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미·중 전쟁과 한국의 중립 | 이재봉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평화학 명예교수
입력 2025.08.01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또는 전쟁이 날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무역 전쟁과 기술 전쟁,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영해 분쟁과 대만에 대한 분쟁 등이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와 G7을 강화하고, 이에 맞서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 (SCO)와 브릭스 (BRICS)를 확장하며 진영 대결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 가운데 한국에 가장 직접적이고 위급하며 심각한 안보 위협은 대만을 둘러싸고 지속적으로 악화해온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분쟁이다. 미국과 중국이 1972년 대만이 독립국이 아니라 중국의 일부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했지만, 미국은 1979년 ‘대만관계법’을 만들어 대만에 지속적으로 무기를 수출해왔다. 대만 민진당이 2000년부터 집권하기 시작해 독립을 추구하자, 중국은 2005년 대만이 독립을 추진하면 무력으로 저지하겠다는 ‘반분열국가법’을 만들었다. 미국은 2022년부터 ‘국가안보전략’, ‘국방전략’, ‘미사일방어 검토, ‘핵태세 검토’ 등에 대만의 자위를 보장하며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사용에 강압억제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대만에 군사원조를 대폭 늘리는 법안을 연달아 통과시키기도 하고, 나토의 전략개념에 러시아의 위협뿐만 아니라 중국의 도전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에 중국은 2022년 공산당대회에서 대만과의 통일은 “당의 변함없는 역사적 과업”이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필연적 요구”이기에, 군사 대결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중국공산당 규약 개정안에 “대만독립을 단호히 반대하고 억제한다”는 내용을 명기하며, 독립을 선언하려는 대만정부뿐만 아니라 “대만독립을 부추기는 외부세력”에도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대만에서는 독립을 추진하며 반중.친미 노선을 걸어온 민진당이 2024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2025년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하며,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견제로 바꾸겠다고 공언한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된 뒤부터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견제와 봉쇄로 ‘은밀하게’ 바꾸기 시작해, 2005년엔 주한미군이 한반도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유연하게 밖으로도 나가겠다는 ‘전략적 유연성 (strategic flexibility)’을 한국과 합의하고, 이젠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중립화를 추진하는 게 가장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중립’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듯한데,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듯, “국가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1950년대 인도가 주도했던 ‘비동맹’이나 1960년대 조선(북한)이 내세웠던 ‘쁠럭 (bloc) 불가담’이 일종의 중립이다. 1990년대부터 한국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외교 또는 균형외교를 취하자는 것은 중립이 아니다. 거듭 밝히건대 중립은 무력 분쟁이나 전쟁에서 중간 입장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군사문제 말고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분야에서 다른 나라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것은 중립정책에 어긋나지 않는다.
중립의 조건 또는 본질은 “전쟁에 참여하거나 지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쟁하는 나라에게 어떠한 편의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1930년대에 ‘중립법 (Neutrality Act)’을 세 번이나 채택했는데, 유럽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무기와 탄약 및 전쟁도구들”을 전쟁 중인 국가들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1935년 만들기도 하고, “교전국들에 대한 대출 연장”을 금지하는 내용을 1936년 추가하기도 했다.
한반도의 중립화 추진은 조선시대 말부터 시작됐다. 먼저 주변 강대국들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조선의 중립화를 원했다. 1880년대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자 일본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 중립화를 제안했는데 중국이 거부했다. 1890년대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러시아가 조선의 중립화를 제안했지만 이미 힘을 키운 일본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
조선도 생존을 위해 중립화를 추구했다. 조선 최초의 일본 및 미국 유학생으로 유럽까지 둘러보고 돌아온 유길준이 조선이 중립국이 되면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방어할 수 있고, 아시아 강대국들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립론>을 1885년 써서 고종에게 건의했다. 유럽 외교관들의 제안도 받아들이며 중립화를 고려해온 고종이 1904년 “조선은 영세중립국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일본이 곧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하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하며, 중립화는 약소국의 몸부림과 환상으로 끝났다.
