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위기, 대한민국의 위기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 읽고-
대한민국 보수의 위기
선거철이 되었다. 이번 선거도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보수를 표방하는 측은 그런 대결구도가 표 받는 데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해, 말끝마다 죽어가는 보수를 살려달라고 외칠지 모른다. 하지만 촛불혁명을 경험한 우리 국민은 이제 그런 선거구호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엔 제대로 된 보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우리나라 정치판의 보수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 바 있다.
“지금 정치판에 나와 보수 혹은 보수 우파를 말하는 이들은 가짜다. 그들은 매국적이고, 전체주의 파쇼이며, 전근대적 부패왕조 추종자들이다. 그들은 보수를 가장한 파렴치한들이다. 진짜 보수가 살아 있다면 이들에게 매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보수가 살기 위해서도 진짜 보수가 나서야 될 때다.”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 사회라고 보수가 없을 수 없다. 가짜 보수가 판을 친다지만 분명 진짜 보수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보수가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보수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지 않는가.
한 사회가 현재보다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해 추구하는 방법론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는 급진적 태도이고, 또 하나는 과거의 관행을 존중하며 조용하고 질서 있는 변화를 추구하는 점진적 태도다. 보수는 이 중에서 후자를 몸에 익힌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없겠는가. 어느 사회고 보수와 진보가 적절하게 논쟁할 때 그 사회는 건강하다. 보수가 없다면 사실 보수만의 위기가 아니라 그 사회 전체의 위기다. 진짜 보수가 나타나지 않을 때 대한민국은 위태롭다는 말이다.
러셀 커크(1918-1994)
위대한 책 <보수의 정신> 탄생
서구사회를 여행하다보면 어딜 가도 전통을 중시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21세기에 살지만 그들 도시엔 수 세기 전에 만들어진 고색창연한 건물이 시내 한 가운데 당당히 살아 있다. 우리에겐 새로운 것이 아름답지만 그들에겐 오래된 게 아름답다. 전통과 역사 그리고 관행을 존중하는 게 보수주의의 기본이라면 서구사회는 역시 보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것은 신세계 미국도 마찬가지다. 번화한 뉴욕거리만 보지 말고 광대한 땅 이곳저곳을 돌아보면 그곳도 유럽 못지않게 전통이 지배하는 사회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미국인의 뇌세포엔 보수의 DNA가 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미국의 진보와 보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미국 대법원이다. 지난 200년 역사 속에서 대법원은 미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물결을 스스로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대법관 9명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절묘한 조합을 이루며 지혜의 기둥 역할을 해 왔다. 시류에 휘둘리지 않고 그 생각을 유지해온 게 놀랍다. 대법원 역사에서 역시 주류는 보수주의였다. 그것이 오랜 세월 판례의 일관성을 가능케 한 힘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사회의 사상의 흐름을 연구한 한 역사학자가 있었다. 30대 초반의 야심적인 이 남자는 그 흐름에서 보수의 물결을 찾아내고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프랑스 혁명 이후 150여 년 간 나타난 정치사상가나 정치인들의 말을 인용해, 보수주의와 보수주의자가 무엇인지 정의했다. 그는 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사회적 질서원칙을 이해하는지를 말함으로써 ‘보수의 정신’ 핵심에 접근했다. 그는 이 작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후일 그 논문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1953년의 일이다.
그 후 이 책은 미국 보수주의에 그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평가와 함께 보수주의 세계관을 하나의 철학으로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정책과 보수주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오늘 날도 공적 영역의 논의와 토론에서 이 책은 보수주의에 관한 20세기 최고의 명저로서의 권위를 잃지 않고 있다. 러셀 커크(1918-1994)가 쓴 <보수의 정신>(원제, The Conservative Mind)이다.
미국과 서구사회를 이해함에 있어 불가결한 이 책이 출판된 지 65년 만에 대한민국에 상륙했다. 만시지탄이란 말은 이런 때에 쓰는 말이렷다. 책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구입해 책장을 넘겼지만 800쪽이 넘는 대작이 주는 포스가 대단하다. 몇 밤을 새워서라도 서구 보수주의의 핵심에 접근해 보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읽기 힘든 책이다. 그나마 번역서로서는 보기 힘든 유려한 문장이니 독서의 속도가 그리 느리진 않아 다행이다. 번역을 담당한 월간중앙 이재학 기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자판을 두드린다. 뭔가를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다. 대작이라도 잠시만 지나면 망각해 버리는 머리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책의 정수를 간단하게라도 메모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것을 나의 친구들과 나눌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재미가 거기에 있으니.
