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3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드리는 고언 – 다른백년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드리는 고언 – 다른백년



임마누엘 칼럼 | 2017.10.31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드리는 고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 이름 이만열.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겸 아시아 인스티튜트 소장. 하버드대 언어문화학 박사. 중국과 일본을 연구하다 한국의 중요성을 깨닫고, 한국에 천착.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013),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2016) 출간.


파시즘적 성향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방한 직전에 우연히 촛불집회 1주년이 지났다. 정치에는 여전히 수동성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현실에 환멸을 느낀 필자는, 미국인의 한명으로서 1년 전 밤마다 광화문에 모여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던 열정적인 군중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필자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서 온 고등학생들과 가졌던 토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수세기에 걸쳐 좋은 정부를 추구하며 헌신해왔던 한국인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이제 1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들은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측면에서 정부의 투명성을 향한 가장 초보적 단계의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박근혜와 측근들의 부패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 기후변화 및 트럼프 행정부의 무모한 정책으로 인해 야기된 핵전쟁 위협 문제로부터 시민들의 관심과 주의를 분산시키는 수단으로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촛불집회의 내러티브 역시 박대통령과 소수 측근들의 부패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고 보다 큰 문제인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제도적 부패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제도적 부패는 대부분 미국을 추락시키고 있는 타락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여기저기 미국식 군국주의 및 극단적 민영화도 보인다.

촛불집회 1주년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 한국인들과 한국사회는 과연 자신들을 둘러싼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10월 28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 주최로 열린 촛불 1주년 기념대회 ‘촛불은 계속된다’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노컷 뉴스)

‘진보적’ 대통령 셀카 찍으며 대중적 이미지 키우지만

중요한 정부 직책에 임명된 사려 깊은 이들이 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도널드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발언에 대해 침묵한 채 학생과 셀카 사진을 찍으며 대중적인 이미지를 키우는 ‘진보적’ 대통령이 있다. 한국 대통령은 트럼프가 북한이 국제법에 위반되지 않는 행동과 미국이 수십 년 동안 자행해왔던 것과 같은 죄를 범했다는 구실로 유엔을 북한과의 핵전쟁을 위한 플랫폼으로 이용할 때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바로 미국 대통령이 유엔에서 유엔 헌장을 위반하는 행위에 대하여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문 대통령의 인기를 살펴본다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지미 카터 대통령의 경우 정부의 구조적인 부패에 대한 책임에 직면하게 되었고 상업 언론들이 사소한 모든 문제들을 샅샅이 들추어냄에 따라 인기가 급락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힘든 싸움을 피하고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사소한 문제들로 정권 홍보를 한다. 이제 ‘진보’는 아디다스와 같은 브랜드가 되었으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추구할 소명이 아니다.

동시에 한국의 젊은이들은 흥미진진한 시위가 정치 체제를 바꾸고 유토피아로 안내할 수 있다는 환상 속에 빠져왔다. 정치가 그런 식으로 작동했던 적은 결코 없었으며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1987년에서 2009년 사이에 이루어졌던 한국의 개방된 정치 문화는 1980년대 후반에 있었던 대규모의 학생 시위에 따른 결과만이 아니라 1920년대부터 시작하여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이들의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진 그들은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용기와 확신을 갖고 기꺼이 두들겨 맞거나 투옥되는 것을 감수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이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도 비슷한 신화가 있다. 1960년대 킹 목사는 멋이 있는 연설을 하면서 흑인 민권을 위해서 싸워서 성공했다는 신화를 만들었지만 사실은 1890년대부터 (그전에도) 수많은 흑인들이 민권운동을 하면서 죽었다. 그 덕분에 60년대 활동이 가능하게 됐던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위기를 인식하고 용기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만 필자는 서울을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문제와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기 또는 투자 은행이 경제 전반을 지배하는 전례 없는 상황으로 인해 야기된 기업 및 정부 내 심각한 부패에 대해 언급하는 시위대나 표지판, 심지어는 핀 달린 뱃지조차도 전혀 볼 수 없었다.



더 나아가 한국인들이 전진을 위해 투쟁하는 가운데 위험한 현장은 한국인들의 발밑에서 움직이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지난 40년간 미국이 많은 개입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동안에도 하버드 대학이나 국무부와 같이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기관과 인물들이 한국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현재 그러한 기관들은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 지금의 지도자들이 80년대 유학했을 때와 같은 미국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인들은 미국에서 부상하고 있는 군부 지도자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진보적인 매체도 마찬가지이다. 한 예로 최근 미국은 1991년 이후 처음으로 B-52 전략폭격기가 핵무기를 장착하고 24시간 출격 대기 태세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을 발표한 것은 데이비드 골드파인 공군 참모총장이다. 미 공군은 다른 핵 보유국과의 대립을 촉진시키는 그와 같은 결정이 내려졌음을 즉시 부인했다. 그러나 예비 시설에 대한 개조가 이미 시작되었음은 분명해졌다. 전면전에 대비한 대대적인 준비를 시작하려는 정책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문제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결정은 국방부나 백악관, 의회를 거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새로운 법률이나 공식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공군 참모총장 개인이 직접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 본질 못 보면 촛불시위 벌여도 해결 안돼

