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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
최종덕, 임지현, 전방욱, 강신익, 김시천 | 휴먼인문 | 23,000원 | 2010.08.23 | 468p | ISBN : 978-89-5862-3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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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옛날에는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가 없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 지은 여러 대화편에서는 사랑과 정의의 문제에서 우주와 생명의 문제까지 대화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한국을 포함하여 동아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자는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렇게 나눈 대화의 기록이 ‘공자와 제자의 어록’, 즉 《논어》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맹자 또한 그러했습니다. 《논어》나 《맹자》 속의 이야기들은 지난 2,000여 년 동안 동아시아 문명의 원리가 되어왔습니다.
대화는 동서를 불문하고 학문이 탄생하던 시절부터 진리에 접근하는 생산적 통로였습니다. 거기에 과학과 인문학의 구분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이 마주한 세계의 진실, 삶의 갖가지 문제들, 그리고 진리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원초적인 학문의 양식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대화를 나눈 까닭입니다.
1. 다윈과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
―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개요
지성들이 벌이는 감성 커뮤니케이션, 대한민국 지식 사회의 횡적 소통을 매개하는 역할을 출판 미디어가 깊고 넓게 탐험하기 위해 기획된 휴머니스트의 대담 시리즈(HIT, Human Interlogue Terminal) 네 번째 책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가 2010년 8월 23일 발간되었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는 다윈, 진화론, 한국 사회라는 세 가지 화두를 정점에 두고 “우리 시대의 진화론―다윈과 진화론,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2007년 가을 출발하였다. 2007~2010년까지 총 10여 차례의 대화가 진행된 ‘다윈과 진화론’ 대담은 과학철학자 최종덕(상지대 교수)가 대담 전체를 이끌었고, 역사학, 생물학, 진화의학, 동양철학 분야의 학자 네 명과 말을 섞었다. 이 대담에 참여한 학자는 역사학의 임지현(한양대 교수), 생물학의 전방욱(강릉원주대 교수), 진화의학의 강신익(인제대 교수), 동양철학의 김시천(인제대 연구교수)이었다.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1859) 출간 150년을 넘기면서 세계적으로 수많은 관련 출간물들이 쏟아졌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행사와 더불어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어 다윈과 진화론에 대한 풍요로움을 주었다.
풍요로움 속에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근본적인 질문이 빠진 듯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21세기라는 시대,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찰스 다윈’ 그리고 ‘진화론’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왜 다윈인가’를 묻기 전에 ‘우리에게 다윈, 진화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 깊고 넓게 사유해야 하지 않을까.
2. 우리에게 다윈과 진화론은 무엇인가
―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기획의 배경
불변성의 존재론 풍토에서 변화의 혁명을 일으킨 다윈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개념은 수많은 오해와 반론에 부딪쳤다. 첫째 군비경쟁과 같은 자유경쟁논리, 둘째 우생학과 같은 사회생물학 등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자연선택 개념은 실제로 자연 생명의 본연을 알려준 수사적 도구였을 뿐이다. 셋째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자연선택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기린이 목이 긴 이유는 높은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먹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목이 길어졌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잘못 전해진 이야기들은 다윈의 진화론과 무관하다. 자연선택의 결과가 변이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종의 기원》은 변이된 것 가운데 자연선택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넷째 자연선택의 방향은 목적지향적 진보관을 갖는다는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사유풍토가 잘못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연선택은 더 발전된 방향으로 앞으로 나가는 목적지향과는 전적으로 무관하다. 진화는 진보와 무관하다는 뜻이다. 다섯째 《종의 기원》에 대한 가장 큰 논란은 발간 당시 교회의 종교적 신념이 과학적 사실을 제어하려 했다는 데 있다. 창조 해석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학이 비판받는 예상된 사태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창조과학의 논쟁시비가 끊임없이 있어 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소모적인 논쟁이 불필요하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상호 모순관계가 아니다. 쉽게 말해서 과학자로서 곤충계통학을 연구하는 일과 동시에 기독교인으로서 창조론을 믿는 것 사이에는 그 어떤 모순적 충돌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과학으로서 진화론을 부정하려면 요즘 이슈가 된 유전공학 등도 전면적으로 부정되어야 한다. 이제 진화론을 종교의 터울에서 벗어나 넓은 과학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진화와 진보를 논하면서 서양의 사상사를 보는 비판적 관점으로서 진화론을 다룰 수 있으며, 혹은 임상의학의 새로운 돌파구로서 진화의학을 다룰 수도 있다. 동양의 자연관은 처음부터 진화론적 사유구조와 순통하는 시스템을 보이는데 이런 구조 유사성을 연구함으로서 진화론 과학연구의 승화된 성과 및 동양학 연구범주의 획기적인 질적 도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구체적으로는 진화생물학의 연구가 최근에 논의되는 유전자공학의 연구윤리나 통섭 논의처럼 사회생물학 논쟁들을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는진화론의 출발인 《종의 기원》을 한국에서 바라보는 진화론의 과학과 진화론적 사유구조에 대한 반성적 공간을 갖기 위해 마련되었다. 대담의 방식으로 각 전문 분야의 연구자들의 글이 아니라 말로 이야기를 풀어내 교양 독자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3. 2007~2010년까지 총 10여 차례의 대담을 정리하다