보수란 특정 이념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보수가 태극기 부대로 오해를 받다보니 요즘 젊은 세대에겐 보수란 독재나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상이나 이념으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보수 혹은 보수주의는 그런 게 아니다. 보수는 어떤 일관된 논리 체계가 있는 이념이 아니다. 이 책을 번역한 이재학 기자는 책 전편에 흐르는 보수주의의 맥을 이렇게 잡아내고 있다. 우선 새겨둘 만한 이야기다.
“보수주의를 굳이 몇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은 대단히 불완전한 존재여서, 지상 낙원이나 천국을 지구상에서 구현할 방법이 없으니 조금씩 노력해 더 나은 사회를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다. 동시에 이 지구는 조상들이 살았고 후손이 살아 곳이니 지금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는 땅인 듯 마음대로 행동하지 말고 충분히 겸손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44-45)
이 말은 저자 러셀 커크가 책 서문에서 밝힌 보수주의의 의미와도 통한다.
“보수주의는 고정불변한 교리의 묶음이 아니다. 보수주의자는 시대에 맞게 보수주의를 새롭게 표현해내는 재주를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럼에도 실천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보수주의의 핵심은 인류의 오랜 도덕적 전통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조상들의 지혜를 존중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전면적인 개조와 변화를 의심스러워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사회가 영생하며, 섬세한 법률 체계를 지닌 영혼이 있는 실체라고 생각한다.”(64)
“보수주의자들은 모든 형태의 이데올로기를 혐오한다. 추상적이고 엄격한 일련의 정치적 독단이 이데올로기이며, 그것은 신봉자들에게 지상의 낙원을 약속하는 ‘정치적 종교’다. ...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를 완벽하게 만들겠다는 그런 선험적 설계를 혐오한다. 왜냐하면 카페에서 떠드는 광신자들의 도구와 무기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25)
간단히 말해, 보수주의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특정 이념이 아닌 사람들이 갖는 여러 태도 또는 성향 중의 하나다.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고 겸손하다.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전통을 중시하는 가운데 자신이 처한 환경을 천천히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사회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 삶의 주요한 형태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잘 생각하면, 그 성향이 이럴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의 피 속에도 보수의 피는 흐르고 있는 것이다.
서구 보수주의 시조 에드먼드 버크
서구 보수주의는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1729-1797)에게서 시작했다고 보는 게 통설이다. 러셀 커크도 그것을 인정하고 보수주의의 역사를 그로부터 시작한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버크가 세상에 보수주의자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직후에 쓴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이란 책을 통해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혁신적인 변화와 급진적인 개혁은 기존질서의 파괴와 혼란만을 초래할 뿐 실익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에드먼드 버크(1729-1797)
저자가 버크의 보수주의를 관찰하고 내린 종합적인 평가는 이 한 단락에 담겨져 있다. 버크의 보수주의 핵심은 이런 것이었다.
“버크는 그의 연설과 저작에서 문명화된 인간의 보편적 헌정 체제를 상정했다. 버크의 주요 글은 다음과 같은 논지를 견지했다. 사회가 이뤄진 모습은 하늘이 그렇게 원했기 때문이라는 믿음, 개인이나 공공의 삶은 전통과 선입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 인간은 오직 신의 눈에서만 평등하다는 확신, 개인적 자유와 사유재산을 헌신적으로 지지하지만 교조주의적 변화에는 반대한다는 내용이다.”(81)
토마스 페인(1737-1809)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에드먼드 버크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안 할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토마스 페인이다. 미국의 독립과정에서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이다. 그는 <상식>이란 팜플렛을 통해, 식민지 주민들의 권리를 확인한 다음, 미국이 공화국으로 독립해야 함을 촉구했다. 페인은 미국 독립 이후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고 그 현장에 뛰어 들었다. 이 때 버크와의 논쟁이 시작된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했던 버크가 오히려 그것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을 쓰자 반격에 나선다. 바로 <인권>이란 책을 통해서다. 페인이 버크에게 가하는 격정적인 부분 두 곳을 찾았다.
