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3

김동춘, 한국보수세력의 기원(2017)

한국 주류보수의 기원(2017.2.4)
2017년과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당시에 다른백년 주최의 강연회에서 제가 박근혜를 지탱한 새누리당 세력에 대해 강의한 내용 녹취록을 올립니다. 이것을 지금 내란을 벌인 윤석열을 지탱한 국민의 힘으로 바꾸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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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우리사회에서 집권 주류세력이 돼서는 안 될 사람들인데, 이들이 우리사회에서 집권세력이 됐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 쿠데타도 용납하고 헌법파괴도 용납하고요. 뒤로 뒷돈도 갖다 주고, 부패도 저질렀고요. 이런 데서 오는 자기의 과거 콤플렉스와 도덕적인 부끄러움이 끊임없이 도망자의 심리, 범죄자의 심리(를 느끼게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보수세력의 기원(2017.2.4) : 네이버 블로그

한국보수세력의 기원(2017.2.4) 
 면장 ・ 2025. 1. 18. 22:57

김동춘 교수님 강연(제1회차) 녹취록

 

주제: 한국 보수 세력의 기원
일시: 2월 4일(목)
시간: 19시~21시
장소: 국민서관 105호
수강자: 총 20명

 
<강연>

저는 대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만, 사회활동을 많이 했고요. 대단히 헌신적으로 사회활동을 앞장서서 한 분들에 비하면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지만, 체질상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타입이 아니라 계속 활동을 해왔습니다. 90년대 초에는 참여연대를 만드는 과정에 관여했고요. 2000년대 무렵에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문제, 진상규명 운동을 4~5년 동안 했습니다. 마침내 노무현 대통령 때 진실화해관련법이 통과돼서 정부에 들어가 4년 동안 상임위원으로 일했어요. 2009년에 나와서 제가 활동했던 것들에 대해 책을 몇 권 쓰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고요. 별로 한 것 없이 나이는 먹었고 다급하고, 세상은 바뀌어야 하는데 잘 바뀌지 않고요. 그래서 몇 사람 모여서 “우리가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자”는 취지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물론 중요합니다만, 정치는 과실입니다. 토양, 거름, 햇볕, 환경이 있어야 정치가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토양이 좋지 않고 햇볕이 비추지 않으면 과실이 열리지 않죠. 그런데 지금 정치는 열린 과실만 따려고 하죠. 영입, 성공한 엘리트들을 영입합니다. 땜질이죠. 한번 정도는 써볼 겁니다. 그렇지만 다음번에는 또 마찬가지일 겁니다.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에 88년부터 땜질로 들어간 사람들을 봐왔습니다. 88년부터 이른바 ‘수혈’해서 들어간 사람들을 봐왔는데요. 28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과연 뭐가 달라졌을까. ‘우리 야당정치나 진보정치, 혹은 우리사회가 그 사람들(’수혈‘해서 들어간 사람들)이 들어간 것 하고 안 들어간 것하고 비교해서 얼마나 달라졌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버니 샌더스가 이번에 미국(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힐러리 하고 거의 동률을 이뤘는데요. 제가 2003년에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버니 샌더스를 주목했습니다. 페이스북에 두 번 정도 “버니 샌더스를 주목하자”고 글을 올린 적이 있어요. 주목한 이유는, 이 사람의 생각이 특별히 사회주의적이거나 진보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고 30대부터 70대까지 일한 정치가입니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나라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은 그렇게 못하는가.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자기가 지역에 들어가서 지역운동을 하면서 지역을 일궜더라면, 그 사람들은 지금쯤 전국적인 지도자가 되었고 사회를 바꾸는 정치지도자가 되었을 텐데(말입니다). 땜질, 수혈로 들어가서 결국은 DJ 휘하 혹은 YS 휘하로 들어가서 한번 국회의원하고, 잘하면 세 번까지 했는데요. ‘본인이 국회의원 한 것 외에 우리나라가 뭐가 달라졌나?’ 그런 생각 때문에 버니 샌더스를 주목했습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정치가가 안 나오는가와 동시에 그런 정치가를 키워주는 토양이 안 되는가? 두 가지가 다 있는데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요. 우리가 앞으로 좀 더 멀리 보고, 토양을 제대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할 이야기는 지금 이야기보다 과거 이야기가 되겠지만, 오늘을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고요. 현재 진행되는 것이 과거와 분리돼있지 않고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이 <강의>라는 책에 쓴 내용 중에 그런 내용이 있죠. “미래라고 하는 것은 미지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를 제 식으로 다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과거 팩트(사건) 자체는 지나갔지만, 현재 속에 녹아있다.” 현재의 일부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간 팩트 자체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일부가 된 과거’를 봐야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미래는, 이것은 신영복 선생님의 이야기인데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미래’가 된다.” 그러니까 지금 어떻게 하는가가 곧 미래다(이런 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과거와 미래는 현재 속에 같이 들어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관심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제 관심도 언제나 ‘현재’입니다. 아까 어떤 분이 제가 쓴 한국전쟁 관련 책을 보셨다고 했는데요, 한국전쟁 이야기도 ‘현재’의 고민 속에서 쓴 책입니다. 또 한국전쟁의 유산 혹은 현재진행형 중인 전쟁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미래를 개척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제가 전쟁, 특히 학살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던 것입니다. 

 

어쨌든 오늘의 이야기는, 우리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보수세력’은 누구인가?” “그 사람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 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 이야기는 동시에 마찬가지로 현재적인 문제의식입니다. 현대사가 변화하려면, 우리사회를 움직이는 주류 보수 세력들이 변화해야 하거든요. 그 사람들이 변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세력이 대체돼야 변화가 가능하거든요.

지금 더불어민주당에 들어가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는 김종인씨가 지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 아닙니까? 그 이후 어딘가에서 김종인 씨를 인터뷰 했는데요. ‘당신 생각이 그쪽(새누리당)하고 안 맞는데 왜 그쪽으로 갔느냐’고 묻자, 김종인 씨가 뭐라고 이야기 했느냐하면요. “자기도 경제민주화 주장했던 사람이고, 공정거래위 만든 사람이고, 87년 헌법에서 경제민주화 조항 집어넣은 공로자 맞는데, 야당 가지고는 세상이 바뀔 것 같지 않다. 힘 있는 쪽 사람들을 바꿔야 (세상이) 바뀔 것 같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 것이 기억 남습니다. 물론 저도 그 사람의 처신이 꼭 좋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시 더민주에 온 것도 저로서는 그렇게까지 환호하면서 높여야 될까? 하는 떨떠름한 기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관직생활이나 비례대표를 무려 5번 정도 하는 기록을 세운 능력을 가진 분인데요. 항상 양지에서만 돌던 분이죠. 자기 할아버지 가인 김병로 선생은 굉장히 훌륭하고 지조 있는 분인데요. 이 분도 할아버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양지에 돌던 분이죠. 우리사회에 그런 사람들 밖에 없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사람(김종인 씨)이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은, 아무리 봐도 야당에 힘을 줘가지고는 세상이 바뀔 것 같지 않으니까 힘 센 놈을 바꿔서 세상을 바꿔보자는 취지로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나요. 

 