―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기획의 경과
휴머니스트의 대담 시리즈 네 번째 책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는 과학철학자 최종덕이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라는 문제를 들고 역사학자 임지현, 생물학자 전방욱, 의학자 강신익, 동양철학자 김시천과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2007~2010년까지 과학철학자 최종덕이 네 명의 학자를 만나러 서울, 횡성, 김해, 강릉, 원주 등을 직접 찾아갔다. 이들과 10여 차례 대담을 진행한 뒤, 방대한 분량의 녹취 원고를 분류 정리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책으로 발간되었다.
휴머니스트의 대담 시리즈는 2001년 11월 독자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동양철학자 이승환(고려대 철학과 교수)과 서양철학자 김용석(영산대 교양학부 교수)의 대담을 엮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는 출판사가 기획하여 발간한 최초의 본격 철학 대담집으로 우리 토론 문화에 큰 자극제가 되었다. 2003년에 발간한 두 번째 대담집 《오만과 편견-근대의 장벽을 허무는 한일 지식인의 대화》 (임지현, 사카이 나오키 지음)은 한국의 학자와 일본이 학자가 해방 이후 두 나라 학계의 주류 담론인 ‘민족’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대담이었다. 2005년 11월에는 인문학자 도정일(경희대 명예교수)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이화여대 석좌교수)의 만남을 기록한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를 발간하여 사회문화적으로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4. 다섯 명의 대담자 소개
최종덕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독일 기센 대학교 과학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상지대학교 교수이며, 과학과 인문학, 전통과 현대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학문을 넘나들며 자연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도(道)와 기(氣)의 자연학적 진화〉, 〈진보와 진화: 철학사의 조명〉가 있고, 지은 책으로 《부분의 합은 전체인가》, 《함께하는 환경철학》, 《우리들의 동양철학》 (공저),《시앵티아》, 《인문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이분법을 넘어서》(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철학과 물리학의 만남》, 《동양의학은 서양의학을 뒤엎을 것인가》(공역), 《과학철학의 역사》(공역) 등이 있다. 그의 홈페이지 http://eyeofphilosophy.net 에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임지현
서양사를 전공하고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다. 영국과 폴란드 및 일본 등에서 지속적인 공부를 통해 학문과 국경의 경계와 틀을 넘어선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윈의 사회사적 의미를 공부하기도 했으며,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세계사적 담론을 생성하는 주목받는 학자이다. 지은 책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와 민족문제》, 《바르샤바에서 보낸 편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 《이념의 속살》, 《오만과 편견》(공저),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공저), 《적대적 공범자들》,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등이 있다.
전방욱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는 강릉원주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 있다. 플로리다 대학에서 식물학을, 캘거리 대학에서 과학커뮤니케이션을 연구했고, 계간 〈세계의 문학〉을 통해 시 부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일선 과학현장에서 일어나는 언론의 문제, 생명윤리의 문제 등에 큰 관심을 두면서, 과학과 사회 사이를 관통하는 비판적 과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지은 책으로 《수상한 과학》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진화의 패턴》,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 《생명의 미래》, 《인간의 본성(들)》 등이 있다.
강신익
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일산백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돌연 철학 공부를 하기 위해 영국 웨일스로 옮겨 의철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인제대학교 교수로서 인문의학연구소 연구 활동을 이끌고 있다. 의학과 철학, 넓게는 과학과 인문학 사이에서 열린 소통을 주도하는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지식인이다. 주요 논문으로 〈진화-진보 담론의 빛과 그림자〉, 〈숨과 살의 현상학〉이 있고, 지은 책으로 《몸의 역사, 몸의 문화》,《의학 오디세이》(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공해병과 인간생태학》, 《환자와 의사의 인간학》,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 등이 있다.
