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un Jin Kyung 2022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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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김원식 기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물차 취재 때 하루 꼬박 차를 태워주신 분이다. 이분 덕에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던 우리나라 화물차 운송 시장의 복잡다단한 결들을 그나마 가닥가닥 정리해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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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은 너무 속상하다고 하셨다. 울분에 차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셨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화물차 기사들을 이기주의자 난동자 폭력꾼으로 묘사하며 공격하는 뉴스들을 보고 절망하고 계셨다. ‘불법이 아닌 선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정부 국민 위정자 여론이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줄 수 있을까 내게 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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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다 할 뾰족한 방안을 말씀드리지 못했다. 명색이 기자고 또 화물차 취재도 했고 기사도 썼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나름 알렸는데도 답을 드리지 못했다. “아무쪼록 안전하시길, 몸 상하지 않게, 밥 잘 드시고, 약속한 대로 다음에 뵙고 맛있는 거 같이 사 먹어요”라고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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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과 차에서 보낸 시간이 18시간쯤 되었을 때 경기도 화성에 있던 어떤 카페에 함께 갔었다. 왜 갔는고 하면, 화물을 싣고 하차지까지 갔는데 또 하차대기가 시작됐다. 물류센터 내에 차 댈 곳도 없어서 국도변에 주차했다. 기사님과 나 사진부 선배 모두 화장실이 필요한 상태. 인근 검색을 해보니 카페가 하나 나왔다. 부랴부랴 걸어가서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라멜마키아또와 크로와상 2개를 시키고 모두 화장실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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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앉아서 드시고 갈까요?” 고작 하루 비몽사몽으로 화물차 안에 앉아 세상 경험해본 적 없는 초극단 과로 노동을 햄스터 새끼발톱만큼 경험해놓고서 피로에 찌든 나는 털썩 카페 의자에 앉아 문명과 휴식의 냄새를 음미하고 있었다. 기사님은 어째 안절부절 마음이 편치 않아 보였다. 황급히 크로와상을 입에 밀어넣고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첫째, 주차된 차가 주차단속에 걸리면 안 되고 둘째, 이런 카페가 난생 처음이시라는 거다. “이런 데 처음 와봤어요”라며 머리를 긁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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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사님의 공간은 24시간 365일 화물차다. 차 안에서 일을 하고 (쪽)잠도 자고 (불규칙하게) 밥을 먹고 아침 해를 보고 저녁 노을 보고 새벽 찬 공기를 마신다. 그래서 그 공간 안엔 모든 게 다 있다. 침낭 베개 겉옷 속옷 여름옷 겨울옷 냉장고 가스버너 햇반 젓가락 숟가락 칫솔 치약 혈당 측정기 인슐린 주사 노래방 마이크 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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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사님은 그 공간을 자랑스러워하신다. 자신의 공간을 상기된 표정으로 하나하나 소개해주실 때 나는 알아차렸다. 기사님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있으시구나. 운전대를 잡고 물건들을 상차지에서 하차지로 허브 터미널에서 서브 터미널로 옮기며 필요한 이들에게 가닿게끔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노동이 기여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구나. 내가 매일 받는 택배, 어떤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재료, 나라 경제를 돌아가게끔 하는 물류의 중심에 바로 이런 ‘사람’들이 계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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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과 차를 타고 여기저기 도로를 다니며 처음으로 ‘물류(物流)’라는 말의 뜻이 제대로 이해되었다. 흐르는 느낌, 그래서 피가 흐르듯 우리 산업이 흐르고 경제가 흐르고 우리 삶이 흐르는 느낌. 그 흐름의 사이사이에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이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흐르지 못한다는 걸 우린 왜 모르고 혹은 외면하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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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화물연대의 파업을 ‘집단 이기주의적 행동’으로 규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물류는 흘러야 물류다.” 윤석열 대통령은 “시멘트, 철강 등 물류가 중단돼서 전국의 건설과 생산 현장이 멈췄고, 우리 산업 기반이 초토화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화물연대 파업을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으로 표현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 책임자 중 한 사람인 이상민 장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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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다. 물류는 흘러야 물류다. 그런데 그거 아시는지? 그 물류는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듯이 그냥 중력 같은 우주의 힘으로 흐르는 게 아니다. 무슨 만유인력 법칙이 있듯이 만물흐름의 법칙이 있어서 공짜로 저절로 스스로 자연스럽게 물건이 여기서 저기로 운송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거기에는 사람의 힘이 들어간다. 사람의 힘과 땀, 또 피가 들어간다. 물류는 사람이 흘려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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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생계로 업으로 자부심을 갖고 혹은 두려움을 갖고 24시간 365일 운전대를 잡고 물류를 몸소 만들어내는 화물차 기사들이 세상에다 대고 말하고 있는 거다. 지금 내 일이 정상이 아니라고. 이대로 일하다간 내가 내 차가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고. 너무 무섭다고. 그래서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고. 안전하게 일해서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다 같이 살고 싶다고.
그걸 듣지 않고 깔아뭉개는 게 집단 이기주의적 행동이고 국민의 일상생활을 해치는 위협이고 사회적 재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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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다소 흥분해서 말이 길어졌다. 기사 쓸 때보다 쓰고 나서 더 화가 나고 흥분한 적은 또 처음이다.
내가 참여한 작업이라서가 아니라, 화물연대 파업의 ‘표피’ 이상을 좀 더 많은 사람이 알 필요가 있어서 다시 또 홍보한다. 처음에는 내 기사 알리고 싶어서 공유했는데 이번에는 화가 나서 공유한다.
>>>>>https://truck.sisain.co.kr/<<<<< 화물차를 쉬게 하라 인터랙티브 페이지
*위 웹페이지는 전체 기사의 1/10 분량이다. 전체 기사 일독도 감히 권해 드린다.
1. 화물차가 달린다, 멈출 수 없어서
https://www.sisain.co.kr/48964
2. 요일도 밤낮도 없는 화물차 기사의 24시간 365일 노동
https://www.sisain.co.kr/48966
3. ‘도로 위의 흉기’는 누가 만들어내나
https://www.sisain.co.kr/49010
4. 화물차 안전 해법이 있다 ‘비용’ 치를 준비는 없다
https://www.sisain.co.kr/49011
1. 화물차가 달린다, 멈출 수 없어서
https://www.sisain.co.kr/48964
화물차가 달린다, 멈출 수 없어서 [DTG 데이터 탐사보도①]
화물차 등 사업용 차량은 교통안전법에 따라 DTG(Digital TachoGraph, 디지털 운행기록장치)를 장착해야 한다. 트럭이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달리고 멈췄는지, 화물차 운전자가 거쳐간 시간·공간·속도가 이 데이터에 모두 담겨 있다. 〈시사IN〉은 3만7892대 DTG 샘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화물차 운전자들의 노동시간과 공간을 분석해 탐사보도한다.글 변진경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다른기사 보기입력 2022.11.23 07:41
호수 792
화물차 기사 김원식씨는 상·하차 대기시간을 포함하면 하루 23시간 이상을 차 안에서 보낸다. ⓒ시사IN 이명익“어디세요? 얼마나 걸리세요?” 벌써 열 번째 걸려오는 재촉 전화였다. “호법, 호법이요. 금방 가요.” 10월18일 새벽 0시10분, 화물차는 다음 상차지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인 경기도 광주시 서브(SUB)터미널까지 남은 시간은 약 20분. 그곳에서 간선 상차를 기다리는 물류센터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님 빨리 좀 올 수 없어요? 다들 기다리잖아요.” 화물차 기사 김원식씨(60)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스피커폰에 대고 말했다. “최대한 빨리 갈게요. 뒤도 안 돌아보고 갈게요.” 속도 계기판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짜증과 원망이 담긴 재촉 전화를 10여 차례 받고 끊는 중간중간 김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봐요, 이러니 사고가 안 나겠어요? 이러니까 밟게 되는 거예요. 신호고 뭐고 다 까고요. 사고 나면 책임은 내가 독박 쓰고요.” 과속방지턱을 넘는 25t 트럭의 충격음이 ‘덜컹’ 한밤중 도로 위에 울려 퍼졌다.
일정이 늦어진 건 김씨 탓이 아니다. 김씨가 이날 화물차에 시동을 걸고 일을 시작한 시각은 12시간 전인 10월17일 정오께. 운송 주선업체(화주의 일감을 받아 일정한 수수료를 떼고 화물차 기사들에게 연결해주는 업체)에서 배차 일정을 하나둘 띄우기 시작했다. 김씨의 첫 운행 일정은 경기도 이천시 한 물류센터에서 짐을 실어(상차) 30분 거리의 허브터미널에서 짐을 내리는(하차) 것이다. 그 뒤 경기도 광주에서 군포, 군포에서 충북 옥천을 오가며 화물 상·하차를 완료해야 한다. 두 일정 각각 오후 4시, 오후 10시30분까지 와달라는 요청이 떨어졌다. 김씨는 낮 12시40분에 일찌감치 군포물류복합단지 주차장에서 차를 빼, 오후 2시부터 첫 상차지에서 대기를 시작했다.
