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7

[23회]조선은 어떻게 미국과 수교했나? /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3회]조선은 어떻게 미국과 수교했나? /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법률방송
26,743 views  Mar 19, 2025  #Japan #History #Korea


"도대체 한국 사람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한국 사람'에 대해 연구해 온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19세기의 근대화 물결 속에서 김옥균, 이동인 등의 개화의 노력이 한창인 시기에 나타난 조선과 서양과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미국과의 수교를 시작으로 조선은 영국, 독일 등과 통상조약을 맺게 됐는데요. 이는 비단 국가 간의 조약일 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에 대한 청, 일본, 조선의 치열한 정치 셈법이 숨어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왜 조선과 수교를 맺으려 했고, 이웃 나라 청과 일본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요? 그리고 조선 사람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조선이 처음 마주한 근대 국제 정치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법률방송 #함재봉  #역사 #근대사 #개화파 #고종 #흥선대원군 #근대화 #미국 #한미동맹 #조미수호통상조약 #국제정치 #국제 #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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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Search in video
[음악]
[음악]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 봉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김옥균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김옥균이 어떻게
개화 사상을 접하게 되고 일본에 건너가게 되고 어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서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을 했는지 그런 부분을 살펴봤고요 그 오늘은 이제 일본
하고의 관계가 정상화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이제 미국하고 관계도
어 조선이 특기 시작을 합니다 그 미국하고 관계가 터 가는 그 과정이
사실은 일본 하고의 강화도 조약을 통해서 개국을
하는 거와는 또 차원이 다릅니다 뭐 일본은 늘 옆에 있었던 나라고 뭐
중국도 물론 늘 옆에 있었던 나라고 근데 이제 미국은 처음으로 극동아시아
동북 아시아 바깥에 있는 어 서양 나라입니다이 나라하고 어떤 과정을 을
통해서 그 조선이 어 수결을 하고 하게 됐는지 그리고 사실 조선으로서는
굉장히 급격한 아주 그 혁명적인 그
개국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거에 대해서 또 어 국내 의정
사파들은 또 어떻게 반응했는지 이런 부분을 살펴보면서 조선이 이제 서서히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어 계곡을 하는 그 모습을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 이제 [음악]
시작하겠습니다 어 조선이 미국하고 수교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가장 중요했던 요인 미국하고 수여해야 되는 가장 중요했던 동의는 일본하고
중국입니다 일본하고 청나라는 시종일관 조선 보고 미국하고
수결을 하라 그 얼핏 트시는 이게 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랑 좀 다르다고
느끼실지 몰라도요 지금 일본이나 청의 입장에서는 본인들은 굉장히 약자들
있니다 서구 열강이 마구 밀려 들어오고 있는데 갓 개국을 한 일 일본의
입장에서는 자기 나라를 지키면서 자기 체제를 지키면서 근대화를 하는 과정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청은이
때부터 저 서양 제국들이 들어와서 이제 마구 실력 행사들을 하고 있고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지이 사람들을 제어할 방법을 찾아야 되겠고 일본의
입장에서는요 조선이 러시아의 손에 넘어간다 아니면
다른 서구 열강에 넘어간다 그러면 일본으로서는 지금 자기를 지킬 방법이
없습니다 그니까 일본에서는 일본 입장에서는 자기 내가 어떻게 조선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조선이 제발
하나는 자강을 했으면 좋겠고 자체적으로 딴 나라한테 안 넘어갔으면 좋겠으니까 일단 그리고 두 번째로는
빨리 여러 서양 나라들 하고 그냥 수결을 해서 어느 한 나라가 차지할
수 없게 만들어 보려고 그랬던 겁니다 청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청나라는
조선이 자기네 속방 이니까 원래 자기의 영향권에 있으니까 그걸 지켜야
됩니다 그런데 방인 조 이제는 힘으로 지킬 실력은 이제 안
되는 거죠 임진란 때는 일본이 들어오니까 원군을 보내서라도 왜군을
격퇴를 하면서 자기네 속을 지켰던 거죠 근데 이제는 서양 열강들고
맞서서 조선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떻합니까 조선 보고 빨리 여러 서양 열강들
하고 수교를 하고 나면은 강들 균형을 으니까 어느 한 나라가 한 열강이
조선을 차지하지 못할 거라 이렇게 계산을 하는 거죠 근대화의 물결을 파고 속에서 진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일본이나 청애 입장에서는 조선이 빨리 여러 개국을 해서 여러 열강들 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그죠 자기내 위협이 안
