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1

극우의 물결 일으킨 더 깊은 뿌리 < 정치 < 기사본문 - 시사IN

극우의 물결 일으킨 더 깊은 뿌리 < 정치 < 기사본문 - 시사IN

극우의 물결 일으킨 더 깊은 뿌리
급작스럽게 몰아닥친 극우의 물결을 보면서, 많은 지식인들은 반(反)중국, 반(反)소수자 정서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그 정서가 폭발하도록 해준 더 깊은 뿌리가 존재한다.천관율 (언론인)다른기사 보기입력 2025.02.28




1월31일 서울 중구 명동 중국 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멸공 페스티벌’에서 윤석열 지지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한국의 급작스러운 극우화 물결은 완전히 수수께끼다. 당신이 이 문제를 ‘예견된 위기’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이 글은 그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이 정도의 극우화 물결은 ‘12·3’ 이전의 세계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리가 진입한 세계는 ‘12·3’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

두 가지를 구분하자. 많은 지식인들이 ‘12·3’ 이전부터 극우화의 불씨를 읽어내고 경고했다. 극우 개신교의 정치세력화에서, 청년 남성의 반 페미니즘에서, 경제적으로 뒤처지고 정서적으로 소외된 빈곤 고령층에서 잠재된 위기를 읽었다. 타당한 얘기다.

그러나 극우가 소수 불만 세력으로 등장하는 것과 집권 가능한 정치 세력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현상은 ‘극우의 등장’이 아니라 ‘주류화’다. 정통 보수정당은 12·3 이후 불과 몇 주 만에 헌정을 위협하는 ‘반 헌정 동맹’에 투항했다. 극우화를 경고해온 지식인들도 이 정도 사태를 상상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의 AfD(독일을 위한 대안)처럼 골치 아픈 주변부 극우 정당 정도를 경고했다. 12·3 이후 한국 정치는 이 단계를 생략하고 곧바로 극우당이 양대 정당의 한 축인 세상으로 점프했다.

극우파의 세계관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원래 내(우리)가 가졌던 권리를 저들이 빼앗아갔다. 저들을 몰아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자.” 망가진 세상을 되돌리는 데 방해가 된다면 체제 그 자체도 공격할 수 있다. 이민 반대와 무슬림 반대는 서구 극우 정치의 가장 강력한 토양이다. 자유무역 반대도 중요하다. 아시아의 저임금 공장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논리다. 피해의식, 그 피해를 주는 ‘저들’에 대한 혐오, 우리 체제가 나를 보호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분노. 이 조합이 극우 정치의 기본 공식이다.

위 공식으로 보면 한국은 극우파의 토양이 없지는 않지만 꽤 약한 나라다. 이민은 정치의 중심 문제로 진입한 적이 없다. 종교 갈등도 세계 기준에서는 약하다. 자유무역 반대는 아예 한국 극우의 관심사가 아니다.
2016년 총선에서 일어난 일

물론 중국 반대가 있다. ‘노 차이나(NO CHINA)’는 이제 극우 집회를 대표하는 슬로건이다. 또 반 소수자 정서가 있다. 한국 청년 남성들의 반 페미니즘 정서는 뿌리가 깊다. 반 장애인, 반 동성애 정서도 만만찮다. 한국의 극우화 물결을 해석하는 시도들은 대부분 이 두 정서- 반중국과 반 소수자 정서를 원인으로 지목하곤 한다.

이 설명은 틀리지 않지만, 충분하지도 않다. 12·3 이전 한국에서 반 중국 정서는 극우의 주류화는 고사하고 주변부 극우 정당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중국은 12·3 이후 급하게 불려 나온 명분에 더 가깝다. 소수자 반대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반 중국, 반 소수자 정서가 극우가 등장한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극우의 주류화 원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매우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구조적 변화 하나가 논의에서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변화란 다음과 같다.

