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간첩 함주명의 나는 고발한다
이인우 (지은이)길(도서출판)2014-03-31





























미리보기
정가
17,000원
판매가
15,300원 (10%, 1,700원 할인)
마일리지
850원(5%) + 459원(멤버십 3%)
+ 5만원이상 구매시 2,000원

배송료
무료
수령예상일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3월 17일 출고
(중구 서소문로 89-31 기준) 지역변경
Sales Point : 47

카드/간편결제 할인

322쪽
책소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1931년생의 함주명이 1983년 겨울, 나이 쉰둘에 낯선 남자들에 이끌려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 이근안 등으로부터 갖은 고문을 당한 뒤에 간첩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다음 해 5월 29일에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16년간 감옥 생활을 한다.
1998년 8.15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함주명은 단 하나의 목표, 즉 오직 재심(再審)을 통해 무죄를 밝히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2005년 7월 15일 재심 선고 공판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라는 소리를 그제서야 들었다.
이 책은 평범했던 우리 이웃이 어떻게 국가권력에 의한 ‘조작’에 의해 평탄했던 삶이 무서울 정도로 파괴되는지를 속살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함주명 한 개인의 파탄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과 이웃 모두에게 이른바 ‘빨갱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그들의 삶 모두를 망가트렸다.
책 후반부에 그의 부인과 큰아들의 증언은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인들조차 그에 버금가는 고통과 불안 속에 처해졌음을 고발하고 있다.
목차
서문: 나는 왜 이 이야기를 남기는가 5
제1장 함주명의 살아온 이야기 13
운명의 그날 15
‘간첩’ 함주명의 반생 22
남파 40
기적 같은 재회 50
고단한 남한 생활 56
제2장 지옥에서 보낸 45일 67
날조의 시간들 69
만들어진 혐의 91
악마의 시간 98
홍종수는 누구인가 105
형식적인 재판 109
제3장 진실의 이름으로 117
2심에서 3심까지 119
항소 이유와 변론 요지 148
상고이유서 158
제4장 야만의 시대 163
5공 시대 간첩단 사건은 왜 빈발했는가 165
고문 시대 184
민가협의 활동 202
16년간의 감옥 생활 209
제5장 나는 무죄다 221
이근안 고문은 사실이다 223
머나먼 재심의 길 236
마침내 재심이다 245
눈물 젖은 최후진술 263
제6장 마침내 정의가 이기다 269
제7장 가족의 눈물 275
젊은 아내 이춘자 277
큰아들 함종우 295
에필로그 303
발문: 만들어진 간첩의 말에 귀 기울일 의무 --- 박래군 307
지은이의 말 316
접기
추천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중앙일보
- 중앙일보 2014년 4월 12일자 '책꽂이'
저자 및 역자소개
이인우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해 2022년까지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일본 교토 리쓰메이칸대학교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이다. 저술한 책으로는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2024)를 비롯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한겨레 10년의 이야기》(공저, 1998), 《삶의 절벽에서 만난 스승 공자》(2016), 《서울 백년 가게》(2019), 《음식천국 노회찬》(2021) 등이 있다.