되게 하는데 조선을 딴 열광한 뺏기지 않는데 아주 결정적인 전략입니다 그러니까 너나 할 거없이 조선 보고
빨리 미국하고 수결을 하라 그럽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어 조선 책략이
그니까 청나라의 그 그 황준헌이 어 김홍집 줬다는 건데요 그거를 우리가
잠깐 조금만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홍집이 2차 수신사로 일본에 1880년 6월 달에 건너갑니다
그래서 건너가서 일본에서 입장에서는 빨리 기왕의 김홍집이 건너온 김에
일본에 상주하고 있는 서구 열강들 외교관들을 하고 만나서 좀 수교하고
이런 얘기도 좀 했으면 좋겠다고 그래 갖고 자꾸 소개를 하려 그랬는데 김홍집이 거부를 합니다 뭐 김홍집이
유일하게 만나겠다는게 일본 사람들 말고는 일본의 와 있는 상주하고 있는
천국 공사 하여장 하고 천국 참석한 황준헌 이죠이 사람들이 이제 만나는
거죠 그래서 여섯 차례인가 일곱 차례나 만납니다 근데 그때 만나면서
계속해서 어떻게해서든지 집을 설득을 하려고
열강하고 빨리 수결을 해라 그래서 예를 들어서 8월 26일 날
하여장이 김홍 집한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만국과 더불어 교섭하는 것은 이익은 있으나 손해는
없습니다 이것은 만세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인만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만약 굳이 관문을고 거절하려 다른 날에 뜻하지 않은 파란이 생겨 일이
다급해졌다 조약을 체결하면 그때는 엄청나게 큰 손해를 입을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계속해서 하니까 나중에 김홍집이 무슨 부탁을 하냐면요 이렇게
빨리 여러 나라하고 교류를 해야 된다 수교를 해야 된다고 이렇게 설득을 해
주는데 아 들어보니까 논리가 그럴 듯한데 제가 이거를 아직 잘 모르겠으니까 이거를 조정에 도로 내가
귀국을 해서 고정 임금하락 설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에 말씀해 주신 거를 책으로 써 주십시오 글로 써 주십시오 그 그래서
황준이 이틀밤을 세우면서 얘기했던 거를 쭉 정리를 해서 김한테 건내는
것이 그게 조선 책입니다 따로 써서 출판을 해 갖고 있던 거를 한 카피를
이렇게 준 것이 한권을 준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나라를 여어 제끼고 여러
나라랑 수해 된다라는 얘기를 하다가 김홍집이 이거 너무 복잡하고 맞는
얘기 같은데 정리해 달라 그래서 정리를 해해 주는 겁니다 그래서 9월 6일 1880년 9월 6일 김홍집이
귀국하기 이틀 전 6월 달에 왔다 9월이 그 3개월 머물다가 이제 그
귀국 하게 됐는데요 그때에 어 황준원이 조선 책략을 건냅니다 조선
책략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 러시아가 낭진
그건 이리 같은 진나라 이런 뜻입니다 진처럼 영토확장에 주력해온지
300여년 그 첫 대상은 유럽이었다 중앙아시아 있으며 오늘날에 이어서는
동아시아로 옮겨졌으니 그 첫 번째 대상이 마침 조선이 되어 그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조선의 입장에서는 러시아를 막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를 막을 수 있는 조선의 책략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그것은 오직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맹약을
맺으며 미국과 연계함으로써 자강을 도모하는
길뿐이다 딱 정리를 해 주는 거죠 그런데 이제 사실 이거는 충격적인 얘기죠 일본하고
맹교 맺으라는 겁니다 중국의 사신이 조선의 김웅집
보고 일본하고 아주 끈끈한 관계를 맺어라 그리고
미국하고 연계를 해라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게 당시의
현실입니다 이게 당시의 국제 정치입니다 그 속에서 이제 조선이 하두 청이 그러니까 이제 깨어나기
시작한죠 일본도 그렇습니다 9월 7일 날 그러니까 이제 하여장고 만나서
지금 방금 대화를 나는 바로 다음날 이노의 가오루 외무 대신을 또 만납니다 만나서 노회가 얘기하는게
이런 겁니다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 항의 군함 16척을
집결시켰다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는다면 당연히 중국이나 조선의 눈독을 들릴
것이고 조선은 서양 국가들과 아무런 조약도 맺지 않았고 국제법도 준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조선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더라도 아무도 개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은 미국과
같은 서방 국가들이 조약 체결 여부를 타진해 오면 절대로 거절하지 마십시오
빨리 국교를십시오 그랬더니 그때 이제 김
정리 좀 해주십시오 말씀하시는 걸 정리를 해 주십시오 그래서 조선
책략을 가지고 갑니다 어 지지난 시간에 우리가 이동인 얘기 때도 그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이때 이제 이동인 김홍집이 만나서 야 이런
청년이 있느냐 하면서 조선과 이동을 데리고 그고 귀국을
합니다 그래서 귀국을 해 갖고 이동인 소개를 하고 조선 책략을 이제 조종에
소개를 해서 조정해서 조선 재정에서 이제 그걸 전부 다 읽은 읽는 거죠 소선 책략이게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은 조선의 국가 대전략 최초의 대회
전략이라는 것을 청나라 관리가 써 주는 겁니다 이때 처음으로 아 우리가
속방고 왜나라 하고만 있는게 아니라이 밀려오고 있는이 서양의 국가들 하고는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된다라는 거에 대한 첫 구상이이 조선 책략을
통해서 조선 조정에 전달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이 책을 가지고 온지 한
