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전제조건 없는 대북 대화’를 제의해야 하는 이유” - 유코리아뉴스
“문재인 정부가 ‘전제조건 없는 대북 대화’를 제의해야 하는 이유”
세 번째 - NCCK 화해통일위원장 나핵집 목사
김성원 기자승인 20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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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릴레이 통일코리아>
혁명과도 같았던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거쳐 정권이 바뀌고 우리 사회도 뭔가 움틀대고 있다. 그 배경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자리하고 있다. 변화는 누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정권이 변화를 말하고 추동할 수는 있지만 진행하고 완성할 수는 결코 없다. 상대방이 있는 남북의 화해와 통일은 더욱 그렇다. 남한에서만도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심각한 갈등과 긴장이 빚어진다. 통일 분야에서 집단 지성이 꼭 필요한 이유다. 인터뷰 <릴레이 통일코리아>는 보수-진보, 유명-무명, 국내-국외 등 통일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가감없이 소개하고 토론하고 공감하자는 취지다. 일종의 통일을 향한 마라톤인 셈이다. 몇 명이나 만날지 언제까지 할지 기약할 수는 없다. 다만 수년 또는 그 이상 걸릴 거라는 각오는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 동포와 외국인, 나아가 북한 사람들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여년 가까이 갈고닦았던 기자로서의 역량을 다 쏟아부어 보려 한다. 그렇게 만나고 써나가다 보면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중요한 건 그 자체가 통일의 과정이고, 그 과정을 통해 서로 이해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인터뷰가 쌓여가다 보면 남북의 화해와 통일도 어느 새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와 있지 않을까.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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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전 서울 상계동 열림교회 담임목사실에서 나핵집 목사(65)를 만났다. 나 목사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목정평) 상임의장,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총회 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누구보다 통일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목회자다. 꽉 막힌 남북 관계의 해법은 뭔지, 남북의 화해를 위한 교회의 역할은 뭔지 들어봤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회 위원장이자 서울 상계동 열림교회 담임인 나핵집 목사가 남북 현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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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자마자 나 목사는 우선 한국교회가 민주화운동에서 통일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해왔던 이유부터 설명했다. 박정희의 독재가 최정점에 달하던 1970년대 민주진영 내에서는 때 아닌 논란을 벌이고 있었다. 민주주의가 먼저냐 남북통일이 먼저냐, 이른바 ‘선통일 선민주’ 논란이다. 이 논란은 1980년대까지 이어져 이른바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주의)의 논쟁과 분열로 이어진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같은 에큐메니컬 진영이 민주화운동에서 통일운동으로 방향 선회를 한 건 전두환 신군부에 맞선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 때문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WCC(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 참석하고 있던 NCCK 회장 김관석 목사와 박형규 목사는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하고 WCC 총무에게 양해를 구한 뒤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곧바로 국내에 들어올 수는 없었다. 입국과 동시에 신군부에 구속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NCCK 총무였던 김관석 목사만 국내에 들어온다. 대신 일본에 머물고 있던 지명관 박사(한림대 석좌교수 역임), 오재식 박사(월드비전 회장 역임, 2013년 별세) 등과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광주에 들어가서 찍은 영상을 함께 보면서 '광주'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러면서 자각에 이른다. 민주화운동·인권운동보다 남북통일이 선행되어야 이 모든 사태의 뿌리도 해결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이때부터 오 박사를 비롯해 강문규 박사(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역임, 2013년 별세), 박경서 박사(현 대한적십자사 회장) 등 국내 에큐메니컬 진영의 주요 인물들이 나서서 WCC가 남북 화해의 중재자로 나설 것을 적극 요청하게 된다. WCC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1984년 10월 일본 도쿄의 도잔소(東山莊)에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정의에 대한 협의회’를 열고 남북한 교회를 초청했다. 북한교회는 이 회의에 참석은 못했지만 국제 에큐메니컬운동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통일 논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광주'의 심각성을 논의하고 ‘세계교회가 한반도 통일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는 선언서를 발표한다. 이것을 일명 ‘도잔소 프로세스’라고 부른다.