1945년 해방 이후엔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해 적어도 세 번 한국의 중립화를 논의했다. 첫째, 1945-48년 미군정시대에 만약 미국군대와 소련군대가 철수하면 한반도 영구중립을 보장해야 한다고 미국 군부가 건의했지만, 국무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둘째, 1953년 휴전협정을 앞두고 미국 국무부가 한반도 중립화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만들어 국가안보위원회 (NSC)에 제출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해외주둔 미군감축을 염두에 두고 스위스와 스웨덴 사례를 들며 한국 중립화를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면서 흐지부지됐다. 셋째, 1976년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하며 관련 부처에 한국 중립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했지만, 군부가 주한미군 철수 자체를 반대하며 무산됐다.
1960년 4월혁명 직후엔 민족주의 발흥과 함께 통일운동의 일환으로 중립화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진보 정당, 종교단체, 학생조직 등이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를 조직한 가운데, 민족자주, 외세 배격,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며 중립화 통일을 지향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일보>가 1961년 1월 중립화 통일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을 때, 거의 1/3에 이르는 32% 응답자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1970년대부터 정치인 김대중이 중립화에 큰 관심을 갖고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1971년 신민당 대통령후보가 되어 주변 4대강국이 보장하는 통일한반도의 중립화 구상을 밝혔다. 1989년엔 한반도가 통일되면 오스트리아식 영구중립국으로 가게되리라 전망했다. 그러나 1998-2002년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는 중립화에 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1990년대 말부터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시민운동단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규모가 크지 않고 주목할 만한 활동은 보이지 않았다. ‘한반도 중립화‘가 가리키듯 중립화는 통일운동의 일환이다. 참고로 조선은 흔히 ’연방제‘로 불리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에서 다음과 같이 중립화를 명기했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어떠한 정치군사적 동맹이나 쁠럭에도 가담하지 않은 중립국가로 되여야 합니다.” 최근엔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 및 종속에서 벗어나 모든 전쟁을 반대하자는 ‘한국 중립화’ 시민운동단체가 태어나기도 했다.
이제 앞에서 얘기했듯 미국과 중국의 전쟁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는 터에 한국이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정당과 정부에서도 중립화를 추진해야 한다. 만약 대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터지면 한국은 이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미국군대의 가장 큰 해외기지가 평택에 있고 중국을 감시하며 겨냥하는 미군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THAAD)가 성주에 배치되어 있는데, 중국이 평택과 성주를 폭격 지역과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카터 전 대통령이 2019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언한대로, 중국은 현명한 투자와 평화로 무서운 성장을 이루었지만, 미국은 계속 전쟁을 치르며 “세계 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가 되었다. 한국이 이토록 ‘호전적’인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한 미국의 전쟁에 휘말리기 쉽다. 군사동맹은 공동의 적이 필요하다. 한국과 미국의 공동의 적이 조선인가 중국인가? 조선은 미국에겐 적이라도 한국에겐 1991년부터 평화와 통일의 대상으로 바뀌었고, 중국은 미국에겐 경쟁국이지만 한국에겐 2004년부터 최대의 무역상대국으로 변했다. 더구나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조선의 침략을 막기 위한 한국의 안보이익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안보이익을 위한 것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19세기 청일전쟁과 20세기 러일전쟁에 이어 21세기 미.중전쟁에서도 한국이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되는 것을 막으려면 지금부터 중립화를 추진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2위 안팎을 자랑한다. 세계 최상위 6% 정도다. 군사력은 세계 5-6위를 기록한다. 세계 최상위 3% 이내다. 기술력과 문화력도 세계 최상위 수준에 이른다. 이런 국력을 지닌 한국이 미국과의 군사동맹이 약화하거나 주한미군이 감축 또는 철수하면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 호들갑을 언제까지 떨어야 할까. 조선의 핵·미사일이 두렵다면 한국전쟁 종식을 반대하며 조선을 주적으로 삼고 자극하는 대신 조선과 전쟁을 끝내고 화해하고 협력하며 조선이 혹시라도 핵·미사일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 조선은 줄기차게 전쟁 종식과 평화협정을 원하지만, 미국이 종전선언조차 한사코 반대해온 이유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주한미군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과 전쟁을 끝내지 않는 것이다.