“2010년대 중반 이후로 한국 보수는 구조적 소수파로 전환되었다. 이것은 개발독재 이후 형성된 보수의 헤게모니가 무너진 사건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주류 교체에 해당한다. 시점을 특정하자면 2016년 총선이다. 이 시기 이후 한국 보수는 소수파로 전환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이게 극우의 주류화를 설명하는 데 왜 중요한가.

아래 〈그림〉을 보자. 2007년 대선부터 2024년 총선까지 13차례 전국 선거가 있었다(대선 4회, 총선 5회, 지방선거 4회). 이 선거에서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얻은 총 투표수를, 민주당 계열 정당이 얻은 총 투표수로 나눴다. 이렇게 ‘보수 우위 지수’를 구했다. 이 값이 1보다 크면 보수당의 총득표가 더 많았다는 뜻이다. 이 값이 1.86(2007년 대선)이라는 것은 보수당 득표가 민주당 득표보다 86% 많았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몇 단락은 이 데이터에 대한 설명이다. 결론만 알고 싶은 분들은 다음 소제목으로 건너뛰어 읽어도 상관없다.



보수 우위 지수를 구할 때 사용한 값은, 대선 투표의 경우 그 정당 후보의 총 득표수다. 총선은 그 정당의 비례대표 득표수다. 지방선거는 각 정당들이 광역 단위로 비례대표 득표를 하는데, 그 결과를 전국 합산한 값이다.

선거 때마다 제3당이 있다. 제3당에도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민주노동당-정의당(진보)이나 자유선진당(보수)처럼 양대 정당과 비교적 잘 구분되는 제3당이 있다. 둘째로는 열린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이나 바른미래당(보수)처럼 양대 정당과 뿌리를 공유하는 정당이 있다.

후자는 양당 득표에 합산했다. 전자는 전부 제외했다. 보수에서 독자 3당은 자유선진당 이후 사실상 명맥이 끊어진 반면, 진보에서 독자 3당은 민주노동당-정의당이 우리 분석 기간 내내 유의미한 득표를 했다. 이들 정당 득표를 빼면 보수가 득표력 평가에서 약간 더 이득을 본다. 보수가 소수파로 전환되었는지 검증하고 싶었으므로, 보수에 더 유리한 방법을 적용했다.

2016년 총선에서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은 635만 표를 얻었다. 문재인-김종인의 민주당(607만 표)보다 많았고, 박근혜의 새누리당(796만 표)보다 적었다. 국민의당은 독자 제3당이므로 위의 규칙대로라면 빼야 하지만, 2016년 총선의 실제 성격은 그렇지가 않았다. 당시 안철수 대표가 완전한 제3세력이라기보다는 범야권으로 분류된 점, 총선 직전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분당해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갈라진 점, 국민의당 돌풍 진원지가 호남이었다는 점(호남 국민의당 120만표 민주당 78만 표) 등을 고려해야 한다. 국민의당이 없었다면 이 표는 새누리당보다는 민주당이 더 많이 가져갔을 것으로 보인다.

임기응변으로, 국민의당 표를 민주당에 2 새누리당에 1 비율로 배분해 계산했다. 위에 나열한 맥락에 따라 이 역시 보수 정당에 최소한 불리하지 않은 비율로 보인다. 이렇게 배분하면 2016년 총선의 보수 우위 지수는 0.98로, 박빙 열세다. 이는 실제 이 총선 결과(새누리당 122석, 민주당 123석)와 부합한다.
‘소수파’ 된 한국 보수의 선택

당신이 “한국 선거는 매번 선거마다 진보와 보수가 51대 49 싸움을 한다”라고 평소에 생각해왔다면, 이 ‘보수 우위 지수’는 그 통념을 깨트릴 것이다. 선거는 매번 선거마다 5대 5로 새로 세팅되는 스포츠 경기장 같은 게 아니다.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구조적 조건이 존재한다. 이른바 선거의 3요소라는 ‘구도, 인물, 이슈’는 매 선거마다 변한다. 보통 정치 논평은 여기에만 관심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말하는 것은 선거의 3요소가 경기를 펼칠 기본 요건, 그러니까 지형이다. ‘선거의 제0 요소’라고 불러도 좋다.