이 프로세스에 따라 WCC는 그 해 11월 WCC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부장 등이 북한을 방문해 기독교 인사들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난다. 그리고 1986년 9월 2일부터 5일까지 스위스 글리온에서 WCC가 주최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1차 기독교 국제협의회’에서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 기독교인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 회의에서 남북한 교회는 “남북한 교회들이 대화의 분위기를 만듦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합의하고 감격적인 성찬식을 함께 나눈다. 부활절 공동기도문을 작성해 함께 예배드리는 데도 합의한다. 1988년 11월에 열린 제2차 글리온 남북기독자협의회에서는 ‘한반도 기도문안’을 공동으로 작성해 8.15를 앞둔 주일에 남북 공동으로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기도할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그 공동기도는 1989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오는 13일에 남북이 공동으로 작성한 공동기도로 한반도 화해와 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연다.
1989년부터 시작한 한반도 평화통일 남북 공동기도, 지금은 세계 교회가 동참
그 전까지만 해도 NCCK에서는 조그련(조선그리스도교연맹) 등 북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 나 목사는 “그때부터 세계교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 1981년 독일을 중심으로 한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 기독자간의 대화’가 비엔나에서 열리고 2차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렸다. 여기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국내외 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하게 된다. 이것을 남쪽 정부는 ‘친북 세력’으로 낙인찍었다. 그 당시 NCCK마저도 북쪽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시각은 아니었다. 심지어 북한 조그련이 WCC에 가입하려고 할 때도 NCCK가 반대를 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서로간의 만남을 통해 적대의식이 허물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세계교회가 한반도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2003년부터는 세계 무대가 아닌 한반도에서 기도회를 열게 된다. 그 계기는 이렇다. 나 목사의 설명이다.
“2003년에 ‘한독협의회’라고 해서 독일 교회가 북쪽 교회와 남쪽 교회 대표들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남북 교회가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아놀드하임에 모여 협의회를 했었다. 저도 그때 기장총회 평화통일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거기서 조그련 강영섭 위원장에게 ‘우리가 이제 기도문만 낭독하지 말자. 또 세계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하는 것보다는 남과 북이 초청해서 한반도에서 모이자’고 제안하고 협의해서 그 해 5월 기장총회와 북한 조그련이 ‘6.15 공동선언 이행 촉구를 위한 기도회’를 금강산의 지금 금강산호텔 자리인 김정숙휴양소에서 개최했다.”
2004년엔 도잔소 회의 20주년 기념 회의가 도잔소에서 열렸다. 강영섭 위원장을 만난 나 목사는 또 다시 제안을 한다. 기도회에 개 교단인 기장과 조그련만 참여할 게 아니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NCCK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기도회는 남북 교회가 공동으로 평양, 금강산을 돌면서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순회 기도회는 6번 정도 진행되다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중단되고 만다. 지금 남북 공동 기도에는 세계교회가 참여하고 있다. 2013년 10월 WCC 제10차 부산총회가 계기가 됐다. 당시 부산총회에서 채택한 ‘WCC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는 “용기, 보살핌, 소통, 고백, 화해 및 헌신과 같은 도잔소회의의 정신을 구체화한다. 8월 15일 이전 일요일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주일’로 지정하여 남북한 사람들 및 교회들과 더불어 함께 기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성명은 곧 세계교회의 행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나 목사는 지난 6월 26일~7월 8일 영국과 독일, 스위스 제네바를 다녀왔다. NCCK가 지난해부터 벌이고 있는 평화조약 캠페인을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 북한 조그련 관계자들도 만났다. 사실 그게 궁금했다. 북한은 왜 문재인 정부에 실망했고, 대화제의에 응하지 않고 있는지 조그련 사람들을 만난 이들의 얘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나 목사는 “독일 가기 전에 중국 심양에서 북측 관계자들을 만났었다”고 밝혔다. 나 목사는 “심양에 들어가려고 할 때 통일부에서는 ‘안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박근혜 정부 때였다”고 말했다.
열림교회 담임목사실 벽에 붙은 '민족공조'라는 글씨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같은 교단 소속의 목회자가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유코리아뉴스
문재인 정부 이전에 합의한 평양 기도회가 문재인 정부 들어서 취소된 이유
-이번에 만나신 게 아니라 박근혜 정부 때 심양에서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셨다는 말씀인가?