김시천
노장(老莊) 철학을 전공한 동양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론을 깊이 연구한 소장학자이다. 현재는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도가철학과 한의철학, 동아시아 고전의 현대적 해석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며 글을 쓰고 있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에 솟아나는 원천으로서 선진시대 고전을 해석하는 창의적 연구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다윈이 맹자와 만났을때: 고전적 유가수양론의 진화론적 사유구조〉, 〈동양학과 진화론: 전통유교담론과 진화론 내러티브의 진보적 재구성〉가 있고, 지은 책으로 《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기학의 모험 1·2》(공저),《이기주의를 위한 변명》,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 우리 시대의 동아시아 고전읽기》 등이 있다.
5. 철학자, 역사학자, 생물학자, 의학자가 연 《종의 기원》 카페
―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특징 1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한국의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진화론은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오랫동안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스티븐 제이 굴드, 에드워드 윌슨과 같은 세계적인 생물학자의 저서 대부분이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그리고 진화심리학을 다룬 책들도 유행처럼 읽히고 있다. 진화론과 관련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진화론이 다양한 학문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오늘날 진화론이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진화론의 문화적 파장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진화론은 초기부터 기독교와 적대적 긴장관계에서 출발하였고, 또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우생학이나 인종차별 같은 어두운 얼굴로 비춰지기도 했다. 또한 진화론이 유전자 환원주의에 일조한다고 비판받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들을 ‘괄호’ 안에 집어넣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왜 오늘날 다시 다윈인가? 또한 진화론이란 무엇이고, 진화론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더 나아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수용되고, 논의되고, 이야기되는 진화론은 무엇인가?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와 사고를 지닌 한국 사회에서 진화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역사, 사회, 생태, 철학’이라는 카페를 열게 되었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는 역사학자, 생물학자, 의학자 그리고 동서양의 철학자를 함께 만나게 된다. 진화론의 다양한 영역과 주제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역사적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진화론이 생성될 수 있었고(진화와역사 카페), 그것이 인간과 사회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는 무엇이며(다윈과사회 카페), 몸으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삶에 진화론은 어떤 메시지 주고 있는지(진화와 생태 카페), 마지막으로 기존의 사고와는 다른 진화론적 사유는 어떠한 것인지(다윈과철학 카페)에 관한 대화이다. 말하자면 현재 한국에서 진화하고 있는 진화론에 관한 대화이다.
네 곳의 카페에서 찰스 다윈이라는 인간과 그 시대를 이해하고, 오늘날 우리가 제대로 이해해야 할 진화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진화론이 우리의 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의학의 분야를 통해 진화론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진화론이 동아시아 전통적 사유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진화론적 사유’라는 개념을 통해 풍부하게 사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6. 다윈과 진화론에 대한 가장 다양하고 이채로운 이야기
―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특징 2
그럼에도 진화론은 한국에서 여전히 다양하게 오해되고 있다. ‘가장 진화된 존재’가 인간’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남성이 여성보다 ‘더’ 진화했다는 둥 19세기의 신앙이었던 진보의 믿음으로 진화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강간과 살육, 인종 차별, 여성 차별과 같은 사회적 문화적 현상이 진화론적으로 적응된 결과이며 따라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기괴한 주장을 하는 이들까지도 있는 형편이다. 과학이론 가운데 진화론처럼 다양하게 이해되고 오해되는 이론은 없을 것이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상식과 이해를 되짚어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진화론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화론을 제시한 찰스 다윈이라는 인간과 마주해야 하며, 또한 그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온전하게 이해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독특한 문화적 지적 감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때 현재의 진화론 이해의 분위기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그래서 과감하고 넓은 시야에서 진화론을 다루어 보고자 했다. 역사학, 생물학, 의학, 철학이라는 다양한 학문을 공부해 온 한국인 학자들이 모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찰스 다윈과 진화론, 그리고 한국 사회라는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 우리는 자신의 전공과 사색을 진솔하고 진지한 자세로 털어놓았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처럼 이렇게 다양한 시각에서 진화론을 다룬 책은 한국에서는 처음이고, 세계적으로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7.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안된 ‘진화론적 사유 방식’
―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특징 3
1859년 출간한 다윈의 《종의 기원》은 여전히 현대생물학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1872년 개정 6판에서야 진화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데, 그 이전에는 ‘변이를 통한 자연선택’이라는 설명으로 진화의 개념을 대신하였다. 진화론의 진정한 의미는 생명종이 불변이라는 본질론적 종개념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개정 5판 헉슬리의 서문에는 《종의 기원》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의미는 ‘변화’의 존재론이라고 밝혔다. 즉 실체와 본질의 키워드를 가졌던 서구철학의 기존 존재론으로부터 최초로 탈피한 혁명적 사유 체계라는 점이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에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매우 의미 있는 방법론적인 사유를 제기한다. 그것은 바로 ‘진화론적 사유 방식’이다. ‘다윈과철학 카페’ 〈진화론적 사유가 동아시아의 사유와 만나다〉(김시천과 최종덕의 대담)에서 진화론적 사유 방식이 곧 동양사상의 구조로 해명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화론적 사유구조는 당연히 생물학적 진화론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150년밖에 안 된 과학적 진화론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진화론의 배경이 되는 역사와 세계 속에서 잉태한 총체적 사유구조를 뜻한다.