1월15일 경기도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는 보수 단체 회원들. ⓒ시사IN 이명익

지수 1을 기준으로 위는 보수 우위, 아래는 진보 우위 선거다. 빨간색 선이 추세선이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내려가는 게 보인다.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2007년 이후 10년 동안 점점 기울기가 완만해졌다가, 2016년 이후로는 방향이 뒤집힌다. 이제 운동장은 진보로 기울어 있다.

2007년 대선부터 2014년 지방선거까지, 총 득표력 기준으로 보수는 6전 6승을 했다. 어쩌다 서울시장 같은 큰 선거를 내줄 수도 있지만, 총 득표력이라는 기초체력은 항상 보수가 앞섰다. 그러나 2016년 총선부터 보수는 2승 5패다. 그나마 2022년 대선은 초박빙 승리였고, 2022년 지방선거는 대선 승리의 보너스일 뿐 득표력의 체질 개선이 아니었다. 이 승패는 일반적인 정치 평론이 하는 판정과 다르다. 예를 들면 2010년 지방선거는 일반적으로 민주당 승리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지형’이므로, 특정 선거의 당락 분포보다 총 득표력 승패가 더 중요하다.

최근 10년 동안 보수는 지지층 대결집과 온갖 행운과 상대의 실점이 전부 동반되어야 겨우 이길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했다. 맞다. 진보가 자신들의 처지를 묘사하는 바로 그 표현이, 실제로는 보수가 처한 현실이었다. 이 거대한 구조 변동을 놓고 이 시기의 주요 정치사를 재해석해보자.

박근혜는 왜 탄핵됐는가. 보수가 소수파로 전환된 구조 변동에 직격당했다. 2016년 총선은 보수를 뜻밖에 제2당으로 만들었고, 이 구조 변동의 충격이 보수 내부에 균열선을 만들었다. 친박계와 비박계는 2016년 촛불집회의 압력에 쉽게 쪼개졌다. 박근혜 탄핵은 보수 소수파 시대를 처음 연 게 아니다. 막 시작된 보수 소수파 시대의 결과물이자, 다시 그를 가속시킨 촉매였다.

이준석은 왜 ‘세대포위론’을 들고 나왔는가. 보수가 구조적 소수파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구조 변동을 이끈 힘은 1965~1980년대생들이 나이가 들어도 보수화하지 않고 한국에서 가장 강고한 진보 블록으로 남았던 것이다. 세대포위론은 2030 남성을 보수 지지자로 돌리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 전략 자체는 20대 여성들의 대항 결집을 불러 효과가 제한적이었으나, 최소한 20대 표의 진보 쏠림은 막아냈다.



윤석열은 왜 계엄으로까지 상황을 밀어붙였는가. 그는 소수파 정부의 수장이었다. 그리고 소수파 정부를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도 훈련도 없는 리더였다. 그 결과는 행정부의 거부권 남발과 입법부의 줄탄핵이 맞서는 극한 대치였다. 여기에 음모론적 망상 성향, 정치적 훈련 부족, 헌법적 의무에 대한 이해 없음 등 현저한 부적격이 결합하여, 그는 계엄 버튼도 이런 극한 대치의 수단 중 하나라고 편한 대로 믿어버린 것 같다.

‘지형’이라는 장기적 관점으로 보면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운명을 결정할 질문을 만나게 된다. 한국 보수는 과연 ‘소수파’라는 바뀐 처지를 수용하고 체제 내에서 경쟁할 것인가, 체제 자체를 바꾸려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보수는 자신들이 소수파인 민주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놀랍게도, 이 질문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답을 만난 적이 없다.