그렇다. 그때는 (심양에서는) 평양에서 대규모 기도회도 8월 13일에 하자고 북측에서 다 합의를 해줬다. 그런데 이번에 독일 가니까 확 달라진 거다. ‘그럼 지난번 약속한 거는 뭐냐?’, ‘8.15 대회 전에 NCCK 대표들을 평양에 초청하는 것도 합의했는데 그건 뭐냐?’고 물었다. 이미 NCCK 18명에게 초청장이 와 있는 상태였는데, 그것도 북측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다 취소했다. 취소하면서 그 영문을 몰랐는데 이번에 독일에 가서 그게 풀린 거다. 북한은 나름대로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제가 보니까 한미연합군사훈련이나 유엔 결의를 통해 북한을 계속 제재하고 압박하니까 남과 북이 교류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렇게 방향을 튼 것 같다.
-북한 윗선에서 그렇게 결정한 것 아닌가?
북한 정권의 결정에 따라 취소한다는 공문을 보낸 거다. 그런데 왜 그런지 내용은 얘길 안한다. 아마 추측하건데 북미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한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이런 결심으로 하고 있으니 남쪽은 좀 가만히 있으라’는 것으로 느껴졌다.
-남북 관계 개선보다 북미 관계 정상화가 먼저라는 입장인가?
그런 거다. 우리도 거기서 요구를 많이 했다. 북측이 자꾸 ICBM 발사하니까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는 거고, 그러니까 국제사회의 제재나 압박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거다, 이렇게 얘기했는데도 안 먹혔다. 우리가 귀국하자마자 또 ICBM 발사하지 않았나(북한은 ICBM급인 화성-14형을 7월 4일 발사했다. -편집자 주). 북한은 이미 자기들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고 미국이 눈 하나 깜짝 안하니까(그렇게 발사한 것 같다). 미국은 내부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협상에 나올 것이다. 그래서 저는 (북미간에) 지금 물밑에서 분주하게 협상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북미간 물밑접촉을 얘기하시는 건가?
그렇다. 겉으로는 서로가 죽일 것처럼 으르렁거리지만 상황은 다르다. 북쪽은 어떻게 보면 ICBM을 발사하면서 자기들 나름대로의 목적은 충족했다고 본다. 여기서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미국도 자기들이 해놓은 말 때문에 쉽지는 않을 거다.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제재를 해나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나오면 문제가 되니까 물밑 접촉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도 미국이 북한과 협상했다는 것 아닌가. 밑으로 협상을 하면서 북측이 ‘폐연료봉 다 사가라’ 이걸 요구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걸 남쪽 정부에다가 그것을 부담시키니 이명박 정부가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의 몸값이 훨씬 올라간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까 미국도 북한을 감당하기 힘든 거다. 남한한테도 감당하라고 하는데 남한도 감당하기 힘들고. 지금 이런 상황이다.
-북미관계는 그렇다 치고, 문재인 정부가 ‘영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담대한 발걸음’, ‘남한 주도의 남북관계 회복’ 이런 담론들을 제시했는데 북미관계가 악화되다 보니 사드 배치도 앞당기고, 한미 미사일 발사훈련도 하고 북측이 여기에 굉장히 반발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문재인 정부의 이런 행보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문재인 정부는 어쨌든 북쪽과 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풀려고 하는 의지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의지만 가지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북쪽의 상황을 정확히 읽고, 북의 요구가 뭔지를 정확하게 읽고 그 요구를 가지고 미국을 설득해 내야 한다. 주변국가들을 설득하면서 가야 남쪽 정부가 존재의 가치가 있는데 제가 볼 땐 그 부분을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만 내놓고 있다. 그 내용은 너무 좋다. 그런데 이게 북쪽 입장과는 안맞아들어가는 거다. 북쪽은 어떻든 고도화된 ICBM과 핵억지력을 가지고 미국과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핵은 중지하고 대화하자’, 즉 북한을 더 압박하고 제재해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겠다고 하는 건데 북한 리용호 외무상도 강경화 외교부장관 만나서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이) ‘진정성이 없다’ 이렇게 나오는 것 아닌가. 결국 문 대통령이 그런 부분들을 정확하게 읽었다면 ‘아무런 전제 없이 대화하겠다. 그리고 ICBM이든 핵실험이든 한미군사훈련이든 이 모든 것을 협상테이블에 올려놓고 얘기하겠다. 대화하자’ 이렇게 나왔으면 아마 북측이 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제안이 북측의 요구에는 못미친다는 건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제안들의 앞부분에 너무 미국 쪽 입장을 가지고 압박하는 형식이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한미동맹을 너무 앞세운다. 