사람에 대한 평가는 길게 할 것은 아니고요. 그래서 오늘 제 이야기는, 한국의 주류 보수 세력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디서 왔고, 이 질문을 던지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가 바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서 이 사람들(주류 보수 세력)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사회는 그 사회를 움직이는, 즉 힘을 가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을 모든 사람들이 따라하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힘을 가진 사람들)의 가치관, 생각, 사고방식, 도덕, 철학 등이 온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봉건사회는 봉건영주가 지배세력이다 하면, 그 사람들이 결국 그 사회를 움직였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지배세력이다 하면, 자본가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행동을 모든 사람들이 따라하게 돼 있는 거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온 사회 구성원이 그 사람들을 똑같이 닮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회를 알려면 그 사회를 움직이는 힘 있는 사람을 봐야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알려면, 한국을 움직이는 칼자루 쥔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개념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보수’ ‘진보’ 이런 말을 굉장히 많이 쓰고 있는데요. 이것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진보란 무엇이고, 보수란 무엇이냐’ 이것만 해도 두세 시간 이야기할 소재가 되긴 합니다만, 저는 진보와 보수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상대적이라는 말은, 어떤 나라에서 진보는 다른 나라에서 보수가 될 수 있고요. 어떤 나라에서 보수는 다른 나라에서 진보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주류, 지배세력은 언제나 보수인가? 이런 질문도 가능하고요. 거꾸로 피지배 혹은 사회적 약자는 언제나 진보인가? 이 질문도 가능해요. 우선 보수와 진보 개념이 상대적이라는 말은, 보수도 1부터 10까지 전부 보수인 사람이 있을 수 있죠. 예를 들면, 정치·경제·사회 모든 문제에 보수적인 사람(이요). (또 다른) 예를 들면, 정치·경제적으로는 진보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보수인 사람도 있고요. 경제적으로는 보수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진보일 수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단일한 차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제나 정치에 대해서는 진보이지만, 문화는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굉장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경상도의 아주 꼴통보수고요. 어른 앞에 가서 큰절을 하지 않으면 “돼먹지 않은 놈”이라면서 “아버지 누구냐” (청중 웃음) 이런 이야기 하는 집안에서 자랐어요. 그 영향을 무시할 수 없어서 지금도 마음속에 그게(한국의 예의범절) 남아 있어요. 물론 표현은 못하죠. 표현했다가는 꼴통보수로 찍히기 때문에요.(웃음) 말은 안 하지만 문화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진보, 보수라는 게 여러 가지 차원이 섞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진보와 보수가 상대적이라고 하는 것은, 흔히 영어로 progressive(프로그레시브) 라고 할 때요. progressive는 자유주의를 말하는 것이냐?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냐? 다 경우 경우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의 진보는, 흔히 liberal(리버럴)을 진보라고 번역합니다. 리버럴은 지금 오바마 라든지 민주당 사람들을 진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이 사람이 유럽에 가면? 보수에 가깝습니다. 미국에서의 리버럴 혹은 민주당 정도에 선 사람들은 유럽적 맥락에서 보수라는 뜻이죠. 한국에서 미국의 리버럴은 ‘좌빨’이 되겠습니다.(청중웃음) 그러니까 그 사회의 이념 스펙트럼에 따라서 상대적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둬야겠죠. 사람들이 ‘한국의 보수가 진정한 보수냐?’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물론 보수라고 하는 것이 딱 정형화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수의 관념이 있죠. 전통을 중시하고, 가족을 중시하고요. 요즘 공동체가 유행인데요. 사실 공동체도 보수의 가치예요. ‘한국의 보수가 진정한 보수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군대 안 가고 세금 안 내는데 무슨 보수냐”고 했을 때, 보수는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거죠). 민족이나 국가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보수인데, 이게 아니라는 관념이 깔려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야기가 가능하고요.

 

또 그 사회를 다스리고 지배하는 사람들이 다 보수적이냐?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회가 만들어지는 초창기에 혁명이나 급격한 사회변동이 일어났을 때, 그 사회를 이끄는 권력자들은 진보적입니다. 그리고 돈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사실 진보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빌게이츠 이런 사람들은 나름대로 혁신을 계속 이뤄내면서 생산방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문명을 가져다주고 했는데요. 이렇게 돈과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진보적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회적인 약자나 노동자가 보수적일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가진 것 없고 힘이 없기 때문에 개혁을 원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현상 유지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불안하기 때문에요. 불안하기 때문에 강자에 더 매달릴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미국에서 그런 연구가 많은데요. 육체노동자들 가정하고 화이트칼라 노동자들 가정의 교육을 비교한 논문인데요. 제가 읽은 기억에 의하면, 육체노동자들 가정이 화이트칼라 노동자 가정 보다 자녀교육이 훨씬 보수적이고 권위적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진보적이냐?’ 거꾸로 이런 질문도 가능합니다. 

며칠 전에 “민노총은 보수”라는 칼럼을 봤어요. 왜 그렇게 썼느냐하면, ‘민노총이 주장하는 것은 전부다 자유민주주의, 예를 들어 법을 지켜라 등, 이런 것이지 이게 무슨 진보냐?’는 것이에요. 민노총이 진보이려면, “최저임금 올려라” 이 정도가 아니고 기본적으로 생산체계에서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요구한다든지 이정도 나가야 진보지, 지금 민노총이 요구하는 것은 보수가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강자, 주류,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보수도 아닌 것이고요. 사회적으로 힘이 없고, 약자고, 소외돼 있다고 해서 반대로 진보적인 것도 아니다. 이런 것도 이야기 할 수 있죠.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기득권을 가지고 힘이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보수적이 되죠. 왜냐하면 자기 것을 지키려고 하니까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더 큰 변화를 원하지 않게 되죠. 마찬가지로 한 사람도 연령대에 따라 20대에 진보였다가 40~50대에 중도로 갔다가 70대에 보수로 가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사람 생애주기에 따라서도 그렇고요. 그런 점들도 우리가 생각해 보면서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보고요. 제가 여기서 ‘한국의 보수’라고 하는 것은 ‘한국을 이끌어 가는 주류 세력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진보-보수의 상대적 개념)을 가지고 그 사람들(‘한국의 보수’)을 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두 번째로(다음으로) 이야기할 것은요. 진보, 보수를 이야기할 때 그것이 한 개인의 문제냐? 어떤 사람이 진보적이고 보수적이라는 것은 선택의 문제냐?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저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서 있는 ‘입지’, 조건에 따라 사상과 태도가 좌우된다고 봅니다. 그 사람의 입지라고 하는 것은요. 그 사람이 어떤 가정환경, 어떤 문화적 조건에서 자랐는지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사회·경제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우리나라 정치에 입지가 없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요. 사회에서 ‘권력’의 배분이 있습니다.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과 적게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의 조직·정치·가정에서도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과 적게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입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진보성과 보수성이 어느 정도 좌우됩니다.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은 보수적이 되기 쉽고요. 권력이 없는 사람은 아무래도 뭔가 바꾸려고 하고, 자기가 권력을 주장하기 때문에 진보적이 되기 쉽죠. 

두 번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원 중에 권력, 두 번째로 ‘부’. 경제적인 부입니다. 경제적인 부가 많은 사람은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고, 세습 시키려고 합니다. 경제적인 부가 없고 가난한 사람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노력하거나 계층상승을 하려고 하죠. 경제적인 부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보수, 진보의 입지도 좌우되는 것이죠.

세 번째는 ‘명예’입니다. 명예 혹은 위신입니다. 명예·위신이 많은 것과 적은 것에 따라서 그 사람의 보수, 진보 입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경향적으로 본다면 ‘권력, 부, 명예’ 이 세 가지가 인간이 다 추구하는 것인데요. 이 세 가지를 많이 가진 사람들은 현상유지를 원하기 쉽고요. 이것이 없는 사람은 현상이 바뀌기를 원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기본적으로 한국의 주류 보수 세력은 권력, 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권력, 부, 명예 세 가지 중에 물론 한 가지만 가진 사람도 있지만, 세 가지를 다 가진 사람도 있고, 두 가지만 가진 사람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가진 사람들은, 이 사회가 현상유지 되기를 원하는 보수성을 가지기 쉽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사회에서 권력, 부, 명예를 많이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권력, 부, 명예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부’입니다. 자본주의 사회 이전에는 권력을 통해서 부를 얻었습니다. 즉, 관직을 얻은 후에 부를 얻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권력’이었습니다. 지금은 부를 가지면, 부가 권력과 명예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죠. 결국은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부를 많이 가진 사람, 그리고 그 부를 갖기 위해 다른 통로로써 권력을 갖게 된 사람들, 이 사람들의 문제를 보고자 하는 것이고요. 자본주의 사회 이전에 부의 원천은 토지였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원천은 자본입니다. 그리고 토지와 자본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세습을 통해서 자기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영속시키려고 하죠.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에서보수 세력들, 즉 권력, 부, 명예를 가진 사람들, 그 중에서 특히 부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그 부를 만들었는가의 문제로 이야기가 진행될 텐데요.

 

어제 뉴스를 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미국에서 크루즈와 트럼프 중 크루즈가 이겼죠. 민주당에서는 힐러리가 아주 간발의 차이로 됐는데요. 다음번에 뉴헴프셔에 가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걸 보면서 미국에서 나온 칼럼을 읽다보니까, 오바마가 뭐라고 이야기했느냐 하면요. 정치라고 하는 것은, “cold hard cash(콜드 하드 캐쉬)”다. “냉엄한 현금이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아주 ‘냉정한 현금이다’라는 것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교과서적 민주주의는, 1인1표. 모든 사람이 후보에게 자유롭게 투표해서 그 사람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적어도 미국에서의 민주주의는 “하드 캐쉬”다(는 것이죠). ‘금권선거’다(는 거죠). 돈이 없는 사람은 후보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겁니다). 트럼프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억만장자입니다. 크루즈도 돈이 많은 사람인데, 주로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돈이 엄청 많은 사람들 그리고 월스트리트로부터 지원을 받았더라고요. 힐러리도 ‘클린턴 재단’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전직 대통령인 클린턴 하고 돈을 엄청 벌었더라고요. 힐러리 자신도 돈이 많고요. 힐러리 역시 월스트리트에서 돈을 받았더라고요. 

