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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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윤석열은 왜 그랬을까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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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
입력 : 2024.12.10 
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대통령 윤석열이 저지른 자멸적인 12·3 비상계엄 선포의 진짜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간 ‘김건희 방탄용’이 가장 많이 거론되었지만, 그건 목표일 뿐 ‘자멸’의 이유를 설명하진 못한다. 윤석열의 성격에서 이유를 찾으려는 분석이 가장 유력한 것 같다.


“윤 대통령 특유의 즉흥적 성격이 화를 부른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 (그는) ‘중요한 결정을 즉흥적으로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권 고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평소에도 ‘확 계엄 해버릴까’ 하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중앙일보 기자 허진·박태인)


“윤 대통령은 이성적이지 않고 극히 감정적이며, 사려 깊지 않고 충동적이다. 인내해서 얻는다는 지혜를 모르고 즉흥적·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에 대한 감(感)이 거의 없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조선일보 주필 양상훈)


한겨레 선임기자 성한용은 12월5일자 칼럼에서 이 두 가지 분석을 긍정하면서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의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에 있는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윤석열이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냐는 자신의 질문에 국민의힘 친윤석열계 의원이 내놓은 다음 설명이 상당히 진실에 가깝다고 했다. “여러 가지다. 야당도 그렇고 한동훈도 짜증나게 하고. 열 받으니까 그런 거지.”


동아일보 대기자 이기홍도 12월6일자 칼럼에서 이런 진단을 내렸다. “필자 취재에 따르면 계엄은 순전히 윤 대통령 본인의 흥분 격노에 의해 돌발적으로 결정됐다. (…) 즉흥적, 감정적이며 고집대로 밀어붙이는 윤 대통령의 성정과 예스맨 충성파만 선호하는 인사 스타일이 합쳐져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다.”


모두 다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다. 그간 언론에서 ‘격노’라는 단어로 자주 표현된 윤석열의 ‘욱’하는 다혈질 기질을 추가해도 무방하겠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에 다혈질 기질을 갖고 있다고 해서 남의 말을 듣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윤석열은 오래전부터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성한용의 10월26일자 칼럼에 따르면, 검사 시절부터 어울린 동갑내기 술친구들 중 성품이 맑은 어느 친구가 윤석열에게 “너는 정치하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윤석열이 이유를 물었더니,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나. “너는 남의 말을 안 듣잖냐. 그런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된다.”


주변 고언 봉쇄에 둔감하기까지


윤석열은 남의 말을 안 들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청개구리 본성’마저 갖고 있었다.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은 12월3일자 칼럼에서 “윤 대통령의 청개구리 본성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기자들에게도 꽤 알려진 얘기다. 참모들이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하더라도 자존심 강하고 고집이 센 윤 대통령은 일단 반대로 가고 싶어 한다는 뜻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4월 총선 직전의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 아닐까. ‘(의대 정원 확대 규모) 2000명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다’로 대표되는 그 유명한 ‘51분, 1만4000자 담화’ 말이다. 총선을 앞두고 마음이 급했던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실 핵심 참모들이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그의 선택은 끝내 정반대 방향이었다. 그리고 열흘 뒤 받아든 총선 성적표는 보나마나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남의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꼭 그 말을 한 사람에게 격노할 필요는 없지만, 윤석열은 김건희 문제에 대해 고언을 하는 사람에겐 격노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관계 단절도 불사했으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국정운영 전 분야에 걸쳐 참모·측근·지인의 고언을 원천봉쇄함으로써 자멸로 가는 고속도로를 탄 셈이었다.


2023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서 사우디 리야드가 119개국(72%) 득표로 29표(득표율 18%)를 얻는 데 그친 부산을 누르고 2030년 엑스포 개최지로 결정된 사건이 대표적 예다. 국내 홍보를 어찌나 요란스럽게 했던지 부산이 이길 걸로 생각한 국민들이 많았다. 그런데 아슬아슬하게 진 것도 아니고 ‘119 대 29’의 참패였으니, 이는 윤 정권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킬 정도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대통령과 나라 잘되라는 충정에서 고언을 하는 사람에게 날벼락과 더불어 큰 불이익을 내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하니, 누가 감히 진실이나 바른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윤석열은 이미 이때부터 망가질 대로 망가진 폭군과 다를 바 없었다. 폭군은 자기 안전을 위해 눈치는 빠른 법인데, 윤석열에겐 그마저 없었다. 그는 오히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둔감했다.


