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8

[추적] '사도광산' 조선인들은 돈 벌러갔나 강제로 끌려갔나 < 전국 < 사회 < 기사본문 - 최보식의언론

[추적] '사도광산' 조선인들은 돈 벌러갔나 강제로 끌려갔나 < 전국 < 사회 < 기사본문 - 최보식의언론



[추적] '사도광산' 조선인들은 돈 벌러갔나 강제로 끌려갔나
기자명 최보식의 언론
입력 2024.09.03 

만일 이런 논리라면 의무 교육도 '강제 교육'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최보식의언론=한정석 강호논객]

김문수 장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일 국회에 출석해 “일본 사도 광산, 군함도 등에서 일한 조선인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벌러 간 노동자인가, 아니면 강제로 끌려간 노예인가”라는 질문에, “사도 광산 부분은 공부를 안 해서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답했다.

김 장관은 사도 광산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 동원 피해자로 인정한 대법원판결에 대해선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 안 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사실관계에 대한 것은 확인해야 하는데 제가 지금 모든 사실관계를 다 알 수는 없다"고 말했다. (편집자)


조선 500년 노비 신분 노동은 아무 문제없고, 그런 조선을 병합한 일제의 8개월 기간 동안 시행한 징용은 강제 동원이라며 비난하는 것은 정당할까?

불법 강탈한 나라에 동원되는 것과 자신의 나라에서 의무로 하는 것이 같을 수 있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사도 광산 징용을 '강제 동원'이라고 하는 것은 징용의 본질을 적시하는 개념이 아니다. 만일 이런 논리라면 의무 교육도 '강제 교육'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징병은 ‘강제 동원’ 인가, 아닌가?

만일 일제 하 조선인들이 스스로 일본을 자신들의 국가로 인식했다면 일본인에게도 동일했던 전시 노동 동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조선인들의 당시 징용에 대한 생각과 입장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징용은 '노무 동원'과 '준병력 동원'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전시 동원의 성격을 갖는다. 2년 계약이었고 충분한 보수와 후생이 주어졌다.

역사적으로 어느 사회든 지배받는 대중은 지배 정당성이 상실된 상태에서 자신들에 대한 불이익을 결코 수용하지 않았다. 그런 불용은 항쟁으로 일어났다. 민란과 동학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징용에 조선 민중들이 불만을 갖고 항거했다는 기록은 없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루드비히 미제스의 인간행동론에 따르면, 사람이 행동하는 이유는 현실을 보다 낫게 개선하려는 의지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으로 현실을 개선할 수 없거나, 개선할 필요가 없는 정도의 만족에 이르면 행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도 광산의 경우, '징용'이라는 의무 동원 이전에 여기에 조선인들이 자발적 의사로 가서 일을 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선인들은 일제하에서 밀항과 노동 이민을 통해 약 250만 명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가운데 총동원 징용은 그 비율이 30%가 안 된다는 실증적 연구들도 있다.

당시 일본의 광산업은 기술력이 없던 조선 노동자들로서는 수입과 대우, 후생이 상당히 좋은 일자리였다. 그렇기에 이미 일본의 광산에는 밀항, 모집, 알선 등에 의해 건너가 일하던 조선 노동자들이 많았다.

당시 징용은 길거리나 논밭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마구 연행해서 잡아간 것이 아니다. 영장을 발부하고 신체검사를 통해 계약서가 작성됐다.


연구 초기에 징용을 '강제 연행'이라고 주장했던 학자들의 논거는 현재 거의 수용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당시 징용은 큰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았고 해방 후에도 이 문제는 한국 사회에 상처로 크게 남은 것이 없었다.

만일 징용 노동이 부당했고 수탈적이었다면 당시 40만 명에 이르렀던 징용 조선인들과 가족들이 해방 후 철수하는 일본인들을 곱게 보냈을 리가 없으며, 돌아오지 않고 남은 재일 조선인들 사이에서 징용에 대한 배·보상 요구가 그렇게 없을 리가 없다.

징용에는 긍정과 부정적인 면이 혼재해 있었다. 원치 않았던 이들도 있었겠으나, 모집, 알선에 형편이 안 되어 응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기회이기도 했다. 집에 돌봐야 할 병든 부모가 있거나 일본에 건너가는 데 쓸 10원도 없는 조선 청년들이 얼마나 많았겠나.

해방 후 한국 경제 발전에 바탕이 된 석탄과 철광 산업의 경쟁력은 이 광산 징용의 경험 노동자들에 의한 바가 컸다.

#김문수, #사도광산, #강제징용, #조선노비, #일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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