달 만이죠 1880년 10월 11일 김홍집이 한 9월 8일인의 귀국을
했으니까 가져와서 이거를 고정을 비롯해서 대신들이 열 읽고서 읽은 거를 가지고 회의를 하는게 조종
회의가 10월 11일 날 열립니다 영의정 이채응 이채이 어 누구냐면
이하응 대원군 홍선 대원 이하응의 형입니다이 채흥이 지금 영정이었습니다
그때 그래서이 채흥이 뭐라고 이제
조정 회의에서 발언을 하냐면은 우리나라의 백두산 북쪽은 바로 러시아의 국경입니다 비록 큰 바다를
사이에 둔 먼 곳이라도 한척에 돗 담배로 순풍을 타면 오히려 왕래할 수 있는데 하물며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두 나라의 경계가 서로 접한다면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보통 때에도 숨쉬는 소리까지 서로 통할 만한데
얼음이 얼어붙으면 비록 걸어서라도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 바야흐로 지금
러시아 사람들은 병선 16척을 집결 시켰는데 배마다 3,000명을 수영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 추워지게 되면 그 형세는 틀림없이 남쪽으로 향할 것입니다 그 의도를 진실로 헤어릴 수
없으니 어찌 대단히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그니까 하여장 황준 이노 가가 했던기를
그대로 전달을 받았던 것이 명확해집니다 그랬더니 이제 고정이 이렇게 또 답을 합니다 일본 사람들의
말을 보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바는 러시아로 조선이 대하기를 요구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나라를 위한 것이다 어
고정이 상당히 하게 를합니다 어쨌든 그 청이나 일본이 자꾸 이런 기 하는
거가 국적으로 자기네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뭐 사실 그 당연한
얘기지만 어쨌든 고정의 걸 한번 이제 꼬집습니다 그랬더니 이영이 이렇게 답을 합니다
조선이 만일 방비하지 않으면 그들 나라가 반드시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우리나라야 어찌
러시아 사람들의 뜻이 일본에 있다고 핑계되면서 심상하게 보고만 있겠습니까
방비 대책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가 어찌 간구한 것이 없겠습니까 만는 청나라 사람의 책에서 논한 것이
이처럼 완벽하고 이미 다른 나라에 준 것은 충분한 소견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중 믿을 만한 것은 믿고
하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되겠습니까 어쨌든 들어보니까 대단한 전략인 거 같은데 우리가 따를
만한 것을 따릅시다 이렇게또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형이 미국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지난 6월에 미국 사람들이 동부에 왔었는데 의
원수진 나라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서계를 동부에 바친다면 동부에서 받아도 잘못될 것은 없으며 예조에
바친다고 한다면 예조에서 받아도 역시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양
나라라고 해서 거절하고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내 신문 지상에 널리 전파되어 마침내 수치가 되고 모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 대해 무슨 소문을들은 것이 있어서 원수진 나라라고 하겠습니까 먼 지방 사람을
회유하는 의리에 있어서 불화가 생기지 록 해야 할
듯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게 지금 뭐 그 신미 양육도 있었고 미국하고 여러
그런 것도 있었지만은 이때쯤 해서 그니까 김홍집이 2차 수신사로 가면서
갔다 오면서 미국에서 일본한테 무슨 부탁을 하냐면요 일본 보고 당신 내가 좀
중재를 해 달라 우리가 조선하 좀 관계를 틀 수 있게 중재를 해달라
그럽니다 그래서 실제로 일본 관리들은 이제 부산에 와
있으니까 동네에 와 있으니까 그 사람들 통해서 미국의 국서를 전달을 한 거죠 우리 이렇게 했 근데 이제
다 거절을 했었던 거죠 그거에 대해서 이용이 그때 우리가 그랬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고종이 이렇게 드디어 이제 답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풍습이
본래부터 그러함으로 이러함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다 비록 서양 나라들에
대해 말하더라도 본래 서로 은혜를 입은 일도 을 품은 일도 없었는데
애당초 우리나라의 간사한 무리들이 그들을 끌어들임으로써 강화도와 평양의
분쟁을 일으켰으니이는 우리나라가 스스로 반성해야 할 바이다 몇 년 전에 서양 사람들을 중국에 들여보낸
것은 중국의 자문에 의하여 좋게 처리하였다 대체로 양선이 우리 경내에
들어오기만 하면 대뜸 사학을 핑계대는 말로 삼지만 서양 사람이 중국에
들어가 사는데도 중국 사람들이 모두 사학이 말하는 것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다 이른바 사악이란 배척해야
마땅하지만 불화가 생기기까지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했습니다 여기서 강화도와 평양의 분쟁은 당연히 이제
그 심리 양효 병인 양녀 이제 이런 이런 얘기들이 그요 그리고 서양
사람들을 중국에 들여보낸 것은 중국의 자문회 이게 뭐냐면 서양 배들이 와서
난파선이 생겨서 거기에서 온 서양의 선원들을 중국을 통해서 돌려보내고
그런 경우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그렇게 했었고 아무 문제 없다 그 중국은 벌써부터 서 서냥
사람들이 사는데 뭐 그 사람들이 뭐 사은 사학 이런 얘기 하지 않는데 뭐
