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1호] 2018.01.15
북한 경제 전문가 김병연 서울대 교수
“北에 외환위기 태풍 더 압박하면 2년 내 비핵화 카드”
정장열 부장대우 jrchung@chosun.com
▲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남북 간에 해빙무드가 급속히 조성되고 있다.
- 하지만 지금의 대화 국면이 북한에 핵무력을 완성할 시간을 벌어줘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이 같은 우려의 바탕에는 북한에 가해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 남북 대화 국면이 자칫 대북 제재와 압박을 이완시키고 북한의 협상력만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적지 않은 전문가들의 우려다.
지난 1월 9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병연 교수(경제학과)도 “개의 꼬리로 몸통을 흔들겠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남북대화만으로 북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충고였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사회주의 체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사회주의 및 체제 이행을 연구해온 김 교수는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북한 경제 전문가다. 그가 한국연구재단 우수학자지원사업 연구비 지원을 받아 7년의 연구 끝에 지난해 9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에서 펴낸 ‘Unveiling the North Korean Economy(북한 경제의 베일을 벗기다)’라는 영문 저서는 북한 경제 현실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깊이와 통찰력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책에 대해 ‘희귀한 자료를 학문적 엄격성으로 분석한, 북한을 다루는 정책결정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책의 부제를 ‘Collapse and Transition(붕괴와 이행)’이라고 단 데서 알 수 있듯이 김 교수는 북한이 이미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서 시장주의 체제로 옮아가고 있으며, 김정은이 시장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수치로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가 대북 제재의 효과와 그로 인한 북한 내부의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올해부터 본격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는데 지금 평창올림픽을 매개로 진행 중인 남북 해빙무드를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의 남북 대화 국면은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자체도 목적이지만 이걸 활용해서 남북관계를 풀어보겠다는 희망에서 나왔다고 본다. 남북 대화가 평창올림픽만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찬성이다. 더 나아가 남북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겠다고 하면 그것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보겠다고 하면 결국 북한의 비핵화 문제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맞닥뜨린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개 꼬리로 몸통을 흔들려는 무리한 시도가 될 수 있다.”
- 북한이 이번에 회담에 응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강한 경제 제재와 압박에 내몰린 결과라고 보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제재의 효과가 지금 100% 나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이르다. 북한이 이번 대화에 나온 것은 몰려오고 있는 태풍급 타격을 피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일 수 있다.”
- 태풍급 타격이라니?
“작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제재로 인해 2%가량 하락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질적인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고 본다. 지금 북한은 국가기관부터 돈이 마르고 있다. 김정은 개인의 외화 수입원도 줄고 있다. 수출은 다 길이 막혔는데 수입은 이전 규모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가면 북한에도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 1997년 우리의 외환위기 직전처럼 태풍을 앞둔 고요로 볼 수 있다. 앞으로 북한이 전혀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그게 태풍이다.”
그는 대북 제재가 오래전부터 이어져왔지만 실효성 있는 제재는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나온 유엔 안보리의 2321호 결의안부터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소식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이 시점에서 북한을 스톱시키고 북한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남북관계가 파탄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통일은 물론 평화마저 지키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칼럼 등을 통해 실효성 있는 대북 제재안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때 제안한 것이 북한 무역거래의 핵(核)인 광물 수출부터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해외파견 북한 근로자를 통한 외화 수입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최종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중국으로부터의 원유 수입 제한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2321호 이후 2371호, 2375호, 2397호 등 제재안이 세 번 더 나왔는데 거의 내 제안과 일치했다.”
- 2321호 이전의 2270호 제재안에서도 북한의 광물 수출을 제한하지 않았었나.
“2270호는 ‘민생용은 제외한다’는 단서 때문에 유명무실했다. 나는 민생용이라는 유보 조항을 중국의 요구로 봤고, 그것 때문에 제재가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민생용이라는 증명을 북한 스스로 하는 듯했다. 북한이 민생용이라는 서류를 떼주면 중국 세관이 그걸 받아서 도장 찍어 제출하면 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광물 수출을 실효성 있게 제한하려면 70%라는 객관적인 상한선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 왜 70%인가.
“광물을 수출하는 북한 기업들의 소유 현황을 보면 70% 정도가 당과 군 소속이었다. 이 수치와 근거를 중국에 들이대면서 70%를 막으라고 미국이 요구할 수 있다고 칼럼에 썼다. 민생용이라는 단서 때문에 아무것도 안 먹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강도 높은 압박으로 중국이 북한산 무연탄 수입의 62%를 틀어막는 데 동의한 것이다. 대북 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사람들은 2270호와 2321호 제재안의 차이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2321호 채택 이후 작년 3월부터 중국은 실질적인 제재를 시작했다.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미 틀린 말이 돼버렸다.”
