사회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국민의 고통과 비극을 최소한도로 줄이면서, 동시에 차기 정부나 21세기 초반에 한국사회가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는 일일 것이다.
2. 신정부의 사회정책의 이념과 추진방법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근저에 있는 철학이다. 즉 노동, 복지, 교육, 여성, 환경 등 사회 부문의 정책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기조를 시장 내에서의 개인의 책임의 영역에 둘 것인가 아니면 국가의 책임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자유주의와 국가개입주의)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노동, 복지, 교육 문제에서 정부의 역할과 그 한계 및 개입의 방식과 성격에 대한 원칙적 입장 수립의 문제로 귀착될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의 냉전-국가주의 질서 하에서 정책의 철학이나 이념은 설자리가 없었고, 90년대 들어 국가주의가 약화된 공간에는 무차별적인 시장 논리만이 자리를 잡게되어 통제논리와 시장논리가 잡탕이 되어 관련당사자들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재벌과 은행, 공기업 개혁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주는 혼선에서 그러한 철학과 원칙의 부재는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제시한 6대 국정지표와 100대 과제를 보면 김대중 정부는 당면한 IMF체제 극복을 최대의 과제로 하되 민주주의의 실현을 강조하고 있다. 자율적 시민사회, 국민 화합, 차별없는 사회, 행복한 가정, 열린교육, 능력있는 사회, 성장과 복지의 균형, 생산적인 복지, 국민건강권 보장, 노동제도의 유연성, 동반자적 노사관계의 수립, 인적자원 개발체제 구축 등 사회, 교육, 복지, 노동 분야의 정책적 과제를 제시하였는데, 그 기조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노사정 위원회 설립, 국민건강권 개념 , 동반자적 노사관계, 인적자원 개발체제 등 일부 (사회)민주주의적인 요소가 들어있으나, 기조는 역시 생산적인 복지, 노동제도의 유연성에서 나타난 것처럼 김영삼 정부가 추진해오던 신자유주의의 기조를 깔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애초의 언술들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집약되어 실천되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김대중 정부는 언술상으로는 “민주주의와 경제”의 병행발전을 내세우고 있으며 노사정 위원회를 통해 조합주의적(corporatism)인 노사타협을 유도하고, ‘대화정치’를 강조하면서 민주노총과 대좌를 하며, 실업기금을 조성하여 실업자 구제에 나서는 등 정책의 방침과 시행에 있어서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방법을 탈피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IMF 비상체제라는 핑계하에 신정부는 경제 부문에서도 물론 사회관련 분야에서도 단순한 수사를 넘어서서 민주주의, 사회적 시민권 확보를 위하여 가시적인 노력을 경주하지 않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외자유치와 대외신인도 제고를 위해 정국안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한 것이나, “지금은 해외투자자들이 돈을 갖고 들어올려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나 노동계의 유연성이 확보되어있지 않고 총파업이 일어다면 들어오지 않는다”는 발언들은 국정의 최소책임자로서 비상시국을 돌파하기 위한 고충의 산물로만 이해하기에는 “국가위기 극복와 수출 100억불 달성을 위해 국론분열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개발독재 시절의 박정희의 언사와 너무나 유사하여, 불안한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비상시국이니 무조건 협조해야하며, 협조하지 않는 행동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언술은 군사독재 시절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철학의 빈곤이 감지되며 ‘국민의 정부’라는 구호를 의심케 한다.
당선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육성으로 표현한 정책방향이나 국민회의가 발표한 신정부의 100대 과제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노동문제에 관한한 “유연성 확보를 통해 경제를 살리자”는 목소리 외에 보다 전진적인인 노사관계 개혁의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노동자 정치활동 허용, 교직원 노조 허용, 부당노동행위 엄단, 노사자율교섭 등의 방침은 모두 노동자 유인을 위해 부차적으로 주어진 것일 따름이며, 7,80년대 식 경제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는 노동자의 쌩활상의 요구를 여전히 압도하고 있다. 복지에 관해서도 ‘한풀이 복지론’, ‘생산성복지론’과 같이 복지의 필요와 이유에 대해 논거를 제기하기 보다는 과거 정권에서 언급된 것을 반복하였으며, 교육에 있어서도 ‘실력사회론’ 등과 같이 별로 새로운 것이 없을뿐더러 그 논리적 철학적 기초나 구체적인 시행방안이 첨부되지 않는 방안들만 나왔다. 100대 과제에서 제시한 바 사교육비 경감, 대학자율화 화대, 교육환경과 여건의 개선, 의료보험 통합, 국민연금개선 등 노동, 복지, 교육에 관한 과제 들 역시 김영삼 정부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을뿐더러 거시적 밑그림에 바탕을 두지 않는 인상을 주고 있다.
앞서 말한 바 김대중 정부가 해야할 일은 사회정책에 대한 미시적 접근이 아니라 총론적 접근이다. 그 정도의 방안은 이미 김영삼 정부에서 마련되었고, 상당히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즉 분단 하에서 지탱되어온 최소개임주의 복지정책, 간섭과 통제로서 노동, 교육 정책의 근간을 바꾸는 일이다. 그것을 바꾸지 않고서는 21세기적 국가전망을 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그 동안의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이나 관련 장관들의 발언, 정부가 내놓은 정책안들을 살펴보면 김대중 정부의 사회정책의 기조는 경제정책의 기조에 따라 신자유주의의 방향으로 잡혀있는 것이 분명하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강조되고 있는 바 노동에서의 경쟁력 강화론, 복지에서의 생산적 복지론, 교육에서의 ‘수요자 중심론’은 과거의 경제성장에 복지를 종속시킨 것과 사실상 동일한 궤적에 있는 것이며,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우리사회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국민생활 최저선 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이 원칙적으로 지적되고 있지 못하다. 이는 “복지병 유발 우려”발언에도 나타난 것처럼 현 정부의 사회정책 기조가 신자유주의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의 ‘한풀이 복지론’ 역시 전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복지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정부는 근로의욕의 촉진에 중점을 두면서 개인과 가족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노.사.정 협의구조는 노동시장 유연화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개혁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벽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유럽식의 노사정 사회협약기구 혹은 딜식의 국가 개입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정부가 80년대 영국 식 개혁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IMF 체제 하에서 외국 자본의 유치를 국가적 목표로 삼고 있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민주적 시장경제는 독일식 사회적 시장주의 보다는 영 미식 시장주의에 가깝다”고 밝히면서 유럽식의 복지자본주의와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노사정 타협의 체제는 신자유주의 기조 속에서 섬처럼 존재하는 사회민주주의이다.