환경주의자로 잘 알고 계신 스콧 니어링은 미국의 생태주의자이자 급진적인 환경론자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이 사람 자서전이 번역돼 있습니다. 스콧 니어링의 부인인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이런 책도 번역돼 있습니다. 스콧 니어링이 젊은 시절에 쓴 책 중에 ‘dollar democracy(달러 데모크라시)’라는 말이 있어요. 미국 자본주의는 돈 자본주의, 미국 민주주의는 돈 자본주의다. 그러니까 돈이 얼마나 있는 만큼, 즉 돈이 결국 대통령 후보를 만들어낸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번 미국의 공화당·민주당 경선과정을 보면서도 역시 미국의 민주주의는 돈이 계속 움직이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샌더스는 풀뿌리. 정말 개미들이 엄청나게 돈을 모아서 샌더스를 지원했어요. 50%까지 올라간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거죠. 젊은 친구들이 거의 80%가 몰표를 줬죠. 엄청 지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풀뿌리 기금을 가지고 된 건데요.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만,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하면요. 결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최종 목적은 결국 ‘돈’이다. 판사, 검사 이야기 나오지만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올라간 사람들 재산을 쭉 보면요. 판사, 검사 월급 가지고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대학교수 중에는 20~40억대 재산을 가지고 있고요. 지금 후보로 나온다는 대법관 출신 안대희라는 사람도 5개월에 16억을 벌었습니다. 황교안이라는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이 사람들의 종착점은 결국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요. 그게 부동산 투기를 했든 위장전입을 했든 알 수 없지만요. 그래서 결국은 우리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의 최종 목표는 결국 ‘돈’이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굉장히 보수적이면서도 가난한 사람이 있었나? 그런 사례를 제가 찾아보려고 했는데 거의 없더라고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우리 사회에서 결국은 보수 세력이나 지배세력 혹은 주류세력들이 어떻게 해서 돈을 모았는가, 이 문제가 우리사회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료를 찾다보니, 친일파 이완용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겼는데요, 물론 혼자 팔아먹은 것은 아니고 당시 대신들 하고 양반 관료들이 한꺼번에 팔아넘겼는데요,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넘긴 대가로 얻은 것이 1925년 당시 이완용 재산이 300만원이었습니다. 지금 돈으로 5~600백억 정도입니다. 또한 매년 사례금으로 2억 이상씩 받았다고 하죠. 사람들은 이 사람들에게 ‘민족 반역자다’ ‘배신자다’라고 이야기 하지만, 결국 그게 아니었을까(최종 목적은 ‘돈’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20세기 이후 우리 사회 통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회가 변할 때는 그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그 권력을 획득했는지가 중요한데요. 근대 사회에서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봉건세력들을 부수고 나서 근대 부르주아 세력들이 근대 국가를 만들어서 사회를 이끌었던 것을 말합니다. 모든 나라에서 주류 보수 세력들은, 기본적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봉건질서에서 투쟁을 통해 초기에 진보적인 세력으로 나왔습니다. 프랑스혁명부터 시작해서 영국도 그렇고요. 진보의 내용은, 과거의 관직을 세습한다든지 국가가 과도하게 세금을 물려서 자기들이 기득권 가졌던 것을 타파해서 “능력대로 하자” “시장법칙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관직은 없지만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재산권을 보장해주자”는 것이 근대사회의 동력이었습니다. 유럽이나 아시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랑스혁명도 그렇고 영국도 그렇고 미국도 마찬가지고요. 부자들이죠. 부자들인데, 전통적인 세습귀족은 아닌데 돈은 있고요. 이 사람들이 마음대로 자기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달라고 싸운 것이 근대사회를 만들어온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던 것이 사실이죠. 한국의 경우에도 그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게 어떤 식으로 굴절됐느냐가 100년 동안 한국을 만들어온 과정이라고 봅니다. 근대 부르주아라고 불리어진 사람들이 스스로 조선왕조를 뒤집어 놓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만들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 오늘날 한국문제의 기원이라고 보는데요. 

 

100년 정도 전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라는 영국의 일류학자이자 지리학자 할머니가 60대가 넘어서 한국을 여행하고 쓴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을 보면, “조선 사람들이 너무 무기력하다” “전부 힘이 없고 매가리 없다” “그런데 조선민족이 원래 그런 사람들인가?” 자기가 보니까 아니더라는 거예요. 왜냐? 한국 사람들 중에서 그때 이미 너무 살기 어려워서 연해주로 간 사람들이 있어요. 블라디보스톡이나 이쪽으로요. 조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시베리아로 가보니, 엄청 활기가 있고 눈이 반짝반짝 거리고 열심히 일하고 대단하더라(는 거예요).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한반도 본토에 사는 조선 사람들은 열심히 일 해봐야 양반관료들이 다 해먹는다. 다 빼앗아 가기 때문에 열심히 일 할 필요 없다(는 거죠). 열심히 일하고 부를 축적해봐야 저 놈들이 다 빼앗아가기 때문에 양반 관리들은, 이사벨라 비숍의 표현을 빌리면, “흡혈귀다.” 이 ‘흡혈귀’같은 인간들 밑에서 어떻게 열심히 일할 동기가 있겠느냐? 그러니까 그냥 죽은 듯이 산다(는 거죠). 그런데 동시베리아에 가니까 거기에는 ‘흡혈귀’가 없더라. ‘흡혈귀’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 만큼 자기 것이 되더라. 그러니까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다. 조선 사람들은, 말하자면, 엄청 잠재력이 있다(는 겁니다). 당시 대부분의 외국 방문자들은 한국에 와서 한국을 보고 “엄청 썩은 나라”고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했는데요. 이세벨라 비숍도 “맞다” 맞는데, “실제로 조선 사람들을 만나보니 굉장한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인데, 이 잠재력이 썩은 관료들 때문에 다 빼앗기더라”는 거죠. 비숍이 말하는 대안은 무엇이냐 하면요. 썩은 관료들만 없애버리면, 요즘 식으로 말하면, 정치가 바뀐다는 겁니다. 정치가 바뀌면 사람들이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굉장히 미래가 기대되는 민족이라는 것이 비숍의 이야기입니다. 대단한 통찰력이죠. 비숍이 결국 거기서 뭐라고 대안을 제시하느냐면, “생산자들로 하여금 자기 생산물을 가지고 가도록 해라.” 그러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고 활력이 있을 거라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이미 유럽의 자본주의를 경험했기 때문에 산업자본가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은 괜찮지만, 흡혈귀 같은 관리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은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는 겁니다). 결국 이 사람이 말하는 대안은,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자극을 줘야 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인센티브를 주라는 거예요. 인센티브를 주려면, 빼앗아 가지 말라는 거예요. 생산자들의 힘을 돋워 주어라, 자긍심을 갖게 해줘라(는 겁니다), 비숍이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한 지 10년 후에 결국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죠. 

흡혈귀 같은 양반들은 다 어떻게 됐을까요? 다시 또 일본에 붙어서 중추원이 되고 뭐가 되고 등 친일파가 된 거죠. 그 밑에서 시름하던 백성들은 너무 힘이 없으니까 저항을 할 수가 없고요. 저항을 하다가는 가혹한 탄압이 들어와서 결국 진압 당해서 처참하게 죽고요. 동학농민군들처럼 처참하게 죽고요. 일부 선각자, 지식인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사회를 바꾸려고 했으나, 그 선각자들도 세 부류로 나뉘죠. 선각자들의 세 부류를 제가 <대한민국은 왜?>라는 책에서 세 흐름으로 정리했습니다. 개화론, 독립론, 인간화론. 조선을 바꾸려고 했던 사람들이요. “이 세 세력 중에서 독립론하고 인간화론은 처절히 패배하고, 개화론만 살아남았다. 개화론이 결국 친일파가 되었다” 이것이 제가 말하고 싶은 거고요. 

