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3
[책과 삶]마주 보고 선 남북, 내가 주먹 들면 상대도 주먹 든다 - 경향 모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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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마주 보고 선 남북, 내가 주먹 들면 상대도 주먹 든다
기사입력 2018.02.02 21:06
최종수정 2018.02.0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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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70년의 대화
ㆍ김연철 지음 | 창비 |352쪽 | 1만6800원
1951년 11월1일 휴전협상이 진행된 판문점 일대를 찍은 사진. 사천강에 널빤지 다리가 있어 ‘널문리’로 불린 평화로운 마을은 판문점이 들어서면서 분쟁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창비 제공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수단 공동입장부터 단일팀 구성까지, 진통은 있었지만 모처럼 남북 간 대화를 통해 교류의 장이 마련됐다. 과연 지난 보수정부 9년에서의 관계 단절과 김정은 정권의 핵 개발 강행으로 최고조에 달한 한반도 긴장을 극복할 해빙 국면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올림픽을 둘러싼 작금의 상황에 대해 “‘70년의 대화’ 위에 올라타 있다”고 표현한다. 두 개의 코리아가 전쟁과 “아주 긴 냉전”을 치르는 사이에도 ‘대화’는 늘 존재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남북을 갈라놓은 “적대의 바다가 협력의 공간으로 변하기도 했다”.
<70년의 대화>에서 김연철 교수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70년간의 대북정책을 7개 시대로 나누어 살핀다. 전후 이승만 정부는 휴전 반대와 북진통일론을 앞장서 주장하면서 ‘적대와 상호부정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박정희 정부 시기는 군사분계선상의 빈번한 무력충돌이나 푸에블로호 나포사건(1968) 등으로 ‘제한전쟁’ 위기로 치닫기도 했지만, 7·4 남북공동성명(1972)을 발표하는 등 ‘대화가 있는 대결의 시대’로 요약된다. 전두환·노태우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경제회담, 북방정책, 남북기본합의서 등 뚜렷한 진전이 나타난 ‘합의의 시대’였다. 김영삼 정부가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이전보다 후퇴한 ‘공백의 5년’이라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포용정책을 편 ‘접촉의 시대’,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제재의 시대’로 볼 수 있다.
시대별로 남북관계의 역사적 장면들을 돌아보는 일은 필연적으로 ‘만약 그때 이랬더라면…’이라는 가정을 동반한다. 1954년 제네바 회담에서 통일 대신 평화 정착을 의제로 논의했다면, 남북 간 적대의식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1969년 닉슨 독트린 이후의 데탕트 국면에서 박정희가 남북관계를 독재 연장의 명분으로 삼지 않고, 같은 시기 서독의 빌리 브란트 정부처럼 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북핵 문제 악화로 노태우 정부 시기의 주요 합의가 좌절되지 않고, 정부 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등이 심화되어 정책이 혼선을 빚지 않았더라면. 민주 정부가 햇볕정책으로 김영삼 정부 5년 동안 무너진 대북정책의 철학을 다시 세우는 일에 기울인 노력의 일부라도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데 할애했더라면….
역사에서 ‘만약’은 부질없는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나간 세월을 곱씹는 이유는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저자는 남북관계사 70년 속에서 ‘공포의 균형’ 상태인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얽힌 매듭’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동북아 지역질서와 남북관계의 역학을 보면 반복되는 패턴을 관찰할 수 있다. 북핵을 둘러싼 협상론과 제재론의 구도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협상이 진행될 때는 핵 개발이 멈추거나 더디게 진행되지만, 협상이 중단되거나 표류하면 북핵이 속도를 낸다고 지적한다. 제재와 압박 일변도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북한 핵능력이 고도화됐다. 또 ‘공이 북한으로 넘어갔다’며 북한의 태도 변화만 기다리는 것은 남북관계를 악화시킨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북·미대화가 이뤄지면 자연히 한·미 갈등이 표출되고, 반대로 남북 접촉이 활발해지면 한·미관계에서도 외교적 자율성이 커진다.
한반도 외교는 지난 70년,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강대국 정치와 국제질서에 좌우되어 왔다. 하지만 저자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외교안보 정책에서는 “대통령의 철학과 의지가 제도의 작동을 압도”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키신저나 브레진스키 같은 걸출한 외교 브레인도 “닉슨과 카터라는 전략가형 대통령”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영삼 대통령은 전략도 원칙도 없이 여론에 휩쓸리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혼란을 키웠다고 비판한다.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 자문위원이기도 한 저자가 정말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이 대목에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거울 앞에서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상대도 웃고, 내가 주먹을 들면 상대도 주먹을 든다. 그러나 주체와 객체는 분명하다. 거울 속 상대가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울 속 상대를 움직인다.” 저자는 남북관계를 거울을 마주하고 선 사람에 비유하며, 한국이 능동적인 자세로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북한이 수개월 안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에만 매달려서는 파국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거울의 비유는 당면한 북핵 위기를 관리하는 데서 나아가, 휴전체제에서 종전체제로, 궁극에는 평화체제로 이행하기 위해서, 또한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이루기 위한 대원칙으로 적절해 보인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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