이념적으로 파산한 미국에서는 군부 내에서 각 세력들간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번과 같은 위험한 정책 결정이 장성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되어 수행될 수 있다. 이러한 지휘 계통의 와해는 청나라 말기의 군벌들이나 로마 제국 말기의 각 지방 총독(proconsul)들처럼 군사 지도자들의 난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앙정부의 권위가 무너짐에 따라 개별 군 사령관들의 힘이 커지게 될 것이다. 한국인들은 거세당한 국무부가 여전히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의견을 내놓을 것으로 아직도 착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념적으로 파산한 미국에서는 군부 내에서 각 세력들간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위험한 정책 결정이 장성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되어 수행될 수 있다.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참관 등을 위해 방한한 미국 새뮤얼 그리브스 신임 미사일방어청장(왼쪽 둘째부터), 존 하이튼 미국 전략사령관,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22일 경기 평택 오산공군기지에서 패트리어트3 미사일 포대 앞에서 합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그러나 한국의 주류 언론 매체와 대안 매체들은 한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위험한 국면에 대해 논하고 있지 않으며 양 쪽 모두 정치인들의 인격이나 선정적인 스캔들에만 점점 더 빠져들고 있다. 한국인은 본질적으로 눈이 멀었다. 시민들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이들이 촛불 시위에 참여한다 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의에 대한 헌신과 좋은 정부 및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진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소수의 특정 정치인들에 대항하는 시위를 할 수 있으면 대학과 정부 기관 및 기업들 내부의 심각한 제도적 부패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상상하는 상황에서는 전향적이고 발전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다.

그러한 미국의 변화를 인정하는 것이 미국인인 필자보다는 한국인들에게 훨씬 고통스러울 것이다. 한국인들은 어디에선가 미국이 자국의 행동을 합법화하고 그들에게 지원을 제공할 것으로 상상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미국의 시스템이 도덕적, 제도적으로 심각하게 붕괴되고 있는데도 그걸 부인한다면 한국인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을 소비하거나 사람들의 주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에 몰입하기보다는 우리의 삶이 보다 가치 있음을 의미하는 새로운 참여 사회를 여전히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아이돌 스타나 유명 인사에 대한 숭배에서 벗어나 부유한 이들의 도움에 의존하기보다는 서로 도와가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 각자가 할 일>

우리의 모든 행동은 민주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함께,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는 인간 문명의 세계적 진화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우리에게는 소중한 의무가 있으며, 이것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새로운 깊이와 중요성을 더한다. 한국과 세계를 위한 변화는 죄인을 감옥에 넣고 특정 공약을 내세운 정치인을 선출한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다. 그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서로를 대하는 태도, 사회에 임하는 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서로를 착취하고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게 만드는 건강치 못한 패턴을 우리의 행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탐욕과 부패를 저지른 사람은 최순실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면, 뉴스에 보도된 그들의 극단적 잘못의 흔적을 우리 일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또한 무차별적 소비문화와 비윤리적 사고에 경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행동을 한 적이 있다. 재벌이나 정치인이 저지르면 더욱 두드러져 언론의 지탄을 받았을 뿐, 우리 또한 비슷한 행동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 경제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디인지 진지하게 물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해결책을 찾고, 문화와 습관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혁명을 시작할 수 있다.

촛불시위를 할로윈(Halloween) 파티처럼 정치성 없는 축제로 일부러 만들자는 메시지를 담은 사진들이 촛불 1주년을 맞은 광화문 광장에 전시됐다.

그럼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까? 우리 일터를 청소하거나 레스토랑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 우리 자신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해주는 분을 만날 때마다 무시하지 않고 “감사하다”는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노숙자나 지적장애를 가진 분을 대할 때에도 이들을 존중하며 친절함을 보이면 좋을 것이다. 이런 작은 행동만으로도 사회를 구성하는 결을 바꿀 수 있다.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정치 시위만큼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위험에 처한 소중한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할 일을 해야 한다. 항상 컵을 휴대하며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거나 포장지와 비닐봉지, 종이백, 냅킨 등 기타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원을 절약하는 습관을 주변인에게도 용기 있게 권한다면 더욱 좋다. 사람들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말고 꾸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기보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을 보여준다면 이해를 끌어낼 수 있다.

친구나 가족과 대화를 할 때 사회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혹은 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오늘 먹은 케이크나 귀여운 강아지, 최신 유행가에만 열중하지 말고, 돈의 흐름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논의해보자. 정치제도 구성과 기술, 세계화, 금융, 상업화의 흐름이 가족과 친구관계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 NGO를 어떻게 변혁시키고 있는지도 대화를 해보자.