정부는 80년대 대처가 추진했던 영국식 신자유주의를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경제의 위기는 70년대 말 영국의 위기와 근본적으로 성질을 달리하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은 문제가있다. 우선 영국의 위기는 경제성장에 뒷받침 되지 않는 공공지출의 확대에서 기인한 것인데 반하여 한국의 그것은 오히려 최소개입주의 복지정책, 즉 상대적으로 안정된 국가재정 하에서, 금융부실과 정경유착, 재벌체제과 관료부패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영국과 달리 한국의 기업들은 정부의 과세조치나 보편주의적인 복지정책(universalist welfare state)으로부터 기업활동의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주의적 복지의 부재 속에서, 구조조정 작업을 게을리하고 과다차입으로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였으며, 기업별 노사 교섭체제로 정치적 안정을 위한 비용을 일부 지불함으로써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한국의 젊은이는 한번도 복지의 안전판 속에서 일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기피한 적이 없을뿐더러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많이 배우고 열심히 일할 자세가 되어 있다. 한국의 위기는 국가의 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에서 초래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불합리한 개입(개입의 성격과 양상)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문제의 근원이 아니며, 은행과 재벌의 부실 및 그것을 조장한 부패한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설사 기업별 노사교섭관행과 근로기준법의 몇 조항들이 노동에 대한 과도한 보호의 사례로 거론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상 체제유지의 필요성 때문에 산별교섭이나 보편주의적인 복지정책 대신에 도입한 것으로서, 대책없이 그것을 무너뜨린다면 노동자나 소외층은 이제 벼랑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해체이며 상대적으로 한국사회의 강점이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자본으로 지목되어 온 사회적 통합성의 상실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완전한’ 혹은 들씌워진 신자유주의는 오늘의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데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시장의 신호체계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개입, 나아가 적절한 개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느 외국 연구기관과 월든 벨로 등이 충고하였듯이 지금 한국사회를 시장에 맡겨서는 안되며 그 동안 잘못된 제도, 법, 관행을 고치기 위해 과도적으로 정부가 개입해야 하며, 시장과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제3섹터인 사회운동 부문을 활성화해야 할 시기이다. 만약 르 몽드 지가 지적하는 것처럼 오늘 한국의 위기가 족벌자본주의(crony capitalism) 의 모순에서 온 것이라면 족벌자본주의를 지탱해온 제도, 법, 관행을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것이 개혁의 우선 순서가 되어야 한다. 약자에는 법대로를 들이대고 강자에게는 법이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면 게임의 룰을 지키는 자는 없을 것이다. 예를들자면 시장의 거래관행을 가로지르는 계약의 불투명성 극복, 평가 과정의 공정성, 평가를 위한 정보의 공개, 계약위반자에 대한 제재가 수반되지 않는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는 엄청난 부작용을 양상할 것이다.
사회정책 수행에서 철학적 비전, 나아가 정부의 역할과 그 한계를 일관된 원칙 하에 명확히 해야 하는 이유는 자원의 배분이 일관되기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구성원의 동의를 얻기 어렵고 그것은 곧 개혁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시장의 작동은 하나의 신호체계로 작용하는데, 그 신호체계가 혼선을 일으키면 예측가능한 행동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노동시장 정책, 복지정책, 교육정책 등의 사회정책은 노동자를 비롯한 구성원들을 노동시장에 편입, 유인,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유인체계로서 작용하고, 동시에 노동의 보호를 통해서 생산활동의 안정적인 지속을 보장한다. 그런데 “부당노동행위 억제, 1년 뒤 IMF 극복을 통한 실업 고통의 해결”이라는 전망은 노동자를 유인, 참여시키기에는 극히 미봉적인 대안에 불과하다. 정리해고를 감내해야하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IMF 사태의 실질적인 책임자 자연인들(기업가와 관료)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나누어갖고 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는 가시적인 조치이다. 소외된 자를 또한번 소외시킨다면 어떠한 사회정책도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시장의 신호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진입과 퇴출은 물론 노동시장에서의 퇴출과 진입의 장벽도 없어져쟈 한다. 그러나 해고와 재취업이 엄연히 비시장적 관행에 의해 압도당하는 조건에서 시장논리 보다는 시장의 신호가 작동할 수 있도록 원초적인 법과 제도, 관행을 제정비 해야 하며, 만약 그것이 단시간에 어렵다면 원칙이라도 분명히 하면서추진 일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경영권 참가’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전제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단호한 입장은 근본적으로 시장의 작동을 촉진하기 보다는 소유자의 권력 독점을 강화시키고, 나아가 왜곡된 시장구조를 확대재생산 할 가능성이 높다.. IMF가 요구하는 경제운용에서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막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기업의 경영권 독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소유권 절대주의에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시장에서의 계약관계에서 이러한 불합리성을 그대로 둔 채 약자들을 개혁에 이끌어내겠다는 무리이다. 교원노조의 허용문제에 대해서도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은 “교원노조 측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이기 보다는 비뚤어진 교육제도 하에서 기득권을 가진 교장과 교감, 그리고 자녀의 학업성취에만 주로 관심을 갖는 반개혁적인 주체들에게 공을 넘기고 있다. 