물론 한국정부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미국이란 패권국가 앞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그런 한계 말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저는 미국의 외교력이나 정책이 굉장히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중국과 밀착하는 상황을 연출했고, 한미동맹이라는 끈은 있었지만 중국과 밀접하게 다가가는 상황이었다. 또 북한은 중국하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혈맹이니까 이런 모든 부분들의 고리를 떼내고 한미일이라고 하는 강고한 동맹을 통해 동북아의 패권을 미국이 끌고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돈을 가진 일본을 앞세워 자기들이 돈을 안들이고 끌고가야 하는데, 그 최선의 방법이 제가 볼 때는 사드였던 것 같다. 사드를 성주에다 박아놓고, 사드 문제로 남쪽과 중국과의 관계를 틀어놓고, 대북 압박에 있어 중국 카드를 계속 강조하면서 중국과 북한과의 간격도 상당히 벌려놓는 이러한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사드라고 하는 것이 제가 볼 때는 ICBM을 막는 단순 방어무기가 아니라 중요한 외교안보의 도구로 미국이 선택해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절차를 무시한 사드 배치 강행은 전임 정부인 박근혜 정부의 과오였다. 그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궁에 빠져버린 것이다. 나 목사는 최근 만난 조명균 통일부장관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나 목사는 “지금 우리가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나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요하는 그런 상황”이라며 착잡해했다.
-딜레마에 빠진 문재인 정부의 대북·통일정책과 관련해 조언을 하신다면?
한 가지만 조언을 한다면 전체적으로 국제사회가 이렇게(대북 제재와 압박으로) 가니까 거기서 빠질 수는 없을 거다. 그 흐름으로 가되 그걸 너무 강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고, 문재인 정부의 워딩은 ‘북쪽과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시작하겠다’여야 한다. 그리고 북쪽에서 핵실험을 하든 ICBM을 발사하든 북쪽이 그쪽으로 강공하게 가더라도 ‘남쪽은 끝까지 평화를 주장하고 대화를 주장해야 한다. ‘우린 그 길로 가겠다’는 걸 분명하게 선언하면 제가 볼 때는 남쪽 정부가 국제적으로도 상당히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운신의 폭도 넓어질 거다. 지금처럼 긴장관계에 있을 때는 특단의 방법으로 특사를 파견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문제를 푸는 것이다. 이번에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만났을 때 ‘우리가 특사를 보내려고 한다.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해보자’ 이렇게 풀어갔더라면 좋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보수교회가 중심이 돼 시작한 1990년 중반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NCCK는 어떻게 보면 형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공동기도 형태로 남북관계의 끈을 이어오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걸 ‘남북 관계 중단에도 불구하고 교회만큼은 끈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평가해도 되겠나?
그렇다. 우리는 어떻든 박근혜 정부하에서도 평양을 방문했었다.
-마지막으로 방북하신 게 언제인가?
2015년이다. 김정은 정권이 등장한 이후 평양엘 다녀왔다. 그때 북한의 변화된 모습들을 봤고, 재작년엔 WCC, NCCK 사람들이 평양에 다녀오기도 했다. 심양에서는 (남북 교회 관계자들이) 자주 만났다. 그런데 그때마다 정부가 불허했다. 처음엔 통일부 하고 협의하면서 통일부 말을 들었는데, 세월호 사건이 나면서 ‘이렇게 가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는다면 민족 공멸로 가는 건데, 이게 바로 세월호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기자회견을 했다. ‘이제부턴 불복종 운동을 선언한다.’ 그후부터 계속 가서 만난 거다. 그러면서 계속 과태료를 맞았다.
통일부가 NCCK에 물린 과태료는 NCCK가 낸 북한주민접촉승인신청을 통일부가 거부했음에도 강행해서 만났다는 이유에서다. NCCK 관계자들에게 물린 과태료는 수천 만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NCCK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나 목사는 얼마 전 조명균 통일부장관을 만나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해놓은 상태다. 새 정부의 통일부가 만약 과태료를 취소하지 않는다면 NCCK에서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조 장관은 일단 ‘고민하겠다’고 한 상태다. 어떻게 보면 이 과태료 문제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 관계 개선 의지의 시금석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내년이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 30주년인데 그와 관련한 일정은 없나?