최근작 : <[큰글자책]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음식천국 노회찬> … 총 10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길(도서출판)
출판사 페이지
신간알림 신청
최근작 :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 - 전2권>,<루공가의 행운>,<역사적 예수>등 총 169종
대표분야 : 철학 일반 13위 (브랜드 지수 64,769점), 고전 30위 (브랜드 지수 67,528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국가폭력에 의한 간첩 조작으로 한 인간의 삶이 무너지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1931년생의 함주명이 1983년 겨울, 나이 쉰둘에 낯선 남자들에 이끌려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 이근안 등으로부터 갖은 고문을 당한 뒤에 간첩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다음 해 5월 29일에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16년간 감옥 생활을 한다. 1998년 8.15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함주명은 단 하나의 목표, 즉 오직 재심(再審)을 통해 무죄를 밝히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2005년 7월 15일 재심 선고 공판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라는 소리를 그제서야 들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에서 보도한 대로 간첩죄가 재심을 거쳐 무죄가 된 것은 함주명 사건이 최초였다. 그만큼 이 사건은 함주명 한 사람의 일을 떠나 한국현대사에 기록될 만한 역사적인 재판이었다. 이 함주명 사건 재심이 선례가 되어 2014년 현재까지 여러 건의 조작 및 의문사 사건의 재심이 결정되었고 대부분의 사건이 무죄를 인정받아 관련자들이 신원되었으며, 정부로부터 피해보상을 받았다. 유명한 인혁당 사건도 재심이 이뤄져 사형당한 사람과 유가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자유민주주의국가’ 대한민국에서는 ‘조작’에 의한 간첩사건이 20세기 냉전의 시대를 지나 탈(脫)이데올로기 시대라고 하는 21세기에서조차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사건만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국정원이 공문서를 조작하면서까지 그를 ‘간첩’으로 만들려 했음을 언론과 방송 보도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무기징역으로 16년 감옥 생활을 한 사람에게 재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는 나라!
한국전쟁 전, 개성의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전쟁 통에 인민군에 자원입대했다가 가족이 모두 흩어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첫 전투에서 실명까지 한 그는 가족이 모두 남한으로 넘어간 뒤 홀로 남게 되었다. 한동네에 살던 우순학의 집에 하숙을 하다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남파간첩이 된 그는 넘어오자마자 자수를 하고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재판을 받고 출소한다. 이때 그는 간첩죄로 기소된 것이 아니라 다만 북한에서 청년 조직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이른바 ‘이적단체 가입’의 혐의만 적용받았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앞서 밝혔듯이 1983년 한겨울에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45일 동안 지독한 고문에 시달려 죽음 문턱까지 가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강요’에 의한 진술조사를 작성, 결국 ‘간첩’이 되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광주에서 많은 시민을 학살하여 정권 차원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함주명 간첩조작사건처럼 많은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었다.
사법부조차 그의 ‘진실’을 밝혀주지 않았다. 사건 담당 검사 최병국(최근 영화 “변호인”을 통해 부림사건으로도 잘 알려졌다), 공판 검사 임휘윤 등은 끝내 진실을 외면했고 판사들조차 핵심증인들의 진술을 묵살하고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법부의 독립에 의한 ‘진실’에 바탕을 둔 판결만이 그나마 유일하게 남은 희망이었다면, 사실상 이 나라의 사법부는 1970년대부터 정치권력의 시녀가 되어 이른바 ‘국가보안법’류의 사건은 조작이 분명하게 인지됨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두 유죄 판결을 내렸다.
수감 중에도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공소시효가 지났다거나 자료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모두 기각되어 결국 새로운 증거자료를 찾아야만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1998년 광복절 날에 가석방되어 그 이후에는 민가협과 민변의 도움으로 ‘재심’ 청구를 위한 무수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양심적인 박승서 변호사와 이진우 검사 등에 의해 이근안을 법정에 세우고 또 고문한 사실을 밝혀냄으로서 재심의 길을 열게 된다.
그리고 결국 재심을 한 사법부는 그를 22년만에 간첩이 아니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확인해준다.
전쟁정치가 지속되는 한 이런 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은 평범했던 우리 이웃이 어떻게 국가권력에 의한 ‘조작’에 의해 평탄했던 삶이 무서울 정도로 파괴되는지를 속살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함주명 한 개인의 파탄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과 이웃 모두에게 이른바 ‘빨갱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그들의 삶 모두를 망가트렸다. 책 후반부에 그의 부인과 큰아들의 증언은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인들조차 그에 버금가는 고통과 불안 속에 처해졌음을 고발하고 있다.