결국 50년 분단체제에 속에서 육성되어온 억압적 법률, 소유권 절대주의, 학력만능주의를 인정한 상태에서의 시장논리라는 것은 곧 그러한 질서의 확대재생산을 의미하며, 단지 불만이 폭발하는 것을 방지하는 소극적 사회정책(negative social policy)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복지의 원칙과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가난한 자에 대한 국가, 지역, 가족, 개인의 책임은 얼마만큼인가? 국민생활최저선 ‘보장’인가 아니면 개인적 책임의 문제인가? 보편주의적이어야하나 잔여적(residual)이어야 하나? 왜 정부는 복지향상에 돈을 지출해야 하는가? 사적 보험에 의존하는 기존 위험 방지 체제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 교육과 의료는 공공의 과업인가, 그렇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러한가? 노동력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남녀평등을 위한 법안은 사회정의의 실현은 물론 사회정의의 수립과 가족의 재생산과 어떠한 연관성을 갖는가? 우리의 문화적 조건은 과연 시장주의적인 개혁을 용이하게 해 줄 것인가? 정리해고된 노동자가 2, 3년 이후 재취업이 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IMF로 인한 비상 상황을 들먹이기 이전에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원칙과 입장을 갖고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자신은 물론 주요 정책담당자인 청와대의 수석이나 장관들의 육성에서 시원스로운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총론이나 철학은 학자의 몫이 아니라 권력자의 몫이다. 총망라하여 개혁을 추진하기 보다는 줄기를 잡아서 집중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철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총론과 각론이 구별되고, 기조를 잡되 당장해야할 과제와 장기적으로 해야할 과제를 구분해야 할 것이지만 우리는 지난 100일 동안 그러한 발걸음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2. 정부개혁과 재원마련
사회정책에 관한 신정부의 방향은 정부개혁과 예산편성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IMF 위기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개입의 수준)에 기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개입의 불합리성에 기인한 것이므로 일차적으로는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따라서 정부의 조직개편과 고위 정책담당자의 인선, 조직의 체질개선, 즉 냉전질서와 고도성장기에 부응하는 관료주의 조직문화의 개혁은 신정부의 정책기조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개혁 과정에서 ‘작은 정부’의 기치는 거의 실패하였을뿐더러, 사회정책을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노동, 복지, 교육, 환경 부서의 통합 문제는 성사되지 못했다. 노동부, 복지부 등 업무가 중첩되는 부서를 사회부로 통합하려던 계획이 난관에 부딪치게 되어 정부의 효율성에는 역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실업문제의 경우 노동부, 복지부, 행정자치부 등이 분산적으로 관리하여 업무가 중첩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공공취로사업의 경우 이들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내놓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사업준비가 철저하지 못하여 실업대책을 위해 필요한 부분에 인력이 투입되기 보다는 단순한 생계보조로 끝날 위험성이 크다. 4대 보험의 경우에도 동일한 피용자를 대상으로 하면서도 담당행정부처가 달라서 행정의 효율성이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분담, 서비스 제공에의 전문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개혁의 성패는 인사와 예산집행에 있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는 애초부터 대통령 직속의 기획예산처와 중앙인사위원회 설치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거대 여당의 반대로 중앙인사위원회 안은 철회되고 기획예산처는 예산편성 지침만 작성하는 기획예산위로 축소되었다. 기획예산위는 재정개혁과 행정개혁의 업무를 담당하기로는 되었으나 예산의 집행이 재경부 산하 예산청에서 이루어지게됨으로써 개혁의 가장 중요한 제도적 수단의 수립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따라서 냉전과 고도성장 시대의 예산편성의 기조를 바꾸어 복지, 교육 부문에 예산을 증액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과거의 관성에 비추어 볼 때 기획예산위나 예산청이 단기의 효율성과 가시적 정책적 효과보다도 장기의 사회적 인프라 구축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더욱이 IMF 관리체제 하에서 국가 재정지출의 자율성이 축소되면서 사회복지, 교육, 문화등 사회정책 수행을 위한 재정지출은 크게 제한을 받게 되었다.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은 재원낭비의 우려가 있는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적정 수준을 유지하되 대규모 예상유치와 중소기업 지원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해나갈 방침임을 밝혔다. 즉 뉴딜식 공공투자는 회피하겠다는 것을 밝히면서 공기업의 민영화 방침에만 진력을 기울였다. 사회정책 관련 예산도 축소되었다. 교육예산은 약 18조원으로 편성되어 올해 교육부가 목표로 했던 5%에 못미치는 4.8%에 그치게 되었다. 복지부분에서는 이미 추경예산심의과정에서 65세 노인에 대한 경로연금 지급액도 1300억원 중 560억이 삭감되었다.
과거 김영삼 정권과 마찬가지로 장관의 인선 문제는 개혁의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혐대였다고할 수 있는 데 사회 부문 장관 인선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주양자 보건복지부 장관의 도덕성과 청렴성에 심각한 문제점이 야기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결국 주양자 장관의 사태 이후에도 박영숙씨가 추천되었다가 또 김모임씨로 번복이 되느라 집권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보건복지부는 인선 시비에 날을 지샜다.
정부기구 역시 대민봉사기구로서 체질개선을 하기 보다는 여전히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급급하는 모습을ㄹ 보여주기도 하였다. 특히 노동부나 복지부는 대량실업 사태에 직면하여 상호협조를 통한 문제해결보다는 자기 조직 키우기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들면 고용센터신설이나 인력은행 확충 등 자체의 조직규모의 확대와 연결되는 사업에는 곧바로 예산을 투자하나 생활안정지원자금 같은 부문은 신경을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드러냈다.