 

지난 120년의 우리나라 역사는 개화파의 역사입니다. 초기 개화파는 조선을 바꾸려고 위로부터 쿠데타를 일으켰는데요. 쿠데타가 삼일천하로 끝나니까 그 다음에 김옥균은 일본으로 피신하고, 서재필은 미국으로 도망가고, 남은 사람들은 처참하게 죽습니다. 김옥균은 10년 후에 잡혀 와서 결국 처형당합니다. 처형당해서 양화진, 지금 중앙일보 뒤에 서울역 염청교, 처형장에서 목이 잘려서 걸렸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침을 뱉고 발로 차고 처참한 최후를 당했습니다. 미국으로 도망갔던 서재필은 10년 후에 다시 돌아와서 <독립협회>를 만들고 뭘 하려고 발버둥 쳤는데요. 당시 고종이 ‘독립협회’를 뒤에서 지원하다가, ‘독립협회’가 너무 커지니까. 대한문 앞에서 5만 명이 집회를 했으니까요. 지금 식으로 말하면, 한국 시민운동의 효시입니다. 저는 최초의 한국 시민운동이라고 보는데요. <독립신문>을 가지고 사람들을 계몽하면서, 대한문 앞에서 5만 명이 몰렸어요. 당시 <독립신문>을 보면 과천에 있던 어느 농부가, 당시 과천은 지금처럼 전철타고 올 수 없어요, 지게에 나무를 지고 대한문까지 옵니다. 왜 오냐? 독립협회 활동에 장작이라도 보태어 쓰라고요. 이게 한 가지 이야기가 아니라, 전국에서 떼를 지어 한푼 두푼 돈을 냈어요. 그런데 세력이 너무 커지니까 고종이 겁이 나서 ‘독립협회’를 해산시켜버리고, 서재필은 미국으로 다시 가죠. 거기서 한국을 잊어버리고 의사가 돼서 ‘필립 제이슨’으로 이름을 바꿔 미국사람으로 살게 되죠. 어쨌든 이 세 세력이 우리사회를 바꾸려고 했지만, 개화파들만 살아남았어요. 개화파가 나중에 45년 이후에 친일파가 되고, 친일파가 오늘날까지 우리사회를 이끌어 오고 있는 거죠. 

 

그러면 보수 세력이 모든 나라에서 도덕적으로 깨끗한가? 사회를 이끌고 갈 수 있을 만큼 민족적이고 국가적으로 도덕적으로 존경할 사람인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미국 같은 나라도요. 제가 아까 진보라는 말을 했죠? 미국에서 진보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19세기 말~20세기 초 루즈벨트 대통령이 있었던 시절을 진보의 시대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그 진보의 시대가 미국이 엄청나게 팽창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던 시기예요. 그리고 ‘먼로주의’라고 해서 미국이 대외적으로 간섭을 안 하던 노선을 벗어나서 처음으로 스페인하고 전쟁을 합니다. 필리핀하고도 전쟁을 하고요. 대외적으로 팽창하는 시기에요. ‘진보의 시기’라고 말하지만, 20년 전에 돌아가신 가브리엘 콜코라는 분이 쓴 책에 보면요. “진보의 시대? 그 시대는 진보의 시대 아닌데” 그 시대는 미국의 자본주의가 가장 탐욕스러웠던 시기이고, 자본이 무차별적으로 사회에 힘을 행사했던 시기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그 자본이 자국 내에서 더 이상 돈벌이가 안 되니까 팽창한 시기였다고 말합니다. 처음으로 대외적으로 전쟁을 벌였던 시기죠.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카네기라든지 록펠러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사람’들이죠. 돈을 벌 때는 엄청나게 나쁜 짓도 많이 하고, 나중에 사회적으로 기부하고 대학 세우고 재단 만들고 한 거죠. 아들 때까지 오면서 재벌이 자연스럽게 해체하면서 오늘날 미국의 자본주의를 이뤄왔는데요. 그런데 그 이면에는 온갖 추잡한 일들이 많았고요. 미국의 노동운동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노동파업하면 총으로 쏴 죽이기도 했어요. ‘헤이마켓 사건’이라고, 시카고에서요. 그 정도로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도 굉장히 심했던 나라였어요. 프랑스, 영국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떤 나라도 그 사회를 다스리는 보수 세력이 항상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정도는 아니다(는 거죠). 자본주의 사회는 어느 정도 도덕적인 타락, 탐욕, 범법, 부정이 있다. 다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좀 더 민주주의와 사회정의가 어느 정도 수립되는 쪽으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혁명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들은 세계사 시간에 ‘1789년’ 이렇게만 배웠을 텐데요. 프랑스혁명은 1789년에 시작해서 1871년까지 100년 동안 진행된 혁명입니다. 2년 전 우리사회에서 나온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보셨죠? 그게 1830년 혁명 이야기인데요. 1848년 혁명. 48년 2월, 6월 혁명. 49년 1월 혁명. 1000명, 2000명 학살하는 일들 많았고요.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거쳐서 이렇게 오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조금 더 조금 더 도덕적인 방향으로 왔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본다면, 제 이야기가 약간 결론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나 우리 사회의 정의도 어쩌면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씩 해봐요. 제가 너무 멀리 보는 지도 모르지만요. 여담입니다만, 음악평론 하는 박용구 씨라는 분을 아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이분이 아직도 살아 계세요. 102살입니다. 이분이 100살 때인, 2년 전에 우연히 저희 대학 교수가 자기 동네에 이분이 살고 있다고 해서 만나러 한 번 찾아갔어요. 왜 만나러 갔느냐면, 이분의 이력이 꽤 흥미로운데요. 음악 하는 분이지만, 일제 때 평양고등보통학교에서 파업을 일으켜서 퇴학당한 경력이 있고요. 이승만 정권의 탄압을 받아서 보도연맹사건에 걸려 일본으로 밀항 갔다가, 10년 동안 이승만 정권 내내 때 일본에서 망명생활 하다가 돌아오신 분이에요. 음악을 하는 분이지만 꽤 사회의식이 있는 분이어서, 한 번 만나보고 싶어서 갔어요. 교과서에 나온 사람들이 자기 친구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청중웃음) 이북에 올라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악가 김순남이라는 사람 들어봤죠? 김순남 하고 친구에요.(웃음) 그런 분이에요. 그리고 30년대 만주에서 라디오를 진행했던 분이에요.(청중웃음)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면 팟캐스트 인기 진행자였던 분입니다. 제가 왜 이분 이야기를 하느냐면,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듣고 했는데요. 솔직히 제 내공으로 이분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내공이 안 됐더라고요.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제가 나오면서 “오래 사셨는데, 왜 한국 정치가 이 모양입니까?”하고 물으니 명답을 하셨어요. “한국이 내 나이보다 훨씬 젊지?(웃음, 청중웃음) (웃음) 아직 어려. 시간이 더 필요해.” 이렇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생각했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오늘의 결론일 수도 있는데요.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주류 보수 세력이 엄청나게 굴절돼 있고 왜곡돼 있다, 나라를 이끌 정도의 품성과 도덕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식민지이고, 두 번째는 한국 전쟁 때문이라고 봅니다. 20세기에 우리가 겪었던 제일 큰 두 사건이 아직도 한국사회에 굉장히 짙게 드리워져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만들려고 저 난리를 피우는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그거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국으로부터 지금 무역보복을 당할 위험에 처했는데도 사드배치를 이야기하는데요. 그 이유가 뭘까? 첫 번째는 식민지 트라우마, 식민지 콤플렉스. 두 번째는 전쟁의 위협과 두려움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보통 자본주의 국가가 걸어갔던 것처럼, 사회를 이끌어 가는 돈 많은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 정도의 도덕성과 품성과 시야를 못 가지고 있고요. 굉장히 쫓기듯이 오고 있다. 그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제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하는데요, 최근에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후보가 압승했고 국민당 후보가 패배했는데요. 중국의 국민당이라는 게,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승만 보수세력 아닙니까? 그런데 중국의 보수 세력인 장개석(장제스)하고 한국의 이승만이 뭐가 다를까? 굉장히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의 장개석도 엄청 썩었고, 온갖 공작을 했던 세력입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의 가장 큰 차이는요. 중국의 보수 세력, 즉 장개석 국민당 세력들이 썩었고 굉장히 문제도 많지만 한 번도 100% 일본 지배하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일본이 중국을 먹어들어 가긴 했지만, 중국 본토를 완전 점령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이 사람들(장개석 국민당 세력)은 언제나 피해 다닐 수 있었어요. 어떤 형태로든 일본하고 전투를 했습니다. 일본하고 싸웠다는 겁니다. 우익들도요. 물론 모택동도 싸웠죠. 그런데 한국의 이승만 세력과, 한국의 주류 한민당 보수 세력들은 완전 식민지에 들어갔던 사람들입니다. 일본의 완전 식민지를 피해서 미국이나 중국으로 나왔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팽(烹) 당했다는 거죠. 독립운동 세력들이죠. 

 

저는 역사학자들이 ‘이 사람들은 반민족 세력이고, 이 사람들은 민족세력이다’라고 하는 데에 꼭 동의하지 않습니다. 민족이라는 것이 물론 중요한 가치인 것은 틀림없습니다만, 친일파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의’ 문제로 봐야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의문제라는 것은요. ‘자기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민족을 팔아서 일본에 충성 바쳤다’라고 했을 때는 민족적으로 이야기하지만요. 부도덕한 일이나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봅니다. 친일파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고 잘난 사람들이고 엘리트들이고 똑똑한 사람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앞장서서 일본 군대 전쟁에 나가는 조선병사들을 독려하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KBS 이사장하는 이인호 씨 할아버지가, 당시 유교적 지식인들 중에서 일본에 충성을 맹세했던 이들이 유학한 것을 황도유학이라고 하는데요, 그 사람들이 다 100% 유학자인가? 아니죠. 심산 김창숙 선생 같은 분은 유학자이지만 일본에 끝까지 저항했던 분이죠. 그럼 이 차이가 어디에 있느냐? 황도유학을 한 이인호 씨 할아버지와, 끝까지 일제에 저항했던 심산 김창숙 선생의 차이는 무엇이냐? 민족의식의 차이냐? 물론 있죠. 더 중요한 포인트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과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사람’들 인거죠. 맹자가 이야기 하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부끄러워하는 거죠. 이렇게까지 할 수 없지 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입니다.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지만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거죠. 