세상이 어떤지, 우리에게 주어진 윤리적 책임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대화를 끌고 가려면 끈기와 인내뿐 아니라 강한 윤리적 소명도 필요하다. 한국인에게는 그런 변화를 끌고 갈 역량이 있다. 내가 변화를 시작한다면 주변 사람도 영감을 받아 같은 변화를 시작할 것이다.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준 우리 행동은 변화를 전파하며 새로운 한국을 만들어갈 것이다. 대기업이나 유명 교수, 지식인, 싱크탱크의 설명이 세상을 이해하는 유일한 통로는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세상을 보는 법을 깨우칠 수 있다. 우리 자신에게 먼저 높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정부와 기업도 똑 같이 높은 기준을 적용하며 변화에 참여할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가 바라는 모습을 사회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중요한 이슈를 친구나 가족과 논의하며 언론을 만들어 보자.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의미 있는 토론을 하도록 스스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전체 그림을 보지 않고 특정인에 대한 호불호를 외치며 논의를 끝내는 감정적 발산은 지양해야 한다. 언론에서 ‘진짜 토론’을 보고 싶다면, 우리 스스로 진짜 토론이 가능한 문화를 만들고 습관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한국 문화는 새로운 활력을 얻을 것이고, 진실을 향한 객관적 탐구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럼 언론은 지금까지의 방식을 고수할 수 없게 된다. 시민은 더 이상 언론의 거짓과 직무 유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사소한 가십이나 연예인 이야기에 집중하며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노력도 힘들어질 것이다. 시민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고 기존 방식을 버릴 때 언론을 향한 우리의 기대와 요구 수준도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다.

고등학생이라면 자신의 일상이나 학교, 자살 충동, 대입, 직업 등의 고민을 다루는 기사나 신문을 스스로 만들어볼 수도 있다.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을 기사로 작성하고, 친구들의 시사상식을 도와줄 실제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기사를 꾸밀 수도 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오락용이 아니다. 무차별 경쟁에 빠져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공동체 의식을 키우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국회와 청와대 역할을 하는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 이웃과 내가 원하는 바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자녀 혹은 부모님에 대해 어떤 걱정을 하는지 들어봐야 한다.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서 정부에 상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통해 알게 된 이슈와 니즈를 장기적으로 해결하는 실질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살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고,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웃이 서로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약속하며 노력하는 사회라면 분명 가능하다.

이웃과 정기적으로 만나 학교를 개선하고, 자원을 모으고, 함께 돈을 모아 필요한 자원을 공동 구매하는 법을 강구해야 한다. 아이를 이웃과 함께 돌보며 가르치고 공원을 함께 청소하면서 주민을 위한 진정한 사회를 만드는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마을과 협동조합을 함께 만들고, 이웃의 이름을 기억하고, 이들의 걱정과 소원을 알아둔다면, 지역사회를 통해 지방정부에 유의미한 제안을 할 수 있다. 지방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해주면, 모두를 위해 자원을 배치하는 효과적 시스템도 구축할 수 있다.

우리 동네의 문제와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기 위해 모든 주민의 지혜와 지식을 모으고 가능한 해결책을 정부 개입 없이도 찾아내는 법을 알게 된다면, 지역사회 내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활발히 활동하는 초소형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서로 돕겠다고 약속하면,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행동을 바꾸고, 선거만 노리는 정치인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건강한 사회를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이웃들 사이에 서비스(서로의 아이 봐주기, 공구 함께 쓰기, 기술이나 공간 공유하기)를 교환하는 소규모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주체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크고 작은 협동조합은 지역사회에서 기업의 역할을 하며 한국 사회가 ‘경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심오하게 변화시킬 생산 및 경제 대안을 제시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에 있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재능을 사용해 시민을 위한 음악과 그림, 벽화, 축제를 만들도록 후원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예술 활동을 조직하는 건 결코 사치가 아니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행동이다. 우리 아이들을 보라. TV와 잡지, 광고에 나오는 매끈하고 세련된 이미지에 함몰되어 대기업 제품을 사고 소비하는 데에서만 삶의 행복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에 빠져 있다. 우리를 밤낮으로 둘러싼 광고 속 예술 콘텐트와 은밀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와 음악은 우리의 행동패턴과 마음 원칙을 결정하고, 물건을 구매하고 소비해야만 인생에 의미가 생긴다고 속삭인다.

