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⑪] 이지수 "北, 붕괴 직전 폭풍전야...대화가 상황 못바꿔" - 조선닷컴 - 정치 > 북한
양승식기자, 변지희 기자
입력 : 2018.03.31 11:00
이지수 명지대 교수가 29일 서울 명지대 본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변지희 기자
이지수 명지대 교수는 29일 “사회주의식 계획 경제가 완전히 망가진 북한은 체제 붕괴 전의 폭풍전야”라며 “북한 지도층과 주민들도 체감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격한 체제 붕괴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이날 서울 명지대 캠퍼스에서 이뤄진 본지 인터뷰에서 “고위 당 간부가 생필품을 장마당에서 사는 것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무너졌다는 징조”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1980~1990년대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을 기점으로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며 “북한은 항아리 안 물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도 모르고 결국 죽어버리는 개구리처럼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다만, 소련·동구권과 달리 북한이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과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한몫했다”며 “북한에서 시장이 확산되는 것을 지연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권은 대화 국면을 이어가면 실제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며 “북한을 도와주고 선의(善意)로 대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질병적 사고’를 가진 이상주의자들, 몽상가(夢想家)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인류 역사 이래 없었던 그로테스크한(괴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며 “김정은은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가고 줄타기를 하다 바람이 불면 떨어질 상황인데 현실을 인식 못 하고 착각하고 있다”고 했다.
아래는 이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현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국면을 조성했지만,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해결 방법을 두고 대화파와 제재파의 의견이 여전히 엇갈린다.
“문재인 정권은 자신들의 전통에 따라 화해와 대화 협력을 우선하고 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북한을 포용했던 것보다 더 강하게 북한을 포용한다 하더라도 지금 북한 상황을 바꾸는 데 큰 변수가 안 된다. 북한은 현재 붕괴 직전의 임계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 역시 지금 북한 상황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정치적인 선택을 하든, 북한의 붕괴는 막을 수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받치는 정치, 경제 두 기둥 중 경제 부분이 이미 파국에 다다랐다. 북한의 사회주의식 계획 경제가 완전히 망가졌는데 북한 지도층도, 주민들도, 국제 사회도 이런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또 아무도 그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하지만 폭풍 전야인 것은 확실하다. 앞으로 북한의 상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어떤 것이 매개가 돼 북한 체제가 붕괴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우연히,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기점으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태가 흘러갈 것이다.”
-북한 체제가 임계점에 왔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위 당 간부가 생필품을 장마당에서 사는 것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무너졌다는 징조다. 북한 고위 간부들은 예전에 배급을 통해 음식을 받았지만, 이제는 장마당에서 돈을 주고 사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주의식으로 배급이 진행됐던 북한 경제 체제가 지금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을 기점으로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1990년대 초부터 11년간 소련에서 유학생활을 했는데, 당시 대부분의 현지인들도 소련이 해체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예상하지도 못했다. 사람들은 소련이 어느 순간 해체되자 다들 급변사태가 일어났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급변이 아니라,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와해됐는데 정치적인 시스템은 그대로라면, 이 변화가 어떻게든 정리돼야 하지 않나. 소련은 고위 간부들이 장마당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누구도 이런 현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변화가 10여년에 걸쳐 일어나다 보니 아무도 변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개구리는 변온동물이어서 주위 환경에 따라 체온이 변하지 않나. 이 개구리를 항아리에 넣고 불을 때면 물 온도가 높아지는 것도 모르고 결국 죽어버리는데 당시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이 이런 상황이었다. 현재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지수 명지대 교수가 29일 서울 명지대 본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변지희 기자
-당시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우선 소련은 1979년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소모전으로 끝나며 큰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이유로 모스크바 올림픽에 많은 국가들이 참가하지 않으면서 올림픽이 엄청난 적자를 냈다. 가뜩이나 소련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모순으로 삐걱거리던 상황이었는데 이 두 가지를 이유로 경제가 더욱 휘청댔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노동력이 유일한 가치척도이기 때문에 500달러어치의 원유든, 10달러 어치의 사탕수수든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생산한 양이라면 동일하게 교환할 수 있었다. 이런 시스템을 뒷받침해 준 것이 소련이다. 소련은 온갖 자원이 풍부해 이런 소련의 존재 덕분에 동구권 국가들의 경제가 원만하게 굴러갈 수 있었다. 소련이 사회주의 국가들의 주춧돌, 가장 큰 저수지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소련이 휘청거리면서 동구권 국가들은 일시적, 제한적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당시에는 모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잘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결국 약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중국도 시장 경제를 도입했는데 무너지지 않았다.