정책시행과정에서도 6때 국정지표에서 제시된 참여민주주의나 100대 과제에서제시된 자율적 시민사회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 나타났다. 교육 부문의 경우 현행 교육행정 조직은 학교 현장을 통제하는 기능만 하고 있으며 교육을 촉진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도 설치된지 3년이 지났지만 극히 예외적인 학교를 제외하고는 교장의 독선으로 인해 거의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점을 과연 과거 유산을 한꺼번에 단절하지 못한데서 초래된 현상이라고 너그럽게 봐줄 수 있을 것인가?
4. 중요 정책 대안들과 그 문제점
1) 노사정 위원회
아마 신정부의 최대의 업적이라고 한다면 제1기 노사정위원회라는 협의기구를 성사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짧은 기간에 10개 의제에 관해 90항의 합의를 이끌어낸 것 자체는 큰 성과이다. 그리고 합의에 기초하여 각종의 실업대책들을 만들어냈고, 재벌개혁을 촉구하였으며, 제2기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을 단순한 대통령 자문기구에서 노사가 대등한 위치에서 참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한 점 등을 주목할 수 있다.
그러나 ‘외자유치를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가 최대의 국가 과제로 상정되는 조건에서, 정리해고를 법제화하기 위한 취지를 가진 노사정 위원회가 노동자들의 진정한 동의를 이끌어내기는 상당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단지 재야 노동운동 세력을 제도권 테이블로 끌어들인 타협 체제의 형식을 갖춘 것은 그 동안의 노사간의 일방적인 대립관계의 관성을 생각해본다면 나름대로 중요한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노사정 위원회는 IMF 위기를 들이든 비상시기라는 상황의 압력에 의한 것인 만큼 진정한 사회통합의 달성, 혹은 노사정 동반자적 관계의 수립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노동자들이 당하는 엄청한 고통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수단을 별로 갖지 않은 정부로서는 이들을 향후에도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정부는 법, 제도적인 차원에서 1기 위원회의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나믈대로 노력을 했으나 ‘시장’의 압력에 대항할 수 있는 ‘정치’의 힘과 가용자원이 별로 없다는 데서 한계를 안고 있다. 1기 노사정위에서 합의한 부당노동행위 근절, 무분별한 불벌 정리해고에 대해 정부는 900여개 사업장을 검점. 수사하고, 노동부 장관이 성명을 발표하는 등 몸짓을 취하고는 있으나 도산의 위기에 처한 기업들의 불가피한 체불 등 부당노동행위, 정리해고 조치들을 막기 어렵다. 재벌개혁, 금융개혁 부문 역시 결합재무재표의 의무화, 상호채무보증 금지 등 약간의 법령, 제도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내년까지 자기자본 비율 200% 확보 요구 등 정부차원에서의 개혁요구가 쏟아져 나오고는 있으나 기업 측으로부터의 가시적인 자기개혁 조치는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제위기의 책임추궁 문제도 모양 갖추기로 마무리되고 있으며 구조적이고 포괄적인 원인분석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의 부당노동행위 근절 방침이나 기업의 구조조정은 사실 김영삼 정권 당시 부터 추진해오던 것을 IMF 라는 비상국면에서 기업이 자기의 생존을 위해 추진하는 것에 불과하며, 노동자나 시민이 당하는 실직의 고통에 버금가는 치명적인 상황에 놓여있지는 않다. 시장이 가하는 고통이 기업으로는 최대의 고통이라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정부나 정치권의 개입에 의한 개혁 요구를 저지하고 있다.
즉 이처럼 구조적으로 노사 간에 고통의 공정한 분담이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에서, 정부가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 - 금융개혁, 세제개혁, 4대보험관련 개혁 - 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않고서 공기업 매각과 같은 손쉬운 방법에만 또다시 호소할 경우 노사정 타협의 가능성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노.사.정 타협이 결렬된다면 그것은 신정부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구정권의 업보를 신정부가 짊어지는 것이라도 볼 수 있다. 즉 1987년 이후 10년이라는 민주화 이행의 기간 동안 노태우 김영삼 정권 및 재벌 등 지배층은 노동자와 빈민이 최소한의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초보적인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게을리하였으며, 경제성장과 안정이라는 낡은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하여 기업의 각종 불법과 비리를 묵인하고, 정격유착을 조장하면서 법의 적용을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해왔는 데 오늘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비타협성은 그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응일 따름이다. 얻을 것은 미래의 힘의 관계이며, 잃을 것은 당장의 직장인 노동자들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정부에 항거하고, 정부가 과거와 같은 편리한 방법 즉, 불법파업 엄단, 주모자 구속 등의 억압적 조치를 반복한다면 김대중 정권이 나아갈 길은 김영삼 정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2) 실업 문제
실업은 소득의 상실로 경제적인 비참함을 가져다 줄뿐더러, 가족의 파괴, 범죄 등 여타의 사회문제를 낳기 때문에 80년대 유럽 여러나라의 사회정책은 사실상 실업의 퇴치에 집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실업은 실직자 개인에게는 심리적인 좌절감과 자신감의 결여를 낳게 되어, 그것이 장기화될 경우에는 활력있는 사회의 건설을 어렵게 만드는 암적인 요인이 되기 쉽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정부의 실업보조가 실업자를 더욱 의존적으로 만들뿐이며 실업의 해소에도 기여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계속 퍼붓고 있다. IMF 체제는 공공근로사업 확장을 통한 실업축소의 방법보다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경쟁력 강화를 통한 일자리 확대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러한 대안은 일자리가 끊임없이 창출된다는 전제가 없이는 엄청난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할 위험성이 있지만, 신정부는 그것을 받아들이되 그 파괴적 결과를 막기위한 최소한의 보안조치로서 각종의 실업자 생계 대책들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 취임직전의 비대위의 실업대책에는 직업훈련 지원강화 및 노동시장 인프라 구축 방침을 세워놓은 바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 전망 속에 추진되기 보다는 사용자에게 지원하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정부는 화이트칼라를 대상으로 한 창업 훈련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서는 있으나ㅣ 아직 구체적인 시행세칙이 나온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화이트칼라가 자신의 지식과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국가적인 낭비가 된다. 따라서 그들의 전문지식을 다른 정보산업 등 새로운 산업분야에 적합한 전문성과 결합시키는 직업훈련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대학개혁과 맞물려서 국가의 지식인프라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연초 정부는 추경에산을 짜면서 실업자를 100만명을 기준으로 전제로 하여 5조원 정도를 잡았다. 그러자 노동부는 10조원 더 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공무원 봉급 반납등을 통해 재원을 충당하려 하고 있다. 신정부가 제시한 실업대책은 공공투자를 통한 일자리 만들기, 취업알선과 직업훈련, 실업자 생활안정지원, 벤처기업 육성 등으로 집약된다.