어느 나라에 민주주의가 공고하게 자리 잡았는지 확인하는 간단한 지표로,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정권교체 2회 시험(two-turnover tes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 나라의 유력 정당 둘 다 집권당에서 야당이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면, 그래서 정권교체가 두 번 안정적으로 일어나면, 그 나라 민주주의는 공고하다. 한국 정치는 이 테스트를 2007년에 통과했다고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아니라 ‘다수파 교체’에 초점을 맞추면, 한국 정치는 아직 시험을 치르는 중이다. 보수가 소수파 입장에서 체제 수용 노선을 받아들일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보수에게 1997년 김대중의 승리는 외환위기, 김종필의 배신 등이 엮여 나온 사고였다. 2002년 노무현의 승리는 민주당이 비열한 선거 전략(병역비리 허위사실 유포)으로 승리를 도둑질해간 사건이었다. 보수가 지형적 우위라는 구조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 우리가 만난 위기는, 소수파 보수라는 비교적 새로운 구조에 직면한 보수 내부의 노선 투쟁이다.

지난해 12월3일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모습.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제공

이렇게 보면 지금은 ‘한국 민주주의의 제2 국면’이다. 제1 국면은 1987년에 시작되어 30년 만인 2016년에 끝났다. 이 시기에 진보파도 지금 보수파가 받은 질문, 소수파로서 체제 수용 노선과 체제 변혁 노선을 놓고 격렬한 내부투쟁을 치렀다. 이 경쟁은 1997년 김대중과 2002년 노무현의 대선 승리로 진보파들이 체제 수용 노선에 사실상 합의하면서 끝났다. 이후 진보가 구조적 소수파라는 지형적 제약이 2016년에 종식된다. 여기서 제1 국면이 끝난다.

제2 국면은 보수가 소수파로 몰리는 2016년에 시작되지만, 한동안은 진보든 보수든 이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 효과가 사라진 후에도 보수가 옛 다수파 지위로 복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졌고, 그에 대한 첫 번째 명시적 반응이 2022년 대선에서의 세대포위론이었다. 뒤이은 윤석열의 폭주는 소수파화한 현실에 대한 신경질적이고 망상적인 거부였다.

제2 국면이 열린 지 10여 년 만에, 보수 내에서 체제 수용 노선과 체제 변혁 노선이 대충돌하고 있다. 한국 보수가 여기서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에 우리 체제의 운명이 걸려 있다. 보수 집안 사정이 전혀 아니고, 보수가 극우화되면 민주당 집권 가능성이 올라간다는 계산이나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어떻게 보수를 체제 수용 세력으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극우파를 보수 내에서도 주변적인 세력으로 고립시킬 것인가. 이 문제가 한국 민주주의 제2 국면의 핵심 의제다.

이제 우리의 첫 번째 질문에 더 나은 답을 할 준비가 됐다. 한국의 극우파는 ‘어떤 권리’를 ‘누구에게’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진보’에게, ‘다수파의 지위’를 빼앗겼다. 이것은 짧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길게 보면 박정희 개발독재가 한국의 보수 주류를 형성한 이후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다. 정권 한두 번 빼앗긴 것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얘기다.

이 접근법은 몇 가지 수수께끼에 명쾌한 답을 준다. 한국 보수는 왜 그토록 헌법 질서를 외치다가 지금은 헌법 질서를 흔들고 있는가? 답. 자신들이 다수파일 때는 체제 수호가 명분과 실리를 둘 다 충족시켰다. 하지만 자신들이 소수파일 때는 그렇지 않다.