진화론은 첫째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과 ‘변이’의 작용 위에서 성립한다. 둘째 자연선택의 인과적 기능은 ‘적응(adaptation)’이라는 작용자에 의해 진행된다고 한다. 셋째 자연생명계에서 적응이라는 작용은 최대의 자손을 증식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진화의 기초적인 정의이다.
그러나 이런 정의 방식은 많은 논쟁거리를 남기고 있다.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에 대하여 동의하지만, ‘적응’이라는 작용 방식에 대하여는 주장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선택 외에 환경변화에 의한 대규모의 급작스런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다윈 이후의 진화론에 대한 주장이 다양하지만, 다윈 진화론의 놀라운 측면은 《종의 기원》에서 이런 분화된 주장들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다양한 진화론 주장들이 있지만, 다윈이 말했던 진화론의 핵심은 생명 자체가 지금도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존재의 변화와 존재의 연속성을 강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진화론의 핵심이다. 따라서 진화론은 기존의 서구철학의 전통과 달리 생명종(種)의 고정된 실체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최종덕은 이런 진화론의 핵심으로부터 진화론적 사유구조를 유추하였다. 그러므로 진화론적 사유구조는 변화와 운동을 인정할 수 없는 서양철학의 존재론에 얽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인식을 나누지 않으며, 단절이 아닌 연속의 눈으로 꿰뚫어 낼 수 있는 철학적 관용 위에서 축조된다. 이러한 변화운동과 존재의 실체부정이라는 진화론적 사유 구조로부터 동양적 사유 방식의 틀거리가 설명될 수 있다. 물론 동양철학 안에서 진화론적 사유구조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정의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어렵지만, 그래도 그것을 접근하는 주요 명제들을 짚어낼 수 있다. 그래서 동양철학의 사유구조를 염두에 둔 진화론적 사유구조는 동양철학자 김시천의 동아시아적 사유구조와 만나게 되면서 상세히 해명되고 있다.
진화론적 사유는 실체론적 사유 혹은 창조론적 사유와 달리 존재의 고유성과 차별성을 처음부터 거부한다. 존재의 차별성이 서구 형이상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기독교 신학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이다. 차별적 존재를 기반으로 한 서구 과학은 현상 운동 이면에 숨겨진 이데아 같은 존재의 비밀 법칙을 찾는 일에 몰두한다. 그것이 바로 과학법칙이라는 뜻이다. 또한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 이루어 놓은 기술의 발전은 자연의 존재를 인위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존재를 분화하고 존재의 계층과 차별을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존재의 차별로부터 오늘의 과학문명과 기술 시대를 낳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대문명의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로부터 인간소외라는 부작용이 따라 온 것이 문제였다.
8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주요 내용 소개
진화와역사 카페,역사의 지평에서 찰스 다윈을 만나다 임지현과 최종덕의 대담
‘진화와 역사 카페’는 시대의 아들인 찰스 다윈을 조망하고, 그의 진화론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한 것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종의 기원》이 당시의 영국인에게 충격으로 느껴지고, 서구 유럽인에게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그의 진화론이 바로 19세기 유럽의 보편적 신앙이었던 진보 관념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1859년은 카를 마르크스의 주요 저작이 출간된 해이기도 하다. 여기서 당대 자유주의자들 및 사회주의자들이 《종의 기원》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그들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항간에는 카를 마르크스가 자신의 《자본론(Capital)》을 찰스 다윈에게 헌정했다는 신화가 널리 유포되어 있다. 우리는 ‘진화와역사 카페’를 통해 어떠한 역사적 오해로 인해 그런 신화가 생겼는지에 대해 듣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진화론에 대한 역사적 왜곡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이야기에 동참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종의 기원》 출간 당시 기독교와 진화론의 충돌보다 당대의 사회적 이념이었던 진보에 대한 도전이 다윈을 더 위태롭게 했다는 것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다윈과사회 카페, 우리 시대의 진화론,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전방욱과 최종덕의 대담
‘다윈과사회 카페’에서는 자연세계와 생명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했던 진화론이 그 이후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인간사회를 어떻게 바꾸어왔는가를 생물학자의 시각을 통해 조명한다. 진화론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유전자결정론에서 윤리학에 대한 진화론적 논의까지 진화론이 제시하는 새로운 인간학으로서 진화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늠해보려는 것이다.
