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s post
<갈등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행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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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북측의 관계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난 수위를 올려가고 있습니다. 어제 페친인 강진규 (Jin Kyu Kang) 기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북측의 대응에 대한 기사에 제 코멘트를 따고 싶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제가 웬만하면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고 다 들어주는 편인데 몇 가지 제 삶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에 대해선 단호한 편입니다. "미안하지만 제 전공 분야가 아닌 것에는 대답할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오늘 강기자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서양언론의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제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겁니다. 이 분야 역시 제 전공은 아니지만 국제정치나 북한학 전공자에 비해서는 이론을 전공하는 제가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개인 의견을 밝히고자 합니다. 정치학자라고 모든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건 아니니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생각으로 감안하고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2.
1980년 말 소련의 개혁.개방에 힘입어 동구의 공산주의 정부가 줄줄이 무너졌었지요. 마지막 남은 철권통치의 독재국가가 루마니아였고 1989년 12월 차우체스크가 몰락하자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의 붕괴를 예언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던 새내기 정치학도인 저는 1992년 통일부에서 지원하는 북한관련 논문에 응모해 선정되었습니다. 그 때 제 논문의 제목은 "체제변동론으로 본 북한의 변화" 비슷했을 거에요. 저는 북한의 붕괴가 그리 쉽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 전문가도 아닌 저는 어떻게 많은 전문가들을 제치고 북한의 변화에 대한 예측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북한이나 남한이나 서방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 같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는 미치광이니 예측할 수 없다느니 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공세가 이론에는 맞지 않다고 봤습니다. 북한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제가 남한 사람들을 분석하는 데 사용한 합리적 선택이론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러면 북한에서 합리성이 무엇이냐. 그건 북한학을 전공하는 분들이 사용하는 내재적 접근법에 의해서만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합리적 선택이론을 사용한 네레이션 방법이기도 합니다.
3.
문화적 상대주의에서는 타국의 문화를 있다 없다 열등하다 우월하다는 평가가 타당하지 않듯이 우리의 잣대로 북한의 합리성을 재단해서는 곤란하다는 겁니다. 가령, 그렇게 못 살고 고생하면서도 김일성을 만나면 울고 불고 수령님 만세를 부르는 북한민의 행태를 이해해야 북한체제 변동에 대한 예측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장자가 왕위계승을 했던 조선시대에서 일제식민지의 수탈을 경험한 북측 인민들에겐 김씨 왕조의 세습이 자연스러운 전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해방과 함께 자주 독립이 가장 큰 목표였을 겁니다. 항일 무장 투쟁했던 다수가 해방 후 북측으로 갔으며, 해방후 경제적으로도 북은 남을 능가했고, 북한 정부는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통해 자주독립을 지켜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정보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일체의 저항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여러분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게다가 북한민은 한번도 외세의 침략에 무릎 꾾은 적이 없는 고구려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에게 자주 독립 외에 더 큰 가치가 있었을까요? 게다가 일방적 정보에 세뇌된 사람의 반응을 비합리적이라고 재단할 수 있을까요? 북한이 민생을 위해 개혁 개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딜레마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지요
4.
적어도 제가 공부했던 북한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북한에 대해 경제적 엠바고를 해왔습니다. 북한은 군사적으로 미국을 믿을 수도 없었으니 자위와 협상의 수단으로 핵을 개발했다는 게 미국의 저명한 게임이론가의 분석입니다. 우리는 늘 북한은 믿을 수 없는 정부라고 군사독재시절부터 귀에 박히게 돌어왔지만 실제로 미국의 가장 보수적인 학자 중 한 명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언행에 있어서 매우 일관되었다고 합니다. MB 때에도 연평도 폭격이 북한의 일방적 공격인 것처럼 말하지만 한미 연합 훈련을 어느 선 위에서 하면 폭격할 것이라 경고한 바 있습니다.
클린턴 때부터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북미협상의 틀을 깬 쪽은 미국이라는 게 적지 않은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서양인들의 북한에 대한 편견과 불신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코로나 시국에 벌어지는 서구인의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발언을 보십시오. 그들이 아시아인을 동등한 인권의 소유자로 존중해주는지. 게다가 북한은 서구식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멉니다. 유럽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아닌 정부에 대한 자비심이 없습니다.
5.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북측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건 미국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정부는 하노이북미회담이 성사될 것이라고 확신했고, 미국은 국내 정치 사정으로 약속을 깨고 안전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 이후 북한이 어떤 시위를 해도 미국이 달래기만 하고 진전이 없었는데 지금 전세계가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어려우니 북한은 상황이 오죽할까요.ㅜㅠ
대북전단이 북에서는 핵보다 더 중요하다고요? 저는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대북전단을 빌미로 북측이 현상을 벗어나기 위한 시위를 하는 것으로 제 눈에는 보입니다. 혹시라도 대선 전에 위기에 닥친 트럼프가 어떤 딜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의 타진일 수도 있구요.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재선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북 교류에서라도 돌파구를 찾겠다는 게 아닐까요. 솔직히 북한도 인내할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과격하게 나오면 우리 정부도 미국에 뭔가 변명거리를 대면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담겨있지 않을까요. 1992년 논문 출간 이후 북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하지 않았지만 북한 당국자도 합리적 행위자라는 가정에서 협상이론의 시각으로 해본 추측입니다.
한줄요약: 북측 발언의 워딩에 주목하지 말고, 발언 뒤에 숨겨진 욕구와 분노를 읽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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