연구를 위해 중국을 자주 방문했던 그는 대북 제재가 얼마나 힘든 싸움인지를 경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경제 제재라는 것은 언덕을 계속 오르는 것처럼 힘든 싸움이다. 눈에 불을 밝히고 돈을 벌려는 사람들을 돌려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업자들을 보면 잡화점식으로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사고판다. 2010년대 초반 단둥 세관에서 카키색 군용트럭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 군사퍼레이드 장면을 TV로 보니 거기에 그 트럭들이 나왔다. 당시 유엔의 거래금지 품목이었는데도 북한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북한과 중국의 무역전선은 돈 벌려는 강한 의지가 불법과 비법(非法)으로 뒤엉킨 곳이다.”
- 북한 경제에서 광물 수출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나.
“가장 많을 때 전체 수출액의 50% 이상을 차지했었고 그 대부분이 무연탄이었다. 나는 작년에 북한 수출이 35% 이상 줄었을 것으로 본다. 그 여파로 작년 경제성장률이 2%가량 하락하고 외화수입이 3분의 1 정도 줄었을 것이다. 지금의 제재가 철저히 집행되면 올해는 수출이 2016년 대비 90% 이상 감소할 수 있다. 최근 유엔 제재가 거의 모든 북한의 수출품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2016년 대비 국민소득은 5% 정도 하락하게 된다.”
그는 북한의 대중 광물 수출을 제재하기 시작한 것을 ‘사자를 우리에 잡아넣은 것’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그전까지의 제재가 산발탄을 날린 것에 불과하다면 대중 광물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함으로써 드디어 핵심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그는 “관건은 사자를 가둔 문이 나무문인지 철문인지, 얼마나 사자를 가둬놓을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물샐틈없는 대북 제재 공조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북한의 무역 비중이 20% 미만이어서 무역 제재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던데.
“2013년 북한의 무역의존도는 50%라는 게 내 계산이다. 2014~2015년에도 크게 줄지 않았다. 무역은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수치가 드러나는 ‘거울 통계’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다른 나라와의 수출입을 합하고 거기다 남북 교역을 더하면 다 드러난다. ‘북한 경제의 베일을 벗기다’라는 책에서 내가 1954년부터의 북한 경제성장률과 일인당 소득을 달러로 계산해 제시했는데 그 결과를 보면 유엔의 통계랑 아주 큰 차이는 없다. 2013년 기준 북한의 일인당 소득은 북한의 시장 환율을 적용했을 때 750달러 정도다. 유엔은 660달러로 계산했었다. 이를 북한 인구와 곱하면 190억달러 정도가 북한의 국민소득이다. 2013년 북한의 전체 교역량이 100억달러 정도인데 국민소득 190억달러를 이 수치로 나누면 50%를 넘는다. 이는 북한도 자본주의 모든 국가의 평균과 비슷한 무역의존도를 보인다는 의미이고 이게 팩트다. 무역의존도가 낮아서 대북 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주장은 변화하기 전 옛날 북한을 대상으로 쓴 창작소설과 같다.”
그는 북한 경제 연구에서 블랙홀이 통계자료의 부족이라고 했다. 그 역시 ‘북한 경제의 베일을 벗기다’라는 책을 쓰면서 제대로 된 북한 경제 자료를 구하기 힘들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는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3만명의 탈북자 중 2000명 이상을 인터뷰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2011년부터 북한과 거래하는 180여개 중국 기업들을 조사했다고 한다.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작년 7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산으로 가득했던 (북한) 국영 상점의 소비상품이 대부분 북한산으로 대체되었다” “북한 경제는 유엔의 고강도 제재를 받는 가운데서도 오히려 성장했다” 등의 주장을 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볼 여지가 없진 않다. 그러나 이 주장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체제 이행 시기인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러시아 국민소득이 40% 감소했다. 그러나 그때도 러시아 상점에는 새로운 상품이 넘쳐났고 해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경제가 개방되고 국민소득의 구성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겉만 봐서는 소득감소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최근 북한도 GDP 구성이 달라지고 있다고 본다. 중공업에서 경공업 쪽으로 비중이 옮겨가고 시장을 통한 유통이 활발해지다 보니 이것만으로 북한 경제가 괜찮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 대형 건물들이 들어서는 것은 오히려 북한 경제의 중증(重症)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품을 만들고 판매한 돈으로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강성대국은 좋은 건물을 많이 가진 나라’라는 김정은의 생각 때문에 건물을 짓고 있다. 이는 오히려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뺏는 결과를 낳고 있다. 사적 소유권이 제도화돼 있지 않아 돈이 제조업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서비스와 건설 부문에만 몰리고 있다. 이런 부문은 장기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정은의 머릿속에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개념이 없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핵도 문제지만 이러한 경제적 무지가 불러오는 자원의 낭비도 문제다.”