“나는 어떤 국가형태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논쟁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당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려는 것도 아니다. 전 국민이 선택한 일이라면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버크 씨는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산 자의 권리를 위해, 다시 말해 그들의 권리가 죽은 자의 권위에 기반한 문서에 의해 양도되고 제약되며 수축되는 것에 반대하여 다투고 있다. 반면 버크 씨는 산 자의 권리와 자유를 지배하는 죽은 자의 권위를 위해 다투고 있다. 왕이 임종 때 유언으로 왕위를 물려주고, 인민을 마치 들짐승처럼 그들이 지명한 후계자에게 무조건 예속시킨 시기도 있었다. 이제 이런 권위는 완전히 파멸되어 기억조차 되지 않을 정도이고, 너무 괴상하여 믿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버크 씨가 자신의 정치적 교회를 세우는 기반인 의회의 법조문들은 바로 그런 경우와 똑 같은 본질을 가진다.”(토마스 페인(박홍규 옮김), <인권>, 95-96)
"세상의 상황은 계속해서 변하고, 인간의 생각도 변한다. 그리고 국가는 산 자를 위한 것이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므로 오직 산 자만이 그 안에서 권리를 가진다. 어떤 세대에서는 정당하다고 생각되고 유용하게 보이던 것이 다른 세대에 가서는 부당하다고 생각되고 무용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누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산 자인가, 죽은 자인가?"(토마스 페인, <인권>, 99)
----------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보수주의 10가지 원칙-
이 책에서 저자는 영국을 기점으로 출발한 보수주의가 미국에 상륙해 어떤 모습을 드러냈는가를 설명한다. 버크에서 시작해 시인 엘리엇에 이르는 수십 명의 논객들의 생각 속에 들어 있는 보수주의의 참 모습을 어떻게 정리해 낼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엔 저자가 본 보수주의의 정수는 책 말미에 있는 보수주의 10대 원칙이란 글에 담겨 있다고 본다. 이것이 저자가 보수주의를 연구한 끝에 도달한 결론이다. 10가지 원칙은 보수주의를 신념화한 사람들의 공통분모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소개하는 것으로 800쪽 <보수의 정신> 핵심에 다가가 보자. 우선 보수주의에 대한 저자의 일성을 들을 필요가 있다.
“보수주의는 이념이나 종교가 아니다. 보수주의의 교리를 제공해주는 성경, 이른바 ‘자본론’ 같은 건 없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이 무엇을 믿는지 알아보려면 지난 200년간 보수적인 저자들이나 공인들이 선언해온 내용에서 보수적 신조의 첫 번째 원칙들을 추출해야 한다.... 보수주의는 정신의 상태며 문명사회의 질서를 보는 하나의 시각이다. 우리가 보수주의라 부르는 태도는 이념적 교리 체계가 아니라 어떤 일군의 정서로 이루어진다.”(794)
첫 번째 원칙: 보수주의자는 불변의 도덕적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진보는 불변의 도덕적 원칙을 부정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원칙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진보에겐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사회라는 믿음이 있다. 변화는 그래서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불변하는 도덕적 질서가 있다는 신념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강한 의식으로, 정의와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개인적 확신으로 인간이 지배하는 사회는 어떤 정치적 기제를 채택한다고 해도 매우 훌륭한 사회다.”(796)
두 번째 원칙: 보수주의자는 관습, 널리 오랫동안 합의된 지혜, 계속성을 중시한다.
진보는 관습이나 전통도 어느 순간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면 깨부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주의자들은 관습, 널리 합의된 지혜, 계속성을 위해 싸우는 투사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르는 악마보다는 아는 악마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질서와 정의, 자유는 오랜 사회적 경험의 인공적 산물이며, 수세기의 고난, 반성, 희생의 결과물이다. ... 변화가 필요할 때도 오래된 이해 세력들을 한꺼번에 해체하지 말고 반드시 단계적이고 차별적으로 변화를 도입해야 한다.”(797)
세 번째 원칙: 보수주의자는 소위 규범이라는 원칙을 믿는다.
규범은 전통의 산물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오래된 규범으로부터 오늘의 삶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보수주의자는 현대인이 거인의 어깨 위에 있는 난쟁이이며, 그들의 조상보다 더 멀리 바라 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앞서 살았던 인물들의 위대한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는 오랜 기간 관습으로 굳어진 규범의 중요성을 매우 자주 강조하여 인간의 정신이 반대로 달려가지 않도록 한다.”(798)
네 번째 원칙: 보수주의자는 신중함이란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대한민국 사회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개혁엔 실수가 따른다. 보수주의자는 그런 점을 알기에 언제나 돌다리도 두드리고 나서야 건넌다.