“소련과 동구권 지도자들은 시장경제를 암세포라고 봤다. 반면 중국은 시장경제를 역사 진보의 활력소라고 봤다. 1979년 덩샤오핑은 ‘시장경제의 불구덩이로 뛰어들겠다’고 했다. 그는 시장은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며 인류 역사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시장에 대한 이러한 인식 덕분에 위기를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 김정은은 시장경제를 소련과 동구권의 지도자들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북한은 그런 격변기에 체제를 유지했다.
“북한은 소련과 동구권이 흔들리던 1980년대엔 조총련 덕분에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김일성은 매우 실리적인 사람이었다. 1955~1956년쯤 재일교포들에게 당시 100만 달러(약 10억원)를 지원하는 사업도 벌였다. 인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투자였다. 1958년경부터는 재일 교포들을 북한에 데리고 왔다. 일종의 인질이었다. 약 200명이 북한에 끌려갔는데 한 사람당 500만엔(약 5000만원) 정도를 그들의 가족들에게 1년에 수차례씩 요구했다. 북한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도 감수했다. 1980~1990년대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이 무너지는 동안 북한은 인민들을 굶겨 죽이며 버텼다. 만약 그때 장마당을 제한적으로라도 허용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진 않았을 것이다. 북한은 2002년 정도 되어서야 장마당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지난 1월 1일 북한 각 계층 근로자, 인민군 장병들, 학생들이 새해를 맞아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찾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연합뉴스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은 10년 만에 무너졌는데, 북한은 장마당을 허용하고도 16년이 흘렀다.
“이제 북한 체제의 붕괴는 턱밑까지 왔다고 본다.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북한이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개혁과 개방은 동전의 양면이다. 시장 경제 체제로 개혁하려면 개방은 필수라는 뜻이다. 그런데 북한은 개방 없는 개혁을, 그것도 국지적인 개혁을 하려고 했다. 조총련은 한때 북한에서 공장을 많이 지었다. 공장 기계 부품이 망가지면 이를 고치러 북한 밖으로 나갔다 와야 했는데, 북한은 이를 허가해주지 않았다. 개방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조총련 기업인들은 결국 북한에서 손 털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김정일은 이 위기를 국경 지역에 공장을 세우는 것으로 극복하려 했다. 모기장 치듯 제한된 구역에서만 개방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른바 모기장 이론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시장경제체제로의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겠나. 금강산 관광과 개성 공단도 국경 지역에서 모기장을 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냈다. 그리고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기는커녕 통제 경제, 배급 경제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돈줄이 됐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 공단에서 나온 돈은 누구에게 나눠주겠나. 주민이 아니라 노동당 고위 간부들, 호위사령부 등이 나눠 가졌다. 이 때문에 당시 그 사람들은 장마당에 의존하지 않아도 됐다. 결과적으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북한에서 시장이 확산되는 것을 지연시킨 셈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지원 정책이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는 뜻인가.
“계획경제는 하나의 정밀 기계와도 같다. 한 군데서 어긋나면 연쇄적으로 어긋나는 구조다. 예를 들어 홍수 때문에 농사를 망쳤을 때 그 해에는 어떻게든 배급을 해서 고비를 넘기는데, 매해 흉작이면 결국 쌀이 거덜나서 배급을 못 할 지경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쌀을 구하기 위해 발전소에서든 신발공장에서든 사람들이 노동 현장을 이탈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쌀만 부족했다가 이제는 전기도 석탄도 신발도 모두 다 부족해져 버리는 것이다. 이를 회복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선 모든 노동자들이 현장을 지킬 수 있도록 의식주를 제공해야 한다. 이미 망가진 노동 현장을 복구하려면 발전소에는 석탄을, 탄광에는 전기를 가져다주는 등 각 단위마다 지원을 해줘야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지원을 해줘야 한다. 한 달, 두 달, 석 달 시간이 흘러야 경제가 다시 돌아간다. 대북 지원도 이렇게 체계적으로 하지 않으면 언 발에 오줌 누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것을 감안하지 않고 대북 지원을 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대북 지원 혜택은 북한 체제 정상화를 위한 곳이 아니라 (김정은이나 당 간부 등) 엉뚱한 곳으로 갔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북한 체제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매우 견고한 체제라고 볼 수 있지 않나.