‘다윈과사회 카페’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충돌하고, 어떻게 화해해나가는가를 듣게 될 것이다. 대화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가로지르는 상호소통이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을 진정한 행복으로 이끄는 지식이 가능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와 만나다》에 참여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나타난 생물학자 전방욱의 모습은, 과학과 과학자가 가져야 하는 사회적 책임과 자세가 어떠한 것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생물학과 진화론의 논의가 인간과 사회에 어떠한 의미와 가치, 그리고 한계를 갖는가에 대해 그간 사유하고 고뇌했던 여정을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와생태 카페, 의학의 시선으로 생태주의적 진화론을 말하다강신익과 최종덕의 대담
인류의 지적 유산인 《종의 기원》을 저술해서 크게 성공을 거둔 다윈은 후에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유래》에서 빛을 보게 된다. 진화론의 가장 커다란 쟁점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유래에 관한 것이기에 이후 진화론적 인간학의 문제는 과학뿐만 아니라 20세기 문명사회를 흔들어 놓을 정도로 심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오늘날에는 상식이 되어버린 ‘생명의 공통조상론’을 통해서 결국 외부 환경과 생명체의 상호작용에서 진화가 비롯된다는 생태학적 시스템을 유추할 수 있다. 인간의 몸, 질병과 건강 또한 이러한 논의의 바깥에 있지 않다.
‘진화와생태 카페’는 이러한 이유에서 열렸다. 카페에 초대된 강신익은 철학과 역사라는 커다란 시야 아래에서 인간의 몸의 진화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학은 이제 진화의 산물로서의 몸과 문화적으로 양육되는 몸이 화해되고, 더 크게는 생존의 조건으로서 도시와 자연환경이 화해할 때 진정한 의미의 건강과 행복이 가능하다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진화론이 인문의학과 만나 그에게서는 생태학적 비전으로 승화된다.
‘진화와생태 카페’는 이러한 시각에서, 왜 사람은 질병에 걸리는가라는 과학적이고 실존적인 문제에서부터 진화론이 우리의 몸에 어떻게 적용되는가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전해준다. 더불어 인문의학, 사회의학, 자연의학의 역할과 의미를 개관하고 나누면서,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태적 평등의 이야기가 열리게 된다. 그리고 ‘겸손한 과학의 눈’으로 자연과 마주할 때 인간의 진정한 건강과 행복도 가능하다.
다윈과철학 카페, 진화론적 사유가 동아시아의 사유와 만나다 김시천과 최종덕의 대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근대 초기의 아이작 뉴턴의 고전역학과 더불어 서양 과학의 가장 대표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뉴턴의 고전역학과 다윈의 진화론은 각각 물리학과 생물학이라는 상이한 학문 분야이다. 두 학문은 모두 근대 서양에서 탄생한 과학이면서도 그것이 전제하는 방법론과 세계관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뉴턴의 고전역학은 연역적 방법론을 포함하지만, 진화론은 다윈의 비글호 항해가 그 기초가 되었던 것과 같이 철저하게 귀납적이고 경험적이다. 그래서 물리학이 시간에 지배받지 않는 법칙 세계를 향해 있는데 반해 생물학은 생명 탄생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자연사적이고 경험적이다. 또한 물리학이 실체적이고 연역-법칙적 존재를 전제한다면, 진화론은 시종일관 시간과 역사 속에서 변화를 중시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 처음의 상당 부분을 ‘변이’의 개념을 설명하고자 했다. 진화가 일어나기 위해서 먼저 생물종에서 변이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이로 인해 새로운 형질이 선택된다. 이러한 형질의 선택을 통해서 혹은 지역적 분리에 의한 생명종의 분화를 통해서 새로운 종의 탄생이 유발된다. 이러한 생명의 무궁한 탄생 가능성은 곧 생명종이 처음부터 정해진 설계도면대로 생겨났다는 실체론적 존재는 무의미하다. 오로지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진화론은 시간의 철학이자 변화의 철학이라는 함축을 갖는 것이다.