적극적으로 친일하지는 못하지만 입 다물고 있어도 이 사람들은 크게 불이익은 안 당합니다. 왜냐하면 배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먹고 살 수 있어요. 굶어 죽지 않아요. 그런데 ‘더 잘 살기 위해서 더 잘 먹기 위해서 더 명예롭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사람들’과 ‘그렇게까지 해야 돼? 라고 했던 사람들’의 차이다, 라는 거죠. 이것은 결국 ‘정의의 문제’다. 젊은이들에게 일본 천황에 충성을 바쳐서 전쟁에 나가라고 선동하는 것은 전쟁의 불쏘시개가 되라는 말인데, 내로라하는 지식인이 사람들에게 “이 전쟁에서 우리는 천황폐하를 위해 이겨야 한다”고 하면 청년들이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 청년들을 죽게 만든 사실상의 전쟁 범죄자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런 사람들이 해방 이후에 우리 사회의 주류세력이 되었던 그 현실에서 문제가 출발합니다. 흔히 사람들이 친일세력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저는 그 ‘친일의 문제’를 기본적인 ‘JUSTICE’, ‘정의의 문제’라고 봅니다. 정의의 문제와 기본적인 인간의 양심문제로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싸운 사람들은 대부분 해외로 갈 수밖에 없었고요. 국내에 있는 사람들은 대게 최대의 저항이 침묵이고요. 더 이상의 저항은 불가능했기 때문에요. 침묵한 사람들은 우리가 인정해 줄 수 있고요. 생계를 위해서 친일했던 사람들도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단 경찰들이나 말단 관리들 같은 경우에요. 그런데 출세를 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더 오바하는 경우가 있죠.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사회에 남긴 유산은 식민지 40년이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드리운 그늘은 70년 동안 지속되는데요. 그 까닭은 당시 일본에 협력했던 사람들은 다 죽었지만요. 문제는 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건 그 자식들에게 교육적인 효과를 계속 주고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주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고요. 그리고 그렇게 협력한 대가로 만들어진 경제적 부가 그 이후에는 ‘플러스알파의 부’와 ‘자녀들을 좋은 대학 혹은 유학(에 보내고), 관리로 만들’ 수 있는 기초자산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막스가 말하는 ‘원시적 축적’인데요. 이 사람들이 초기자본을 가졌기 때문에 계속 승승장구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거죠. 45년 이후에 친일 재산 환수를 못한 것 아닙니까? 환수를 못했으니까 이 사람들이 일본에 협력해서 얻은 대가인 토지, 재산을 해방 후에 누가 갖느냐가 우리사회에 가장 중요한 문제였고요. 지금 식으로 말하면, 얼마 전 통계를 보니까, 전 상위 5%가 토지의 64%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득기준으로 보면요, 김낙년 교수 통계에 의하면, 상위 10%가 우리나라 전체 부의 48%를 가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불평등 사회인데요. 이것이 합리적으로 노력과 능력에 의한 것이었더라면 과연 이렇게까지 (불평등하게) 됐을까. 사람에 따라 능력의 차이 있을 수 있고요. 노력의 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능력과 노력의 차이에 의해서 소득이 차이날 수 있습니다. 2배, 3배 좋습니다. 하지만 50배, 100배가 되면 문제가 됩니다. 50배, 100배가 됐을 때 거기에는 반드시 정치권력이 개입하게 돼 있습니다. 시장의 법칙만 가지고 그렇게 되기 어렵습니다.

 

정치권력이 개입한 첫 번째 원천은 식민지 체제가 이 사람들을 끌어들었고요. 제가 아까 중국하고 한국 간 차이를 말씀드렸습니다만, 폭력체제에 완전히 지배당한 사람하고 폭력체제에 한 번 저항한 사람의 차이인데요. 폭력체제에 한번 저항했을 때, 사람들에게 주는 도덕적 위신이 있습니다. 흔히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말하는 것인데요. 미국의 경우에도 지난번에 대통령을 했던 조지 부시, 그리고 그 위에 아버지 부시 있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대단한 집안이에요. 미국에서 이른바 엘리트 부자 집안을 ‘establishment(이스태블리쉬먼트)’라고 해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기득권층 혹은 상류층인데요. 이 주류세력의 대표적인 사람이 부시 집안이에요. 부시는 2차 대전 중에 항공기 조종사로 전투에 참전했던 사람이에요. 부시뿐만 아니라 당시에 이스태블리쉬먼트에 속한 사람들이 다 전쟁에 참전했어요. 그 당시 미국은 의무병제였거든요. 베트남 전쟁 때까지 징병제였습니다. 그 이후에 모병제로 바뀌었지만요. 또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경우에도 모택동은 자기 아들을 한국전쟁에 참여시켰습니다. 자기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나라든지 그 사회가 국민들에게 위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자기 헌신을 보여주고, 자기 것을 내놓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국민당이 문제가 많지만, 어쨌든 일본군하고 싸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군하고 싸우지 못하고 완전히 항복했던 사람들이 그 이후에 해방이 됐을 때 다시 집권했다면, 거기서 비극의 시작이다(고 봅니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 폭력에 완전히 지배당해서 폭력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은 아주 소수이고, 폭력을 가진 사람들과 한 편이 됨으로써 자기의 억울함과 분함을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출세지향적인 사람들이요. 전형적으로 박정희 같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굉장히 똑똑하고 잘났고 다른 사람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 수 있고 더 잘 살 수 있는데, 오로지 ‘조건’ 때문에 내가 그렇게 못 산다고 했을 때요. ‘그 조건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그 조건 속에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런 경우에 박정희는 (조건을) 바꾸는 문제보다 (조건에) 들어가는 길을 선택한 거죠. 일본군이 돼 가지고 칼을 쥐는 방법을 선택한 겁니다. 칼을 쥐고 일본놈 하고 맞짱을 뜨겠다는 거죠. 문제는, 저희 대학에 한홍구 교수 표현을 빌리면, 친일세력 문제는 일제 때 친일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진 이후에 훨씬 더 많은 죄악을 저질렀다는 겁니다. 이게 한홍구 교수의 이야기인데요.

왜 그런가?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콤플렉스와 죄의식과 범죄자로서의 쫓김입니다. 콤플렉스는 자기가 저항하지 못한데서 오는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그 콤플렉스를 다른 방식으로 덮으려고 합니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의 잘못된 과거나 문제점을 알고 있는 사람을 해코지 하려고 합니다. 이게 조선시대 선비들의 이야기를 빌리면, “소인이 권력을 잡으면 무자비해진다”는 겁니다. 군자가 권력을 잡으면 포용력이 있지만, 소인이 권력을 잡으면 무자비해진다(는 거죠). 소인은 자기가 능력은 있지만, 자기가 권력을 가지고 있는 데 대한 불안감이 있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해코지하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쫓기는 심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조선시대 유교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제가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문제는 일본에게 비행기를 헌납하고 일본으로부터 자개를 받아서 돈을 번 사람들이 돈을 유지하고 싶고, 권력 유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들이 자기를 지지해줄 것 같지 않다면, 기댈 때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외세에 붙거나 아니면 자기를 해코지할 지도 모르고 자기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겁니다. 그게 반공입니다. 반공이라는 무기하고, 어떻게 하면 힘센 놈에게 다시 붙을까, 이 두 가지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을 해결해줄 사람이 누군가를 찾기 시작한 겁니다. 지주세력들이나 돈 많은 사람들, 부자들이 해방됐을 때 패닉상태에 빠진 것 아닙니까? 구세주가 없느냐? 구세주가 있더라는 거예요. 우선 굉장히 강경한 노선을 취하고 있는 우익이 자신들의 구세주입니다. 강경 우익 김구 선생이죠. 그 다음에 자기를 구제해줄 수 있는 힘 센 나라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 이승만이죠. 필사적으로 김구와 이승만에게 붙습니다. 이 사람들(김구와 이승만)이 들어오자마자 엄청난 정치자금을 쏟아 붓습니다.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 줄을 선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생존을 도모했는데요. 