함께 볼 기사요일도 밤낮도 없는 24시간 365일의 노동
오후 4시, 약속한 시간이 되었지만 상차는 시작되지 않았다. 김씨는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온 것 말고는 자리를 비우지 않고 차 안에서 계속 대기해야 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상차 작업 아르바이트생들도 주차장 여기저기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인터넷쇼핑이나 홈쇼핑에서 익일 배송을 약속한 상품들이 컨베이어벨트를 다 돌고 박스에 포장되어 나오길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6시15분, 드디어 짐칸에 택배 상자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김씨는 백미러나 후방카메라 모니터를 살피며 작업 속도를 가늠했다. 주차장 너머 해가 서산으로 지고, 차량 내 DMB 화면에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 〈6시 내고향〉 〈우리말 겨루기〉 〈내 눈에 콩깍지〉가 차례차례 흘러갔다. 9시 뉴스 여덟 꼭지가 지나가고 나서야, 상차 작업자 한 명이 운전석 유리창을 두드렸다. “이제 차 빼도 돼요.”
김씨는 짐을 싣고 45분 남짓 달려 하차지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또 ‘하차 대기’가 시작됐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다음 상차 터미널 직원과 주선업체 직원들에게서 번갈아 재촉 전화가 왔다. “아직 출발 안 했다고? 10시30분까지 오라고 했잖아요!” “아니 여기 하차가 다 안 끝났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이에요?” 실랑이가 오가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겨우 하차가 끝나고 다음 상차지로 출발한 시각은 밤 12시께. 상·하차 대기에 쓴 시간만 약 9시간이다. 이제 겨우 ‘한 탕(건)’을 끝냈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일이 이튿날 오전까지 아직 네 건이나 더 남았다. 24시간 동안 경기도 군포에서 이천으로, 이천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군포로, 군포에서 충북 옥천으로, 옥천에서 화성으로, 화성에서 군포로, 군포에서 수원으로, 수원에서 다시 군포로 오가며 짐을 싣고 내리고 샤시(트레일러에서 컨테이너를 적재하는 후미 부분)를 연결하고 끊기를 반복해야 한다. 보통 낮 1시에 시작한 운행은 이튿날 정오가 넘어서야 한 바퀴를 끝낸다. 그리고 2~3시간 뒤 다시 그다음 날의 한 바퀴가 시작된다. 김씨의 하루 총 평균 주행거리는 300~400㎞로 그리 긴 편은 아니지만, 상·하차 대기시간을 포함하면 하루 (화장실 오가는 시간 정도를 뺀) 23시간 이상을 차 안에서 보낸다.

김씨는 매일을 이렇게 산다. 그의 최근 한 달 운행과 정차 기록을 하나의 원 안에 나타냈을 때, 원 모양은 울퉁불퉁 불규칙하고 위태롭다(위 〈그림1〉, 자세한 설명은 '요일도 밤낮도 없는 24시간 365일의 노동' 기사 참조). 제대로 수면을 취한 것은 일주일에 한 번꼴이다. 보통 토요일 오후에 집에 들어가 일요일 오후에 나온다. 평일엔 차에서 쪽잠을 자는데 2시간 반 이상 잠든 기억이 없다. “한마디로 토끼예요, 토끼.”
그를 쫓는 것은 시간이다. 화물차 기사 스스로 예측하고 재단할 수 없는 ‘화물’의 타임라인이다. 화주와 주선업체의 사정, 도로 상황과 상·하차 대기시간, 물동량의 많고 적음과 물류 경기의 오르내림을, 화물차 바퀴를 굴려 맞춰야 한다. 그 불확실성 속에서 김씨가 바꿀 수 있는 건 차량 주행속도뿐이다. 때로는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 쉬는 시간을 포기한다. 화물 차량의 과속, 기사들의 과로와 졸음운전이 바로 이런 구조에서 발생한다.

차량 시동 끄고 눈 붙인 건 하루 1시간뿐
김씨는 35년 넘게 화물운송에 종사해왔다. 20대 때 오토바이 가스 배달이 처음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제과회사 트럭을 몰고 경기장 선수단들에게 간식을 배달했다. 레미콘 트럭을 15년, 덤프 트레일러를 10년간 몰았다. 덤프 트레일러를 몰던 때는 사흘을 내리 쉬지 않고 달리기도 했다. 사람이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양쪽 귀 뒤에서 진물이 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는 택배 간선 25t 트레일러(추레라)를 몰고 있다. 주로 주선업체를 통해 대기업 택배회사의 일감을 받아 수도권과 충청 지역을 누빈다. 여기저기 허브·서브 터미널을 오가며 택배 물량들을 대량으로 옮겨주면 그것들을 1~4t 지선 택배차들이 나눠 담고 가정과 사업장에 배송해준다. 택배가 언제 오나 궁금해 ‘배송 조회’를 눌렀을 때 자주 목격하는 각종 터미널·물류센터 명칭들이 바로 그의 트럭이 오가는 출발지와 목적지다.
10월17일 밤 10시께, 김씨는 ‘하차 대기’ 중에 제대로 된 첫 식사를 준비했다. 화물차 내부에 설치된 냉동고에서 꽁꽁 언 밥 덩어리를 꺼내 가스버너 불 위에 올렸다. 물을 조금 붓고 끓이면 그럭저럭 따뜻한 식사가 완성된다. 그의 트럭은 그의 생계 수단이자 부엌이자 식당이자 침실이다. 햇반 한 상자, 컵라면, 숟가락, 젓가락, 칫솔·치약, 겨울옷과 여름옷, 침낭, 에프킬라 따위가 어지러이 뒤섞여 있었다.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자는”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당뇨가 생겼다. 차 한구석에는 혈당 측정기와 인슐린 주사기도 놓여 있다. 김씨는 상·하차를 기다리는 화물차 안에서 하루 두 번씩 배에 인슐린 주삿바늘을 꽂는다.
김씨가 차량 시동을 끄고 눈을 붙인 건 〈시사IN〉 기자가 동행한 24시간 가운데 단 1시간 정도뿐이었다. 10월18일 새벽 3시경, 경기도 군포에서 연결한 샤시를 끌고 충북 옥천 허브터미널로 향하던 중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천안호두휴게소에 들러 잠시 쪽잠을 잤다. 그나마 휴게소에 주차할 자리가 있어 다행이었다. 야간 운행 시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잠이 쏟아질 때 휴게소나 졸음쉼터를 찾아도 주차할 공간이 없어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땐 위험하지만 고속도로 갓길이나 국도변에 차를 세워놓고 눈을 붙이기도 한다.
김씨는 알람도 없이 1시간 뒤 일어났다. 다시 눈을 비비며 운전대를 잡았다. 수시로 창문을 내려 찬바람을 들이켜고 가을 날씨에도 에어컨을 켜서 잠을 쫓았다. 김씨도 이렇게 졸음이 쏟아질 때면 겁이 난다. “이러다가 사고 나는 거죠….”
종종 동료 화물차 기사의 부고를 듣는다. 몇 달 전엔 같은 25t 트레일러를 모는 동료 기사 한 명이 탱크로리 유조차 뒤를 받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앞서가던 탱크로리 기사가 주행 중 갑자기 뇌경색이 와서 도로 위에 멈췄는데 그걸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추돌했다고 들었다. 예전 덤프트럭을 몰 때 친해진 한 동료는 졸음운전 끝에 앞선 화물차에 실린 H빔이 운전석 앞을 뚫고 들어와 세상을 떠났다. 화물차 운전자 서로가 서로를 위협하는 형국이다.
“돈은 벌어야 하고, 일 한 탕이라도 더 하려고 기를 쓰다가 죽는 거지”라고 안타까워하면서도 김씨 역시 쉬지 않고 일한다. 규칙적인 수면 없이 시간을 쪼개며 도로 위에서 ‘월화수목금금금’을 보내다 보면 날짜 감각이 흐트러질 때가 많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와서 차가 휘청거리는 날도 화물차를 몰았다. 이런 극한 과로는 김씨뿐 아니라 화물차 기사 전반이 겪고 있는 문제다. 그리고 이는 화물운송 노동자뿐 아니라 시민 모두의 안전과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왜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할까? 하루 운송 건수를 좀 줄이면 안 될까? 김씨는 “운반비가 안 맞으니 일을 더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먹고살 만큼 돈을 주면서 쉬라고 해야 쉬는 거지, 누군 안 쉬고 싶어서 안 쉬겠어요?”