이 책의 발문을 쓴 인권운동가 박래군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함주명의 증언이 소중한 이유는 전면전쟁 이후 계속되는 전쟁정치가 종식되어야 할 이유를 구체적인 실제 사실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분단을 이용한 정치세력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사회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일 의무가 있다. 그럼으로써 정의를 세울 힘이 우리 사회에서 자라날 것이다.” 접기
===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010
"다시는 나와 같은 억울한 사람 생기지 않는 세상을"
'조작간첩 함주명의 나는 고발한다' 출판기념회 열려
기자명 이창훈 통신원
입력 2014.04.24

▲ 함주명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조작간첩 함주명의 나는 고발한다』 출판기념회가 23일 서울 YWCA에서 열렸다. 함주명 선생이 부인 이춘자 여사와 나란히 자리했다. 그는 인사말에서 “나의 싸움은 이춘자 여사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질긴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
1983년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되었다가 지난 2005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함주명 씨의 일대기를 다룬 책 『조작간첩 함주명의 나는 고발한다』 (도서출판 길, 이인우 지음) 출판기념회가 23일 오후 6시 반 서울 YWCA 대강당에서 열렸다.
행사는 함 씨의 무죄를 위해 함께 노력해 왔던 ‘민주화운동실천가족협의회’와 김근태치유센터 ‘숨’의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무기수 함주명 씨는 조작간첩이 되어 16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1998년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다. 함 씨는 옥살이를 하면서도 무죄를 주장해왔다.
1994년에는 당시 고문기술자로 수배를 받고 있던 이근안을 ‘자신을 고문했다’며 고소했다. 그리고 1999년 이근안이 자수를 하자, 강금실 등 민변 소속변호사 13인이 ‘함주명에 대한 이근안의 고문행위에 대해 위증한 혐의’를 들어 다시 이근안을 고발한다.
이에 대해 법원이 공소시효가 완료되었다고 고발을 받아들이지 않자, 이번에는 ‘함주명 사건’ 자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다. 재심이 시작된 것은 2003년이었다.
▲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는 함주명 선생. “이 책이 널리 보급되어 다시는 나와 같은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이날 출판 기념회에는 함주명 씨의 구명운동에 함께 했던 민가협의 회원들과 민변 소속 변호인들 그리고 함주명 씨처럼 간첩으로 조작되어 오랜 고통을 받아온 이들도 같이 자리했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하며 함 씨의 무죄를 위해 애썼던 함세웅 신부, 함씨의 이야기를 말지에 소개한 최민희 국회의원, 함 씨와 ‘빵동지’인 중부지역당 사건 관련자 양홍관 씨, 함 씨의 이야기를 마당극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소리꾼 임진택 씨 등은 함 씨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함씨 사건의 담당 변호사였던 강금실 전 장관과 인권활동가 박래군 씨는 축하영상을 보내왔다.
이어 소리꾼 이일규 씨가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통일이야기’로 개작한 마당극과 ‘도서출판 길’의 박우정 대표의 인사말 그리고 저자 이인우 씨의 인사말이 진행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저서 헌정식’과 ‘함주명 선생의 감사인사’로 출판기념식을 마쳤다.
함 씨는 인사말을 통해 “그간 나의 무죄를 위해 노력해 주신 분들과 출판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 뜻”을 전하고, “이 책이 널리 보급되어 다시는 나와 같은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조작간첩 함주명의 나는 고발한다』(도서출판 길) 표지. [자료사진 - 통일뉴스]분단의 현대사가 낳은 비극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겪은 ‘조작간첩 무기수’의 기막힌 인생역정이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함주명(83), 길을 가다 마주치면 그저 평범한 노인에 불과할 그의 인생을 펼쳐 든 순간, 분단과 독재시대를 건너 온 그의 억장 무너지는 한많은 인생이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개성에서 손꼽히는 인삼 상인이었던 부친 밑에서 철모르고 자라다가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인민군에 자원, 첫 전투에서 한쪽 눈을 실명한 것을 시작으로 가족을 찾기 위해 대남 공작원을 자원해 남쪽으로 침투해 바로 자수했지만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간첩’의 딱지가 끈덕지게 쫒아다녀 제대로 된 직장을 유지하기도 어려웠고, 첫 결혼 생활마저 이혼으로 마감해야 했다. 그러나 시대의 불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983년 2월 18일, 그는 안기부에 끌려가 63일간이나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무차별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 등으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항거 불가능한 상태에서 ‘고정간첩’으로 조작됐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고문을 주도한 이는 고 김근태 전 의원을 고문했던 이근안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근안을 고문 혐의로 처음으로 법정에 세웠던 것도 1984년 바로 이 사건 재판정에서였다. 물론 이근안은 혐의를 부인하는 위증을 했다.