그 다음에는 미군정이 들어왔는데요. 일본이 남긴 재산이 가장 결정적인 재산 아닙니까? 적산이라고 하는데요, 이 적산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결국 70년 동안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를 만든 원천이 바로 적산입니다. 일본이 남긴 토지와 재산을 누구에게 줄 것 인가가 결정적인 문제였고요. 지금 재벌문제와 똑같아요. 지금 한국 경제의 거의 모든 문제는 ‘재벌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인데요. 당시로 본다면, ‘토지 어떻게 할 것이냐?’ ‘친일파가 남긴 재산 어떻게 할 것이냐?’가 제일 결정적인데요. 이승만이 “토지 국유화 안 한다”고 안심을 시킨 거죠. 그러니까 이승만에게 정치자금이 엄청 몰려간 겁니다. 그 다음에 ‘일본이 남기고 간 재산은 어떻게 분할할 것이냐?’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있죠. 미군이 한국에 왔는데, 한국 사람들이 영어도 못하고 하니까 어떻게 하겠어요. 영어 잘하는 사람들하고 우선 친할 수밖에 없죠. 당시에 하지 중장이 한국에 사령관으로 왔는데요. 하지의 통역자였던 이묘묵이라는 사람은 조선의 반을 가질 정도로 권력이 있었다고 해요. 하지가 어떻게 하는가가 결정적인 문제였는데요. 거기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결국 친일 세력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느 세상이 바뀌든 항상 처세에 능한 사람들이고요. 시세에 눈 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계 변화에 대한 정보도 빠르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고, 권력이 접근해서 부를 가질 수 있었던 거죠. 영어 잘 하고, 미국 유학 갔다 오고,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한 사람.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이고 반공을 깔고 있었기 때문에요. 그게 결국은 오늘의 한국 주류세력을 형성한 거죠. 

 

그런데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봐요. 문제는 이 사람들을 더욱더 왜곡한 시킨 것이 북한과의 대결구조였고요. 남북한이 분단이 안 됐더라면, 친일세력들이 이렇게까지 일그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봐요). 어느 정도 양심이 있기 때문에 부끄러운 점도 있고 하니 타협도 하고 했을 텐데요. 심지어 우리나라 보수정당의 원류인 한민당 조차도 초기강령을 보면, 지금 더민주당 보다 더 진보적이에요. 당시는 그게 대세였기 때문에요. 토지를 국유화까지는 아니지만, 토지나 재산을 시장논리가 아니라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문제는 이 사람들을 더욱더 굴절시킨 이유가 바로 남북한 분단이고, 북한과의 대결입니다. 

이 대결과정 속에서 자기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한 사람들이 누구에요? 사회주의자들이에요. 일제시대 때 사회주의자들도 친일했어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친일한 사람들의 80%는 대개 우익에 속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돈 많은 사람들이 결국 친일할 수밖에 없고, 똑똑한 사람들이 그렇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 사람들을 가장 강력하게 공격한 것이 바로 이북 김일성 정권입니다. 토지개혁하면서 지주들 쫓아내고, 엘리트들을 공격하니까 이 사람들이 다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이북이 원수가 되는 거죠. 자기 재산을 빼앗았고, 자기 고향을 빼앗았으니까요. 이 사람들이 패닉상태에 빠져가지고, 결국 최고 강경 반공주의자 된 거죠. 반공주의자라는 것이 그렇게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에요. 내 재산을 뺏어간 거죠. 저는 억울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북에는 대주주가 없고 자영농이 많아요. 특히 함경도는 땅이 넓지 않아요. 그래서 지주가 있어도 사람들을 악랄하게 착취하거나 하지 않아요. 하지만 당시 김일성 정권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으로 돈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겁을 준 거죠. 너무 겁을 주니까 이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게 되고, 사회주의를 악마처럼 보게 된 것인데요. 사회주의를 악마처럼 보게 된 것은 한국만 있었던 현상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초기에 러시아혁명이 일어났을 때, 레닌 스탈린을 거의 악마라고 봤어요. 문제는, 이런 식으로 이북하고 대결구도가 짜이게 되면,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생각이 건강하게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도 마찬가지인데요, 여러분의 생명이 위협이 온다면 관용을 베풀 수 있겠어요? 쉽지 않죠. 자기 존재가 불안하고, 내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자기에게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는데요. 며칠 전에 이재명 성남시장이 청년수당을 준다고 하니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악마의 속삭임”.(청중웃음) 저는 김무성이라는 사람이 악마라는 표현을 어디서 가져왔을까 생각했는데요. 정치가가 원래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잖아요. 저는 그것을 보면서 어떻게 해석했느냐하면, 성남시장의 청년수당 지급이 이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위협이구나. 이거 줬다가는 자기들 정권 잃을 지도 모른다, 이 두려움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청년수당이 퍼져서 더민주당이 잡고 있는 시·도에 퍼지면 정권 넘어가잖아요. 정권 넘어갈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두려움이 이 사람(김무성 대표)으로 하여금 ‘악마’라는 표현을 쓰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앙정부인 복지부에서 계속 딴죽 걸면서 막다가 진행하니까 ‘악마’라고 표현하는, 그 불편한 심기가 우리사회에서 주류 보수 세력의 계속된 심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계속된 심기가 무엇이냐? 사람들에게 여유와 관용과 혹은 반대자를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판하면 적으로 보는 거죠. 전쟁 시에는 학살을 했고요. 군사정권 시기에는 고문을 했고요. 지금은 학살과 고문이 안 되니까 물대포로 쏘고요. 백남기 씨가 그렇게 간 거죠. 

 

저는 우리 사회의 주류 보수세력들이 특별히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면요. 우리사회에서 집권 주류세력이 돼서는 안 될 사람들인데, 이들이 우리사회에서 집권세력이 됐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 쿠데타도 용납하고 헌법파괴도 용납하고요. 뒤로 뒷돈도 갖다 주고, 부패도 저질렀고요. 이런 데서 오는 자기의 과거 콤플렉스와 도덕적인 부끄러움이 끊임없이 도망자의 심리, 범죄자의 심리(를 느끼게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범죄자의 심리라는 것은, 한 번씩은 누구나 다 잘못을 하는데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안 봐도 자기가 알죠. 세상 사람들이 안 봐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쫓깁니다. 결국 박정희의 쿠데타가 가진 문제점이 무엇이냐 하면요. 결과적으로 잘되지 않았냐는 것이 저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그것을 덮기 위해서 다른 방식으로 무리수를 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권력의 정당성이 약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메우려고 한다는 거죠. 메우려는 과정에서 무리를 두게 되죠. 박정희식으로 말하면, 박정희가 경제성장 목표치에 엄청 집착한 것은 바로 그 콤플렉스다. 5·16 콤플렉스, 친일 콤플렉스, 남로당 콤플렉스. 그것을 덮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제성장으로 그것을 돌파해야 합니다. 박정희가 개인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김일성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생각해요. 