그러나 우리가 예술가를 지원해서 이들의 예술작품이 지역사회 생활의 중심이 되도록 만든다면, 협력과 상호존중에 기반한 사회 이미지를 시민에게 전달할 수 있다. 가볍고 얄팍한 주제뿐 아니라 심각하고 심지어 비극적인 사안도 진지하게 논의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지역 예술가는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우리 손으로 직접 문화를 만들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전달한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예술은 우리가 소비해버릴 상품이 아니다. 우리를 울리거나 웃기고, 다른 곳에 정신을 팔도록 만드는데 목적을 두지도 않는다. 예술가는 협력 문화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잠자던 우리의 상상력을 깨워 관계를 만들어가는 대안적 모델을 제시한다. 그렇게 사회 전체를 천천히 변화시켜 외로움에 힘들고 심지어 자살까지 시도하는 한국 사회의 끔찍한 소외 문제를 해결할 연결고리를 만들어 준다.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서로를 도우며 공동의 선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임무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외를 없애고, 공유를 통해 돈과 자원을 절약하면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는 이점이 하나 더 있다. 우리 사회의 불만족과 소외, 탐욕의 원인이 모두 최순실에게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 언론과 기업, 정부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주식과 파생상품, 자본자원의 장악과 서로를 착취하는 경쟁관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만 사회와 기업, 정부가 제대로 운영된다고 믿게 만든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 유형의 사회는 상상하지도 못하며, 주식가치와 단기 이익을 높이기 위해 못할 짓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규모 시위도 중요하지만, 이는 진짜 개혁을 이끌어가는 과정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 대안적 지역사회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실질적 개혁 추진을 위해 동네 단위로 정치를 논의하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야 한다.

정계 및 재계 지도자가 품위와 책임감을 갖춘 사람이라도 이들에게 주어진 최고 임무는 주식가치와 단기이익 상승이다.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여유는 이 임무를 마친 후에야 얻을 수 있다. 그 때에는 이미 남은 시간과 자원이 없다. 최고 인재들이 사회에 고통을 초래하는 활동에 온 힘을 쏟고, 남은 시간에만 사회 치유에 신경을 쓴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긴밀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면, 정부와 기업을 운영할 때 자본과 수익이 아닌 인간관계와 커뮤니티에 기반한 대안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대안적 모델이 한국 사회에서 힘을 얻는다면, 한국 정부와 기업 또한 좀더 인간적인 조직, 참여를 이끄는 조직으로 변화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혁신을 용이하게 끌어갈 주체가 기업보다 정부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한국 사회에 협력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모두 근본적인 변혁을 거쳐야 한다. 반대로, 협력적 조직 및 경제가 사회의 중심이 되지 못하면 정부와 기업의 변화를 끌어내기도 요원하다. 기존 모델이 유일한 방안이라는 믿음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주장이 말도 안 되게 순진한 발상이며, 현 상황에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현재의 한국이 50년 전과 달라서 협력을 위한 지역사회 형성에 관심이 없으며, 한국 청년들은 시사에 대해 진지한 글을 읽거나 쓰고 친구들과 복잡한 이슈를 논의할 인내심도 없다고 주장한다.

요즘에는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진 지역사회를 찾아보기 힘들고, 청년들은 복잡한 주제를 분석하거나 두꺼운 책을 읽는 데 이전보다 관심이 덜하긴 하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마음은 엄청난 유연성을 가지고 있으며, 변신 능력도 아주 뛰어나다. 현재 젊은이 다수가 스마트폰으로 의미 없는 단문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시간을 보내고는 있지만, 소수의 사람이 모여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자극이나 흥미 유발에만 온 힘을 쏟는 뉴스 기사에 단순한 반응을 보내는 대신, 진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우선순위를 두기만 한다면, 진지한 독서와 글쓰기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흥미 혹은 자극적 반응을 유도하는 문자 메시지에 단순히 반응하는 패턴으로는 정치개혁을 장기적으로 진행할 수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정치와 경제의 세계로 깊이 파고들고, 우리가 사는 동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자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대 사회의 각종 문제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지역사회 단위로 변화를 이끄는 건 분명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대안적 지역사회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실질적 개혁 추진을 위해 동네 단위로 정치를 논의하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야 한다. 대규모 시위도 중요하지만, 이는 진짜 개혁을 이끌어가는 과정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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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현댓글:
2017.11.01


공감합니다.
응답

채옥희댓글:
2017.11.01


여러번 읽게 되는 글입니다.
깊은 성찰의 계기로 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응답

유임하댓글:
2017.11.01


깊이 공감합니다.
응답

큰바다댓글:
2017.11.01


참 좋은 제언이네요…감사합니다.
응답

윤기영댓글:
2017.11.01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 이름으로는 이만열 경희대 교수가 상당히 좋은 글을 썼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개인적으로 유보했던 혹은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었던 우리사회의 방향성을 상기하게 되었다. 이만열 교수 고맙다.

이만열 교수의 글은 미래연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단기적인 트렌드나 혹은 새로운 과학기술로 인한 SF적 미래를 전망하는 것만이 미래연구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 과학기술을 포함하여 정치, 경제, 사회 및 환경 등의 미래변인을 인식하고 미래 변화의 모습과 바람직한 방향을 설계하는 것이 미래연구다. 참고로 이만열 교수는 미래연구자이기도 하며, 미래학회의 이사 중 한분이다.