내년 3월 심포지엄을 갖는다. 세계교회 에큐메니컬 지도자 60-70명 정도가 참석할 것이다. 이미 안이 다 나왔다. 단순한 세미나가 아니라 이런 분단 과정을 통해서 아픔을 겪는 얘기들도 듣고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해서 세계교회를 움직이는 일을 하려는 것이다. 한쪽으로는 문서팀도 조직해서 문서도 낼 계획이다. 88선언 해설서 책자도 내려고 한다.
-88선언을 다시 들여다봤더니 30년 전의 선언이 아니라 지금 상황과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내년 30주년을 기념할 게 아니라 다시 지금 현실을 반영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88선언은 다른 게 아니라 7·4 남북공동성명에 나오는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이라는 정신을 그 속에 담았다. 그런데 우린 교회니까 제일 중요한 죄책고백, 민의 참여를 넣었다. 민의 참여가 들어가야지만 진정한 통일이 될 수 있다. 이미 88선언에서 평화협정 문제도 거론하고 있다. 평화가 정착이 되면 외국군도 철수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부 교단에서는 자기들 입장과 안맞는다고 반대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런 문제 때문에 NCCK를 압박하고 있다. 어쨌든 88선언은 우리나라 통일의 대장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에 민간단체들이 힘을 입어 통일운동에 나서게 되고, 실제 88년도에 그런 선언이 나올 수 있었던 데는 환경적 요인도 있다. 노태우 정부 들어서 88올림픽 때문에 북방정책을 추진하면서 7.7특별선언이란 걸 내놓는다. 그동안 적대관계였던 남북을 동반자 관계로 설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1991년에 남북기본합의서도 체결하면서 화해분위기로 쭉 갔던 것이다. 하지만 문익환 목사님은 노태우 대통령의 7.7특별선언이 88서울올림픽을 위한 ‘워딩’으로 비쳐지니까 그 다음해에 방북을 결행하셨다. 그러면서 한바탕 사회가 뒤집어지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 이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통일에는 큰 전환점이 됐다고 본다.
-목사님께서 통일운동에 뛰어들게 되신 게 문익환 목사님 때문이라고 하던데?
그런 이유가 많긴 하다. 그 당시엔 수유리 송암교회 부목사로 있었는데 제가 사는 집이 문익환 목사님 댁과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그래서 자주 뵐 수 있었다. 어디 모시고 다닐 때도 많이 있었고, 문 목사님과 얘기도 많이 나눴다. 기장은 1986년부터 교단 내에 평화통일위원회를 두고 있었다. 당시 기장 평통위원장을 홍근수 목사님이 하셨고 서기를 내가 했다. 홍 목사님과 내가 평화통일 문제를 쭉 다뤄나가면서 홍 목사님은 세미나를 좋아하셨고, 나는 교인들에게 인식을 심어주려면 현장 중심으로 평화기행이라든가 체험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비무장지대, 빨치산 현장, 제주 4.3항쟁 등 민간인 학살지 등을 찾아다니는 걸 10년 가까이 했다. 그러면서 총회 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되니까 더 그 쪽으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대북 접촉 하면서 하나씩 밟아나가게 된 것이다.
-문익환 목사와의 개인적인 일화라고 한다면?
문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사흘 전(문 목사는 1994년 1월 18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편집자 주) 문 목사님과 택시를 타고 같이 갔다. 시내 어디 갈 일이 있었다. 그때 막 ‘통일맞이 7000만 겨레모임’(지금의 통일맞이)을 만들고 있을 때다. 문 목사께서 저한테 하시는 얘기가 ‘나 목사, 지금 말이야. 이 나라가 지금 심각한 지경이야. 범이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있는데 머리가 들어가 있어. 꺼내야 해. 그래서 통일맞이 7000만 겨레모임을 만들고 있는데 열심히 해야 돼.’ 아주 절절하게 말씀하시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나서 문 목사님은 사흘 후에 돌아가셨다.