함주명 선생은 재혼한 부인과 가족들의 노력, 2심부터 사건을 맡은 박승서 변호사의 정성을 다한 변론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형 구형을 거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6년 만인 1998년 광복절 특사로 출옥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그의 간첩 혐의가 얼마나 참혹한 고문에 의해 얼마나 엉터리로 조작되었고, 당시 이같은 고문과 조작이 얼마나 횡행했는지를 숨막히도록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 이인우는 이를 ‘야만의 시대’라 이름붙였다.
감옥에서도 자신의 무죄를 밝히고야 말겠다고 벼르던 그는 특사로 풀려난 뒤 재심 청구를 추진하던 중 김근태 전 의원을 고문한 이근안이 도피 11년 만에 자수함으로써 상황이 변화됐다.
1999년 이근안을 고문과 위증 혐의로 고발해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 처벌이 불가능했지만 당시 이진우 검사가 이근안의 고문 진술을 확보했고, 그는 16년 만에 이근안과 대질신문을 위해 대면한 후 “연민의 정이 느껴져서 이근안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2000년 9월 강금실 변호사를 통해 신청한 재심 청구는 지지부진하기만 했지만 참여정부의 등장으로 재심이 개시돼 민가협과 민변 조용환 변호사 등의 노력으로 2005년 7월 15일 선고공판에서 마침내 “피고인은 무죄!”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감첩죄가 재심을 거쳐 무죄가 된 첫 사례로 한국 현대사에 기록될 역사적인 재판이었던 것이다. 이후 각종 시국 관련 의문사 사건과 인혁당 사건 등에서 잇단 재심이 승소로 이어졌고 정부로부터 피해보상도 받아냈다.
저자는 “김근태의 투쟁이 없었다면 함주명의 투쟁은 시작될 수 없었고, 노무현의 시대가 없었다면 함주명의 투쟁은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함주명 선생은 “나는 내 이야기를 통해 고문의 잔혹함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짓밟는 반인간적.반인륜적 범죄를 고발하고 싶었다”며 “하루빨리 남북이 극한적인 대결을 끝내와 평화와 통일의 시대로 접어들어 다시는 나와 같은 분단의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고 책머리에 남겼다. (김치관 기자)
==
==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31455.html
‘조작 간첩’ 함주명이 묻는다…“국가여 그짓을 또 하려는가”
한 주를 여는 생각
조작간첩 함주명의 나는 고발한다
이인우 지음
도서출판 길 펴냄
이재성기자수정 2014-04-06 19:54
등록 2014-04-06 19:54
조작간첩 재심 승리 1호 함주명씨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6층에서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의용군에 입대했던 함씨는 미군이 쏜 포탄의 파편에 맞아 왼쪽 눈을 실명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광고
이 책을 읽으며 단박에 기시감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기시감의 시제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다. 탈북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증거조작이 사실로 확인된 지금, <조작간첩 함주명의 나는 고발한다>가 들춰내는 국가범죄는 현재진행형이다. 간첩조작 행위가 과거완료형이 될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내 기억하고 복기하는 것이다. 함주명(83)씨가 이 책을 써달라고 의뢰한 이유다.