2022년 3월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사회분야 방송토론회의 한 장면을 보자. 이날은 내가 윤석열에 대해 감탄을 했던 날이다. ‘아 저렇게 둔감할 수가!’ 상식을 초월하는 둔감이었다. 윤석열은 2월27일 유세에서 “정부가 성인지감수성 예산이란 걸 30조 썼는데, 그중 일부만 떼어내도 북한 핵위협을 막아낼 수 있다”고 했다. 성인지예산은 액수로 존재하는 실질 예산이 아니라, 예산이 남성·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정하는 기준·과정이라는 기본적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실언이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3월2일이기에 그 실언을 낳은 무지가 교정돼 있을 걸로 생각했지만, 윤석열은 토론 과정에서 “그런 예산을 조금만 지출 구조조정해도 대공 방어망 구축에 쓸 수 있다”고 답하는 등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어 저건 무슨 배짱이지?’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 끝에 그건 ‘배짱’이라기보다는 못 말리는 ‘둔감’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안이함이나 게으름도 하나의 답


좋게 포장해서 그렇다는 것일 뿐, 그건 흔히 하는 말로 ‘엉터리’라는 말을 듣기 십상인 특성이다. 사람이 왜 그러지? 이 의문은 윤석열 대선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이었던 신용한의 언론 인터뷰(주간경향, 2024년 11월9일) 기사를 읽으면서 풀렸다. 윤석열은 회의 자리에서 한 4~5분은 듣지만, 곧 지루해하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 좌중을 사로잡기 일쑤였는데, 이걸 아무도 제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주말 같은 때, 토요일 오후가 되면 긴장이 풀린다. 그러면 이야기가 3시간씩 간다. 속된 말로 만담꾼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또 재미있다. 인간적인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오전 11시에 기자회견이 있다면 오전 10시에 들어가야 한다. 조금 있으면 기자회견이니 예를 들어 GTX 연장 지도를 놓고 막 설명해야 한다. 한 5분 듣다가 또 이야기한다. 설명에 집중하지 않는다. 기자회견 10분 남겨놓고 그때 가서야 요약 페이퍼만 대충 보는 거다.”


윤석열이 평소의 ‘둔감 모드’에서 ‘민감 모드’로 급전환하는 예외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에 대해 강한 보복 의지를 발휘할 때였다. 영화 <대부 3>에서 대부 마이클 콜레오네가 남긴 말은 윤석열이 꼭 명심했어야 할 교훈이다. “절대로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진다.” 12·3 비상계엄의 운명은 윤석열이 “피를 토하는 심정” “범죄자 집단의 소굴”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 “패악질을 일삼아온 망국의 원흉” 등과 같은 표현을 썼을 때에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한 적개심으로 인해 흐려질 대로 흐려진 판단력을 잘 보여준 말이었으니 말이다.


“성격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윤석열은 노예가 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넘어서, 현 체제는 대통령의 성격이나 기질에 의해 국가와 국민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해 무방비 상태라는 점이다. 이에 대한 성찰을 건너뛰면서 윤석열 개인에게 아무리 비난과 저주와 조롱을 퍼부어봐야 달라질 건 없다.


그 성찰은 역사적 임시변통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형 대통령제라고 하는 제도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고, 권력에 대한 맹종과 아첨에 길들여진 습속이나 관행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다. 그간 이런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늘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수준에만 머물렀다. 바로 이런 안이함이나 게으름도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란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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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 눈치도 없는데 귀마저 닫으면 어떡하나
입력 : 2024.10.15 

“권력은 매우 파워풀한 약물이다.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게 하며, 자기애에 빠지게 하고, 오만하게 만든다. 권력은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아일랜드 신경심리학자 이언 로버트슨의 말이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곧이곧대로 믿을 건 아니다. 강조의 취지를 감안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모든 권력자는 다 실패하고 다 비참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게 아닌가. 늘 예외는 있는 법이다.