이 중 공공근로 사업은 참여률의 저조로, 생활안정지원 사업은 까다로운 대출절차 때문에 거의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사업의 경우 모든 회수 책임을 은행에 넘기고 있어서 시중은행들이 대출을 꺼려하고 있다.
실업보험 지급은 1인당 평균 200만원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평균 급여인정일 역시 75일 정도에 불과하여 일시적인 생계보조에 불과하다. 실직자의 70%가 실업급여를 받지 못해 퇴직금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이 7,8개월 내에 재튀업을 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생활고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직자 대부 재원마련을 위한 고용안정 채권은 10% 정도만이 팔렸을 따름이다. 실직자 대부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된 비실명장기채의 경우 금리가 낮고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준다는 조치가 없어서 판매가 부진하다. 중장기 예산확보 대책이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벤처기업 역시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벤처기업 육성을 실업자 구제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중앙과 지방의 역할 배분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 않은데서 발생하는 혼선이 많다. 예를들면 중앙 각부처가 경쟁적으로 공공근로사업 등을 비롯한 실업대책을 마련하여 하달하면 중앙에서 지정한 사업은 중복되고 지방자치단체가 필요로하는 사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다. 중앙과 지방의 재원을 반반씩 부담한다는 원칙 들도 지자체의 재원 부족으로 사실상은 국비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실업 고용문제에 관한한 각 부서들이 경쟁적으로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실직자의 입장에서 보면 one-stop service 가 이루어지지 않는 불편함이 있다.
재취업 훈련기관들은 실제 재취업의 전망이 어둡거나, 재취업에는 턱없이 부족한 간단한 교육을 실시하면서 정부로부터 보조금 지급받는데만 신경을 쓰고 있다. 4월 16일 동아일보의 조사에 의하면 재취업 훈련을 받은 실직자 가운데 153명 중 취업자는 15명에 불과하다. 은 갈곳없는 실업자들이 잠시 쉬었다가 가는 곳에 불과하다.
파견근로자 10만명은 실직의 위기 속에 있다. 오는 7월 1일부터 합법화되는 근로자파견제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직종은 2개에 불과하다.
결국 정부는 실업문제를 긴급실업대책법과 같은 법제정 작업, 실업자의 발생 대한 명확한 통계와 자료 확보, 국가예산의 확대, 실업관련 정부부처간의 조정 작업과 업무의 통일성 확보 등을 통해 일관성있고 계획적으로 추진하기 보다는 우선 하부 행정기관의 준비정도와는 무관하게 부처별로 실업구제 조치를 미리발표하고 사후적으로 그 재원조달 작업과 시행세칙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5인 이하 사업장 종사자나 임시직, 일용직 종사자는 실업대책의 사각지대에 있다. 더욱이 증대하는 노숙자나 가정불화나 이혼으로 인하여 유보호 아동이 급증하는 데 대한 대책역시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동사무소, 관공서 등 기존의 대민 정부기구, 교, 사회복지관회 등 지역사회의 공간들을 어떻게 총동원하여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침이 서 있지 않은 상태이다.
신정부의 실업구제 정책은 그 재원마련의 불투명성, 정부 각 부서간의 연계 체제의 취약성, 구제의 방향과 이념의 부재 등을 고려해 볼 때 식민지 시기 이래 고착되어온 임시방편적인 이재(罹災)구호, 빈민구호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공동체룰 유지하고 사회적 통합성을 3이룬다는 적극적인 목적을 가진 것이라기 보다는 사회의 불안과 동요를 방지하고 통치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에 그치는 것이다. 이러한 최소개입주의 복지정책은 식민지 시기,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에 그대로 이식되었고, 그 골격이 변한 적이 없다. 식민지적 최소개입주의는 미군정의 자유주의적 불개입주의와 결합되어 오늘날의 복지행정의 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그러한 방침을 근본적으로 재고하지 않은 채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실업자 구제가 이루어진다면 곧바로 재원 조달의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고, 또 실업자들을 사회에 재통합해내고 적극적인 생산의 주체로 재등장시키는 소기의 효과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2) 복지 문제
지난 시절 우리에게 복지란 곧 성장을 통한 고용 기회의 확보였다. 복지는 곧 가족의 책임이었으며 기업의 책임이었다. 한국에서 능력주의, 가족주의는 국가의 역할 대신에 개인이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안전판이었다. 그러나 기업이 무너지고 가족이 파괴되는 오늘날 한국인이 기댈수 있는 사회적인 안전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김대중 정부는 복지를 축소해야할 임무를 갖는 정부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서 최초로 복지의 틀을 잡아야하는 정부이다. 최근 요보호 아동수의 급증에서 보이듯이 가족해체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복지의 기본단위인 가정이 해체되면 사회적인 안전망의 구축이 더욱 필요해 지게 된다. 가족이 해체되면 궁극적으로 노동력의 안정적인 공급과 재생산이 불가능해져서 경제적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리해고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퇴직금의 부담 때문에 직원을 그대로 묶어두는 일이 존재한다. 즉 보편주의적인 국가복지의 결여는 결국 개인을 시장에 내던질 뿐덜러 기업의 구조저정이나 퇴출도 가로막고 있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는 사회통합의 기반구축을 위해서는 물론 당장 개별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의료보험의 통합과 4대 보험의 통합을 통해 국민 복지의 기본선을 구축할 과제를 안고 있다. 조사에 의하면 ‘4대 보험’ 관련 관리비용이 OECD국가의 무려 3배에 달하고 있어서 통합 시스템의 구축은 절실한 문제이다. 그러나 노동부와 복지부로 분산되어 있는 4대 보험의 업무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업무부서의 통합이 필요한 과제로 대주되었으나 정부조직 개편에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출발부터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지난 3월 24일 의료보험 통합 기획단이 발족하고 4월 23일 국민회의와 자민련 공동여당은 4대보험 통합을 위한 작업에 착수하여 10월 말까지 정부.여당안을 최종적으로 확정하여 중장기 정책과제로 추진할 예정에 있다. 그리고 4대 보험의 정보시스템이 하나로 통합되어 1999년까지는 어디서나 원 스톱으로 민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도록 2002년부터는 전국 어느 곳에서든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국민회의 이석현 의원은 우선 국민연급을 기존 의료보험 행정망에 통합시키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는 기금운영상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연금기금을 관리 운용하는 공공기금 관리위원장을 개정부 장관에서 복지부 장관으로 바꾸기로 했다.