김종인 씨가 70년대, 77년에 중요하게 한 업적이 하나 있습니다. 복지제도, 의료보험입니다. 처음에는 공무원하고 군인 의료보험을 시작했는데요. 그 의료보험을 도입한 장본인이 김종인 입니다. 그런데 김종인 씨가 왜 제안하고 박정희가 왜 받았는지 아세요? 이북에서 했기 때문이에요. 남쪽에서 안 하면 민심이 이반되니까요. 그러니까 우리사회에서 60년대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 중에서 북한이 의식되지 않은 사건이 하나도 없어요. 지금은 우리가 경제력에서 훨씬 우위에 섰지만, 60~70년대 박정희가 한 모든 정책은 이북을 끊임없이 의식한 것이었어요.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오바를 하게 됩니다. 인권 탄압, 고문, 인혁당 처형 등이 생긴 것인데요. 관용을 베풀지 못한 것은 ‘박정희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것은 박정희 개인의 콤플렉스가 아니라, 권력의 사이드 정도에 있으면 좋았을 사람이 주류로 올라감으로써 비극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비극이 과거에서부터 오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도 그 점에서는 희생양일지 모릅니다. 선거과정에서의 대선개입 문제 때문에 3년 내내 시달리고요. 그거 덮으려고 계속 하고 있지 않습니까?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이 합법적이고 떳떳하고 정당했다면 훨씬 더 포용적이 될 수 있는데, 그게 안 됨으로써 오는 정치의 굴절과 왜곡이 너무 크다(고 봅니다). 그 점에서 저는 모든 보수가 다 같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라고 해서 이렇게 다 굴절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결국 자기의 과거가 떳떳하지 못한데서 오는, 그리고 자기의 부와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의 정당성이 약함으로써 오는 (문제가 큽니다). 그 과정 속에서 이 사람들이 국정교과서를 가지고 저렇게 만들려고 하는 것도 미래권력까지 갖겠다는 것이죠. ‘아이들의 머리까지 잡아서 20~30년까지 계속 가고 싶다’라는 것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의 욕심이죠. 욕심은 이해하지만 국정교과서까지 만들려고 저렇게 집필자까지 공개하지 않고(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일본하고 위안부 협상도 일본은 이미 다 공개했습니다. 우리는 비공개입니다. 이런 것도 콤플렉스가 아닌가 생각되고요. 과거에 떳떳하지 못해도 과거를 정리하고 넘어서는 과정이 필요한데, 넘어서는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과거가 자신을 사로잡고 있고요.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정치를 펴지 못하고, 결국 국민이 불행해지는 과정으로 오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결국 자본주의의 문제인데요. 자본주의가 합리적인 시장경제, 돈의 지배, 공정경쟁 좋은데요. 그런데 합리적인 시장경제, 법의 지배, 공정경쟁이 지켜지지 못하고 계속 폭력이 동원되고 있고요. 용역폭력까지 동원해서 노조파업한 사람들을 두드려 패야 만 하나? 왜 사용자는 피고용자를 설득하지 못할까? 왜 노조를 원수처럼 여길까? 노조가 만들어지면 왜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하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적으로 허용돼 있는 노조를. 며칠 전에 조원진이라는 사람이 “헌법 위에 사람 있다”고 했는데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헌법 위에 권력이 있고, 국가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헌법보다 더 중요하다. 그 국가란 누구의 국가인가요? 이런 질문들을 우리가 던져볼 수 있는데요. 그게 결국은 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과 자기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곧 국가라고 받아들여지고요. 그러니까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는 폭력과 학살로 나타나고, 지금과 같은 평화 시에는 끊임없이 행정부가 입법부를 무력화시키고요. 안타깝습니다. 과거 업보를 넘어서지 못하는 질곡이 우리사회 모든 문제를 굴절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할 시점인데요. 처음에 던진 질문, 이상적인 집권세력 혹은 이상적 보수세력 혹은 제대로 된 보수가 나올 수 있나? 나올 수 있죠. 나오려면 지금 새누리당에서 수구보수와 개혁적 보수가 쪼개져야 합니다. 개혁적보수가 쪼개져서 박근혜 정부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보수가 나와야 합니다. 그게 보수 개인이 아니라, 세력이어야 하고요. 그 세력은, 우리 사회에서 건강한 한국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들이나 기업하는 분들이 “이건 아니지 않나?” “대기업이 이렇게 해도 돼?” “이게 시장경제야?” 라고 말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그런 사람들이 지지하는 개혁적인 보수 세력들이 우리 사회에 존치 세력으로 설 때 가능하다고 저는 봅니다. “지금 가능할까?” 혹은 “남북한이 대결상태 후에 가능할까?” 이런 판단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섰을 때, 이념적인 스펙트럼이 다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 르펭 같은 극도의 인종주의자 들은 극우 아닙니까? 극우가 있고요, 우파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중도 좌파가 있고요, 그 다음에 더 좌파가 있어요. 이런 세력들로 정치세력들이 편재돼야 하고요. 이 세력이 편재되기 위해서는 정치가들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를 지지해줄 수 있는 대중세력들이 스펙트럼에 따라서 (후보를) 지지하고 지지철회하고 해야 됩니다. 대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세력들, 즉 노동자들 중소기업 자영업자 비자본가 등 사이에서 서로 간에 이해상충이 있고 차이점이 있는 것이 표출돼야 합니다. 표출돼서 노동자들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자영업자들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중소기업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하고요. 그래서 그것이 정책논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 사회에서 보수도 자기 자리를 찾고, 자기 자리를 찾은 보수와 정책을 가지고 맞짱을 뜰 수가 있는 거죠. 지금은 정책을 가지고 맞짱을 뜰 수 없는 이유가, 조금만 이야기하면 곧바로 ‘좌빨’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정책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언론도 너무 굴절돼 있어서 한 쪽 목소리만 주로 나오기 때문에 공론의 장에서 다른 목소리 나올 수 없게 된 형태죠. 어쨌든 이런 상태로 우리 사회가 왔다고 생각하고요. 

과거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한국전쟁을 극복해야 한다. 극복해야 한다는 말은, 남북 간에 적대적 관계가 청산됐을 때 이북의 지배세력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고요. 남쪽의 지배세력도 제자리를 잡는다(고 봅니다). 현재는 남북 간 절대적인 공생적 관계에 있는 것이고요. 한국전쟁의 청산, 즉 휴전협정을 어떻게 평화협정으로 갈 것인가가 남북한 정치의 결정적 변수가 될 거라고 봅니다. 그 다음에는 식민지 청산인데요. 지금 일본과의 관계 문제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가 문제인데요. 지금도 ‘제국의 위안부’ 논쟁처럼 나오면 곧바로 친일 대 반일 구도로 가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친일 대 반일 문제로 가기 보다는, ‘당시에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살았어야 했나?’ 라고 하는 문제(도 생각해 봐야하고요). 그리고 그렇게 (친일)한 사람들을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품어줄 수 있고, 어디까지 배제해야 하는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지금이라면, 친일청산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사 독재시절에 부역한 사람들이죠. 멀쩡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서 징역에 보냈고 사형까지 시켰던 사람들, 황우여 같은 사람들이죠. 지금 시퍼렇게 살아있죠.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판사가 시킨 대로 했다고 변명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어떤 형태로든지 사회적 처벌이 필요하지 않나? 꼭 감옥에 집어넣지 못한다고 해도 공직을 박탈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식의 이야기도 나올 수 있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라고 할 수도 있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 방식을 거쳐야 맑은 물이 흐를 수 있겠다고 봅니다. 그게 안 되니까 계속 자기변명, 자기 방어, 국정교과서와 같이 과거 덮기 등이 되풀이 되고 있죠. 

어쨌든, 전쟁과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데서 오는 문제가 지금까지 우리 발목을 잡고 있고, 미래지향적인 발걸음을 더디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주류세력이 하루아침에 교체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돈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고, 미디어의 70~80% 가지고 있고요. 학계에도 자신들의 우군들을 대개 80~90%가지고 있고요. 법조계에서 검사의 거의 95%, 판사의 한 70%, 변호사의 한 60% 정도를 다 가지고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게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치가 제일 중요하지만, 정치를 뒷받침하고 있는 우리 사회세력들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 대답>

질문1: ① 친일재산 환수 관련해서 질문 드립니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과거에 토지개혁을 굉장히 모범적으로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토지개혁을 했으면, 그 사람들(친일세력)은 그 땅을 또 다른 권력으로 가지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 뒤에 토지개혁 후 다시 산 건 지요?

 

② 또 하나가, 지금 우리나라가 개인부채가 엄청 많거든요. 극단적인 해결책일 수 있지만, 과거처럼 탕감을 한다든지요. 지금 상황에서는 부채 해결이 불가능하거든요. IMF 때 다 이뤄졌던 조치 아닙니까? 이 방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대답1: ① 조선 사람들이 소유했던 재산은 공식적으로 49년에 토지개혁을 해서 50년 초까지, 6·25 진전까지 진행됐는데요. 대주주들은 49년에서 50년 초에 다 처리합니다. 이미 알았기 때문에요. 처리했다는 말은, 이미 다른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는 것입니다. 넘겼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나중에 49년~50년 초에 토지개혁 할 때 뺏길 일은 없었습니다. 이미 처분했기 때문에 손해를 입지 않았고요. 토지개혁 자체는 굉장히 성공적인 것 맞습니다. 남미 국가에 비해서 엄청난 성공이었거든요. 오늘날 한국의 경제 성장에 밑거름이 된 것도 사실이에요. 남미 국가와 필리핀 국가는 토지개혁이 거의 실패해서 지금도 토지 귀족들이 여전히 토호, 대가문, 비민주주의의의 보루가 되고 있죠. 한국은 성공한 모델인데요. 성공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북한입니다. 북한에서 급진적인 토지개혁을 했기 때문에 이승만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받아들이지 않으면 농민들이 넘어갈 판이니까요. 남북관계 속에서 됐고요. 얼마 전에 친일조사에서 밝혀낸 것이 있는데요. 여전히 일본 사람이름으로 돼 있는 경우도 있었고, 소유가 애매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부 사찰 재산도 분배가 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친일세력들은 대부분 몰락한 사람도 있지만, 이미 다 처분했기 때문에 그렇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친일재산이었던 박흥식의 화신, 경방 이런 경우는 다른 방식으로 산업자본으로 토지자본을 이미 전환시켜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② 부채탕감은 가능한데, 70년대 같은 경우 은행이 다 국유화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은행이 거의 민영화된 상태에서 권력이 그렇게 휘두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산업은행 하고 몇 군데 제외하고는 다 민영화돼 있는데요. 은행이 부채를 탕감하면 은행이 파산하게 되는데요. 은행이 파산하면 무슨 수로 정부가 막을 수 있나. 물론 지금 말씀하신 문제의식에는 공감합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탕감 조치가 필요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질문2: 사회적으로 불안지수가 높습니다. 어떤 불안지수인가 하면, 현재 북핵문제, 재벌약화로 인한 양극화 심화, 중산층 몰락 등입니다. 위기가 갑작스럽게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총선, 대선 암울한데요. 여권 흐름대로 흘러가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 건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답2: 어려운 질문입니다. 