이만열 교수의 글은 반갑고 고마우며 내가 놓친 부분을 잘 지적하셨다. 더구나 이만열 교수가 본명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와 한국이름을 같이 쓴다는 것은 그가 한국을 모국 처럼 여기고 있다는 작은 증거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이만열 교수에게 반문아닌 반문을 하고 싶다.

우리 한국 사회가 왜 보다 범지구적이고 근본적인 가치를 지향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우리 한국사회가 겪은 역사적 경험 떄문이라고 판단한다. 지난 촛불 혁명이 평화롭게 진행된 이유는, 지난 수십년간 작은 폭력시위도 언론에게 악용되었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도 촛불혁명이 완수되지 않았음을 대다수의 시민이 알고 있고, 그 촛불이 다른 세력에 의해 꺼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지구온난화, 양극화, 지나친 물질주의 등의 문제의 심각도가 작지 않으며 빨리 해결해야 하는 것이나, 촛불 혁명이 일차 완수되어야만 그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대안의 수립이 가능하다. 내 판단은 그렇다. 우리나라 시민은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상당히 현명해져 있다. 즉, 이만열 교수가 지적한 바를 우리 시민이 모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한국 사회의 시민은 역사적 발전과 사회적 이행에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함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과 한국사회는 보다 근본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해 인내하고 있는 단계임을 이만열 교수는 충분히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는 미래 연구자로서 우리 한국사회에 경각심을 주고, 그 인내의 기간이 보다 단축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이만열 교수가 더욱 고맙다.

퓨처리스트 윤기영이었습니다.

(c) 윤기영, 2017
응답

류중근댓글:
2017.11.03


이 글 처음 접하면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흐르는 물처럼 공기처럼 일상에서 늘 접하는 채널이 아닌 너무나도 생경한 채널을 만난 듯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그냥 몇 줄이겠거니 여기며 훑고 가려고 그랬거든요.
그러나 읽어도 읽어도 끝이 안 보입니다.

텔레비전에서 그랬던 거처럼 그 신기함 금세 사라졌기에 멈출까도 했지만, 딱히 표현할 수 없는 그 뭔가가 그걸 내버려 두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내친김에 끝까지 읽어내렸거든요.

이것 보약이네요. 아무리 좋은 보약이라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면 그냥 만고강산의 초목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다행스럽게도 그대와 같은 알짜배기 불쏘시개가 있어 마침내 이름 없는 그 초목 명약이 되었습니다.

약을 지어주신 원작자님도 고맙지만, 그 약에 날개 달아주신 그대한테도 그 고마운 맘이 매우 커집니다.

그대여~ 고맙고도 또 고맙습니다.
응답

양창섭댓글:
2017.11.03


이만열 교수님의 글이나 윤기영님의 글 모두 읽으면서 감사함을 느끼게 합니다.
응답

김경술댓글:
2017.11.01


2014년 3월에 있었던 세월호사건은 우리를 기로에 서게 했었다. 지난 세월 길들여졌던 극단적인 욕망을 추구하게 하는 체제와 근시안적 가치관을 가지고 그냥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익숙하지 않은데서 오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그동안 태만해온 아름다운 가치를 회복하고 기준을 세우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며 살 것인가? 하지만, 대다수는 장기적 안목으로 나라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며 천년을 이어갈 기준을 세우기보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눈앞의 쉬운 길을 택했다. 그 결과 불의와 어둔 그늘에서 그런 일을 행해온 이들은 그대로 묻혀지고 결국 온 나라가 더 큰 수치와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다. 입에 발린 언론의 값싼 칭송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으로 열어가야 할 산적한 과제들을 하나씩 들춰내어 어그러진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손이 부르트고 발바닥이 까져 나가더라도 우리 모두가 함께 가야 하는 길이 눈앞에 있다. 이것이 “이것이 나라냐?”라며 거리로 나섰던 아이들에게 다시는 부끄런 모습을 대물림하지 않을 첫걸음인 것이다. 배달의 후예들이여, 다시 한 번 일어나라!
응답

민양운댓글:
2017.11.02


귀한 글 고맙습니다.
공감합니다
응답

서훈일댓글:
2017.11.02


상식을 넓히는 글을 공유하여 확산시키는 손가락운동 성실히 하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이 창에 댓글 다시는 분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이런 글을 읽도록 한면 좋겠네요.

