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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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 증언의 귀중함
작성자 바보새 14-06-04 00:06 조회4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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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증언의 귀중함

나는 요새 장병근 목사의 6.25전쟁 때 우리 민족이 겪은 것을 쓴 책을 관심있게 읽고 있습니다. 공산당이 들어왔을 때 기독교가 어쨌나? 그건 나 자신이 몸으로 공산당을 겪어본 사람이니까 어느 정도는 아는 데, 그러면서도 그 책을 읽으면서 새삼 놀라운 바가 많군요. 그걸 쓰느라고 고심한 것이 역력하기도 하고, 자료를 어디서 모았는지 참 열심으로 했어요. 그걸로 다는 아니겠지만 그렇더라도 하여간 상당히 충실하게 힘들여 쓴 책인 게 분명하더군요.
그런데 그걸 보고 느낌이,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의 기독교라는 거, 지금도 이렇지만, 완전히 실패라고는 못하겠지만 개중에 그래도 몇 사람은 안 그랬으니까 전체로 한다면 거의 완전히 낙제다 싶습니다.
평상시에 교회엘 열심으로 나가고 예배의식을 지킨다든지 ……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어요. 그랬던 것이 일단 그 폭력으로 하는 정치를 만나면 꼼짝도 못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목사라고 하나 사람들, 큰소리 하던 사람들도 하라는 대로다 양심을 속이고 했고, 거기서도 또 의견이 갈라져 서로 남을 잡아먹는 일도 하고, 그럴 뿐만 아니라 또 형편이 달라져 이쪽에서 주권을 쥐게 되면 보복행동을 공산주의자나 마찬가지로 해요. 사람을 죽이되 그렇게 죽일 수가 없어요.

전쟁이 문제가 아니에요. 전쟁 때 총으로 쏴 죽이는 건 문제가 아닌데, 그 뒤로 그때를 지나고 난 다음에 서로 보복행위를 하는데,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한번 그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뭐 그 책이 아니더라도 6.25에 된 일을 우리가 잘 알고 지내야겠는데, 나부터도 그걸 지내고 나서도 참 모르고 지냈다하는 생각이 새삼 나요. 이 앞으로 세상은 또 그렇게 어지러울 겁니다. 아마 그 정도가 아닐 겁니다. 그러고 나면 서양 사람들 소위 지성인이라는 거, 미국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앙이라는 거,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이제 보시 오. 맥없이 무너질 겁니다.(비장한 어조로) 사람이 아니오! 그 판국이 되면 짐승보다도 더 악독해져요. 사람의 사람 된 거는 양심이다, 도덕이다, 정신이다 이런데 있는데, 일단 그런 일이 그렇게 형편이 되면 양심이고 뭐고 다 잃어버리고 말아요.
지금 우리 귀에 들리는 것도 자꾸, 젊은이들, 학생들 간에 생각이 자꾸 좌익적으로 기울어진다 하는 소린데, 건 왜 그러냐하면 언론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열려서 정당한 생각을 가지는 분들이 사회비판도 하고, 정치에 관한 소견도 말하고, 무슨 자기의 쓰고 싶은 생각을 쓸 수 있다면 안 그럴 텐데, 신통하게도 그런 사람들은 막혀서 못 쓰고.
그 다음에는 뭐, 생활이 재미가 있다나? 오늘 아침에도 뭐, 동전을 넣기만 하면 커피가 어디서든지 나오는데, 한 군데서 하루에 1만 잔도 더 판다고 그래요. 이러니, 소위 이렇게 재미있는 생활만, 이것만 하다가 이제 문제가 일단 나면 그게 다 꿈처럼 사라지고, 그담엔 사람이 제 본성을 잃는데……
그런데 정부에서 자꾸만 이렇게 탄압만 하고 이러니까 거기에 대한 반동으로 미운 생각에 그러는 겁니다. 감정이라는 거 사람을 건지지 못 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그런 걸 읽으면서 퀘이커들이 왜 평화를, Peace Testimony 라는 걸 ‘평화의 증거’라는 걸 왜 그렇게 다른 것보다 역설하는지 그 까닭을 알겠어요. 자기들이 지내봤으니까, 그런데서 참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왔다고 하는 거, 그게 놀라운 일인데 이제 그런 것이 어느 때 가야 어느 만큼 내 맘속에 내가 그 진리를 체험했나 그저 따라만 다녀 가지곤 안 되는 거고, 평상시에 우리 마음을 닦아두어야 할 텐데. 이제 앞이 참 걱정입니다. 요새 정치에 뭐 또 좀 바람이 불려고 그러니까.
그러면 어느 때 가서 사회 전반이 혼란에 빠질는지도 몰라요. 그런 때에 가서 과연 내 믿던 진리를 지켜서 나는 그 축에 들질 않고,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인간답게 지켜나갈 수가 있을까. 죽으면서라도 능히 그걸 증거 할 수가 있을까.

성경으로서도 처음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아라” 모세가 그렇게 했어. 그렇지만 그러다가, 구약의 시대에 그렇게 복잡하고 참혹한 그런 걸 지내고 나서야, 예수님한테 와서야 “나는 그렇지만 너희에게 말하지만 원수를 사랑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그밖에는 생명이 살아갈 길이 없으니까 그러셨을 겁니다. 정치에서 한다는 말이 다 거짓말이에요. 소위 문화라고 하는 것도 소갈머리 없는 셈이에요. 일단 그런데 가 놓으면 변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변한 것이 아니라 제 속에 눌려서 모르고 있던 것이 나온 거지. 본래 있던 그 악한 것이, 그 성격이 나온 거예요. 누구나 다 속에 생명의 씨를 품고 있지만 하나님의 모습대로 되는 사랑의 원리를 품고 있지만, 또 거기엔 악한 것도 같이 있어요. 그걸 어떻게 공부해서 내 속에서 그 악한 뿌리를 아주 잘라버리고, 참사랑의 그대로 하나님의 모습대로인 그 생명을 바로 설 수가 있을까, 이것이 기독교의 근본인데…… 참 어려워지는군요.
1984.1.22 퀘이커서울모임 감화말씀(정리 조형균)




퀘이커서울모임월보 1
저작집30; 15- 95
전집20; 1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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