김원식씨가 10월18일 새벽 천안호두휴게소에 들러 잠시 쪽잠을 잤다.ⓒ시사IN 이명익‘벌칙 게임’ 같은 화물차 기사들의 노동
들어오고 나가는 돈을 따져보자. 10월17일, 9시간 상·하차 대기를 포함해 낮 2시부터 밤 12시까지 경기 군포-이천-광주를 오가며 짐을 옮기고 나서 김씨가 받은 운임료는 17만원이다. 경기 군포에서 충북 옥천을 오간 두 번째 일감은 거리가 좀 돼서 21만원이지만 그중 절반이 기름값으로 나간다. 어떨 땐 옥천이나 대전까지 갔다가 수원·군포까지 ‘빈 통’으로 오기도 한다. 그럴 경우는 계산해보면 남는 돈이 6만원 남짓이다. 단순 시급으로만 계산해봐도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다.
‘이거 벌려고 이 고생을 하나’ 싶어 일을 조금 쉬거나 줄일라치면 바로 생계가 위태로워진다. “나가는 돈은 똑같은데, 들어오는 돈은 쉬는 만큼 탁탁 깎이기 때문”이다. 트럭 할부금이 한 달에 314만원씩 나간다. 할부가 두 달 밀리면 바로 신용불량자가 된다. 여기에 지입료, 보험료, 유류비, 수리비, 통행료 등 한 달 매출의 70% 이상이 꼬박꼬박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물가가 오르면서 지출액은 함께 늘어나는데 화주가 책정하는 운임료는 제자리걸음이다. 주선업체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정확히 얼마인지도 알 수 없다.
오래 일했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운 좋게 ‘알짜 일감(짧은 거리를 오가며 한 번에 두 건씩 상·하차가 가능한 일)’을 배차받기만 바랄 수밖에 없다. 먼 거리를 이동해 빈 차로 돌아와야 하는 ‘개털 일감’이 안 걸리길 기도할 뿐이다. 기사들 간 서로 좋은 일감을 따내려고, 먼저 상·하차 순서를 배정받으려고 눈치 보고 이간질하며 갈등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언제 일감이 부족해질지 모르니 일단 배차를 받으면 받는 대로 앞뒤 재지 않고 운행을 한다. 그러다 보면 한 달 내내 24시간 내내 화물차 안에서 ‘쪼개기’ 수면으로 버티며 일을 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한 물류센터 인근 도로에서 컨테이너 화물칸을 연결 중인 김원식씨. ⓒ시사IN 이명익김씨 같은 화물차 기사들의 노동은 마치 벌칙 게임과도 같다. 빡빡하게 제한된 시간과 공간의 범위 속에서 조금이라도 이탈되면 바로 벌을 받는다. 10월18일 오전 10시, 밤을 새우고 도착한 네 번째 하차지 인근에서 김씨는 안절부절못하고 주위를 살피며 운전석에 탔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물류센터 주차장이 꽉 차 인근 국도변에서 하차 대기를 하던 중이었다. 주정차 단속 차량이 김씨 차를 비롯한 화물차 사이를 지나다녔다.
김씨는 주차 단속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트럭을 급히 여기저기로 옮기다가, 단속 차가 길가 한 컨테이너 샤시 쪽으로 향하는 걸 보고 허겁지겁 자신의 ‘꽁지(차량 후미)’를 끊어내고 그 샤시를 연결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같은 주선업체에 등록된 동료 몇몇과 공유하는 컨테이너 샤시다. 주차 공간이 없어 할 수 없이 밖에 대놓았지만 주차 단속에 걸려도 화주나 주선업체는 아무 책임을 안 진다. 기사들이 모든 범칙금을 부담해야 한다. “이렇게 딱지 몇 번 떼이면 오늘 일한 거 다 개털 돼요.” 벌칙을 피하려면 쉬지 않고 부단히 화물차를 움직일 수밖에 없다.
4시간 뒤, 김씨는 전날 첫 출발지인 군포복합물류센터에 차를 댔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일의 한 주기는 끝냈다. 다시 김씨 스마트폰의 배차 앱에 다음 일감들이 뜨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잠시 쪽잠을 잔 뒤 다시 운행은 반복될 것이다. “일을 해도 손해이지만 안 하면 더 손해”인 이 기기묘묘한 쳇바퀴 안에서, 화물차 기사들은 자신과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잡은 채, 일단은 멈추지 못하고 달리고 있다.
* 시사IN x VWL 특별기획 화물차를 쉬게 하라 - DTG 데이터로 본 365일 24시간의 노동: https://truc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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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일도 밤낮도 없는 화물차 기사의 24시간 365일 노동
https://www.sisain.co.kr/48966
요일도 밤낮도 없는 화물차 기사의 24시간 365일 노동 [DTG 데이터 탐사보도②]
화물차 등 사업용 차량은 교통안전법에 따라 DTG(Digital TachoGraph, 디지털 운행기록장치)를 장착해야 한다. 트럭이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달리고 멈췄는지, 화물차 운전자가 거쳐간 시간·공간·속도가 이 데이터에 모두 담겨 있다. 〈시사IN〉은 3만7892대 DTG 샘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화물차 운전자들의 노동시간과 공간을 분석해 탐사보도한다.글 변진경·전혜원 기자 / 그래픽 VWL다른기사 보기입력 2022.11.24 07:39
호수 792
영동고속도로 한 구간에 설치된 졸음운전 경고 플래카드 아래로 화물차가 달리고 있다. ⓒ시사IN 이명익상상해보라. 당신이 만약 밤 10시쯤 퇴근해 다음 날 새벽 6시에 다시 출근한다면. 이 정도 연속휴식조차 취할 수 있는 날이 일주일에 한 번이라면, 혹은 한 달에 한 번이라면, 혹은 한 번도 없다면. 만약 일터에서 살다시피 한다면. 2~3시간 쪽잠을 자다가 일하기를 반복한다면, 거기에다가 낮밤마저 바뀌어 일한다면. 언제 쉬고 언제 일할지 직전에야 알 수 있다면. 항시 대기 상태로 일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면.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1년 365일 모든 날이 그렇다면.
그리고 그 일이 만약 운전이라면. 무거운 짐을 싣고 도로를 달리는 화물차 운행이라면. 트럭의 무게가 적게는 1t, 많게는 30t에 이른다면. 약속된 일정에 맞추기 위해 늘 시간에 쫓긴다면. 일정을 못 맞추면 다음번에 일감을 받지 못한다면. 그래서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않고 다른 차와 보행자 사이를 달리고 또 달려야 하는 일이라면. 당신은 당신과 타인의 안전을 해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여기,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그것이 한국 사회의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상상해볼 수 있는 밑감이 있다. 바로 화물차의 DTG(Digital TachoGraph, 디지털 운행기록장치) 데이터다. 트럭이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달리고 멈췄는지, 화물차 운전자가 거쳐간 시간·공간·속도가 이 데이터에 모두 담겨 있다.
함께 볼 기사화물차가 달린다, 멈출 수 없어서
이 원그래프들은 각각 화물차 한 대의 한 달 치 DTG(디지털 운행기록장치) 기록을 시각화한 이미지들이다. 노란색과 빨간색은 주행시간, 검은색과 회색은 휴식 혹은 정차 시간이다. 동그라미 하나가 화물차 운전자 한 사람의 한 달 시간표라고도 볼 수 있다.데이터 자료:한국교통안전공단 / 데이터 분석 및 시각화:VWL교통안전법 제55조에 따라 화물차 등 사업용 차량은 DTG를 장착해야 한다. 수집된 운행기록 자료는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한국교통안전공단에 제출하게 되어 있다. 교통정책을 연구하는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데이터 분석·시각화 전문가인 김승범 VWL 소장은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화물차 5만9296대의 한 달 치(2022년 4월) DTG 데이터를 제공받았다. 이 가운데 데이터 검수를 거친 3만7892대 DTG 샘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화물차 운전자들의 노동시간과 공간을 분석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간하는 〈물류브리프〉 11월호에 실린 연구 보고서 ‘화물차 운전시간 총량 제한이 필요한 이유’에 그 전반적 내용이 실렸다.
〈시사IN〉은 그 내용을 바탕으로 화물차 개별 상세 데이터를 추가로 살폈다. 더불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협조를 얻어 지난 10월13일부터 11월1일까지 화물차 기사 2만5000여 명에게 운행 형태와 휴식, 수면 시간 등에 관한 온라인 설문을 돌렸다. 화물차 기사 총 1433명이 답변을 남겼다. DTG 분석과 설문조사 응답으로 확인한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노동 형태는 화물차 기사들의 휴식, 수면, 건강, 그리고 모두의 안전을 심각히 위협하고 있었다.