제1기 노사정 위원회에서는 4대 보험 관련 각종 위원회에 노사 및 기타 관계자 대표의 참여를 확대한다는 점, 의료보험 통합을 위한 관계법령의 개정과 공공자금 관리기금법 제5조 삭제를 위한 입법을 98년 중 추진한다는 것을 합의하였다. 그러나 국민연금기금의 투명성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포함되었던 ‘사용내용 공시’, ‘예탁이자률 법적 명분화’ 등의 조항이 부처간의 조정과정에서 삭제되었다. 따라서 기금의 사용이나 예탁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실 규명과 책임소재는 기금 적립자들의 통제밖에 놓이게 되었다. 즉 국민연금 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의 보장에는 역행하는 조치들이 노사정 합의와는 무관하게 관계 차관들의 협의과정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결국 1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기금의 손실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게 되었다.
2) 교육 문제
김대중 정부는 이미 6대 국정지표에서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구축을 제시한 바 있으며, 그것을 위해 열린교육과 능력중심 사회의 건설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지식위주의 교육에서 사람됨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 양적인 확대보다는 경쟁력이 있는 질 높은 교육으로, 획일화된 교육에서 자율화.다양화.특성화된 교육으로 바뀔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을 설정했다”며 대학입시제도의 개선, 사교육비 경감대책, 실직자를 위한 교육지원 확대, 21세기 대비 정보화 교육 강화, 범국민 참여를 통한 교육개혁 추진을 5대 핵심정책 과제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정책을 수행하기 위하여 교육관련 각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노사정위원회에 유사한 (가칭)교육개혁추진중앙협의회를 발족할 계획을 세웠다.
신정부는 이미 정부조직 개편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교육개혁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별로 높에 평가하지 않았다. “우리가 살길은 외자유치와 수출증대”라는 개발독재 시대의 담론이 다시 등장하면서 교육의 우선 순위는 또 다시 뒤로 밀리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이해찬 장관의 정책방향 제시에는 오늘의 교육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가, 그것이 근원적으로는 어디에서 기인한것인가, 교육이 정상화되지 않음으로써 초래되는 경제, 사회, 정치적인 문제는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나열적으로만 언급하였을 뿐, 보다 구체적인 고민이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상 이 정도의 대안은 이미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 위원회에서 충분히 제기. 검토된 바 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교육의 발전을 위해 한 것은 거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이 있다. 교육문제는 단순히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며, 사회개혁없이 교육개혁이 있을 수 없고, 국가의 미래가 교육에 달려있다는 것이 말로서가 아니라 체계적인 논리와 진정한 열정에 바탕을 두고서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것이 신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자율적인 시민사회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망국적인 입시교육과 식민지 시대 이래 근대화 100년동안 누적된 국민길들이기의 통제위주의 교육 행정이며, 경제적 측면에서 21세기 지식사회 구축을 필요한 생산성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가장 큰 걸림돌은 대학의 낮은 질과 서열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학부모와 교사는 이러한 관행의 적응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교육부가 제시한 바 교원의 계약제, 연봉제 도입 방침이나 촌지교사 처벌 등의 방침은 장차 필요한 조치이기는 하나 약자에게 먼저 칼을 들이대는 편의주의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교육비 경감의 대책 역시 입시교육, 대학 서열화라는 근원을 그대로 둔 채 그 파생적 현상을 처리하는 방법에 불과하다. 한국의 교육 문제는 밑에서 올라오는 방법을 택해서는 안되며 위로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초.중고 보다는 대학에서, 일선교사 보다는 교장과 교육행정가의 개혁이 더욱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 문제는 그 자체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고 경제, 노동, 복지, 과학과 문화 다양한 분야와의 장기 플랜 속에서 추진되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장기적 준비를 필요로하는 교육 정책을 쉽게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단지 그 동안의 몸짓을 살펴보면 여전히 불안하고 미흡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교육을 공공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장관이나 정책당국이 ‘수요자 중심’의 철학을 여전히 버리지 않는다면 한국의 교육은 입시에서는 전문가이나 변화되는 세계경제질서에서 전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순응적이고 비창의적인 인간을 양산하고, 그 이면에는 수 많은 탈락자를 만들어 낼 것이다. 1류대학의 간판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학생과 학부모, 일류대의 합격률이 교육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라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교장, 교감, 계속 연구하고 노력할 유인을 갖지 않는 교사, 학생의 자질향상과 연구 업적 축적을 위해 노력할 유인이 전혀 없는 대학의 교수들을 그대로 둔채 ‘수요자 중심 교육론’을 계속 고집하면 기존의 파행적인 교육이 더 나아질 전망은 거의 없다고 본다. 신정부가 시장의 논리에 맡겨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분야가 바로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수 많은 대학에서 재단의 반문명적이고 반사회적인 전횡에 의해 온갖 비리와 분규가 매일 발생하고 있는데도 교육부는 어떤 개입도 하지 않고 있으며, 교장들이 모여서 전교조는 반대, 보충수업 실시를 결의하고 있는데도 교육부는 뒷전에 서 있다.
