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봐야 삶이 바뀌지 않으니 책 많이 읽었다고 까불지 말라는 글을 봤다. 인용해서 비판할까 하다가 그 글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돼서 읽고 든 생각만 말하자면,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념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삶이 바뀔 수 있다. 삶을 기준으로 놓는다면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 삶이 이념에 봉사해야지 이념이 삶에 봉사한다면 그건 이론으로 자신의 삶을 치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필요에 따라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본인 나름대로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건 실상 바뀐 게 아니다. 그저 본인이 보기에 유효성이 떨어져보이기에 바꾼 것일 뿐이지, 그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서 논리의 파탄까지 가본 게 아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아직도 그런 걸 읽냐? 는 것이다. 본인에게야 당연히 그 책들은 이미 지나간 삶의 필요에 지나지 않겠으나.. 정말로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해봤으면 완전히 버리기란 어렵다. 이념은 얼룩처럼 어딘가 남아 있기 마련이다. 내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최근에 와서야 겨우 말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나라 걱정”을 멈추지 못하는 건 여전히 민족주의 이념이 얼룩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삶의 변화나 필요를 완전히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논리는 삶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고 나온 것이기 때문에 삶의 필요나 변화가 논리의 파탄의 직접적인 원인일 수 있다.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삶을 바꾸는 데 있어서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삶을 기준으로 삼으면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이념을 놓고 정말 끝까지 추구해보면서 한번 바뀌는 경험을 해봐야 비로소 삶이 바뀐다. 나는 그 치열함을 경험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사실 저 주장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삶의 필요에 의해서 책을 읽어야 했다면, 사실 그건 자신의 바뀌고 있는 삶을 혹은 바뀌어야 할 삶을 책을 통해 미리 연습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놓는 것이다. 책을 읽었기에 비로소 변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책을 읽으면서 배운 이념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완전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기에 그나마 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은 생각뿐만 아니라 인간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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