‘2시간 운전 후 15분 휴식’ 법은 있지만
과로 운전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도로교통법 제45조는 자동차 운전자가 음주 외 과로, 질병, 약물 등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놓았다. 특히 큰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화물차 운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과로 방지 규정이 존재한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제21조 제23항은 화물차 운전자의 최소 휴게 시간을 명시해놓았다. ‘2시간 연속운전 후 15분 이상’이다. 애초 ‘4시간 연속운전 후 30분 이상’이었다가 지난해 3월 규정이 강화되었다. 이처럼 화물차 운전자의 과로 여부는 개인 사정이 아닌, 사회적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위에 나타낸 원그래프는 각각 화물차 한 대의 한 달 치 DTG 기록을 시각화한 이미지다. 대부분이 지입(화물 차주가 운수회사에 개인 소유 차량을 등록해 일감을 받고 보수를 지급받는 제도) 형태로 운행되는 화물운송 시장 구조를 고려할 때, 동그라미 하나가 화물차 운전자 한 사람의 한 달 시간표라고도 볼 수 있다. 2022년 4월1일부터 4월30일까지 30일간 화물차(기사)의 주행과 휴식을 서로 다른 색으로 구분했다. 노란색과 빨간색은 주행시간, 검은색과 회색은 휴식 혹은 정차 시간이다.
노란색은 2시간 이하 주행, 빨간색은 2시간 초과 연속주행이다. 무채색 중 회색은 15분 이상 8시간 미만 정차(휴식)를 뜻한다. 휴식시간이 짧을수록 그래프에서의 튀어나온 정도도 짧아지도록 표현했다. 연속정차(연속휴식) 시간이 8시간을 넘는 경우 검은색으로 나타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일반 성인의 적정 수면 시간은 7~9시간이다. 그 중간값인 8시간을 ‘충분한 연속휴식’의 기준으로 두었다. 적어도 8시간 정차(휴식) 없이 이틀 이상 주행 기록이 이어진다면 그 화물차의 운전자는 사실상 퇴근 없이 일하는 ‘초(超)과로’ 노동자일 확률이 높다.
‘화물차 주행=화물 운전자의 노동’ ‘화물차 정차=화물 운전자의 휴식’으로 간주했지만 사실 완벽히 정확한 구분은 아니다. 앞선 동승 르포 기사(화물차가 달린다, 멈출 수 없어서)에서 보았듯, 차가 멈춰 있다고 기사들이 꼭 쉬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의 ‘2021 화물운송시장 동향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화물차 운전자의 상·하차 대기시간 등 운전 외 업무시간은 지난해 기준 평균 4.5시간이었다. 그래프에 보이는 주행시간(노란색과 빨간색)은 실제 노동시간 중 일부일 확률이 높다.
이런 전제를 염두에 두고 시간표들을 다시 보자. 법대로라면, 모든 운전자의 시간표에 빨간색이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정상적인 노동이라면, 빨간색과 노란색이 전체 동그라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수준 이하에 머물러야 한다. 정상적인 삶이라면, 무채색 영역이 어느 정도는 주기적으로 두껍게 반복되어야 한다. 동그라미로 나타낸 운전자들의 시간표가 만약 트럭 타이어라고 상상해본다면, 검은색과 회색 부분이 어느 정도는 규칙적이고 충분하게 분포돼 있어야, 타이어가 터지지 않고 안전하게 굴러갈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림 1〉의 운전자 A씨와 같은 패턴이다. 이 운전자는 서울과 경기도 북부를 하루 평균 4.8시간, 167.6㎞ 주행했다. 일주일 동안 일요일(3·10·17·24일) 한 번씩은 운행을 쉬었다(검은색). 매일 8시간 이상 휴식을 취했다. 운행과 운행 사이에 15분 이상의 규칙적인 휴게시간이 관찰된다. 장시간 연속주행을 나타내는 빨간색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탄탄하게 굴러갈 수 있는 바퀴 모양이다.

하지만 화물차 3만7892대 DTG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이런 정상 패턴에서 벗어난 ‘과로’ 혹은 ‘초과로’ 운전자의 시간표를 수두룩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상진 교수는 〈물류브리프〉 연구 보고서에서 전체 DTG 샘플 가운데 운전시간이 긴 상위 5% 운전자들을 추려보았다. 이들은 월 240.4시간, 주당 60.1시간, 하루 8시간 운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평균 운전 외 업무시간(주로 상·하차 대기시간)인 4.5시간을 더하면 노동시간은 하루 12.5시간으로 늘어난다. 이런 과로 운전자들은 전체 데이터 샘플의 3.4%에 해당했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2021년 전국에 등록된 사업용 화물차는 43만8331대이다. 3.4%를 이 규모에 대입해보면, 화물차 약 1만5000대가 제대로 쉬지 못한 과로 운전자에 의해 도로 위를 굴러가고 있다.
운전자 54.5% “하루 12시간 이상 운전”
대표적인 과로 유형 몇 가지를 살펴보자. 〈그림 2〉는 화물차 운전자 B씨의 한 달 시간표와 운행 동선이다. 하루 평균 10.9시간, 806.8㎞를 달렸다. B씨의 한 달 시간표에는 8시간 이상 정차 시간을 뜻하는 검은색 부분이 겨우 여덟 번 불규칙하고 가늘게 나타나 있다. 정차하자마자 잠든다고 가정해도 B씨는 적정 수면을 취한 날이 한 달 중 최대 여덟 번에 그친다. 게다가 30일간 단 하루도 운전을 하지 않은 날이 없다. ‘무휴무’ 노동자다. 2시간 초과 연속주행 비율도 높다. B씨는 이렇게 초(超)과로 상태로 한 달간 총 325시간 동안 2만4203㎞에 이르는 전국 도로 곳곳을 달렸다.

〈그림 3〉의 운전자 C씨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하루 평균 11.3시간 768.9㎞를 달리는 이 운전자의 시간표에도 검은색 막대가 겨우 일곱 번 등장한다. C씨 시간표의 검은색과 검은색 사이, 4월5~11일 상세 주행 기록을 살펴보았다. 4월5일 오전 6시께 주행을 시작한 C씨는 2~4시간 이상 연속운전과 정차를 반복하다가 닷새 뒤인 4월10일 오후 5시 이후 비로소 ‘퇴근’으로 볼 수 있는 기록(8시간 이상 연속정차)을 남겼다. 그사이 충북 단양, 경남 김해, 강원 동해, 경기 오산 등을 다닌 C씨는 아마 휴게소 등지에서 잠깐씩 쪽잠을 자며 차를 몰았을 것이다.

특수한 상황의 예외적 몇 사례일까? 화물차 기사 1433명 설문조사 결과(아래 그림 참조), 전체 응답자의 54.5%가 하루 운전시간이 12시간 이상이라고 답했다. 14시간 이상과 16시간 이상도 각각 27.2%와 9%나 된다. 하루 평균 운행 거리를 묻는 질문에도 응답자 31.4%가 600㎞ 이상, 8.7%가 800㎞ 이상이라고 답했다. 화물차 기사 10명 중 세 명은 매일 서울-광주(약 300㎞)를, 10명 중 한 명은 서울-부산(약 400㎞) 거리를 하루 두 번씩 왕복으로 운전하는 셈이다.

휴식과 휴일도 턱없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일터에서 주 5일제가 정착했지만 화물차 운전자들은 22.3%만이 ‘주 2일 휴무’라고 답했다. 62.2%는 주 1회 휴무, 7.5%는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답했다. 휴식의 양도 적지만 불규칙성도 문제다. “운송 오더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름(연령대 50대·차종 트레일러).” “업계 특성상 정해진 휴무 날도 집에서 대기하며 쉬는 것도 전날 5~6시에 알기 때문에 여가생활을 하기가 힘들다(40대·덤프 16t).” “언제 쉴지 모름. 시키는 대로(60대·유조차 24t).” 화물차 기사 67.7%는 자신의 휴식시간과 주기에 대해 ‘부족하고 불규칙하다’고 느끼고 있다. ‘충분하고 규칙적’이라 느끼는 이들은 2.7%에 불과했다.
총 노동시간과 주행거리가 비교적 짧아도 문제는 남는다. 〈그림 4〉는 하루 평균 8.6시간, 511.5㎞를 운전하는 운전자 D씨의 한 달 시간표다. 운전자 B씨와 C씨에 비하면 노동강도가 양호해 보인다. 하지만 한 번 차를 몰기 시작하면 2시간 넘게 멈추지 않는 연속운행 빈도는 B·C씨 못지않게 잦다. D씨가 가장 길게 거의 쉬지 않고 운전한 시간은 4월5일 오전 5시43분부터 오후 4시41분까지다. 무려 11시간을 15분 이상 정차 없이 내내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를 오갔다.

‘2시간 운전 후 15분 이상 휴식’이 현실에서 불가능함은 화물차 기사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전체 응답자의 6%만이 그 규정을 ‘항상 지킨다’고 답했다. ‘자주 지킨다’는 20.6%, ‘거의 못 지킨다’와 ‘전혀 못 지킨다’는 각각 51.8%와 19.1%다. 평균 연속운행 시간을 물어보았을 때도 21.5%만이 ‘2시간 미만’이라 답했다. 77.4%가 ‘2시간 이상’, 17.5%가 ‘4시간 이상’이라 답했다. 한 번 달릴 때 6시간 이상 쭉 달린다는 응답자도 3.9% 나타났다.