교육에 관한 한 미래의 청사진보다는 과거 청산이 훨씬 중요하다. 즉 국민길들이기 교육, 간판따기 교육의 관성을 완전히 탈피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논할 수없다.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에서 기능인으로 훈련받은 교사와 상급학교 진학에만 신경을 기울이는 관리자들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컴퓨터의 보급이 곧 21세기 지식정보사회를 담당할 창의적 학생을 만들어낼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과거청산이란 곧 억압과 통제의 수단으로서 교육, 일류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교육의 개념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개념의 변화는 대학개혁과 교육행정 개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법칙에 의거한 대학의 개혁은 대학의 직업훈련기관화를 부추길 것이기 때문에, 대학의 존립의 의의와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우선 마련하고, 그러한 기초 위에서 국가적 사업으로 대학 개혁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교육행정의 개혁은 전교조의 합법화와 학교운영위의 정상화, 교장의 권한 제한을 통해 밑으로부터 이루어지도록 유도하여야 할 것이다.
4. 신정부가 사회개혁의 성공을 거두기 전제
1) 권력구조 개편
이미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가 모든 부문의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고 밝힌바 있지만, 100일 동안 가시적인 사회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결국 정치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정책은 권력집단이 갖고 있는 이념와 정책적 노선의 표현이지만, 그것은 결국 사회 내의 역학관계에 좌우된다. 사회 내 역학은 곧 정치적 역학으로 표현되는데, 그렇게 본다면 오늘날 자민련과 권력을 분점하고 있으며, 거대야당에 둘러싸여 있는 김대중 정부는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구심력을 결여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작년의 한보, 기아 사태의 늑장 처리가 결국 김영삼 정권의 리더쉽의 결여에서 기인했다고 본다면, 오늘날 야당세력과 자민련과의 공동정권, 그리고 최근 지자체 선거 후보과정에서 드러난 바 국민회의 내에서의 강한 지역주의는 김대중과 그의 지도력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국회는 ‘민주주의의 절차’를 내세우고는 있지나 내용적으로는 반개혁의 보루이다. 정부조직 구성 과정에서 권력의 집중을 견제한다는 명분하에 중앙인사위안을 원점으로 돌렸으며, 노사정 합의사항인 실업자 노조가입 자격 문제를 원점으로 돌렸으며,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부가세 부과방안을 유보시켰다. 지난 해 IMF 사태가 터진 이후 ‘국민의 대표’로서 국회가 한 기능은 거의 없다. 물론 인위적인 정계개편이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정계개편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김대중의 개혁은 좌초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실명제의 조속한 실시, 의정활동에 대한 완전한 공개를 기초로 하여 다음 번 총선에서 부패하고 수구적인 의원들을 대거 탈락시키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을 것이다.
2) 사법정의 수립과 언론 개혁
법의 제정, 집행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공정성의 확보는 모든 사회정책에 앞에서는 것이고, 사법의 정의는 최고의 사회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법의 제정과 집행, 정책의 제안과 입법화, 실행 과정의 감시자로서 언론의 역할은 사회구성원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정권교체 시기에 국가를 전복을 기도하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죄로 투옥된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풀려났으며 그들에게 추징되어야할 수천억원의 돈이 아직 추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문제의 처리가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한편 현직판사가 변호사로 부터 뇌물을 받은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이 법원의 내부 징계처리로 종결된 것은 사법정의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리고 작업 현장에서는 사용자가 체불과 노조파괴 등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더라도 감독관청은 거의 형식적으로만 조사, 감독하고 있으며 설사 사법처리되더라도 구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약간의 벌금만 지불하면 되는 오늘날과 같은 조건에서 법의 정의,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를 사회에 통합시켜 내기는 대단히 어렵다.
정부가 언론의 개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언론이 현재와 같은 상태로 있는한 언론은 개혁의 촉진제로서보다는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고스톱 사건에 대한 언론의 침묵이나 당면한 실업사태에 대한 언론의 단순한 사건 보도성 기사들의 대응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3) 시민참여와 발생적 정치(generative politics)의 공간 조성
김대중 정부는 50년만에 정권교체를 통해 건설된 정부이나 세계사적으로 보자면 이미 국가가 모든 시민사회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해온 서유럽식의 개입주의 국가의 모델이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몰려 위축된 이후 등장한 90년대의 정부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공세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미 80년대 영국의 실험에서 나타난 것처럼 개인을 경쟁으로 몰아넣은 신자유주의 모델은 불평등과 사회적 균열을 낳은 등 상당한 문제점을 안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국가를 대신하여 공공의 이익을 구현할 수 있는 사회운동의 영역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사회운동의 정치는 복지의 비용을 축소할 수 있는 발생적 정치이다.