이 글을 제 페이스북에 올려주신 김정범 남촌가정의원 원장(인의협의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응답

이재경댓글:
2017.11.02


교수님의 한국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광대한 자료의 바탕과 함께 무한깊이의 인식과 관찰로 부터 쓰여진 역사적 기념비적인 계몽글에 경의를 표합니다. 너무나 큰 의미와 목표를 제시하면서도, 독자들이 벅차해할 것을 이미 아셨는 지, 지극히 자세하고 구체적인 방법제안들에는 저로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만, 감히 요청한다면, 이제 시작일 테니 부디 실망마시고 지속적으로 이같은 계몽 메시지를 이어주셨으면 합니다.
응답

허습댓글:
2017.11.02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응답

박주영댓글:
2017.11.02


공감합니다
응답

율려 이각댓글:
2017.11.02


우리가 행해야 하고 살아가야 할 일상의 삶 속에서
삶의 결을 하나하나 챙겨나가야 한다는
삶의 본성을 담론하는
응답

joungran댓글:
2017.11.02


순진한 발상이 한사람 한사람 계속 늘어간다면 이세상살기 좋아지겠죠^^
응답

최명경댓글:
2017.11.02


너무 좋은 글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두고두고 다시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응답

황수용댓글:
2017.11.03


촛불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그로인해 ‘촛불은 옳다’라는 울타리를 남겼다.
마치 촛불의 포로가 된 듯이 스스로를 그곳에 가두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내린 결정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많은사람들은 그 결정에 묶이고 더욱 얷메이려 한다. 내가 내 스스로의 함정에 빠뜨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지금 우리 국민 중 많은 사람은, 국정 농단을 심판하여 선출된 정부니까 이 정부는 옳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국민의 절대적 지지는 또다른 절대 권력의 부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할 사람을 선출한 것이지 인기 스타를 뽑고 열광하기 위해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내미는 손을 잡는 것과 함께 사진 찍는 것을 소통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대통령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결과를 초래하여 국정 운영에 오류를 일으키게 할 수있다.

대통령은 해결사가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상처를 보듬고 그들이 화합하면서 스스로 해 나갈 수 있는 터를 마련해주는 역활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각각이 독립된 주권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 이름 이만열 씨의 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어쩌면 그의 시각처럼 우리가 우리를 제3자적 입장에서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답게 고민하고 살펴서 일깨워 준 글에 고마움을 표한다.
응답

장덕현댓글:
2017.11.05


이만열씨의 글 만큼이나 황수용씨의 생각에도 공감이 갑니다.
좋은 의견 감사히 보았습니다.
응답

양창섭댓글:
2017.11.03


좋은 글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많은 분들의 댓글 또한 같은 느낌으로 감사하게 만듭니다. 이런 글들과 공감하는 댓글들이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큰 정부가 아니라 작은 이웃 사회에서 부터라는 생각을 갖게 했고요, 결국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작은 변화를 작다고해서 나 스스로가 무시하지 않는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응답

조재성댓글:
2017.11.03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글 감사드립니다. 여러번 읽어보겠습니다.
응답

심혜섭댓글:
2017.11.03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교수님….
응답

김선아댓글:
2017.11.03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응답

mn댓글:
2017.11.03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응답

Haelj댓글:
2017.11.04


니가 뭔데
응답

HaA댓글:
2017.11.04


왜 감명받는거지?
이 사람은 겉핥기로만 한국보는거같은데
미국이 도덕적선이라고 보는 새대는 50대 인상이고 그 이하는 미국에 대해 절대선은 없으며 결국 자국의 이익을 산택할거라고 알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진 세대는 얼마없고
당신이 본 한국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런 편협하고 낡은 시각을 이렇게 장황하게 써 놓은게 참 난감하네
좀더 한국인들 넓게 만나봐요
당신 나이대 하고만 만나지말고 좀더 젊은층하고 만나보라고 당신이 보는 한국은 당신 나이층의 한국인이 보는 시각같으니 말야
응답

imtom댓글:
2017.11.04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서두의 문제제기나 제목조차 그리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작년말 촛불을 들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의 공동체를 위한 자정적 각성을 시작하였고
지켜내야 하는 상식의 가치를 충분히 가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지난 우리 촛불의 혁명이
이러한 각성의 결과물이라 자축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지켜낼 가치들을 존중하는 열망이
나 하나가 아님을 공표하는 자리였고
적폐와 싸워갈 내 옆의 동지들을, 우리들을 서로 응원하는 자리였습니다.
자랑스런 국민들은 그 촛불이 나아갈 분명한 길을 알고 있으며,
동시에, 촛불 이상의 대의적 방법들에 대한 보다 더 현명한 길을 찾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민주주의 대의정치를 통해 명확히 구현될 것이고, 그 성공을 위해 우리의 주권을 명확히 실현해갈 것입니다.
독재적 우경화로 빠져드는 강국들 사이에서
더 빛나고 강렬하게 스스로를 지켜낼 힘과 지혜와 용기가
아주 넘쳐나는 대한민국이 될텐데…
걱정해주는 교수님께는 고맙지만 고언까지는 사양하고 싶네요^^
응답