“브레이크가 안 듣는 꿈을 꾼다”
왜 쉬지 못할까? 화물차 기사 대다수가 ‘낮은 운임’과 ‘시간 압박’을 거론했다. “적정운임이 보장되지 않고 지정한 시간 안에 탕 수(운송 건수)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30대·윙바디 25t).” “대기시간이 길어져서 상차하고 저녁도 대충 때우고 풀로 달려도 새벽에 도착(50대·카고 25t).”
차를 댈 장소가 없어 못 쉬는 경우도 많다. “길이 밀려 도저히 쉴 곳이 마땅치 않다(40대·트랙터 25t).” “휴게소 부족. 새벽에 잘 공간 없는데 태양광 시설이 잔뜩(40대·트레일러 25t).” 최근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태양광 패널 지붕이 많이 설치되고 있는데, 그런 곳에는 차체가 높은 화물차가 아예 진입하지 못한다.
기사들 서로가 서로의 휴식을 빼앗기도 한다. “배차 순번을 뒤차에게 따이지 않으려고(20대·카고 25t).” “하차 순번 때문에 뒤차에 추월당하지 않으려고(30대·25t 카고).” 혹은 제대로 된 휴식이 절실해서 휴식을 포기하는 역설이 발생하기도 한다. “잠잘 시간을 벌어야 해서 운행 중간에 쉬지 않는다(50대·트랙터 8.5t).” “휴게 시간을 지키려면 수면 시간이 부족하므로 지키기가 너무 어렵다(60대·탱크로리 2.24t).”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일반적인 삶도 화물차 기사들에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림 5〉의 운전자 E씨의 한 달 시간표는 일견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한 달 중 휴무가 이틀뿐이고 가끔 장시간 연속주행도 관찰되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8시간 이상 연속정차(휴식)를 하고 있다.

다만 밤낮이 거꾸로다. 주행 기록을 살펴보면, E씨는 매일 오후 5시경 출근해 새벽 5시경 퇴근하는 걸로 추정된다. DTG 분석 결과 이런 심야 운행 노동자가 적지 않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심야노동은 자율신경계통의 리듬을 깨지게 만들어 과로사, 심혈관 질환 등의 위험을 크게 높인다”라고 말했다. 생체리듬이 깨지면 잘 시간이 주어져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지난해 한국안전운임연구단이 대한수면의학회의 불면증 자가진단표를 활용해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수면장애(불면증) 수준을 측정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96.6%가 수면장애 증세를 보였다. 38.7%는 중증도 이상의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
“불면증. 브레이크가 안 듣는 꿈을 꿉니다.” 하루 16시간 이상,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8t 트럭을 몰며 한 달 200만~300만원 순수익을 올린다는 40대 화물차 기사는 앓고 있는 질병을 물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일하는 시간 줄이고 여가생활 하는 게 꿈입니다” “안전하게 운행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 집에서 잘 수 있고 정말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사람답게 사는 거요”…. ‘바라는 점’을 물었을 때 화물차 기사들이 적어낸 문장들이다.
과로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쉬는 게 싫은 사람도 없다. 그런데 무엇이 화물차 기사들을 멈추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이들의 고통과 걱정, 꿈과 소원은 화물차 기사 그들만의 사정일까? 화물차 기사들의 극한 과로로 인한 결과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로 향한다(〈시사IN〉 제793호에 ‘못 쉬는 화물차, 시민 안전 위협한다’와 ‘화물차 과로,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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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로 위의 흉기’는 누가 만들어내나
https://www.sisain.co.kr/49010
‘도로 위의 흉기’ 책임 외면한, 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DTG 데이터 탐사보도③]
화물차 등 사업용 차량은 교통안전법에 따라 DTG(Digital TachoGraph, 디지털 운행기록장치)를 장착해야 한다. 트럭이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달리고 멈췄는지, 화물차 운전자가 거쳐간 시간·공간·속도가 이 데이터에 모두 담겨 있다. 〈시사IN〉은 3만7892대 DTG 샘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화물차 운전자들의 노동시간과 공간을 분석해 탐사보도한다.변진경 기자다른기사 보기입력 2022.11.30 06:39
호수 793
11월7일 중부고속도로에서 한 대형 화물차 사고 차량이 견인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지난 11월1일 경남 하동군 국도 직전터널 출구에서 승용차와 25t 화물차가 정면충돌해 승용차 운전자가 숨지고 화물차 운전자가 다쳤다. 같은 날 남해고속도로 칠원분기점에서 화물차 3중 추돌사고가 발생해 1t 트럭 운전자가 죽고 25t 트럭 운전자가 다쳤다. 11월7일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상행선 괴산나들목 인근에서 화물차 3대와 승용차 1대가 연쇄 추돌해 25t 화물차 운전자가 숨지고 다른 차량 운전자 3명이 다쳤다. 같은 날 충북 옥천군 군북면 국도에서 25t 화물차가 도로 옆 경사지로 추락해 운전자가 사망했다. 같은 날 익산-장수고속도로 익산분기점에서 대형 트레일러 트럭이 급커브 길에서 넘어져 운전자가 사망했다.
2022년 11월 첫 주에만 일어난 화물차 사고들이다. 매일 눈 뜨고 일어나면 이런 소식들이 ‘어제의 사건사고’ 단신 뉴스 속에 담겨 세상에 전해진다. 화물차 사고는 흔하다. 그리고 치명적이다. 지난 10년간 일어난 화물차 교통사고를 지도 위에 나타냈다(아래 〈그림 1〉 참조).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총 29만9446건이 발생했다. 그중 6436건이 사망사고다. 1년에 643.6건, 하루 1.8건꼴이다. 올해 상반기 전국 고속도로에서의 사망 교통사고 64.8%가 화물차에 의해 일어났다.

화물차 사고는 왜 발생할까? 21t 윙바디 트럭을 몰며 수도권 일대에서 화물운송을 하는 허재혁씨(29)는 지난 9월 어느 날 오전, 경기도 화성시 한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앞차를 추돌했다. 허씨도 분명 빨간불 정지신호를 보았다.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과 달리, 허씨는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 앞차를 들이받았을 때에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졸음운전이었다. 전날 밤을 꼴딱 새운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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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는 하루 평균 16시간 이상 트럭 안에 머문다. “스스로를 혹사하지 않으면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 속에서 하루 3~5시간만 자며 600㎞ 이상을 주행한다. 허씨의 일은 ‘시간 엄수’가 가장 중요하다. 출발지에서 상차 지연이 있었든 없었든, 가는 길 도로가 막히든 아니든, 하차지에서 닦달하는 도착시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가끔 밤에 운전하다 보면 술 마신 것처럼 멍해진다. 형체의 실루엣만 보이거나,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이 갑자기 눈앞에 확 다가오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 멈추어 잠깐 눈이라도 붙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러면 시간을 못 맞추니까요. 시간을 못 맞추면 화주나 운수업체에서 페널티를 줘요. 찍히면 다음 배차에서 불이익을 받고요. 그러니 달릴 수밖에요.”
화물차 기사 94% “졸음운전 경험 있다”
허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사IN〉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협조를 얻어 지난 10월13일부터 11월1일까지 화물차 기사 2만5000여 명(1433명 응답)에게 운행 형태와 휴식, 사고 경험 등에 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다수 운전자들이 심각한 과로와 휴식 부족을 호소했다(〈시사IN〉 제792호 ‘요일도 밤낮도 없는 24시간 365일의 노동’ 기사 참조). 설문조사에서 ‘화물운송 중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 경험이 있는지’도 물었다. 94%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41%는 ‘자주 있다’고 답했다(〈그림 2〉 참조). 응답자의 68.8%는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과 집중력 저하로 교통사고를 낼 뻔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8.2%는 실제 사고로 이어진 적이 있었다(〈그림 3〉 참조).

위험천만한 줄 알면서도 졸음운전을 감행하는 이유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물량을 소화하지 않으면 차후에 배차(일)를 주지 않음. 그래서 졸음을 감수하고 해야 함(연령대 20대·차종 12t 트럭)” “신체적으로 극한임에도 납품 시간에 맞춰 일을 하다 보니 졸음운전에 노출되는 경우가 있지만 차 할부 및 생계를 위해 갈 수밖에 없어서 걱정이 큼(40대·26t 트레일러)” “적은 운송비 때문에 한두 탕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워 한 탕이라도 더 하기 위해 과로, 과속, 과적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50대·25t 탱크로리)” 등의 대답이 나왔다.
사고가 나면 화물차 기사들은 무엇을 잃게 될까? 14.5t 윙바디 트럭을 모는 화물차 기사 박종현씨(49)는 11월8일 현재 11주째 병원에 입원 중이다. “트럭 할부금을 충당하려면 밤낮 중 한 번만 일해선 답이 안 나와” 주야간 ‘투잡’을 뛰던 중 사고가 났다. 상대편 차량 운전자 역시 과로하던 화물차 기사였다. 8월27일 새벽 1시쯤 상차지에서 짐을 싣고 나오던 도중, 어둠 속 국도변에 후미등을 끈 채 세워둔 18t 트럭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았다. 그 트럭 운전자는 하차 순번을 기다리며 쪽잠을 자던 중이었다.