‘다윈과철학 카페’는 생물학 이론으로서의 진화론보다 그 내부에 들어 있는 ‘진화론적 사유’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진화론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특징적으로 잡아보고 이를 동아시아의 사유구조와 비교하면서 생명의 역사와 문명의 시간을 사유하는 서로의 궤적을 확인해보고자 했다. 독자들은 ‘다윈과 철학 카페’의 대화를 통해 동아시아적 사유가 진화론적 사유로 이해될 때 새로운 고전 해석이 가능함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다윈의 정원, 과학, ‘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길찾기 최종덕과 다윈의 대담
1809년에 찰스 다윈은 태어났다. 200년이 더 지난 긴 세월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영국의 슈루즈버리. 이곳 한반도에서 보자면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다윈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그간 찰스 다윈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와서 학자들과 만나 대화하고 토론한다면 어떠한 내용이 오고 갔을까를 네 곳의 카페를 둘러보며 이야기해보았다.
대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당대의 지식사회의 분위기와 《종의 기원》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진화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궁금해할 만한 것들에 관해 그와 직접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 물론 가상적인 만남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네 군데 카페 가는 길 언덕 너머 있는 ‘다윈의 정원’으로 150여 년 전 다윈을 오늘에 초대했다.
다윈을 초대해서 가상으로 만난 최종덕은 본래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이후 과학철학을 중심으로 한 철학으로 방향을 돌렸다. 독일 유학시절 진화인식론 세미나가 계기가 되어 양자역학과 진화론 등의 자연철학 연구에 몰두했다. 귀국 후 동서와 고금을 자연철학이라는 중층적 주제안에 포용하고자 했다. 오늘 이러한 ‘다윈의 정원’에서의 가상 대화를 열게 딘 것도 그의 복층적 연구의 산물이다.
《종의 기원》에 담긴 생각과 통찰은 인류 차원의 혁명과도 같다. 그렇지만 《종의 기원》 이면에 담겨진 다윈의 생각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다윈은 활자화된 자신의 저서에서 드러내지 않았던 내밀한 생각들이 궁금했다.
우리는 다윈을 직접 초대하여 그의 진솔한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다윈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자연의 변화, 즉 생명의 진화가 연속적이라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실체론적 사유의 전통을 지닌 서구에서 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다윈이 생각하는 인간관이 무엇인지 솔직히 듣고 싶었다.
최종덕 (저자)
상지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철학교수. 물리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독일 기센대학교 과학철학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연과학과 철학, 동양과 서양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두 문화`의 지식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앞으로 이를 더욱 확장해 한의학과 생물학의 사유를 연결하는 작품을 기획 중에 있다. 역서로《철학과 물리학의 만남》,《과학철학의 역사》등이 있고, 저서로《부분의 합은 전체인가》,《함께하는 환경철학》,《인문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등이 있다.
임지현 (저자)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양사상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영국 포츠머스 대학의 민족주의 연구회 등에서 연구하고 강의하였다. 현재 영국 글래모건 대학교의 외래교수 겸 하버드 대학 옌칭연구소의 초청학자로 외유 중이다. 임지현은 근대유럽지성사, 사회주의 사상사, 폴란드 근현대사, 동유럽 민족운동사, 유럽 노동운동사 등의 연구를 통해 유럽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민족’이라는 뜨거운 이슈를 제기해왔다. 특정 인종이나 땅, 언어 등으로 묶는 식의 민족주의를 초월해 공통의 관심사와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민족 개념을 위한 이론적 실천적 활동을 전개해왔고, 현재도 ‘민족주의 비교연구’ ‘파시즘 비교연구’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아 ‘근대성’을 넘어서는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최근 그가 펴낸 일련의 저서들은 ‘민족’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시작이었고, 이번 대담은 그 기획의 가능성을 열어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서로는 《마르크스 엥겔스와 민족문제》(1990), 《바르샤바에서 보낸 편지》(1998), 《민족주의는 반역이다》(1999), 《그대들의 자유, 우리들의 자유-폴란드 민족해방운동사》(2000), 《이념의 속살》(2001) 등이 있으며, 《서양의 지적 운동》(1994), 《우리 안의 파시즘》(2000) 등을 편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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