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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라 할 수 있는 해방정국, 남북합작과 좌우합작을 주장하던 몽양 여운형은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던 비운의 정치지도자였다. 이 책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몽양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인 동시에 파란만장한 20세기 한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실록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낸 몽양의 딸 여연구가 쓴 수기와 2000년 10월 여원구(셋째 딸)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과 진행한 인터뷰, 김일성과 로마넨코와의 대담기록 등을 함께 묶은 이 책은 그가 1940년 일본 천황을 만나 조선의 독립을 역설하였다는 등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책을 내면서
'민족화합의 정치가' 몽양 선생의 부활을 기대하며
비껴온 서광
1. 조선 독립의 초지를 품고
청운의 높은 뜻
파란만장의 풍운을 타고
밤은 깊어가는가
2. 백두의 여명
또다시 대결
광명을 안으라
3. 일본 천왕과 담판하다
잠들지 못한 밤
역사의 지점에서
"조선사람인 것이 아깝다"
광복전을 위하여
민족화합의 한길
1. 해방의 아침
새날의 환호
깨어진 꿈
난파선 위에서
2. 진보적 민주주의의 길
혼란스러운 정국
첫 만남
죽어도 이 길을 가리
"평양으로 가거라"
또다시 북행길
통일제단에 한몸 바쳐
3. 영생하는 아버지
"여운형 선생이 가시다니..."
통일애국 열사로
영생의 축복 속에
부록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여원구 인터뷰
"1940년 아버지 여운형, 일왕과 조선독립 담판했다"
-여운형-김일성의 회담기록
여운형과 김일성의 회담을 기록한 러시아 비밀 문서
-여운형-로마넨코의 대담록(1946년 9월 27일)
전문가의 시각
"그는 진보적 민주주의자였다"
-지인(知人)의 시각
"잃어버린 거성(巨星)을 추모한다"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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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소설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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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몽양 여운형의 둘째딸로 1991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에 관한 토론회에 참가해 남쪽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27년 중국 상해에서 태어나 배화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을 다니다가 1946년 여동생 원구와 함께 월북했다. 1947년 모스크바에 유학했으며, 1979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서기국 부국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이후 조국전선 서기국장(1981년),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1993년) 등 주로 대남분야에서 활동했다. 특히 1990년 5월부터는 남한의 국회부의장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직을 맡았다. 1996년 9월 28일 친구 문병을 다녀오다 가속으로 달리는 트럭에 치이는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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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1963년 생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0년간 '월간 말' 기자로 활동했으며, 2001년 '월간 민족21'을 창간해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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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7편
여연구 여사께서 기록한 여운형 NamGiKim ㅣ 2016-11-21 ㅣ 공감(0) ㅣ 댓글 (0)여운형의 둘째 딸이자 북한 고위직을 맡았던 여연구 여사께서 쓰신 책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 책의 제목부터 뭔가 흥미로웠다. 여운형의 딸이 썻다는 점에서 학술적 연구에는 도움이 많이 될거라보고 독립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인 여운형을 재조명하였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쓴 책이라 그런지 김일성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 박헌영에 대한 편향적인 비판내용과 같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내용들이 너무 많다는 점에선 이 책의 단점일 것이다. 읽기전에 이책이 북한에서 나온 책이라는 것을 주의하고 읽기를 바란다.
오늘 몽양 여운형 선생의 둘째딸이자, 한때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부의장이었던 여연구 여사의 사망소식을 접하게되었다.
'나의 아버지 여운형'을 어제 덮었던 터라 여연구란 이름이 포탈 메인에 떴을때 그리 낯설지 않았다.
당장 리뷰를 쓸 생각은 없었지만 여연구 여사의 사망 소식과 책이 나에게 던져준 생각거리가 아직도 아른거려 글을 쓰게 되었다.
우선 책은 여연구 여사의 입을 빌어 저술된 책인점 , 그리고 자서전인 성격의 책임을 감안해서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읽었다.
책은 크게 해방전 몽양의 독립활동과 해방후 좌우 대립 속에서 합작을 위한 몽양의 노력 이렇게 둘로 나뉜다.
독립운동가의 자서전이나, 근현대사 책을 읽을때마다 항상 느꼈던거지만
독립을 위해 노력하던 초반의 내용을 보고있다가, 해방후 독립이라는 말을 실감하기도 전에 찾아온
민족내 좌우의 대립이라는 현실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 여운형이라는 교과서의 한줄짜리 설명이 아닌 민족화합을 위해 고난을 자처한 민족의 선구자였던 몽양 여운형란 한사람을 어느정도 이해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책이 던져준 한가지 질문
당신은 찬탁인가, 반탁인가,
이 질문에 주관적으로 했던 생각을 적어본다.
모양새로 보자면 분명 반탁이 맞다고 생각한다. 해방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단 말인가. 태어나서 쭉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다.
반탁은 그 야말로 영구적 분단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한 주장이었다.
거대한 두 나라가 우리나라를 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때문이다.
실제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기에 반탁을 각자 지원했으리라...
허나 이책을 보고 생각해본바.
몽양선생이 했던 찬탁.
찬탁의 주장에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고 그리고 어느정도 공감하게 되었다.
찬탁은 당분간은 지배를 받더라도 죽이되던 밥이되던간에 함께 가자는 주장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찬탁이었지만 그 주장은 공감할만한 내용이다.