“견고하다는 것은 착각이다. 그리고 매우 피상적인 관찰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북한은 견고한 체제가 아니라 비효율적인 체제다.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은 주민들이 굶어 죽을까 봐 공산당 정권을 갈아치우려 했는데 이에 반해 북한은 체제를 고수하면서 주민들을 굶겨 죽였다. 정권 유지를 위해 터무니없이 많은 희생을 치른 것이다. 이를 두고 견고한 체제라 한다면 피상적인 것뿐 아니라 매우 비도덕적인 관찰을 한 것이다. 또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동안 속아서 살았다’고 이야기한다. 북한에서는 6·25가 북침이며, 김일성 일가는 조국해방의 영웅이라고 한다. 북한이 개방하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은 설 자리가 없게 되기 때문에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해온 것이다. 그 대가로 북한에서는 인류 역사 이래 없었던 그로테스크한(괴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전체주의, 사유 재산을 부정하는 사회주의, 그리고 전체주의와 사회주의 어디에도 없는 세습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체제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이래 없었다.”
-그렇다면 북한을 향한 체제 선전전을 하거나 김정은에 대한 ‘외과수술적 타격’은 효과가 있을까.
“그것도 이미 늦었다고 본다. 그만큼 이미 임계점에 다다랐다. 물이 끓기 직전인데 온도가 그 정도로 높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소련은 장마당이 확산되자 화폐개혁을 하고 공식 환율을 조작하는 식으로 시장 경제의 확산을 막으려 했다. 그런데 북한은 소련이 했던 것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면 북한 체제는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살아남지 못한다. 자신의 체제 유지를 위해 김일성·김정일처럼 개방 정책을 안 펼칠 것이라고 본다. 김정은이 지금 단계에서 개혁·개방을 한다면 오히려 동정의 시선을 보내야 한다. 자기가 자기 발등을 찍는 것 아닌가.”
조선일보DB
-미국이 코피 작전을 이야기하고, 이른바 ‘참수 작전’에 대한 말도 나온다. 북한 체제 붕괴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간파한 것일까.
“미국도 그렇게 상황을 잘 아는 것 같지는 않다. 체제 붕괴로 급변사태가 올 상황이라는 것을 안다면 오히려 북한을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았겠나. 이왕이면 전쟁보다 평화적으로, 붕괴를 연착륙 시키는 게 낫지 않나. 하지만 미국은 현 상황을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김정은은 ‘시황제’를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번에도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개혁·개방을 언급했다.
“착각은 자유다. 내가 김정은이라면 숨도 제대로 못 쉴 것 같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가고, 줄타기를 하다 바람이 불면 떨어질 상황이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 때 삼지연 관현악단이나 응원단 등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보낸 것을 보면 위기를 전혀 못 느끼는 것 같다. 예전에도 북한에서 사람들이 교류 차원에서 많이 내려오고 했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또 다르다. 이미 평양 고위층들은 우리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고 ‘동무’가 아닌 ‘~씨’라는 호칭을 쓴다고 한다. 그만큼 잠재의식 속에 서울 바람이 깃들어 있다는 얘기다. 나중에 이 모든 국면이 다 끝난 다음에도 김정은이 살아있다면 평창에 사람을 보낸 것부터가 패착이라고 할 것 같다. 이렇게 위태로운 시기에 그 많은 사람을 보내서 북한의 실상을 체감하게 했다. 이런 대규모 방문이 나비효과를 가져올 줄 몰랐다고 후회할 것 같다.”
-김정은도 현실 인식을 못 하고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고 본다. 과학자의 거리를 만든 것도, 중국에서 가상현실(VR) 체험을 한 것도 다 현실을 모르고 한 것 같다. 역사를 안목 있게 봐야 하는데…”
-그렇다면 정상회담을 포함해 최근 정부가 조성한 대화 국면은 무슨 의미가 있다고 보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해야 하지 않겠나. 내가 대통령이라도 정권을 연장할 수 있고 표를 더 얻을 수 있다면 인적 교류든 뭐든 끊임없이 시도해 북한을 더 도와준다고 할 것 같다.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 있는 것, 다음번 정권을 연장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다 할 것이다. 다만, 현 정권이 북한에 대해 벌이는 정책이 모두 정략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이렇게 대화 국면을 이어가면 실제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깊게 보는 전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상주의자들, 몽상가들이다.”