권력을 쥔 적도 없고 쥘 뜻도 없는 보통사람일지라도 권력에 대해 나름의 평가는 할 수 있다. 적어도 권력의 부패나 타락 가능성을 보는 눈은 권력 내부 또는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매섭다. 권력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거니와 권력의 비위를 맞춰야 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윤석열은 어떤가? 그는 보통사람의 눈 밖에 난 지 오래다. 20%대의 지지율로 미루어 보건대 적어도 열에 일곱은 그의 국정운영에 비판적이다. 분노하는 사람도 많다. 무엇에 분노하는가? 정책은 논외로 하자. 진보 유권자가 분노하는 정책은 보수 유권자가 반기는 것이니, 그 어느 쪽이건 진영논리 독선은 자제하자.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유권자가 똑같이 분노하는 게 있다. 무엇인가? 다음 여섯 언론인의 칼럼을 통해 그 분노의 대상과 이유에 대한 설명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1) “보수층이 이재명의 온갖 범죄 혐의에 혀를 차다가도 ‘김 여사는?’이란 반박을 받으면 말문 막힐 때가 많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지지자들로선 속된 말로 ‘X팔리는’ 심정이 된 것이다.”(조선일보 논설실장 박정훈, 9월21일)

(2) “주가조작, 공천 등에 영부인이 연루된 것만도 비정상인데 이를 덮으려 국가기관이 동원되고 거부권이 남용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실, 검찰, 국민권익위, 여당은 영부인에게 복무하는 기관인가.”(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 김희원, 10월1일)

(3) “대선 때부터 3년 넘게 보수진영 전체를 욕보이고 있는 여사 문제 수렁에서 헤어나려면 김 여사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반 국민 누구나에게 적용될 절차를 거쳐 공정하고 엄정한 사법적 처분을 받는 것 이외엔 그 어떤 출구도 없다.”(동아일보 대기자 이기홍, 10월4일)

(4) “여권 핵심 인사는 ‘수석들이 있는 자리에서 김 여사가 대통령에게 민망한 언행을 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김 여사의 공천개입, 인사개입 개연성은 높아진다.”(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10월7일)

(5)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는 거침없다. 아니, 더 세졌다. 겁이 없기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주포들’을 대통령 취임식에 불렀을 게다. 공사 구분이 없기에, 대통령 전용기에 민간인 태우고, 디올백 선물을 챙겼을 게다. 과시욕이 남달라, 밤중에 요란한 마포대교 순시를 갔을 게다. (…) 나라도 정권도 ‘망조’ 들게 한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 이제 끝낼 때가 됐다.”(경향신문 편집인 이기수, 10월9일)

(6) “나라가 김건희 블랙홀에 빠졌다. 자고 나면 추가되는 김 여사 관련 폭로·의혹에 여당 의원들은 ‘여론이 하루하루 달라진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대통령 배우자가 국정 혼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현 사태를 겪으며…”(한겨레 논설위원 황준범, 10월11일)

그렇다면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분노의 핵심 대상은 김건희인가? 아니다. 윤석열이다. 유권자들은 김건희가 아니라 윤석열에게 표를 주었다. 대통령의 의무와 책임엔 배우자가 국정운영을 망치는 걸 못하게끔 하는 게 포함돼 있다. 그러나 윤석열은 그 의무와 책임을 방기했을 뿐만 아니라, 김건희에 대한 내부 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함으로써 사실상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를 찬양고무했다. 그에겐 부인의 ‘대통령 놀이’가 어떤 불법을 저지른다 해도 그걸 보호하는 게 국정운영보다 더 중요했다.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보통사람들은 바로 이 점에 대해 가장 분노하는 것이다.

