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5

이충원 - 아사히신문 '석별' 코너의 수준 기사가 나온 지 한달도 더 지나서야 본 고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 Facebook

이충원 - 아사히신문 '석별' 코너의 수준 기사가 나온 지 한달도 더 지나서야 본 고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 Facebook

아사히신문 '석별' 코너의 수준
기사가 나온 지 한달도 더 지나서야 본 고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추모 기사.
아사히신문의 한일관계 전문기자인 하코다 데쓰야 상이 썼네요.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3개월도 더 지나서 쓴 기사에 고인에 대한 존경심, 한일관계에 대한 걱정을 가득 담았네요.
'나는 심지어 고인의 이런 점도 알고 있다'는 자랑 따위 한 단어도 넣지 않았고...
수준 차이를 느낍니다. 번역과 함께 제가 쓴 부고기사를 댓글에 첨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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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원

(석별) 박준우씨 전 한국 외교관· 전 한국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아사히 3.29)
▲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선언에 혼을 담다

  2024년 12월12일 별세, 71세
  일본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일본 정부의 강점과 약점을 냉정하게 바라본 외교 전문가였다.
그래서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양국 관계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한일 양국의 당국자들이그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오랜 외교관 생활 중 "가장 보람을 느낀 동시에 가장 긴장했다"고 거듭 강조한 것은 1998년 한일 공동선언(한일 파트너십)이다.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는 한국의 좌우파가 모두 높이 평가하는 이 선언은 이제 한일 외교의 바이블이 되었다.
선언문 초안을 일본 측 카운터파트인 당시 외무성 동북아과장 사사에 겐이치로와 함께 작성했다.
두 사람의 친분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박씨는 사사에씨를 '공과 사를 아우르는 형님 같은 존재'라고 존경했다. 사사에씨는 "동지. 큰 사람이었다"고 평하며 이렇게 회고했다.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과 한국 국내 정치의 열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다. 문서로 남길 수 없는 진솔한 논의를 통해 양국의 최고위층의 동의를 얻어냈다."
상승하는 한일 외교의 흐름을 배경으로 특히 한국 측에서는 '제2의 공동선언'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박씨도 말년에는 이러한 움직임에 동조했지만, 신중한 태도를 보인 시기가 있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문재인(文在寅) 두 정권에서 외교 관계가 심하게 훼손된 시기다.
"공동선언의 취지는 양국이 파트너가 되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 정신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무슨 새로운 선언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한일 양국은 올해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새롭게 태어난다. 양국의 내정이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든든한 조언자의 부재는 참으로 뼈아프다. (하코다 데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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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외교문서에 '사죄' 첫 포함"…박준우 전 정무수석 별세(종합)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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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외교문서에 '사죄' 첫 포함"…박준우 전 정무수석 별세(종합) | 연합뉴스

"한일 외교문서에 '사죄' 첫 포함"…박준우 전 정무수석 별세(종합) | 연합뉴스


3h
"한일 외교문서에 '사죄' 첫 포함"박준우 전 정무수석 별세(종합)
송고2024-12-12 11:33

송고 2024년12월12일 11시33분

이충원
이충원기자

이미지 확대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
[유족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관련해 공식 문서에 '사죄'라는 표현을 쓴 것은 1998년 10월8일 발표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하 공동선언)'이 처음이었다. 이 표현을 사용하자고 일본 측을 설득한 외교관 박준우(朴晙雨)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12일 오전 1시58분께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71세.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동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8년 외무고시(12회)에 합격한 뒤 외무부 동북아 1과장, 아시아·태평양국장, 싱가포르 대사, 외교통상부 기획관리실장·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벨기에·EU 대사도 지냈다. 박근혜 대통령 때인 2013∼2014년 청와대 정무수석을 거쳐 2015∼2018년 세종연구소 이사장으로 일했다.

동북아 1과장이던 1998년 김대중(1924∼2009) 당시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1937∼2000) 총리의 공동선언을 앞두고 '사죄'라는 표현을 넣자고 주장해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인 일본 측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공동문서에는 일본어로 '오와비'(お詫び), 한국어로 '사죄'라는 표현이 담겼다.


유의상 전 외교부 국제표기명칭대사는 "당시 일본 측 파트너가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북동아시아과장이었다"며 "두분이 사죄 표현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 친해져서 최근까지 교류하셨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손현진 씨와 사이에 1남1녀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 발인 14일 오전 9시, 장지 화성 봉담 선영.




신호
외교관인데 정무수석을 하신 점도 특이하네요…수준 낮은 질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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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
박준우 대사는 이번 달 말에 열리는 제주포럼에서 한일 국교 수립 60주년을 맞아 사사에 겐이치로 전 사무차관(현 일본국제문제연구소장)과 대담하기로 했었는데 세상을 떠나 너무 안타깝습니다. 원칙을 중시하는 외유내강의 훌륭한 외교관이었지요.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선언의 실무책임자로서 어려운 작업을 훌륭하게 마무리 지어 한일 관계에 굵은 발자취를 남겼지요. 대학 1년 선배로 30여 년간 한 솥 밥을 먹은 분이라 이른 별세에 아직도 가슴이 아립니다. 하코다 기자는 한일 관계에 강한 애정을 가진 일본 언론인으로 추모 기사가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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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원
신각수 이 기사를 보니...좋은 외교관이란 한 나라의 국익만이 아니라 나라간의 관계를 걱정하는 것이구나라는 게 느껴집니다. 한 나라의 내부 정치 논리에 빠지기 쉬운 세상에선 참 드문 존재였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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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
이충원 맞습니다. 그래서 외교에서 '완승'이란 말을 쓰면 그건 실패했다는 보증 수표입니다. 상호 이익을 창출하는 예술이 외교라고 생각합니다. 뺄셈이 아닌 덧셈의 자세로 임하고 역지사지가 중요한 덕목이겠지요. 한일 관계도 양측이 그런 자세로 임하면 얼마든지 부가가치를 창출해 갈 수 있는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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