우리 거를 지키는 건 좋겠지만은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들 아고 이상한 불화까지 쓸데없는 불화까지 일으킬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럽니다 자 이러면서 급격히 조선이 열립니다
고종 영의정 다 사람들이 열어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급격히 열립니다 그니까 마 급 이어졌는지 계이 그
계국 일지를 한번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1880년 양력 7월 2차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을 갑니다 그리고 1880년 8월 25일 날 미국의
태평양 함대의 사령관 슈펠트 제독이 텐진에서
이장을 만니다 왜냐면 그니까 일본을 통해서 미국이
부탁을 해서 국서를 전달을 했었습니다 조선에 미국이 조선하 수교를 하고
싶어서 근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완전히 무시를 당하고 일본도 별로 힘을 못 씁니다 그랬더니 이홍장이 그
얘기를 듣고 슈펠트 테 연락을 해서 우리가 중재를 할테니까 나랑 와서 얘기를 하자
그래서 슈트가 일본을 통해서 조선하 수결 하려다가 그게 안 되니까 진에
가서이 공장을 그래서 만나서 어떻게 그럼 조선을 설득해서 같이 조선을
열고 조미 수호 통상조약을 맺도록 하자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슈펠트 80년 8월 25일 날
텐진으로 가고 그리고 1880년 9월 8일 날 2차 수신사 김홍집이 귀국을
하고 그리고 10월 6일 날 이동인 다시 일본의 밀사로 파견을 합니다
다시 보내서 그때 이동인이 일본으로 돌아가서 후크 사위 귀치도 만나고 세토 영국 영사도 만나고 그러면서 야
우리가 이제 진짜 본격적으로 신사들을 보내올 것이다 이제 이런 얘기를 하고 돈을 빌려서 여러 가지 사 가지고
가고 이제 그런 일을 하는 거죠 그리고는 10월 11일 날 어전회의가 열리면서 드디어 조선
책략을 이제 논의를 했고 그리고 10월 25일 날은 변원규 아는
사람을이 사람을 중국에 이장한 보내 갖고 우리가 일본에만 학생들을
보내는게 아니라 중국에도 기왕 그러면 중국 도 보내서 신식 무기 제조 이런 거를 좀 배우고 싶습니다 어 좀
도와주십시오 그니까 이왕자 아유 좋다고 보내라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어 그리고 1881년 1월 4일 날
이동인이 고정의 밀지를 받고 일본에 갔다가 일본에서 다시 귀국을 하고 그리고 81년 1월 16일 날 갑자기
인천 제물포를 개항을 하기로 이제 결정을 하고 안 하겠다라는 거를이
동인이 갑자기 김홍집 그때 만나서 설득을 했었던 거고요 다시 와서 이제
조종을 다 설득을 해서 급격하게 이제 부산에이어서 제물포를 개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1월 81년 1월 22일 날 그래서 이렇게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신사유람단 보내고 중국에도 보내고
그래야 되니까 이런 모든 거를 담당하기 위해서 통리 기무 화문을 설치를 하죠 조선 최초의 근대 정부
기구가 됩니다 그리고 81년 2월 9일 날 신사유람단
파견을 하고 5월 20일 날 별기군 설치 라고 근대 군대를 만들겠다
그러고 10월 2 2일 날 진사유 3단이 귀국을 하고 11월 달에는 또
중국의 그 영선사 보내 가고 학생들을 이제 대거 보내고 이제 이러면서
급격하게 계곡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자 그러면 다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으로 돌아가면 아까 그 1880년에 벌써 한번 이홍장이
만나자 그래서 텐진에 갔었다가 그래서 그다음부터 이홍장이 계속해서 조선을 설득하는데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1881년 여름에 다시 펠트가 또 이장한 갑니다 가서 야
어떻게 됐냐 왜 조선으로부터 아무 반응이 없냐 너 너희 종주국인 종주국이 석방한 얘기하는데 이게
이렇게 안 되느냐 이제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그때에 1881년 7월 1일 날
이장이 잠깐 기다려라 이제 곧 뭐가 올 거 같다 그러면서 이제 그때 의
조선 조정에서 야 우리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그러면 김윤식을
파견을 해서 미국하고 수교하는 거를 한번 해 보자 김윤식을 파견을 합니다
그랬더니 파견하는데 그 오는데 그렇게 오래 걸립니다 자꾸 슈펠트 뭐 계속
거기 있을 수가 없으니까 자 자꾸 어디 가라 그러니까 다시 갈라 그러니까 이용장 기다려라 기다려라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중국하고 일본하고 모두가 조선이 미국하고 수교하는 거를
원했었습니다 겁니다 그니까 조선 조정에서는 지금 이게 왜 자꾸 늦어지면 이제 이런 논의가 있었습니다
김윤식이랑 사람들이 이제 정한테 이렇게 국내에 반대가 있더라도
어쨌든 이걸 해야 됩니다 하는 걸 설득하는 과정입니다 경진년 1880년 겨울 태진 해관 정조가 소전 그러니까
이홍장 있니다 이홍장의 호입니다의 뜻에 따라 우리나라 연공 사신에게 편지를 주어 우리 조종에 전하게
했는데 연미 미국하고 연기하는 일곱가지 이익이 있음을 논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말하길 조선이 이미
일본의 통상을 허락했으니 각국이 반드시이 전리를 끌어내며 몰려올 것입니다 만약 전부 사절 능력이
있다면 금일의 논의는 참으로 군도의 말이 될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진 기어코 훗날을 기다렸다가 별도로 지절 즉 곡절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긴 뒤에 허락하기다는 차라리 금일 허락해서
형적 혐의를 없애는 것이 낫고 기엽고 여러 나라가 번가라 침범하기
기다리기보다는 차라리 그중에 비교적 친할 만한 나라를 골라서 먼저 끌어들여 우방으로 삼는 것이 낫습니다
부디 학생을 텐진에 유학 시킨다는 명목을 내세워서 사리를 이해하는
대신을 선발하여 텐진으로 보내 상의에서 처리하게 하십시오이 기회를
놓쳐서 안 됩니다이 논의는 반드시 신중이 비밀을 지켜서 다른 이웃
나라가 알게 하지 마십시오 라고했습니다 주상께서이 논의를 간하
하지만 흉흉한 국론이 서양과 화친한 것을 그러다고 하여 억지로 막을 수 없었으니