이 책을 특수하게 만드는 지점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만큼이나 기구한 함씨의 인생역정이다. 철없는 나이에 인민군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왼쪽 눈을 잃었고, 남녘의 어머니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남파공작원이 되어 휴전선을 넘은 사연. 남파되자마자 자수하여 30년을 평범한 시민으로 살다 52살의 나이에 모진 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조작된 고난의 운명. 16년의 감옥생활 끝에 재심을 청구해 ‘조작간첩 무죄 1호’가 된 불굴의 의지.
<조작간첩…>은 함씨의 일생과 고문, 재심판결을 이끌어내기까지 함씨와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노력을 두루 담고 있다. 영화 <변호인>의 실화를 제공한 부림사건의 담당검사였으나 끝내 사과를 거부해 지탄받았던 최병국 전 한나라당 의원이 함씨 사건의 담당검사였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
광고
함씨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 누구도 이런 (고문·조작) 범죄를 다시는 꿈도 꾸지 못하게끔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하루빨리 남북이 극한적인 대결을 끝내고 평화와 통일의 시대로 접어들어 다시는 나와 같은 분단의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멀쩡한 국민을 간첩으로 만드는 나라, 어디 또 있나요무고한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부족한 정통성을 간첩 사건으로 만회하려 혈안이었다. 남파공작원 전력을 갖고 있는 함주명씨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간첩증거 조작이 탄로난 유우성씨 사건에 대해 함씨는 “유신체제로 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탄했다.함주명(83)씨는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짙은 색 안경 너머로 검은 ‘의안’이 우물 같은 빛을 냈다. 지팡이는 전두환 독재정권이 남긴 고문의 흔적이며, 의안은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다. 불행한 한국 현대사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화석 같은 존재, 함씨를 지난 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개성상인 그는 유명한 개성상인 함정일씨의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개성인삼상업조합장을 지낸 아버지는 개성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부자였다. 개성시 만월동 648번지, 80칸이 넘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살았다. 식모와 침모, 남자하인 하나와 아버지 비서가 따로 있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철없는 10대를 보내던 어느 날 잠자던 함씨를 어머니가 깨웠다. 창밖을 내다보니 당시만 해도 남한 땅이었던 개성 시내를, 국군이 아닌 인민군이 중무장한 채 남쪽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6월25일 새벽이었다.
광고
광고
의용군 일본 메이지대학을 나와 개성여고에서 영어와 교련을 가르치는 배석장교였던 큰형과, 육군 경리사관학교에 합격해 등교를 준비하던 작은형은 급히 몸을 숨겼지만, 물정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던 함씨에겐 별 변화가 없는 나날이었다. 그의 인생에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한 것은 그해 여름방학이었던 8월의 어느 날이었다. 학교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가보니 인민군 장교가 단상에 올라 연설을 시작했다. 의용군 입대를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소영웅 심리가 발동한 19살의 함씨는 별 고민 없이 손을 들어버렸다. 이념 같은 건 알지도 못할 때였다. 당시 그가 다니던 개성상업학교에서 100여명이 스스로 의용군이 됐다. 집에 들를 틈도 주지 않고 바로 입대하느라 가족과 상의는 고사하고 작별인사도 할 수 없었다. 45㎜ 대전차 직사포 부대의 조준수가 된 그는 1950년 10월11일 오전 8시께 임진강 고랑포 부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전투를 치렀다. 미군 탱크 하나를 격파하고 다음 과녁을 살피던 중 고막을 찢는 폭발음과 함께 장탄수 병사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거의 동시에 그의 왼쪽 눈에서 시커먼 액체가 쏟아졌다.