한미 군사동맹은 한국의 경제번영에도 걸림돌이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G7에 초대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중국 주도의 브릭스는 2025년 7월 현재 인도네시아, 이집트, 이란 등 10개 회원국가와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 10개 동반자국가로 확대되어, 전 세계 인구의 56%와 GDP의 44%를 차지하게 됐다. 미국과 서구의 세계적 영향력이 줄어들고, 브릭스와 인도가 이끄는 지구 남반부 (Global South)의 영향력이 커지는 터에 한국이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며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도 한미동맹에서 벗어나 중립화로 나아가야 한다.
끔찍한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중립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미동맹 약화와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에 나라 안으로는 극우수구 세력의 반발과 밖으로는 미국의 보복에 부딪힐 수 있다. 물론 국내의 반발과 국외의 보복을 최소화하는 게 정치와 외교의 역할이다. 이게 매끄럽지 못해 동맹과 중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반발과 보복이 두려워 영원히 군사동맹에 매달려 전쟁에 연루되는 길과 한시적 반발과 보복을 감수하며 영구적으로 자주와 평화를 누리는 길 가운데 어느 쪽이 바람직한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바란다.
300단어 요약
이재봉 교수는 미·중 패권 경쟁이 무역·기술 전쟁에서 대만 문제와 군사적 대결로 격화되고 있으며, 한국이 가장 큰 안보 위협에 직면했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대만 방어를 공식화하고 무기 지원을 강화하며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견제’로 노골적으로 바꾸고 있다. 반면 중국은 대만 통일을 ‘역사적 과업’으로 천명하고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밝히며, 대만 집권당의 독립 추진으로 긴장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길은 ‘중립화’다. 중립은 전쟁에 개입하거나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경제·사회 교류와는 무관하다. 그는 조선 말기와 해방 직후, 1960년대 통일운동, 김대중의 제안, 북한의 연방제 방안 등 역사 속 중립화 논의의 사례를 짚으며 현실적 가능성을 강조한다. 오늘날 주한미군 기지와 사드 배치로 한국은 미·중 전쟁 시 주요 표적이 될 수 있고, 한미동맹은 한국 안보보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에 복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은 경제·군사·문화 강국으로서 독자적 생존력이 충분하며, 북과는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 협력으로 핵 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 나아가 미·중 모두에 휘말리지 않고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에 맞추어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도 중립화가 필요하다. 물론 미국의 보복과 국내 반발이 예상되지만, 일시적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영구적 평화와 자주를 선택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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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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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평화학 명예교수는 기고문을 통해 격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의 ‘중립화’를 주장한다
이재봉 교수는 '중립'을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며, 한국이 흔히 주장하는 '균형 외교'나 '등거리 외교'는 중립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한반도 중립화 논의는 조선시대 말부터 시작되었으며, 주변 강대국들이나 조선 내부에서 생존을 위해 중립화를 모색한 역사가 있다고 언급한다
그는 한국이 미·중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정당과 정부 차원에서 중립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론
이재봉 교수의 '미·중 전쟁과 한국의 중립'은 강대국 패권 경쟁의 틈바구니에 놓인 한국의 외교적, 안보적 딜레마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중립화'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이는 현실주의적 국제정치 논리에 기반한 논리로, 한국이 미국 중심의 동맹에 안주하지 않고 주체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주한미군의 역할이 북한 방어에서 중국 견제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며, 이것이 한국에 가져올 잠재적 위험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중립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이 교수는 중립화를 '무력 분쟁이나 전쟁에서 중간 입장을 지키는 것'으로 정의하며, 경제·사회·문화 교류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수의 주장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한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유일한 길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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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단어 평론
이 글은 한국의 안보를 ‘한미동맹 유지’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중립화라는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도전적이다. 저자는 역사적 선례와 국제적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며 한국이 ‘강대국 전쟁의 희생양’이 되는 반복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를 강화한다. 특히 주한미군의 전략적 성격 변화와 대만 문제를 연결해 한국이 전쟁의 직접 당사자가 될 위험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점은 설득력이 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립화는 국내 정치적 합의와 국제적 보장 모두에서 높은 장벽이 있다.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 오스트리아식 영세중립을 확보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며,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안보 불안을 키울 수 있다. 또한 북한과의 평화 전환을 강조하지만,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대중적 지지를 얻기 어려운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립화 담론은 단순히 이상적 구호가 아니라,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이 독자적 공간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발상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글은 한국이 안보·외교 노선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도발적 제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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