어찌하겠습니까이 논의를 거치면서 그래도 이홍장이 설득을 하고 그래서 이런 편지를 보내고 했으니까 우리가
그래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해서 결국은 1882년 1월 17일 날
김윤식이 바딩 북경을 에워싸고 있는 가장 중요한 도조 직례 이홍장이 직례
총독을 맡고 있었으니까 그 증례의 어 수도요 그게 바오딩 있니다 거기 가서
이제 이홍장 하고 어 그 만납니다 그런데 김윤식이 이홍장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냐면요 이게 우리 조정에서 이게 굉장히 힘들다 너무 계곡을 반대하는 목소리들 크기 때문에
힘드니까 청에 황제께서 천자께서 조선에 미국하고
수교를 하라는 칙령을 좀 내려 주십시오 이래요 여러분 조선이 얼마나
청의 속임을 자처하고 있었는지 아시겠죠 그랬더니 오히려
이홍장이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더 일이 복잡해지고 조선 입장에서 절절 좋지
않습니다 입지가 오히려 좁아집니다 그렇게 되면은 중국이 조선의 개국에 대한 또
책임을 져야 되는게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안 하려 그럽니다 그래서 한테
알에서 빨리 특명 전권 대사라는 거를 임명을 해서 즉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전권을 갖고 있는 그런 대사를 빨리 좀 파견을 해서 여기 와서
만나서 거기에서 슈펠트 하고 조약을 맺어라 이렇게 얘기를 하는
[음악]
겁니다 그래서 고종이 보고를 받습니다 그런데 4월 달에 나 가서야
1881년 4월 달에나 가서야 그러니까 이게 1880년부터 미국은 계속해서 기다리는 거고 중국하고
일본은 계속해서 미국하고 수결을 하라는 거고 이제 이제 와서 조선은
뭐 칙령을 내려달라 그랬다가 이제 도저 안 되겠습니까 그럼 특명 정권 대사를 보내라 그러니까
또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가 4월 4일에 가서야 어윤 중을 어 문서관
그러니까 어 특명 정권 대사 개념이 아직 없었으니까 문서관이라는 거를 임명을 해서 협상을 해봐라 이런
협상을 해야 된다 그러니까 그래서 이제 보냅니다 근데 슈트는 아까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7월부터 계속 가지 말라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직도 안 오니까 그러면
얘기가 된 거 같으니까 그럼 내가 조선에 건너가서 직접 협상을 하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이장이 아유 그건
하지 마시오 그러면 정 못 기다리겠 내가 대신 조선을 대신해서
하고 조약을 맺겠습니다 체결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홍장이 대신해서
수트와 조미 수 통상 조약을 협상을 합니다 그래서 협상을 하기 시작을
하면서 한 달에 걸쳐서 협상을 하는데요 사실 굉장히 좋은 조약을 맺어 줍니다
불평등 조약이 아니라 그때까지 조선이 맺었던 조약들 중에선 괜찮은 조약을 맺어 줍니다 그리고 청이 서양
국가들고 맺었던 조보다 훨씬 더 평 조약을 맺 근데 그 대신에 이홍장은
뭐를 늘려 그러냐면 그래도 조선은 중국의 속이라는 거를 이렇게 딱 한
절을 넣으려 그랬죠 그랬더니 펠트가 거절합니다 그건 아니다 그건 뭐 그게
속방 관계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고로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쨌든
조선을 완전한 독립국가로 생각을하고 주권 국가로 생각을 하고 체결을 하는
거니까 그런 얘기는 우리 조약에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 슈트가 거절을 합니다 자 그렇게 하고 나서
그 조약 체결한 거를 마건충이 가지고
정여창 청 제독이 군함에 올라서 그래 가지고 세척에 군함을 타고 5월 8일
날 인천에 도착을 합니다 자 마건충이 누구냐면 상해 출신으로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가서 프랑스 졸업 시험 바칼로레아 시험까지 다 를 하고 지금
시양 스포라고 하는 최고 학부에 가서 법학을 전공을 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이홍장의 휘하에 들어가서 이홍장 밑에서 이제 법에 관련된 국제법 이런
거를 다 보좌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홍장이 마건충 보고 조미
수수 통상 조약을 쓰라 그럽니다 그니까
서양법문화와 어 나중에 이제 북양함대 사령관이 되는 그 정여창의 배에
올라가고 세척이 군남 세척이 함께 제물포에 도착을 합니다 그래서 슈트는
이제 미국 군함을 타고 당연히 또 따로 4흘 늦게 도착을 하는 거고 그리고 이제 일본의 어 그 주조선
일본공사 하나 부사도 또 같이 거기에 합류를 하고요 조선에서는 신헌 그니까
어 강화조약을 바로 그 신입니다 신을 전권 대관으로 김홍집 부관 서상
종사관으로 임명하여 미국과 협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5월 14일
정여창의 기함에 신원이 김홍집 하고
오릅니다 올라서 제일 먼저 하는게 북경을 향해서 삼교
국어에 세 번 무릎 꿇고 무릎 를 때마다 세 번씩 땅에다 머리를 찢는
그 예를 삼괴 국고들의 예를 먼저 행하고 조선은 어디까지나 청에 속방
이니까 칙령을 받는 그런 세민이 되는 거죠 그러고 나서
정여창 마건충 함께 수아타입 11트 제독에 배로 갑니다
그래서 거기에 가서 그니까 이홍장이 다 협상하고 마건충 써 준 거를 거기에 가서 이제 도장을 아 찍는
거죠 그래서 1882년 5월 22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조인이 됩니다 이때에도 또
조선이 조선 측에서 우리가 속방 얘기라는 걸 집어 넣겠다는 거를 슈펠트 거부를 거절을 거꾸로 거절을
합니다 그랬는데 이틀 후에 조약을 맺은 이틀 후에
고종이 슈펠트 테 문서를 보내면서
우리는 어쨌든 중국의 속방 이을 밝힙니다 그 문서가
이렇습니다 대조선국 국주가 좋아합니다 생각건데 조선은 본뒤 중국의
속방이지만 내치와 외교는 예로부터 대조선국 국주의 자주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대조선국 대미국이 상호 입학했으니 이치상 평등하게 평행하게