‘한동훈 “김건희, 자제 필요” 용산과 전면전 치닫나’라는 한겨레 10월10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이 기가 막히다. 한겨레가 기가 막힌 게 아니다. 이 제목은 현 정치적 상황의 문제를 제대로 포착했다. 여당 대표가 김건희의 자제를 요청하는 게 대통령·참모·친윤계 정치인들과의 전면전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게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친윤계 정치인들은 한동훈을 비난하느라 바쁘다. 아닌 게 아니라 왜 좀 더 일찍 김건희의 자제 필요성을 외치지 못했느냐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감히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절대 성역에 자제 운운하는 망발을 할 수 있느냐고 비난하는 것이다. 아니, 그들에게도 선의는 있을 게다. 정략에만 혈안이 된 야당에 대한 불신과 ‘탄핵 트라우마’ 때문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여태까지 그런 식으로 대응해왔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걸 인정할 뜻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유는 단 하나. 아직 대통령 임기가 절반은 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들이 임기 말, 임기 후에도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일관성에 경의를 표하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역사의 법칙이다.

윤석열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대통령 권력이 악화시킨 점은 있겠지만,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올 4월에 번역·출간된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의 <사람을 안다는 것>을 읽으면서 윤석열을 떠올린 적이 있다. 브룩스는 사람을 ‘디미니셔’와 ‘일루미네이터’ 두 종류로 나눈다. 디미니셔는 제 능력을 믿고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만, 일루미네이터는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면서 협력을 모색한다.

브룩스는 일루미네이터가 되는 것은 일종의 기량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애를 써야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런 존재 방식을 “한국 사람은 ‘눈치’라고 부른다”며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기분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선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 ‘눈치’를 이렇게까지 격상시켜준 게 반가웠다.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도 갖게 되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기분에 둔감하게 대응하는 걸 무슨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뻐기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제발 위의 눈치만 보지 말고 아래, 그리고 수평적인 눈치 좀 보고 살자는 운동이라도 벌어지면 좋겠다.

윤석열은 검사 시절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았기에 권력의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사실상 그 덕분에 많은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후 그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게 밝혀졌다. 그가 나름의 원칙과 정의감 때문에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된 후에 자신의 슬로건이었던 ‘공정과 상식’을 스스로 유린하진 않았을 게다. 그는 민심의 눈치마저 볼 수 없는 ‘눈치 무능력자’였을 뿐이다! 대통령이 되는 데엔 ‘축복’이었던 특성이 대통령이 된 후에 ‘저주’로 바뀌었으니, 그 자신도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배신·변절’을 팔아먹는 매카시즘

왜 지식인들은 국민의 90%를 외면하는가

눈치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눈치를 보는 삶을 살 수 있다. 귀를 열면 된다. 눈치가 있는 사람이 해주는 말을 들으면 된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윤석열에게 귀는 있지만 귀를 열 시간도 없고 뜻도 없다. 윤석열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낸 이동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합니다. 다른 사람 조언 듣지 않습니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냅니다.”

눈치도 없고 귀마저 닫으면 어떻게 하잔 말일까? 김건희의 말은 잘 듣는다지만, 여태까지 그의 말을 너무 잘 들은 데다 맹종했기 때문에 지금 이 지경이 된 게 아닌가. 그 누구건 스스로 자멸할 권리는 있다지만, 공직 그것도 대통령이라는 엄청난 공직을 맡은 사람이 자멸의 권리를 주장하면 어쩌자는 건가. 인간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겠다는 게 인생의 최종 목표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제라도 자신에게 김건희 문제로 쓴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내친 극소수의 사람들을 찾아 사과하고 그들의 고언에 귀를 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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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 왜 윤석열은 자신을 비하할까
입력 : 2024.11.12 

[강준만의 화이부동]왜 윤석열은 자신을 비하할까

대통령이 되기 전 윤석열은 반대 진영에서 ‘오만방자’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대통령이 된 후엔 대통령을 향해 오만방자하다고 말하는 게 방자하게 여겨지는 걸 의식해서인지 ‘오만방자’는 많이 사라졌지만, ‘오만’하다는 비판은 여전히 건재했다. 좋게 말하자면, 오만하다는 건 자신감이 흘러 넘친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그의 그런 모습에 반한 유권자들도 적잖이 있었으리라.