상대편 운전자는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박씨는 발과 다리를 크게 다쳤다. 찌그러진 차체에 몸이 끼인 채 119에 직접 구조 요청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 사진 속 발뒤꿈치 뼈가 으스러져 있었다. 의사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간 일에 복귀하기 힘들다고 했다. 몸도 상했지만 생계 수단도 잃었다. 2억원 넘게 주고 산 트럭 할부금을 매월 300만원씩 갚아가며 일하던 중이었다. 생계 수단이기도, 빚의 원천이기도 한 트럭에 4000만원 수리비 견적이 나왔다. 수리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1억원 넘게 손해를 보고 트럭을 팔았다. 10년 이상 트럭 운전만 해온 박씨는 앞으로 생계를 어떻게 꾸릴지 뾰족한 수가 없다.
화물차 운전자들은 늘 교통사고를 두려워하며 일한다. 설문조사 응답자 98.6%가 “운행 중 교통사고가 걱정된다”라고 답했다. 67.5%는 “매우 걱정된다”라고 답했다(〈그림 4〉 참조).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많은 경우 자신의 몸이 상하는 문제보다 생계 문제를 들었다. “일을 못하게 될 경우 먹고사는 문제가 막막해짐(30대·25t 트랙터)” “사고가 나면 당장 생활을 할 수가 없고 빚만 남는 상황. 힘들지만 일을 해야 할부를 넣을 수 있는데 사고가 나면 그 할부가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사고가 나면 먼저 가족을 생각해야 하는데 할부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40대·25t 카고).”

본의 아니게 대형 참사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도 크다. “나의 생명과 재산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어서 두렵다(40대·덤프 트레일러)” “내 실수로 사고 나서 죽는다면 나 혼자 죽고 싶지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20대·12t 트럭)” “내가 다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다치는 문제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다(40대·21t 윙바디)” “나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인생·가족 송두리째 바꾸는 큰 문제(40대·9.5t 윙바디)” “저는 위험물 운전자이기에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커서 항상 걱정된다(60대·17t 유조차)”.
한국 화물운송 노동시장의 독특한 구조
화물운송 노동시장은 사고가 나기 매우 쉬운 구조다. 화물차 기사 입장에서 안전 운행을 할 유인은 없고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할 동기는 차고 넘친다. 영업용 일반화물(5t 이상) 트럭의 92.5%는 지입제로 운행된다(2021년 화물운송 시장 동향 연간보고서). 해외 많은 국가에서는 화물차 운전자가 일반 회사원처럼 운송회사에 고용돼 노동법의 보호를 받으며 회사 소유의 트럭을 몬다. 한국은 대부분의 화물차주들이 개인이 소유한 화물 차량을 통해 화주와 개별 운송계약을 맺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여러 단계에서 ‘지입 넘버(영업 화물차 번호판)’ 판매나 일감 주선 등의 명목으로 수수료를 떼어가는 중간 운수업체가 많은 것도 다른 나라와의 차이점이다.
운전자들은 대부분 1억~2억원에 달하는 화물 차량과 영업용 번호판을 할부로 구매하면서 화물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매달 차 할부금과 지입료를 나눠 갚고 유류비·차량 유지비를 충당하면서 추가 수익까지 낼 만큼 운송 건수를 늘리지 않으면 바로 적자가 발생한다. 초기 매몰비용이 큰 화물차 기사들은 주로 대기업인 화주업체와 그 사이의 운수업체 앞에서 쉽게 ‘을’이 된다. 운송 단가를 후려치면 후려치는 대로, 도착시간을 무리하게 당기면 당기는 대로, 과적을 요구하면 요구하는 대로 ‘갑’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그만큼 수익이 깎인다. 안전 운행을 할수록 경제적으로 손해가 나는 구조다.
경기도 이천 영동고속도로에 붙어 있는 졸음운전 방지 문구. ⓒ시사IN 이명익26t 트레일러를 모는 신 아무개씨는 운행 중 트럭에 결함이 있다는 걸 발견해도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일단 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정비를 하다가 혹 시간이 지체돼 납품 일정을 맞추지 못해서 (화주·운수) 회사 측에서 불이익을 줄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5t 트럭 기사 이 아무개씨는 과적에 따른 사고 위험이 걱정되지만 종종 과적 운행을 피하지 못한다고 했다. “화주사나 운송사가 과적을 요구할 때가 많고 이를 거부하면 일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화물차 운전자는 고정 일감이 없는 일명 ‘탕바리’의 과속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거 먹을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딱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배차 콜이 뜨면 그 일감을 잡기 위해 서로 치킨게임 경쟁을 벌인다. 순번을 빨리 잡으려면 어떻게든 빨리 달려서 다른 차들을 제쳐야 한다. 이런 문제를 막을 제도가 하나도 없다.”
그러다 사고가 나면 오롯이 개인이 책임을 떠안는다. 생계의 중단, 본인의 신체적·정신적 피해, 타인에 대한 물질적·정신적 책임이 모두 ‘개인사업자’인 화물차 기사의 몫이다. 화주나 운수업체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발주한 작업에 의해 얼마나 많은 교통사고가 나든, 얼마나 많은 화물 기사가 과로사하든 신경 쓰거나 책임질 필요가 없다. 그러니 그것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개선할 동기도 유인도 없다. ‘도로 위 흉기’로 불리는 과로·과속·과적 화물차들은 이런 과정에서 생겨났다.
덜 일하고 더 쉬어야 안전해진다는 걸, 화물차 기사들 스스로 모르지 않는다(〈그림 5〉 참조). 무엇이 바뀌어야 그게 가능해질지도 당사자들이 잘 알고 있다. “안전운임제로 일정 수입이 보장되면 휴식시간이 늘어날 것이고 휴식시간이 늘어나면 건강과 안전은 따라올 것이다(40대·25t 카고)” “전 차종 화물 노동자를 노동법 테두리 안으로 넣어야(50대·25t 트럭)” “현재 대한민국 물류운송 시스템은 적은 운임으로 정해진 시간에 여러 횟수로 운송해 매출을 올리는 시스템이다. 기업이 영업이익을 창출하기에는 합리적인 시스템이지만, 그 속에서 사람 목숨이 좌지우지되고 있다. 근본적인 시스템이 바뀌어야 화물차 노동자와 도로 위를 같이 달리는 국민의 생명이 지켜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화물차 바퀴를 멈출 만한 힘이 없다.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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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물차 안전 해법이 있다 ‘비용’ 치를 준비는 없다
https://www.sisain.co.kr/49011
화물차 파업과 안전, 진짜 해법은 이것이다 [DTG 데이터 탐사보도④]
화물차 등 사업용 차량은 교통안전법에 따라 DTG(Digital TachoGraph, 디지털 운행기록장치)를 장착해야 한다. 트럭이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달리고 멈췄는지, 화물차 운전자가 거쳐간 시간·공간·속도가 이 데이터에 모두 담겨 있다. 〈시사IN〉은 3만7892대 DTG 샘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화물차 운전자들의 노동시간과 공간을 분석해 탐사보도한다.전혜원 기자다른기사 보기입력 2022.12.02 17:11
호수 793
한 화물차 운전자가 상차를 기다리며 컵라면을 먹고 있다. ⓒ시사IN 이명익2016년 7월 강원도 평창군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연쇄추돌 사고로 4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전세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이 원인으로 드러나면서 버스나 화물차 기사들의 긴 운전시간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2017년부터 “4시간 연속운전한 운수종사자에게 30분 이상의 휴게 시간을 보장”하도록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이 개정됐다. 지난해 3월부터는 ‘2시간 연속운전 시 15분 이상 휴게 시간 보장’으로 강화됐다. 하지만 〈시사IN〉이 화물차 기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해당 규정을 ‘못 지킨다’는 응답이 70%를 넘었고 ‘항상 지킨다’는 답변은 6%에 불과했다(〈시사IN〉 제792호 ‘요일도 밤낮도 없는 24시간 365일의 노동’ 기사 참조).
이미 2013년부터 전국의 화물차는 DTG(Digital TachoGraph)라고 불리는 디지털 운행기록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고 있었다. 화물차의 운전시간과 공간, 속도가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화물차 기사들이 현행 규정대로 2시간 연속운전 후 15분 이상 쉬고 있는지가 DTG를 통해 잘 관리되고 있을까? “제출하는 DTG에 대해서는 위반 확인이 가능한데, 제출이 의무화되어 있지는 않다.” 장구중 국토교통부 교통안전정책과장의 말이다. 무슨 뜻일까.