이지수 명지대 교수가 29일 서울 명지대 본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변지희 기자
-현 정권의 정책 입안자들은 자신의 선의가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는 뜻인가.
“그렇다. 아이디얼리스트(Idealist) 같다. ‘이상주의자’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고 ‘몽상가’라는 뜻이다. 1970~1980년대 독재 권력 시대에 싸운 지식인들 중에는 북한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 않나. 당시에는 북한이 적의 적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고, 그런 호의적인 정서가 있었다. 또 북한을 공부하다보니 북한이 한국보다 나아보인다고 착각하는, 그런 바보들도 항상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실제로 북한을 보고 와선 상황이 달라졌다. 자신들의 의식 세계에 혼란이 올 수 밖에 없었다. 일부는 ‘강철’ 김영환씨 처럼 전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의식 파탄 상태를 해결하지 않고 묻어버린 사람들도 많았다. 의식 파탄 상태에서 스스로를 지키려고 방어 심리가 생긴다. ‘북한을 어떻게든 살려야 하고, 김일성·김정일 정권이 살아나야 한다’고 믿어 버리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소프트랜딩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식으로 의식이 그렇게 흘러가다보니, 북한은 개혁·개방을 할 의욕과 능력이 있는데 보수세력, 네오콘들 때문에 제대로 그게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북한을 도와주고 선의로 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런 사고가 질병적이라고 본다. 일종의 자기 합리화를 하는거다.”
-야당에서 ‘주사파’라고 하는 청와대 임종석 대통령실장 등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얘기인가.
“당연하다. 저는 그렇게 본다. 여전히 그런 생각이 남아있는 것 같다. 생각은 쉽게 안 변한다.”
-그러면 제재와 압박을 강조하는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의 접근법 역시 나와는 다르다. 물론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재다운 제재를 했다고 생각한다. 중국, 러시아까지 움직이지 않았나. 다만, 냉전이 종식됐을 때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압박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보다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대화·협력 움직임의 효과가 컸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의견이 엇갈렸다. 겉으로 보면 둘 다 맞는 것 같지만 나는 둘 다 아닌 것 같다. 당시의 변화는 외부 작용에 의해 변화한 것이 아니라 소련과 사회주의 체제 내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지금 국면에서 우리의 적(敵)은 분명하다. 세습정치, 그리고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들이 적이다. 나머지는 적이 아니다. 이를 알고 대화·협력하는 것과, 선의로 대화·협력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알고 도와주는 것은 모르고 도와주는 것과 다르다는 뜻이다. 지금 대화가 북한의 핵·미사일 완성을 위한 시간 끌기 용이고, 또 위험하다지만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터지기 직전인 만큼 핵 문제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큰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핵·미사일 문제가 핵심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북한은 장마당이 널리 퍼진 사실상의 자유시장경제다. 이런 현실을 제도로 빨리 정상화시키고 합법화·공식화 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불완전한 체제가 되는 것이다. 지금 북한 체제는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중국 공산당이 개혁·개방을 하는데 핵이 걸림돌이 됐나. 핵이 없어서 개혁·개방을 못했나. (그럴 일은 없지만) 북한은 한국을 적화통일 한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뒤 핵을 그대로 유지하는 폐쇄 국가로 갈 것이다.”
-북한의 붕괴가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에 대화도 압박도 큰 효과가 없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북한의 변화를 잘 보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한 뒤 대비해야 한다. 각자 맡은 역할을 잘하면 된다. 어떤 사태가 오더라도 그 누구도 온전히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없을 것이다. 조정하며 통제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런 상황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돼 있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키워서 북한 변수가 밀려오더라도 얼마든지 받아낼 수 있는 능력을 높여야 한다.”
☞이지수 명지대 교수 :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연방 외무성 외교아카데미,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극동연구소 등을 거쳐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에서 ‘소련의 대북한 정책(1945~1948)’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 정치외교학과, 북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30/20180330017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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