김 교수는 김정은 체제 이후 등장한 북한 경제의 변화는 부가가치가 낮은 부문에 집중돼 있다면서 이런 사례를 들었다. “과거 북한의 소비재는 70~80%, 식량은 50% 정도가 수입산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런데 김정은 체제 이후 소비재, 특히 식품 분야에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중국산이 북한산으로 많이 대체되었을 수 있다. 얼마 전 동영상으로 한 국제단체가 북한의 첨단기술 경제개발구에서 사업을 하려는 북한 기업가를 컨설팅해주는 장면을 봤다. 그런데 그 내용이 과거 손으로 담아주던 콩나물을 비닐백에 담아 생산한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부가가치가 낮은 변화로는 자체적인 성장을 견인할 수 없다.”
- 그래도 일부 전문가들은 2011년 말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경제가 연 평균 4% 정도 성장했다고 추정한다. 얼마 전 한 기관은 2016년 북한 경제성장률이 7% 이상이었다는 주장도 폈는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최대치로 계산해도 김정은 집권 이후 연 평균 2.5% 정도다. 과거 동유럽 붕괴 후 체제 이행기에 사유권을 인정하고 창업을 자유화해서 경제가 회복될 때도 경제성장률이 연 평균 4% 정도였다. 또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집단농장 폐지, 가족농 도입, 향진기업 등 사유기업 인정 등을 통해 1980년대 초반까지 연 평균 8% 성장을 했다. 지금 북한은 협동농장을 폐지하고 가족농을 도입한 것도 아니고 중국과 같은 향진기업이 있는 것도 아니다. 7% 성장은 잘못된 추정치거나 상상에서 나온 수치이다.”
- 연 평균 2.5% 성장하는 경제에서 재재로 인해 성장률이 2% 정도 하락하면 타격 아닌가.
“그래서 내가 태풍 전의 고요라고 하는 것이다. 북한의 성장률을 분석해 보면 70% 이상이 시장과 무역의 힘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시장과 무역은 동전의 양면이고 서로 얽혀 있다. 북한에서 무역을 통해 돈을 벌면 시장에서의 구매력이 생긴다. 또 무역에서 번 돈으로 물건을 수입해 시장에 공급한다. 즉 시장의 수요공급을 만들어주는 것이 무역이다. 그래서 무역이 타격을 받더라도 북한의 시장은 건재할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북한에서는 무역이 무너지면 시장도 무너지게 돼 있다. 북한 경제를 떠받치는 두 축이 무너지는 것이다.”
- 북한에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는데 그러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지금 외화가 마르면서 쌓아 놓은 외화가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북한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중국 기업들로부터 매출액의 7%를 리베이트로 챙겼다. 북·중 거래 규모가 연간 6조원 정도이니 리베이트가 최대 4000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이 돈은 대부분 권력층으로 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돈부터 마르고 있으니 북한 권력층으로서는 큰 타격이다. 또 시장활동을 할 수 없는 중간관료들은 한 달에 50달러는 있어야 가족이 살 수 있는데 이들의 월급은 암시장 환율로 계산하면 1달러도 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은 시장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서 뇌물을 받아 살고 있다. 시장이 위축되면 뇌물 수입이 줄게 되고 따라서 중간관료들도 동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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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교수가 7년의 연구 끝에 지난해 9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에서 펴낸 ‘Unveiling the North Korean Economy(북한 경제의 베일을 벗기다)’.
- 김정은으로서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나.
“하나는 화폐개혁이다. 화폐개혁을 통해 민간에 쌓인 돈을 빼앗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2009년 화폐개혁의 트라우마 때문에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당시 탈북자들을 만나 보면 당원들, 교육받은 사람들조차도 김정일·김정은 부자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들은 그동안 모은 돈이 얼마인데 다 빼앗아갔다며 분노했다. 김정은이 다시 화폐개혁을 한다면 목을 반쯤 내놓는 격이다.”
- 다른 선택지는?
