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8

【原爆投下80年:日本人の植民地主義を問う】広島で開催された「朝鮮半島出身原爆被害者を追悼する会」での、広島被団協理事長による心ない言葉 Japanese Colonialism: Reflecting on a Japanese Hibakusha's Remark at the Memorial for Korean Atomic-Bomb Victims in Hiroshima

Peace Philosophy Centre: 【原爆投下80年:日本人の植民地主義を問う】広島で開催された「朝鮮半島出身原爆被害者を追悼する会」での、広島被団協理事長による心ない言葉 Japanese Colonialism: Reflecting on a Japanese Hibakusha's Remark at the Memorial for Korean Atomic-Bomb Victims in Hiroshima



【原爆投下80年:日本人の植民地主義を問う】広島で開催された「朝鮮半島出身原爆被害者を追悼する会」での、広島被団協理事長による心ない言葉 Japanese Colonialism: Reflecting on a Japanese Hibakusha's Remark at the Memorial for Korean Atomic-Bomb Victims in Hiroshima



被爆後80年、広島県朝鮮人被爆者協議会による「朝鮮半島出身原爆被害者を追悼する会」が8月2日、広島で初めて開催されました。朝鮮新報の報道「被爆80年、広島で朝鮮人被爆者追悼会を初開催」をはじめ、マスコミ各社も報道しました。(共同朝日毎日中国など)



8月2日広島で開催された「朝鮮半島出身原爆被害者を追悼する会」(Quena Kim Hrs さん提供)




朝鮮新報の報道を一部抜粋します:




広島県朝鮮人被爆者協議会(朝被協)が主催する「朝鮮半島出身原爆被害者を追悼する会」が2日、広島市留学生会館で行われた。朝被協主催の追悼会は初。ここに総聯広島県本部の呂世珍委員長、朝鮮人強制連行真相調査団の陳吉相事務局長をはじめとする同胞、日本市民など110余人が参加した。

朝被協の推計によると、原爆が投下された1945年8月6日当時、広島市内にはおよそ5万3千人の朝鮮人が居住しており、3万人が命を落とした。かれらは日本の植民地支配下の朝鮮から、生活の糧を求めて日本に渡ってきたか強制連行された人々だった。しかし、県内にはすべての朝鮮半島出身原爆被害者を追悼する碑は存在しない。平和記念公園内(広島市)には「韓国人原爆犠牲者慰霊碑」が存在するが、朝被協と総聯県本部はすべての朝鮮人被爆者を追悼する碑を建立し、そこで追悼会を開くことを目指してきた。しかし、未だ実現には至っていない。被爆者が高齢化するなかで、「これ以上先延ばしにできない」(朝被協・金鎮湖会長)という判断の下、被爆80年を迎える今年、初となる追悼集会の開催に至った。



★★★

残念なことに、このような意味深い朝鮮人原爆被害者追悼の会に招待された広島被団協(広島県原爆被害者団体協議会)の理事長による挨拶は、「心ない」としかいいようのないものでした。

これについて、広島にお住まいのQuena Kim Hrs さんがFacebook で公表したスライドショーここに紹介します。このブログ運営者、乗松聡子のコメントも使ってくれました。URLは: https://www.facebook.com/watch/?v=757526723330814 
Facebookをやっていない人は見づらいかもしれないので Quena さんから提供された動画をYouTube にアップしてあります。ご覧ください。音源からスタートします。

私はこの、広島被団協を代表して挨拶をした方だけを批判するつもりはありません。これは、「ヒロシマ・ナガサキ」や日本全体の平和運動を覆っている自国中心主義、被害者史観、植民地主義を象徴する事件だと思います。関係者皆さんに考えてほしいです。日本人の植民地主義は日本人が指摘しなければいけないと思います。


Facebook では以下の公開リンクでいろいろな人がコメントしたりシェアしたりしています。


Quena Kim Hrs さんの Facebook ページ
Satoko Oka Norimatsu の Facebook ページ


Xでもここに公開しており、コメントや引用投稿がついています。
Satoko Oka Norimatsu のX投稿


「被爆80年」の広島と長崎。当時広島にいた朝鮮人は、現在の韓国のハプチョン出身の人が多くいました。2019年にハプチョンに行きました。原爆被害を展示した資料館もあります。そこで被爆者、被爆二世の人たちから聞いた言葉の中でも忘れられないのは「自分たちは植民地支配で日本人から犬のように扱われた上に米国の原爆で被爆した。被爆者を考えるとき、まず朝鮮人被爆者を考えてほしい」という言葉です。その通りと思います。残念ながらこれまでの日本人の原爆投下についての記憶は「日本人ファースト」としか言い様がありません。これは過去の自分もそうであったと、自身反省していることです。下方に参考資料として示した記事で、ハプチョン訪問などについて詳しく書いています。