윤석열이 자신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공정과 상식’의 실천을 위해 오만했더라면 어땠을까? 그의 인기는 치솟았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집권 후 ‘공정과 상식’을 훼손하는 일을 많이 저질렀으며, 특히 부인 김건희와 관련된 일에선 더욱 그랬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는 오래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몇 가지 주요 사건을 복기해보자.

윤석열은 2021년 11월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윤석열 사전에 ‘내로남불’은 없다”고 선언했다. 나는 한 달 후 쓴 칼럼에 “윤석열의 사전은 ‘ㄴ’ 항목이 통째로 찢겨져 나간 사전이었던가 보다. 그가 김건희 의혹 사건에 대해 그간 보인 반응은 의심할 바 없는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김건희 문제가 나오기만 하면 이성이 마비되곤 하는 윤석열의 ‘김건희병’은 대통령이 된 후 더 심해졌다. 나는 2022년 7월에 쓴 칼럼에서 “윤석열에겐 아내의 문제에 관한 한 공사 구분을 할 뜻도, 능력도 없는 것 같다”며 “윤석열은 오직 ‘건희의 남자’로만 만족하겠다는 건가?”라고 물었다. 김건희가 스스로 만들어낸 이런저런 ‘사고’는 끊임없이 터졌다. 나는 2022년 9월 칼럼에서 윤석열을 향해 이렇게 따져 물었다.

“아무리 영세한 자영업에 뛰어든 사람이라도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가족을 떠올리며 목숨을 걸다시피 하면서 성공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런데 일국의 대통령이 된 사람이 최선을 다하느냐의 문제 이전에 자신에게 큰 정치적 타격이 될 수 있는 일들이 벌어져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무신경하게 방치한다. 워낙 둔감과 무신경의 극치를 치닫는지라 엽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는 도대체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던 건지 궁금해진다.”

2023년 7월 ‘서울~양평고속국도’ 특혜 의혹 사건이 터지자, 나는 “도대체 특별감찰관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윤석열은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특별감찰관제 재가동을 지시했지만, 이건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을까? 나는 칼럼에 이렇게 썼다. “윤석열은 김건희와 처가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패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왜 무서운 공적 엄중함을 요구하는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나섰는지 모르겠다. 그는 손 흔드는 의전에만 만족할 뿐 대통령을 잘해볼 뜻은 없는 걸까?”

2023년 11월27일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김건희의 사무실에서 명품백이 전달되는 장면을 찍은 ‘몰카’ 영상이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1년2개월 전인 2022년 9월13일에 촬영된 것인데, 그날은 ‘김건희 특검’ 찬성 여론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날이었다. 엽기적인 ‘정치공작’이었지만, 국민이 더 놀란 건 71억원의 자산가이자 대통령 부인이라는 사람이 크게 화를 내면서 명품백을 돌려준 게 아니라 받았다는 사실이다.

윤석열의 ‘김건희 병’은 중증

2023년 12월8일 한겨레 논설위원 강희철은 칼럼에서 윤석열의 옛 동료들이 토로한 걱정과 우려의 말을 전했다. “ㄱ 전 검사장을 비롯해 그간 여사 문제를 거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대통령에게 손절을 당했다. 누가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나.” “대통령이 이혼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여사 문제는 정리 못할 것이다.”