“궁지에 몰리면 국가 자산을 팔려고 할 수 있다. 그건 자본가, 사유화를 인정한다는 얘기다. 지금 북한에는 현금을 몇만달러에서 몇십만달러까지 갖고 있는 ‘돈주’들이 꽤 있다. 돈이 더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국가가 자산을 판다면 이들이 일차적으로 사들일 것이다. 결국 김정은은 시장과 타협해 권력을 나누든지, 아니면 시장을 척결하기 위해 화폐개혁 같은 반동정책을 펼지 결정할 수밖에 없다.”
- 마지막 대북 제재안인 2397호에서 정유 제품의 공급량을 연간 200만배럴에서 50만배럴로 감축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것도 북한으로서는 타격인가.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석유가 부족해지면 트랙터를 돌리지 못하기 때문에 농작물 생산이 줄어든다. 북한의 연간 식량생산은 1990년대 중반 350만t에서 현재는 500만t까지 증가했다. 또 시장에서 식량배분도 잘되고 있다. 때문에 정제유를 제외한 다른 제재가 효과를 보더라도 1990년대 중후반처럼 북한 식량 상황이 나빠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석유 제재로 인해 트랙터를 돌리지 못할 경우 400만t 초중반 선까지 생산량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것도 상당히 위협적이다. 북한 주민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 달라지다니?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따져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북한 주민들도 시장을 통해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게 됐다. 북한이 다시 내핍을 통해 제재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진행된 북한 주민들의 변화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호모 이코노미쿠스’다. 시장을 접하면 인간은 능동적으로 바뀐다. 시장에서 내린 자기 결정에 따라 굶기도 하고 돈을 벌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머리에는 주체사상이 있지만 본능은 시장을 향하고 있다. 나는 2000년 중반부터 우리 정부의 정책 목표가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하여 주민과 정권이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허가받은 약 400개의 시장과 60만개의 점포가 있다고 한다. 골목시장 등 소규모 장마당까지 포함하면 약 800개의 시장이 북한 경제에 일종의 산소호흡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가구 수입의 70~90%가 여기서 나온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 북한이 궁지에 몰리면 비핵화 카드를 협상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보나.
“지금 정도의 압박으로는 아직 서로 가격 흥정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와 ‘핵 보유 인정’ 등 두 가지를 요구했다. 현재 미국은 적대정책 포기는 협상 가능하지만 핵 보유 인정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치권의 주류는 북·미수교를 북한의 비핵화와 맞바꾸는 걸 등가 교환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만약 북한을 제재해도 효과가 없다고 미국이 판단하면 어떻게 할지 미국 내부에서 토의가 벌어질 텐데 그 결과는 우리에게 좋을 수가 없다. 북한의 협상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핵의 외부 유출은 안 된다는 단서 정도를 달고 북한의 핵을 인정해주면 우리에게는 악몽이다. 연평도·천안함 사태 같은 것이 다시 벌어지면 어떻게 하나. 지금 최선은 대북 제재가 효과를 내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시장의 압박을 받아 비핵화 협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우리 진보진영에서는 대화를 통해 비핵화와 북·미수교를 맞출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은데 진짜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김정은이 그렇게 선량할까, 아니면 바보일까.”
- 중국의 원유 공급 중단이 북한에 대한 최후의 압박카드가 될 수 있다고 보나.
“그 카드는 중국이 북한을 버리겠다는 신호다. 그 카드를 쓰면 북한과의 관계가 다시는 좋아지기 힘들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쓰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중국은 북한이 제재를 견디지 못해 경제가 1990년대 중반으로 내려앉는 조짐만 보여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대북 제재에 관한 한 0부터 100까지 할 수 있는 나라다. 중국이 조용히 밀수만 봐주더라도 대북 제재의 효과는 떨어진다. 나는 제재를 더 강하게 할 수 있는 현실적 카드를 오히려 러시아가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 어떤 카드를 말하는 것인가.
“러시아에 북한 근로자가 4만명가량 나가 있는데 이들이 일인당 매달 400~500달러씩 북한에 보낸다. 러시아의 북한 근로자들이 과거에는 벌목공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건설이나 인테리어 쪽에서 일하는데 부지런하고 유능해 아르바이트 수입도 많이 올린다. 과거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매달 받는 130달러를 북한 정권이 다 챙겼다고 가정해도 러시아에 있는 북한 근로자의 전체 수입은 개성공단 수입의 세 배나 된다. 큰 구멍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2397호 제재안에서 해외파견 북한 근로자를 24개월 안에 귀환 조치하도록 했는데 24개월이면 우리에게는 너무 길다. 러시아한테 북한 근로자들을 당장 돌려보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을 테지만 국제여론을 통해 러시아를 압박해야 한다.”