参考投稿


「ノーベル賞に沸く日本、抜け落ちた視点」:『朝鮮新報』から転載 


韓国・陜川(ハプチョン)で原爆75年を記憶する 


吹き荒れる韓国ヘイトの中で  ――植民地主義克服と、朝鮮半島の平和を考える


また、長崎人権平和資料館(注:2023年11月改名後の資料館の名前です)の館長であった高實康稔さん(故人)は毎年、8月9日早朝に爆心地公園にある朝鮮人被爆者追悼碑の前で開催される「朝鮮人原爆被爆者追悼早朝集会」で読み上げる「メッセージ」で、必ず、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の被爆者への支援、日朝国交回復を訴えていました。生前最後の「メッセージ」が2016年でした。
長崎原爆朝鮮人被爆者追悼早朝集会メッセージ:高實康稔(2016年)



BBCでも今年、特集が組まれていました。
【原爆投下80年】傷を負い、屈辱を受け、忘れられ……広島で被爆した朝鮮半島出身者たち
https://www.bbc.com/japanese/articles/cz60162lpxqo


最後に、あちこちで引用していますが、2019年に釜山の国立日帝国強制動員歴史館を訪問したときに見た、広島・長崎原爆投下についてのパネルの文言(日本語訳)を紹介して終わります。この言葉を心に刻んでいます。

「1945年8月6日午前8時15分広島市、8月9日午前11時2分長崎市に、人類に向けた最初の原子力爆弾が3日間隔で投下された。その結果、死傷者が数十万名に至ったが、そのなかには日帝の植民地下に故郷を離れてきた数多くの朝鮮人農民と日本の軍需工場に動員された朝鮮人徴用工もあり、日本軍の捕虜として送られた連合軍の兵士もいた。朝鮮人原爆被害者は概ね広島5万人、長崎2万人に至ったが、そのなかで約4万人は1945年を越すことなく死亡し、残りの3万名中23000余名が帰還していたことが推測される。全体の原爆被害者の約1/10に該当する朝鮮人の死亡は57.1%であり、全体の33.7%に比して非常に高い。日本は二つの都市における惨状を大々的に広報し、反戦平和を全世界に訴えている。反戦平和は、人類共通の普遍的価値である。しかし、誰が言うかによりこの意味合いはかなり変わる。日本は反戦平和を叫ぶ前に戦争加害に対する痛切な反省と共にその事に対する責任を負う姿勢を見せなければならない。」



乗松聡子 @PeacePhilosophy

投稿者 Peace Philosopher 時刻: 3:0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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ラベル: Healing and Reconciliation in Asia, Hiroshima/Nagasaki/Nuclear Disarmament, In Japanese 日本語投稿, Satoko Norimatsu 乗松聡 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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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7일 목요일

【원폭 투하 80년:일본인의 식민지주의를 묻다】히로시마에서 개최된 「한반도 출신 원폭 피해자를 추도하는 모임」에서의, 히로시마 피단 협리 사장에 의한 마음 없는 말 Japanese Colonialism: Reflecting on a Japanese Hibakusha's Remark at the Memorial

피폭 후 80년, 히로시마현 조선인 피폭자 협의회에 의한 「한반도 출신 원폭 피해자를 추도하는 모임」이 8월 2일, 히로시마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조선 신보의 보도 「피폭 80년, 히로시마에서 조선인 피폭자 추도회를 첫 개최」를 비롯해 언론 각사도 보도했습니다. ( 공동 , 아사히 , 매일 , 중국 등)

8월 2일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한반도 출신 원폭 피해자를 추도하는 모임”( Quena Kim Hrs씨 제공)

조선신보의 보도를 일부 발췌합니다.

히로시마현 조선인 피폭자 협의회(아사피협)가 주최하는 「한반도 출신 원폭 피해자를 추도하는 모임」이 2일, 히로시마시 유학생 회관에서 행해졌다. 아침 피협 주최의 추도회는 처음. 여기에 총련히로시마현 본부 로세진 위원장,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 진진상 사무국장을 비롯한 동포, 일본 시민 등 110여명이 참가했다.