서로 대하야 할 것입니다 대조선 국주는 장 조약 내의 각 조관 반드시
자주의 공예 규범에 따라 승인하고 준수할 것을 분명히 윤허 있습니다 제
대조선국이 중국의 속방이 되는 문제와 관련해선 그 분수에 따라 응당 행해야
하는 각 사항은 모두대 미국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습니다 위원을 파견해서 조약을 체결하는 것 외에
문서를 갖춰 조회하니 조회하시기 바랍니다 대조선국 개국 491 중국
광서 8년 4월 어 얼마나 조선이 중국의 속방 이었다는 개념이
얼마나 뿌리 깊었고 강했다는 거 뭐 그렇게들 흔히들 이제 미화를 하는데요
뭐 아유 뭐 말이 석방이 사실은 그 내치와 외교는 우리가 다 우리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 사실 간섭받는 거
없습니다 실질적인 독립은 다 독립 국가로 역할은 다 했었다 그러지만이 문서들과이 당시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요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조선은 중국의 속방 이을 그러니까 소위 서양 사람들이 이
원하는 그런 관계를 맺다 하더라도 우리는 중국하고 계속해서 주종 관계에
그거를 이어가겠습니다 그 전례들을 계속 행할 것이고 그거는 미국하고
관계하는 상관이 없습니다는 걸 굳이 얘기를 합니다 그만큼 조선의 독립
정신은 굉장히
약했었는데 영국함대 사령관이 또 이제 옵니다 왜 그러냐면 서구 열강들이 다
아시아에 일찌감치부터 시작해서 뭐 인도부 시작해서 뭐 월남 미안마 뭐
전부 다 중국에서 일본까지 해서 다 열었습니다 다 수결 했는데 조선만
끝까지 남아 있는 거죠 1876년에 일본하고는 했다 그러지만 그다음부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지금 1882년에 미국하고 한 거예요 미국 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영국에서 영국 극동 함대가 사령관이 나타나서 미국하고 있으면 우리 우리
하고도 하자 그럽니다 그랬더니 어떡합니까 마건충이 해줬던 써줬던 조미수호
통상가 그거를 그대로 영국하고 조영 수호 통상 조약을
맺습니다 또 마건충 협상을 해 줘 갖고 마원 충은 또 조선이 석방이라는
걸 넣으려고 조선은 중국의 속방 이다라는 거를려는 걸 또 영국이 거절을 합니다 6월 말에는
또 천국 독일 사가 와서 우리도 하겠다 그래서 6월 30일 날 조독
수호 통상 조약도 맺어집니다 세 문서가 내용이 똑같습니다 그리고
매번 고종은 친서를 첨부를 해 갖고 우리는 중국의 속방이다 그렇지만
당신하고 관계는 상관이 없다라는 거를 밝힙니다 서구 열강들이 중국에 어
오기 시작하고 일본에 가고 그리고 이제 조선에 오면서 중국은
1848년 1차 앞편 전쟁 때문에 열어야 됐었고 일본은 이미 1953년에 해리스 조약을 통해서
미국하고 그냥 수결을 해버리면서 개을 완전히 해버리는 거고 근데 조선은 계속해서 안 하고 있어요 그니까
그때마다 영국 군함들이 미국 군함들이 뭐 프랑스 군함들이 조선 근해에 이제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럼 나타나면은 그 누가 그래도 가서 상대를 해야 되면은 이제관 를
파견해서 상대를 하면은 미국이 아 우리가 통상 조약을 좀 맺고 싶습니다 선원들이 혹시 난파 돼서 그러면
서로가 인도할 수 있는 인도 조약도 체결 합시다 이제 이런 얘기를 설득을 하는 거죠 그러면요 그때마다 조선
관리들이 뭐냐 뭐라 그러지 아세요 우리는 중국의 속방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니다 청에 가서 중국에 가서 논의를 해라 그럽니다 그러면 이제이
사람들이 청에가 갖고 아니 그 우리가 조선하 좀 그 국교를 맺고 싶은데
갔더니 당신들을 통해야 된다고 그랬더니 속방 이지만은 내치와 외교는
자주적으로 하는 거기 때문에 조선하 가서 하라고 그러니까 도대체 서양 사람들이
전보다 야 이게 도체 속관 속방 관계라는게 뭐야 근데 그거를 이용해서
조선은 쇄국을 계속 유지하는 거고 서양 하고는 안 하겠다라는 거를 핑계를 그렇게 대는 거고요 그리고
중국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속방 어떻게서든지 조선이 남을 수 있도록 그걸 유지를 하려 그러는 거죠 그
시스템을 자 이렇게 되다가 드디어 이홍장의 입장에서나 일본의 메이지
지도자들의 입장에서 아 더 이상 조선을 고립시키는 것은 이게 말이 안 된다 그러니까 이홍장이 적극 나서서
이제 개국을 해라 개국을 해라 이렇게 되는 거죠 슈펠트 일부러 불러서 자기가 손수 앉아 갖고 조미 소동상
조약을 협상을 해 갖고 체결을 해 주는 것까지도 할 정도로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조선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이게 뭔지를 잘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수백년 동안
중국에 의존해 왔던 그 깊은 의존 증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지금 거대한 서구 열광이 일본도 강제로 열어버리고 중국도 전쟁을 해서 격파해
버리는 원명원 불태워 버리는이 정도의 힘이 있는 나라들이 지금 몰려오고
앉아 있는데 한 번도 자주적인 외교라는 거를 500년 역사상 해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중국 하고의 속방 관계 그렇죠 조공 받치는 관계하고
일본하고 소위 말하는 교린 관계라는 거 빼놓고는 아무 나라 하고도 무슨
외교 관계를 맺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무조건 중국에만 의존을 합니다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조선에 만연하는 겁니다 그리고이 의존이
깨지는 계기 그리고이 의존성을 깨뜨려야 되겠다라는 그 자각을
처음으로 하는 사람들이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윤치호 이런 개화파 그이고
그리고 그 자각을 깨기 위해서 개화파를 만들어 갖고 독립 땅이라고
이름까지 붙이면서 그렇게 중국으로부터 독립 이거를 안 하면 조선이 안 된다
이거를 안 하면 근대국가가 될 수가 없다 그니까 그 의식부터 불어넣어야 그게 그렇게 안 됩니다 그래서 결국
가선 어떻게 됩니까이 속방 문제가 해결이 되는게 언제입니까 청일 전쟁입니다