사흘 후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장 금태섭도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윤석열의 ‘김건희병’이 중증임을 증언했다. “제가 (대선) 캠프에서부터 보면 그건(김 여사 이야기는) 정말 금기고, (당시) 제가 몇번 얘기했는데 (윤석열이) 말씀을 안 들으셨다.” ‘캠프 때도 김 여사 문제를 지적했다는 말인가’라고 사회자가 다시 묻자, 금태섭은 “그렇다”며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전혀, 화를 내면서 그냥 넘어가 버리는데, 정말 이걸 깨지 않으면 선거를 치를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대기자 이기홍의 칼럼(2024년 10월4일)에 따르면, “김 여사는 자신이 윤석열 정권 탄생에 상당한 지분이 있다고 여긴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남편이 검사 시절 정치적 탄압에 의해 좌천됐을 때 로펌에서 고액 보수를 제시하며 영입하려 했는데 자신이 검사의 길을 계속 가도록 설득하는 등 고비마다 자신의 조언이 남편을 오늘로 이끄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김건희에 꽉 잡힌 윤석열”을 다룬 시사저널 기사(2024년 10월11일)에 따르면, 최근 윤석열이 ‘여사 리스크’를 해소하라는 검사 선배들의 조언에 “제가 집사람한테 그런 말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처지’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의 처지는 어떤가. 한겨레 뉴스총괄부국장 신승근의 칼럼(2024년 10월22일)에 따르면, “정치 경험이 일천하고, 통장 잔고 2000만원인 윤 대통령을 결혼 상대로 점찍고, 가족은 물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대통령을 만들어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이 의존적이라는 설명이다”.

자존감과 자기애 회복하길 기대

크게 성공하고 나면 부인의 공을 잊고 배신하는 남자들이 많은 세상에서 윤석열의 그런 일편단심은 긍정 평가할 점이 있지만, 이는 그가 내내 사적 영역에 머물렀을 때에만 그럴 뿐이다. 공적 마인드가 전혀 없는 부인이 불법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국정농단의 소지가 큰 일을 해도 그걸 방관하거나 고무 찬양하는 게 의리를 지키는 일인가? 도대체 대통령직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그런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을 했을까?

오만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까지 오만할까? 그렇진 않다.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만한 겉모습 배후에는 과시와 신경증적인 자만으로 연약한 모습을 가려 보려는 유약한 자아, 불안정한 자아가 자리하고 있다”(미국 심리학자 테리 쿠퍼)거나 “교만과 자기 경멸은 동전의 양면이다”(독일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라고 말한다. 윤석열도 ‘유약한 자아’로 인한 ‘자기 경멸’ ‘자기 비하’가 심했던 건 아닐까?

윤석열이 자신의 성공 이유를 김건희에게 돌리면서 그의 뜻에 복종한 것도 바로 그런 자기 비하 때문이었을 게다. 그가 사법시험 9수를 하면서 어떤 상처나 트라우마를 갖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김건희를 자신의 구원자처럼 여긴 건 자신에게는 물론 김건희에게도 큰 불행이다.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김건희는 윤석열에게 호재가 아니라 악재였다. 그것도 매우 큰 악재였다. 그는 김건희 때문에 이긴 게 아니라 김건희에도 불구하고 이긴 것이다. 여유 있게 이길 거라는 전망이 아슬아슬하게 이긴 결과로 나타난 것은 그만큼 ‘김건희 리스크’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높이 평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건희의 정치적 감각과 전략은 수준 이하이며 매우 위험하다는 게 입증되었음에도, 그는 자신을 믿지 못한 채 극단적인 자기 비하를 하면서 김건희를 자신의 우상으로 섬기고 말았다. TV토론에 나가기 전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쓸 것을 요구한 사람이 김건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그것마저 자신의 승리에 기여했다고 믿는 걸까?

강준만의 화이부동구독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

눈치도 없는데 귀마저 닫으면 어떡하나

‘배신·변절’을 팔아먹는 매카시즘


김건희가 윤석열을 함부로 대한다는 건 수많은 녹취를 통해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그런 구박을 받으면서 길들여진 것인지는 전문가들이 살펴볼 문제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윤석열은 자신을 비하하며, 그런 자기 비하는 자학의 수준에 이를 정도로 심하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발언들을 대선 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 쓰레기통에 내던지면서 오히려 역행하는 길로 치달은 걸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그가 불통의 아이콘이 된 것이나 자주 자화자찬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청과 성찰도 자존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자존감과 더불어 자기애를 회복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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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 ‘경호 의전’ 보호막에 유폐된 윤석열
입력 : 2025.01.07 