남북 철도 연결의 꿈
-문 목사는 시인이기도 하셨고, 꿈이나 잠꼬대 같은 이야기들 많이 하셨는데, 나 목사님께서도 ‘예언자적 상상력’ 이런 표현들을 많이 쓰시더라. 지금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는데 어떤 상상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종교인들은 일반 정치인이나 경제를 하는 사람들과는 달라야 하지 않나.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 민중들을 바라보는데, 실제 남북관계만 풀린다고 해서 남북에 평화가 오는 건 아니지 않나. 옛날에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통일 이후 한반도가 오히려 더 불안해질 수도 있다. 지금이야 남북이 갈라져 있고 미국, 중국 사이에서 긴장관계가 유지되고 있지만 남북이 하나 됐을 때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옆에서 남북은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 있는 거다. 과거를 보면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세력이 있고 이 역외 패권에 기대어 자기 안보를 지키지 않았나. 전 세계가 줄서기를 했던 것이다. 그게 군사안보 측면에서 보면 힘 있는 나라에 줄을 대서 내 생명과 안보를 지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냉전체제가 사라졌으니까, 문재인 정부도 이런 것들을 생각할 것 같은데, 지금 안보라는 개념이 단순 군사안보 개념이 아니라 인간안보, 생태안보, 다자안보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저는 동북아 질서를 위해서 미국이 한반도에 들어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끌어들이더라도 동북아의 모든 나라가 함께 협의를 해서 안보를 지켜나간다면, 즉 군사훈련을 해도 다 같이 함께 하고, 이렇게 하면서 동북아지역 평화를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와다 하루키 같은 사람은 ‘공동의 집을 짓자’ 이런 얘기들을 하고, 이일영 교수(한신대) 같은 분은 국가간에는 영토문제 등 민감한 문제들이 엉켜 있기 때문에 지역간·도시간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북아 평화를 만들어가자,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앞으로는 다자안보로 가야 할 거다.
-어떤 꿈을 꾸고 계시나?
저는 꿈이 하나 있다. 2005년도부터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정책협의회에서 내놓은 게 있는데 북한 철도를 복원하는 일을 남한 종교가 앞장서서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저는 이것을 ‘민족혈맥 잇기’라고 명명했다. 이런 얘기를 우리 총회에도 제의했고, 총회를 통해 NCCK에도 제의했는데 NCC가 이걸 받았다. 북한의 철도가 시속 30~40㎞밖에 안되는데 어떤 경우는 레일 밑에 철 대신 통나무를 깔아놓은 경우도 있다. 그렇다 보니 물류 자체가 이동이 잘 안되고 있다. 철도 침목을 종교인들이 대고, 철로 레일을 우리 정부가 깔아서 시베리아, 중국과 연결하면 좋겠다. NCCK만 하면 다른 종교가 소외될 수 있으니까 KCRP(종교인평화회의) 같은 데와 같이 컨소시엄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한다. 7대 종단이면 전 국민 아닌가. 그래서 철도침목운동을 벌여나갔으면 좋겠다. 철도 침목 하나 놓는 데 북쪽에서 사면 2만원이면 되고, 남쪽에서 사면 8만원 정도 한다. 그 철도 침목을 헌납만 하지 말고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문, 발원문, 기원문 등을 각 종단별로 다 받아서 도라산역에 유리벽을 쌓아 기념 상징구조물을 만들어 새겨 넣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전세계 사람들이 와서 보는 관광지도 되고, 종교간 서로 협력하면서 평화를 위해서 일했다고 하는 상징이 될 수 있다. 이 기운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주어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이런 꿈을 꾸고 있다.
-북측에도 이런 제안을 해보셨나?
지난번 조그련 강 위원장을 만나서도 이런 구상을 얘기했다.
-반응이 어떻던가?