[음악]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중국 보고 그 평화 조약인
시모노 스키 조약의 1조 1항에 뭐라고 써 놓으라 그러냐면 조소는 더 이상 중국의 속방이 아니고 속방
관계에 관련된 모든 전례들을 다 폐지한다 조공 뭐 이런 거를 다
폐지한다고 아예 명시를 해버립니다 그때야 비로써 속방 이게 깨지는데
그래도 의식적으로 안 깨지니까 그 의식을 깨기 위해서 서재필 박사가
10년 만에 돌아와서 독립신문을 만들고 영은문 그렇죠 중국에 식사가
도달하면 조선의 왕이 가서 삼계 구호들을 행했던 그 무학제 있는 그
영웅문을 허물고 거기에다가 독립문을 세우면서 중국으로부터 독립해
중국으로부터 독립해야 된다 물리적으로 이제 일본이이기는 바람에 중국이 완전히 철수를 했지만 조선으로부터
정신적으로 아직도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독립협회를 만들고 독립심을 만들고 독립문을 세우고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그 그게 1896년 있데요 그때까지 그 전에 이게 안
깨집니다 그 안 깨지는 가장
또 적나라한 사건 사태 이렇게 그나마
어렵 살이 고정이 그래도 이동인 통해서 뭐 하여장 통해서 어 황준원
통해서 이홍장 통해서 이노의 가오를 통해서 어떻 설득이 돼 가지고 그래서
간신이 신사유람단 보내고 영선사 중국에 보내고 그러면서 통리 기무 만들고 이렇게 개국을 하려고 하는
찰라에 뭐가 벌어집니까 영남만인소 것이 일어납니다
1881년 3월 25일입니다 영남에 있는 선비들이 연판장을 돌리는 거죠
연명 상소를 올립니다 그래서 만인이 만명이 뭐 상소를 올렸다 그러는데
영남 만인 소가 올라옵니다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방금 수신사 김홍집이 가지고 온 황준
헌의 사의 조선 책략이 한권의 책이 유포된 것을 보니 저도 모르게
머리털이 곤두서고 가슴이 떨렸으며이어서 통곡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말에 의하면 조선의
오늘날 급선무는 러시아를 방어하는 것보다 우선 우선시되는 것이 없는데
러시아를 방어하는 대책으로는 중국과 친교를 맺고 일본과 결속하고 미국과
연합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중국으로 말하면 우리가
번으로 자처해 왔고 신의로 교류한지 거의 200년에 오랜 시일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황제요 짐이요 하면서 두 존칭을 태어나게
사양하지 않고 받으며 그런 말을 한 사람을 용납하고 그런 사람의 글을 받아두었다가 만일 중국에서 이것을
가지고 따지면 시끄럽게 떠든다면 무슨 말로 해명하겠습니다 일본으로 말하면 우가
해야할 나라입니다 국경 요지의 험준하고 평탄한 지형을 그들이 이미
잘 알고 있으며 수로와 육로의 요충지를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터에 우리의 대비가 없는 것을 엿보고
함부로 돌격한다 어떻게 막아 하겠습니까 국경 요지의 험준하고
평탄한 지형을 잘 알고 있다 이게 뭡니까 임진란 때 들어와서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거죠 그게 일본인데 지금 일본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야지
왜 러시아가 무슨 상관 있냐 이렇게 얘기를 하 미국으로 말하면 우리가
원래 잘 모르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공공이 그의 부 부추김을 받아 우리
스스로 끌어들여서 바다를 건너고 험한 길로 미국에 가서 우리 신료들을
지치게 하고 우리나라의 재물을 썼는데도 만일 그들이 우리나라의 허점을 알고서 우리가 힘이 약한 것을
없신 여겨 따르기 어려운 청으로 강요하고 될 수 없는 비용을 떠 막힌다면 장차 어떻게 응대하겠습니다
러시아로 말하면 우리와는 본래 그런 혐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공연이 남의
이관술 빠져서 우리의 위협을 손상시키면서 먼 나라와 사귀고 이웃
나라를 도발하기 하는 전도된 행동을 하다가 헛소문이 먼저 퍼져 이것을 빌미로 삼아 병란에는 men 장차
어떻게 수습 하시렵니까 그러니까 이게 지금 가까이 있는 나라라는 적시하고
멀리 있는 알지도 못하는 미국이랑 뭐 연미 하자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 그러다가 러시아가
우리가 그런 생각 갖고 있다 거 알고 쳐들어오면 어떡 하시렵니까 이렇게 이제 하는 거죠 그리고이어서 말합니다
진실로 황준원 말처럼 러시아가 정말 우리를 집어삼킬 만한 힘이 있고 우리를 침략할 뜻이 있다고 해도 말리
밖에 구원을 앉아 기다리면서 혼자서 가까이 있는 오랑캐 무리들과 싸우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해 관계가
뚜렷한 것입니다 지금 조종에서 무엇 때문에 백해 무익한 일을 굳지 해서
러시아 오랑캐에게 본래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생각하도록 만들고
미국에서는 원래 계책으로 삼지도 않은 일을 계책을 삼게 하여 병란을 초래하여 오랑캐를 불러들이게
합니까 모르는 거죠 국가 전략들이 어떤 것들이 있고 외교 전략 대회
전략들이 미국이 무슨 전략을 짜고 있고 러시아가 무슨 전략을 짜고 있고
일본이 무슨 전략을 짜고 있고 러시아고양이 라이벌 관계가 어떻게해서 이어져서 여기까지 극동회 아지 이르게
됐고 아무것도 모릅니다이 인소가 올라오니까 고종이
이렇게 답을 합니다 간사한 것을 물리치고 바른 것을 지킨 일에 어찌 그대들의 말을 기다리겠는가 다른 나라
사람의 사이 조선 책략의 글은 애당초 깊이 파고들 것도 없지만 그대들도 또
잘못보고 지적함 있도다 만약 이것에 빙자하여 또다시 번거롭게 상하면이는
조종을 비방하는 것이니 어찌 선비로 대우하여 엄하게 처벌하지 않을
그들은이 점을 잘 알고 물러가도록 하라 이때까지는 고종이 개국을 할
본격적으로 개국할 의지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만인 소를 올린
사람들 주동자들을 감옥에 넣습니다 고정이 그랬더니 그다음에 홍재학이라는
선비가 상소로 올립니다 홍학의
소라는 어 상입니다 판 이로의 말에 사는 곳을
삼가야 하는 바 사는 곳에 따라 모습이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가까이 하는 것을 삼가야 하는 바는 가까이