- 그렇다면 지금 수준의 대북 제재만을 유지하더라도 북한이 비핵화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것인가. 결국 시간은 누구 편인가.
“2년 안에 ‘옵티멀 타이밍(최적의 시간)’이 올 가능성이 있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인디케이터(indicator)를 잘 보고 있어야 한다. 우선은 북한 광물 수출이 1년 이상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외화 수급에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두 번째는 북한의 시장 거래량도 절반 이하로 줄어야 한다. 이는 주민소득이 절반으로 준다는 의미다. 세 번째는 북한 정권이 외화 부족을 견디지 못해 민간에 있는 외화를 탐낼 때이다. 북한 정권이 화폐개혁이든 자산매각이든 새로운 정책으로 민간 외화를 빨아들이려고 할 텐데 그게 북한 정권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지표다. 북한을 이 정도로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는 공해상에서의 선박 석유 밀수를 잡아내는 것처럼 철저한 모니터링이 핵심이다.”
그는 경제 제재가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발휘할 경우 앞으로 전개될 가장 현실적인 협상 시나리오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
“일단 북한과 핵 동결 협상을 시작해 순차적으로 4차 핵실험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제재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제재를 점진적으로 해제해 나가는 것과 4차 핵실험 이전으로 되돌리는 과정을 연동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미수교 등은 비핵화와 연동시켜야 한다. 일단 협상을 통해 북한의 틈이 다시 열리면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하고 단기간에 북한의 경제와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는 스마트한 관여정책이 필요하다.”
그는 자신이 구상하는 ‘스마트 폴리시’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면서도 우리의 과거 대북정책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침을 가했다.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과거 대북정책을 결정할 때 경제적 팩트는 설거지 용도쯤으로 취급당했다. 과학이나 팩트가 아니라 정권의 이념이나 대통령의 개인적 선호에 따라 대북정책이 결정돼 허탈하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것이 2010년 천안함 사태 직후 나온 5·24제재 조치를 계속한 것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대북 교역이나 투자를 전면중단하면 북한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봤지만 현실은 딴판이었다. 북한의 최대 수출품목인 광물의 국제 시세가 그 이후 폭등한 것이다. 호주산 석탄 가격 지수가 2006년에는 40대였는데 2011년은 120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이때는 중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채굴량도 크게 늘었다. 이 덕분에 북한은 로또를 맞은 것처럼 떼돈을 벌었다. 이 돈을 바탕으로 화폐개혁의 충격을 이겨낸 것이고, 핵 미사일 실험도 한 것이다. 우리가 북한의 시장에 계속 관여하는 정책을 취했으면 우리가 쓸 수 있었던 대북 레버리지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 문재인 정부가 평창올림픽 기간만이라도 우리의 단독 제재를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카드를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건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약간이라도 발을 빼면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은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업자들이다. 중국 정부가 ‘북핵의 가장 큰 피해국인 한국도 발을 빼는데 우리가 도와줄 필요가 뭐가 있겠느냐’고 여길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북한과의 교역을 다시 늘리려 할 수 있다. 작년 7월 우리가 사드(THAAD) 배치를 결정한 후에도 중국 업자들이 중국 정부의 묵인을 예상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중국의 북한 석탄 수입이 크게 늘었다. 시장은 그만큼 앞서 나가기 때문에 우리가 섣부른 짓을 하면 안 된다. 대북 제재는 살아있는 유기체를 무생물인 벽으로 막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데 그 벽에 조금씩 상처가 나면 결국 다 무너지고 만다. 역설적이지만 최대 압박을 가해야 제재가 빨리 풀린다. 북한 주민을 위한다면 강한 압박을 가해 김정은이 핵 동결이나 비핵화 협상에 조속히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즉 2년 정도는 해야 할 제재를 1년으로 줄이는 것이 북한 주민의 눈물을 진짜 닦아주는 것이다. 제재는 사자같이 들어가서 막강한 타격을 주고 백조처럼 우아하게, 제비처럼 빠르게 나와야 한다. 제재는 북한 핵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북한 주민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김정은은 이미 시장에 올라타버려 북한에서 시장이 가져오는 변화는 더 이상 되돌리기 힘든 불가역적인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김정은 스스로 시장과의 싸움,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핵 미사일 개발에 조급하게 달려드는 것 같다.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사랑하는 온 나라 인민들’이라고 말하면서 뜬금없이 절까지 하는 모습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만큼 북한 주민의 마음을 시장에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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