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4
[현장] 문익환 목사 통일의 꿈을 담은 집 : 네이버 뉴스
[현장] 문익환 목사 통일의 꿈을 담은 집 : 네이버 뉴스
문 목사의 딸인 문영금 통일의집 관장은 “어머니는 이 집이 통일을 위해 토론하고 교육하는 장소로 사용되길 바라셨다”면서 “아버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뜻 깊은 일을 하기 위해 박물관을 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에는 문 목사의 편지와 책 수의복 성명서 시집 등 유품 2만5000여점이 전시된다. 세 개의 방은 세 개의 콘셉트로 꾸며진다.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그의 성장기를 다룬 방, 문 목사가 가정과 교회 이웃을 돌봤던 시간을 추억하는 방, 그의 민주화·통일 운동을 다룬 방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거실은 사람들이 토론하고 교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문 관장은 “아버지는 평소 자신의 생각을 편지로 표현하셨다. 10년 이상 수감 중일 때도 가족과 동료 신학자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는데 몇 천 통이나 된다”고 했다. 딸이 회고하는 문 목사는 따뜻하고 섬세한 시인이자 신학자, 목회자였다. 문 관장은 “아버지의 방북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과격하고 진보적인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따뜻하신 분”이라며 “아픔이 있는 곳엔 늘 달려가 위로하고 대신 싸우기도 했다. 노동자와 철거민 등 위로가 필요한 분들과 함께 한 흔적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박물관이 통일운동의 씨앗이 되길 기대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통일운동의 흔적을 보며 일상에서 ‘작은 통일’을 이뤄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문 관장은 “아버지는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한 마음이 돼야 통일이 된다고 하셨다”며 “일상에서 나와 불편한 혹은 적대적인 관계의 사람과 화해하는 것이 작은 통일운동”이라고 했다.
유물 작업 팀원들이 다음 달 1일 ‘문익환 통일의 집’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피아노에 색을 칠하며 작업하는 모습. 신현가 인턴기자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문 목사는 55년부터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 교수와 한빛교회 목사로 활동했다. 청년노동자 전태일과 장준하의 죽음을 계기로 76년 ‘3·1민주구국선언’을 작성하며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평소 민주화와 통일이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던 그는 89년 3월 25일 평양을 방문해 ‘4·2남북공동성명’ 합의를 이끌어냈다. 76년 첫 구속 이후 6차례 11년 3개월 동안이나 옥고를 치렀다. 94년 1월 18일 77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이 집에서 숨을 거뒀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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