[강준만의 화이부동]‘경호 의전’ 보호막에 유폐된 윤석열

최고 지도자의 경호는 체제와 정권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경호를 보라. 경호원들이 김정은의 전용차량을 ‘브이(V)’자로 에워싸고 차량 속도에 맞춰 뛰거나 총기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로 경호하는 모습에선 사실상 전시체제라는 공포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한국도 독재정권 시절엔 대통령 경호에 얽힌 가십들이 많이 돌아다녔는데, 그건 한결같이 경호 과정에서 일어난 경호원의 폭력과 관련된 살벌한 이야기들이었다. 대통령이 신적 존재라는 걸 암시하려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겐 “꿈에도 소원은 민주화!”라는 결의를 다지게 했을 뿐이다.

경호는 ‘권위주의적 의전의 꽃’이다. 윤석열의 의전은 경호 중심이었다. 이른바 ‘입틀막 경호’가 보여주었듯이,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손제민은 “경호와 권력”(2025년 1월3일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경호처는 지극히 기능적 업무를 수행하기에 정치 과정에서 독립적 변수가 아니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대통령을 아우라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그 권력을 더 위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권력에 근접해 있어 스스로 권력화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젠 어느덧 윤석열의 브랜드가 돼 버린 ‘입틀막 경호’는 윤석열과 윤 정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아니 적잖은 타격을 준 자해극이었지만, 늘 여소야대 체제의 야당에 시달리던 윤석열에겐 권력을 만끽하게 만드는 만족감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이의 제기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경호원은 그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인가. 그래서였는지 윤석열은 경호처 인력을 30% 줄이겠다던 대선 공약을 깨고 오히려 60명을 늘려 758명이나 되는 거대 경호처를 만들었다.

12·3 계엄 사태의 2인자 노릇을 했던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은 초대 경호처장 시절 ‘막강 경호처’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너무 막강해진 나머지 ‘입틀막’을 할 정도로 말이다. 그는 경호처에 군과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을 부여하도록 시행령을 개정케 함으로써 경호처 직원 700여명에 더해 군 1000여명, 경찰 1300여명까지 도합 3000명가량의 병력을 경호처장이 지휘·감독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경호원이 많다고 해서 꼭 대중과 멀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윤석열은 멀어지는 길을 택하기로 단단히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경호원 늘리며 대중과 멀어져

그는 취임 직후부터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을 통해 이전 대통령들보다 대국민 직접 소통의 문턱을 상당 부분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시행 6개월 만인 2022년 11월21일 전격 중단했으니 말이다. 그 이유도 불길한 것이었다. 사흘 전인 18일 MBC 기자가 대통령에게 따지듯 묻고, 대통령실 관계자와 설전을 벌인 ‘불미스러운 사태’ 때문에 중단했다는 것인데, 아니 MBC가 무어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부여해야 했단 말인가.

윤석열의 도어스테핑은 준비 안 된 어설픈 것이었으며, 그래서 중단 후 논쟁과 논란이 줄고 국정 지지율도 올랐다는 평가마저 있었다. 하지만 결코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싫어하거나 불편한 존재를 아예 회피해버리는 버릇이 국정운영의 주요 방식으로 고착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윤석열은 2023년 신년 기자회견마저 건너뛴 채 그걸 조선일보하고만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이에 한겨레는 “윤 대통령이 불편한 물음이 나올 수 있는 새해 기자회견 대신 보수언론을 골라 편한 인터뷰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경향신문은 “신년사 발표가 질의응답 없이 진행되면서, 대통령과 취재진 사이 직접 소통은 더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024년 4·10 총선 준비는 돼 있었던가? 법무부 장관 한동훈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긴 것까지는 좋았다. 총선 승리를 위해선 ‘김건희 리스크’의 제거가 가장 필요했기에 한동훈이 그 악역을 맡고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윤석열이 한동훈의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할 정도로 펄펄 뛰면서 광분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기가 꺾인 한동훈은 ‘김건희 리스크’ 문제는 아예 손도 대지 못한 채 궁여지책이었는지는 몰라도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만 열심히 외쳐댔고, 결국 4·10 총선은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나고 말았다.