개혁은 대통령과 정부의 힘만으로 추진될 수 없지만 무정형의 미조직화된 국민의 지지라는 추상적 지원에 기대할 수 없다. 여기서 사회단체 특히 시민사회운동의 활성화와 이들과의 개혁 과정에의 동참은 사회개혁이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김영삼 정부의 개혁의 실패는 자신의 잠재적 기반이 될 수 있는 사회운동세력을 배제한 다음 나타난 김영삼의 독단, 나아가 보수세력에의 포위에 기인하였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는 민주적인 시민사회단체의 지원, 협조, 나아가 비판적인 참여를 동원하지 않고서는 개혁을 성공리에 이끌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노사정 위원회에 같은 협의기구도 명실상부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되기 위해서는 공익의 입장에 서 있는 이들 시민사회단체의 대표를 참여시켜서 그 위성을 격상 시켜야 한다. 사회보험 제도 운영에서도 가입 당사자인 노동자와 시민들 및 이들이 추천하는 공익대표를 반드시 위촉하여 관련 위원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동복지,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등 사회복지 서비스에 관한 것은 노인단체, 여성단체, 아동 및 청소년 단체, 장애인 단체 대표자가 반드시 참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민간단체 운동단체 대표의 참여도 단순히 여론의 수렴이나 정책의 정당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수준을 넘어서서 예결산 심의나 임원의 인사 심의 또는 추천 등 보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범위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개혁정부가 힘과 기반을 갖기 위해서는 사회보장의 확충 등을 통한 물적 자원 동원한 정당성 창출도 중요하지만 시민참여와 사회운동의 활성화 등을 통한 빗물질적 힘을 통한 정당성, 동의의 기반 창출도 대단히 중요하다. 사회운동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해결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성을 갖도록 유도하는 중요한 통로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 동안 분단 냉전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로 했던 각종의 관변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건전한 민간단체가 활성화될 수 있는 각종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집단적인 운동에 대해 구속, 체포, 공권력 투입등의 방법을 앞세웠던 과거의 관행들을 철저하게 없앤다음 대화를 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운동단체가 신정부를 당연히 지지해야한다고 생각하고 비판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독선이다. 한국 민주화의 최대의 공로자이나 희생자는 제도권 정치가가 아니라 운동세력이기 때문이다.
5. 맺음말
[참여사회]의 조사에 따르면 시민사회단체 관련자의 28%는 김대중 정부의 100일 동안의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답변하였다. 가장 정치 사회문제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활동가들이 그러한 답변을 했다는 것은 역으로 뒤집어 보면 100일동안 김대중 정부가 가시적인 개혁을 추진한 것이 없다는 말도 된다. 말은 많았으나 가시적인 것은 없었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이다.
김영삼 정권과 마찬가지로 김대중 정부도 군사독재/민주화라는 대립축의 연장 속에 있는만큼 미래지향적인 개혁보다는 잘못된 과거를 철저히 청산하고 새로운 질서의 초석을 닦은 과도적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만약 김대중 정부가 그것 이상의 모든 과제를 일거에 해결하려고 과욕을 부리거나 기존의 사회적 역학에 편승하여 약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면 김영삼 정권과 동일한 코스를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 정권의 힘은 전라도 지역주의에만 기초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세력의 힘에도 기초하고 있다. 김영삼의 개혁시도는 이 점을 분명하게 하고 출발하지 않은 관계로 실패하고 말았다.
김영삼 정부 하에서도 수 많은 노사관계 개혁이나 교육개혁의 청사진이 나왔지만 그것이 제대로 현실화되지 못한 이유는 아이디어가 부재했고, 제시된 권고안들이 적절하지 못한 대안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권고안들 중 상당수는 귀담아 들을만한 것이 있었음데에 불구하고 대체로는 한국의 현실에 바탕을 일관된 원칙과 이론에 입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그것은 현실화할 수 있는 주체의 형성에 뒷받침되지 않앗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론의 부재’라는 것은 것은 정책 권고안들이 유럽의 영국이나 독일, 미국 등 여러나라에서 시행된 것은 번역 소개하는 정도에 그칠 뿐 한국의 역사성과 조건에 대한 깊은 성찰, 나아가 한국의 개혁에 대한 열망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러한 사고의 편린들은 재경원과 맞서서 끝까지 설득하여 예산을 확보하는 힘으로 작용하지 못할뿐더러 경제위기론과 안보이데올로기가 등장하면 슬며시 움츠려들 정도로 취약한 사상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 결국 개혁의 실패는 상당부분은 이론의 빈곤에서 우선 기인하였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가 개혁을 성공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은 각론에서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냉전과 성장주의의 관성에서 탈피하기 위한 굴직한 원칙이며, 그 원칙을 끝까지 고집할 수 있는 참 정치가의 육성, 그리고 그들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사회적 세력의 형성이다.
한국의 사회구조는 권위주의, 민중배제, 여성배제, 가족중시의 이념으로 틀지워졌다. 그것은 국가주도의 고도성장을 가능케 해 준 구조였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사회 구성원 다수의 능력을 사장시키고, 부패와 불투명성을 구조화하는 체제이다. 산업기술인력 중 여성의 비율은 3.8%에 지나지 않는 현실이 말해주듯이 한국의 여성의 능력, 특히 고학력 여성의 능력은 사회적으로 거의 버려지고 있다. 여성의 능력활용, 대학과 사회의 수급불균형으로 인한 과잉교육과 과잉자격화 문제, 노동자의 사기저하와 생산적 의지의 결여 등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경제적인 활력을 되찾을 수 없을뿐더러 21세기형 선진사회로 도약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사회정책은 이러한 현실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거급 강조하지만 한국의 맥락에서 사회정책의 성공 여부는 정책적 판단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역학과 지도자의 결단, 일관된 철학과 미래지향적 비전의 수립에 달려있다. 이 점에서 100일 동안의 실천은 - IMF 하의 제한성, 정치적 역학에서의 신정권의 불리한 입지 등 모두를 충분히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 신정부의 새로운 자세가 요구된다. 향후 수 개월이 개혁의 진로를 가늠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출처] 나의 글(13) : 김대중 정부 100일|작성자 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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