한국의 극우파는 세계적 추세와 달리 왜 자유무역 반대에 아무 관심이 없는가? 답. 이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소외감은 자유무역 경제질서에서 뒤처진 결과가 아니라 다수파 경쟁 정치 질서에서 뒤처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극우파는 중국 반대 극우 정당을 만들지 않았다가, 왜 ‘12·3’ 이후 갑자기 중국이 온 나라를 장악했다는 음모론에 빠졌는가? 답. 정치적 소외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고, 중국은 동원된 명분이기 때문이다. ‘12·3’은 한국 보수가 이제 소수파라는 오래되었지만 흐릿했던 현실을 극적으로 드러냈고, 이제 이 분명해진 현실에 어떤 식으로든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의 극우파는 왜 허무맹랑한 중국발 부정선거 음모론을 놓지 못하는가? 이것이 ‘분명해진 현실’에 극우파가 내놓는 답이다. 소수파가 되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고난의 행군을 하기보다는, 그 현실 자체를 조작된 것이라 선언하고 다수파의 지위를 계속 고집한다. 그 음모론이 헌정 체제와 충돌하면, 헌정 체제를 흔든다.

그래서 한국에서 급작스럽게 일어난 극우의 주류화는 세계적인 극우화 경향과 닮았으면서 다르다. 닮은 점은, 당연하게 누리던 지위를 박탈당하는 두려움이 그 뿌리에 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그 두려움의 대상이 인종이나 종교처럼 비교적 뚜렷한 구분선이 없는 동질적 국민들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의 극우파들에게 곤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인종이나 종교의 구별 짓기가 뒷받침되지 않은 극우화는 그만큼 설득력이 제한된다. 극우파들이 호남을 향해 철 지난 지역 차별 구분선을 되살리려 시도하거나, 한국 사회 주류를 이미 화교가 장악했다는 황당한 음모론을 믿는 이유는, 한국의 현실에서 극우파 특유의 ‘우리 권리를 빼앗는 저들’을 정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연세대 학생들이 2월10일 학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그래서 나는 극우의 주류화 현상이 보기만큼 강력하지는 않은 것 같다. 현재 탄핵 반대 여론은 30% 선이다. 이들 전부가 극우화된 여론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정치적 소수파화의 두려움 때문에 헌정 체제를 기꺼이 흔들 준비가 된 ‘신념형 극우파’는 유권자의 20%를 넘지 않을 것이으로 보인다. 이 숫자는 12·3 직후 아직 계엄 찬반 이슈가 충분히 정치화되지 않았던 초기에 나온 계엄 지지 여론 규모와 비슷하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나 이것은 안심할 소식이 아니다. 문제는 이 ‘신념형 극우파’가 보수 전체에서 우세종이 되어, 보수정당의 노선을 극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상태에서 보수당의 지지율이 30%를 넘기고 있다.

이것은 ‘계엄을 반성하지 않고도 집권이 가능한 정당’이 앞으로도 한동안 존재할 것이라는 의미다. 이것이 우리가 다음 대선 후로도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할 위기의 본질이다. 보수정당이 극우와의 단절 없이 집권에 성공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최소한 ‘12·3’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혼란스러운 논쟁 대상으로 바뀔 것이다. 심하게는 또다른 헌정 체제 중단 시도가 있을 수 있다. ‘계엄을 반성하지 않고도 집권이 가능한 정당’이 존재하는 한 이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탄핵 이후 있을 대선으로 헌정 위기가 종식될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없다.

헌정 체제의 편에 선 이들 모두의 과제는 이 극우파를 한국 정치의 소수파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이건 너무 소심한 목표다. 이들을 한국 보수 세력 내에서도 소수파로 만들어야 한다. 극우의 주류화 위기를 극우의 주변화로 억제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민주당 정치인들은, 보수 정치인들은, 시민들은 어떤 과제를 받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보수 소수파 구조’는 극우의 주류화 원인을 찾아가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다음 호(제912호)에서 살펴볼 질문에도 이 관점은 아주 중요한 힌트를 준다.


천관율 (언론인) 다른기사 보기editor@sisain.co.kr#극우 #계엄 #한국 정치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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