“어떤 공공의 정책도 거의 확실한 장기적 결과를 감안해서 결정해야지 단순히 단기적인 인기나 이점에 따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신의 섭리는 천천히 움직이지만 악마는 언제나 서두른다.”(798-799)
다섯 번째 원칙:보수주의자는 다양성의 원칙을 중시한다.
진보주의자들은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통일성이나 평등을 좋아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세계의 복잡성을 인정한다. 이것은 사실상 불평등을 현실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문명에서도 건강한 다양성을 보존하려면 질서와 계급, 물질적 조건의 차이, 다양한 종류의 불평등이 살아남아야 한다.”(799)
여섯 번째 원칙: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원칙에 따라 보수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억제한다.
진보주의자는 인간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 인간은 항상 진보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의 불완전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는 이상향의 추구가 참사로 끝난다고 말한다. 인간은 완벽한 세상에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는 참을만하게 질서가 잡혀 있으며,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로서 어느 정도의 악과 사회적 불균형, 고통이 계속 존재하는 곳이다.”(800)
일곱 번째 원칙: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와 재산권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확신한다.
이 확신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이 사회주의 등의 좌파 사상과 연결되기 어렵다. 보수주의자들은 위대한 문명은 사유재산권을 토대로 수립되었다고 믿는다.
“사유재산 제도 사적 소유권은 인류에 책임감을 가르치고 성실해야 한다는 동기를 제공하며 문화 전반을 지원하고 인류를 단순히 고된 일의 수준에서 벗어나도록 만들며, 생각할 여가와 행동할 자유를 제공해준 강력한 도구였다.”(801)
여덟 번째 원칙: 보수주의자는 자발적인 공동체를 지지하고 강제적인 집산주의를 반대한다.
미국인들의 DNA 속엔 자치의 유전자가 있다. 바로 자발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스스로를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방국가를 만들어 지난 200년을 버텨온 힘이다.
“진정한 공동체라면 시민의 삶에 가장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지역적이고 자발적으로 내려야 한다. 이런 기능들의 일부는 지역 정치 기구들이, 다른 기능은 사적인 모임들이 수행한다. 그들의 단체가 지역적이고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대개 그에 동의한다면 그들은 건강한 공동체를 구성한다.”(801)
아홉 번째 원칙: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격정과 권력을 신중하게 자제해야 할 필요를 인지한다.
이것은 보수주의자들의 권력에 대한 인식이다. 그들은 인간을 완전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권력의 횡포를 항상 경계한다. 미국 독립 과정에서 분권제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진 생각이었다.
“인간의 본성에 선악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은 단순한 호의를 신뢰하지 않는다. 보수주의자들은 헌법적 제약, 정치적 견제와 균형, 법률의 적절한 강제, 예로부터 의지와 욕구를 억누르는 미묘한 그물망 등을 자유와 질서의 도구로 승인한다.”(803)
열 번째 원칙: 사려 깊은 보수주의자는 활력이 넘치는 사회라면 영속성과 변화를 반드시 인정하고 조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가 영원히 변화를 용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오해다. 그들도 사회적 개선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전통과 규범에서 오는 계속성과 전진의 힘을 조화해야 한다. 그들은 합리적이고 온건한 변화를 선호한다.
“지적인 보수주의자는 계속성의 요구와 전진의 요구를 조화시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계속성의 정당한 요구에 눈감은 자유주의자와 급진주의자들은 의심스럽기 만한 지상의 낙원으로 우리를 서둘러 데려가려 한다. 그러한 노력의 과정에서 그들은 우리에게 전해진 유산을 위험에 빠트리게 된다고 보수주의자들은 생각한다”(804)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여, 앞으로 나와라
이상에서 우리는 서구의 보수주의 그중에서도 미국의 보수주의의 실체를 보았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자. 저와 같은 인간의 성향이 서구사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보편적 인간의 성향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보수주의는 어떨까. 물론 존재한다. 저런 보수주의를 지지하며 그것을 삶의 자세로 체화한 사람은 의외로 많다.
문제는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거다. 대한민국이 제 길을 가기 위해서도 저런 보수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 전면에 나서야 한다. 양심적인 보수, 도덕적인 보수가 나와 쓴 소리를 아끼지 말면서, 가짜 보수들을 내몰고 급진적인 변혁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할 때, 대한민국이란 기차는 제 궤도를 달리며 행복의 미래로 나아갈 것으로 믿는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