이 질문의 대답은 아직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네 현대사는 언제 접해도 안타까움과 통탄 그 자체이다.
이 책은 그간 숱하게 거론되었던 현대사와 몽양 여운형에 관한 많은 책 중에 하나로 그냥 스쳐 지나치기에는 별다른 구석이 있다. 책의 저자가 다름 아닌 몽양의 둘째딸 여연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제시기부터 분단까지의 숨가쁘고 안타까운 우리의 역사가 손에 잡힐 듯 생생히 들어오고 몽양의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높은 기개가 절절히 느껴진다.
복잡하고 불투명한 역사의 한 복판에서 민족의 미래를 책임질 지도자들이 과연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깊이 고뇌하게 만드는 이 책은 몽양의 한계와 문제점까지 거침없이 드러내 보임으로써 더욱 갚진 역사의 기록이 될 것이다.
여운형!!! 처음 들은 이름... 상록수 ㅣ 2003-08-29 ㅣ 공감(0) ㅣ 댓글 (0)
처음으로 이렇게 책을 읽고 소감(?)을 써봅니다...ㅋ ㅋ ㅋ 전 재미교포 1.5세라 한국역사에 대해 자세히는 모릅니다...그냥 대충알지요....'여운형' 처음 들어 보는 이름입니다...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위해 않이 애를 쓴것 같은데요...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렇게 자신에게 자주 물으면서 읽었는데...의심을 할정도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이 애를 쓰신분입니다. 아버지의 일생을 딸이 써서 그런지 주관적인것 같더군요... 이분은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주관을 확실히 굽히지 않으면 세계를 돌아다니며 민족 독립을 위해몸소 실천한 분의 생의 이야기 입니다...
다양한 여운형 평가와 비교해 보시길.... 계기태 ㅣ 2002-05-11 ㅣ 공감(1) ㅣ 댓글 (0)
20대 때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다. 책을 읽는 동안 해방공간에서 이 위대한 지도자가 설 땅이 그리도 적었나 하는 안타까움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고 있다. 여연구는 아버지의 암살 배후에 직접적으로 장택상, 간접적으로 미국과 이승만을 지목하는데 장택상은 최근 연구에서 김구 암살에도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택상은 이승만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이 책에서는 김병로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는데 나는 김병로가 일제의 회유가 깊어지자 은둔생활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가 친일로 변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여운형이 윤치호의 변절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고 하는데 윤치호 일기(역사비평사)를 보면 둘 사이에 적어도 1930년대 중반까지 계속적인 교류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여운형은 윤치호에게 안창호의 서북파에 맞서 기호파의 결사를 결성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어쨋든 이런 여운형의 폭넓은 교재가 한때 그를 친일파로 몰기도 하였다.
이 책의 지은이 여연구는 북한의 요직을 두루 거친 여성인사다. 그래서 그런지 김일성과 여운형의 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여운형이 김일성을 미화한 내용이 곳곳에 보이는데 이 것이 과연 얼만큼 신빙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둘의 관계가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여운형의 자식들이 월북하자 김일성은 그들을 소련에 유학 보내주고 후원자가 되주었다.
이런 점때문에 책의 객관성에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을 읽기전에 나는 발굴한국현대사인물 3권 여운형 편(한겨레 출), 이기형의 여운형 평전 등을 먼저 읽어봤는데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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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나 측근이 쓰는 인물평이나 전기가 그 인물의 입장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편향된 시각이라는 인상이다. 특히 같은 시대 인물에 대한 언급에 있어서 전체적인 사회 흐름에 따른 역사적 평가가 아니라,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혹은 아버지의 측근으로부터 들어온 주관적이고 단편적인 평가에 의존한 것이 안타깝다. 당시 필자가 그러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나이였다고 하더라도 이 글을 쓸 당시의 필자는 그러한 정보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이 점은 여연구 여사가 비록 본래의 기능을 다 하지 못하다고 해도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낼 만큼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다.
위대한 지도자! 가을 ㅣ 2002-06-05 ㅣ 공감(2) ㅣ 댓글 (0)
해방직후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신망있는 정치지도자는 누구였을까? 대개의 사람들은 김구나 이승만 정도가 아닐까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자료에 의하면 놀랍게도 여운형선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여운형은 47년의 암살사건을 계기로 역사의 무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을까?
먼저 답을 말한다면 분단의 역사가 초래한 비극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남한에 극우정권이 세워지고 6.25를 계기로 반공정책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중도좌파로서 인식되었던 여운형선생 역시 공산주의자로 덧칠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해방직후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38선을 넘나들며 헌신한 애국자셨다. 하지만 김일성과의 친밀한 관계가 남한의 우익 대표적으로 이승만에게 곱게 보일리 없었으며, 이를 계기로 그의 수하인에 의해 암살당하게 된다.
선생은 늘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셨으므로 1남 2녀를 김일성에 의탁해야만 했고, 전쟁 전 그들은 소련으로 유학을 보내졌다 한다. 70년대 들어 수소문해 이들은 찾아낸 김일성은 눈물의 해후를 했으며, 북한의 미래를 위해 중요 직책을 그들에게 맡긴 바 있다. 이 책은 분단의 이데올로기와 함께 역사속에서 사라졌던 한국의 위대한 지도자를 재조명하고 있는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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