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1945년 조선인 노무동원 관련, 가장 중요한 쟁점은 “조선인 강제연행·강제노동”,과 그 속에 담긴 “조선인 민족차별”이 역사적인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강제연행·강제노동”과 “민족차별”이 한국 학계의 통설이자 일반대중의 상식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재일 조총련계 조선인 박경식이다. 그는 한일국교정상화를 저지하기 위하여 1965년에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이로부터 “노예사냥”·“노예노동”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고, 지금 “강제동원노동자상”을 새우자는 움직임은 오히려 뒤늦어 보일 정도다.
2012년 도쿄대의 도노무라 교수는 {조선인 강제연행}이라는 책을 발표하였다. 그의 책을 보고 내가 노트해둔 것이 다음이다. 숫자는 일본어판 페이지 수다.
* 도노무라(12), 63, 토건 현장에서 반장을 경영하는 조선인들 드물지 않았다·.
* 도노무라(12), 67, 훈련기간 종료 후의 조선인과 동일 대우를 하는 것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
* 도노무라(12), 153, 1942-44년, 탄광노동자 중 조선인은 15.0, 29.0, 33.0%, 단 노무동원 이외의 도일자 포함한 수치.
* 도노무라(12), 154, 1942이후 노동력 부족으로 조선인을 갱내부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
* 도노무라(12), 157-8, 모집 개시후 1년이 지난 1940년 9월말의 조선총독부의 의회 보고에 따르면 송출수 65,344명 중 18.5%에 해당하는 12,071명이 도주. 이유는 유혹 19.8%, 공포 17.7%, 계획적 도항(편승도항) 12.4%, 도시생활 동경 6.6%, 대우 기타의 불평 7.1%, 전직 4.9%, 기타 31.4%
* 도노무라(12), 157-8, 도주의 원인 세가지 도항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자 존재, 기주조선인의 빼가기 공작(전반적인 노동력부족: 도노무라), 탄광`광산에의 부적응자 존재, 시원박(97)25.
* 도노무라(12), 159, 일본제국과 기업의 목표는 증산과 수입의 유지`확대.
* 도노무라(12), 159, 1943년말 현재, 이입자 366,464. 중 도주자 118,735도주율은 32.4%
* 도노무라(12), 161-2, 분쟁의 감소하는데 두드러지는 것은 중간관리자인 노무계와 료장과의 충돌, 조선인 반장두, 통역, 隊長이 관련되는 분쟁의. 분할하여 지배하기 위해 조선인을 중간적 관리를 하게 함.
* 도노무라(12), 162,일본에서 전시기 포함 제국기에 상급자가 하급자 구타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 도노무라(12), 164, 노동자 1인당 연간 출탄수는 1933년이 정점, 이후 하락. 숙련 일본인 갱부의 감소와 조선인 증가 등이 이유.
* 도노무라(12), 186, 1일 식량 배급량, 1939 노무동원 직후 7-8합, 1944년 4.8-5합, 1945 2.8합, 1944년 식량이 분쟁의의 원인으로 두드러짐.4
* 도노무라(12), 192-3, 근로원호 관련.
* 도노무라(12), 193, 공습에 따른 통신의 불원활
* 도노무라(12), 195-6, 1944년 12월 조선인의 도항 기피의 이유들.
* 코헨(1949), 110, 미군전략폭격조사단이 일본 정부의 자료를 기초로 정리한 조사보고(도노무라 2012). 종전으로 갈수록 식량문제가 노무관리의 최대 문제.
* 도노무라(12), 67, 훈련기간 종료 후의 조선인과 동일 대우를 하는 것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
* 도노무라(12), 153, 1942-44년, 탄광노동자 중 조선인은 15.0, 29.0, 33.0%, 단 노무동원 이외의 도일자 포함한 수치.
* 도노무라(12), 154, 1942이후 노동력 부족으로 조선인을 갱내부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
* 도노무라(12), 157-8, 모집 개시후 1년이 지난 1940년 9월말의 조선총독부의 의회 보고에 따르면 송출수 65,344명 중 18.5%에 해당하는 12,071명이 도주. 이유는 유혹 19.8%, 공포 17.7%, 계획적 도항(편승도항) 12.4%, 도시생활 동경 6.6%, 대우 기타의 불평 7.1%, 전직 4.9%, 기타 31.4%
* 도노무라(12), 157-8, 도주의 원인 세가지 도항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자 존재, 기주조선인의 빼가기 공작(전반적인 노동력부족: 도노무라), 탄광`광산에의 부적응자 존재, 시원박(97)25.
* 도노무라(12), 159, 일본제국과 기업의 목표는 증산과 수입의 유지`확대.
* 도노무라(12), 159, 1943년말 현재, 이입자 366,464. 중 도주자 118,735도주율은 32.4%
* 도노무라(12), 161-2, 분쟁의 감소하는데 두드러지는 것은 중간관리자인 노무계와 료장과의 충돌, 조선인 반장두, 통역, 隊長이 관련되는 분쟁의. 분할하여 지배하기 위해 조선인을 중간적 관리를 하게 함.
* 도노무라(12), 162,일본에서 전시기 포함 제국기에 상급자가 하급자 구타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 도노무라(12), 164, 노동자 1인당 연간 출탄수는 1933년이 정점, 이후 하락. 숙련 일본인 갱부의 감소와 조선인 증가 등이 이유.
* 도노무라(12), 186, 1일 식량 배급량, 1939 노무동원 직후 7-8합, 1944년 4.8-5합, 1945 2.8합, 1944년 식량이 분쟁의의 원인으로 두드러짐.4
* 도노무라(12), 192-3, 근로원호 관련.
* 도노무라(12), 193, 공습에 따른 통신의 불원활
* 도노무라(12), 195-6, 1944년 12월 조선인의 도항 기피의 이유들.
* 코헨(1949), 110, 미군전략폭격조사단이 일본 정부의 자료를 기초로 정리한 조사보고(도노무라 2012). 종전으로 갈수록 식량문제가 노무관리의 최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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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서술로부터 나는 “강제연행·강제노동”설이 허구이며, 한국 반일민족주의가 낳은 또 하나의 신화에 불과함을 말해 주는 증거를 다시 확인한다. 조직적·계획적인 “강제연행·강제노동”과 “민족차별”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도노무라 교수가 이상과 같은 서술과 함께 ‘국가에 의한 강제동원’을 주장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강제동원이 없는 나라가 있었는가? 굳이 문제를 삼자면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문제로 삼아야 한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왜 “강제연행”을 버리지 못할까? 일본 지식인,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에게서 발견되는 한국에 대한 자책감이나 동정이라면, 나는 그런 것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또 이러한 개념의 조합과 관념적인 논리 전개는 불필요하고 위태로운 줄타기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보는 일본 지식인들이 없지 않다.
“강제연행·강제노동”을 말하려면, 체계적·계획적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입증하거나, 그것이 없었음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학문적·정치적 상황이다. 도노무라 교수의 책에는 그것이 없다. 오히려 그것을 애써 피하려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책은 도움이 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강제징용노동자상" 설치 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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