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5

중국 어선에 바다 뺏긴 서아프리카 … 어부들이 해적 됐다



중국 어선에 바다 뺏긴 서아프리카 … 어부들이 해적 됐다




중국 어선에 바다 뺏긴 서아프리카 … 어부들이 해적 됐다
[중앙일보] 입력 2018.04.05
기자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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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노예선이 들락거렸던 서아프리카 기니만 일대가 해적에 대한 공포로 끓어오르고 있다. 기니부터 앙골라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출몰하는 이들 해적선은 유조선·화물선 등에 접근해 물류(기름 포함)를 탈취하거나 선원을 납치해 석방 합의금을 요구한다.

그들은 어쩌다 그물 대신 총 들었나지난달 26일(현지시간) 한국 선적의 참치잡이 어선 마린 711호(455t급)가 해적들의 급습을 받은 곳도 가나 해역이다.


불법 어업에 연 1조 넘게 어획 감소

납치범들은 나이지리아 해군의 추격을 피해 베냉과 나이지리아 경계 해역에서 한국인 3명 등 5명의 인질을 자신들의 스피드보트(고속 모터보트)에 태우고 잠적한 상태다. 마린 711호가 피랍된 기니만 일대는 최근 몇 년간 해적 공격이 급증해 왔다. 비영리단체 ‘하나의 지구 미래 재단’이 후원하는 ‘해적 없는 해양’(OBP)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니만에선 95건의 해적 공격이 보고돼 전년도(54건)의 두 배 규모로 증가했다. 지난해 해적 공격은 45건으로 해적 출몰 1번지로 여겨져 온 아프리카 북동부 소말리아 아덴만 일대(9건)의 5배에 달했다(해양수산부 ‘2017 세계 해적사고 발생 동향’).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애초 소말리아가 해적의 온상이 된 것은 국가 체제가 사실상 붕괴된 상태에서 어부들이 생계형으로 해적질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아덴만 일대는 세계 교역량의 10%가 통과하는 해상 교통의 요지다.

소말리아 일대의 해적 세력은 2008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 연합군의 해적 단속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위축되기 시작됐다. 무장 해군이 해역 경계를 강화하고 각 선박이 자체적으로 무장 경비병력을 고용하면서 치안도 회복됐다. 소말리아 해안에서 2011년 237건에 이르렀던 해적 공격은 지난해 9건으로 급감했다.


해적 활개 → 무역 차질 → 가난 악순환




2012년 태국 어선을 납치했다가 석방 합의금을 받고 풀어준 뒤 어선 앞에서 포즈를 취한 소말리아 해적. [AP=연합뉴스] FILE - In this Sunday, Sept. 23, 2012 file photo, masked Somali pirate Hassan stands near a Taiwanese fishing vessel that washed up on shore after the pirates were paid a ransom and released the crew, in the once-bustling pirate den of Hobyo, Somalia. Somali pirates have seized a small boat, kidnapped its Indian crew members, and are taking the vessel to the Eyl area of northern Somalia, an investigator said Monday, April 3, 2017, the latest vessel targeted by the region's resurgent hijackers. (AP Photo/Farah Abdi Warsameh, File)

서아프리카 해안 역시 유사한 해적질이 빈번했던 곳이지만 소말리아 일대가 잠잠해지는 상황에서 해적들의 주 무대로 떠올랐다. 유럽과 가까운 기니만은 16세기부터 조성된 노예해안·상아해안 등을 중심으로 어업 및 교역 항구가 발달했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와 앙골라에서 생산되는 원유가 기니만을 통해 각국으로 수출된다. 일대 연안은 도미·정어리·고등어·새우 등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어업 관련 일자리는 지역 고용의 4분의 1을 직간접적으로 책임진다.

하지만 어민들의 생존이 걸린 어장은 다른 나라에서 밀려오는 원양어선에 의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의 2012년 보도에 따르면 서아프리카가 보호구역 너머 불법 조업이나 남획으로 뺏기는 수산자원은 연 15억 달러(약 1조6000억원)어치에 이른다. 코트디부아르만 해도 매년 불법 조업으로 5만5000여t을 ‘강탈’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악명의 아덴만보다 5배 많이 출몰




2016년 서아프리카 기니만에서 파나마 유조선을 납치했다가 나이지리아 해군에 체포된 해적들. [AP=연합뉴스]특히 중국 원양어선의 저인망식 싹쓸이 조업이 문제가 돼 왔다. 국제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에 따르면 아프리카 해역에서 활동하는 중국 국적 또는 중국 소유 어선은 1985년 13척에서 2013년엔 462척으로 급증했다. 승인 없이 조업하거나 금지 수역에서 고기를 낚는 어선들 다수가 중국의 국영 원양어업 업체인 중국수산유한공사(CNFC) 소속이다. 영국의 ‘환경정의재단’에 따르면 중국 외에 한국 및 유럽 국적 어선들이 아프리카 불법 조업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다.

소말리아와 마찬가지로 생계를 위협받는 서아프리카 어부들은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해적질이나 마약 거래 등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나아가 나이지리아 해적의 경우엔 남부 유전지대 니제르 델타의 범죄조직과 연관돼 있다고 알려진다. ‘해적 없는 해양’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는 석유 생산품이 전체 수출의 90%를 차지하고 대부분이 니제르 델타에서 나오지만 정작 현지인들은 경제적 이익을 누리지 못한 채 해적질이나 원유 도적질에 노출돼 있다.


한국인 3명 석방 합의금 요구할 듯




2012년 인도양 해상에서 스페인 해군에 의해 적발된 해적 보트. [AFP=연합뉴스]나이지리아 해적들은 선원을 납치해 니제르 델타의 미로 같은 강가에 숨어 석방 합의금을 요구하는 수법을 쓴다. 마린 711호에서 피랍된 한국인 3명도 나이지리아 남부에 감금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한 바 있다.


해적들의 창궐은 서아프리카 경제에 직접 타격을 준다. 정상적 교역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서아프리카에서 해상 범죄로 인한 경제비용이 연 7억9400만 달러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전문가들은 서아프리카 해적 억지를 위해 소말리아 해적 퇴치 과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각국의 정보협력과 해군력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소말리아 해적이 지난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토머스 발트하우저 미군 아프리카사령관은 “600만 명에 이르는 소말리아인들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어 언제든 해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프리카 지역의 정치·경제 안정이야말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중국 어선에 바다 뺏긴 서아프리카 … 어부들이 해적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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