2016년 7월17일 영동고속도로에서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추돌해 4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강원경찰청 제공현재 DTG를 의무 장착한 차량들은 국토교통부나 지방정부가 DTG 제출을 요청하면 이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출을 요청하면’이다. 요청에 관계없이 주기적으로 DTG를 제출할 의무는 버스 같은 여객 운송사업자에겐 있지만 화물차에게는 없다. DTG를 단 전체 화물차 중에서 DTG를 제출한 비율은 2020년 기준 28%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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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화물차가 DTG를 제출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장구중 과장은 “DTG를 통해 휴게 시간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이 확인되더라도 그걸 가지고 운전자에게 과징금을 물리는 등의 처분을 할 수는 없다. ‘DTG 분석 결과를 이용해 운전자에게 어떠한 불리한 제재나 처벌을 해선 안 된다’고 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최소 휴게 시간을 준수하지 않으면 60만원에서 180만원의 과징금을 내게 되어 있지만, DTG 점검을 통해 개별 화물차의 휴게 시간을 규율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심지어 고장 난 DTG를 달고 다니는 화물차도 적지 않다고 한다. 중소기업 규모인 제조업체가 폐업을 해버려서 AS가 불가능한 경우 등이다.
초(超)장시간 불규칙 노동의 탄생
이쯤 되면 ‘애초에 DTG를 왜 달았나’라는 의문이 들 법도 하다. 사실 DTG는 화물운송 업계에서 꽤 민감한 이슈다. DTG 장착 의무화가 논의되던 2013년 당시, 화물차 기사들의 노동조합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는 이 제도에 반대했다. ‘DTG를 근거로 기사에게 불리한 처분을 하지 못한다’는 법 조항이 생긴 배경이다. 박연수 화물연대 정책기획실장이 말했다. “기사들 입장에서는 장치를 달아서 기술로 자신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노조로서 반대한 핵심 이유는, 정부 방침이 화물차 사고의 책임을 운전자 개개인의 습관으로 돌린다고 봤기 때문이다. 화물연대는 기사들이 왜 장시간 불규칙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 구조적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걸 하려면 결국 ‘운임’을 건드려야 한다.”
운임(運賃)이란 운송의 대가로 받는 돈이다. 화물운송 시장은 화주(화물의 주인), 차주(화물차의 주인), 그 사이에 있는 운수사업자(운수사)로 굴러간다. 화주가 운수사에 화물을 옮겨달라며 돈을 주면, 운수사가 개인 차주에게 그때그때 화물운송을 맡기며 돈을 준다. 여기서 차주가 바로 실제로 운전을 담당하는 기사들이다.
화물연대 소속의 한 대형 트럭에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사IN 이명익문제는 운임이 결정되는 방식이다. 철강회사 같은 화주가 인천에서 포항까지 철강을 실어달라고 저가 입찰을 붙인다. 최저가에서 조금 높은 정도의 운임(예컨대 70만원)을 제시한 운수사가 물량을 따내는 경우가 많다. 대형 운수사는 다시 2군, 3군이라 불리는 소형 운수사들에게 하청을 준다. 운수사를 여러 개 거칠수록 수수료가 빠져 운임은 줄어든다. 이러면 다단계 하청의 말단에 있는, 실제로 물건을 옮기는 화물차주가 가장 적은 돈을 받는데, 거리에 비례하는 운임이 아니라 차량 수요-공급량에 따른 운임을 받게 된다. 인천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대구(50만원)보다 포항(45만원)까지의 운임이 오히려 더 저렴해지기도 한다.
화물운송에는 비용이 든다. 만약 운임이 유류비나 차량 감가상각비 등 원가를 회수하기에도 모자란다면, 차주의 선택은 ‘더 많은 운송’일 수밖에 없다. 운임은 건당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에 최대한 많은 ‘탕수’를 뛰어야 수입이 늘어난다. 예전 화물차주는 원래 운수사에 고용된 정규직이었다.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규제완화 흐름을 타고 자기 소유의 화물차를 운수사에 등록하고 회사 이름으로 차를 운행하면서(이를 ‘지입제’라 한다) 월급이 아닌 건당 운임을 받는 개인사업자로 속속 전환됐다.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다. 최저임금도, 노동시간 제한도 적용받지 않는다.
바로 이런 조건으로부터 “일요일 밤에 시동을 걸어 일을 시작하면 그다음 주 토요일에 퇴근하고 중간중간 2~3시간 쪽잠을 자는” 초(超)장시간 불규칙 노동이 탄생한다. 차주들이 운수사를 통해 끊임없이 물량을 따내며 전국을 달리는 구조에서, 물량을 가진 화주는 거의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차주에게 비용을 전가한다. 25t 트레일러로 철강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주 심현호씨(37)는 “상·하차 대기시간이 3~4시간은 기본이고 7~8시간 걸리는 일도 비일비재하지만, 화주는 대기료를 지불하지 않는다. 앞선 화물의 상·하차가 아무리 늦어졌어도 그다음 화주는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지게차 등) 장비대를 우리에게 물어내라고 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차주들은 2002년 화물연대라는 이름의 노동조합을 만들고 2003년 대대적인 파업을 벌였다. 그때 요구한 게 ‘표준요율제’, 바로 지금의 안전운임제다. 2020년부터 시행된 안전운임제는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안전운임)’을 정하고 이보다 낮은 운임을 주면 과태료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국토교통부가 화물운송에 드는 원가(차량 감가상각비·유류비·인건비 등)를 1년마다 조사하면, 이 결과를 토대로 화주(3명)·운수사(3명)·화물차주(3명)·공익위원(4명)으로 구성된 ‘안전운임위원회’가 안전운임을 심의해 의결한다.
안전운임제 이후 가장 달라진 것은 화주가 운수사에 주는 운임, 운수사가 화물차주에게 주는 운임의 최저선이 구간별로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40피트(길이 12m) 컨테이너를 싣고 부산신항에서 서울까지 400㎞ 거리를 왕복한 화물차주는 운수사로부터 최소 98만2100원을 받아야 한다. 화주는 운수사에 최소 109만4800원을 줘야 한다. 유가가 가파르게 오르내리면 운임에 반영되고, 심야·공휴일·오지 할증도 붙는다. 무엇보다 ‘대기료’가 생겼다. 40피트 수출입 컨테이너 화물차의 경우, 도착시간으로부터 3시간이 넘도록 차주가 상·하차를 대기해야 한다면 초과된 30분당 2만원을 화주가 지급해야 한다. “화주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니까 알아서 상·하차 시스템이 빨라지더라.” 컨테이너 화물차주 고정기씨(51)의 말이다.
안전운임제는 현재 수출입 컨테이너, 그리고 벌크 시멘트를 나르는 상업용 특수화물차 등 약 2만6000대에 적용된다. 전체 상업용 화물차 42만 대의 6%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나마도 3년이라는 기한이 끝나는 올해 말이면 해가 지듯 운영이 종료되는 ‘일몰제’다. 화물연대는 일몰제를 폐지해 안전운임제를 계속 시행하고, 적용 품목도 철강재·위험물·자동차·곡물·택배(지·간선) 등으로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한데 국회 논의는 더디다. 화물연대는 이 문제로 지난 6월에 8일간 파업했지만 이후에도 진전이 없자 11월14일 다시 총파업을 예고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적어도 이 문제에서만은 중소 운수사들도 차주들과 같은 입장이다. 안전운임제가 있는 편이 화주들에 대해 협상력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안전운임제에 가장 반대하는 쪽은 화주다. 이준봉 한국무역협회 화주협의회 물류서비스실장은 “품목별로 40~70%까지 운임이 올랐다. 화주에게만 일방적으로 부담을 주는 제도다. 각종 할증에 객관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운임을 올리면 정말 안전이 향상되는지 검증된 바도 없다”라고 주장한다.
2021년 10월 오스트레일리아 운수노조의 파업 현장에서 한 참가자가 한국 내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임월산 제공‘책임의 사슬 원칙’이 생명을 지킨다
사실일까? “화물 운전자에 대한 더 많은 보상이 경제적 압력을 감소시켜 과로·과속·과적 등 위험 행동을 줄인다는 것은 학술적으로 검증됐다고 봐야 한다. 국내외 일치된 견해다.” 한국안전운임연구단장을 맡고 있는 백두주 부경대 글로벌지역학연구소 전임연구원(사회학 박사)의 말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마이클 벨저 등이 2002년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화물운송 업체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거리당 운임이 10% 증가할 때마다 월별 사고 확률이 34% 감소했다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운임이 1만원 상승하면 사고 발생 횟수가 3.19%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이광훈·김태승, ‘한국 화물운송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교통사고에 미치는 영향 분석’, 2017).