남파간첩 상이용사로 영예제대한 함씨는 김일성 대학에 특례입학할 수 있었다. 예쁜 여학생이 많은 연극반 활동에 재미를 붙였는데, 여기서 함씨의 운명을 가를 사건이 발생한다. 교내 행사에서 공연을 마친 뒤 뒤풀이를 하기로 했는데 비용이 모자랐다. 학생들은 각자 기숙사에서 사용하는 개인용 침대 매트리스 커버 한장씩을 팔아 모자란 비용을 충당하기로 했다. 학교당국은 허가 없이 공공물품을 반출했다며 조사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함씨의 출신 성분이 드러났다. 함씨가 부르주아 출신이며, 가족들이 모두 남하했다는 사실. 학교의 권유에 따라 자퇴할 수밖에 없었다. 폐허로 변한 개성 집에 내려온 함씨는 전쟁 통에 어머니가 자신을 찾으러 집에 다녀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친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남쪽으로 갈 수 있는 방도를 찾던 그는 남파공작원에 자원한다.개성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철없는 나이에 인민군 들어가서 한국전쟁 참전했다 왼쪽눈 잃고 출신성분 들통나 대학 쫓겨났다어머니 만나려 남파 자청한 뒤 휴전선 넘자마자 자수해 살다 5공시절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모진 고문끝 간첩으로 조작됐다 16년만에 출소해 재심 청구하고 마침내 ‘무죄’ 판결 이끌어냈다 나 같은 사람 더 이상 없기를
밑바닥 생활 1954년 4월14일 휴전선을 넘자마자 자수한 그는 미군 첩보대를 거쳐 원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그를 ‘검거’했다고 상부에 보고했고, 수갑을 찬 채 각목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이른바 ‘통닭구이’와 고춧가루 물을 먹이는 등의 고문을 받았다. 자수하여 광명을 찾으려던 그는 간첩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처했으나, 육군 방첩부대에 근무하던 작은형과 인척의 도움으로 북한 민주청년동맹에 가입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만 인정받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남파간첩이었다는 사실과 보안법 전과자라는 꼬리표는 평범하게 살려던 그의 인생을 줄기차게 방해했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만하면 이력이 들통나는 바람에 고물상을 비롯한 밑바닥 생활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근안 쉰둘의 가장이었던 함씨는 1983년 2월 영문도 모른 채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법 연행됐다. 당시 계급이 경위였던 이근안은 자기가 고안했다는 전기고문 기계와 물고문으로 딱 죽기 직전까지 고문을 했다. “이근안은 손두께가 다른 사람 두배만 했어요. 특히 가슴을 주로 때렸는데 숨을 못 쉴 지경이었어요. 어깨를 때리면 금세 팅팅 부었는데, 거길 볼펜으로 찌르면 자지러질 듯이 아파요. 천하장사도 못 배깁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은 칠성판에 눕혀놓고 “아래서는 전기고문을 하고, 위로는 물고문”을 하는 것이었다. 양쪽 새끼발가락에 전기를 연결해 놓고 얼굴에 수건을 덮어씌운 뒤 샤워기를 트는 것이다. 함씨는 요즘도 자다가 비명을 지르며 잠이 깨곤 한다. 비몽사몽간에 떠오르는 장면은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해 답답해하다 갑자기 코와 입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이다. 서울대생 박종철을 죽인 바로 그 순간이다.
광고
재심무죄 1호 간첩으로 조작된 함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16년을 보낸 뒤 1998년 68살이 되어서야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16년 내내 결백을 주장하던 함씨는 출옥 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남규선 간사와 강금실·조용환 등 인권변호사의 도움으로 마침내 재심 판결을 이끌어냈고 무죄를 확인했다. 함씨의 승리 이후 숱한 조작간첩 사건의 재심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함씨는 “유우성씨 사건을 보면서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기춘씨가 누굽니까. 유신헌법을 만든 사람 아닙니까. 다시 유신체제로 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세상에 멀쩡한 국민을 간첩으로 만드는 나라가 어디 또 있단 말입니까”라고 한탄했다. <조작간첩 함주명의 나는 고발한다> 출판기념회는 23일 저녁 6시30분 서울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대강당에서 열린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