동아일보 대기자 이기홍은 4월19일자 칼럼에서 “참패의 원인은 99% 대통령이 제공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사실 12석을 얻은 조국혁신당의 기이한 성공이야말로 이 총선이 ‘윤석열 심판 선거’였다는 걸 말해준 게 아니고 무엇이랴. 심판은 정책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윤석열의 태도와 스타일, 특히 ‘김건희 숭배’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래서 책임은 오롯이 윤석열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윤석열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과 멀어지는 길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윤석열은 2024년 9월2일 국회가 22대 국회 시작을 공식 선포하는 개원식에 불참했다. 그는 1988년 이후 처음으로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을 국회로 불러 놓고 피켓 시위 같은 망신주기를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윤석열은 11월4일 2025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도 불참함으로써 11년간 이어진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 관례를 깨버렸다.

윤석열에겐 야당의 거친 비판과 공격으로부터 벗어나 대통령 의전을 원 없이 만끽할 수 있는 해외 순방이 거의 유일한 낙이었겠지만, 이마저 말이 많았다. 해외 순방에 나갈 때마다 논란을 일으킨다는 비판은 단골 메뉴였다. 역대 정부에선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가면 지지율이 상승했지만, 윤석열은 해외 순방 때마다 지지율이 하락했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걱정 아닌 걱정의 말도 많았다. 사실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심지어 해외 순방이 너무 잦다는 비판까지 들었으니 윤석열로선 죽을 맛이었을 게다.

극우 유튜브에 빠져 자신을 유폐

국회에 제출된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의 공소장에 따르면, 윤석열은 계엄 선포 9개월 전인 작년 3월부터 김용현이나 군 장성들에게 계엄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특히 계엄 9일 전인 작년 11월24일, 야당이 제기하는 명태균 공천 개입 의혹,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재판과 수사에 관여한 판검사 탄핵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이게 나라냐. 정말 나라가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했고, 이에 김용현은 곧바로 계엄 선포문·대국민 담화문·포고령 등의 작성에 들어갔다나.

참 묘하고도 신기한 일이었다. 대통령 부인이 무속에 심취한 채 대통령 위에 군림하고 국정운영에 사사건건 개입하면서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을 자주 저지르는 것 역시 “이게 나라냐”라는 개탄이 나오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윤석열은 왜 한번도 하지 않은 걸까? 부인에게 무릎을 꿇고서라도 제발 더 이상 나대지 말아달라고 읍소했더라면, 단식투쟁도 불사하면서 졸라댄 끝에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했던 김건희의 2021년 약속이 지켜졌더라면, 지난 총선에서도 승리하면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한겨레는 조선일보를 윤석열이 편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신문이라고 했지만, 김건희 문제가 계속 불거지면서 편한 언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해 9월 조선일보 논설실장 박정훈은 칼럼에 “보수층이 이재명의 온갖 범죄 혐의에 혀를 차다가도 ‘김 여사는?’이란 반박을 받으면 말문 막힐 때가 많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지지자들로선 속된 말로 ‘X팔리는’ 심정이 된 것이다”라고 썼다.

윤석열은 지지자들을 ‘X팔리게’ 만든 자신의 병적인 ‘김건희 숭배’를 그만둘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이게 나라냐”라는 울분을 쏟아냈다. 그가 보기에 참담한 그런 상황을 창조한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 어떤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거니와 법원의 체포영장마저 차단할 수 있는 ‘경호 의전’의 보호막으로 파고들었다. 그 이전에 자신에게 긍지와 용기와 힘을 주는 극우 유튜브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면서 자신을 세상과 완전히 차단해 유폐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희망과 환희가 흘러넘치는 유튜브 세계가 윤석열과 김건희를 언제까지 기쁘게 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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