설령 안전과 운임이 상관이 있더라도, 특정 금액 이상을 주도록 ‘강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화주 단체는 주장한다. “국가 차원에서 금액을 정해 고시하는 것은 시장 기능을 지나치게 제한한다(이준봉 한국무역협회 화주협의회 물류서비스실장).” 그러나 안전운임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특정 운임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화주·운수사·화물차주가 모두 참여하는 안전운임위원회에서 심의해 결정한 금액을 법으로 고시한다. 심의로 책정된 금액 또한 최소한의 기준일 뿐 이를 웃도는 운임 책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방식은 국제사회의 노동조합과 사측, 정부가 모여 있는 국제노동기구(ILO)가 2019년 합의한 ‘운수부문 내 양질의 일자리와 도로안전 증진을 위한 ILO 지침’에도 부합한다. 지침은 ‘책임의 사슬 원칙(chain of responsibility principles)’을 명시했다. 화주·운수사·차주 등 당사자들이 다단계 하청 구조의 모든 계약관계에서 안전이 지켜지도록 책임을 다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공급사슬과 관련된 사람들과 일반 대중에 대한 상해 위험을 축소”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를 위해서 지침은 운전자들이 운송에 필요한 모든 고정비와 변동비를 회수할 수 있게 하고, 운전뿐만 아니라 화물 적재 등 비운전 노동에 소요되는 시간에 대해서도 보수를 지급받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특수고용 운전자에게도 고용된 운전자와 마찬가지로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했다. 한국의 안전운임제와 유사한 내용이다.
이 지침을 만드는 데 참여한, 세계 운수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국제운수노련(ITF)’의 임월산 부의장은 지침 작성 과정에서 한국의 사례가 주요하게 다뤄졌다고 했다. 안전운임제가 확대되는 추세는 뚜렷하다. 1979년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 2005년 캐나다 밴쿠버 항만의 컨테이너 운송 화물차에 도입됐다. 2018년 한국과 브라질이 국가 차원에서 법제화했다. 뉴질랜드와 벨기에에서도 관련 논의가 활발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12년 국가 차원에서 안전운임제를 도입했다가 보수 정부가 4년 만에 폐기했으나, 최근 퀸즐랜드주에서 안전운임제 법이 통과됐다. 임월산 부의장은 “노동권 후진국으로 낙인찍혀 있는 한국이 안전운임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만드는 국가가 될 수 있는 기회다. 한국 정부가 안전운임제 확대 시행으로 국제적 흐름을 선도할지, 소극적 태도로 역행할지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1979년부터 안전운임제를 시행한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1989년부터 2021년까지 전체 도로 사망사고 중에서 견인형 화물차와 관련된 사망사고의 비율이 꾸준히 줄었다. 안전운임제를 시행하지 않은 오스트레일리아 내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그림 1〉 참조). 이는 다른 요인으로는 설명되지 않으며, 안전운임제가 205명이 넘는 생명을 구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뉴사우스웨일스주 노사관계위원회는 최근 경차를 사용하는 아마존 플렉스 등 새로운 유형의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에게도 이 제도를 확대하기로 했다(데이비드 피츠, ‘호주 도로운수산업의 운임 및 안전 관련 제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제출 보고서, 2022).

“과로할수록 이익 보는 구조를 끝내자”
한국의 안전운임제는 3년간 일부 품목에 대해 시행된 것이 고작이다. 제도가 안전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한국교통연구원이 실시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안전운임제가 적용되기 전인 2019년보다 2021년의 월평균 소득은 시멘트 차주가 201만원에서 424만원(111%), 컨테이너 차주가 300만원에서 373만원(24%)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월평균 근로시간은 각각 5.6%, 3.7% 줄었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해봤자 시멘트 차주 월 354.8시간, 컨테이너 차주 월 281.3시간이다. 주 65~82시간을 일한다. 근로기준법이 허용하는 최장 노동시간은 주 52시간이다.
미국 화물차 운전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운전자들은 일정 목표 소득, 대략 주 1138달러(월 약 650만원)에 도달할 때까지는 노동시간을 늘린다(〈그림 2〉 참조). 그 이후에야 일을 줄이고 휴식을 취한다(마이클 벨저 외, ‘장거리 트럭 운전자들은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일하는가’, 2017). 논문은 이렇게 쓴다. “장거리 운전자들은 그들의 모든 근무시간에 대한 보수를 받지 않는 한 근무시간을 줄일 경제적 유인이 없을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대기료를 포함한 안전운임제의 필요성을 시사하기도 하지만, 조금 다른 결론으로 향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교통정책 전문가인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국토교통연구원에서 화물차 안전 개선방안을 연구했고, 이번에 〈시사IN〉·VWL과 함께 화물차 5만9296대의 한 달 치 DTG 기록을 분석했다. 그는 화물차 운전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안전운임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비즈니스 구조 자체가 과로할수록 이익을 보는 구조다. 운임이 올라간다 해도 계속 하루 13시간씩 초장시간 노동을 한다면 정책의 효과를 살리기 어렵다. 진입장벽이 낮고 과당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한국 화물운송 시장을 고려하면 특히 그렇다. 시장에 맡길 게 아니라 운전시간 총량을 규제해서, 약속을 깨고 초장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바로 DTG다. 외국은 그렇게 한다.”
유럽연합(EU)은 “경쟁의 왜곡을 방지하고, 도로 안전을 개선하며, 운전자의 양호한 작업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도로 운송에서의 운전·휴식 시간에 관한 규정 ‘561/2006’을 2006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여객운송 기사든 화물 기사든 운전시간은 하루 9시간, 주 56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4시간30분 연속 운전했을 경우 반드시 45분을 쉬어야 한다(유럽의 DTG 장치는 4시간30분이 지나면 알람이 울린다고 알려진다). ‘561/2006’ 규정에는 “이러한 규정의 준수 여부는 지속적 모니터링과 통제 대상이 되며, 이는 도로변과 사업장에서 운행 기록계를 점검함으로써 수행된다”라고 명시돼 있다.
미국 역시 HOS(Hours of Service)라 불리는 운전시간 규제가 존재한다. 화물차 운전자들의 주당 운전시간은 60시간으로 제한된다. 하루 14시간 넘게 근무할 수 없고, 그중에서도 11시간 넘게 운전할 수 없다. 출근하기 전에 10시간 연속으로 쉬었어야 하며, 8시간 운전 시 30분을 쉬어야 한다. 미국은 ELD(Electronic Logging Device)라 불리는 장치를 통해 주행시간을 자동으로 기록한다. 물론 유럽과 미국은 한국처럼 지입제가 만연하지 않아 차이는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앞선 규정은 ‘고용된 노동자나 개인사업자’를 포괄한다. 일부 주에서 안전운임제를 시행 중인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전국 차원에서 화물차 운전자의 최장 노동시간과 최소 휴식시간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하루나 주 단위 운전시간 총량을 규제하지 않고 있다. 2016년 봉평터널 사고 당시 정부가 검토했으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미뤘다. 노동조합의 고민도 깊다. 단기적으로는 화물차 운전자들의 소득 감소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박연수 화물연대 정책기획실장은 “시간총량 규제가 적어도 소득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이뤄져선 안 된다는 게 전제다”라고 말했다. 적정 운임이 보장된 상태에서 자율적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최근 화물연대 전남지역본부 백운지회에서 안전운임제가 적용되어 운임이 많이 오른 컨테이너 차주들이 운수사와 협약을 맺었다. 건당 운임이 책정되니 더 일하면 더 많이 벌 수 있는데도, 차주들 스스로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지역 고용을 창출하는 내용이 협약에 담겼다. 박 실장은 “노동조합도 이런 자체적인 노력을 해가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2013년부터 전국의 화물차는 DTG(디지털 운행기록장치)를 장착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화물차 운전자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다. 현재 일부 품목(수출입 컨테이너·시멘트·철강재·위험물질·자동차·곡물 등) 운송 차주만 제한적으로 산재·고용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그 외에는 노동법상의 각종 보호도, 최저임금도 적용받지 못한다. 지입제 구조하에서 거액의 빚을 지고 번호판과 차를 산다. 쉴 새 없이 달려야 겨우 적자를 면하고, 쉬려고 해도 휴게소에 주차 공간조차 부족하다. 안전운임제는 한 화물차 기사의 표현대로 “법이 없는 전쟁터”였던 현장에 처음으로 보호망을 깔았지만, 아직까지 대다수 화물차 기사들은 잠시라도 바퀴를 멈출 수 없다.
노동자로 보호하지 않으면서 시간만 규제할 수 있을까? 어떤 노동시장이든 그 안의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그들의 노동을 이용하는 대가가 조금 더 비싸지는 데에 사회가 동의해야, 그들의 노동이 여러 위험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노동이 안전해져야 사회 구성원 다수도 함께 안전해지는 분야가 여럿 존재한다. 화물차 운수 노동이 바로 그중 하나다. 이들은 ‘도로’라는 작업장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운수사들의 단체인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의 최진하 상무는 “화물차 운전자들의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게 최고의 안전대책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 물류비가 엄청 올라갈 거다. 감당할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여기에서 ‘우리’란 화주 기업만을 뜻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류운송비의 혜택을 받는, 동시에 그로 인해 안전의 위협 또한 받고 있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가리킨다. 한국 사회는 이 물음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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