그냥 듣기만 했다. 하여튼 자꾸 얘기하다 보면 처음엔 상상이지만 나중엔 그 상상이 실천이 되고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철도청 관계자도 아니고 목사님이 레일 얘기를 하시니까 좀 신기하긴 하다. 특별히 철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
우리가 지금 반도 아닌가. 완전히 고립되어 있지 않나. 해외로 나가려면 전부 비행기로 나가야 하는데, 그래서 육로를 뚫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저만큼 열차 많이 탄사람도 드물 것이다. 유럽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만 두 번 50일 정도 탔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지도 타봤고, 베이징에서 단둥까지도 가봤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보면서 느끼는 건 ‘이렇게 광활한 세상을 우리 학생들이 수학여행도 가고 유럽까지 간다면 학생들의 상상력이 문화계, 예술계, 산업계 모든 곳에 다 배어들게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러시아의 유명 시인, 작가들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 광활한 대륙을 보며 나온 게 아닌가.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이 좁은 땅에 갇혀서 지내는 걸 보면 너무 안타깝다. 이걸 뚫어서 아이들로 하여금 광활한 세계 속에서 대지를 품고 뭔가 상상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 민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과거엔 아리안족이 이동하면서 한반도 끝까지 왔지만 이제는 여기서 기운을 만들어서 다시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그래서 평화를 위해서 공헌하는 그런 젊은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럽 가서도 그런 얘기를 했다. ‘우리가 단순히 한반도의 분단 문제만 얘기하는 건 아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 수단 문제, 나아가 미국이 멕시코와의 분리장벽을 쌓고 있는 이런 일들이 세계 도처에 많은데 분단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고 하는 것은 결국 한반도 분단 문제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 그런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평화적으로 가야 해결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그런 문제를 가지고 함께 풀어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문제들이 응축된 한반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 문제를 풀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거다.’
열림교회 예배당 현관 옆에 붙은 평화통일을 위한 교우들의 기도제목들이다. 지난해 8월 한반도 평화통일 남북 공동기도주간에 교인들이 써온 것이다. 1년 동안 붙어 있던 이 기도제목들은 오는 13일 열리는 2017 한반도 평화통일 남북 공동기도주일에 새로운 기도제목들로 바뀐다. ⓒ유코리아뉴스
깨알같은 글씨로 쓴 열림교회 교우들의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제목들. 부디 이 기도대로 이뤄지길 함께 손모아 본다. ⓒ유코리아뉴스
우리 모두가 분단 정신병 환자들
-목회와 통일운동을 병행하시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저는 기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분단된 나라 속에서 살면서 가장 큰 선교의 과제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분단 극복이라고 생각한다. 분단체제를 그대로 놓고서는 아무것도 안되는 것이다. 모든 것들의 근저엔 분단이 똬리를 틀고 있다. 모든 걸 다 끌고가다 보면 분단에 걸린다. 성주 사드문제? 반대하면 종북이 되지 않나. 세월호 반대하면 종북 아닌가. 전부 ‘종북’으로 몰고가는 상황 속에서 우리 민족 전체가 ‘분단 증후군’, 심하게 말하면 ‘분단 정신병’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앓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온전한 예배라는 것이 화해를 통해 드리는 예배 아닌가. 그걸 하나님이 받으시는 건데 분단 체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반쪽 예배를 드리고 있는 거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 있는 이상 늘 드리는 예배이지만 반쪽 예배일 수밖에 없다. 그런 게 늘 마음에 남는다. 목회하는 동안 이 문제를 최선을 다해서 고민하고 풀어가는 게 목회자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운동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신앙으로서의 통일, 이렇게 느껴진다.
그렇다. 신앙이다. 결국 그런 신앙적인 고민에서부터 나온 거고 그 고민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 교인들은 매주 수요일 밤에 기도회를 한다. 5개 테마를 가지고 하는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만 해도 39개 정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한다. 사드라든가 평화협정,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같은 것들이 다 기도제목 속에 들어 있다. 기도에서부터 나와야 하는 거다. 기도하지 않고 얘기하는 건 공허하다. 기도하면서 얘기하니까 그게 삶이 되는 거다. 제가 그 문제 가지고 얘기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기도해놓고 어떻게 딴 얘기 할 수가 있겠나. 이번 주(8월 13일)에도 평화통일 예배를 드리는데 지난주에 교인들에게 종이로 된 십자가를 다 나눠주면서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기도문을 다 써서 오라고 했다. 평화통일 주일 때 교회 앞에 한반도 지도를 붙여 놓고 거기에 기도문을 붙이고 기도하고 성찬을 받는 거다. 남북의 화해를 위해서 기도하고 성찬을 받고, 평화통일 예배를 드리고 그걸 1년 내내 교회 입구에 붙여 놓고 있다. 예배드리러 올 때마다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 평화통일이 일상이 될 수 있는 거다.
-귀한 말씀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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