아침 피협의 추계에 따르면 원폭이 투하된 1945년 8월 6일 당시 히로시마 시내에는 약 5만3천명의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어 3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일본 식민지 지배하의 조선에서 생활의 양식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왔는지 강제연행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현내에는 모든 한반도 출신 원폭 피해자를 추도하는 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기념공원 내(히로시마시)에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존재하지만, 조피협과 총련현 본부는 모든 조선인 피폭자를 추도하는 비를 건립하고 거기서 추도회를 여는 것을 목표로 해 왔다. 그러나 아직 실현에는 이르지 않았다. 피폭자가 고령화하는 가운데 '더 이상 미루지 못할'(아침 피협·김진호 회장)이라는 판단하에 피폭 80년을 맞이하는 올해 첫 추모집회 개최에 이르렀다.

★★★

유감스럽게도 이런 의미심장한 조선인 원폭피해자 추도의 모임에 초대된 히로시마 피단협(히로시마현 원폭피해자 단체협의회)의 이사장에 의한 인사는 “마음 없다”라고 밖에 좋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히로시마에 살고 있는 Quena Kim Hrs씨가 Facebook에서 공표한 슬라이드 쇼 여기에 소개합니다. 이 블로그 운영자, 승송 사토코의 코멘트도 사용해 주었습니다. URL은 : https://www.facebook.com/watch/?v=757526723330814 

Facebook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보기 힘들 수 있으므로 Quena가 제공한 동영상을 YouTube에 올리고 있습니다. 참조하십시오. 음원에서 시작합니다.
나는 이 히로시마 피단협을 대표해서 인사를 한 분만을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것은 「히로시마 나가사키」나 일본 전체의 평화운동을 덮고 있는 자국 중심주의, 피해자 사관, 식민지주의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계자 여러분에게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일본인의 식민지주의는 일본인이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Facebook에서는 다음의 공개 링크로 여러 사람이 코멘트하거나 공유하고 있습니다.


X에서도 여기에 공개하고 있으며, 코멘트와 인용 게시물이 붙어 있습니다.

「피폭 80년」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당시 히로시마에 있던 조선인은 현재 한국의 합천 출신인이 많았습니다. 2019년에 합천에 갔습니다. 원폭 피해를 전시한 자료관도 있습니다. 거기서 피폭자, 피폭 2세의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자신들은 식민지 지배로 일본인으로부터 개처럼 취급된 위에 미국의 원폭으로 피폭했다. 피폭자를 생각할 때, 우선 조선인 피폭자를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불행히도 지금까지의 일본인의 원폭 투하에 대한 기억은 「일본인 퍼스트」라고 밖에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자신도 그렇다고 자신 반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래쪽에 참고 자료로 나타낸 기사에서 합천 방문 등에 대해 자세히 쓰고 있습니다.

참고 게시




또, 나가사키 인권 평화 자료관(주:2023년 11월 개명 후의 자료관의 이름입니다)의 관장이었던 다카히로 야스카네씨(고인) 는 매년, 8월 9일 이른 아침에 폭심지 공원에 있는 조선인 피폭자 추 도비 앞에서 개최되는 '조선인 원폭 피폭자 추도 이른 아침 집회'에서 읽는 '메시지'로 반드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피폭자 지원, 일조 국교회복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생전 마지막 「메시지」가 2016년이었습니다.

BBC에서도 올해 특집이 짜여졌습니다.
【원폭 투하 80년】상처를 입고, 굴욕을 받고, 잊혀져……히로시마에서 피폭한 한반도 출신자들

마지막으로, 여기저기서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2019년에 부산의 국립 일제국 강제 동원 역사관을 방문했을 때에 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관한 패널의 문언(일본어 번역)을 소개해 끝납니다.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시,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인류를 향한 최초의 원자력 폭탄이 3일 간격으로 투하되었다. 선인농민과 일본의 군수공장에 동원된 조선인징용공도 있어 일본군의 포로로 보내진 연합군의 병사도 있었다. 만명 중 23000여명이 귀환하고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 원폭 피해자의 약 1/10에 해당하는 조선인의 사망은 57.1%이며, 전체의 33.7%에 비해 매우 높다. 세계에 호소하고 있다. 반전 평화는 인류 공통의 보편적 가치이다.

카츠마츠 사토코 @Peace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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