하데 따라 기질이 닮아가기 때문이다 지키는 일을 삼가야 하는 바 지키는 일에 따라 마음이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모습이 비슷해진다는 것은 무 무엇인가 물고기는 물에서 살기에 그 비늘이 물결 모양 같고 사슴은 산에서 살기에
그 풀이 삐죽 거북과 자라는 바 바위 위에 살기에 그 등갑이 바위처럼 험해
기질이 담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철을 묻어두면 돌도 지남철 되고 나무를
물에 담으면 나무도 미끄러워진 마음이 비슷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상하지 않을까 근심하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상할까 봐 근심하게 된다라고
하였으니이는 절실하고 지극한 말입니다 여러분 비유가 굉장히 재밌지 않습니까
이게 지금 조선 사대부들의 논리 구조가 지금이
렇습니다 거북이 등이 둥근 것은 바위 옆에 살아서 그렇다 그럽니다 이게 그
당시의 하 합리성 있니다 여러분 오늘날 온 나라에서 입는 것은
서양 식물이고 서양 물감을 들린 옷이며 온 나라에서 쓰는 것은 서양 물건입니다 접견하는 사람도 서양
사람이고 탐내어 침 흘리는 것도 서양의 기하고 교묘한 것들입니다 사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과 지키는 일이
다 서양의 것이니 형체와 기질과 마음이 어찌 다 서양 것으로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대체로 서양의 학문이 원래
천리를 문란하게 하고 인륜을 멸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심합니다
서양의 문물은 태반이 음탕한 것을 조장하고 욕심을 이끌며 윤리를 망치고
사람의 정신이 천지와 통하는 것을 어지럽히 귀로 들으면 내장이 뒤틀리고
눈으로 보면 창자가 뒤집히며 코로 냄새 맞거나 입술에 대면 마음이 바뀌어 본성을 잃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전염병이 전염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입니다 중국이 시궁창에
빠지자 온 세상에 짐승 냄새가 풍긴지 300년이나 되었습니다 한줄기 봄이
유독 우리나라에만 붙어 있는 것은 비유하면 천지의 숙살 a 기운이 가득할 때 큰 과일 한계가 높이
달려서 생기가 가지 끝에 남아 있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천지가 애호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소중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찌 차아 이것까지 없애
버려서 음만 있고 양이 없는 세상 으로 만들겠습니까 만물 생산하는
천지의 마음이 결코 이렇듯 어둡지는 않을 것입니다 300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명나라가 멸망했고
그다음에 어떻게 됐습니까 주자 성리학의이 문명은 중국
천지에서 다 사라지고 대륙에서도 사라지고 오직 조선에서 남아 있는 거죠 다른게 다 죽었는데 한 나무
끝에 가지 끝에 딱 열매 하나가 매 열려 있는데 그게 우리 소중한데
이것마저 따서 이것마저 없애려 그러십니까 이렇게 지금 홍제이 장소를
올린 겁니다 그러면서 전하는 무슨 까닭에 온나라 사람들의 입으로 한결같이 말하는 공론을 이처럼 굳게
거절하는 것입니까 전하는 따르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형을 가하고 유배를 보냈으니 이것이 간언을 따르는 성주의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말세의 간하는 말을 거절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이것이 겸손하게 선을 받아들여
대업을이는 이룩하는 것입니까 만하게 자기 스스로 성인인 치하는 것입니까
전하께서 이처럼 전에 없던 지나친 조치를 취하고도 막연히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학문을
일삼지 않으므로 아는 것이 이치에 박지 못하고 마음은 사심을 이기지
못하며 안일에 빠진 것을 달게 여기고 소로 권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당신 공부 안에서 모양입니다 도덕이 뭔지 인이 뭔지
완전히 이제는 어두워졌습니다라고 상소를
올립니다 정말 기계는 대단하지만 세상을 저렇게 잘못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울분에 찼으면 자기 말이 옳다는 것에서 확신
찼으면 주상을 상대로 저렇게 대놓고 비난을 합니까 결국 고종이 홍자를
참수 그러면서 조선의 의정 사파들은 완전히 들고 일어나기
시작합니다네 오늘은 조선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 어떤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미국하고 어 수교를 하게 되는가 저이 통상 조약을 맺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걸 맺게 만든이 국제적인 요인 조선을 에워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 살펴봤고요 그리고 이제 급격히 조선이 개국을 본격 적인 이제
계곡을 하게 되는 거죠 미국 하고도 조약을 맺고 영국 하고도 맺고 독일 하고도 맺고 그러면서 강화 조작을
맺었을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진정한 의미에서 이제 개국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니까 의정 사파들은 거기에 대해서 극렬하게 반응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 반응이 그 급격한 개국에 대한 반대가
결국은 임오군란의 어 발발 어
과정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해 보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
[음악] l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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