황수용댓글:
2017.11.05


좋은 견해입니다.
응답

Onnuri Straehl (@Nanuri_Straehl)댓글:
2017.11.07


임마누엘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은 ‘보편’적인 한국사회를 놓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imtom 님이 한국사회의 얼마나 다양한 계층과 얼마나 많은 소통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소수의 한국인들만이 (정치나 역사에 깊은 식견을 가지고 계시는) 임마누엘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이미 인지하고 계셨다는데는 이의가 없으실겁니다. 댓글을 보아서는 imtom 님께서는 아마 그 중에 한분이실거라 믿습니다만, 내가 혹은 가까운 내주변이 그런 의견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을 사회적 스케일로 보편화시키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많은 역사적 예시과 고찰을 토대로 (심지어 교수님의 본국인 미국의 몰락을 예를 들어가면서) 다른 사회적 방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글에 대해 ‘우린 알고 있었는데 (진짜 대부분의 한국인이 다 알고있었을까요?) 왜 가르치려 드느냐로 우린 필요없다’ 라고 일축하신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편협한 시선이 아닐까요? (쇄국정책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더 나아지려 한다면 다양한 의견을 듣고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의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인류문명과 사회는 배움과 실천으로 그리고 반성과 비판으로 거듭납니다. 쓴 비판도 겸혀히 받아들일 줄 알때 비로소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물론 이미 아시겠지만) 다시 상기드리고 싶습니다.
응답

임재선댓글:
2017.11.07


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응답

임재선댓글:
2017.11.07


비판을 비난으로만 받아들이고 상관하지 말라는식으로 말하는 분들은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는걸 알아야한다고 생각해요..

calanore댓글:
2017.11.06


아몰라 이 말이 왜 틀린지 사례는 들 수 없지만 일단 틀린말이야 찡찡 잘 봤고요
사과상자에 사과가 100개 들어 있으면 꼭 썩은 사과가 2개씩 들어 있다더니 딱이네요.
나머지 댓글들은 다 바보라서 감명받는 거지 그럼~
응답

Onnuri Straehl (@Nanuri_Straehl)댓글:
2017.11.06


임마누엘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은 ‘보편’적인 한국사회를 놓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imtom 님이 한국사회의 얼마나 다양한 계층과 얼마나 많은 소통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소수의 한국인들만이 (정치나 역사에 깊은 식견을 가지고 계시는) 임마누엘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이미 인지하고 계셨다는데는 이의가 없으실겁니다. 댓글을 보아서는 imtom 님께서는 아마 그 중에 한분이실거라 믿습니다만, 내가 혹은 가까운 내주변이 그런 의견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을 사회적 스케일로 보편화시키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많은 역사적 예시과 고찰을 토대로 (심지어 교수님의 본국인 미국의 몰락을 예를 들어가면서) 다른 사회적 방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글에 대해 ‘우린 알고 있었는데 (진짜 대부분의 한국인이 다 알고있었을까요?) 왜 가르치려 드느냐로 우린 필요없다’ 라고 일축하신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편협한 시선이 아닐까요? (쇄국정책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더 나아지려 한다면 다양한 의견을 듣고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의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인류문명과 사회는 배움과 실천으로 그리고 반성과 비판으로 거듭납니다. 쓴 비판도 겸혀히 받아들일 줄 알때 비로소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물론 이미 아시겠지만) 다시 상기드리고 싶습니다.
응답

조영신댓글:
2017.11.04


네 제1세계 기성세대 백인 남성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응답

Haekwon Seo댓글:
2017.11.04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큰 틀에서 보다 다각도에서 깊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작은 것들을 더욱 적극 함께 논의하고 그리고 실천하겠습니다. 훌륭한 글에 감사드립니다.
응답

노영대댓글:
2017.11.04


공감합니다.
응답

김피피댓글:
2017.11.04


어쩌라고 홍인주제에 느그 트럼프나 가서 바꿀 생각을 해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까 ㅇㅅㅇ 홍인들의 이런 선생질 진짜 웃기다 가서 느그가 착취한 다른 나라들이나 신경쓰면서 살아라 진심 개어이없어 ㅋㅋㅋㅋㅋ
응답

어쩌라고댓글:
2017.11.04


제1세계 기성세대 남성에게까지 이런 하나마나한 꼰대질 당하고 싶지 않다. 미국인이 일회용품 사용문제로 한국인에게 충고 할 자격이 있나? 계몽하고 싶으시면 모국에 가서 하시길.
응답

조가샘댓글:
2017.11.04


홍인이 졸라 뭐라냐
응답

주영선댓글:
2017.11.05


감사합니다. 깊이 공감하며. 행동할께요. 함께해봅시다.
응답

강가딘댓글:
2017.11.05


미려하고 애정많은 글이지만..이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인들이나 EU탈퇴를 결정한 영국인들에게도 해당되는 고언이 아닐지. 물론 우리보다 훨씬 선진국들이나 “협력적 조직 및 경제가 사회의 중심’이 되는 사회인지 의문이 가네요. 물론 교수님이 한국을 걱정하는 노파심에 쓴 글이라고 생각은 되고 공감가는 부분이 많지요. 하지만 촛불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다 믿는 순진한 시민은 그리 많지 않고요.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스스로의 개혁을 하려면 동시에 사회 지도층이 가져야할 공정성에 대한 요구 역시 같이 진행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터전이 마련될 때 일반인들도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갈 충분한 동력이 생길거라고 믿습니다.
응답