(박인규 대표님: ‘다른백년’이 그것 때문에 모였습니다)

네. 어쨌든 고민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제가 뭐라고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지금 집권세력에서 돌파구가 못 나오면 결국 저항세력에서 돌파구 나오든지 해야 하는데요. 집권세력에서 돌파구나 나오려면, 집권세력이 재벌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성을 가지고 과감하게 밀어야 하는데요. 지금은 거의 박근혜 정부가 ‘재벌 청부업’ 같이 됐기 때문에 입지가 너무 좁고요. 박근혜가 ‘재벌 청부업’ 같이 된 이유는, 자기 권력기반이 그만큼 약하다는 것을 거꾸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권력기반이 훨씬 강하면 재벌에도 더 강한 요구를 할 수 있는데요. 세금을 올리는 등 재벌에 양보를 요구할 수 있겠죠. 예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루즈벨트가 했던 방식처럼 과감한 재분배 없이는 지금 경제가 죽게 돼 있다. 옛날에 루즈벨트는 좌우 양쪽으로부터 모두 비판 받았단 말이죠. 그 정도 하려면 집권세력이 상당한 지도력이 있어야 하고, 권력기반이 강해야 하는데 현재로는 그게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결국 반대세력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만들어지는 것밖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해요. 우선 지금으로 봐서는 그렇습니다. 돌파구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선거가 제일 중요한 변곡점이죠. 

 

질문2 추가질문: 현재 국내 자산 중에 해외에 반출된 돈이 900조원 된다고 하는데요. 사회적 불안이 높고 대안이 없는 상태라면, 중산층들은 패닉상태 올 수밖에 없거든요. 

 

질문2 추가대답: 그리스도 그런 상태가 왔죠.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대규모 자본이탈과 엘리트들의 탈출이 있었죠. 그런데 시리자가 집권하면서 그게 약간 중지가 됐죠. 그러니까 내부에서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여부인 것 같습니다. 저도 위기가 심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래도 아직 총선이나 앞으로 정치일정에서 우리가 좀 더 기대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밑으로부터 정치대중운동을 통해서 변화 씨앗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질문3: ① 박노자 교수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 계급에 대한 배반이 강하다”는 말을 했는데요. 즉, 본인이 흙수저로 태어났으면 지지해야 하는 정치적인 성향은 진보일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수로 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거죠. 신자유주의가 고착화 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우클릭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 젊은층에서 나오고 있는 우클릭 현상은,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보수기원과 상당히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가 왜 이렇게 우클릭 됐을까 궁금합니다.

 

② 소득 불평등이 고착화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에 지지해야 하고 진보의 포텐이 터질 수 있어야 하는데요. 그렇지 않은 게 의아합니다. 지금은 너무 소극적인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밖에 안 될까요?

 

대답3: ① 우선 위기에서 우클릭 되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고요. 지금 거의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사회적 약자나 밑바닥 사람이 보수화되는 것도 한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곳에서 극우파를 지지하는 젊은이들,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현재 가장 큰 문제가 이민문제라는 것은 다 아실 텐데요. 우리나라로 생각해보세요. 탈북자가 만 명이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세요. 난리 납니다. 직격탄을 받는 사람들이 누구예요? 밑바닥 노동자들입니다. 마찬가지로 독일, 프랑스 등에서 극우파가 약 10%의 지지를 받아요. 10% 지지를 얻는 인종주의의 배경은 ‘노동시장 불안’입니다. 일자리를 잃어버릴 두려움에 있는 밑바닥 노동자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위기에서의 우클릭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극우 보수인 티파티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부자들도 있지만, 가난한 백인들이 많아요. 우선 현상이 그렇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요.

과거에 29년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 좌클릭으로 가기도 했지만 우클릭으로도 갔다. 히틀러가 선거로부터 당선돼 나치즘으로 가게 된 과정에서는 불안한 중산층, 몰락한 중산층, 노동자들의 지지가 있었다. 우클릭으로 갔다는 겁니다. 새로운 현상은 아니라는 거죠. 

 

젊은층이 우경화 되는 것도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이것은 다음번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텐데요. 한 경제·사회학자가 이미 이야기 했습니다. 왜 사회적 약자가 보수적 태도를 취하는가? “우선 가시적으로 자기에게 먹거리를 줄 수 있 사람은, 비판적 야당이 아니라 힘 있고 돈 많은 보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힘없는 사람들은 강자에게 매달리기 쉽다(는 거죠). 그 다음에 또 다른 이야기는, 전태일 평전에 보면 전태일이 그런 이야기를 했죠.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큰 병폐는 희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안을 찾을 수 없습니다. 지식인들은 너무 큰 대안을 말할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대안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자기 손에 쥘 무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더 보수화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폭력의 경험이나 지배에 많이 억압당한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서 약간 권위적이고 마초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폭력에 저항하기보다 자기보다 더 약자에게 분풀이를 함으로써 자신의 스트레스를 풉니다. 일베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여성혐오잖아요. 이것은 아드르노라고 하는 사람이 연구한, ‘권위주의적 퍼스널러티’인데요. 대체로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나라에서 파시즘이 등장하기 쉽습니다. 윗사람에게 복종하고, 아랫사람을 누르는 문화죠. 윗사람에게 대들지 못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아랫사람을 짓밟는 거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찌질이’죠. 저는 최근에 만연하고 있는 아동폭력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못난 놈이 7살짜리 어린 아이를 패 죽이냐. 진짜 못난 놈이고 한심한 놈이다. 물론 본인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직장을 잃었든지 뭐, 하여튼 뭔가 불행한 게 있을 거예요. 자기가 아무리 불행해도 어떻게 7살짜리 어린 아이를 패 죽이냐는 거죠. 못난 놈이죠.

못난 놈들의 사회에요, 한국사회가. 누가 그렇게 못난 놈을 만들었는가? 이 사회가, 힘센 사람이, 권력자들이, 재벌이. 비극이에요. 그러니까 자기보다 더 약자를 짓밟으면서 자기 분풀이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물론 충격적이긴 하지만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납니다. 민주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강자에게 발언할 수 있고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지, 민주적 훈련을 못 받은 사람은 약자를 괴롭힌다는 거죠. 우리 사회가 만들어냈다고 저는 봐요. 일베 현상도 그런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점을 우선 말씀 드리고 싶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사회의 전체적인 권위적인 문화, 위기 등이 맞물려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사회운동 혹은 저항을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② 저항이 안 일어나는 이유는. 지금까지 지난 100년 역사는 10대와 20대가 맡았어요. 겁 없는 청년들이죠. 그런데 지금은 청년들이 겁이 많아요. 10대부터 이미 어떻게 해야 살아남는지를 뼛속 깊숙이 배우면서 이미 자라왔어요. 하하. 그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질문4: 포럼이나 토론을 할 때 보수적인 학자들도 많이 계시겠죠? 어떻습니까? 결론이 납니까?

 

대답4: 대체로 잘 만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요.(웃음, 청중웃음) 만나면 서로 조심하곤 하죠. 약간 조심하기도 하고, 끝까지 서로 피 터지게 싸우지는 않는 경향이 있죠. 자기 이해관계 때문에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원래 사고방식이 그럴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 학자는 사실과 이론에 충실한 사람이면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기 이해관계를 위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과는 대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시간낭비죠.

 

질문4 추가질문: 주관적인 감정은 빼야하는 것 아닙니까?

질문4 추가답변: 그런데 대개 한국 사람들은 그 사람의 입장하고 인격이 동일시되기 때문에 조금만 (뭐라고) 하면 화를 번쩍 내고,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죠. 그러면 싸움이 나게 되고 대화가 진전되지 못하죠. 그리고 한국에서는, 물론 이른바 진보세력도 문제 있다고 봐요, 기본적으로 평등한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언로가 같이 열려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는 발언권을 안 주죠. 똑같은 지면에 배치를 합니까? 안 되잖아요.

 

질문4 추가질문: 언론은 그렇다하더라도, 학문적으로 포럼은 어렵습니까? 같이 하는 것 어렵나?

질문4 추가답변: 하긴 하죠. 하는데, 대체로 따로 놀죠, 뭐. 
[출처] 한국보수세력의 기원(2017.2.4)|작성자 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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