정진선댓글:
2017.11.05


일단 이 글부터 복사해서 주변과 나누겠습니다.
응답

임재선댓글:
2017.11.05


정말 공감갑니다.ㅠ 그런 다양한 그렇지만 정말 한국인들의 삶에 본질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일깨우는 가장 중요한 외침을 가진 시위대는 보이지 않는게 안타까워요. 그런 많은 생각들 다양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기는 한건지 가끔 이사회가 저는 의심스럽기도합니다.투명한 공평한 사회를 추구하기를 누구나 원하면서 일본같은 획일되고 억압되었지만 그냥 먹고살기엔 그럭저럭 경제적으로 만족한 그런 사회를 부러워하는사람들이 꽤많다는것에 저는 가끔 많이 놀랍니다. 아마 그런 의식들이 많은 사람들의 내면속에 내재되어있기때문에 정말 혁진적이지만 정말 인간의 삶을 본질적으로 바꿀수있는 그런 시위나 외침은 외면하고있는게 아닌가 그런생각 많이 합니다.
응답

정현정댓글:
2017.11.06


옳은 말씀입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응답

Abc댓글:
2017.11.06


별로임. 국내 정치 스펙트럼이 심하게 우편향 되어 있어서 문재인 정부가 진보로 보일뿐 국제적 기준으로 비춰보면 전형적인 보수 정부임. 한국의 지금 문제는 진보 보수가 아니라 부패 반부패의 투쟁인데 전혀 핀트를 못 맞추고 있는 듯.
응답

정석환댓글:
2017.11.07


이런 시선의 수준과 통찰력 그리고 글 솜씨~~누구에게나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응답

이수인댓글:
2017.11.07


부끄럽고 또 부끄럽네요~~감사합니다~^^
응답

B regina댓글:
2017.11.08


좋은 글 감사합니다. 티스토리로 퍼가도 될까요?
응답

이명복댓글:
2017.11.08


이 글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정부를 무너트리기 위해 촛불시위에 나갔던 수천만의 사람들이 “진보적인 정권 창출”을 기대했다는 점임. 나는 4차례 광화문의 촛불시위에 참여해 박근혜 탄핵을 외쳤지만 결코 진보적인 사람이 아님. 촛불시위에 수천만명이 모였던 것은 그 촛불 정신이 진보정권이나 특정 사상을 가진 사람을 위해 이뤄진게 아니라 부도덕하고 무능력한 정부를 무너트리기 위해서였음. 만약 촛불집회가 대선에 나왔던 그 어떤 사람이 주도했거나 특정 단체가 주도했다면 시민들은 절대로 그 사람들을 위해 뭉치지 않았을거임. 우리의 삶을 침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부도덕성과 무능력함에 시민들을 광화문 광장으로 끌어낸 것임.

본의아니게 문재인 정부가 그 반사이익을 받았고 진보정권이 창출됐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트럼프를 싫어하고, 기후변화에 민감하며, 미국의 정책에 반대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심각한 오류임.
응답

윤보미댓글:
2017.11.08


깊이 새기며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 사회적인 문제의 지적에는 답답함이 있다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겠습니다
응답

Jinho Oo댓글:
2017.11.10


맞습니다. 공감합니다.
응답

김두헌댓글:
2017.11.11


깊이 공감하고 성찰의 기회로 삼겠습니다.
응답

개혁과변혁댓글:
2017.11.12


대한민국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들이네요. ㅠ
응답

유지원댓글:
2017.11.23


역사적인 대규모 촛불시위를 기점으로 신화화된 권력의 실상에 눈을 뜨고 불복종 의사를 현실화시킨 한국민중이, 미국식 군국주의와 극단적 민영화가 물밑으로 경제구조와 문화전반을 잠식해가고 있는 현상이 점점 가중되고 있는 지금 추세에서 계속 언론과 자본세력과의 지난한 싸움에 등돌리지 않고 사람다운 공동체의 열망을 스스로 성취하길 바라는 응원의 심정으로 받아들입니다. 교수님, 아끼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충언드리지만, 영문으로 기고하시는 편이 불필요한 오해없이 명확한 의사전달에 유리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응답

민효성댓글:
2017.12.10


공감하며 다시금 뒤돌아봅니다.
응답

양승용댓글:
2017.12.11


나의 촛불 : 지금 주변에서 실행할 것 !!! 대화.토론.공윤
응답

허준환댓글:
2017.12.12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개인주의 롤모델을 제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서로 협동하고 공헌하는 이웃공동체가 하나 둘 늘어나길 축원합니다.
덕분에 홍익이화 세상의 단초가 되어보자는 다짐을 되새김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응답

윤성옥댓글:
2017.12.27


깊이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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